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울타리의 시'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8.06.25 산책 1
  2. 2018.06.15 모란
  3. 2018.05.28 청동 여자
  4. 2018.05.18 깊은 우물 속에서 /생을타리 2
  5. 2018.05.08 매혹(魅惑) 3
  6. 2018.04.30 정밀 4
  7. 2018.04.28 흐린 하늘 2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8. 6. 25. 10:32

 

산 책

 

 

이 산에 들어오시려구요 그러면 기슭 어디 넘어져 있는

나무 등걸을 찾아 보셔요 잎사귀 시퍼런 나무들 사이

며칠 전 폭우에 누워버린 등걸 말이지요 그새 둥치 그

늘에 송이버섯을 나란히 매달았어요 향긋한 속살에 벌레

들이 코를 묻고 거기다 알을 까놓았군요 스무고개인 양

가지들을 타고 넘는 개미들, 갈 길 멀어 부지런한 해도

쉬었다 가지요 죽어서 더 풍부해진 삶을 보러 오세요

산 것들로 가득 찬 숲 속의 오후 말라가는 나무 등걸에

걸터 앉으면 놓아버린 목숨도 이렇게 정답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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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8. 6. 15. 05:48

 

 

모란

 

 

 

모란에 갔다

짐승 태우는 냄새 같기도 하고

살점 말리는 바람 내음 같은 것이 흘러오는

모란에 가서 누웠다

희게 흐르는 물베개를 베고

습지 아래로 연뿌리 숙성하는 소리를 들을 때

벽 너머 눈썹 검은 청년은 알몸으로 목을 매었다

빈 방엔 엎질러진 물잔, 물에 젖은 유서는

백년 나무로 환원되고 있었다

훠이훠이 여기서는 서로가 벽을 뚫고 지나가려한다

서로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나온다

어른이 아이가 되기도 하고

여자가 남자가 되기도 한다

한낮 같은 세상을 툭 꺼버리지 말고

그냥 들고 나지 그랬니

무덤들 사이에 아이처럼 누워

어른임을 견딜 때,

궁창의 푸른 갈비뼈 틈에서 솟는 악기 소리

먹먹한 귓속에 신성을 쏟아붓는다

슬픔이 밀창을 열고

개다리 소반에 만산홍엽을 내 오는 곳

모란에 가서 잤다

오색등 그늘 밑에서 잤다

내력들이 참 많이 지나가는 곳에서

사람의 아들, 그의 불수의근을 베고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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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8. 5. 28. 14:30

청동 여자

 

 

그 도시의 중심에 가면 표지석이 있다

수국꽃 아래에서 여자는 길을 가르쳐 주었다

서고에서 갓 나온듯 묵은 종이 냄새가 나는 여자였다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다가 잃어버린 언어 몇 개를

찾아다니는 중이라고,

넣어둔지가 언제였는지 모른다고 했다

어디서 샀는지도 모르지만 잃어버린 것만은 확실하다고 했다

향기가 우물처럼 고여 있는 꽃나무 아래

등받이 없는 의자를 가리키며 앉았다 가라고 했다

그녀는 내 트렁크 속에

자신이 잃어버린 언어가 있는지 아주 긍금해 했다

미래에 올 언어 같다고도 했다

소각장 가는 길을 내게 묻기도 했다

누가 다 끌어 모아다가 태워버린 것 같다고,

재가 되었어도 뒤져봐야 한다고 했다

그 도시는 길이 온통 울퉁불퉁해서 낮과 밤, 월요일과 화요일,

일상적인 시간들이 오가다가 자주 넘어지곤 한다고,

동전이 주머니에서 튀어나갈 때, 그 언어들도 튀어나갔나 보다고 했다

여자는 실은 죽어가고 있었고

잃어버린 그 언어들이 자기를 회생시키는 묘약이라고 믿는 눈치였다

내가 다시 길을 물으려는데 바람에 주소를 쓴 종이가 날아가 버렸다.

나야말로 이 말씀 몇 개를 찾지 않으면

오십년 만에 도착한 이 도시에서

오늘 밤 당장 어디 묵어야 하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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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우물 속에서

 

물이 말라버린 우물 아래로

내려가 보았다

뻘을 뒤집어쓴 자갈들

자갈들의 상형문자

자갈들은 물 위에

'텅'하고 떨어지던 탄력을 기억한다

툭ㅡ 풀어지던 하강을 기억한다

요즘은 아무도 그렇게 아무의 가슴에 내려서지 않는다

그랬었다는 이끼같은 기억들

여름이면 석청이 녹아흐르는 바위 사이로

들판을 건너 밀냄새 풍기는 처녀들이 왔

골풀과 편암을 밟고 온 처녀들의 발바닥이 뜨거웠다

처녀들의 발등에 쏟아지던 물의 기쁨, 덩달아 뛰던 청개구리

서늘하게 일어서던 몸서리를 기억한다

마른 우물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갈라진 우물 벽 사이에

푸르게 차오르는 기억이 싱싱했

찰랑찰랑했다

우물은 둥근 하늘을 길어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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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魅惑)

 

 

 

보라는 등 뒤에 숨는 울먹한 색이다

드러나기를 두려워한다

창고 옆 수국꽃 그늘 아래

묻어 둔 편지처럼 수줍다

흔들리는 등꽃 아래 누워 자던

너의 흰 이마에 드리우던 반그늘

일몰 무렵 긴 열차

차창 너머 산 어스름

한때 이런 처연한 빛을 보면

구름 위를 걷듯 세상이 막연해지곤 했다

사랑도 손에 쥐어져야 느껴지는 이쯤에도

보라는 여전히 매혹이다 언제 보아도

뇌수가 향방 없이 뭉클 쏟아지려 한다

오래 기다린 그대 등을 얼핏 보는 것 같다

더 기다려도 될 것 같다

한번만...조금만...이라고 되뇌다가

언제든 떠나도 될 것 같은,

돌아와도 떠난 흔적이 없는 나라,

보라국(國) 보라 백성들

잘 섞여진 기쁨과 슬픔의 빛

종아리 쯤 닿는 맑은 시냇물 속을 걷듯

붙잡지만 또 잘 보내주는 인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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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8. 4. 30. 05:22

 

 

 

정밀(靜謐)

 

생울타리

 

 

 

호두나무 큰 키 그늘이 넓다

 햇빛 쪽으로 그늘 찍어나르는 왜콩풍뎅이

돌아오는 발끝이 환하다

빛과 그늘이 서로 들락거려

나무는 몸 속으로 길이 생긴다

불개미들이 줄지어 드나들며

나무의 부드러운 살을 물었다 놓는다

치어꼬리 같은 잎에 힘이 주어진다 흠칫 뒤척인다

맥문동 범부채 닭의장풀 우거지는 소리 아래

초록에 눈 먼 어린 암사마귀 제 수컷을 한 입 깨어 문다

먼 들판 기지개 켜는 소리

산호두나무 그늘이 깊어 간다

노란 꽃가루 묻힌 바람이

쉬엄쉬엄 십리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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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린 하늘

 

               생 울 타 리

 

 

 

흐린 하늘은

많은 씨방을 가졌다

물알갱이로 된 씨방들은

가끔 제 부피를 견디지 못한다

기류가 일렁일 때

얇아질대로 얇아진 껍질이

터지곤 한다

산화하는 물방울들

물의 씨앗들

텀벙

물상 안으로 튀며 뛰어든다

사물들은 가슴께가 간지럽다

윤곽들 흐려지며

경계가 무너지며

흐린 하늘이 스며

사물들 모두 물의 씨앗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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