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11. 2. 00:00

고전 15:45 - 생명주는영 (a life-giving Spirit)
- 지방교회 진리변호확증 자료

일반적인 구원론은 구속 곧 죄사함과 칭의를 많이 강조합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조에)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 하십니다(요10: 10하). 이것은 죄사함과 칭의가 구원의 한 방면이긴 하지만 그 자체가 구원의 완성이 아니며, 구속받은 사람들은 더 나아가 생명을 얻고 더 얻어 영적으로 자라가는 면의 구원이 더 필요 함을 말해 줍니다 (롬5:10, 벧전2:2, 1:5 본문 참조).  

이런 맥락에서 예수님을 ‘생명주는 영(a life-giving Spirit)’으로 소개한 고전 15:45은 주목할 만한 성경 본문입니다. 서울교회 담임인 이종윤 목사께서도 설교에서 “고전 15:45에는 창조론, 인간론, …  구원론, 종말론이 들어 있어서 신구약 성경 중 가장 중요한 구절 중 하나” 라고 소개한 바 있습니다 (http://www.seoulchurch.or.kr/2008/sub02_02.htm?read_no=3753&page=0&list=0&key= )  

그럼에도 이 ‘생명주는 영’은 대부분의 성도들 심지어 목회자들에게도 다소 생소한 편입니다. 더구나 일각에서는 이 구절이 언급한 생명주는 영과 성령과의 관계를 놓고 양태론 시비를 벌이는 등 다소 혼돈스런 면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본문에서 언급된 생명주는 영이 누구이시며, 주 예수님 그리고 성령과의 관계는 과연 무엇인지를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에서 간략하게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 고전 15:45 본문과 주석적 견해 소개 

위 성경본문 그리고 그에 대한 해석적 이해를 돕기 위해 원어를 직역한 본문과 그에 대한  몇분 성경 교사들의 관련 주석 일부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고전 15:45 :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대로  첫 사람 아담은 산 혼이 되었지만,  마지막 아담은 생명주는 영이 되었다”(So also it has been written, “The first man, Adam, became a living soul;” the last Adam became a life-giving Spirit.) (A Literal Translation of the Bible(핸드릭슨),1987, 932쪽) 

  1) M. 빈센트 : 

 “마지막 아담은 그리스도이시다. 아담은 죄 있는 족속의 머리라면, 그리스도는 구속 받은 족속의 머리이시다…생명주는 영은 단지 살아 있는 생명만이 아니라 나누어 주는  생명이시다 (…Not merelyliving, but imparting life). 요1:4, 3:36, 5:26, 40…11:25, 14:6과 비교해 보라 (M. 빈센트,Word Study, Vol. III., 1980, 284쪽). 

  2) 존 칼빈: 

 “모세는 아담이 산 혼이 된 것을 그리스도께서 생명주는 영이 되신 것과 연관시킨다. 생명 또는 생명의 근원이 된 것은 다만 사는 것보다 더 위대한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우리처럼 산 혼이 되신 것과  이외에 주의 영께서 그분 위에 부어지신 것, 그분의 능력에 의해 그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일어나시고 또한 다른 이들도 일으키시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Moses relates that Adam was furnished with a living soul: Christ, on the other hand, is endowed with a life-giving Spirit. Now it is a much greater thing to be life, or the source of life, than simply to live. It must be observed, however, that Christ did also, like us, become a living soul; but, besides soul, the Spirit of the Lord was also poured out upon him, that by his power he might rise again from the dead, and raise up others…” ( 칼빈주석 Vol. XX(고린도서vol. 2), 베이커 북 하우스, 1981,  52쪽) 

 “이로부터 우리가 사람임으로 산 혼을 소유하지만, 우리는 중생의 은혜에 의해 우리 위에 부어지신 그리스도의 생명주는 영도 소유함을 본다. 요컨대, 바울의 취지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얻은 지위는 첫 사람의 그것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산혼은 이름 그대로의 아담에게와 그의 후손에게 주어졌지만,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생명이신 그영을 획득 (procured)하셨기 때문이다.” 

