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일1:1~2 태초부터 계셨던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자면 우리가 들었고 우리 눈으로 보았고 우리가 주목하였으며 우리 손으로 만졌습니다. (이 생명이 나타났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난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는 보았으며 이제 증언하며 여러분에게 전해 줍니다.)
‘생명의 말씀’은 바로 요한복음 1장 1절부터 4절, 14절에서 언급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창세 전 영원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계셨을 뿐 아니라 또한 하나님이셨는데 시간 안에서 육신이 되셨습니다.
그 안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말씀은 그리스도의 신성한 인격으로서 하나님의 모든 어떠하심의 설명과 정의와 표현입니다.
그분 안에는 생명이 있고 또 그분이 바로 생명이십니다.
생명의 말씀이 비밀스러울 뿐 아니라 그분이 육신이 되셨기 때문에 만질 수 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비밀한 생명의 말씀은 그분이 부활하시기 전 인성을 지니셨을 때 뿐 아니라 부활하신 후 영적인 몸을 가지셨을 때에도 사람들이 만질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되신 것을 부인하는 이단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만질 수 있는 인성을 지니신 주님의 확고한 실체를 가리키는 이러한 강력한 표현이 필요했습니다.
오늘은 레위기 LS 메시지 57번, “안식년과 희년(2)”에 대해서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다.
* 속죄일에 나팔소리가 퍼져 나감
25장 9절 “너는 일곱째 달이 되면 그달 초 열흘날에 숫양 뿔 나팔을 크게 불어야 한다.”라고 했다. 이것은 희년이 속죄에 근거하여 완전한 자유가 온 백성들에게 선포되도록 하기 위한 것임을 의미한다. 이 예표는 신약에서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속에 의해 성취되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단지 희년을 선포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소리내어 나팔을 불어야 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용하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희년을 선포하며 나팔을 분다면, 사람들은 『아멘! 할렐루야!』라고 외칠 것이다.
10절은 사람이 어떤 책임도 질 필요가 없도록 하나님의 모든 요구를 만족시키는 완전한 책임이 성취되었음을 의미한다. 희년에는 수고가 없으며, 책임이 없다. 즉 모든 사람이 자유롭다. 심지어 수확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다만 어떤 부담이나 책임 없이 밭에 나가서 먹을 수 있다. 책임을 지는 대신에 우리는 안식과 누림과 외침을 갖는다. 우리 가운데 많은 이들이 구원받았을 때 그런 체험을 했다. 우리가 구원받던 날 우리는 해방되었으며 모든 묶임에서 자유함을 얻었다. 이것이 희년의 체험이며 누림이다.
* 각 사람은 자신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자신의 가족에게로 돌아감
10절 “너희는 각자 자기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자 자기 가족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이것은 신약의 믿는 이들이 그들의 잃어버렸던 하나님과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왔음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소유지를 잃어버렸었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받았을 때, 곧 신약의 희년 때에 우리는 우리의 가족, 곧 신성한 가족에게로 돌아왔다. 이제 우리는 부유하며 우리의 신성한 가족 안에서 자유롭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쁨으로 외쳐야 하며, 교회 집회 안에서 주님을 향한 기쁨의 소리를 내어야 한다. 이것이 참된 희년이다.
* 일곱절기에는 두 가지 완성이 있다.
레위기 25장의 일곱 절기들에는 두 가지 완성이 있다. 첫 번째 그룹의 네 절기는(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오순절) 그리스도의 몸을 산출한 오순절에 완성되었다. 두 번째 그룹의 세 절기들은(나팔절, 속죄절, 초막절) 천년 왕국에서 완성될 것이다. 그러므로 첫 번째 완성은 교회 생활을 산출한 오순절이며, 두 번째 완성은 완전한 희년을 가져오는 장막절 곧 천년 왕국이다. 11절-12절 “오십년째 되는 해는 너희를 위한 희년이다. 너희는 씨를 뿌려서도 안되고, 수확한 후에 자라난 것을 거두어들여서도 안되며, 가꾸지 않은 포도나무에서 열린 포도를 따서도 안딘다. 이 해는 희년이며, 너희에게 거룩한 해이다. 너희는 저절로 난 것을 먹어야 한다. 이것은 희년 때에는 사람의 일이 불필요함을 의미한다. 희년은 전적으로 사람이 안식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모든 책임을 지신다.
