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7. 16:05

 

성경말씀

(요일4:7~8)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왜냐하면 사랑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마다 하나님에게서 나서 하나님을 압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만나

믿는이들은 하나님에게서 태어났고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에게서 나와서 하나님의 표현이 된 사랑을 가지고 습관적으로 서로 사랑합니다. 사도가 여기에서 강조하는 것은 여전히 신성한 출생인데, 이 출생을 통하여 신성한 생명이 믿는이들 안으로 분배되었고, 이 생명은 그들에게 하나님을 아는 생명 능력을 줍니다. 이 신성한 출생은 형제 사랑의 기본 요인이며, 이 형제 사랑이 주님 안에 거하는 생활을 하기 위한 더 높은 조건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신성한 출생으로 받은 신성한 생명의 아는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에게서 태어나지도 않고 생명이신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사랑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랑이신 하나님으로 사랑하지 못합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7. 15:30

 

성경말씀

(단9:11) 온 이스라엘이 주의 율법을 범하고 치우쳐 가서 주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으므로 이 저주가 우리에게 내렸으되

오늘의 만나

 어떤 갈림길에 있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치우침 없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즉 어떤 길도 사랑하지 않고 어떤 길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당신 앞에 놓인 길을 치우침 없이 보는, 균형 잡힌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즉 주님께서 당신에게 어떤 길을 지시하실 때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마음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았다면 주님은 쉽게 그분의 뜻을 당신에게 보이실 것입니다. 한쪽으로 치우침과 불순종은 주님의 뜻을 아는 데 아주 큰 장애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자기의 판단력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행할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마음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고 해서 ‘원함’과 ‘원치 않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전에는 당신의 마음이 어느 쪽으로 기울지 않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도록 뜻을 세우기 원하고 하나님의 뜻인 줄 알 때에는 즉시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신에게 어떤 원함도 없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어떤 원함이 있기는 하지만 당신의 원함이 곧 하나님의 원함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출처 : 삶을 가꿔 주는 선물
지방교회 생명 이만나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7. 15:00
성경말씀  

 
(고후4:11) 이것은 살아 있는 우리가 항상 예수님을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으로써, 예수님의 생명도 우리의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오늘의 만나

전에 우리는 사랑을 가지고 있었고 많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스스로 주님을 사랑하도록 동기를 부여할 수 있었습니다. 자아가 죽을 때 우리는 주님의 사랑이 우리를 통하여 사랑하시게 해야 할 것이고, 성령이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의 마음을 적시도록 허락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감히 천연적인 사랑에 의해 움직이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전에 우리는 감정들을 가졌을 것이고, 기뻐하고 화내고 슬퍼하고 행복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느낌을 통하여 주님과 교통할 수 있었고, 그분의 기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자아가 죽음으로써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의 감정을 통제하시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슬퍼하실 때 슬퍼할 것이고 주님이 기뻐하실 때 기뻐할 것입니다.
출처 : 삶을 가꿔 주는 선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5:10
성경말씀  

(창1:26上)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고후4:7上) 우리는 이 보배를 질그릇 속에 담고 있습니다. 

 오늘의 만나  

우리에게는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있으며 그것은 그리스도를 따라서 만들어졌습니다. 분명히 그리스도는 최고의 생각과 최고의 의지와 최고의 감정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는 그렇게 실제적이지 않습니다. 손과 장갑의 예를 다시 생각해 봅시다. 사람의 손에는 하나의 엄지손가락과 네 개의 손가락이 있으며, 장갑에도 하나의 엄지손가락과 네 개의 손가락이 있습니다. 장갑의 엄지손가락도 엄지손가락이지만 진짜 손가락과 비교해보면 큰 차이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그리스도의 생각을 비교해 보십시오. 우리의 생각은 장갑의 빈 엄지손가락과 비슷합니다. 그리스도의 생각은 사람의 진짜 엄지손가락과 같습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지혜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지혜 역시 빈 엄지손가락과 같은 것이며, 그리스도의 지혜는 실재의 엄지손가락과 같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실재의 엄지손가락이 장갑의 엄지손가락 안으로 들어갈 것이며, 이때 두 엄지손가락은 하나가 될 것입니다. 하나는 모양 즉 표현이고, 다른 하나는 실재 즉 내용입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5:05
성경말씀  

(창1:26上)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고후4:7上) 우리는 이 보배를 질그릇 속에 담고 있습니다. 

