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6. 19:45

성경말씀

(골3:15) 그리스도의 화평이 여러분의 마음에서 판정을 내리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이 한 몸 안에 부름을 받은 것도 이 화평을 위한 것입니다. 또 여러분은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오늘의 만나

그리스도의 화평은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이 화평으로 그리스도는 두 민족 곧 유대인과 이방인을 한 새사람으로 만드셨으며 이 화평은 복음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몸의 생활을 위해서는 마땅히 이 화평이 우리 마음을 중재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한 몸 안에 있는 이 평강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합당한 몸의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과의 관계에서 그리스도의 화평이 우리 마음 안에서 모든 일들을 중재하고 조정하고 결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화평으로 우리 마음을 중재하게 할 뿐 아니라 또한 주님께 대한 감사가 넘쳐야 합니다. 몸의 생활 안에서 우리 마음은 항상 지체들에 대해서는 화평 가운데 있어야 하고 주님께 대해서는 감사가 넘쳐야 합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6. 19:25

성경말씀

(빌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어떤 일에서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항상 그러하였듯이 지금도 매사에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께서 확대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만나

 주님을 믿은 후 우리에게는 또 다른 죄가 있습니다. 많은 형제자매들은 이 점에 대해 민감하지 못합니다. 이 또 다른 죄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살지 않는 죄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살지 않고 그리스도에 의해 살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죄입니다. 나는 잘못된 인도를 갖거나 틀린 말을 하거나 잘못된 태도를 취했을 때마다 나의 죄들을 자백하곤 합니다. 마치 손을 씻듯이 내 죄들을 매일 자백하곤 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내게 “너는 이 죄, 즉 네가 그리스도를 살지 않은 죄를 자백해 본 적이 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나는 주님께 대답했습니다. “주 예수님, 저를 용서하소서. 저는 이 죄를 주님께 자백한 적이 없습니다. 잘못 말한 것이나 그릇된 태도는 자백해왔지만 그리스도를 살지 않은 죄를 자백해 본 적이 없습니다. 오 주여, 나는 당신을 살아 나타내고 있지 못합니다. 오 주여! 나는 당신을 살고 있지 않습니다. 오 주여, 용서하소서!” 그날부터 나는 주님 앞에서 이 죄를 철저히 자백하곤 했습니다. 그때 내가 발견한 것은 이 죄를 매일 자백하는 것에는 결코 끝이 없다는 점입니다.
출처 : 삶을 가꿔 주는 선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6. 19:20

성경말씀

(막6:30) 사도들이 예수님께 모여 자기들이 행하고 가르친 모든 것을 보고하니,

오늘의 만나

스펄전(Spergeon)은 어느 날 전도를 마치고 한 친구와 함께 말을 타고 가다가 매우 기뻐하며 갑자기 말에서 내렸습니다. 그리고는 친구에게도 말에서 내리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갑작스런 행동을 의아해하는 친구에게 스펄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환희를 주셨으므로 지금 이 순간 하나님께 감사드립시다.” 두 사람은 무릎을 꿇고 길옆에서 기도를 했습니다. 우리에게 환희는 자주 없지만 즐거움이 있을 때마다 주님께 고해야 합니다. 우리는 즐거울 때 주를 기억하고 그 즐거움을 주님과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너무 기뻐한다 하여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정감을 이해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즐거움도 주님께 보고하기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출처 : 삶을 가꿔 주는 선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6. 19:15

성경말씀

(학1:9) 이것이 무슨 연고뇨 내 집은 황무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에 빨랐음이니라

오늘의 만나

학개서 1장 9절의 ‘빨랐음이라’는 단어는 백성들이 자신의 집을 돌보는 데에 바빴음을 가리킵니다. 오늘날 몇몇 성도들은 집회에 참석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자신의 집을 바쁘게 돌보고 있습니다. 이것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우주 안에 중립이라는 것은 결코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절대적이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나의 요점은 우리가 주님의 권익을 위해 얼마의 시간을 절약하기를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죄인들이 우리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는지요! 오늘 우리는 변명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께서 오실 때 그분께 어떻게 대답할 것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구원받지 못한 많은 친척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구원받지 못한 것은 우리의 잘못이지 그들의 잘못이 아닐 수 있습니다. 만일 그러하다면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와 회계(會計)하실 때(마25:19), 그분은 분명히 우리를 책망하실 것입니다.
출처 : 삶을 가꿔 주는 선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6. 19:10