*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속한 토지는 영원히 팔지 못함
23절 ”땅을 영구히 팔지 못한다. 왜냐하면 땅은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나와 함께 있는 나그네이고 체류자일 뿐이다.“ 이것은 우리의 신성한 소유지가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우리가 패배하고 타락하더라도 영원히 그것을 잃어버릴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보호하심이다. 신약에는 왕국의 보상과 왕국의 심판에 대한 가르침들이 많이 있다. 우리는 천년 왕국 동안에 패배할 수 있으며 심지어 징계받을 수 있으나, 우리의 영적 소유권은 영원히 잃어버리지 않는다. 천년 왕국이 끝난 후 징계받았던 믿는 이들은 그들의 신성한 소유지를 다시 돌려받을 것이며 특별히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 예루살렘의 축복을 누릴 것이다.
* 팔렸던 땅을 되사는 것에 관하여
레위기 25장 24절부터 28절까지는 팔렸던 땅을 되사는 것에 대해 말한다.
이 구절들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사람이 그의 잃어버린 소유지를 회복할 수 있는 세 가지 길이 있었음을 본다. 첫째, 그의 잃어버린 소유지는 가까운 친척에 의해 다시 살 수 있었다. 이것은 은혜의 문제이다. 둘째, 그에게 재산이 있다면, 스스로 그것을 다시 살 수 있었다. 셋째, 그것을 다시 살 수 있는 친척이 없고 스스로도 그것을 살 수 없다면, 그는 희년을 기다릴 수 있었다. 이것 또한 은혜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희년은 하나님의 은혜를 매우 잘 나타내는 예표이다.
* 레위기 25장 29절부터 34절까지는 팔렸던 집을 되사는 것에 관하여 말한다.
29절-30절은 만일 어떤 믿는 이가 교회 생활의 누림을 잃어버렸다면, 그 누림은 하나님의 짧은 은혜의 범위 내에서는 회복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만일 교회 생활의 누림을 잃어버린 것이 교회 시대 안에서 회복되지 않는다면, 천년 왕국에서도 그 누림을 갖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없는 자에게서 있는 것까지 뺏는 원칙에 따른 것이다(마 25:29). 그러므로 교회 생활의 누림을 잃어버리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누림을 잃는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이다.
성벽 있는 성내의 집은 교회 생활의 예표이다. 우리는 어떤 것이든 팔 수 있으나 교회 생활만은 팔아서는 안 된다. 교회 생활을 판다면 우리는 그것을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제한받으며, 희년이라 하더라도 이 문제에 있어서는 우리를 도울 수 없다. 교회 생활의 누림은 일 년으로 예표된 하나님의 짧은 은혜의 범위 내에서만 회복될 수 있다.