 오늘의 만나  

우리에게는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있으며 그것은 그리스도를 따라서 만들어졌습니다. 분명히 그리스도는 최고의 생각과 최고의 의지와 최고의 감정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는 그렇게 실제적이지 않습니다. 손과 장갑의 예를 다시 생각해 봅시다. 사람의 손에는 하나의 엄지손가락과 네 개의 손가락이 있으며, 장갑에도 하나의 엄지손가락과 네 개의 손가락이 있습니다. 장갑의 엄지손가락도 엄지손가락이지만 진짜 손가락과 비교해보면 큰 차이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그리스도의 생각을 비교해 보십시오. 우리의 생각은 장갑의 빈 엄지손가락과 비슷합니다. 그리스도의 생각은 사람의 진짜 엄지손가락과 같습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지혜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지혜 역시 빈 엄지손가락과 같은 것이며, 그리스도의 지혜는 실재의 엄지손가락과 같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실재의 엄지손가락이 장갑의 엄지손가락 안으로 들어갈 것이며, 이때 두 엄지손가락은 하나가 될 것입니다. 하나는 모양 즉 표현이고, 다른 하나는 실재 즉 내용입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5:00
성경말씀  

(창1:26上)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롬9:21) 토기장이가 같은 진흙덩이로 하나는 귀하게 쓸 그릇을, 하나는 천하게 쓸 그릇을 만들 권위를 갖고 있지 않겠습니까? (롬9:23~24上) 하나님께서 또 영광에 이르도록 예비하신 긍휼의 그릇들에 대하여 그분의 영광의 풍성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어찌하겠습니까? 이 그릇은 우리...  
오늘의 만나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고 하나님의 형상은 곧 그리스도이므로 사람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따라서 창조되었습니다. 로마서 5장 14절은 아담은 오실 분의 예표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의 사진을 찍을 때 그 사진은 그 사람의 표상이요 예표입니다. 사진이 어떤 형상을 나타내는 것처럼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인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장갑을 예로 들어봅시다. 장갑은 손의 형상과 손의 형태를 따라서 만들어졌습니다. 손과 장갑은 다 손가락이 다섯입니다. 장갑은 손의 형상에 따라 만들어졌으며 그 목적은 어느 날 손이 장갑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것입니다. 손은 장갑을 채우고 장갑은 손을 나타냅니다. 왜 사람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졌을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의 목적이 그리스도께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서 사람을 통해 그분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9장 21절과 23절은 사람은 그릇 즉 담는 그릇으로 만들어졌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망치와 같은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을 담는 그릇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는 단지 그리스도를 담는 그릇입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4:35
성경말씀  

(고전1:30) 그러나 여러분은 하나님에게서 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고, 이 그리스도 예수님은 하나님에게서 나오셔서 우리에게 지혜, 곧 의와 거룩하게 함과 구속이 되셨습니다.  

오늘의 만나 

당신은 절대로 하나님께서 당신 안에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당신 안에 있는 것은 여전히 더러움과 사악함과 거룩하지 않음과 교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당신 안에서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일하십니다. 당신이 그리스도와 연결될 때 그리스도 안의 모든 것은 당신 안에 통하게 됩니다. 당신이 그리스도와 끊어질 때 모든 더러움이 들어오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청결한 파이프를 연결하면 깨끗한 물을 얻게 되고, 더러운 파이프를 연결하면 더러운 물을 얻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아마도 당신은 이미 구원받았으므로 적어도 오늘이 이전보다 좋으며 어찌하든지 이전보다는 낫다고 말할 것입니다. 당신은 구원받은 이후 당신의 옛 아담이 점점 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을 향해 이러한 일은 없으며 영원히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원하십니다. 당신은 아담 안에서 여전히 더러운 사람입니다. 당신을 이전과 다르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만이 당신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4:30
성경말씀  

(요일3:19) 이것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진리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이 평온해질 것입니다. 

