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샬롬1 2018. 7. 5. 08:26

주의 회복 안에 있는 신성한 계시의 확산
우리는 주님이 우리에게 공급하신 영적인 풍성들을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나누어 주아야 한다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열심이 있고 주님을 사랑하지만 그들 속에는 공급이 결여 되어 있다
우리 가운데에는 신성한 계시가 부족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의 풍성도 부족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풍성들을 사람들에게 공급헤야 한다
그러나 당신이 사람들을 섬길 때 먼저 당신 자신이 자양분을 얻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당신이 누린 영양 공급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공급할 수 있다
교직에 있어본 사람은 누구나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당신이 가르칠 때 당신이 가르친 것들이 더욱 안에 조성 된다
비록 우리가 매주 집회를 하고 매일 성경을 읽고 추구하지만 우리 안에 조성된 것은 그리 많지 않고 우리가 읽은 것들은 금방 잊어 버린다
그러나 한가지 놀라운 것은 우리가 신성한 계시의 풍성들을 사람들에게 전파할 때 우리가 전한 것들이 더욱 우리 안에 조성된다는 것이다
당신이 한 번 전하면 그만큼 더해지고 열 번 전하면 또 그만큼 더해진다
우리는 이 형제님에게서 이러한 본을 본다
이 형제님은 주님으로부터 위임을 밥을 때 끊임없이 그것을 사람들애게 전했다
그는 집회에서 메시지를 정식으로 전할 때뿐 아니라 또한 각종 집회를 붙잡아서 여러 부류의 사람들에게 전한다
때로 형제들이 어떤 질문을 가지고 그에게 갔을 때 그는 그 질문에 답하지 않고 오히려 기회를 붙잡아 그가 얻은 신성한 계시를 다시 한 번 전해 주었다
우리 또한 영적인 풍성들을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전해 주는 은혜 받는 비결을 배워야 한다
우리가 이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줄 때 우리 자신이 더욱 그것으로 자양분을 얻고 신성한 계시로 조성된다
우리는 특별히 하나님의 신약 경륜을 이행하는 면에서 우리 자신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의 신약 경륜을 알고 있고 그것으로 조성되었는가?
교회를 섬길 때 우리 마음 속에서 무엇을 생각하는가?
우리는 각성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신약에 있는 하늘에 속한 이상을 우리는 얼마나 보았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성육신과 그분의 이 땅에서의 인간 생활과 그분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에 대해 분명히 보았는가?
또한 그분이 생명 주는 영이 되어 우리 안에 들어와 우리와 연결되고 연합됨으로써 하나님과 사람이 섞이는 생활에 대해 분명히 보았는가?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본 이상을 이행하며 이러한 신성한 계시를 살아낼 것인가?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신약 경륜의 부담으로 충만되도록 주님 앞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신약 경륜의 풍성으로 충만되어 적극적이고 진취적으로 하나님의 경륜의 부담을 이행해야 한다
주의 회복 안에서 주님은 고봉의 진리와 신성한 계시들을 앞선 형제님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제시해 주셨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듣고 보고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할 뿐 아니라 이 풍성들을 확산할 부담을 빋아야 한다
이러한 확산의 가장 좋은 길은 문서를 통한 것이다
동시에 주님은 방송 매체와 인터넷 등의 첨단 과학 기술을 사용하여 주의 회복 안에 있는 신성한 계시를 공급하도록 우리를 이끄셨다
우리가 이것을 위하여 많이 기도하고 또한 이러한 확산이 그리스도의 몸을 확장시키고 건축하며 최종적으로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되게 하시기를 바란다

주의 회복 안에 있는 신성한 계시로 조성됨과 이를 확산함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5. 05:00

찬송가 551 - Lord, I just love You - 지방교회들 찬송가

찬송가 551 - Lord, I just love You - 지방교회들 찬송가


Lord, I just love You. And there’s no one like You. In the whole universe I have no other one like You. Lord Jesus, I love You.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5. 05:00

생명이만나 332 - 주님의 송아지가 죽었소 - 지방교회들 이만나

생명이만나 332 - 주님의 송아지가 죽었소 - 지방교회들 이만나

(마6:19) 여러분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십시오. 거기는 좀이 먹고 녹이 슬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훔쳐 갑니다.

어느 날 한 농부가 기쁨에 차서 아내와 가족에게 가장 좋은 암소가 새끼 두 마리를 낳았다는 소식을 알렸습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5. 05:00

  


"역사적 성경적 그리스도인 전통따라"

지방교회, 바른이해와 교제희망

우리의 신앙과 실행에 대해 존경하는 목회자신문 독자 분들과 교제할 수 있도록 귀한 지면을 할애해 주신 목회자 신문사측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이글은 예장통합 교단과의 오해로 인한 간격을 좁히는 차원에서 통합교단 제 77차 총회가 지방교회에 대해 결의하신 내용에 대한 해명에 초점을 맞추었다. 

