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8. 4. 26. 18:25

 


우리 가운데 장로든 사역자든 기독교의 풍조를 깨끗이 벗어나기 바란다. 기독교의 풍조는 바로 설교하는 사람을 대단히 의지하는 것이다. 오늘은 장박사를 청해서 말하게 하고, 내일은 왕 목사를 청해서 말하게 하고  또 며칠 지나서는 무슨무슨 전도자를 청해서 말하게 한다. 그들이 말하는 것이 도데체 무슨 효과가 있는지 묻겠다. 아무런 효과도 없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한 지역 집회 혹은 한 지방교회가 오늘은 이 동역자를 청해 설교하게 하고, 내일은 저 동역자를 청해 설교하게 하는 것을 절대로 찬성하지 않는다. 그것은 소용없는 것이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당신은 모든 동역자를 초청해서 그곳에서 말하게 했겠지만, 여러분은 여전히 여러분이고 이전의 자신 그대로이다. 몇 명의 구원받은 사람이 더해진 데 불과하고, 몇 명의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에 불과하다.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당신은 영원히 교회의 건축과 교회의 동역을 보지 못할 것이다. 건축과 동역을 갖기 위해서는 책임형제들의 수고가 필요하다.
 
교회를 치리하고 교회를 건축하는 것은 결코 설교자를 초청하는 것에 달려있지 않다. 이것은 우리 기운데서 사역하는 방법이 아니다. 나는 우리 모두가 자신을 반드시 교회 가운데 두고 일에 몰두하며 수고해야 한다. 이외에 다른 길은 없다. 당신이 사도바울이나 베드로나 아볼로 등 이러한 사람들을 초청해서 말씀을 전하게 하더라도, 여러분은 여전히 여러분이고, 아무런 소용이 없다. 오직 유용한 한 가지는 여러분 자신이 엎드려져서 교회는 하나님의 밭이고, 사람은 거기서 농부가 되어 온통 얼굴에 땀을 흘리며 열심히 밭을 경작할 필요가 있음을 보는 것이다.
 
또한 여러분이 돌보도록 주어진 하나님의 집임을 보아야 한다. 여러분은 주부와 같이유리창을 닦고 바닥을 청소하고, 옷을 궤매고 의복을 손질하며, 뜨거운 밥을 하고 찬 밥을 먹으면서 그곳에서 수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이 천 번, 만 번 설교를 들어도 소용없다.
 
형제들이여, 한 천사가 여러분의 장소에 와서 한 주 동안 특별집회를 열면 여러분이 있는 곳의 교회가 부흥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라. 이런 소망을 품지말라. 빨리 굴복하고 차분히 일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 접촉하여 그들을 하나님 앞에서 살고, 그리스도를 누리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 실질적인 어려움이 있을 때에는 그들을 도우라. 만일 그들에게 물질적인 필요가 있고 당신에게 이러한 능력이 있다면, 당신은 그들에게 나눠주어야 한다. 헌신이라거나 공급이라고 말할 필요도 없다. 한 형제가 밥을 먹지 않았는데 당신에게 밥 한 그릇이 있으면, 당신이 반 그릇을 먹고 그에게 만 그릇을 주면 된다. 이는 헌신이라기 보다 당신과 그가 주님을 섬기기 위해 생명 안에서 서로 나누는 것이다.
 
버울은 그가 자신과 동행들의 필요를 공급하기 위해 두 손으로 일했다고 말한다. 당신은 당신과 함께 지체된 형제자매의 짐을 짊어져야 한다. 당신이 이런 정도까지 짊어질 수 있다면, 하나님이 당신의 일을 축복하시는지 축복하지 않으시는지 시험해 보라! 교회의 건축은 서서히 되어지는 것이며 힘을 들일 것을 요구한다. 당신은 요행을 바랄 수 없고 다른 사람을 기대할 수도 없다. 오직 당신이 손수 집 안에서 수고하고 힘들여 일해야만 당신의 집은 모양을 갖출 것이다. 하나님의 집인 하나님의 교회는 장로들의 돌봄에 맡겨졌다. 장로들은 주부로서 다만 수고하고 힘들여 일해야 한다. 교회의 건축은 장로들의 수고에 달려 있다. 단지 부흥회를 여는 것은 역사하지 않는다. 당신은 반드시 여기에서 심혈을 기울여 일해야 한다.
 
