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6:15
성경말씀  

(창6: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히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을 받고 은혜를 입어서 때맞추어 도움을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갑시다. 

 오늘의 만나  

창세기 6장 8절은 성경에서 처음으로 은혜를 언급한 곳입니다. 히브리서 4장 16절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나는 늘 이렇게 주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주여, 나에게는 매분마다 당신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당신은 은혜로우신 분이며 나를 위해 준비하신 은혜가 있음을 압니다. 주여, 은혜에는 나의 동역이 필요하다는 것도 압니다. 나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은혜를 입기 위해 은혜의 보좌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자신의 상황을 견딜 수 없으며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에 맞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은혜의 보좌라는 곳이 있습니다. 때맞추어 도움을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갑시다. 여러분이 창세기 6장을 주의 깊게 읽어본다면, 여기에서의 은혜는 하나님이 노아에게 주신 많은 것들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볼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노아에게 오셔서 그와 함께 계셨음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노아의 힘이며 능력이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것을 누렸을 뿐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누렸습니다.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혼잡한 세대, 아무도 그 유혹을 이길 수 없는 세대 안에서 노아는 여호와의 눈에 은혜를 입었습니다. 하나님은 노아를 강하게 하셨으며 그와 함께 서 계셨으며 그를 부축하셨습니다. 노아가 입은 것은 은혜였고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은혜입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6:10
성경말씀  

(사12:2~6)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 이름을 부르며 그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의 이름이 높다 하라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이를 온 땅에 알게 할지어다 시온의 주민아 소리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라 할 것이니라 

 오늘의 만나 

 이사야서 12장에서 이사야는 감사하고 찬송하고 부르짖고 외치라고 말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4절에 언급된 부르는 것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2절에서 그는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이시며 힘이시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십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긷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의 우물들에서 기쁨으로 물을 길을 수 있겠습니까? 그 길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고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고 찬송하는 것이며 소리를 높여 외치는 것입니다. 4절의 찬양과 부르는 것이 함께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6절에서는 소리를 높이는 것과 부르짖는 것이 함께 있는 것을 봅니다. 이것은 주님을 부르는 것이 부르짖고 외치는 것임을 증명합니다. 이사야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원으로 받아들이는 길이 즐거움과 찬양으로 그분의 이름을 소리 높여 부르는 것임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고 있습니다. 만일 주님 앞에서 외쳐본 적이 없다면 지금 그분 앞에서 외쳐 보십시오. "오 주 예수님! 주님이 너무 좋습니다."라고 외치면 외칠수록 여러분은 자신에게서 해방되고 주님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삼층천에 있게 될 것입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6:05
성경말씀 

(창4: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롬10:13)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오늘의 만나 

우리의 인생이 공허하고 부서지기 쉽다는 것을 볼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주님의 이름을 부를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창세기 4장 26절은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고 말합니다. 인류의 제 삼대인 에노스의 때에 사람들은 자신들이 약하다는 것과 깨지기 쉽다는 것과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주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무관심할 때, 우리는 그분의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살고 그분의 길 안에서 그분을 경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가 부서지기 쉽고 죽어야 할 운명이며 우리의 인생이 공허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 자연스럽게 우리는 깊은 속으로부터 기도할 뿐 아니라 주님의 이름을 부르게 됩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그분께 기도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에 나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주님은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그분께 기도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르는 것은 기도의 일부이기 때문에 기도의 한 형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르는 것은 단지 기도만이 아닙니다. '부르다'는 히브리어 단어는 '외치다 또는 호소하다 즉 부르짖다'라는 의미입니다. 헬라어로는 사람을 불러 일으키다, 사람의 이름을 부르다를 뜻합니다. 바꾸어 말해서 부르는 것은 그가 들을 수 있도록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기도는 속으로 할 수 있지만, 부르는 것은 들리게 합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6:00
성경말씀 

 (창4:2上)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4: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오늘의 만나  

창세기 4장에서 우리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 두 이름을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이름은 공허함을 뜻하는 '아벨'입니다. 사람이 타락한 결과, 인생은 공허해졌습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을 보십시오. 바쁘게 움직이지만 그들 안에는 무언가 비어있고 공허함이 있습니다. 그들 속 깊은 곳에 허무함이 있습니다. 사회적인 지위에 상관없이 아무리 재산이 많고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이 밤이나 아침 일찍 혼자 조용히 앉아 있을 때 당신 안에는 무언가 비어있음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한 허무감이 지금 제가 말하는 공허함입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왕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전1:2~3)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타락한 사람들인 우리는 우리의 어떠함과 소유한 모든 것과 행하는 모든 것이 허무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만 공허하고 허무한 사람일 뿐 입니다. 의미있는 특별한 두 번째 이름은 부서지기 쉬운, 죽어야 마땅한 사람을 뜻하는 '에노스'입니다. 사람이 타락한 후에 인생은 공허해졌을 뿐 아니라 부서지기 쉽고 죽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부서지기 쉽고 약하고 깨지기 쉽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쉽게 부서지는지요! 또한 사람은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이 일주일을 더 살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내일을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이 공허하다는 것과 사람이 부서지기 쉽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이것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자신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의 길을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