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8. 5. 18. 07:04

 

깊은 우물 속에서

 

물이 말라버린 우물 아래로

내려가 보았다

뻘을 뒤집어쓴 자갈들

자갈들의 상형문자

자갈들은 물 위에

'텅'하고 떨어지던 탄력을 기억한다

툭ㅡ 풀어지던 하강을 기억한다

요즘은 아무도 그렇게 아무의 가슴에 내려서지 않는다

그랬었다는 이끼같은 기억들

여름이면 석청이 녹아흐르는 바위 사이로

들판을 건너 밀냄새 풍기는 처녀들이 왔

골풀과 편암을 밟고 온 처녀들의 발바닥이 뜨거웠다

처녀들의 발등에 쏟아지던 물의 기쁨, 덩달아 뛰던 청개구리

서늘하게 일어서던 몸서리를 기억한다

마른 우물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갈라진 우물 벽 사이에

푸르게 차오르는 기억이 싱싱했

찰랑찰랑했다

우물은 둥근 하늘을 길어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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