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샬롬1 2018. 7. 3. 06:08

우리의 의견과 관념을 죽임


요한복음 6장의 말씀은 양육하기 위한 것이다
요한복음 6장 57절에서 주님은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입니다``라고 하셨고 6장 63절에서는 ``내가 여러분에게 한 말이 영이요 생명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6장의 말씀은 양육하기 위한 것인 반면에
에베소서 6장의 말씀은 주로 죽이기 위한 것이다

요한복음 6장의 말씀은 떡이지만
에베소서 6장의 말씀은 검이다

검은 양육하지 않고 오히려 죽인다
그러나 이 검은 당신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당신 속에 있는 원수와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살육한다

만일 우리가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 싸우고자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먼저 우리 속에 있는 모든 `해충`을 죽여야 한다

`해충들`은 우리의 의견들이다

우리는 우리가 의견들로 충만해 있음을 볼 수 있도록 강한 빛 비춤을 받는것이 필요하다

당신이 메시지를 들을 때
성도들과 교통할 때
혹은 성경을 읽을 때
당신은 많은 의견과 관념에 집착한다
거의 모든 성도가 어느 정도 의견이나 관념을 붙들고 있다

여기에서 나의 요점은 만일 우리가 기도로 원수와 싸우는 여자 안의 더 강한 부분이 되고자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모든 의견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창세기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87에서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주님을 섭취하고 우리의 모든 의견을 죽이는 것이다

만일 주님의 긍휼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의 의견으로 주님의 말씀을 좌절시킬 것이다

우리는 죽이는 말씀 곧 우리의 의견과 관념을 죽이는 말씀을 기도로 읽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지!

나의 교회생활의 체험에서 여러 번 나는 나의 의견 때문에 주님을 좌절시킨 적이 있다

주님의 회복 안에서 모든 사람에게 있는 문제는 바로 이 의견의 문제이다

말씀을 대할 때  당신은 생각과 느낌과 판단에서 강하고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의견을 죽여 달라고 주님께 간구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기도해 온 성도는 많지 않다

우리는 반드시 이헣게 말해야 한다

``주여 저는 지금 당신의 말씀을 기도로 읽으려고 합니다
주여 저의 의견을 죽이소서``

당신과 다른 이들이 건축되지 못하도록 좌절시키는 것은 주로 당신의 약함이나 당신의 세상적임도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교회 안으로 건축되고자 하는 갈망이 있다

어떤 이들은 10년 이상 교회생활을 해 왔지만 여전히 실지적인 건축의 일부가 아니다

그들의 의견이 그들을 다른 이들과 건축되지 못하게 방해해 왔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반드시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주여 저는 저의 속사람 안으로 강해지길 원합니다
저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깨닫도록 굳세게 되기 원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주신 완전한 전투 장비로 무장함으로써 강헤지길 원합니다
그러나 저의 문제는 아직까지 당신의 말씀이 저의 의견들들 죽이도록 허락하지 않은 데 있습니다


여자와
사내아이에 대한 이상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3. 05:00

찬송가 549 - Sisters - Lord How I Thank You - 지방교회들 찬송가

찬송가 549 - Sisters - Lord How I Thank You - 지방교회들 찬송가


Lord, how I thank You that You died on the cross for me. Your mercy, my Savior, reached me. And Lord, You paid the highest price, My life bought with Your shed blood, My life now belongs, Lord, to You. And Lord, how can I turn away from Your love, The eternal love which You have for me? I give You my heart; Lord, spread in every part, Till my whole heart belongs to You. Lord gain my heart so that It is single and pure for You. No other love, Lord would I know. Lord I am so in love with You. For You are so lovely, My everything, my all in all. And Lord, I really want to know This Person inside of me. Lord, keep my heart open to You. Keep flowing Your life, Into me that I would grow, And be saturated with You.

