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6. 16. 15:00

지방교회들의 핵심진리 (5) - 생명을 영접해요?


-보통은 처음에 기독교인이 된 것을 말할 때 '예수님을 믿었다' 거나 '교회 나가기 시작했다'라고 하는데, 지방 교회측 분들은 '생명을 영접했다' 라고 말하기도 하나요?  


생명을 영접했다는 말은 저희도 자주 사용하는 표현은 아닙니다. 보통은 '구원받았다' 또는 '거듭났다' 라는 말을 쓰지요. 어떤 경우는 '교회생활을 시작했다'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생명이신 주 예수님을 영접한 것이 믿음 생활의 시작임을 잘 알고 있지요. 

  - 왜 요 3장 16절에도 예수님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고 하잖아요. 여기서 '영생'은 멸망의 반대말이고, 죽지 않고 천국가서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것을 말하는 것 아닌가요? 

 '영생'(eternal life)을 죽지 않고 오래사는 것을 가리킨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그런데 어떤 분은 그런 개념이라면 심지어 지옥간 사람도 거기서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고 하더군요. 물론 고통이지요. 예수 믿으면 물론 죽지 않고 영원히 삽니다. 그러나 위 문맥에서 <영생>이라고 할 때 그 의미는 영원한 생명이신 분, 즉 주 예수님 자신을 새로운 생명으로 우리 안에 영접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승천하신 후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님이 이 땅에 사는 믿는 우리 안에 실제로 들어 오신다는 것인가요? 

 예. 이해가 쉽지는 않습니다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8장 10절은 (생명이신)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 고 하고, 또한 34절은 그분이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 하신다고 말합니다. 둘 다 사실이고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 하지만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신다는 말은 보혜사 성령님이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우리 안에 계시는 것을 말하는 것 아닌가요? 

목사님들이 그런 식으로 설교를 하는 것으로 압니다만..... 아무튼, 주 예수님이 직접 우리 안에 계신다는 말은 조금은 생소하게 다가옵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도 예전에는 그랬지요. 성령님이 예수님을 '대신해서' 우리 안에 계신다는 교리는 주로 장로교단 쪽 분들이 하시는 주장인데, 그 근거로 요일 3:24를 제시하더군요. 사실 이 부분에 관심이 많아서 조금 연구를 해 보았습니다만, 결론부터 말한다면 그분들이 성경 본문을 오해한 것이었습니다. 아래 출처에 가셔서 정리된 글을 읽어보시면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http://blog.chch.kr/7777/32684.html ) 무엇보다도 성경 본문 자체가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이시고 그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살고 계심을 여러 곳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골3:4는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라고 했고, 고후13:5는 '그리스도가 너희 안에 계신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다면 너희가 버리운 자'라고 했고, 골1:27은 '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일 5:11-12도 '하나님의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다'라고 말합니다. 물론 주 예수님 자신이 스스로를 생명이다 라고 소개한 곳도 있지요(요11:25, 14:6). 

  -성경에 그런 구절이 있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한 곳에 모아서 이야기를 해 주시니까 또 다른 느낌이 있군요. 그런데 주 예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신다면 어디로 오신다는 말씀인지요? 

 평범하면서도 예리한 질문이십니다. 사실 개혁신학을 하신 분들은 주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는 말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는 것을 조금은 주저하는 편입니다. '유한은 무한을 담을 수 없다'(Finitum non sapax infinit)는 원칙을 고수하기 때문인데, 사실 이 문제는 주 예수님이 육신으로 오셨을 때 이미 깨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유한한 참 사람으로서 무한한 참 하나님을 그 안에 '담으신' 분이라고 할수 있으니까요(요1:14). 그것은 그렇고, 대개는 예수님이 우리 마음 안에 계신다 라고 하지요.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생명이신 주 예수님은 우리의 거듭난 영 안에 계십니다(요3:6, 고전6:17). 그후 우리의 마음으로까지 점차적으로 그분의 거처를 확대해 간다고 성경은 말합니다(엡3:17). 

  - 예수님이 지금 우리 안에 계신다면 나중에 공중 재림하신다는 말씀은 안 믿으시는 것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장차 재림하실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것은 다 아멘입니다. 현재 우리 안에 생명으로 계신 것과 나중에 재림하시는 것을 그리피스 토마스(W.H. Griffith Thomas)라는 저명한 신학자는 자신의 <성령론>에서 미래에 있을 재림 즉 '파루시아'와 구분하여 오늘날 주님의 내주하심을 '현재의 파루시아'로 표현했더군요 

  -'생명'을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대화를 하다보니 앞으로 시간을 내어 제대로 한번 이 주제에 대해서 연구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끝으로 지방 교회 측은 '하나님이 우리를 직접 낳으신 것이 아니고 양자로 삼아 주신 것이다' 라는 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그런 오해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사람의 간격을 너무 강조하고, 또 '양자의 영'(롬8:15)에서 보듯이 개역 성경이 번역시 '양자'라는 말을 사용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양자로 번역된 '휘오데시아'(5206)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양자개념이 아닙니다. 우리는 직접 낳지 않고 법적으로 입양한 자녀를 양자라고 하지만, 원문의 의미는 법적인 상속을 받을 만큼 장성한 자녀를 가리킵니다(엡1:5, 갈4:5 참조). '장성한' 이란 말을 잘 새겨야 합니다. 히2:11은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라고 함으로 거룩케 하시는 주 예수님과 거룩케 함을 받고 있는 그분의 많은 형제들(롬8:29)이 다 한 근원인 아버지에게서 난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한데, 오늘은 너무 많은 것들을 다룬 것같아서 이 주제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좀 더 자세히 다루고 싶네요.

