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7:00
성경말씀  

(창13: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고전10:16) 우리가 축복하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의 교통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이 아니겠습니까? 

 오늘의 만나

 
 “헤브론”은 원문에서 “교통”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생명의 문제이며 교통은 생활의 문제입니다. 벧엘을 거치지 않고서 헤브론에 거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벧엘 다음에 헤브론이 있다는 것입니다. 교통이라는 것은 몇몇의 사람들로 조직화된 공동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집에서만 발견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이 없이 교통을 갖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천연적인 사람이 처리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교통을 가질 수 없게 됩니다. 우리의 천연적인 사람이 처리되어야만 우리는 몸 안에서 살며 교통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사실이며 실제이며 분명한 근거가 있는 것입니다. 그의 몸 안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다른 자녀들과 교통합니다. 우리가 천연적인 생명을 처리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생활 안으로 들어가며 끊임없이 교통 안으로 이끌어 질 것입니다. 진정 그리스도의 몸을 아는 사람들은 개인주의로부터 나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신을 의지하지 않으며 그들이 아주 약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다른 하나님의 자녀들과 교통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교통 없이는 할 수 없다는 것을 보는 시점까지 우리를 이끄실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교통 안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이실 것입니다. 이것이 헤브론의 의미입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6:55
성경말씀  

(창6:12~13)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마24:37 노아의 때와 같이,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도 그러할 것입니다. 
(39) 홍수가 나서 모든 것을 휩쓸어 갈 때까지 심판이 오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였는데,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도 이와 같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만나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동안, 하나님은 노아로 인해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을 노아에게 보여 주셨으며 그분의 비밀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참된 상황을 몰랐습니다. 그 당시 세상 사람들은 혼미했고 눈이 멀었으며 가리워져 있었고 분명치 못했으며 마취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어디에 있으며, 무엇이 그들에게 임할 것인지 몰랐습니다. 그들의 눈은 멀어 있었고 정욕으로 중독되어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상황을 보십시오. 정확히 일치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바울이 디모데후서 3장 1절부터 3절까지 묘사한 것처럼 돈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하며 쾌락을 사랑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과 쾌락과 자기를 사랑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모두 정욕과 쾌락과 돈과 다른 세상적인 것들로 마취되었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으며 자기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모릅니다. 노아의 때의 상황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과 함께 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모든 비밀을 노아에게 계시하셨기 때문에 노아는 참된 상황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땅에 강포가 가득하고 모든 육체의 끝 날이 이르렀으며 그분이 땅과 함께 그들을 멸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6:13). 또한 하나님은 노아에게 할 일 곧 방주를 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방주를 지었습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6:50
성경말씀 

 (롬14:8)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향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향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살전5:24) 여러분을 부르시는 분은 신실하시니, 그분께서 또한 이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오늘의 만나

 
 우리의 모든 것과 가진 것이 주님을 위한 것이라고 말씀드렸다고 하더라도 아마 우리는 며칠이 지난 후에 잊어버릴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를 부르신 분은 결코 잊어버리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아주 뛰어난 기억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분은 가끔 우리에게 오셔서 그분께 말한 것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너는 그날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약속한 것의 의미를 몰랐을 것입니다. 나는 우리가 이렇게 약속할 때 그 의미가 분명치 않았음에 대해 주님께 감사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말한 짧은 한마디 안에 하나님과 관계된 얼마나 많은 것들이 포함되는지를 몰랐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말로 인해 하나님께 묶였습니다. 그분은 부르신 분이고 우리는 부르심 받은 사람입니다. 모든 것이 그분께 속합니다. 우리가 그분을 위해 미치기를 원하지만 우리 안에는 그렇게 할 동기가 없습니다. 그러나 일단 주님이 나타나시면 우리는 미쳐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오 주님! 모든 것이 당신의 것입니다. 얻으소서. 주여! 당신이 원하는 일을 하소서. 나는 모든 것을 당신께 드립니다.” 사람들을 주님께 헌신하게 하는 것은 가르침이 아닙니다. 헌신하도록 동기를 주는 것은 주님의 나타나심입니다. 만일 우리가 사람들로 하여금 주님을 만나게 하고 그분의 임재 안에 들어오도록 도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하라거나 모든 것을 제단 위에서 주님께 드리라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일단 하나님이 그들에게 나타나시면 그 어느 것도 그들을 헌신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자동적으로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주여, 모든 것이 당신의 것입니다. 이제부터 저의 모든 것이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6:45
성경말씀 

