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6. 13. 05:00

지방교회들의 핵심진리 (2)- 왜 하필 삼일 하나님이라고 하나요?

-지방교회 측 성도들과 달리 일반적으로는 삼위일체 또는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왜 지방교회 성도들은 삼위일체라는 말을 잘 안 쓰고 '삼일 하나님' 또는 '삼일성'이라고 하는지요? 뭐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보통 영어권에서도 '삼위일체'(Trinity)와 '삼일하나님'(Triune God)이라는 말을 함께 쓰고 있어요. 즉 '삼일 하나님'이란 말을 (지방)교회들만 쓰는 표현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혹시 미심쩍으시면 구글 검색 같은 곳에 'Triune God'을 한번 쳐넣어 보시면 바로 알게 되실 것입니다. 아니 그럴 것 없이 제가 검색을 한 결과를 보여 드릴께요. 보세요. 우리 외에도 루터교단도 그런 표현을 쓰고 있고 그외에도 다양한 사람과 단체들이 그렇게 혼용해서 쓰고 있답니다.
http://www.google.co.kr/search?complete=1&hl=ko&q=triune+God&lr=&aq=f 

  -만일 삼위일체와 삼일 하나님 둘다 사용할 수 있다면, 왜 거기는 '삼일 하나님'이라는 말을 더 선호하는지요? 제게는 (지방)교회분들이 삼위일체라는 말보다는 삼일 하나님이라는 말을 더 선호하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잘 보셨습니다. 사실 둘 다 사용해도 큰 무리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삼일( 라틴어로 셋-하나)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성경의 계시에 더 접근된 표현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국내에서 삼위일체론에 있어서 권위있는 신학자로 평가되는 이종성 박사는 삼위일체론(대한기독교출판사, 1991) 각주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답니다.
"한국교회와 일본교회는 Trinity를 삼위일체로 부른다. 그렇게 번역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수 없으나 매우 모호하고 부적당한 번역이다. 왜냐하면 '위'의 개념이나 '체'의 개념이 확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학적 연구가 요청된다."(300쪽)

- 거기는 삼위일체를 '세 인격, 한 본질' (three persons, one nature)
로 요약해 온 정통 삼위일체의 정의에 동의하시나요?  

물론입니다. 우리는 교회 역사상 이단들과의 싸움을 통해 정립된 정통 삼위일체 교리들을 다 동일하게 믿고 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한국교계 내에서 (지방)교회측의 삼위일체론이 자꾸 문제가 되는지요? 

 자꾸 문제가 된다기 보다는 어떤 한 목사님이 (지방)교회 삼위일체론에 대해 다소 오해의 여지가 있는 연구를 해서 발표하신 것이 인터넷 같은데서 반복해서 인용 소개되다 보니 그런 인상을 주는 것 같습니다. 사실 알고 보면 큰 문제 없고요(풀러측 조직신학 교수님들이 3년간 연구한 결론), 오히려 삼위일체론에 대해 좀 더 깊이와 균형을 갖춘 이해를 하고 있다고 볼수 있습니다. (지방)교회측이.... 

  - 죄송하지만 그런 말이 제겐 조금 도전적으로 들리는데요, 어떤 점이 (지방)교회측이 깊이 있고 균형있게 삼위일체를 이해하고 있다는 말인지요? 근거를 제시하실 수 있나요? 

그럼요. 근거없이 말하면 거짓말이 되지 않겠습니까? 사실 삼위일체론은 신학 대학원을 나온 분들도 설명이 쉽지 않은 주제입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서 그러나 너무 깊이 들어가지 않고 핵심만 요약을 해 보겠습니다. 삼위일체론 (또는 삼일 하나님)을 깊이 있고 균형있게 이해하려면 다음 요점들을 다 포함해야 합니다.
1) 삼위일체 하나님은 세 인격들, 한 동일 본질을 가지신다. 2) 삼위는 각각 하나님이시고, 영원하시고, 동시에 존재하신다. 3) 삼위는 구별은 되시나 분리되시지는 않는다. 4) 삼위는 상호내재하신다(이것을 전문 신학용어로는 '페리코레시스' 라고도 함) 5) 삼위일체는 본질적인 삼위일체 방면과 경륜적인 삼위일체 방면을 모두 감안해야 한다.

-그 쪽에서는 기성교회 삼위일체론에 대해서 '삼신론' 또는 '삼신론적인
요소'가 있다고 말한다고 들었는데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는지요? 