1. 감사해- 주님께서 날 위해 죽으사 그의 자비- 흘러넘쳐 오 주님께서 가장 값진 보혈의 대가로 내 생명을 구속했네 나 어찌 그 사랑 떠날 수 있나 영원하신 주님의 사랑을 내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리리 내 온 마음 얻으소서 2. 내 마음- 주님 향해 단순하게 하사 다른 사랑- 내려놓고 오 사랑스런 주님만을 보배로 여기게 내 마음 눈 밝히소서 오 주님의 귀함 알기 원하네 내 맘 주께 열어 드립니다 내 깊은 곳에 흘러들어 오사 내 온 존재 적시소서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3. 05:00

이교에 물든 기독교-이교 사상과 인간 전통 으로 가득한 기독교

이교에 물든 기독교

이교 사상과 인간 전통으로 가득한 기독교

랭크 바이올라와 조지 바나가 함께 쓴 '이교에 물든 기독교'라는 책의 주요 내용을 소개합니다. 

아래의 내용들은 말 그대로 역사적 '팩트'(fact)입니다.  물론, '팩트'에 대한 해석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1.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매우 그리스도 중심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의 맥박이었다. 주님의 그들의 생명이었고,호흡이었고, 대화의 핵심이었다. 신약성서적 교회는 모든 것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놓았고, 또 최우선으로 놓았다. 

  2. 신약성서적 교회는 예배의 고정된 순서가 없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신자가 자신이 경험한 그리스도를 나누고, 자신의 은사를 사용하고, 서로 덕을 세우려고 애쓰는, 모두가 참여하는 열린 모임을 했다. 거기에 구경꾼은 없었다. 모두가 참여할 특권과 책임을 부여받았다. 이 교회 모임의 목적은 두 가지였다. 그것은 몸 안에서 상호 간에 덕을 세우기 위함이었다. 아울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서 모든 지체가 기능을 발휘함을 통해 주님이 밖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었다. 초대 교회 모임은 종교적 "예배 의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유스럽고, 자발적이고, 즐거운 분위기로 충만한 비공식적인 모임이었다. 그 모임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했고, 또 교회에 속했다: 그것은 어떤 특정한 사역 또는 은사 받은 사람을 위한 무대로 쓰이지 않았다. 

  3. 신약성서적 교회는 친밀한 공동체로 살았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집합적인 예배와 덕을 세우려고 모였지만, 교회가 단지 일주일에 한 번 또는 두 번 모이려고 존재한 것이 아니다. 신약성서의 신자들은 나누는 삶을 살았다. 그들은 정기적인 모임 밖에서 서로 돌봤다. 그들은 가족이라는 말이 주는 바로 그 느낌대로 진짜 그렇게 살았다. 

  4. 그리스도교는 이 세상에서 의식, 성직자, 그리고 신성한 건물이 없다고 알려진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종교였다.

교회가 생긴 다음처음 300년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가정집에서 모였다. 특별한 경우 에는, 기독교 사역자들이 때때로 더 큰 장소를 사용했다. - 솔로몬의 행각 같은 곳(요 10:23; 행 3:11)과 두란노 서원(행 19:9) - 그러나 그들에겐 신성한 건물의 개념이나 건물에 큰 돈을 들이는 개념이 없었다. 또 건물을 "교회" 또는 "하나님의 집"이라고 부른 적이 없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알았던 유일한 신성한 건물은 인간의 손으로 만들지 않은 것이었다. 

  5. 신약성서적 교회에는 성직자가 없었다. 

카톨릭 사제와 개신교 목사 같은 것은 아예 알지도 못했다. 교회는 교회를 개척하고 돌보는순회 사도적 일꾼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일꾼들을 특별한 성직자 계급에 속했다고 보지 않았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일부였고, 교회를 섬겼다. (거꾸로 교회가 그들을 섬긴 것이 아니고) 모든 그리스도인이 각기 다른 은사와 기능을 소유했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분의 사람들 위에 권위를 행사할 독점적인 권리를 갖고 계셨다. 사람은 그 누구도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 장로의 역할과 목자의 역할이 단 두 가지 은사였다. 장로들과 목자들은 특정한 은사를 가진 평범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들은 특별한 직책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은 교회 모임에서의 사역을 독점하지 않았다. 그들은 위기에 처한 교회의 지체들을 자연스럽게 돌보고 또 교회 전체를 감독하는 일을 하는 경험 많은 그리스도인이었다. 

  6. 신약성서적 교회에서의 의사결정은 교회 전체의 어깨에 달렸었다. 

순회 교회 개척자들은 때때로 지침을 주고 방향을 설정해주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교회 전체가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 아래서 그 지역에서 결정을 내렸다. 함께 주님의 마음을 알고 그것을 따르는 교회의 책임이었다. 

