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5. 20:05
성경말씀 

 (빌2:15~16) 그러면 여러분은 나무랄 것이 없고 순결하여, 구부러지고 비뚤어진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들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세대 가운데서 세상의 발광체들로 빛나서 생명의 말씀을 밝히십시오. 

 오늘의 만나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 주 예수님은 흠이 없으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도 마땅히 그분을 닮아야 합니다. 바깥 세대는 어그러지고 거스르지만, 우리는 속에서부터 흠없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사람이 자녀로서 자기 아버지를 닮듯이 하나님의 자녀들도 마땅히 성질에 있어서 하늘에 계신 그들의 아버지와 같아야 합니다.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품의 소유자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자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단순히 어떤 칭호나 어떤 권리가 아닙니다. 또한 어떤 관계만을 가리키지도 않습니다. 이것은 하늘에서 온 생명에 대한 칭호입니다. 이는 아버지께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기”(약1:18) 때문에 우리가 “신성한 본성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되도록 하시려는”것입니다(벧후1:4). 하나님의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성품을 가진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의 생명은 이 세상에 있는 그분의 자녀에게 끝없이 흐릅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5. 20:00
성경말씀  

(벧전1:16) 그것은 성경에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여라.”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만나

 
 거룩하게 되는 것은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성경은 그분이 “예수님도 자신의 피로 사람들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그분께서 하나의 제물을 드리심으로써, 거룩하게 되고 있는 사람들을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히 13:12, 10:14)라고 말합니다. 거룩하게 되는 것은 이미 완성된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우리는 다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이것이 사실이지만 베드로전서 1장 16절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여라.”라고 명합니다. 왜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을까요? 이는 비록 믿는 이가 이미 거룩하게 되었지만 이 거룩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사실일 뿐 믿는 이의 생명의 체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거룩하게 되려면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예비하신 거룩하게 하심을 우리의 거룩으로 취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거룩한 생활이 있습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5. 19:55
성경말씀 

  (시90: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오늘의 만나

 
 창세기 4장과 5장에는 가인의 계보와 셋의 계보가 나옵니다. 가인의 계보는 매우 간단하여 그 나이가 기록되지 않은 반면에 셋의 계보는 세밀하여 각각 몇 살에 누구를 낳고 몇 살까지 살았는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두 계보를 살펴볼 때 하나님께서 어떠한 원칙으로 나이를 계산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가인의 계보가 간단한 것은, 하나님께 득죄하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서 하나님과 교통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셋의 계보가 세밀한 것은, 셋이 아벨의 대표로서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죄와 허물 가운데 죽었을 때에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날짜가 계산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 그분과 교통을 가질 때 비로소 우리의 영적 날짜는 시작됩니다. 시편에서 다윗이 하나님께 드린 한 기도는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하루가 계산되고 일 년이 일 년으로 계산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은 실로 주의해야 할 문제입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5. 19:50
성경말씀  

(고후4:7) 그러나 우리는 이 보배를 질그릇 속에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 탁월한 능력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시려는 것입니다. 

 오늘의 만나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영광은 바로 하나님의 보배가 가장 비천한 질그릇 위에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보배는 가면 갈수록 더 분명히 나타나지만 질그릇은 여전히 질그릇입니다. 이것은 매우 아름답습니다. 천성적으로 인내가 없었으나 신성한 인내가 있게 된 사람과 당신이 보기에 어떤 일에 의해서 동요되지 않는 사람을 비교해 보십시오. 또 선천적으로 교만한 사람의 몸에 신성한 겸손이 주어진 것과, 천연적으로 모든 일에 양보하는 사람을 비교해 보십시오. 연약한 사람의 몸에 하나님의 능력이 주어진 것과, 천연적으로 성격이 강인한 자를 비교해 보십시오. 그 차이는 가히 측량할 수 없습니다. 천연적으로 연약한 사람은 쉽게 질그릇의 상태로 인하여 주님께 대한 자기의 가치를 과소평가합니다. 그러나 내면에 있는 그 보배의 성질은 이러한 그릇에서 빛을 발하며 더욱더 큰 영광을 얻게 됩니다. 이러할진대 우리가 낙담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