 “From this you see, that we have living souls, inasmuch as we are men, but we have the life-giving Spirit of Christ poured out upon us by the grace of regeneration. In short, Paul’s meaning is, that the condition that we obtain through Christ is greatly superior to the lot of thefirst man, because a living soul was conferred upon Adam in his own name, and in that of his posterity, but Christ has procured for us the Spirit, who is life.”(위 책, 53쪽). 

  3) R. C. H. 렌스키 

 “그리스도는 참으로 “마지막 아담, 생명주는 영”으로 불리우신다. 둘은 매우 유사하지만, 큰 차이점이 있다. 두 아담들은 모두 선조들이지만, 한쪽은 오직 천연적인 혈통의 선조라면, 다른 쪽은 영적인 혈통의 선조이다. 한쪽은 창조될 때 단지 “산혼”이 되었을 뿐임으로 우리는 그로부터 “자연적인 몸”(a natural body)만 물려 받았지만, 다른 쪽은 우리를 위해 “생명주는 영”이 되셨으므로 우리는 그로부터 “영적인 몸”(a spiritual body)을 받게 될 것이다.”(렌스키, 바울의 고린도 전후서 해석, 핸드릭슨 출판사, 1963, 720쪽,  * 독자의 편의를 위해 영문 원문을 번역한 것임). 

 “”생명주는 영”은 우리와 연관을 가지신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분은 우리를 위한 영적인 생명의 원천이시다. 비록 그분이 영적인 몸과 영광의 몸이 되셨을지라도, 그러한 영적인 생명은 그분의 몸으로 부터가 아니라 그분의 영광스러운 몸 안에 ‘거하는’(dwells) 영으로 부터 우리의 몸 안에 거하는 우리의 영으로 흐르고그 결과 우리를 영적으로 활기있게 하고, 우리에게 생명(조에)을 주신다.”(위 책 722쪽). 

 “이렇게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것은 일시적인 죽음을 통과하여 축복된 영원 안으로 옮겨간 조에의 생명을 우리가 영접하는 때인 중생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러한 역사의 완성은 우리 몸의 부활과 영화롭게 됨인데, 그것은 우리의 혼과 영과 다시 결합하여 22절이 말하는 신령한 몸이 되는 것이다.”(위 책,722쪽). 

  -고전15:45의 핵심 단어들 정의  

1) 마지막 아담 

 생명주는 영이 누구이신가를 알려면 우리는 먼저 마지막 아담을 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생명주는 영은 다름 아니라 마지막 아담이 죽고 부활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위 빈센트에 의하면, ‘마지막 아담’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이 그리스도는 또한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요1:14) 즉 주 예수님이십니다(행9:22, 요11:27). 

 이제 이 마지막 아담이신 주 예수님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이 분은 육신을 입으신 <제 2격 아들 하나님>이심이 분명하지만(갈4:4), 그러나 이것은 다른 두 위격과 ‘분리된’ ‘아들 하나님 만’(God the Son only)이심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대신에 “(성부, 성자, 성령께서) 하나 하나가 다른 하나 안에 계시며…모든 이가 한 이 안에 계신다(…all in each)”라는 어거스틴의 정통 삼위일체의 정의에 따르면 이 분은 <성부와 성령께서  상호내재 하시는 아들 하나님> 즉 <온전한 하나님>(the complete God)이십니다 (요14:11, 8:16, 16:32).  

이러한 이해는 ‘삼위는 각기 구별은 되나 분리되지 않으신 상태로 상호내재 하신다’는 존재론적 삼위일체 방면의 고전적인 원칙과도 부합됩니다 

요약하자면, 마지막 아담은 ‘육신을 입으신 주 예수님’이십니다. 또한 마지막 아담은 ‘육신을 입은 아들 하나님 안에 성부와 성령께서 상호 내재하시는 온전한 하나님’이십니다. 