완전한 일 년은 교회 시대를 예표한다. 우리는 교회 시대가 길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사실상 교회 시대는 짧다. 신약은 교회 시대가 짧다고 우리에게 경고한다. 주 예수님은, 『내가 속히 갈 것이다.』(계 3:11)라고 말씀하셨다. 게으르고 악한 종만이, 『주인이 더디 오리라』(마 24:48)고 말한다. 그러나 주님은 그분의 오심을 서두르고 계시며 교회 시대는 오래지 않아 끝날 것이다. 교회 시대는 길어지거나, 연장되지 않을 것이다. 교회 생활이 내일 끝나게 될지 아닐지 장담할 수 없다. 교회 시대는 짧은 시간 동안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 시대는 짧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교회 생활 안에 있다. 그러나 교회 생활은 주님의 재림으로 끝나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교회 생활을 잃어버리고 빨리 그것을 되찾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한 천년 왕국 안에서도 교회 생활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이것은 천년 왕국 동안에 교회 생활의 누림을 잃어버린 것이 우리에게 회복되지 않을 것임을 의미한다. 우리가 지적한 바와같이 이것은 없는 자에게서 있는 것까지 빼앗는 원칙에 따른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이 시대에서 교회 생활을 갖지 않는다면, 우리는 오는 시대에 교회 생활을 빼앗기게 될 것이다. 교회 생활의 누림을 잃어버리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누림을 잃어버리는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이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에 대한 누림은 회복되기 쉽지만, 그러나 잃어버린 교회 생활을 회복하는 데에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교회생활로 돌아오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물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교회생활을 팔지 않도록 경고받아야 한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그것을 팔았다면, 우리는 가능한 빨리 잃어버린 교회 생활을 찾도록 힘써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 시대가 언제 끝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시대에 우리의 잃어버린 교회 생활을 회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천년 왕국 동안 징계받을 것이다.
우리가 오늘날 교회 생활을 잃어버리게 되면, 장차 올 천년 왕국에서도 그것을 잃어버릴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누림을 잃는 것보다 교회 생활을 잃어버리는 것이 더 심각한 것임을 고려해야 한다.
32절-33절은 레위인들이 누림을 잃었어도 쉽게 회복된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 합당하게 봉사하는 믿는 이들이 누림을 잃게 되어도, 시간의 제한 없이 누림이 회복됨을 의미한다. 이것으로 우리는 교회 생활 안에서 우리가 많이 봉사할수록 우리에게 유익됨을 본다. 우리가 교회 생활 안에서 봉사할수록 우리의 교회 생활의 누림은 더 안전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교회 생활을 쉽게 잃어버리지는 않겠지만, 만일 교회 생활의 누림을 잃어버린다 하더라도, 우리는 쉽게 그리고 빨리 그것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교회 안에서 합당하게 하나님께 봉사하는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누림을 영원히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34절). 그러므로 그리스도에 대한 누림과 교회 생활의 누림 모두를 위하여 우리는 교회 봉사에 더욱 참여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교회 생활을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떤 제한된 시간 내에서만 다시 찾을 수 있다. 만일 우리가 한정된 시간 내에 잃어버렸던 교회 생활을 찾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한 장차 오는 시대에도 교회 생활을 잃어버릴 것이며 우리가 영원한 시대를 위하여 징계받고, 훈련받고, 교정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레위기 25장의 예표에서 볼 수 있으며 또한 신약의 분명한 말씀들 안에서 볼 수 있다. 만일 우리가 교회 생활을 느슨하게 한다면, 우리는 그 즉시 교회 생활을 회복하는 데 전력투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교회 시대가 얼마 동안 지속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천 년이 하나님께는 단 하루가 될 수 있지만, 우리에게는 천 년이다.
장차 올 천년 왕국 동안의 시대적인 상벌의 심각한 문제는 복음이며, 특별히 마태복음이 가르치고 있는 복음이다. 마태복음은 우리에게 상과 벌에 관하여 여러번 경고하고 있다(마8:12,11:17,13:42,22:13,24:51,25:30). 레위기 25장에는 두 가지 누림-땅을 누리는 것과 집을 누리는 것-이 있다. 땅을 누리는 것은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을 예표하고, 집을 누리는 것은 교회 생활을 누리는 것을 예표한다. 우리는 교회 생활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교회 생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 시대에 교회 생활을 잃어버릴 수 있는 가능성은 분명히 있으며, 잃어버리게 되면, 장차 오는 시대, 곧 왕국 시대의 천 년 동안 징계받는 고통을 겪을 것이다.
행1:8 그러나 성령께서 여러분 위에 임하시면 여러분이 능력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위에’와 ‘여러분 안에’는 다릅니다. 성령께서는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 제자들 안으로 불어넣어져 본질적으로 그들에게 생명의 영이 되셨습니다.
