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번 주 중에 어느 전도사 한분이 워치만니, 위트니스리 책을 너무 좋아하고 그쪽 교회 분들과 성경공부를 하기 원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분을 만나 뵈었습니다.
50대 중후반은 되어 보이는 여자 전도사님인데 지금은 남편과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미국 교회를 나가고 했습니다.
90년 대 초반에 신학교를 졸업하고 조금 사역을 했었답니다.
워치만니 형제님의 ‘열두 광주리 가득히’를 보고 새벽에 가서 설교를 하면 성도들이 말씀이 너무 좋고 은혜 많이 받았다고 하곤 했다며 옛날을 회상했습니다.
니 형제님 책에서 은사와 능력은 장난감이라는 말을 읽었지만 그 당시는 수긍이 안 되었었는데...세월이 흐르고 나니 지금은 말이 이해가 된다고...병고치는 기도를 온 힘을 다하여 해주고 병이 나아도 정작 자신의 생명의 성숙에는 별 도움이 안 되더라고...
요즘들어 갈수록 환경이 몰려오고 힘에 부쳐서 최근에는 관상기도를 해야 할 것인지 생각 중이었답니다.
워치만니도 마담기용이나 속생명파 사람들을 언급한 부분이 있던데 관상기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기도의 본질은 우리가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그 안에 머무는 것이며...그냥 마음과 생각을 비우고 멍하니 있으면 그 안에 마귀와 귀신이 역사할 수 있다.
워치만니는 그런 것을 경계했다.. 기도할 때 말씀이나 찬송가사를 내용으로 기도를 시작하고 그 내용을 통해 하나님과의 연합을 체험하고 유지함이 중요하다는 말을 해 주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서 성경공부를 하기로 하고 신약성경 회복역을 소개하자 관주가 너무 좋다고...그 자리에서 즉시 한권을 구입했습니다
2.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서 좋은 환경 기쁜 환경만 있는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 환경이 오면 그 환경을 헤쳐 나갈 생각을 주로 하기 마련인데...
만일 그것뿐이라면 하나를 해결하면 또 다른 환경이 마치파도처럼 밀려오게 되어 있습니다.
저희 가정도 최근에 어떤 환경을 통과하면서 다시금 확증한 것이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오는 환경은 반드시 그 뒤에 주님의 손길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은 우리의 옛사람을 허물고 우리 안에 새사람의 인격을 확대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을 알 때 우리는 환경이 속히 해결되기만을 기도하지 않고 이 환경을 통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이루시라고 기도하고 자신의 존재를 그분을 향하여 열어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속 존재가 그분의 다루시는 손길을 통해 폭로되고 잘려지며 깊은 죽음을 통과한 후 한 단계 더 전진된 부활 생명을 누리게 될때...큰 산처럼 버티고 있던 환경은 어느새 봄눈 녹듯이 사라지고 없어지거나..설사 밖의 환경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어도 그것이 더 이상 아무 문제가 안 되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3. 그분은 창세 전에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없는 존재로 만드사 아들의 영광이 우릴 통해 나타나게 하실 것을 예정하셨습니다 (엡1:4-5). 우리가 당하는 이런 저런 환경들은 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협력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경이 지나가고 또 해결되기를 기도할 수 있으되, 더욱 간절히 그분의 말씀 앞에 나아가 어느 말씀이든 그 말씀과 하나되고 그 말씀 안에서 나오는 씻는 물로 우리 존재를 씻는 일, 또는 그 말씀 안에서 나오는 환한 빛으로 우리의 존재가 폭로되고 처리되는 일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다음 주부터 그 전도사님을 만나면 함께 말씀 앞으로 가서 거룩케 하는 물과 영광의 빛에 의지하여 우리의 옛사람과 자아가 죽음에 넘겨지고 속 존재인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풍성을 더 깊이 맛보는 일을 할까 합니다.
빌2:15~16 그러면 여러분은 나무랄 것이 없고 순결하여 구부러지고 비뚤어진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들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세대 가운데서 세상의 발광체들로 빛나서 생명의 말씀을 밝히십시오. 그래서 내가 헛되이 달리지 않았고 헛되이 수고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그리스도의 날에 자랑하도록 해 주십시오.