  2) 생명주는 영 

생명주는 영은 바로 위에서 정의되신 마지막 아담께서 죽음과 부활을 통과하신 분입니다. 즉 마지막 아담이 부활 전 예수님이시라면, 생명주는 영은 <부활 후 예수님>이십니다. 또한 위 어거스틴의 정통 삼위일체에 의거하여 좀더 풀어서 말하자면, 이 부활 후 예수님이신 생명 주는 영은 < 성부, 성령께서 존재론적으로 함께 하시는 부활한 몸을 입으신 성자>라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 

  3) ‘되었나니’ 

 성경은 ‘마지막 아담이 생명주는 영이 되었다 ‘고 말합니다. 그리고 전후 문맥을 볼 때 그 렇게 되신 시점은 부활 때임을 알수 있습니다. 위 인용문에서 칼빈은 마지막 아담 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그영 곧 생명주는 영을 ‘procured’(획득했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이것은 부활전 예수님(마지막 아담)이 부활 후 예수님(생명주는 영)이 되시는 과정에서 무엇인가가 일어났음을 암시합니다. 우리는 그런 부활 전후의 차이를 부활 후에 예수님께서 “문을 닫고 있는 공간에 문을 열지 않고 들어가심”(요20:19), “눈에 보였다가 (갑자기) 안 보이는 존재가 되심(눅24:31) 등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되었나니”의 실상은 바로 앞 절을 근거로 예수님의 하나님이신 방면은 전혀 변화가 없으시나 그분의 인성에 있어서는 부활 전의 “육의 몸”이 부활 후의 “신령한 몸”이 되신 것을 가리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고전15:44).  

지금까지 생명주는 영을 검토해 온 내용들이 맞다면, 우리는 생명주는 영의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들을 재차 강조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우리가 정의한 생명 주는 영은 ‘부활한 예수님의 인성이 포함된 신성한 영’ 또는 ‘신성, 인성의 영’이십니다 (2) 성령은 영원 전부터 계셨지만 신성 안에 인성이 포함된 이러한 생명주는 영은 주 예수님이 영광 받으신 싯점인 부활(눅24:26, 고전15:43) 전에는 이 땅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요7:39). (3) 고전 15:45의 생명주는 영은 다만 아들만 또는 다만 성령만도 아니시고, 부활한 몸(인성)을 가지신 아들 안에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으시는) 성부와 성령도 함께 포함되신 온전한 하나님, 즉 삼위 전체이십니다. 

  -바울 서신에서의 성령과 생명주는 영의 동일시 문제   

‘성부는 성자가 아니시고, 성자는 성령이 아니시다’라는 정의가 정통 삼위일체에서 구별된 삼위를 유지하는 원칙으로 인정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주는 영이시니” (And the Lord is the Spirit)(고후3:17)에서 보듯이 성경본문 자체가 그런 원칙과 충돌하는 곳이 몇군데서 발견됩니다 (사9:6, 고전15:45, 고후3:17). 개핀 교수님, 박형용 박사님, 제임스 D.G. 던(Dunn)박사님 등 저명한 개혁 신학자들은 이러한 부분들을 경륜적인 삼위일체의 방면 즉 ‘기능에 있어서의 위격 간의 동일시’로 설명합니다.  물론 이것은 존재론적인 삼위일체론의 특징인 위격간의 구별을 손상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가집니다. 

(만일 이런 관점을 양태론이라고 한다면 ‘주는 영이시다’(고후3:17) 등의 성경기록 자체가 양태론 이라는 말이 되고 말아 문제가 있습니다). 

 예를들면, 제임스 던 박사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바울은 높여지신 예수와 그영- 한 영적인 존재 또는 영적인 차원 또는 영역이 아니라 그영  성령을 동일시 하고 있다…믿는 이들의 체험에 있어서는 그리스도와 영 사이에 구별이 없다”(Paul identifies the exalted Jesus with the Spirit-not with a spiritual being or a spiritual dimension or sphere, but with the Spirit, the Holy Spirit…in the believer’s experience there is no distinction between Christ and Spirit)(I Corinthians 15:45-last Adam, life-giving Sprit,  The Christ and  the Spirit: Christology Vol.1, p139). 

 우리는 동일한 견해를 다음 자료들에서도 볼수 있습니다. “이 시대에 역사하시는 그리스도는 역사하시는 성령이시다” (스미디즈, 바울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사상, 201쪽), “고전 15:45의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느니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개핀은 그리스도와 성령을 동일시 하고 있다.이것은 …경륜적, 기능적, 종말적 동일시이다” (차영배, 성령론-구원론 부교재,  49쪽). ‘주는 영이시다’(박형용, ‘신학지남’ 1978년 봄호(3월호, 통권 180권) 28-39쪽). 