성경말씀

(전1:2)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오늘의 만나

 전도서는 솔로몬이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났다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온 후에 부패한 세상 가운데 있는 해 아래의 타락한 인류의 인간생활에 관하여 기술한 것입니다. 그는 마음을 다해 하늘 아래서 행해진 모든 일을 추구하고 살폈으며, 자연 현상에 따라 모든 것이 순환되어 행해지면서 그대로 있고,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오지만 모든 것이 괴로우며 아무것도 새것이 없음을 관찰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에 의해 가장 높고도 고상한 목표를 가지고 창조되었는데, 이는 생명과 본성과 표현에서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원수, 마귀 사탄이 끼어들어 하나님께서 그분의 목적을 위해 창조하신 사람 속에 자신을 죄로 주입했습니다. 이러한 사람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사람과 하나님께서 사람의 통치 아래 두신 모든 피조물들은 허무한 데 굴복하게 되었고, 썩어짐에 종노릇하게 되었습니다(롬8:20~21). 그러므로 부패한 세상에 있는 인생 역시 헛되고 바람을 잡는 것과 같게 되었습니다. 솔로몬은 이것을 온전히 깨달았으며, 그의 서술에서 이 점을 최고도로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점에서 완전히 실망하지 않고 오히려 이 허무함에서 나올 수 있는 길이 있음을 사람들에게 가르쳤는데, 그 길은 곧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하나님을 사람의 모든 것, 구속, 생명, 부, 누림, 즐거움, 만족으로 취하는 것입니다. 이는 사람이 여전히 하나님께 쓰임받아 그분의 영원한 경륜을 성취하도록 사람에 대한 그분의 원래 목적이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전12:13~14).
출처 : 삶을 가꿔 주는 선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6. 19:05

성경말씀

(계3:9~10)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할 것이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을 지켰기 때문에, 나도 너를 지켜 주어, 땅에 거하는 사람들을 시험하기 위해 온 땅에 닥쳐 올 시련의 때를 면하게 해 주겠다.

오늘의 만나

공의와 위엄이 있는 요한계시록의 빌라델비아 서신 중에서 갑자기 ‘사랑’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심판하시는 가운데서 오히려 그분의 사랑을 말씀하시다니요! 심판관은 사랑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심판관이 어떻게 자신의 사랑을 말할 수가 있는가? 그러나 주님의 이 한 말씀은 얼마나 이 서신과 상합하며 또한 얼마나 다른 서신과 완전히 융화되는지요! 원문의 ‘나’와 ‘너’는 둘 다 특별히 중시되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의 특별한 나이고, 너는 하나의 특별한 너입니다. 주님의 여기서의 약속은 모든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한 무리의 특별한 증인들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일반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심판 때에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사랑하시게 할 수 있는-유일한 참된 빌라델비아 사람의 성품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의 마음은 얼마나 기쁩니까!

출처 : 삶을 가꿔 주는 선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6. 18:55

성경말씀

(롬8:6) 육체에 둔 생각은 죽음이지만, 영에 둔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오늘의 만나

 소극적인 면에서의 생명의 느낌은 일종의 소극적인 느낌인 사망의 느낌입니다. 로마서 8장 6절은 육체에 둔 생각은 죽음이라고 말합니다. 당신이 당신의 생각을 육체에 둘 때, 당신은 사망의 느낌을 갖게 됩니다. 당신은 사망이 그곳에 있음을 느낍니다. 사망의 느낌은 소극적인 면에서 약함과 공허함과 불안함과 불안정함과 침체함과 메마름과 어두움과 고통 등의 내적인 느낌입니다(롬8:6상). 당신이 약하고 공허하고 불안하고 불안정하고 침체되고 메마르고 어두우며 속에서 고통스럽다고 느낄 때, 이것은 사망이 그곳에 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사망이 있을 때, 이것은 당신이 생각을 육신에 두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육신에 생각을 두는 것은 바로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각이 우리 매일의 행함의 열쇠입니다. 생각을 육신에 두는 것은 바로 육신의 몸을 여는 것을 의미하며, 육신의 길을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당신이 사망이 여기에 있다고 느낄 때, 당신은 자신이 육신 안에서 살고 행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이 생명의 느낌의 소극적인 기능입니다.
출처 : 삶을 가꿔 주는 선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6. 18:50

