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포이멘 2018.05.25 22:01


5. 영원한 심판에 관하여

이단의 다섯 번째 항목은 심판에 관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예수의 인격을 믿고 주 예수님의 역사도 믿으며, 사람에게 죄가 있음을 믿고 또한 그리스도의 구속도 믿지만, 영원한 심판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죽음에 관한 두 종류의 가르침을 가지고 영원한 심판을 뒤집는다. 첫 번째 그들은 사람의 죽음은 바로 잠을 자는 것이며, 신체가 잠을 잘 뿐 아니라 영혼도 잠을 잔다고 주장한다. 신체는 더 이상 감각이 없으며 영혼도 감각이 없게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주님이 부활하실 때 깨어나게 되며, 오늘의 죽음은 다만 일단의 시간을 잃어버리는 데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주님은 죽은 후에도 감각이 있다고 하셨다. 주님은 누가복음 16장에서 하나의 이야기를 하셨는데, 이 이야기에서 나사로와 부자는 죽은 후에 음부에 있으며, 그들은 분명히 감각을 갖고 있음을 보여 준다. 사람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죄의 결과를 경감시키려는 것으로, 이것은 이단이다. 두 번째 어떤 사람들은 두 번째의 죽음이 영원한 형벌이 아니라 완전히 소멸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의 몸은 죽일 수 있어도 영혼은 죽일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10:28). 또한 불 못에서는 벌레도 죽지 않으며 불이 꺼지지 않는다고 하셨다(9:48). 불신자들은 영원히 불 못에서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것은 사람이 죽으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아님을 증명한다. 사람이 두 번째 죽음을 취소하려 한다면, 그것이 바로 이단이다.

6. 기적과 신유의 일에 관하여

이단의 여섯 번째 항목은 기적과 신유에 관한 것이다. 성경에서 기적과 신유는 대부분 병의 치료를 위한 것이다. 이것들은 바로 하나님의 표적들이다. 어떤 이단들은 많은 이적과 기사들로 사람들을 매혹시킨다. 주님은 그분이 다시 오실 날이 이르기 전에 많은 기적들이 사람들을 미혹할 것이라고 예언하셨다(24:24). 어떤 이단들은 병을 고침으로 사람을 유혹한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그리스도를 믿지 않게 만든다. 성경에서 참된 기적과 초자연적인 일들은 반드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어야 한다. 누가 1717절은 그러자 예수님께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아홉은 어디 있습니까?라고 하셨다. 즉 한 사람만 구원받고 아홉 명은 병을 고쳤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우리는 병 고침과 기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구원받는 것이 중요함을 알아야 한다. 어떤 병은 자연적인 법칙을 어겼기 때문에 생긴 것이고, 어떤 병은 사단의 공격으로 인한 것이며, 어떤 병은 죄로 인한 것이다. 성령의 역사로 인한 병 고침과 기적은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고 믿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관계없이 발생하는 기괴한 일들에 대해서 분별의 영을 가져야 한다. 악한 자의 역사는 오히려 사람들을 미혹하여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7. 예언에 관하여

이단의 일곱째 항목은 예언에 대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다시 오심을 믿는다. 그분이 다시 오시는 날짜에 대하여, 주님은 아무도 알지 못하며 천사도 아들도 알지 못한다고 하셨다. 이것이 주님의 다시 오시는 날짜에 관한 기본 원칙이다. 어떤 사람은 1874년에 주님이 이미 왔다고 믿는데, 여호와의 증인들이 믿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여호와의 증인의 창시자인 러셀(Russell)이 전한 것이며, 또한 그의 후계자인 요셉 루더포드(Joseph Rutherford)가 전한 교리이다. 그들은 지금이 이미 천년왕국이며, 그렇기 때문에 타자기, 전화, 기차 등이 발명된 것이라고 말한다. 다니엘서의 칠십 이레를 연()으로 계산하는 것 외에, 다른 모든 경우는 하루는 바로 하루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하루를 일 년으로 계산한다면, 천년왕국은 삼십육만 년이나 된다. 이 일에 대해 변론하는 것은 사람을 번거롭게 하는 일밖에 안 되므로 우리는 들을 필요가 없다. 누구든지 하루를 연()으로 계산하여 그리스도의 다시 오실 날을 계산하는 것은 다 이단이다.