나는 각지 교회의 장로들이 이 원칙을 붙잡고 각지에서 힘을 다 쏟기 원한다. 설교를 잘 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어떤 지방은 갈수록 엉망이 된다. 특별집회는 적게 열수록 좋다. 시간을 아껴서 한 명 한 명 접촉하고, 한 명 한 명에게 시간을 들여 그들이 배우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


(Witness Lee)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8. 4. 26. 18:17

 

워치만니 형제님은 교회가 고린도전서 14장에 밝혀진 대로 집회하는 것에 대한 계시를 보았다. 이 계시에 따르면 온 교회가 모일 때, "각 사람이....가지고 있고"(26절) 라고 말한 대로, 각 성도가 함께 모일때 뭔가 함께 나눌 것을 이미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니 형제님은 이러한 종류의 집회를 '상호성 집회'라고 말했다. 이러한 집회는 한 사람이 말하고 나머지는 듣는 전통적인 방식에 따른 것이 아니다.

 

그러나 1세기 무렵부터 전통적인 집회방식이 교회안에서 점차적으로 보편적인 집회가 되었고, 기독교 실행의 주요구조가 되었다. 만약 기독교에서 한사람이 말하고 나머지는 듣는 집회를 없애 버린다면 기독교의 구조전체가 무너질 것이다. 니 형제님은 이러한 집회가 성경적인 것이 아닌 열국의 풍습(왕하17:8)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8. 4. 26. 18:02

 

진정한 배움은 어떤 장소에 가서 은밀히 영적인 수양을 하여 당신 자신이 진보가 있다고 느낀 후에 다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만약 자신이 어느 단계에 이르기까지 기다렸다가 그 다음에 일을 한다면, 기다릴수록 더 아무것도 없게 된다. 우리는 다만 현재의 상황에서 배우고 얻는 것이지 무엇을 얻은 다음 나가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당신이 참소하는 느낌을 상관하지 말고 필사적일수 있기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에게서 뭔가가 계속 새어 나가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당신은 기다릴 수 없다. 일단 기다리면 더욱더 느슨해지기 때문에 자신을 엄격히 다루어야 한다. 역대로 하나님께 쓰임받은 사람들은 다 엄격한 사람이다. 하나님의 일에서는 결코 경솔하고 주의 일에 마음을 두지 않은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

 

위트니스 리 형제도 자신에 대해 엄격하고 쉽게 쓰러지지 않는 사람이다. 또한 그는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고 필사적일 수 있으며 자기를 사랑치 않는 형제이다. 그는 자주 '사람은 몸이 좋지 않다고 핑계를 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가 생각해 낸 것과 말한 것을 그대로 이행하는 사람이고, 이 길이 통하지 않으면 가서 다른 길을 찾아내는 사람이다. 그는 이렇게 필사적이고 어떤 말을 해도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이 이러한 형제들을 따라 필사적으로 일하는 것을 배우기를 권한다. 기다리지 말라. 기다릴수록 공허함만 더할 뿐이다.

 

(Watchman Nee)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4. 26. 05:00


빌립보서 4:6-7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서 기도와 간구를 통하여 감사한 마음으로 여러분의 구할 것을 하나님께 말씀드리십시오. 그러면 사람의 이해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평안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입니다.



캘리그라피 - 우슬초 / 찬송가 - Shulammite Son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4. 26. 05:00


찬송가 483 - UCLA CD - Give Thanks Unto The Lord - 지방교회 찬송가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4. 26. 05:00

생명이만나 303 - 그리스도께 굴복된 사람 - 지방교회 이만나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4. 26. 05:00


포이멘칼럼 181 - 레위기 라이프스터디 요약 3 - 지방교회 칼럼


posted by 스마일은혜 2018. 4. 25. 12:15

그분은 의사로서 사역하심

성경말씀

(마9:12~13) 예수님께서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강건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희생 제물을 원하지 않는다.’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배우십시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습니다.”