  결론적으로,   

죄사함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 이후 삶속에서 영적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음으로 하나님의 장성한 아들들이 되는데 있어서 ‘생명주는 영’(고전15:45)을 바로 이해하고 체험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부활한 인성이 포함된 신성한 영’은 많은 성도님들에게 가려져 있었거나 잘못 이해 되어 왔습니다. 

앞에서 검토한 바에 따르면, 생명주는 영은 <부활한 인성이 포함된 아들 하나님> 또는 <영적인 몸을 입으신 성자 안에 성부와 성령께서도 존재론적으로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게) 상호내재 하시는 삼위 전체>이십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 그분의 인성을 벗어 버리셨다고 이단적으로 믿지 않은 한, 생명주는 영을 위와 같이 ‘인성-신성의 영’으로 이해하는 것은 다소 생소하나 철저하게 성경적입니다. 주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이러한 생명주는 영에 대한 바른 인식과 체험 안으로 이끌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끝 

  - 추가로 다뤄야 할 두 가지 남은 문제들:    

1) 칼빈과 렌스키는 위 인용문에서 우리가  중생할 때 생명주는 영을 소유했음을 강력하게 암시합니다. 그런데 만일 이 ‘생명주는 영’과 ‘보혜사 성령’이 각기 다른 두 영들이라면 우리는 두 영들을 어떤 식으로 각각 체험하는가 라는 의문이 남습니다. 또한 두 영을 같다고 보더라도 추가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것들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2) 만일 우리가 생명주는 영을 영접한 것이라면 인성 신성 모두를 포함하신 주 예수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것인지, 아니면 칼빈의 주장처럼 인성은 제외된 예수님의 신성만 내주 하시는 것인지도 더 연구와 검토가 필요한 과제들입니다. 하나같이 쉽지 않은 비중 있는 주제들이나 반드시 빛가운데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고 느껴져서 주님 앞에서 기도하면서 시간을 가지고 하나씩 최선을 다해 정리해 나가고자 합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11. 05:00
지방교회 변호와 확증 - 복음의 확증 (4)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생명 주시는 영의 동일시


우리의 사역의 중요한 초점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는 이들의 체험이며, 우리는 그러한 체험의 관점에서 고린도전서 15장 45절이나 고린도후서 3장 17절과 같은 구절들을 해석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부활 안에서 믿는 이들에게 오시며, 생명 주시는 영 안에서 생명 주시는 영을 통하여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을 위한 모든 활동을 수행하신다고 이해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신약의 서신서에서 그리스도와 그 영에 대한 분명한 동일시를 발견하는데, 거듭 말하지만 이것은 신성한 삼일성 안에서의 세 위격의 구별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세 위격이 믿는 이들 안에서 상호 내재의 방식으로 존재하시고 운행하심에 따른 것입니다. 위트니스 리는 그리스도와 그 영이 부활 안에서 동일시되시는 것에 관해 여러 차례 말했습니다. 아래의 발췌문은 이 주제에 대한 그의 가르침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5절은 “마지막 아담은 생명 주시는 영이 되었나니”라고 말한다. 마지막 아담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예수님이시다. 생명 주시는 영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성령이시다. 성령 외에는 생명을 주는 또 다른 영이 없다. 이 구절은 성경에서 마지막 아담이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한다 … 고린도후서 3장 17절은 “주는 그 영이시니”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주는 누구이신가? 의심할 여지 없이 예수님이시다. 그렇다면 그 영은 누구이신가? 물론 성령이시다. 여기에서 주는 예수님이시고, 그 영은 성령이시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 구절에서 “주는 영이시니”라고 말한다. 주 예수님을 그 영이시라고 말하는 것은 전적으로 성경적이다!