 아, 예. 그것은 앞서 말한 그 목사님이 '지상사역시의 예수님 안에는 아버지 하나님이 안 계신다' '하나님은 하나의 영이 아니라 세 영들이다.' 라는 주장하시는 것에 근거한 것입니다. 사실 삼위일체는 잘못 말하면 꼬투리 잡히기 쉬워서 단정적인 표현은 가급적이면 조심하고 성경적으로 증명이 가능한 부분만 자신있게 말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그런데 위와 같은 주장은 성경 본문에 의해 반박 될 여지가 많은 주장이예요. 예를 들면, 빌립이 예수님께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하니 예수님은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믿으라'(요14:11) 고 하셨거든요. 그런데 위 주장은 이런 말씀과 정면으로 대치되지 않습니까? 또 하나님을 '세 영들'이라고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장로교 신학자분들도 다수 공감하시는 것같습니다. 한 마디로 삼신론은 '세 하나님들을 믿는다'는 의심을 받게 하는 주장들입니다. 마치 <사람이라는 동일본질을 가진 갑, 을, 병처럼 삼위일체를 이해하는 식>이지요. 이것도 <세 인격, 한 본질>이라는 조건은 충족시키거든요. 그렇지만 그렇게 이해하는 것은 <삼위가 구별은 되나 분리는 안 된다>는 조건을 어긴 이해입니다. 한국 교계에서 삼위일체에 대한 권위자로 인정하는 어거스틴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영은, 사람이 한 인류에 속하면서 세 개인으로 나눌 수 있는 것과 같은 식으로 셋으로 나눌 수 없다"(위책, 269쪽).


-글쎄요. 저는 신학을 안해서 어떤 신학자가 뭐라고 했는지는 잘 모르겠고, 아무튼 오늘 귀한 교제 감사합니다. 너무 깊이 들어가면 서로 복잡해 지니까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요.  

예. 그러지요. 사실 저도 이렇게 말은 해도 삼위일체 (삼일 하나님)는 늘 어려운 주제입니다. 특히 성경에서 삼위일체를 언급한 대목들 (마28:19, 고후13:13)은 대부분 우리의 체험과 관련이 깊은데 그런 분을 온전히 체험하여 아는 것은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리고 제가 설명드리는 과정에서 특정인이나 특정 대상을 비난하는 것처럼 혹시 비쳐졌기 않기를 바랍니다. 저는 그저 사실에 근거한 설명을 하려다 보니, 본의 아니게 언급하게 된 것 뿐입니다. 다시 한번 이점 양해를 구합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6. 12. 05:00

Sisters - All My Life Long I Have Panted - Loving the Lord - 지방교회들 찬송가 


*작사:Clara Tear Williams / 작곡:Natalie Pagel*

한국복음서원 찬송가 257장의 새 곡조

1. 일생 동안 사모하던 시원한 샘 찾았네 그 샘 내 속 타는 갈증 해결하여 주셨네

후) 할렐루야 갈망했던 그를 이제 찾았네 주의 생명 날 구원해 나의 갈망 채우네

2. 배고픔을 달래려고 쥐엄 열매 구했네 내 힘 모두 소모해도 굶주림 못 면했네

3. 굶주림을 채우려고 애써 구한 모든 것 나로 치욕 느끼게 한 배설물과 같았네

4. 그침 없는 생수의 샘 생명 떡은 값 없어 나를 위한 주의 풍성 영영 부족함 없네

http://www.praisenote.net/stanza/5931
http://www.praisenote.net/newtune/4228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6. 12. 05:00

말씀과각주 316 - 로마서 8장 11절 - 지방교회들 말씀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6. 12. 05:00

지방교회들의 핵심진리 (1) - 하나님의 경륜이 뭐예요?

지방교회들의 핵심진리 (1) - 하나님의 경륜이 뭐예요?

-지방교회들에 소속된 분들은 일반 성도들이 잘 못들어 본 단어를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경륜'이란 말인데,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하나님의 경륜'이 뭡니까?  

한 두 마디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 단어인데, 한국복음서원에서 펴낸 '하나님의 경륜'(위트니스 리)이란 책을 한번 읽어 보시면 어떨까요? 

  -예, 기회가 되면 한번 사서 읽어보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그래도 거기서 오래 생활하셨으니, 나름대로 하나님의 경륜에 대해서 이해하고 계신 것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것을 한번 제게 말씀해 주실 수 없을까요?  

그럼, 부족하지만 제가 이해한 하나님의 경륜을 조금 말씀드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하나님의 경륜은 위트니스 리나 소위 (지방)교회 사람들이 만들어 낸 용어가 아니라 성경 용어입니다. 디모데 전서 1장 4절을 보면 나옵니다. 거기서 앞 뒤 다 빼고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이란 말만 마음에 담아 두셨으면 합니다. 