성경말씀

(롬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서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을 통해 넉넉히 이깁니다.

오늘의 누림

 많은 어려움들은 우리 자신으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을 앙망하고 주님을 가까이 할 때 어려움은 곧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지네의 우화를 들려주겠습니다. 하루는 지네가 길을 가다가 자기의 발을 쳐다보면서 어느 쪽 발이 먼저 움직이는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왼발일까, 오른발일까, 여덟째 다리일까, 열째 다리일까?’ 계속 이러한 생각을 하다가 결국은 생각 속의 어려움이 그의 행함의 어려움이 되어 버렸습니다. 얼마 후 햇빛이 나자 생각 없이 빛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지네는 어느 발이 먼저 움직이고 어떻게 걷는지 잊어버리고 다만 걷게 되었습니다. 생각 속의 어려움이 사라질 때 실행에 있어서의 어려움도 사라집니다. 내적인 메마름과 눌림과 일어나지 못함을 스스로 극복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극복할 수 없게 됩니다. 당신이 이것을 한 가지 일로 삼는다면 한 가지 일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이것을 잊어버리고 다만 지나가게 한다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때로는 문제가 싸움으로써 정복되지만, 어떤 때에는 잊어버림으로써 정복됩니다.
출처 : 삶을 가꿔 주는 선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6. 18:45

성경말씀

(단9:11)  온 이스라엘이 주의 율법을 범하고 치우쳐 가서 주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으므로 이 저주가 우리에게 내렸으되

오늘의 만나

어떤 갈림길에 있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치우침 없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즉 어떤 길도 사랑하지 않고 어떤 길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당신 앞에 놓인 길을 치우침 없이 보는, 균형 잡힌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즉 주님께서 당신에게 어떤 길을 지시하실 때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마음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았다면 주님은 쉽게 그분의 뜻을 당신에게 보이실 것입니다. 한쪽으로 치우침과 불순종은 주님의 뜻을 아는 데 아주 큰 장애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자기의 판단력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행할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마음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고 해서 ‘원함’과 ‘원치 않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전에는 당신의 마음이 어느 쪽으로 기울지 않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도록 뜻을 세우기 원하고 하나님의 뜻인 줄 알 때에는 즉시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신에게 어떤 원함도 없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어떤 원함이 있기는 하지만 당신의 원함이 곧 하나님의 원함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출처 : 삶을 가꿔 주는 선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6. 18:40

성경말씀

(출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오늘의 만나

 하나님은 ‘나는...이다’ 라고 말씀하셨을 뿐 그분을 믿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엇(이는 영적인 실재를 말함)을 추가하도록 그분 자신이 무엇이라는 항목으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에 따라 우리가 원하는 것을 그 안에 첨가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에게 어떤 필요가 있고 믿음도 있다면 ‘하나님은...이다’ 사이에 우리가 필요한 것을 추가할 수 있고 그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우리에게 위로가 필요하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위로이십니다. 우리에게 피난처가 필요하다면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입니다. 우리에게 견고한 성이 필요하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견고한 성이십니다. 우리에게 승리가 필요하다면 하나님이 우리의 승리이십니다. 우리에게 거룩함이 필요하다면 하나님이 우리의 거룩이십니다. 우리에게 방법이 필요하다면 하나님이 우리의 방법이십니다. 당신은 무엇이 필요하든지 그것을 여기에 첨가할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의심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여기에 첨가하십시오.
출처 : 삶을 가꿔 주는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