오늘의 만나

하늘에 속한 왕국의 왕은 왕국을 위하여 그분을 따르도록 사람들을 부르실 때 심판관이 아니라 의사로서 사역하셨습니다. 심판관이 심판하는 것은 의에 따른 것이지만, 의사가 병을 고치는 것은 긍휼과 은혜에 따른 것입니다. 그분께서 하늘의 왕국의 백성으로 삼은 사람들은 나병 환자들과 중풍병 환자들과 열병 환자와 귀신 들린 사람들과 각종 병든 사람들과 멸시받는 세리들과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분께서 이 가련한 사람들에게 심판관으로서 찾아오셨다면 모든 사람이 정죄받고 거절당했을 것이며, 아무도 하늘의 왕국 백성으로서 자격이 있거나, 선택을 받거나 부르심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들을 고치고 회복하고 살리고 구원하는 의사로서 사역하러 오셨는데, 그 목적은 그들을 하늘의 새로운 시민들로 재조성하고, 이들을 통하여 그분의 하늘의 왕국을 이 타락한 세상에 세우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지방교회 생명 이만나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8. 4. 25. 10:23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바꾸어 놓거나 하나님으로 하여금 억지로 무엇을 하시게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좋은 것으로 우리에게 주려고 하신다.(마7:11) 그러나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거룩과 공의에 참여케 하시려고 그분의 성결과 공의로 우리를 다스리신다(히 12:7-8).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 않는 것은, 때로 그분이 우리를 과잉 사랑 할 수 없기 때문이고, 때로는 우리에게 잘못이 있고 우리가 그 죄를 자백해야 하기 때문이다. 때로 하나님이 우리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는 이유는 다름 아닌 다만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시려는 것이고, 그분의 생각이 우리의 생각보다 뛰어나며, 그분이 보좌에 앉으신 분이시며,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위격을 알고 경배하게 하며, 그분이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신다는 것을 나타내시려는 것이다.

 

여러분은 주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라. 중언부언하며 떠든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지 말라. 그것은 이방인들이 하는 일이다(마 6:7). 우리는 먼저 자신을 살피고, 그런 다음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해야 한다.

 

(Watchman Nee)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8. 4. 25. 10:17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지팡이니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것을 땅에 던지라 곧 땅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된 지라. 모세가 뱀 앞에서 피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그가 손을 내밀어 잡으니 그 손에서 지팡이가 된지라. "


"또 가라사대 네 손을 품에 넣으라 하시매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그 손에서 문둥병이 발하여 눈같이 희게 된지라. 가라사대 네 손을 다시 품에 넣으라 하시매 그가 다시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손이 여상(如常)하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들이 너를 믿지 아니하며 그 처음 이적의 표징을 다 받지 아니하여도 둘째 이적의 표징을 믿으리라. 그들이 두 이적을 믿지 아니하며 네 말을 듣지 아니하거든 너는 하수(下水)를 조금 취하여다가 육지에 부으라. 네가 취한 하수가 육지에서 피가 되리라….너는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출 4:2-9, 17)"

 

본문에 기록된 세 가지의 기본공과에는 오직 하나의 기본적인 원칙이 있는데, 그것은 "본 것"과 "보지 못한 것"이다. 당신이 보았다면 자연히 다른 사람과 분별될 것이다.하나님의 계시를 보지 못했을 때, 당신이 본 것은 지팡이일 뿐이며 자신의 손이 정결하다고 보았을 뿐이고 애굽을 공급하는 것이 하수라고 보았을 뿐이다. 그러나 당신이 일단 하나님의 계시를 얻었다면, 더 이상 이렇게 느끼지 않을 것이며 당신은 수중에 있는 지팡이가 뱀이고, 당신의 손은 불결하고, 세상에 충만한 것이 사망이라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출애굽기 4장은 하나님의 계시와 사람의 관점이 대비되는 한 장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계시를 알 수 있느냐고 묻는다. 문제는 당신이 당신이 지팡이를 뱀으로 보고, 손에서 난 것이 문둥병이며, 물이 피라는 것을 보았는가에 있다. 젊은 사람들은 야심이 있고 장미빛 꿈을 꾼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그 꿈에서 깨어나게 하시기를 원한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렇게 하게 했을 뿐 아니라 이렇게 보게 하셨으며 또한 모세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이렇게 하게 하셔서 그들도 보게 하셨다.