 오늘의 만나

 
 요한일서 3장 19절의 하반절에서 요한은 ‘하나님 앞에서’라는 구를 삽입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우리 안에 살고 계심을 말해줍니다. 만일 우리가 신성한 실제에 의해 살지 않는다면 우리의 마음은 항의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조용한 마음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 안에 살고 계시며 우리가 그분 앞에서 살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직 우리가 신성한 생명에 의해 살 때만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 마음을 평온하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라는 구는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의 생활과 마음이 주 앞에 있다는 필수적인 사실을 지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 앞에서 평온한 마음을 갖기 위해 주의해야 합니다. 많은 경우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는 기쁘지 않습니다. 느헤미야 8장 10절은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고 말하고, 잠언 17장 22절은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라고 말합니다. 왜 우리 안에는 가끔 기쁨이 없습니까? 우리에게 기쁨이 없는 이유는 우리 마음이 평강 안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평강 대신 소란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평온하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신성한 생명 안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성한 생명 안에 살 때 우리는 진리 안에, 즉 실재 안에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마음을 굳세고 화해되고 확신되게 할 수 있으며 평온케 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기쁠 것입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3:15
성경말씀  

(고후5:13) 우리가 미쳤다면 하나님께 미친 것이고, 정신이 온전하다면 여러분을 위하여 온전한 것입니다. 

 오늘의 만나

 
 미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정신이 온전함은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한 면은 개인적인 것이고, 또 다른 면은 단체적인 것입니다. 미쳤음은 개인적인 것이고, 정신이 온전함은 단체적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른 아침에 당신 혼자 성경을 읽을 때 주님께서 비추심으로 인하여 탁자를 몇 번 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만일 오늘 여기서 어떤 성경 구절이 생각나서 자리에서 일어나 탁자를 심하게 친다면 여러분은 나를 미쳤다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미쳤고 사람 앞에서는 정신이 온전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은 불탈수록 좋은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혼자 있을 때에는 매우 자유스러울 수 있습니다. 심지어 미쳐서 뛰거나 계속 할렐루야를 외쳐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옆 자리에 당신의 말을 듣고 있는 사람이 있는 집회 가운데서는 소리를 너무 크게 지르고 외쳐서는 안 됩니다. 당신은 사람 앞에서 정신이 온전하여야 합니다. 내가 말한 것이 너무 강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성경의 교훈입니다. 바울은 미쳤어도 단지 하나님 앞에서였고, 사람을 위해서는 정신이 온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3:10
성경말씀 

 (욥16:20) 나의 친구는 나를 조롱하나 내 눈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고 

 오늘의 만나

 
욥기 16장 20절은 욥이 사탄의 공격을 받고 세 친구가 그를 조롱한 후에 말한 것입니다. 형제자매여, 사람의 조롱과 압박을 받고서,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는 이러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까? 당신은 많은 때, 사람 앞에서 면박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당신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손해를 본 적이 있습니까? 당신은 이러한 일들을 만날 때 욥처럼 그렇게 울어 본 적이 있습니까? 물론 사람 앞에서 우는 것은 그 사람이 연약하다는 표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하여 우는 것은 합당한 것입니다. 무릇 하나님 앞에서 눈물을 흘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나 자신은 말할 수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이제껏 하나님 앞에서 울어보지 못한 사람은 교통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과 친근하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으며, 무거운 짐을 여호와께 내려놓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더욱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눈물을 흘려보지 않은 사람치고 충성된 사람은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형제자매들이여! 당신은 어떻습니까? 당신이 만일 이미 당신의 어려움과 기쁨을 하나님께 아뢰었다면, 당신은 또한 동시에 당신의 눈물도 하나님께 드리기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