8.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왕래에 대하여

이단의 여덟 번째 항목은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왕래에 대한 것이다. 신명기 189~13절과 레위기 206절에 따르면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왕래를 금지하고 계신다. 누가복음에서 주님은, 부자가 음부에서 나사로를 살아 있는 사람의 땅으로 보내어 주기를 간구했지만 허락지 않으셨다. 죽은 사람은 음부에서 혹은 낙원에서 산 사람이 있는 곳으로 돌아올 수 없다. 죽은 사람을 산 사람이 있는 땅으로 돌아오게 하거나 혹 산 사람을 죽은 사람과 왕래하게 하는 것은 바로 귀신과 왕래하는 일이며 성경은 이를 절대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무당은 바로 귀신과 왕래하는 여인이다. 이러한 여인은 오직 한 귀신과만 서로 왕래할 수 있다. 그러한 여인은 사악한 영과 친숙한 여인이다. 그러므로 무당이 귀신과 왕래하는 것은 바로 하나의 귀신이 많은 사람의 영혼으로 가장하는 것이다. 귀신과 왕래하는 무당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오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귀신을 불러오는 것이다. 성경에서 오직 사무엘상 28장에서만 영혼이 음부에서 올라오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사무엘이 죽은 후에 그 영혼이 불려 올려 졌으며, 올려진 사무엘은 사울을 책망하였다(삼상28:15-19).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사울이 왜 죽임을 당했는지를 기록하고 있지 않으나, 오직 역대상 1013,14절에서만 사울이 귀신과 왕래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로 죽게 하셨다고 말한다. 모세의 율법도 여인이 귀신과 왕래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여인이 귀신과 왕래할 때 돌로 쳐서 죽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만일 어떤 사람이 귀신과 왕래한다면, 그것이 이단이다.

9. 여자가 가르치는 것에 관하여

이단의 아홉 번째 항목은 여자가 가르치는 것에 대한 것이다. 디모데전서 2, 고린도전서 14, 계시록 2장은 모두 하나님께서 여자가 가르치는 것을 허락지 않으심을 언급하고 있다. 어떤 교파든 여자가 머리가 되거나, 여자를 우두머리로 하거나, 여자의 지위를 남자와 동등하게 두는 것을 크게 의문시하고 있다. 세상에 있는 주된 이단들 중에서 절반 이상이 여자가 그 발기인이다. 예를 들어 크리스천 과학회의 에디 여사, 안식교의 화이트 여사(Mrs White) 등이 있다. 성경은 로마 천주교에 대해 말하면서 여자 이세벨의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한다(2:20).

10. 주님의 다시 오심에 관하여

이단의 열 번째 항목은 주님의 다시 오심에 대한 것이다. 이단의 원칙은 바로 주님이 어떤 일을 하시면 사단도 그렇게 한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주님이 병을 고치시면 사단도 병을 고친다. 주님의 다시 오심에 관해서 이단 역시 사람을 혼란스럽게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어느 날 어떤 장소에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고 했는데, 결과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이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성경 안에 있는 주님의 다시 오심의 일에 관하여 관심하지 않게 하거나, 혹은 이 일을 경홀히 여기게 만든다. 사단은 바로 하나의 불명예스러운 일을 가지고 들어와서 주님의 다시 오심의 진리를 손상시키는 것이다. 주님은 확실히 속히 오실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더욱 예언을 주의해야 한다. 그러므로 오늘 이후로도 여전히 예언에 있어서 많은 이단의 형태들이 생겨날 것이다. 만일 어떤 교파든지 어느 날 어떤 장소에 가서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려야 한다고 예언한다면, 그것은 이단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가 두 증인중 하나라고 말하거나 나팔을 부는 세 천사중 하나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믿지 말아야 한다. 어떤 사람이든지 그가 성경에서 말한 어떤 사람이라고 한다면, 당신은 믿지 말아야 한다. 주님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여기저기 계십니다.라고 말할 것이라고 하셨다(24:23). 당신은 그러한 말을 하는 사람들의 말을 믿지 말라. 이것이 바로 허황된 이단이다.

우리는 계시록 3장의 빌라델비아교회가 되는 것 외에 다른 것은 믿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이 그가 계시록 혹은 다니엘서 가운데 나오는 어떤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이단이다. 마지막 날에는 이단이 증가할 것이므로, 우리는 반드시 대조해 보아야 한다. 여러분은 이상한 것을 좋아하지 말아야 하며, 혹은 한번 시험해 보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호기심은 결국 영성을 손상시키고, 한번 시험해 보려고 하는 것은, 마치 독약을 한번 먹어 보려고 하는 것과 같다. (출처: 워치만 니 전집(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