  -제가 '경륜'이란 단어를 검색에 쳐 보았더니 일곱명이 하는 자전거 경주 이야기가 나오던데, 물론 그런 뜻은 아닐 거구요. 아, 저 사람은 얼굴에서 경륜(연륜)이 느껴져 라는 식으로 일이나 조직을 지혜롭게 잘 관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요? 

 예, 저도 호기심으로 경륜이라는 단어를 검색에 쳐 본적이 있는데, 진짜 '창원경륜공단' '한국 경륜선수위원회' 이런 단어들이 뜨더라구요. 물론 그런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경륜'을 두 방면으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하나는 그 단어 원문의 의미를 푸는 방식이구요, 또 하나는 그 단어가 성경 전체에서 쓰인 내용들을 몇 단어로 압축해서 요악하는 식입니다. 우선 '경륜'이란 말은 위 디모데 전서 1장 4절 말고도 엡1:10, 3:2, 9, 골1:25, 고전9:17 등에서도 쓰였어요. 헬라어 원문은 '오이코 노미아'입니다. 이것은 '집'의 의미인 '오이코스'와 '관리'의 의미인 '노모스'의 합성어예요. 따라서 하나님의 경륜은 '하나님의 집 관리'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따라 말한다면, 하나님의 경륜은 '주님자신', '분배' '표현' 이 세 단어로 압축해서 정의할 수 있어요. 

  -주님 자신을 분배해요? 아무리 이해하는 마음으로 들으려고 해도 '분배'라는 말은 좀 귀에 거슬리는데, 어떤 근거로 그렇게 말하지요?  

그러실 겁니다. 사실은 저도 처음에 그랬거든요. 그래서 나름대로 그런 질문을 받으면 답변할 성경 구절들을 찾아본 적이 있습니다.  

우선 위 고전 9:17을 보시면 개역성경으로 '직분'으로 번역된 단어가 바로 우리가 말하는 '오이코노미아'인데, 이것을 KJV은 'dispensation' 이라고 번역했어요. 그 단어를 영한 사전에서 찾아보시면 첫 의미가 바로 '분배' 또는 '나누어 줌' 입니다. 

 즉 바울이 위 구절에서 '직'을 맡았다고 했는데, 무슨 직분인가 하면 쉽게 말해서 사람들에게 주님을 생명으로 나누어주는(소개하는) 직분입니다. 그런 직분을 통해 예수를 몰랐던 사람들이 예수를 알게 되고, 믿고 영접하게 되는 소위 복음의 역사가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해석이 조금 인위적으로 느껴지시면 좀더 설득력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 요한복음 10장 10절 후반절이예요.  

'내가 온 것은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양들인 우리 편에서는 생명을 얻고 또 얻는 것이지만, 생명을 주시는 그분 편에서 보면 생명을 주고 또 주시는 것이지요. 이것을 생명을 분배하신다 라고 말할 수 있다고 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분배하는' 내용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생명이지요. 그런데 생명이 무엇인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또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라는 말씀에 근거해 보면 주님자신이 생명입니다. 

 이처럼 '주님자신' '분배'가 이뤄질 때 나타난 결과가 바로 '표현'입니다. 사람 안에 생명이 처음 분배된 것을 거듭남이라고 한다면, 그 다음에 계속 분배되는 생명을 그 거듭난 사람들을 영적으로 자라서 성숙하게 합니다. 이런 거듭난 사람들, 생명이 성숙한 사람들은 불신자와는 다른 어떤 예수 믿는 냄새가 납니다. 얼굴에서 그들의 말에서 생각하는 관점에서...그것이 표현입니다. 

 이처럼 생명이신 주님자신이 우리를 통해 안으로부터 충만히 표현되는 것을 성경은 '그리스도의 몸'(엡1:23) 그리고 더 나아가서 '새예루살렘'이라고 합니다 (계21:11). 

 질문은 짧은데 어찌하다보니 제 답이 너무 길어것 같아 죄송하네요. 

  -예, 나름대로 성경을 토대로 하나님의 경륜을 이해하고 계시구나 하는 인상은 받았습니다. 그러나 말씀하신 내용들이 다 이해가 된다고 말씀드리지는 못하겠네요. 시간을 가지고 다시 한번 찬찬히 검토해 보고 추가 질문이 있으면 나중에 또 드려도 될까요? 

그럼요. 언제든지요.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성의껏 답변을 드릴 것을 약속합니다. 참고로 시간이 나시면 엡1:4-5, 3:2-6, 골1:24-29 등도 함께 연구해 보시면 제가 오늘 설명드린 내용을 좀 더 깊이있게 이해하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 좋은 시간 가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니요. 제가 더 감사하지요. 그럼 나중에 또 뵙지요. 안녕히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