The Spirit of Christ

앤드류 머레이 (Andrew Murray) 는 <그리스도의 영> (The Spirit of Christ) 이라는 자신의 책 25장에서 “주 예수님은 높여지시어 그 영의 생명 안으로 들어가셨을 때 ‘주 영’이 되셨다.”라고 말했다. <삼일성에 관한 진리 > ,영문판 14-15쪽 제자들 안으로 자신을 거룩한 숨으로 내쉬신 그리스도는 생명 주시는 영이시다. 생명 주시는 영이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숨이시다. 어떤 신학자들은 그 영이신 그리스도, 즉 숨이신 그리스도를 언급하기 위해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신약의결론 - 성령

모든 과정을 완성하신 후에 그리스도는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으며, 이 생명 주시는 영은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이시다. 이러한 분, 곧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는 그 영으로서 제자들에게 오셔서 영이신 자신을 제자들 안으로 불어 넣으셨다…요한복음 20장 22절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는 제자들 안으로 들어가시어 그들의 영적인 생명과 존재의 신성한 본질이 되셨다. <신약의 결론 성령>, 194-195쪽

위의 예문은 위트니스 리의 사역의 글에서 일부를 발췌한 것으로서, 만일 이것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생명 주는 영의 관계에 대한 그의 가르침의 전부라고 오해한다면 이러한 글이야말로 그가 명백한 양태론자라는 ‘증거’로 채택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삼일성에 대해 심도 있는 설명을 시도하는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 교사들은 우리가 받는 오해와 유사한 오해를 받을 것입니다. 신학의 역사에 정통한 독자들이라면 이레니우스 (Irenaeus), 터툴리안 (Tertullian), 어거스틴 (Augustine) 그리고 정통성에 의심의 여지가 없는 다른 교사들의 글도 정도에서 빗나간 것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으나, 그들의 글의 다른 부분에는 그들의 정통성을 확증해 주는 균형잡힌 언급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위트니스 리 역시 이와 같은 균형잡힌 언급들을 하였으나, 근거 없이 그를 이단이라고 몰아세우기 위해 소위 ‘증거’로 출판한 책자들에서는 위트니스리의 그러한 균형잡힌 언급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그리스도와 그 영에 대한 그의 온전한 관점을 보여주는 두 예문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요한복음 강해 3편

바로 이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계신 주이시며 동시에 우리 안에 계신 그 영이시다. “지금 주는 그 영이시니” (고후 3:17). 주님으로서 그분은 하늘에 계신다. 그 영으로서 그분은 우리 안에 계신다. 하늘에 계신 분으로서 그분은 그분의 통치권과 머리의 권위와 제사장 직분을 행사하고 계신다… 그분이 주님으로서 수행하시는 모든 것을 그분은 그 영으로서 우리에게 적용하신다. <그리스도의 하늘에서의 사역 >, 95-96쪽 또 다른 보혜사이신 그 영에 관한 말씀과 그리스도의 숨이신 그 영에 관한 말씀을 읽는 어떤 이들은 이렇게 물을 수 있다. “당신은 그리스도와 그 영이 구별된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까? 당신은 그리스도와 그 영이 둘이라고 믿지 않습니까?” 물론 나는 외적이고 객관적인 면에서 볼 때 그리스도와 그 영이 둘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또 다른 방면인 내적이고 주관적인 면에서 볼 때 두 번째 보혜사이신 그 영은 첫 번째 보혜사이신 그리스도의 숨이시다. 따라서 내적인 방면을 조망할 때 그리스도와 그 영은 하나이시다. <요한복음 강해 속편 3권>, 273쪽

많은 분석을 하지 않더라도 위트니스 리가 그리스도와 그 영이 구별되신다는 관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비록 신학적인 체계화 작업에는 역행하는 것 같지만, 신약의 서신서들과 같이, 자신의 사역의 커다란 강조점인 그리스도인의 체험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종종 생명 주시는 영과 동일시되신다고 이해했고 또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에 대한 비판 중에서 그리스도와 그 영의 동일시에 관한 것이 많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주제에 대한 다른 이들의 언급을 추가해서 소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이 주제에 관한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이 전통적인 가르침과 다르거나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될 수도 있으나, 위트니스 리 외에도 그와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 사람들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제임스 던 (James D. G. Dunn) 은 주목할 가치가 있습니다. 이분은 우리 시대에 존경받는 신학자 중 한 분으로서 위트니스 리가 많은 주의를 기울였던 성경 구절들 중 일부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혼적인 존재의 모형이라면, 그리스도 곧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영적인 존재의 모형이다…요약하자면 45절 하반절은 이에 대한 증거 중 하나인데, 왜냐하면 바울은 높이 올려지신 그리스도께서 영적이면서도 몸이 있는 그러한 존재의 형태로 새로운 인성의 본과 선구자이시라는 것을 [생명 주시는 영]에 대한 체험을 통해 확신하게 되었기때문이다.