바울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빛들로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생명과 신성한 본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빛들’의 헬라어는 태양빛을 반사하는 발광체들을 가리킵니다.
믿는이들은 그러한 발광체들로서 세상에서 빛을 발합니다.
그들은 자신들 속에 어떤 빛도 갖고 있지 않지만 그리스도의 빛을 반사할 수 있는 하늘에 속한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생명의 말씀을 밝혀 그분을 반사하는 달인 교회와 행성들인 믿는이들과 함께하는 태양이십니다.
또한 그들은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데 이 말씀은 죽은 문자들에 속한 교리와 다릅니다.
생명의 말씀은 하나님의 살아 있는 호흡이요 생명을 주시는 영이십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본이신 주 예수께서 계시고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하나님의 생명과 신성한 본성이 있을 뿐 아니라 또한 그리스도의 신성한 빛을 반사할 자격이 있는 발광체들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밝히고 제시할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은,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말한다.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라는 절을 보고서 우리는 말씀과 하나님이 둘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는 절은 말씀과 하나님이 하나임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말씀이 하나님이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말씀은 하나인가, 둘인가?
둘 다이다.
이것은 비밀이다.
고린도후서 3장 17절은 “주는 영이시니”라고 말한다.
여기서 주와 영은 하나다.
왜냐하면 주는 영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은 구절에서 ‘주의 영’을 말한다.
이것은 주와 영이 둘임을 가리킨다.
주와 영은 하나인가, 둘인가?
이것은 비밀이다.
히브리서 1장 8절과 9절에서 어떻게 아들이 하나님이라 불리고 하나님이 그의 하나님으로 언급되는지를 주의해 보라.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며 ...’ 그러므로 하나님 곧 너의 하나님이 네게 즐거움의 기름을 부어”
여러분은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여러분은 ‘하나님이여, 너의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것 역시 비밀이다.
마지막으로 계시록 1장 4절과 5절, 5장 6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한 영(엡 4:4)이 ‘일곱 영’으로 불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 역시 또 하나의 비밀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우리는 순수한 말씀을 단순하게 취하기를 배워야 한다.
우리는 성경이 우리 삼일 하나님께 관하여 말씀하시는 바를 알고 그것을 믿는다.
우리는 우리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순수한 말씀에 따라 진리를 볼 수 있게 해 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한다.
거듭 말하거니와 이 삼위일체에 관한 논쟁과 토론은 끝이 없다.
왜냐하면 삼위일체는 비밀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삼위일체를 완전하고도 충분하게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삼일 하나님은 우리의 제한된 지력에 따라 하나의 교리적 문제로는 완전히 이해되실 수 없다.
삼일 하나님은 우리의 체험과 누림을 위한 것이다.
삼일이신 하나님은 그분의 경륜, 즉 우리의 생명과 우리의 모든 것이 되도록 하나님 자신을 우리 안으로 분배하시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많은 시간을 들여 아버지는 아들 안에 계시고, 아들은 지금 생명주는 영으로 우리의 누림을 위하여, 우리의 생명과 모든 것이 되기 위하여 우리 영 안에 내주하심을 지적하는 이유이다.
만일 이것이 체험의 문제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그것에 관해 말하는 것을 그다지 관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공격하는 사람들로 인해 우리가 체험한 바를 사람들에게 분명히 해야 했다.
오스왈드 샌더스(J. Oswald Sanders)는 ‘영적 성장’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윌리엄 바클레이는 이렇게 말했다. ‘바울은 부활한 주님과 성령을 하나로 보는 것 같다. 우리는 바울이 신학을 쓴 것이 아니라 체험을 적고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성령의 역사와 부활하신 주님의 역사가 하나이며 동일하다는 것은 그리스도인 생활의 체험이다. 우리가 얻는 힘과 빛과 인도는 성령과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동일하게 온다. 우리가 이것을 체험하고 있는 한,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는가는 문제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