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5:45
성경말씀  

(창3: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고후11:3) 전에 뱀이 간교하게 하와를 속였던 것처럼, 나는 다만 여러분의 생각이 부패하게 되어 그리스도를 향한 단순성과 순수성을 잃어버릴까 두렵습니다. 

 오늘의 만나

 
 사탄이 유혹하는 방법은 첫 번째로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도록 제안을 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의심을 일으키는 제안을 함으로써 당신을 유혹하고 설득하고 함정에 빠뜨리려고 노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할 때마다 당신은 그 의심이 당신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뱀에게서 나온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수년 전 나는 미국에 있는 어느 침례교 사역자가 쓴 글을 읽었습니다. “의문부호는 마치 뱀이 일어서서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더냐?’라고 묻는 모양처럼 생겼다.” 우리는 성경에 있는 어떤 말씀도 의심해서는 안 되며 모든 말씀에 아멘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사탄의 제안은 항상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마음을 의심하게 합니다. 간교한 자는 전갈과 같고 그의 질문은 전갈의 독침 안에 있는 독과 같습니다. 뱀은 하와에게,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했습니다. 사실상 뱀은 하와에게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지식나무를 먹지 못하도록 금했지? 그건 네가 그것을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될 줄을 하나님이 아시기 때문이다. 너는 하나님처럼 지혜롭게 될 것이다.” 이 말들은 전갈의 독침에서 나온 독이었습니다. 하와는 독침에 쏘였으며 독이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와가 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보았을 때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다고 알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하와를 유혹한 사탄의 방법이었습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5:40
성경말씀  

(창2:9上)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롬14:17) 하나님의 왕국은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의와 화평, 그리고 성령 안에 있는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만나 

 여호와 하나님은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기뻐하고 즐거워하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사람으로 일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것을 누리므로 기뻐하고 만족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종교적인 생각과는 상반되는 것입니다. 내가 어린 그리스도인이었을 때, 나는 침울한 얼굴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런 경배가 아닙니다. 그분은 단지 우리가 즐거워하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편에서 '주님에게 노래하며 즐거이 부르자'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웃는 얼굴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고 만족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한 일이나 해야 할일들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다만 지금 주 안에서 기뻐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만을 생각하십시오. 로마서 14장 17절에서 하나님의 왕국은 의와 화평, 그리고 성령 안에 있는 기쁨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기쁘고 즐겁지 않다면 그것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기쁨이 없을 때,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일은 다 무거운 짐이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무거운 짐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다만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쁘고, 즐겁고, 만족해야 하는 것입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5:35
성경말씀 

 (창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오늘의 만나 

 만일 우리가 창세기 2장만을 읽는다면 생명나무가 의미하는 바를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생명나무가 의미하는 생명을 구체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4절은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라고 말하, 요한복음 15장 5절은 주 예수님이 포도나무라고 말합니다. 이 두절을 함께 놓으면 우리는 그리스도가 생명나무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체현이신 예수님은 생명나무이십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2장에 있는 생명나무는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우주 안에는 이 근원 외에 다른 나무 즉 다른 근원인 사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나무는 사망나무라고 불리지 않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고 불렸습니다. 생명나무는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뜻하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사망의 근원인 사탄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고 사탄은 사망의 근원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2장에서 우리는 두 나무로 상징된 두 근원을 볼 수 있습니다. 사망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시작되어 불못으로 끝이 납니다. 생명은 생명나무에서 시작되어 새 예루살렘으로 끝이 납니다. 구원받기 전에는 우리가 사망의 노선 안에 있었지만, 구원받은 후 우리는 생명의 노선 안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5:30
성경말씀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살전5:23下)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오늘의 만나  

여러분이 가난한 사람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여러분은 먼저 육체적인 필요를 채우기 위해 돈을 벌려고 할 것입니다. 결국 여러분은 좋은 집과 최신형 자동차까지도 갖게 될 것입니다. 이런 육체적인 필요가 채워진 후 여러분은 음악이나 운동 등 즐길 것들을 찾을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 혼의 정신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려는 것입니다. 비록 여러분이 모든 즐거움을 누릴지라도 밤에 혼자 있을 때, 깊은 곳에는 공허함이 느껴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직도 무언가를 필요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혼자서 말할 것입니다. '나는 모든 것을 가졌다. 더 바랄 것이 없다. 자동차, 좋은 집, 착한 아내, 아이들, 모든 즐거움이 내게 있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 존재의 깊은 곳에서는 무엇인가 아직도 필요한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존재 깊은 곳에서 요구하고 갈망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여러분의 영입니다. 여러분 존재의 일부인 여러분의 영이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것입니다. 사람은 세 부분(살전5:23)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물질적인 요구, 정신적인 요구, 영적인 요구의 세 부분의 요구가 있습니다. 인간 사회에서 사람들은 앞의 두 가지의 요구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만, 세 번째 요구에 대해서는 소홀히 합니다. 비록 여러분이 가장 좋은 물질들을 가지고 있고, 최고의 정신적인 만족이 있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에게는 여전히 무엇인가가 부족합니다. 여러분에게는 영적인 누림이 필요하고 하나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깊은 곳이 만족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깊은 곳이 만족된다면 자동차나 저택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영은 하나님을 담도록 지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으로 만족할 수 있습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5:25
성경말씀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요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경배하는 사람들은 영 안에서 진실함으로 경배해야 합니다. 

