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arryking 2018. 11. 28. 00:15

지방교회 동영상 생명이만나 32회 - 

영원한 생명을 붙잡으십시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11. 28. 00:00

지방교회 찬송가 65장 - Glorious, Mighty Name of Jesus, 영어찬송 73장

1. Glorious, mighty Name of Jesus, Into Thy dear Name I flee;

“Set aloft,” I praise and worship, For Thy Name is victory!

2. Blessed Jesus! Mighty Savior! In Thy Name is all I need;

Just to breathe the Name of Jesus, Is to drink of Life indeed.

3. Glorious, mighty Name of Jesus, Heav’n and earth its pow’r proclaim;

But forgiven sinners only, Know the balm of Jesus’ Name.

4. Jesus! Jesus! Name most precious, Balm in pain or mighty sword;

In Thy Name, we live and conquer, Blessed, glorious, coming Lord.


1. 영광스런 능력의 이름 그 속으로 피하네 높이 올려 찬양하세 승리의 이름 예수

2. 축복의 주 능력의 구주 내 모든 필요채워 주의 이름 호흡함이 참 생명을 마심일세

3. 영광스런 능력의 이름 천지가 다 선포하네 죄 사함을 받은 자만이 이름 향기 알 수 있네

4. 예수 예수 소중한 이름 고통 속의 향기요 그 이름은 능력의 칼 이로 이기며 사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11. 28. 00:00

지방교회 이만나 - 하나님의 구원의 두 방면 - 생명이만나 413번

눅15:22~23 그러나 아버지는 그의 노예들에게 ‘어서 그 제일 좋은 겉옷을 내어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겨라. 또 살진 송아지를 끌어내다 잡아라. 우리가 먹고 즐거워하자.

‘옷’은 참회한 죄인을 덮어서 하나님을 만족시키는 ‘의’이신 아들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 제일 좋은 옷 곧 첫 번째 옷이 돌아온 탕자의 누더기를 대치했습니다. 

‘반지’는 하나님께서 받으신 믿는이에게 그분께서 주시는 인(印)이며 인치시는 성령을 상징합니다. 

‘신’은 믿는이들을 더러운 세상에서 분별시키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상징합니다. 

‘살진 송아지’는 믿는이들의 누림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풍성하신 그리스도를 표징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에는 두 방면이 있는데 그것은 제일 좋은 옷으로 표징된 외적이고 객관적인 방면과, 살진 송아지로 표징된 내적이고 주관적인 방면입니다. 

우리의 의이신 그리스도는 외적으로 우리의 구원이시고, 우리의 누림을 위한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는 내적으로 우리의 구원이십니다. 

제일 좋은 옷은 탕자가 아버지의 요구 조건들을 충족시켜 아버지를 만족하게 할 수 있도록 하였고, 살진 송아지는 아들의 배고픔을 채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즐거워할 수 있었습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11. 28. 00:00

지방교회 누림글 - 찬양의 말을 배움 - 지체들의 누림글 102번

우리는 찬양하기를 배우되 찬양의 말을 말해내고 입을 열어 찬양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찬양할 생각만을 가지라는 것이 아니라, 소리 내어 찬양의 말을 해내라는 것입니다. 

굳게 서서 곤란과 사탄에 맞서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주님, 주님을 찬양합니라"라고 말해야 합니다. 

느낌이 없다면 느낌이 있을 때까지 말하고, 느낌이 적으면 많을 때까지 말하며, 적은 믿음이라면 믿음이 충만할 때까지 말해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영에 충만하다면 우리는 능히 찬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찬양할 때 악한 자는 도망할 것입니다. 일이 성취된 후에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믿을 때 찬양하는 것입니다. 

대적이 달아난 후에야 노래할 것이 아니라 노래함으로써 악한 자를 쫓아내야 합니다. 

