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샬롬1 2018. 9. 3. 05:39
달릴 때에는 항상 그 경주를 누구와 경쟁하면서 달리는 가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사실 시간과 경주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우리의 양옆에서 우리를 좇아오고 있다
시간은 꾸준히 달리면서 좇아 온다

내가 달릴 때 시간도 달린다
내가 달릴 때 시간도 항상 달리고 있다

우리는 시간과 경쟁하며 달리고 있다

우리가 자고 일어나 보면 나의 경쟁자가 벌써 내 앞에 앞질러 가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우리 모두는 우리 앞에 있는 시간보다 먼저 달릴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시간을 다 달려야 한다

[주님.
내가 당신이 정해 주신 시간 전에 일찍 죽지 않게 해 주십시오
당신이 나에게 주신 이 경주를 다 마칠 수 있도록 나를 지켜 주소서``

우리 모두는 이러한 기도를 해야 한다

``주여 나로 하여금 신실하게 경주를 마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이 형제님은 아주 신실하게 달리신 분이다

니 형제님은 언젠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형제님의 진보는 매우 빠르고 좋다
그는 다른 사람보다 앞서 있고 달리다 못해 날아가는 정도로 진보하고 있다``

우리의 진보가 느려서는 안되고 중단되어서는 더더욱 안된다

우리가 신실하게 달리지 못할 때 우리는 멈추거나 속도를 늦추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한 새사람을 의식해야 한다

마가가 처음에는 신실하지 못했지만 끝까지 경주를 잘했다

어떤 사람은 처음에 출발은 좋지 않았지만 넘어지는 때도 있었지만 끝까지 잘 달린다

우리는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계속 달려야 한다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달리는 것이 좋다

청년들이여.
자신을 잘 보존하고
잘 관리해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우리의 경주를 다 달려야 한다

우리 앞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왕국 보상인 것이다

구원받은 모든 믿는 이들은 이러한 상에 대해서 열망을 가지고 이 보상을 얻기를 구해야 한다

성경에는 보상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사람은 상을 얻고
어떤 사람은 그 상을 잃어버릴 뿐 아니라 어떤 손상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심각한 것이다


2002년 겨울 훈련 집회
미니스트리
고린도 전서 결정 연구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9. 3. 05:00

찬송가 241 - 빌립보서 2장 (Phi 2) - shulammite son - 지방교회 찬송가

주 예수님 본래 하나님이셨으나
그 위치를 보배로 여기지 않았네
자신 낮추사 노예의 모습되어
십자가에서 죽으셨네
주 예수님 안에 이 생각을 따르고 
이 생각을 나의 본으로 취하리라
그때 우린 혼 안에 연결되어
한 가지 것만 생각하네 그리스도
삐뚤어진 이 시대에서 변화되어
흠 없는 자녀 되리라
세상에 생명의 말씀 밝히는
그리스도의 발광체가 되리라


찬송
http://soundcloud.com/shulammite-son
https://www.youtube.com/c/shulammiteson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9. 3. 05:00

생명이만나 356 - 문빗장은 사람 쪽에 - 지방교회 이만나

요1:11 그분께서 자기 땅에 오셨으나,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영접하지 않았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9. 3. 05:00

사람 밖의 하나님만 강조한 신학의 한계 - 지방교회 진리변호확증


지금까지 대부분의 신학은 사람 밖의 하나님만을 강조하여 신약 서신서 이후 도처에 나오는 '사람 안의 하나님(그리스도)'에 낯 설은 "이름뿐인 그리스도인들"을 양산해 내었습니다. "한국에 소개된" 칼빈 신학은 그 중 하나입니다. 저는 '한국에 소개된'이란 말을 의도적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이런 신학의 폐단은 예수님을 소개하되 사람 밖에 계신 예수님을 주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떻게 하셨고,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오셨고, 사시고, 죽고 부활하신 후 하늘로 가셔서 다시 오실 것이다. 물론 이것들은 다 성경기록이며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사람 밖의 하나님"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만을 듣고 배운 분들의 설교는 당연히 구약의 스토리 소개 또는 사복음서에서의 예수님에 치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 안에 들어오신 그리스도"를 말하는 서신서와 계시록은 상대적으로 설교 시 다뤄지는 비중이 현저히 낮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다루더라도 교훈을 얻는 관점이지 "그리스도가 사람 안에서 사심"을 돕는 관점이 아닙니다. 한 번 이런 시각에서 주변의 설교들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밖의 하나님"이 "내 안의 하나님"이 되심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요1:12, 3:6, 고전6:17). 