 오늘의 만나 

 하나님 담는 그릇인 사람이 하나님과 영적인 것들을 접촉하는 기관 즉 영을 갖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생기를 사람의 코에 불어 넣으셨습니다. 라디오 안에는 수신기가 있는데 이것이 파손되었을 때는 전파를 받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몸은 외적인 그릇이며, 우리 속에는 하나님과 접촉할 수 있는 수신기인 영이 있습니다. 이 영을 통해서 우리는 영적인 것들을 접촉할 수 있습니다. 칠판은 손으로 만지고, 향기는 코로 맡고, 색깔은 눈으로 봅니다. 또한 소리는 귀로 듣습니다. 이렇게 물질적인 모든 것들은 우리 육신의 감각으로 구체화될 수 있습니다. 우주에는 영적인 것들이 있습니다. 우주에는 하나님이 계시며 그분은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육신의 감각으로는 그분을 구체화할 수 없습니다. 육신의 방법으로 하나님을 구체화할 수 없다고 해서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느낄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대기 중에는 많은 라디오 전파가 있지만 수신기가 없이는 그것을 구체화 할 수 업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수신기인 사람의 영이 없이는 하나님을 구체화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영이 기능을 잘 발휘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느끼고 받아들일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을 하나님께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접촉하기 위해 우리의 영을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는 사람의 영(잠20:27)이라고 부르는 기관이 있습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5:20
성경말씀 

 (창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요1:12) 그분을 영접한 사람들,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위를 주셨다. 

 오늘의 만나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는데 왜 하나님을 나타낼 수 없습니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이 마치 사람의 사진과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가령 당신이 박형제의 사진을 찍어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면서 이것이 박형제라고 말했다고 합시다. 어떤 의미로는 그것이 박형제이기 때문에 당신은 옳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진은 실재의 박형제가 아니고 단지 사진 안에 있는 박형제입니다. 비록 그 사진이 박형제의 용모와 자태와 인물을 보여 주기는 하지만 박형제의 생명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박형제의 모습을 보여 줄 수는 있지만, 그를 나타낼 수는 없습니다. 그 사진이 박형제를 표현하는 유일한 길은 그의 생명을 담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지만, 그는 사진과 같이 하나님의 생명이 없이 하나님에 관한 여러 면들을 보여 줄 뿐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이 생명나무로 지시된 생명을 취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것에 있어 실패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다시 그 생명에 이르게 되었고, 영원한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생명을 얻는 길 외에 그분의 형상 안에서 하나님을 나타내고 그의 권위를 가지고 하나님을 대표할 다른 길이 없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많은 구절들을 통해서도 확증됩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5:15
성경말씀  

(창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롬16:20) 화평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여러분의 발아래 짓밟히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만나  

우리는 창세기 1장 26절의 다스린다는 말과 형상이라는 말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형상은 곧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그분을 표현하게 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그분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다스린다는 말은 왕국과 권위를 의미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졌고, 하나님을 대표해 다스리기 위하여 다스리는 권위를 부여받았습니다. 원초의 창조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나타내는 오직 한 가지 목적을 갖고 계셨으나, 사탄의 배역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이제 또 다른 목적 즉 그분의 원수를 처리하는 목적을 갖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그분은 이런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신을 나타내기 위해 사람을 그분의 형상대로 창조하셨고, 그분의 원수를 처리하기 위하여 사람에게 그분의 다스리는 권위를 부여해 준 것입니다. 우리는 가정생활에서 하나님을 나타내고, 사탄을 처리해야 합니다. 남편이 집에 돌아왔을 때 아내들이 하나님을 나타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내들은 뱀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남편도 또한 많은 때 뱀을 나타냅니다. 나는 이것을 경험에 의해 알고 있습니다. 많은 경우 나는 뱀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기도하러 들어갑니다. "오 주 예수님,  나를 용서하소서. 뱀을 묶으소서!" 당신의 아내를 다루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들의 탓이 아닙니다. 우리는 반드시 그 뒤에 있는 뱀을 다루어야 합니다. 우리가 더 많이 논쟁할수록 사탄이 지위를 얻게 됩니다. 사탄을 처리하는 한가지 길은 무릎 꿇고 주께 나아가며,기도하며,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주님이 뱀을 묶으시도록 구하는 것입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5:10
성경말씀  

(창1:26上)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고후4:7上) 우리는 이 보배를 질그릇 속에 담고 있습니다. 

