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9. 18:20
성경말씀  

(롬3:24)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오늘의 만나

 
 ‘구속’은 대가를 지불하여 다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본래 하나님께 속해 있었으나 죄 때문에 잃어버린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과 의로움과 영광의 요구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우리는 그러한 요구를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위하여 대가를 지불하시고 그 큰 대가로 우리를 다시 소유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피로 영원한 구속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대가를 지불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의 구속으로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모두 이루셨기 때문에 공정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값없이 의롭다 하셔야 합니다. 이렇게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우리의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6. 18:35

성경말씀

(시66:18)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오늘의 만나

 주님은 마음에 자기가 알고 있는 뚜렷한 죄를 품고 미련을 두고 남겨 둔 사람의 기도를 듣지 않으십니다. 그에게 이러한 방해가 있으므로 주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실 수 없습니다. 마음에 죄악을 품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이것은 우리가 마음 속에서 어떤 죄에 대해 미련을 두고 스스로 알면서도 계속 보류해 둔다는 말입니다. 이는 행위와 겉모양에 악함이 있을 뿐 아니라 마음에 그것을 품는 것입니다. 이것은 로마서 7장에 있는 사람과는 다릅니다. 그에게는 실패가 있었지만 그는 그 행함을 미워했습니다. 그러나 시편 66편 18절에서 말하는 사람은 마음에 그 죄를 품고 그것에 미련을 두고 버리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죄의 행위를 버리지 못할 뿐 아니라 죄를 마음 속에서 버리지 못합니다. 주님은 이러한 사람의 기도를 듣지 않으십니다. 우리에게 죄가 한 가지만 있어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을 방해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버리기 아까워하는 죄를 마음에 남겨 두지 말고 모든 죄를 죄로 인정하고 그것들을 피 아래 두어야 합니다.
출처 : 삶을 가꿔 주는 선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6. 17:55

성경말씀

(요6:51上)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떡이니, 누구든지 이 떡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입니다. (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었고, 내가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입니다.

오늘의 만나

떡은 식물의 생명에 속하고 오직 먹이기 위한 것이지만, 살은 동물의 생명에 속하고 먹이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구속하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타락하기 전에 주님은 생명나무이셨는데, 이것은 오직 사람을 먹이시기 위한 것입니다(창2:9). 그러나 사람이 죄에 빠진 후에 주님은 어린양(요1:29)이 되셨는데, 이것은 사람을 먹이실 뿐 아니라 구속하시기 위한 것입니다(출12:4, 7~8). 피와 살의 분리는 죽음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주님은 그분의 죽음 즉 그분께서 죽으실 것을 분명히 나타내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 그분의 몸을 주시고 그분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주님의 살을 먹는 것은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몸을 주심으로 이루신 모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주님의 피를 마시는 것은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그분께서 십자가 위에서 행하신 것을 믿어서, 구속을 이루신 그분을 우리의 생명과 생명 공급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출처 : 감추어진 만나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6. 16:50

성경말씀

(히9:14)  더욱이 영원하신 영을 통하여 흠이 없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신 그리스도의 피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기 위하여 죽은 행실에서 벗어나도록 우리의 양심을 얼마나 정결하게 하겠습니까?

오늘의 만나

우리의 양심을 잘 처리하지 않으면 생명의 좋은 성장은 불가능합니다. 우리의 양심이 철저한 처리를 거친 후에는 느낌이 갈수록 예민해집니다. 이것은 마치 먼지가 잔뜩 낀 유리창에 광선이 투사될 수 없지만 유리창을 조금이라고 닦으면 조금 밝아지고 닦을수록 더 밝아지게 되고 밝아질수록 빛이 더 많이 투사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양심을 처리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양심을 처리할수록 더욱 밝아지고 느낌도 더욱 예민해집니다. 양심이 예민할수록 마음은 더욱 부드러워집니다. 왜냐하면 부드러워진 마음속의 양심은 매우 예민하여 조그만 감각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민한 양심은 반드시 부드러운 마음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강팍한 사람은 모두 양심이 마비된 사람입니다. 양심이 마비될수록 사람의 마음은 더욱 강팍해집니다. 예민하고 거리낌이 없는 양심은 마음을 부드럽게 할 수 있으므로 자연히 우리 속에서 생명을 자라날 수 있게 합니다.
출처 : 삶을 가꿔 주는 선물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8. 4. 25. 10:17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지팡이니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것을 땅에 던지라 곧 땅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된 지라. 모세가 뱀 앞에서 피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그가 손을 내밀어 잡으니 그 손에서 지팡이가 된지라. "


"또 가라사대 네 손을 품에 넣으라 하시매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그 손에서 문둥병이 발하여 눈같이 희게 된지라. 가라사대 네 손을 다시 품에 넣으라 하시매 그가 다시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손이 여상(如常)하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들이 너를 믿지 아니하며 그 처음 이적의 표징을 다 받지 아니하여도 둘째 이적의 표징을 믿으리라. 그들이 두 이적을 믿지 아니하며 네 말을 듣지 아니하거든 너는 하수(下水)를 조금 취하여다가 육지에 부으라. 네가 취한 하수가 육지에서 피가 되리라….너는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출 4:2-9, 17)"

 