Grand Rapids, MI: W. B. Eerdmans

…그들 모두가 체험한 생명 주시는 영은 다시 사신 예수, 마지막 아담이시다… 바울은 높여지신 예수를 영적인 존재…또는 영적인 범위나 영역이 아니라 그 영, 곧 성령과 동일시하고 있다…바울에게 있어 내재적 그리스도론은 성령론이며, 믿는 이들의 체험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성령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 물론 이것은 바울이 그리스도와 성령을 구별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The Christ and the Spirit, vol. 1, Christology [Grand Rapids, MI: W. B. Eerdmans, 1998], 164-165쪽)

위트니스 리가 삼일성에 관해 자주 인용한, 지금부터 한 세대 전의 저명한 신학자인 그리피스 토마스 (W. H. Griffith Thomas) 역시 이러한 신성한 진리의 양면성에 대해 언급했으며, 그리스도와 그 영의 동일시에 관해 다음과 같이 간결하면서도 분명한, 뛰어난 요약을 했습니다.

The Holy Spirit

이러한 진리의 양면 모두를 주의하며 보존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리스도와 그 영은 차이가 있으면서도 동일하고, 동일하면서도 차이가 있다. 아마도 그들의 위격의 특성은 결코 동일하지 않지만, 그들의 임재는 항상 동일하다고 말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표현일 것이다. (
The Holy Spirit [Grand Rapids, MI: Kregel, 1986; reprint of The Holy Spirit of God, 4th edition, Grand Rapids, MI: W. B. Eerdmans, 1913] 144쪽)

위트니스 리의 사역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아울러 이러한 인용문을 읽는다면 그리스도와 그 영의 동일시는 하나님의 내재적인 존재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는 이들의 체험의 영역 안에 있는 문제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스웨트 (H. B. Swete) 도 동일한 사상을 아래와 같이 확증했습니다.

H. B. Swete

그 영은 그분의 일에 있어서 사실상 예수 그리스도와 동등하신 것으로 나타나며…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것은 명백히 그리스도 자신의 내주하심과 같은 것으로 간주된다…’영이신 주 (the Lord the Spirit) 즉 그분의 영화롭게 된 생명의 능력 안에 계신 그리스도’는 실제로는 동일한 존재로 여겨진다. (
The Holy Spirit in the New Testament, [London, New York: Macmillan, 1912] 306쪽)

 이 핵심적인 주제에 관한 논의를 마무리짓기 전에, 고린도후서 3장 17절에 대한 위트니스 리의 각주를 추가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각주는 위트니스 리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생명 주시는 영의 동일시를 동일하게 인정한 저명한 주석가들인 마빈 빈센트 (Marvin Vincent), 헨리 알포드 (Henry Alford), 윌리스톤 워커 (Williston Walker) 의 글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고린도후서 2장 12절에서 시작되는 이 부분의 문맥에 따르면, 여기의 ‘주님’은 틀림없이 주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고후 2:12, 14-15, 17, 3:3-4, 14, 16, 4:5). 이것은 성경에 있는 분명한 말씀으로서, 그리스도께서 그 영이시라는 것을 강조한다. “3장 16절의 주 그리스도는 새 언약을 널리 퍼지게 하시고 활력 있게 하시는 그 영이시다. 우리는 새 언약의 사역자들이고 (고후 3:6) 새 언약의 사역에는 영광이 있다 (고후 3:8). 로마서 8장 9절부터 11절, 요한복음 14장 16절, 18절과 비교해보라” (빈센트).

“3장 16절의 주님은 3장 6절에 있는 생명을 주시는 그 영이시다. 의미상, 여기서 언급된 ‘주님’은 ‘그리스도’이시며 ‘그 영’은 바로 성령과 동일하시다…그러므로 여기서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의 영이시다” (알포드). “변화시키시고 내주하시는 영은 바로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주님은 그 영이시다’” (윌리스톤 워커). <신약성경 회복역>, 고린도후서 3장 17절 각주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