믿고 찬양한 다음 승리를 확증하게 될 것입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11. 27. 00:55

지방교회 찬송가 371장 - 오 주님 지금 그 영일세

1. 오 주님 지금 그 영일세 내 생명 되어 살게 해 그 풍성 내게 주시니 아 거룩한 영광일세

2. 오 주님 지금 그 영일세 그 능력 나를 해방해 생명률 안에 살 때에 나 자유롭고 강해져

3. 오 주님 지금 그 영일세 날 변케 하며 밝게 해 날 주의 형상 만들어 주 영광 나타내게 해

4. 오 주님 지금 그 영일세 내 영 안에서 거하네 두 영이 상합하여서 주 내 영 통해 행동해

5. 주여 날 훈련하소서 내 영의 움직임따라 주 영 안에서 살면서 늘 실제 나타내도록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11. 27. 00:50

지방교회 이만나 - 은혜의 확대를 위한 고난 - 생명이만나 412번

고후12:9 그러나 주님은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은혜가 너에게 충분하다. 왜냐하면 나의 능력은 사람이 약할 때에 온전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에게 장막으로 드리워지도록 오히려 나의 약한 것을 더더욱 기쁘게 자랑하겠습니다.

‘은혜’는 우리가 부활 안에 살 수 있도록 생명주는 영이 되셔서 부활 안에서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을 우리 안으로 가져오시어 우리의 생명과 생명 공급이 되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는 우리에게 생명과 모든 것 되신 삼일 하나님입니다. 

죄인 중의 괴수인 다소의 사울이 가장 앞선 사도가 되어 모든 사도들보다 더 많이 수고한 것은 바로 이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이 은혜로 말미암은 그의 사역과 생활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부인할 수 없는 간증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확대되게 하려면 우리의 고난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온전한 능력을 보여 주려면 우리의 약함도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주님의 능력이 자기 위에 장막을 치도록 자기의 약함을 가장 기쁘게 자랑하곤 했습니다. 

은혜는 공급이고, 능력은 은혜의 힘 곧 재능입니다. 

둘 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로서, 그분은 우리의 누림을 위하여 우리 안에 거하시는 생명주는 영이십니다. 

아멘


posted by rarryking 2018. 11. 27. 00:21

지방교회 동영상 생명이만나 31회-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




posted by 햅시바 2018. 11. 26. 09:35

말씀

6:66 그때부터 제자들중 많은 사람이 떠나서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67 그러자 예수님께서 열두제자에게 ``여러분도 떠나고 싶습니까?`` 라고 하시니

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 우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69 우리는 주님께서 하나님의 거룩한 분이시라는 것을 믿었고, 또한 알게 되었습니다.``

70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내가 여러분 열둘을 선택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중에 하나는 마귀입니다.``

71 이것은 예수님께서 가룟 사람 시몬의 아들 유다를 두고 말씀하신것인데,그는 열둘 중 하나로 예수님을 배반할 자였다.

누림

예수님은 이미 가룟 유다가 자기를 배반할 것임을 알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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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샬롬1 2018. 11. 26. 09:27

요일 1:3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전해 주는 것은 여러분도 우리와 함께 교통을 갖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통은 아버지와 또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입니다.

계 22:1  또 그 천사는 나에게 수정처럼 빛나는 생명의 강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 강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에서 흘러나와 그 성의 길 가운데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오순절날에 시작되어 수 세대에 걸쳐 바로 이 순간까지 흘러온 이 신성한 생명의 흐름은 단 하나이다. 이것이 가는 곳마다, 이것이 흐르는 곳마다 많은 흐름들이 아니라 오직 하나의 흐름만이 있다. 여러분이 사도행전을 읽어 본다면, 하나의 흐름, 하나의 조류만이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이 흐름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안디옥으로 흘러갔고, 또한 안디옥에서 아시아로 흘러갔다. 그리고 어느 날 주님은 이 흐름이 유럽으로, 마케도니아로 향하기를 원하셨는데, 이 흐름 안에서 일하고 있던 사도 바울은 그 점에 관해 분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그는 이 흐름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나아가려고 한다는 것에 대해 분명해져서 그도 이 흐름과 함께 가야 했다. 이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이다. 마케도니아에서 이 흐름은 고린도로, 로마로, 스페인으로, 유럽 각 지역으로 갔다.

역사는 이 흐름이 유럽에서 서방, 곧 미국으로 흘러갔고, 서방에서 동양으로 그리고 남반구로 흘러갔음을 말해 준다. 교회 역사를 읽을 때, 우리는 이 흐름이 결코 멈춘 적이 없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 흐름이 가는 곳마다, 단 하나의 흐름만이 있었음을 볼 수 있다. … 오직 하나의 흐름이 있으며, 여러분은 이 흐름 안에 자신을 지켜야 한다.(위트니스 리 전집, 1963년, 1권, 신성한 흐름, 253-25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