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9. 1. 8. 00:00

지방교회 이만나 - 아들을 위한 기도 - 생명이만나 438번

마8:13 ...“가십시오. 그대가 믿은 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빌라델피아 지방에 한 노 자매에게 말을 잘 듣지 않은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은 거칠고 방탕하며 눈빛이 어두웠습니다. 후에 그는 뱃사람이 되었습니다. 노 자매는 어느 날 밤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 마음속에 자기 아들이 위험에 처했다고 느껴서 외투를 입고 침대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간절히 간구했습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9. 1. 7. 00:00

지방교회 이만나 - 세상을 이긴 우리의 믿음 - 생명이만나 437번

요일 2:15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구라도 세상을 사랑하게 된다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없습니다.

요일 5:4~5 왜냐하면 하나님에게서 난 것은 모두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승리는 바로 우리의 믿음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하나님은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사람을 창조하여 땅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대적인 사탄은 하나님이 창조한 사람을 빼앗기 위해 정욕과 쾌락과 추구가운데 사람의 타락된 본성을 통해 심지어 음식, 의복, 주택, 교통수단 등과 같은 생활필수품에서도 방종에 빠지게 함을 통해, 사람의 종교, 문화, 교육, 공업, 상업, 오락 등으로 사람들을 조직화하여 이 땅에 반(反) 하나님의 세상 조직을 형성했습니다. 

사탄의 조직에 속한 그런 세상은 온통 악한 자 안에 처해 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악한 자를 이기는 근거입니다. 

그것을 조금이라도 사랑한다면 그것은 악한 자에게 우리를 패배시키고 점령하게 하는 근거를 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를 이끌어 삼일 하나님과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믿음이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하나님에게서 태어나 신성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한 믿음입니다. 

우리는 이 믿음을 말미암아 사탄이 조직하고 빼앗은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9. 1. 3. 00:00

지방교회 이만나 - 주님께 드린 것이 허비인가? - 생명이만나 436번

마26:8~11 그러나 제자들은 이것을 보고 분개하여 “왜 이렇게 허비하는가? 이 향유를 많은 돈을 받고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하니, 예수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왜 여러분은 이 여인을 괴롭힙니까? 이 여인이 나에게 아름다운 일을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가난한 사람들은 항상 여러분과 함께 있으나, 나는 여러분과 항상 함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주님께 드리는 마리아의 사랑을 허비라고 생각했습니다. 

과거 이십 세기 동안 수많은 귀중한 생명과 마음의 보물과 높은 지위와 황금 같은 장래가 주 예수님께 ‘허비되어’ 왔습니다. 

그토록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분은 전적으로 사랑스러우시고 그들의 드림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 

그들이 그분 위에 부은 것은 허비가 아니라 그분의 달콤함에 대한 향기로운 간증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항상 여러분과 함께 있으나, 나는 여러분과 항상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은 우리가 주님을 사랑해야 하고 주님을 사랑할 기회를 붙잡아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복음의 이야기는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이고, 마리아의 이야기는 그녀가 주님을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과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 이 두 가지를 다 전파해야 합니다. 

하나는 우리의 구원을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의 헌신을 위한 것입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12. 31. 00:00


지방교회 이만나 -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 생명이만나 435번

빌2:5~6 여러분 안에 이 생각을 품으십시오.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었던 생각입니다. 그분은 본래 하나님의 모습으로 존재하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하신 것을, 붙잡고 놓지 않아야 할 보배로 여기지 않으시고,

바울이 말한 우리가 품어야 할 마음은 빌립보서 2장 3절에 있는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이고 4절에 있는 자기만 돌아보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또한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비우시고 종의 형체를 가지시어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을 때에 그분 안에도 있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려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속 부분들 안에서 그분과 하나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체험하려면 우리는 이 정도까지 그분과 하나 되어야 합니다. 

즉 그분의 부드러운 내적 느낌과 생각에서 하나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비록 하나님과 동등하셨지만 하나님과 동등하심을 붙잡고 보유할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주님은 하나님의 형체를 내려놓으셨고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취하셨습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12. 28. 00:00

지방교회 이만나 -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생명이만나 434번

엡4:29~30 어떤 나쁜 말도 여러분의 입 밖에 내지 말고, 오히려 듣는 사람들을 건축하는 데 좋은 말을 필요에 따라 하여, 그들에게 은혜를 끼치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시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그분 안에서 구속의 날에 이르도록 도장 찍혔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사람들을 건축하는 데 좋은 말을 하여 은혜를 끼치도록 하고 성령을 슬프시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서 은혜는 우리의 누림과 공급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말은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를 전달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건축하는 말은 언제나 듣는 사람들에게 은혜이신 그리스도를 공급합니다. 

우리의 생활은 예수께서 사셨던 것처럼 은혜와 실재로 충만한 생활이어야 합니다. 

은혜는 누릴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이시고 실재는 우리의 실재로서 계시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실재를 살며 말할 때에 하나님을 우리의 실재로서 표현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을 그들이 누리기 위한 은혜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성령을 슬프시게 하는 것‘은 성령을 기쁘시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영원히 거하시며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하지 않을 때 즉 세부적인 일상생활에서 은혜와 실재의 원칙에 따라 살지 않을 때 그분은 근심하십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12. 27. 00:00

지방교회 이만나 - 깨끗하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 - 생명이만나 433번

시119:9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만니는 결혼 선물을 많이 받았는데 그 중에 걸레가 있었습니다. 