  7. 신약성서적 교회는 조직적이지 않고 유기적이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직책을 주고, 프로그램을 짜고, 의식을 제정하고,상명하복식 계급이나 명령계통 구조를 조직해서 함께 묶은 것이 아니었다. 교회는 살아 숨쉬는 생명체였다. 그것은 태어나서 자랄 것이었고, 그 유전자(DNA)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드러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모든 은사와 사역과 기능을 포함한다. 하나님의 눈에는, 교회가 아름다운 여자, 곧 그리스도의 신부이다. 그녀는 땅에서 나온 인간이 만든 조직이 아니고, 하늘에서 온 식민지였다. 

  8. 십일조는 신약성서적 교회의 관습이 아니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재정을 교회 밖의 가난한 자들뿐만 아니라 그들 중의 가난한 자들을 지원하는 데 사용했다. 아울러 그들은 복음이 널리 퍼져서 다른 곳에도 교회들이 세워지게 되도록 순회 교회 개척자들을 지원했다. 그들은 죄책감이나 의무나 강압에 의해서가 아닌, 자신의 능력대로 드렸다. 목사/성직자의 사례비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도 없다. 교회의 모든 그리스도인은 제사장이요, 사역자요, 몸에서 기능을 발휘하는 지체였다. 

  9. 침례(세례)는 그리스도인으로 회심했음을 밖으로 드러내는 표현이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했을 때, 새로운 지위를 얻었음을 표하는 간증으로 즉시 그 사람들에게 물로 침례(세례)를 베풀었다. 주의 만찬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들의 믿음을 재확인하고 또 주님의 몸과 하나가 되었음을 재확인하는 지속적인 표현이었다. 주의 만찬은 교회가 기쁨과 잔치의 분위기로 함께 즐겼던 온전한 식사였다. 그것은 상징적인 의식이나 특별한 제사가 결코 아닌,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의 교제였다. 

  10.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젊은 일꾼들을 훈련시키려고 성서학교나 신학대학원을 설립하지 않았다. 

기독교 일꾼들은 교회생활의 토양에서나이 든 일꾼들에 의해 교육되고 훈련되었다. 그들은 '현장에서' 배웠다. 예수님은 12제자를 키우실 때 이 '현장에서'훈련하는 최초의 모델을 선보이셨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젊은 이방인 출신 일꾼들을 훈련할 때 그 모델을 복제했다. 

  11. 초기 그리스도들은 자신들을 여러 교파로 나누지 않았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 됨을 이해했고 그것을 모든 도시에서 눈에 띄게 표현했다. 그들의 생각에는, 한 도시에 교회는 하나뿐이었다. (교회가 그 지역 전체에서 여러 다른 가정집에 흩어져서 모였겠지만) 만일 당신이 1세기 그리스도인이었다면, 한 교회에 속했을 것이다. 성령 안에서의 하나 됨은 잘 지켜졌다. 그들을 나누는 것("나는 바울에게 속했다." "나는 베드로에게 속했다." "나는 아볼로에게 속했다.")은 분파와 분열을 조장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고전1:12을 참조) 

 이교에 물든 기독교, 프랭크 바이올라와 조지 바나, 대장간, pp 311 - 314

출처:good news fellowship                          글쓴이:maple

이교에 물든 기독교
국내도서
저자 : 프랭크 바이올라(Frank Viola),조지 바나(George Barna) / 이남하역
출판 : 대장간 2011.12.27
상세보기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2. 19:43