 (행7:2下~4上)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거주하기 전, 메소포타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시어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너의 땅과 너의 친척을 떠나, 내가 너에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거라.’ 그래서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들의 땅을 떠나 (마4:19~20)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를 따라오십시오. 내가 여러분을 사람 얻는 어부가 되게 하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시자, 그들이 즉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오늘의 만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동기와 힘은 첫 번째로 하나님의 나타나심이었습니다. 만일 내가 여러분에게 간다면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만일 한 나라의 대통령이 여러분을 개인적으로 방문한다면 여러분은 매우 기뻐할 것입니다. 아마 당신은 밤새 잠을 설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누가 아브라함을 방문했습니까? 영광의 하나님이었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우리는 예수께서 갈릴리 해변을 다니시다가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을 부르신 것을 보았습니다. 주 예수님은 다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고 그들은 주님을 따랐습니다. 수 년 동안 나는 이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나사렛 사람인 보잘것없는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실 때 그들은 따랐던 것입니다. 나는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던 예수님이 큰 빛(마4:16)이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이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은 모두 그 큰 빛에 이끌렸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보고 부르실 때 그들은 예수님께 이끌렸습니다. 외관상으로 볼 때 그들을 부른 분은 가난한 나사렛 사람이었지만 사실 그분은 영광의 하나님이었습니다. 이런 영광의 하나님이 귀신의 땅에 있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그런 영광의 하나님이 나타나신 체험이 있을 것입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6:40
성경말씀  

(창11: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수24:2)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옛적에 너희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오늘의 만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을 때 아브라함은 가장 어두운 배경가운데 있었습니다. 그의 배경은 아주 강한 것이었습니다. 이 배경의 첫 번째 측면은 사람이 하나님을 버린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버린 것은 그가 쌓은 성으로 상징되었습니다. 사람은 그의 보호가 되는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성을 쌓았습니다. 사람은 자신을 방어해 주시는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자신을 방어할 성을 쌓았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성을 쌓은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버린 것을 상징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으로 떠나게 하라. 나는 자신을 방어할 성을 쌓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 같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버렸을 뿐 아니라 자신을 높일 탑을 건축했습니다. 탑은 사람이 자신을 높이는 것에 대한 상징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버린 순간 자동적으로 자신들을 높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성을 쌓을 때마다, 그들은 또한 자신을 높일 탑을 건축합니다. 마지막으로 여호수아 24장 2절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처럼, 바벨에서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에게로, 즉 다른 신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사람이 우상을 숭배할 때마다 귀신들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우상을 숭배하지만 사실상 귀신들을 숭배하고 있는 것입니다(계9:20).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6:35
성경말씀 

 (롬14:16~17) 그러므로 여러분이 좋다고 여기는 것이 도리어 비방거리가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의 왕국은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의와 화평, 그리고 성령 안에 있는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마28:20下) 나는 이 시대가 종결될 때까지 항상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  

오늘의 만나 

 어떤 의미에서는 왕국이 여기에 있고, 다른 의미에서는 왕국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 예수님 자신과 같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주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여기 계시지만 다른 의미에서 주님은 오시고 계십니다. 주님이 내적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동안에도 그분은 여전히 외적으로는 오고 계십니다. 오늘날 우리는 사람들에게 주 예수님을 믿으면 그분이 우리 안에 계신다고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외적으로 오시어 왕국의 나타남을 가져오실 때에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왕국의 나타남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왕국의 실제 안에 산다면 상점이나 식당에서 잔돈을 더 많이 받았을 때 곧 돌려 줄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할 때 다른 사람들은 우리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그러한 상황을 통해 이익을 취하지 않는 사실을 보고 놀랍니다. 사람들에게 여분의 돈을 돌려주고 다른 이들의 이익을 취하기를 거부하는 것이 우리의 그리스도인 생활에 있는 왕국의 실재의 한 예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세상적인 사람들은 이것이 왕국이라는 것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왕국의 나타남을 가져오실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들은 ‘이것이 왕국의 나타남이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6:30
성경말씀  

(창6:18)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고후1:20) 왜냐하면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아멘”이라고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오늘의 만나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교회 생활은 절대적으로 언약의 생활입니다. 우리는 언약 아래 있습니다. 신약의 구절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과 같이 당신이 직면하는 모든 환경을 위한 구절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언약을 붙든다면, 어떤 상황이 일어나더라도 당신이 의지하고 살 수 있는 살아 있는 약속인 말씀구절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 아래서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념들과 느낌들과 환경들의 구름으로 인해 염려하거나 위협받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 아래 있으며 그분의 완전한 축복 아래 있습니다. 더 이상 정죄가 없고, 더 이상 심판이 없고, 더 이상 저주가 없습니다. 사망은 폐하여졌습니다. 여러분의 직업이나 건강을 잃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어떤 어두움이나 소극적인 것들로 인해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언약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언약 아래 서서 어떤 실패나 연약함이나 어두움이나 소극적인 것을 믿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운명은 주님이 피를 흘리심으로 이루어진 언약 아래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언약의 사람들입니다. 그름은 전혀 없고 홍수도 결코 없으며 오직 생명뿐입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6:25
성경말씀 