결혼한 지 수개월이 지난 후 그녀의 어머니가 신혼집을 보러 오셨습니다. 

만니는 아주 의기양양하여 그 걸레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어머니, 보세요. 그 걸레가 아직도 이렇게 새것이예요. 

내가 처음 받았을 때와 똑같아요.” 

그녀의 말대로 그 걸레는 여전히 새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닥은 어떻겠습니까? 


시편 11편 9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깨끗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성경을 전혀 읽지 않기 때문에 구원받은 지 팔구 년이 되었어도 성경은 막 샀을 때와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행위는 예전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12. 26. 00:00

지방교회 이만나 - 강권하는 그리스도의 사랑 - 생명이만나 432번

고후 5:14~15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합니다. 우리가 단정하는 것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셨으므로, 모든 사람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신 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 더 이상 자신을 향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대신하여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분을 향하여 살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죽음은 사도들이 그분을 위하여 사랑하는 삶을 살도록 강권되는 원동력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모두를 위하여 사형을 당하시고 우리의 대치물로 죽으셨으므로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 모두는 죽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에게 정해진 바 죽음을 죽을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뿐 아니라 그분의 부활로 말미암아 더 이상 자신을 향하여 살지 않고 그분을 향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5절의 주님을 ‘향하여’ 사는 것은 주님을 ‘위하여’ 사는 것보다 그 의미가 더 깊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산다는 것은 나와 주님이 여전히 둘이지만 주님을 향하여 사는 것은 결혼 생활에서 아내가 남편과 하나이듯이 

내가 주님과 하나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12. 24. 00:00

지방교회 이만나 - 우리를 보호하는 두 손 - 생명이만나 431번

요3:15 이것은 그분을 믿는 사람마다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요10:27~30 내 양들은 내 음성을 알아듣고, 나는 내 양들을 알며, 내 양들은 나를 따라옵니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 그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이며,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는 모든 것보다 크시니,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입니다.

‘영생’은 영원한 생명 곧 피조되지 않은 하나님의 생명으로서 시간에 있어서 영구할 뿐 아니라 본성에 있어서도 영원하며 신성합니다. 

영원한 생명은 믿는이들의 생활을 위한 것입니다. 

아버지의 목적에 따라 그분의 사랑 안에서 선택하시는 아버지의 손과 아버지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은혜로 구원하시는 아들의 손은 둘 다 지키는 능력이 있으며 믿는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절대로 고갈되지 않을 것이며 아버지와 아들의 손은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이들은 영원히 안전하며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12. 21. 00:00


지방교회 이만나 - 뵌 적이 없으면서도 사랑합니다! - 생명이만나 430번

벧전1:8~9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뵌 적이 없으면서도 사랑합니다. 지금도 그분을 뵙지 못하지만, 그분을 믿으면서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영광이 가득 찬 기쁨으로 즐거워하며, 여러분의 믿음의 결과인 혼의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즉 살아 있는 말씀을 들음으로 우리 안에 주입된 바로 그 믿음으로 인해 우리가 보지 못한 그분을 사랑합니다. 

우리는 영과 혼과 몸의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영은 거듭남을 통해 구원받았습니다. 우리의 몸은 장차 올 변형을 통해 구속 즉 구원될 것입니다. 

우리의 혼은 주님이 나타나실 때 곧 재림하실 때 고난으로부터 구원받아 주님을 충만히 누리는 누림 안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이 세대의 모든 즐거움과 함께 우리의 혼 곧 우리의 혼 생명을 부인해야 하며 이는 오는 시대의 주님에 대한 누림 안에서 혼을 얻기 위함입니다. 

주님이 나타나실 때 그분의 심판대를 거쳐서 어떤 믿는이들은 주님의 즐거움에 들어갈 것이며 또 어떤 믿는이들은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괴로움을 당할 것입니다. 

주님의 즐거움에 들어가는 것이 우리 혼의 구원입니다. 

이 구원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받고자 기다리는 몸의 구원보다 더 귀합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12. 20. 02:54

지방교회 이만나 - 내 어린양을 먹이십시오 - 생명이만나 429번

요 21:15 그들이 아침을 먹고 나자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이여, 이 사람들보다 그대가 나를 더 사랑하십니까?” 그가 예수님께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라고 하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양들을 먹이십시오.”


베드로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분명히 있었지만 자신의 힘, 자기의 천연적인 힘을 너무 과신했습니다. 

주님에 대한 그의 사랑은 귀한 것이지만 그는 그의 천연적인 힘을 부인하고 처리해야 했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천연적인 힘과 그의 자기 자신이 처리될 수 있도록 그가 세 번이나 주님의 면전에서 주님을 부인하여 철저히 실패하도록 하셨습니다. 

더욱더 베드로는 주님의 부르심을 떠나 뒤로 물러가는 데 앞장섰습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에 대한 그의 천연적이 확신도 이 실패를 통하여 처리된 것이 틀림없지만 그는 다소 실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오시어 그분을 향한 베드로의 사랑을 회복시키고 그분의 교회를 목양하는 일을 위임하셨으며 천연적인 힘을 확신하지 않고 순교하도록 그를 준비시키시고 따르게 하셨습니다. 

어린양들을 먹이는 것은 속생명의 풍성으로 그들을 양육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먹이려면 우리가 주님의 신성한 생명의 풍성을 누려야 합니다. 이렇게 하려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