재평가 된 지방 교회 목차 

목 차 

1. 한국에서 지방 교회들이 잘못 평가된 원인과 배경 ………………5 

1) 현대종교에 대한 반박문 …………………………………………9 

2) 전도출판사의 답신 ………………………………………………12 

2. 누가 이단인가 (지방 교회 측과 C목사 토론) 소개의 글 ………15 

1) 지방 교회 측 결론(11회)……………………………………… 18 

2) 최삼경 목사 측 결론(12회) …………………………………… 43 

3) 최 목사 주장에 대한 지방 교회 측의 반박 ……………………65 

3. 우리가 틀렸었다 (미국 CRI 저널 재평가) ……………………… 67 

1) CRI 저널 책 소개 …………………………………………………170 

4. 복음의 확증 (풀러 신학대학 재평가) ……………………………177 

1) 풀러 신학대학 성명서 ………………………………………… 230 

5. 지방 교회들 (AIA 재평가)…………………………………………233 

1) 지방 교회들 - 진정한 크리스천운동 ………………………… 242 

2) 초기 평가를 재평가함 ………………………………………… 247 

3) 비판하던 사람이 보증하는 사람이 됨 ……………………… 252 

6. 한기총 이대위 11가지 질문과 지방 교회 측 답변 …………… 256 

1) 한기총 이대위 11가지 질문과 지방 교회 측 답변 ………… 257 

2) 한기총 대표회장에게 보낸 행크의 공개편지 ……………… 280 

7. DCP Korea 교계 기자간담회 ………………………………… 283 

1) 기자 간담회 신문기사 내용……………………………………284 

2) 지방 교회 측 성명서……………………………………………290 


[ 부 록 ] ……………………………………………………………… 293 

1) 워치만 니의 공로를 치하하여(미국 국회의사록)…………… 294 

2) 위트니스 리 - 그리스도인 교사 ……………………………… 296 

3) 고오든 멜튼 박사 공개서한…………………………………… 298 

4) 예장 통합측 지방 교회 연구 보고서 ………………………… 301 

5) 재심신청 연구결과에 대한 지방교회 측의 입장 …………… 306 

6) 예장통합의 C목사 삼신론 연구보고서 ……………………… 316


재평가 된 지방 교회
국내도서
저자 : DCP Korea 편집부
출판 : DCPKorea(디씨피코리아) 2011.07.15
상세보기

재평가 된 지방교회 표지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2. 05:00

찬송가 548 - 할렐루야 하나님을 찬양하세 - shulammite-son - 지방교회들 찬송가

찬송가 548 - 할렐루야 하나님을 찬양하세 - shulammite-son - 지방교회들 찬송가

할렐루야 하나님을 찬양하세 성소와 궁창에서 찬양하세

그의 능한 행동을 찬양할지라 주의 높고 광대하심 찬양할지라

나팔 소리로 찬양하세 비파수 금으로 찬양해 소고 치고 춤추면서 현악과 퉁소 불며 찬양해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높은 소리의 제금으로 호흡이 있는 자마다 찬양 할렐루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2. 05:00

말씀과각주 324 - 로마서 8장 29절 - 지방교회들 말씀

말씀과각주 324 - 로마서 8장 29절 - 지방교회들 말씀

로마서 8장 29절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사람들을 그분의 아들과 같은 형상을 이루게 하시려고 또한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아들을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맏아들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2. 05:00

삼위일체 토론은 성경본문을 중심으로 !!

삼위일체는 복잡합니다. 그래서 똑 부러지게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 이유를 조금 자세히 열거하자면, 첫째, 하나님 자신이 숨어 계십니다(사45:15). 둘째, 그리스도는 그러한 하나님의 비밀이십니다(골2:2). 셋째, 사도신경 등에서 보듯이 성령님 (the Holy Spirit)에 대한 교리나 신조 상의 언급은 극히 짧고, 그에 대한 신학자들 사이에서의 논의는 아직도 미 완성 단계라는 점을 들수 있습니다. 

 따라서 각종 교리집이나 이단 전문가들의 주장이나 이런 인터넷 상의 토론으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앎에 있어서 부족함이 있습니다. 그래도 꼭 토론이 필요하다면, 최소한 성경본문을 토대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자기 한계에 집착하기 보다는 하나님이 계시를 주사 알게 하시기를 기도하는 겸손한 마음 자세가 요구됩니다(엡1:17, 마11:27). 

 이제 아래에서 스가랴 4장 10절과 계시록 5장 6절을 근거로 두 종류의 잘못된 삼위일체관을 바로 잡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성경 본문들 

슥4:10 -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일곱 눈이라(the eyes of the Jehovah(AsV), the eyes of the LORD (KJV), the eyes of Jehovah(Darby)). 