(빌2:12下~13) 더욱더 순종하여, 두려움과 떨림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내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의 기쁨을 위하여 여러분 안에서 운행하시어, 여러분이 뜻을 세우도록 하실 뿐만 아니라 행하도록 하시기 때문입니다. (15) 그러면 여러분은 나무랄 것이 없고 순결하여, 구부러지고 비뚤어진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들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세대 가운데서 세상의 발광체들로 빛나서 

오늘의 만나 

빌립보서 2장 12절은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말합니다. 구원을 이룬다는 것이 무슨 말입니까? 그것은 생명의 말씀을 붙드는 것이고 비추는 것이고 가르치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살아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로 원하게 하시고 우리 안에서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움직이시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여전히 구원을 이루어 낼 수 있도록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구원을 이루고 있습니까? 노아는 하나님의 심판에서 뿐 아니라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에서 자기를 구원할 방주를 지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구원을 이루어 내야 합니다. 우리가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받은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멸망에서 구원받았을 뿐 아니라 악한 세대에서 새로운 세대 안으로 구원받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영원한 멸망으로부터 구원을 받았지만 우리 중 많은 사람이 이 악한 세대에서 자신을 구출하기 위한 어떤 수고도 하지 않습니다. 노아가 지은 방주는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그를 구원했을 뿐 아니라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로부터 그를 분별하여 새 시대 안으로 인도했습니다. 빌립보서 2장에서 언급된 구원은 멸망으로부터의 구원이 아니라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로부터의 구원입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6:20
성경말씀  

(창6:12~13)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마24:37 노아의 때와 같이,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도 그러할 것입니다. (39) 홍수가 나서 모든 것을 휩쓸어 갈 때까지 심판이 오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였는데,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도 이와 같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만나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동안, 하나님은 노아로 인해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을 노아에게 보여 주셨으며 그분의 비밀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참된 상황을 몰랐습니다. 그 당시 세상 사람들은 혼미했고 눈이 멀었으며 가리워져 있었고 분명치 못했으며 마취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어디에 있으며, 무엇이 그들에게 임할 것인지 몰랐습니다. 그들의 눈은 멀어 있었고 정욕으로 중독되어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상황을 보십시오. 정확히 일치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바울이 디모데후서 3장 1절부터 3절까지 묘사한 것처럼 돈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하며 쾌락을 사랑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과 쾌락과 자기를 사랑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모두 정욕과 쾌락과 돈과 다른 세상적인 것들로 마취되었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으며 자기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모릅니다. 노아의 때의 상황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과 함께 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모든 비밀을 노아에게 계시하셨기 때문에 노아는 참된 상황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땅에 강포가 가득하고 모든 육체의 끝 날이 이르렀으며 그분이 땅과 함께 그들을 멸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6:13). 또한 하나님은 노아에게 할 일 곧 방주를 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방주를 지었습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6:15
성경말씀  

(창6: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히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을 받고 은혜를 입어서 때맞추어 도움을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갑시다. 

 오늘의 만나  

창세기 6장 8절은 성경에서 처음으로 은혜를 언급한 곳입니다. 히브리서 4장 16절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나는 늘 이렇게 주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주여, 나에게는 매분마다 당신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당신은 은혜로우신 분이며 나를 위해 준비하신 은혜가 있음을 압니다. 주여, 은혜에는 나의 동역이 필요하다는 것도 압니다. 나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은혜를 입기 위해 은혜의 보좌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자신의 상황을 견딜 수 없으며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에 맞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은혜의 보좌라는 곳이 있습니다. 때맞추어 도움을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갑시다. 여러분이 창세기 6장을 주의 깊게 읽어본다면, 여기에서의 은혜는 하나님이 노아에게 주신 많은 것들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볼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노아에게 오셔서 그와 함께 계셨음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노아의 힘이며 능력이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것을 누렸을 뿐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누렸습니다.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혼잡한 세대, 아무도 그 유혹을 이길 수 없는 세대 안에서 노아는 여호와의 눈에 은혜를 입었습니다. 하나님은 노아를 강하게 하셨으며 그와 함께 서 계셨으며 그를 부축하셨습니다. 노아가 입은 것은 은혜였고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