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1. 20:25
성경말씀 

 (마25:2~4) 그들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현명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을 가져갈 때에 기름을 가져가지 않았으나, 현명한 처녀들은 등과 함께 그릇에 기름을 가져갔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만나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은 네 가지 면이 있으며, 이 네 면에 있어서 자라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처녀의 비유 가운데 특별히 “그들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현명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을 가져갈 때에 기름을 가져가지 않았으나, 현명한 처녀들은 등과 함께 그릇에 기름을 가져갔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열 처녀의 차이점을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참인지 거짓인지의 문제가 아니라 지혜의 문제였습니다. 주님은 열 처녀를 두 부류로 나누셨는데, 다섯은 어리석은 사람이었고 다섯은 슬기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해석가의 말처럼 참되게 구원받은 사람과 거짓으로 구원받은 사람으로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열 명의 처녀는 모두 참되게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주님은 여기에서 참과 거짓을 주의하신 것이 아니라 지혜로운가 어리석은가를 주의하셨습니다. 참과 거짓은 본질의 문제이며,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은 상태의 문제입니다. 그들은 모두 처녀이고 구원받았기 때문에 그들의 본질은 참되고 옳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상태는 서로 다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받은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주님이 먼저 어리석은 사람을 언급하신 것은 어리석은 사람에게 경고하시는 것이 그분의 목표였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슬기로운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교훈이 필요하지 않고 어리석은 사람에게 필요합니다. 주님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깨어 예비하도록 어리석은 사람들을 일깨우십니다.
출처 :그리스도인의 생명이 성숙하는 길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1. 20:20
성경말씀  

(마25:1~4) 그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처녀와 같습니다. 그들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현명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을 가져갈 때에 기름을 가져가지 않았으나, 현명한 처녀들은 등과 함께 그릇에 기름을 가져갔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만나

 
마태복음 25장의 처녀의 비유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세상에서의 신분이 슬기로운 처녀처럼 깨끗하고 단순해야 하며, 빛이 있는 등을 들고 흑암을 비추는 상태여야 하며, 주님을 원하지 않는 이 세상에서 나오는 길을 가며, 주님의 다시 오심을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는 생활을 해야 함을 분명하게 보아야 합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고 이 세상은 그분을 거절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까지도 이 세상에 두지 않고 세상에서 나와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주님이시며 우리의 유일한 신랑이신 분을 영접하기 위해 나와야 합니다. 애석하게도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어떤 신분이며 어떤 상태인지 모릅니다. 우리의 상태를 비춰볼 때 우리는 자신이 마땅히 가져야 할 상태와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슬기로운 처녀들처럼 빛을 발하는 등을 들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주님을 싫어하는 세상에서도 나오지 않았고,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지도 않습니다. 주님은 마태복음에서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신분과 상태와 길과 생활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시작이며,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야 할 생활의 기점입니다.
출처 : 그리스도인의 생명이 성숙하는 길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1. 20:15
성경말씀  

(약2:17~18)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행위가 없다면, 믿음 자체만으로는 죽은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그대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위가 있으니, 행위가 없는 그대의 믿음을 나에게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나는 행위로 나의 믿음을 그대에게 보여 주겠습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오늘의 만나

 
 솔로몬이 왕위에 있을 때는 국력이 강하고 번창하여 먼 나라에서까지 조공을 드리러 왔다고 합니다. 어느 나라에서는 특별히 사자를 보내어 두 바구니의 꽃을 선사하였습니다. 하나는 생화이고 하나는 조화였습니다. 양쪽 바구니의 꽃은 모두 색상이 아름답고 향기가 났습니다. 사자는 자기나라의 기술의 정교함을 과시하는 한편 왕의 지혜를 살펴보고자 솔로몬 왕에게 식별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왕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꽃을 화원에 가져다 놓으라. 내가 당신의 사신과 함께 가서 감상하리라.” 봄빛이 따사롭게 넘치는 화원에는 백 가지 넘는 꽃들이 아름다움을 뽐내며 향기를 날리고, 나비들은 꽃 사이를 날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 솔로몬은 웃으면서 어떤 것이 진짜 꽃이고 어떤 것이 조화인지를 알려 주었습니다. 원래 자연의 꽃은 꿀이 있어서 벌과 나비들이 모여듭니다. 그러나 가짜 꽃에는 가까이하지 않습니다. 사신은 솔로몬의 지혜에 감탄했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꽃과 같아서 일시적으로 진위를 가리기 어렵지만, 실제로는 시험할 수가 있습니다. 진정한 믿음과 진짜 꽃은 생명이 있어서 꽃이 필 때, 아름다운 색상과 매혹적인 향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끌 뿐 아니라 열매도 맺습니다. 비록 각종 꽃과 열매들이 크고 작은 차이는 있지만 결코 그 자체를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행위가 없다면, 믿음 자체만으로는 죽은 것입니다. ...  나는 행위로 나의 믿음을 그대에게 보여 주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스스로 시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 온전케 하는 예화들2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1. 20:10
출25:30  그리고 그 상 위에 임재의 떡을 놓아두어 그것이 항상 내 앞에 있게 해야 한다. 요6: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셔서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먹는 방법을 아는가 ?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리스도를 알며, 그리스도를 경배하고, 그리스도를 전하는 방법을 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먹음으로 써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에 대해서는 결코 들어 본 적이 엇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주 예수님을 '먹어야"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주님은 요한복음 6장57절에서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입니다." 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먹어야 한다. 그분은 또 "내가 생명의 떡이니" 라고 말씀하셨다. 떡은 먹기 위한 것이다. 임재의 떡은 제사장들을 위한 음식 중 하나이다. .....그것은 우리의 생명과 생명 공급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리스도를 임재의 떡으로 다루고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들에게 공급하려면, 먼저 그리스도를 임재의 떡으로 누리고 먹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먹음으로써 그리스도를 내적인 생명과 생명 공급으로 체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를 먹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그리스도를 우리의 영적인 음식으로 누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들에게 공급할 때 우리 자신도 그분을 먹는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먹이고 있는 동안 우리도 먹는다. 내가 말씀을 전할 때마다 공급을 받는 첫번째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다. 말씀을 전한 후 나는 배부르다. 나는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들에게 공급함으로써 배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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