 계5:6 -…어린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2. 여호와의 증인들의 오류 

여호와의 증인들의 오류

여호와의 증인들은 성령의 인격성을 부인합니다. 대신에 성령님을 하나의 능력으로 봅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그들은 아들 하나님이 여호와이심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1) 요8:24 (예수님이 출3:14의 여호와 즉 ‘That I Am’(에고 에이미)이심). 2) 계1:8과 22:13-16의 비교(알파와 오메가=전능하신 하나님=예수). 3) 슥 4:10(여호와의 일곱 눈)과 계5:6 (어린양의 일곱 눈)의 비교를 통하여 충분히 예수님이 여호와이심이 입증됩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지금도 열심히 여호와를 증거합니다. 그러나 거짓되게 증거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3. 삼신론의 오류

삼신론은 간단히 말해서 삼위(아버지, 아들, 성령님)를 ‘분리’시키는 이단 사상입니다. 양태론은 이와 반대로 삼위의 ‘구별’을 무시합니다. 그런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삼위를 구별함에서 더 지나쳐 분리 독립시켜 생각하는 사실상의 삼신론적인 삼위일체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종성, 삼위일체

그러나 칼빈이 존경하는 교부인 어거스틴은 그런 삼위 분리 사상과 달리 “(세) 위격이 상호 내재한다”(이종성, 삼위일체, 269쪽) 또는 “하나님과 아들이 분할 할수도, 분리될 수도 없는 분” 이라고 했습니다(위 책, 267쪽). 

 이런 삼위의 분리불가 원칙에 어긋나는 대표적인 삼신론적 표현들 중 하나는 <예수님이 지상에서 사역 하실 때 성부 하나님은 (저 하늘에만 계시고) 아들 안에 안 계셨다>는 주장입니다. 문제는 애석하게도 한국 교계에서 정통과 이단을 상담하는 책임을 맡은 현 한기총 이단 상담소장 자신조차도 이런 잘못된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지상 사역시 예수님은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요14:11)고 말씀하심으로 그런 주장이 잘못된 것임을 알게 합니다. 

  4. 성경적 삼위일체론-구별되나 분리는 안 되는 세 위격께서 한 신격과 한 본성을 공유함 

 삼위 하나님(Trinity 또는 Triune God)에 대한 성경기록은 양면적입니다. 존재론적인 삼위일체와 경륜적인 삼위일체가 그것입니다. 전자는 삼위의 존재 자체를, 후자는 그 기능의 방면을 가리킵니다.  

존재론적(내재적)삼위일체(Immanent Trinity)는 영원 전에 하나님만 계실 때 어떤 존재 형태로 계셨는지를 정의합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은 한 신격(one Godhead)과 한 본성 (one Nature)을 공유한 세 위격들(three Persons)이 구별은 되시지만 분리되지는 않으신 한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경륜적(경세적)삼위일체(Economic Trinity)는 그러한 존재론적인 삼위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사 하나님의 장성한 아들들로 만드시려는 계획을 세우시고(엡1:5), 그것을 성취 하시고, 또한 마침내 사람인 우리에게 그것을 적용 하시는 각 방면의 하나님을 말합니다.  

성경은 이 두 방면을 함께 말함으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심지어 성도들을 지도하는 목회자들까지도 삼위일체에 대해서는 깊게 안 만지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래 인용 본문들은 성경적인 삼위일체를 균형있게 이해하는데 작은 힌트와 도움을 줄 것입니다. 

  -존재론적 삼위일체-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요14:11). 

  -경륜적 삼위일체 –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마 3 :16) 

(만일 위 구절을 근거로 예수님이 침례 받기 전에는 성령님은 예수님 안에 안 계셨다 라고 주장한다면 큰 오해를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포함한 삼위 각자는 이미 영원 전부터 존재론적으로 서로 안에 상호 내재하십니다(요14:11). 이러한 양면성이 사람의 머리 속에서 논리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고 해서 어느 한쪽의 성경본문을 부정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경륜적/ 존재론적 삼위일체 –“나를 보내신 이가(경륜적 방면) 나와 함께 하시도다 (존재론적 방면).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함으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8:29).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요8:16). 

  5. 결론 

성경적인 삼위일체를 바르게 이해하는 비결 중 하나는 성경이 삼위 중 어느 한 위격을 언급할 때, 그 위격만 분리하여 생각하지 말고 구별은 되나 분리되지 않게 상호내재하시는 다른 두 위격들을 함께 생각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8장 6절의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좋은 예입니다. 