  -긴 시간 제 질문에 대해 성의있게 답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대화가 서로 간에 알게 모르게 쌓였던 오해를 해소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는 다 동일한 하나님을 믿고 있으니까요.

 맞습니다. 저도 이런 진지한 대화가 매우 유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되는 대로 또 다른 주제를 가지고 계속 교제를 이어 갔으면 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5:20
성경말씀 

 (창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요1:12) 그분을 영접한 사람들,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위를 주셨다. 

 오늘의 만나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는데 왜 하나님을 나타낼 수 없습니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이 마치 사람의 사진과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가령 당신이 박형제의 사진을 찍어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면서 이것이 박형제라고 말했다고 합시다. 어떤 의미로는 그것이 박형제이기 때문에 당신은 옳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진은 실재의 박형제가 아니고 단지 사진 안에 있는 박형제입니다. 비록 그 사진이 박형제의 용모와 자태와 인물을 보여 주기는 하지만 박형제의 생명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박형제의 모습을 보여 줄 수는 있지만, 그를 나타낼 수는 없습니다. 그 사진이 박형제를 표현하는 유일한 길은 그의 생명을 담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지만, 그는 사진과 같이 하나님의 생명이 없이 하나님에 관한 여러 면들을 보여 줄 뿐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이 생명나무로 지시된 생명을 취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것에 있어 실패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다시 그 생명에 이르게 되었고, 영원한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생명을 얻는 길 외에 그분의 형상 안에서 하나님을 나타내고 그의 권위를 가지고 하나님을 대표할 다른 길이 없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많은 구절들을 통해서도 확증됩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3:25
성경말씀  

(요1:12) 그러나 그분을 영접한 사람들,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위를 주셨다. 

 오늘의 만나

 
 언젠가 한 친구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니 선생님, 나는 정말 하나님의 아들을 내 생명으로 영접하기 원합니다. 나는 하나님께 기도했고 그분에게 그리스도를 내 안에 영접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들어올 때에는 속에 뜨거운 감각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무릎을 꿇었을 때 내 마음은 돌처럼 차가웠습니다. 그리고 기도한 후에도 변한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생명으로 내 안에 영접했는지 안 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나는 이렇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성경에서는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을 영접할 때 뜨거운 느낌이 있다든가 아니면 계속 차갑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성경은 다만 믿으라고 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영접하는 것은 믿음으로 되는 것이지 느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당신이 느낌에 의존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으면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당신의 느낌과는 아무 관계 없는 것입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3. 13:25
성경말씀 

 (마25:3~4) 왜냐하면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을 가져갈 때에 기름을 가져가지 않았으나, 현명한 처녀들은 등과 함께 그릇에 기름을 가져갔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만나

 
 등 안에 있는 기름과 그릇 안에 있는 기름은 각각 무엇을 가리킵니까? 등 안의 기름은 거듭나게 하는 성령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등 안의 기름은 준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열 처녀는 현명하든 어리석든 그들의 등 안에 기름이 있었으며, 등이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준비해야 할 것은 등 밖에 있는 그릇 안의 기름입니다. 성경을 아는 사람들은 기름이 성령을 상징한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자마자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는데, 이것이 등 안에 있는 기름입니다. 등 안의 기름은 거듭나게 하는 성령입니다. 구원받고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자마자 우리는 거듭나게 되고, 성령은 우리 안에 거합니다. 그때부터 성령은 우리 안에서 밖으로 빛을 발하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구원받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합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모든 그리스도인 안에는 주님의 영과 주님의 생명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참된 처녀이며, 등 안에 기름이 있습니다.
출처 : 그리스도인의 생명이 성숙하는 길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0. 20:25
성경말씀  

(살전1:9~10) 왜냐하면 그들 자신이 우리에 관한 일 곧 우리가 어떻게 여러분에게로 들어갔는지 또 여러분이 어떻게 우상들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겼는지를 알려 주기 때문이며, 또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그분의 아들 곧 다가올 진노에서 우리를 구출하실 예수님께서 하늘들에서 오시는 것을 여러분이 어떻게 기다리는지에 대하여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만나

 
우상에서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과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그의 아들을 기다리는 것은 또 다른 각도에서 본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세 가지 기본적인 내용입니다. 우상에서 하나님께로 돌이킨다는 것은 거짓 신과 배후에 있는 마귀와 귀신에게서 떠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초신자들이 복음의 말씀을 들어 그들 안으로 주입된 믿음을 통하여 성취됩니다.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과정을 거치시고, 믿는이들이 누릴 수 있도록 그들의 생명과 생명 공급이 되신 아버지, 아들, 성령이신 삼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믿는이들은 삼일 하나님을 경배의 대상으로 체험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들 안에 사시는, 만유를 포함한 공급자로 체험해야 합니다. 이러한 체험은 아들을 통하여 성령 안에 있는 아버지의 풍성한 공급을 달콤하게 맛봄으로써 믿는이들 안에 생긴 사랑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는 것을 기다리는 것은 성육신과 인생과 십자가의 죽음을 거쳐 부활 승천하시고 믿는이들을 영광 안으로 영접하기 위해 다시 오실 분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는이들을 강화시켜 믿음 안에 견고하게 세우는 소망입니다. 우리는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하나님의 아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미래는 그분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우리의 생활은 우리가 이 땅 위에서 아무 소망이 없고 이 시대에 어떤 긍정적인 운명이 없다는 것을 표명하며 또한 우리의 소망은 영원히 우리의 운명되시는 오실 주님이라는 것을 표명합니다. 이것은 교회 생활을 위한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지배하고 붙잡고 지켜 줍니다.
출처 : 내 마음의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