구체적인 진리항목들을 다루기에 앞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로 대표되는 (지방)교회 신앙의 특색을 먼저 밝히고자 한다. (지방)교회는 (플리머스 형제회의) <근본주의 신앙>과 <생명의 체험을 강조하는 흐름>의 교집합이라고 특징지을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지방교회 성도들은 근본주의 5대 교리인 성경의 무오성, 동정녀 탄생, 대속의 죽음, 육신을 입은 부활, 육체적 재림(또는 기적의 인정)을 굳게 믿는다. 또한 이러한 신앙의 토대 위에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생명으로 체험함(골1:27)을 추구한다. 

따라서 일부 성경해석상 이견이나 용어표현상 이질적인 면이 다소 있을 수 있으나, 핵심진리(유다서, 3절)에 관한 한 역사적 성경적 그리스도인의 전통 위에 서 있다 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다. 

지면의 제한상 77차 총회 결의를 통해 통합교단이 지적한 각 항목들에 대해서 핵심 요점만 간략하게 해명을 드리고자 한다. 

  1. 신론에 대하여 

1) 신인합일주의를 가르친다는 지적 - 우리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요15:5), '맏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려함이니라'(롬8:29) '우리가 그와 같은 줄을 아는 것은'(요일3:2)라는 말씀을 믿는다. 그러나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주와 똑같이 될 수는 없다. 사람인 우리는 어떤 경우든 결코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나 통합측 지적처럼 일부 설명에 본의 아니게 '표현상' 오해의 여지가 없지 않다. 

2) 양태론을 가르친다는 지적 -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으시는 세 인격, 한영>이 지방교회 삼위일체이다. 이에 대해 통합측 토론자는 <세 인격, 세영들>을 기준삼아 양태론 이라고 함으로 양측에 이견이 생겼다. '세 인격이 하나로 발전된 것'이란 표현은 출처로 제시된 책 110쪽에 발견되지 않는다. 소위 '수박비유'는 세 위격이 동시존재하심을 전제로 한 설명임으로 양태론이 아니다. 그러나 읽기에 따라 오해의 여지는 있다. 

  2. 기독론에 대하여 

예수님의 인성에 변화가 있다고 한다는 지적- 예수님은 참 하나님, 참 사람이시다. 그러나 그 육신은 부활을 기점으로 <썩을 몸>에서 <썩지 않을 몸>-영광의 몸(빌3:21)-으로 바뀌셨다고 성경은 말한다(고전15:42, 44). 그러나 이것을 인성의 변질로 보는 신학자는 없다. 위트니스 리는 그것을 설명한 것이다. 

  3. 인간론에 대하여 

1) 삼분설을 가르친다는 지적- 지방교회측이 삼분설을 지지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삼분설, 이분설은 상대적 관점일뿐 이단성 여부를 가릴 진리항목은 아니라고 본다.

2) 영이 타락하지 않았다며 전인적 타락을 부인한다는 지적 - 이 점은 통합교단 토론자가 토론과정에서 그런 사실이 없었다고 고백함으로 잘 해결되었다(교회와신앙, 97년 8월호 164쪽 참조). 지방교회측은 전인적 타락을 굳게 믿는다. 

  4. 교회론에 대하여 

1) 기독교를 바벨론 음녀라고 한다는 지적 - 위트니스 리는 계시록 주석 과정에서 '큰 바벨론'(계17:5)을 '로마천주교'로 이해했다. 이것은 근본주의 성경교사들 대다수의 관점을 따른 것이다. 그러나 계시록강해는 난해한 문제임으로 얼마든지 다른 해석적 관점이 가능하다. 위트니스 리가 이런 주석을 통해 다른 기독교인들을 무시하거나 모욕하려는 의도가 없었으며, 혹시 오해가 있었다면 재차 양해를 구한다. 

2) 기성교회의 목사와 예배를 부정한다는 지적 - 루터도 주장한 바 있는 <계급적인 의미의 성직자-평신도 제도>를 반대한다는 말이 본의 아니게 와전된 것 같다. 하나님의 양무리에게는 당연히 목자들이 필요하다. 지방교회측도 성도를 목양하는 풀타임 사역자들이 있다. 또한 성경적인 예배를 부인하지 않는다. 

3) 침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삼는다는 지적- 구원은 전적으로 믿음으로 받는다. 그러나 영원한 멸망이 아닌 <이 패역한 세대>로부터 구원을 받으라고 권하고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이 침례를 받은 기록이 성경에 있다(행2:40-41). 이처럼 <세상으로부터의 분별> 내지는 믿음의 외적인 간증으로서의 침례를 말한 것이 다소 오해가 된 것 같다. 믿음에서 나오지 않은 침례는 아무 의미가 없다. 

4) 주님이름 부름이 유일한 성령충만 방법이라고 한다는 지적- 사실이 아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 부요함을 체험한다고 성경은 말한다(롬10:12). 그러나 지방교회 성도 누구도 이것을 유일한 성령충만 방법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풀러신학교측 총장과 신학대학장이 지방교회 인도자들과 2년간 허심탄회한 대화와 검증 끝에, "이단이 아니고 역사적 성경적인 그리스도인들"로 지방교회를 바로 이해하게 되었다. 통합교단과도 더 많은 교제를 통해 동일한 이해에 이르게 되기를 기도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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