 즉 아들의 성육신과 지상 사역시, 아버지는 저 하늘에 남아 계시고 아들 안에는 안 계셨다 고 할 것이 아니라, 아버지는 하늘에 계심과 동시에 이 땅 위의 아들 안에 상호 내재하신다고 믿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들께서 승천하신 후 성부와 성자는 하늘에 계심과 동시에,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과도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게 상호내재하신다고 믿는 것입니다. 위 계시록 5장 6절은 이런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 또한 동일한 로마서 8장에서, 10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생명으로) 내주하심을, 34절에서는 그러한 그리스도께서 하늘 보좌에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기도하심을 말함으로 이런 관점이 성경적임을 재차 확증해 줍니다. 

그러나 한국 교계의 주류에 해당되는 개혁신학은 아들 자신이 아닌, '아들을 대리한 성령님'만이 우리 안에 내주하신다고 주장함으로 성경적인 삼위일체론을 담기에는 그 그릇이 작음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개혁신학은 우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 자신'(골1:26), 또는 우리 안에 생명으로 내주하시는 '아들 하나님 자신'(요일 5:12, 골3:4)을 인정 할수 없는 '신학적 구조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것이 성도들이 삼위일체론에 있어서 혼란스러워 하는 또 다른 이유들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각주1) 위 '하나님의 일곱영'(계5:6) 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설명하려면 글이 더 복잡해짐으로, 주님이 허락하시면 또 다른 기회를 빌려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posted by 샬롬1 2018. 7. 1. 09:47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임


세상적인 사람들은 곤란을 당할 때 슬픈 표정을 짓고 낙담한다

그러나 우리 믿는이들은 핍박을 겪고 곤란을 당할 때 여전히 기쁘게 `할렐루야`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주님을 사랑할 뿐 아니라 또한 주님으로 충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님으로 충만할 때 그분이 우리 속에서부터 흘러 넘친다 

이 흘러 넘침이 영광이다

골로새서 1장 27절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라고 말한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영광이지만 이 영광은 감춰져 있다

비록 그리스도가 우리 속에 감춰져 계시지만 이 숨겨진 영광이 언제나 덮여진 채로 있을 수 없고 때때로 공개적으로 나타난다

나는 어떤 부모들이 특히 공자와 맹자의 이념들을 뱓아들이는 중국의 가정에서는 그들의 자녀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반대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언제나 그러한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가 예수님을 믿을때 외국의 종교를 받는 것이며 이것은 삼대에 걸쳐 그들의 조상에게 영광이 아닌 수치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그러한 부모들이 그들의 자녀가 주 예수님을 믿는 것을 반대하는 이유이다

오늘 여기의 혛제자매들 가운데 그러한 환경 속에서 주님을 믿고 구원을 받은 사람이 있다

이 형제는 중학교때 구원을 받았다
그는 구원받기 전에 개구장이 십대였으나 구원 받은 후 그의 생활이 완전히 바뀌었다

사람들이 그를 나무랐을 때 그는 유쾌하게 있었다

그의 부모는 그가 주님을 믿는다고 때리곤했지만 그는 온유하게 자기 방으로 가서 침대 옆에 무릎을 끓고 주님께 기도했다

날마다 시시때때로 주 예수님은 이전에 개구쟁이 십대였던 그에게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셨다

그의 부모는 아주 감동되어서 결국 그들도 주님을 믿었다

많은 부모들이 그들의 자녀가 처음 주님을 믿을 때 반대하지만 결국 그들도 주님을 믿게 된다

할렐루야!
부모가 그들의 자녀를 따라 주님을 믿지 않는 가족을 발견하기란 어렵다

참되게 구원받은 사람은 그 속에 주 예수님의 영광이 있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그를 통하여 표현된다는 뜻이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1. 05:00

찬송가 547 - 기뻐하라 항상 기뻐해 - 지방교회들 찬송가

기뻐하라 항상 기뻐해 주 안에서 기뻐해 내가 다시 말하노니 주 안에서 기뻐해

기뻐하라 항상 기뻐해 주 안에서 기뻐해 내가 다시 말하노니 주 안에서 기뻐해

기뻐하라 주 안에서 기뻐해 기뻐하라 주 안에서 기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