 오늘의 만나  

우리에게는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있으며 그것은 그리스도를 따라서 만들어졌습니다. 분명히 그리스도는 최고의 생각과 최고의 의지와 최고의 감정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는 그렇게 실제적이지 않습니다. 손과 장갑의 예를 다시 생각해 봅시다. 사람의 손에는 하나의 엄지손가락과 네 개의 손가락이 있으며, 장갑에도 하나의 엄지손가락과 네 개의 손가락이 있습니다. 장갑의 엄지손가락도 엄지손가락이지만 진짜 손가락과 비교해보면 큰 차이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그리스도의 생각을 비교해 보십시오. 우리의 생각은 장갑의 빈 엄지손가락과 비슷합니다. 그리스도의 생각은 사람의 진짜 엄지손가락과 같습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지혜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지혜 역시 빈 엄지손가락과 같은 것이며, 그리스도의 지혜는 실재의 엄지손가락과 같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실재의 엄지손가락이 장갑의 엄지손가락 안으로 들어갈 것이며, 이때 두 엄지손가락은 하나가 될 것입니다. 하나는 모양 즉 표현이고, 다른 하나는 실재 즉 내용입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5:05
성경말씀  

(창1:26上)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고후4:7上) 우리는 이 보배를 질그릇 속에 담고 있습니다. 

 오늘의 만나  

우리에게는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있으며 그것은 그리스도를 따라서 만들어졌습니다. 분명히 그리스도는 최고의 생각과 최고의 의지와 최고의 감정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는 그렇게 실제적이지 않습니다. 손과 장갑의 예를 다시 생각해 봅시다. 사람의 손에는 하나의 엄지손가락과 네 개의 손가락이 있으며, 장갑에도 하나의 엄지손가락과 네 개의 손가락이 있습니다. 장갑의 엄지손가락도 엄지손가락이지만 진짜 손가락과 비교해보면 큰 차이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그리스도의 생각을 비교해 보십시오. 우리의 생각은 장갑의 빈 엄지손가락과 비슷합니다. 그리스도의 생각은 사람의 진짜 엄지손가락과 같습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지혜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지혜 역시 빈 엄지손가락과 같은 것이며, 그리스도의 지혜는 실재의 엄지손가락과 같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실재의 엄지손가락이 장갑의 엄지손가락 안으로 들어갈 것이며, 이때 두 엄지손가락은 하나가 될 것입니다. 하나는 모양 즉 표현이고, 다른 하나는 실재 즉 내용입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5:00
성경말씀  

(창1:26上)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롬9:21) 토기장이가 같은 진흙덩이로 하나는 귀하게 쓸 그릇을, 하나는 천하게 쓸 그릇을 만들 권위를 갖고 있지 않겠습니까? (롬9:23~24上) 하나님께서 또 영광에 이르도록 예비하신 긍휼의 그릇들에 대하여 그분의 영광의 풍성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어찌하겠습니까? 이 그릇은 우리...  
오늘의 만나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고 하나님의 형상은 곧 그리스도이므로 사람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따라서 창조되었습니다. 로마서 5장 14절은 아담은 오실 분의 예표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의 사진을 찍을 때 그 사진은 그 사람의 표상이요 예표입니다. 사진이 어떤 형상을 나타내는 것처럼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인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장갑을 예로 들어봅시다. 장갑은 손의 형상과 손의 형태를 따라서 만들어졌습니다. 손과 장갑은 다 손가락이 다섯입니다. 장갑은 손의 형상에 따라 만들어졌으며 그 목적은 어느 날 손이 장갑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것입니다. 손은 장갑을 채우고 장갑은 손을 나타냅니다. 왜 사람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졌을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의 목적이 그리스도께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서 사람을 통해 그분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9장 21절과 23절은 사람은 그릇 즉 담는 그릇으로 만들어졌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망치와 같은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을 담는 그릇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는 단지 그리스도를 담는 그릇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