그리고 이 '씨"가 우리 안에서 자라서 그리스도의 형상이 우리 안에서 새겨지고(갈4:19), 우리의 죽을 몸까지도 그분의 영광의 몸처럼 변형시킴으로(빌3:21) 우리를 맏아들인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똑같이 만드시는 것(롬8:29, 요일3:2)이 하나님이 지금 하고 계시는 일입니다. 이것이 서신서와 계시록의 핵심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투명합니다. 성경공부해서 안 지식이 아닙니다. 매일 매일 우리가 체험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이것은 성경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이야기 일뿐 아니라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밭에 심겨져야 할 씨"를 심지는 않고 "저 지붕 끝에 대롱대롱 달아만 놓으니" 씨가 싹이 났다느니, 익어간다느니, 곧 추수를 할 것이라느니 등의 말들이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설교하는 분이나 듣는 청중이나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고 ... 참되게 거듭난 분들이 절실히 느끼고 있는 "자기들의 이야기"라는 인식이 없는 것입니다. 오직 들은 풍월로 아는 척을 할뿐입니다. 

주님이 우리 모두를 불쌍히 여기사 '사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실상'을 볼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주 예수님(그리스도)이 사람 안에 계신다는 성경말씀은 부지기 수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눈이 열려있고 그러한 실제를 맛보고 있다면 많은 증거구절들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단 한 구절이면 족합니다. 그러나 몇 구절들을 소개드려 보겠습니다.

# 고후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롬8:10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생명이니라'(the spirit is life because of righteousness).

#골1: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갈2:20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갈4: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라'  

#요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많은 분들이 그리스도를 참되게 얻지 못한 채 신앙생활이라는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면에서는 그리스도를 실제로 얻었으나 그것을 믿지 못하고 체험하지 못하여 '못 얻은 것'처럼 착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생명의 성숙"(엡4:15)은 자신 안에 가장 고상한 한 인격이 실재한다는 분명한 인식을 기초로 이뤄져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삼위일체를 세분들의 하나님으로 착각하는 삼신론자들로 인해 "아버지, 아들, 성령의 인격을 다 포함한 온전한 한 신격의 하나님 자신"이 생명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셨다는 핵심진리가 한국교계에서 닫혀버렸습니다(요일2:22-25).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늘날 한국교계에 고린도 교회처럼 성경지식과 말 잘함과 은사체험자는 많으나(고전1: 5-7) 생명이 성숙한 자는 희귀한 듯 합니다. 그 증거는 영적 어린아이들의 특징인 "분열"이 만연해 있기 때문입니다(고전3:1-4). 사실을 말하자면 워치만 니나 위트니스 리를 통해 주님이 계시하신 진리(생명 되신 그리스도, 생명의 충만인 교회, 교회의 최종완결인 새 예루살렘)는 상대적으로 매우 깊은 진리입니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1) 생명 되신 그리스도 자신의 사람 안의 내주하심(마담 기욘) 
2) "주관적인" 십자가의 체험(고전15:45, 31, 빌3:10 제시펜 루이스) 
3) "주관적인 부활"의 체험(요11:25, 갈2;20, 빌3:11 오스틴 스팍스)의 진리의 해방과 실행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두 분의 사역이 통상적인 가르침들과 다른 면이 없지 않으나 그 이유는 "틀려서" 다른 것이 아니라 "진도"가 달라서 다른 것입니다. 이것은 교만한 말이 아니라 솔직한 고백입니다. 

참되게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이런 말들을 공개적으로 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무엇 때문에 자청해서 문제를 만들고 비난을 자처하겠습니까? 오 주님! 이런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의 교제가 단 한 분의 마음중심을 움직여 좁은 생명길을 가고 바른 믿음의 길을 취한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주님의 효능있는 피의 덮으심이 얼마나 필요한지요.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9. 1. 05:00

찬송가 240 - 넓고 깊은 주의 사랑 130장 - 지방교회 찬송가

1 넓고 깊은 주의 사랑 나는 측량 못하리

바다보다 깊고 넓어 이 사랑 날 이끄네

자신 버린 그 큰 사랑 나로 주님 얻게 해

나로 주와 하나되고 주의 지체 되게 해


2 이 사랑의 크신 역사 말로 다 할 수 없네

이 큰 사랑 나를 주와 하나되게 하셨네

주가 나의 모든 것 돼 모든 공급 됐으니

나는 다만 주를 누려 시시 때때로 누려


3 이 사랑은 주님 자신 거룩하신 주 예수

 내 인생의 뜻 되신 주 주만 나를 살게 해

 주는 나의 생명 능력 나로 누리게 하네

나는 주의 사랑의 대상 주 은혜의 대상일세


4 그 무엇도 끊지 못해 영원한 우리 사랑

주와 나는 영원히 하나 그 무엇도 못 나눠

이 사랑 날 강권하니 주를 높이 찬양해

나는 주가 되고 또한 주는 내가 된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