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9. 18:30
성경말씀 

(눅10:41~42) 주님께서 마르다에게 대답하셨다. “마르다여, 마르다여, 그대가 많은 일로 염려하며 애쓰지만,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입니다. 마리아는 좋은 편을 선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의 만나

 
 주님은 그분을 사랑하는 구원받은 믿는이들이 그분의 뜻을 알지 못한 채 많은 일을 하는 것보다 그분의 갈망을 알기 위하여 말씀 듣는 것을 더 원하십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의 바로 뒤에 나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사람이시며 죄인들의 이웃이 되시는 구주의 동정과 사랑을 보여 줍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는 하나님이시며 믿는이들의 주인이 되시는 주님의 갈망과 애호를 보여 줍니다. 구주께서 동정과 사랑을 우리에게 보이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것이며, 구주께서 그분의 갈망과 애호를 표현하신 것은 우리가 그분을 섬기도록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구주의 동정과 사랑을 깨달아야 하고, 구원받은 후에 주님을 섬기기 위해서는 주님의 갈망과 애호를 알아야 합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9. 18:25
성경말씀  

(롬8:16~17) 그 영께서 직접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을 증언하십니다. 자녀들이라면 또한 상속자들, 곧 하나님의 상속자들이며,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공동 상속자들입니다. 만일 참으로 그렇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합니다. 

 오늘의 만나

 
 ‘그 영께서 직접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을 증언하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을 때 그 영께서 증언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증언은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는 것을 증거해 주고 보증해 줍니다. 또한 우리를 제한하고 속박하여 이 생명에 따라 생활하고 행하게 하며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에 부합되게 합니다. 그 영은 하나님과 우리의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관계 즉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는 것을 증언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나 혹은 하나님의 후사들이라고 증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 영의 이 증언은 영적으로 출생할 때 즉 거듭날 때부터 시작됩니다. 단순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상속자들인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녀로서 태어난 후에는 성장하여 아들들이 되어야 하고 그다음에는 영광을 받고 합법적인 상속자가 될 수 있도록 고난을 통과해야 합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9. 18:20
성경말씀  

(롬3:24)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오늘의 만나

 
 ‘구속’은 대가를 지불하여 다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본래 하나님께 속해 있었으나 죄 때문에 잃어버린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과 의로움과 영광의 요구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우리는 그러한 요구를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위하여 대가를 지불하시고 그 큰 대가로 우리를 다시 소유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피로 영원한 구속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대가를 지불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의 구속으로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모두 이루셨기 때문에 공정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값없이 의롭다 하셔야 합니다. 이렇게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우리의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9. 18:15
  요 16:13-15  그러나 실재의 영께서 오시면, 그분께서 여러분을 모든 실재 안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스스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듣는 것만 말씀하시며, 장차 올 일들을 여러분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인데, 왜냐하면 그분께서 내 것을 받으셔서 여러분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 소유하고 계신 것은 모두 내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분께서 내 것을 받으셔서 여러분에게 알려 주실 것입니다. 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전달을 통하여 새로 태어난 아이이신 그리스도의 많은 형제들, 많은 지체들이 된다. 우리가 보았듯이 그 영께서 하시는 일의 첫째 범주는 사람들을 책망하는 것, 다시 말하면 죄인들을 책망하여 회개하고 믿고 거듭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영께서 하시는 일은 이보다 더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다. 그 영께서 하시는 일의 둘째 범주는 성령께서 거듭난 믿는 이들 안에 거주하시면서 그리스도를 계시하시고, 그리스도를 영광스럽게 하시며,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 안에 실재가 되게 하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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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9. 18:10
성경말씀

(갈6:15) 할례나 무할례는 아무것도 아니며, 중요한 것은 새 창조물뿐입니다.

오늘의 만나

옛창조는 아담 안에 있는 우리의 옛사람 곧 출생으로 말미암은 우리의 존재이며 하나님의 생명과 신성한 본성은 전혀 없습니다. 새창조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사람 곧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우리의 존재입니다. 이 새창조는 하나님의 생명과 신성한 본성이 그 안으로 역사되고 그리스도가 구성 성분이 되어 새로운 조성체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본성 곧 내적이고 내재적이며 유기적인 구성 성분을 가리킵니다. 옛창조는 하나님의 요소가 없기 때문에 낡았지만 새창조는 하나님께서 그 요소이시기 때문에 새롭습니다. 비록 우리가 옛창조일지라도 성령을 따라 행할 때 새창조는 실재를 체험합니다. 그러므로 할례와 무할례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가 생명되시는 새창조입니다. 새창조가 되는 것은 성령을 위하여 심는 이유와 결과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과 할례를 행하는 것은 육체를 위하여 심는 것이며 그것들은 옛창조를 바꾸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을 위하여 심을 때 우리는 새창조가 됩니다. 이 새창조는 성령으로 재창조되고 신성한 생명으로 말미암아 변화되며 과정을 거친 삼일 하나님께서 우리와 연합되심으로 그분의 풍성한 요소로 조성된 것입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9. 18:05
성경말씀  