 

본래 하나님은 모세를 사용하셔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애굽에서 구원하고자 했다. 모세가 볼 때 그것은 매우 큰 어려움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시가 그에게 주어지자 그의 느낌은 달라졌다. 예를 들어, 지렁이 한 마리가 이 컵에 있었는데 오늘 저녁에 목이 말라 이 컵의 물을 마셨다고 하자. 다 마실 때 쯤에 이 지렁이를 발견했다면 내일 저녁 내가 여기서 다시 마시려고 이 잔을 보았을 때 내게 어떤 느낌이 있겠는가? 아마 날마다 지렁이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계시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마치 모세처럼 날마다 지팡이를 잡고 있었지만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뱀으로 변한 과정을 거친 후에는 지팡이에 대한 모세의 느낌은 달라졌을 것이다.

 

육체에 대한 느낌도 이와 같다. 우리는 죄가 세상 안에 있지 않고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흉악한 일도 세상 안에 있지 않고 내 안에 있다. 그러나 이전에는 느낌이 없었다. 어느 날 내가 품 속에서 손을 꺼냈을 때 문둥병이 난 것을 보았다면 이후에는 나는 손을 만지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문둥병이 생각날 것이다. 어떤 사람은 겸손하고 연약하며 순복하는 것처럼 꾸미지만 조금도 그럴싸하지 못하다. 만일 사람이 계시를 얻지 못했다면 꾸며서 할 때는 겸손한 모양이지만 일단 잊어버리면 겸손하지 않고 매번 일을 할 때마다 경계심(警戒心)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오늘 형제 자매들에게 권고의 말을 하거나 혹은 엄한 말을 할 때 반드시 느낌이 있을 것이고 당신의 품 속에서 손을 꺼낼 때 아마 문둥병을 꺼낼 것이다. 여러분이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하나님이 당신을 불러 사역하게 하시는 것은 당신이 얼마나 많은 물건을 드렸는가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얻은 계시가 얼마나 되는가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전에 한 형제가 나에게 "나는 아무리 연약해도 저 두 형제보다는 강합니다." 라고 말했다. 나는 이 사람이 아마 일생 자신의 패괴함과 더러움을 보지 못했을까 염려된다.

 

섬기는 사람은 세상의 물에 대해서도 느낌이 있어야 한다. 목마름이 그치려면 우리의 요구를 만족시켜 주어야 한다. 아마 우리 중 어떤 사람은 수년 동안 기도하면서 세상에 속한 지위와 축복을 얻기를 원했을 것이다. 여러분이 오늘 이후로 반드시 꿰뚫어 보기를 원하며, 하나님으로부터 철저한 계시를 얻어 세상으로부터 얻은 모든 만족이 실상은 "피"라는 것을 보기 바란다. 계시를 얻은 사람이 본 것은 "물이 실상은 피"라는 것이다. 설령 수건이나 양말을 사는 일에 있어서도 물이 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자 한다면, 애굽에서 남아서 나일강의 물을 마시지 않아야 하며, 광야로 가서 반석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마셔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반드시 과거에 보지 못했던 것을 보아야 한다. 계시가 있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이것들은 참으로 뭔가 기묘하게도 사람이 볼 때는 지팡이요, 품 속의 손이요, 나일강의 물이지만 일단 당신이 하나님이 주신 계시와 이상을 통해서 보면 그들의 참모습이 뱀이요, 육체요, 파라는 것을 분명히 보게 된다. 그럴 때 당신은 도망 갈 것이고 두려워하며 떠나게 될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계시만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의지하던 것들의 참 모습을 알게 해주며, 가장 큰 죄가 바로 자아임을 알게 해주며, 또한 세상의 두려움을 알게 해준다.

 

세상에서 지팡이는 의지할 만한 것이며, 자아에서 나온 것이 좋은 것이고, 물은 마실만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이상수형제(위트리스 리)과 함께 여러분에게 요청하건데, 하나님 앞에서 분명한 계시를 구하여 반드시 세상과 자아와 환경의 모든 것의 참 모습을 보기 바란다. 이렇게 할 때 당신은 비로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고 하나님께 열납될 수 있다.

 

(Watchman N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