본문에 기록된 세 가지의 기본공과에는 오직 하나의 기본적인 원칙이 있는데, 그것은 "본 것"과 "보지 못한 것"이다. 당신이 보았다면 자연히 다른 사람과 분별될 것이다.하나님의 계시를 보지 못했을 때, 당신이 본 것은 지팡이일 뿐이며 자신의 손이 정결하다고 보았을 뿐이고 애굽을 공급하는 것이 하수라고 보았을 뿐이다. 그러나 당신이 일단 하나님의 계시를 얻었다면, 더 이상 이렇게 느끼지 않을 것이며 당신은 수중에 있는 지팡이가 뱀이고, 당신의 손은 불결하고, 세상에 충만한 것이 사망이라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출애굽기 4장은 하나님의 계시와 사람의 관점이 대비되는 한 장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계시를 알 수 있느냐고 묻는다. 문제는 당신이 당신이 지팡이를 뱀으로 보고, 손에서 난 것이 문둥병이며, 물이 피라는 것을 보았는가에 있다. 젊은 사람들은 야심이 있고 장미빛 꿈을 꾼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그 꿈에서 깨어나게 하시기를 원한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렇게 하게 했을 뿐 아니라 이렇게 보게 하셨으며 또한 모세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이렇게 하게 하셔서 그들도 보게 하셨다.

 

본래 하나님은 모세를 사용하셔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애굽에서 구원하고자 했다. 모세가 볼 때 그것은 매우 큰 어려움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시가 그에게 주어지자 그의 느낌은 달라졌다. 예를 들어, 지렁이 한 마리가 이 컵에 있었는데 오늘 저녁에 목이 말라 이 컵의 물을 마셨다고 하자. 다 마실 때 쯤에 이 지렁이를 발견했다면 내일 저녁 내가 여기서 다시 마시려고 이 잔을 보았을 때 내게 어떤 느낌이 있겠는가? 아마 날마다 지렁이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계시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마치 모세처럼 날마다 지팡이를 잡고 있었지만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뱀으로 변한 과정을 거친 후에는 지팡이에 대한 모세의 느낌은 달라졌을 것이다.

 

육체에 대한 느낌도 이와 같다. 우리는 죄가 세상 안에 있지 않고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흉악한 일도 세상 안에 있지 않고 내 안에 있다. 그러나 이전에는 느낌이 없었다. 어느 날 내가 품 속에서 손을 꺼냈을 때 문둥병이 난 것을 보았다면 이후에는 나는 손을 만지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문둥병이 생각날 것이다. 어떤 사람은 겸손하고 연약하며 순복하는 것처럼 꾸미지만 조금도 그럴싸하지 못하다. 만일 사람이 계시를 얻지 못했다면 꾸며서 할 때는 겸손한 모양이지만 일단 잊어버리면 겸손하지 않고 매번 일을 할 때마다 경계심(警戒心)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오늘 형제 자매들에게 권고의 말을 하거나 혹은 엄한 말을 할 때 반드시 느낌이 있을 것이고 당신의 품 속에서 손을 꺼낼 때 아마 문둥병을 꺼낼 것이다. 여러분이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하나님이 당신을 불러 사역하게 하시는 것은 당신이 얼마나 많은 물건을 드렸는가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얻은 계시가 얼마나 되는가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전에 한 형제가 나에게 "나는 아무리 연약해도 저 두 형제보다는 강합니다." 라고 말했다. 나는 이 사람이 아마 일생 자신의 패괴함과 더러움을 보지 못했을까 염려된다.

 

섬기는 사람은 세상의 물에 대해서도 느낌이 있어야 한다. 목마름이 그치려면 우리의 요구를 만족시켜 주어야 한다. 아마 우리 중 어떤 사람은 수년 동안 기도하면서 세상에 속한 지위와 축복을 얻기를 원했을 것이다. 여러분이 오늘 이후로 반드시 꿰뚫어 보기를 원하며, 하나님으로부터 철저한 계시를 얻어 세상으로부터 얻은 모든 만족이 실상은 "피"라는 것을 보기 바란다. 계시를 얻은 사람이 본 것은 "물이 실상은 피"라는 것이다. 설령 수건이나 양말을 사는 일에 있어서도 물이 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자 한다면, 애굽에서 남아서 나일강의 물을 마시지 않아야 하며, 광야로 가서 반석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마셔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반드시 과거에 보지 못했던 것을 보아야 한다. 계시가 있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이것들은 참으로 뭔가 기묘하게도 사람이 볼 때는 지팡이요, 품 속의 손이요, 나일강의 물이지만 일단 당신이 하나님이 주신 계시와 이상을 통해서 보면 그들의 참모습이 뱀이요, 육체요, 파라는 것을 분명히 보게 된다. 그럴 때 당신은 도망 갈 것이고 두려워하며 떠나게 될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계시만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의지하던 것들의 참 모습을 알게 해주며, 가장 큰 죄가 바로 자아임을 알게 해주며, 또한 세상의 두려움을 알게 해준다.

 

세상에서 지팡이는 의지할 만한 것이며, 자아에서 나온 것이 좋은 것이고, 물은 마실만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이상수형제(위트리스 리)과 함께 여러분에게 요청하건데, 하나님 앞에서 분명한 계시를 구하여 반드시 세상과 자아와 환경의 모든 것의 참 모습을 보기 바란다. 이렇게 할 때 당신은 비로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고 하나님께 열납될 수 있다.

 

(Watchman N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