(시90:9~10)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오늘의 만나

 
 백발의 한 노인이 있었는데, 그는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깊이 맛본 후 시간이 얼마나 귀중한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런 말로 다음 세대인 청년들을 훈계했습니다. “내가 울고 웃던 시절에는 시간이 마치 기어가는 것처럼 천천히 지나갔고, 내가 꿈을 꾸고 이야기하던 청년 시절에는 시간이 빠른 걸음처럼 지나갔다. 내가 완전히 성인이 되었을 때 시간은 마치 뛰어가는 것처럼 지나갔고, 장년이 되어 능력을 과시할 자리에서 활동을 시작했을 때 시간은 구름처럼 날아가 버렸고, 흰머리를 머리에 이고 완전한 노인이 된 그때 시간이 전부 지나가버린 것을 알았다. 시간은 참으로 짧다. 그러므로 이것을 존중해야 하며 가장 귀중하게 쓸 필요가 있다. 현재라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인간의 운명은 결정된다.
출처 : 온전케 하는 예화들1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9. 18:00
성경말씀 

(행2:24) 하나님은 그분을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습니다. 이것은 그분께서 죽음에 붙잡혀 계실 수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32) 이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살리셨으며, 우리 모두가 이 일의 증인들입니다. 

 오늘의 만나

 
사도행전 2장 24절과 32절에서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예수를 살리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10장 40절과 41절에서 그는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예수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신약은 주님을 한 사람으로 여길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셨다고 말하고, 그분을 하나님으로 여길 때에는 그분 자신이 스스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셨다고 말합니다. 이것 또한 그분의 이중 신분 즉 사람의 신분과 하나님의 신분을 증명합니다. 주님은 파괴될 수 없는 생명을 소유하신 하나님이시며 부활이십니다. 그분이 그처럼 항상 살아계신 분이시기 때문에 사망은 그분을 붙잡을 수 없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사망에 넘기셨지만 사망은 그분을 붙잡아 둘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사망은 그분께 패배당했고 그분은 사망에서 일어나셨습니다. 사도는 이 일의 증인이라고 말했습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9. 17:55
벧전 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찬양을 드립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크신 긍훌에 따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일으켜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어 살아 있는 소망을 갖도록 하셨으며, 롬8:29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사람들을 그분의 아들과 같은 형상을 이루게 하시려고 또한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아들을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맏아들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그리스도께는 신성은 있었지만 인성은 없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그러하신 것처럼 스스로 계셨고 항상 살아계셨다. 그리스도는 부활하시면서부터 신성과 인성을 소유하신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였다. 하나님은 맏아들을 근거와 본과 요소와 수단으로 살아 많은 아들들을 산출하시는 데 , 산출된 많은 아들들은 하나님의 맏아들을 믿고  그분과 하나로 연결된 많은 믿는 이들이다. 이들은 생명과 본성에서 정확하게 맏아들과 같고 맏아들처럼 인성과 신성이 있다. 이들은 영원하신 삼일 하나님을 영원토록 나타내기 위한 그분의 증가와 표현이다. 오늘날 교회는 이 표현의 축소만이고, 영원안에 있는 새 예루살렘은 이 표현의 최종적인 나타남일 것이다. 로마서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그분릐 아들들로 만드신 것이 이 표현을 위한 것이고, 또한 이 표현의 최종적인 나타남을 지향한다는것을 계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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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9. 17:50
요16:21  여자가 해산할 때가 되면, 그때가 왔으므로 근심하지만, 어린아이를 낳으면, 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 때믄에 더 이상 그 고통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렘 13:33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심으로 그들의 자녀인 우리에게 이 약속을 온전해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것은 시편 제이 편에 기록된 것과도 같습니다. "너는 내 아들이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요한복음 16장에서 그리스도는 새로 태어난 아이로 우리에게 제시된다. .....그리스도는 부활 안에서 하나님의 맏아들 로태어나셨다. 요한복음 16장20절에서 여자는 무리 전체이며, 아이는 그리스도이고, 출생은 그분의 부활이다.(행13;33, 히 1:5 ,롬1:4) 사도행전 13장33 절에 따르면 주 예수님은 그분의 인성 면에서 부활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셨다. 그러므로 주님의 부활은 일종의 출생이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을때 태어 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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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9. 17:45
성경말씀 

(요13:3~5)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자기가 하나님에게서 왔다가 하나님께로 갈 것을 아시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일어나시어 겉옷을 벗어 놓으시고, 수건을 가져다가 직접 허리에 동여매셨다. 예수님께서 대야에 물을 부으신 후,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허리에 동여매신 수건으로 닦아 주시기 시작하셨다. 

 오늘의 만나

 
 고대에 유대인들은 샌들을 신었는데 길에 먼지가 많았기 때문에 발이 쉽게 더러워졌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잔치에 왔을 때 상에 앉아 발을 뻗으면 먼지와 냄새가 틀림없이 교통을 방해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잔치가 유쾌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발을 씻어야 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심으로 당신께서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을 보이시고 이와같이 그들도 서로 사랑 안에서 행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오늘날 세상은 더러워서 우리 성도들은 쉽게 오염됩니다. 우리가 주님과의 즐거운 교통과 서로 간의 즐거운 교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님께서 그분의 사랑 안에서 또한 우리들 서로가 사랑 안에서 씻는 성령과 씻는 말씀과 씻는 생명으로 영적인 발 씻음을 실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