동일한 성령께서 오순절날 제자들 위에 임하신 것은 경륜적으로 그들에게 능력의 영이 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증인’을 직역하면 ‘순교자‘입니다.
이들은 다만 의문으로 교리를 전하는 설교자들과는 달리 부활하고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살아 있는 간증을 지닌 생명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육신 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서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 왕국의 씨인 자신을 유대 땅에 뿌리시기 위하여 그 땅에서 그분의 사역을 홀로 수행하셨습니다. 승천 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사도행전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 왕국의 발전인 그분 자신을 예루살렘을 시작으로 하여 땅 끝까지 곧 신약 사역의 완결로 확산하기 위하여 그분의 부활 생명 안에서 승천의 능력과 권위를 가지고 이러한 순교자들을 통해서 하늘에서의 그분의 사역을 수행하시려고 했습니다.
1. 사도행전을 읽다보면 이디오피아 내시가 사막길을 여행 중 빌립의 방문을 받아 대화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가 이사야 53:7-8 을 읽던 중이었는데, 빌립이 "지금 읽으시는 것을 이해하십니까?" 라고 물으니 "나를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말합니다(행8:30-31)
오늘날 우리의 어려움은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냥 주일 집회에 가서 다른 이의 공급에 의존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는 경우도 그 본문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보다는 그냥 나는 성경을 매일 읽는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때도 많습니다. 성경의 ‘형성사‘를 쓴 박창환님도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성서를 읽는 것 그 자체에 어떤 가치가 있는 것같이 가르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성서를 무조건 읽기만 하면 되고 뜻을 알든지 모르든지 많이 읽고 매일 읽기만 하면 그 자체가 어떤 공적이나 되는 것처럼 생각하면서 읽는다"(5쪽).
그러나 "이러한 표면적 성경 지식만으로써는 신자의 생활에까지 미치는 영향을 주기가 어렵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을 읽되, 때로는 "우리를 지도해 주는" 좀 더 노련한 성경교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만일 그런 사람이 가까이 없다면 그런 분들이 쓴 책을 참고하면 될 것입니다.
2. 어제 오늘 제가 직접 체험한 이야기를 좀 해 보겠습니다.
필요가 있어서 어제 아침에 몇분 지체들과 함께 시편 45편을 읽었습니다.
돌아가면서 한 구절 읽었는데, 예전에 이 부분을 읽으면서 왕비가 우리고 두 개의 옷이 갖는 의미가 깊다는 선입관이 있어서 그런지 그 대목은 눈에 쏙 들어오는데 다른 부분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감이 안 잡혔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PDA 에 있는 영어회복역 각주 도움을 받으며 한번 더 읽자 시편 45편의 골격이 딱 잡히는 희한한 체험을 한 것입니다.
즉 시편 45편 1-8은 왕(king)에 대하여 9-15는 왕비(Queen)에 대하여, 16-17은 왕의 아들들(Sons)에 대한 언급을 한다는 간략한 문단 나누기 조언이 그런 도움을 준 것입니다.
더구나 왕은 신약 사복음서에서 계시된 왕이신 그리스도를, 왕비는 서신서의 교회를, 왕들은 계시록의 이기는자의 예표라는 설명도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 시편기자는 1-8절에서 왕을 네 개의 중요 단어로 노래했는데 그것들은 (왕의) 아름다움(2절), 승리(3-5절), 왕국(6-7절), 미덕들(8절)입니다.
3. 위와 같은 기본 이해를 가지고 지체들과 다시 시편 45편을 읽고 1절을 PSRP 했는데 너무나 풍성했습니다.
특히 좀더 공을 들여 읽고 기도하고 외운 구절은 참으로 감칠맛이 났습니다.
"내 마음이 좋은 것으로 넘쳐흐르니, 내가 왕에 관해 노래를 지어 바치겠네.."
오 내 마음이 좋은 것으로 넘쳐 흐르니.. 주여 오늘도 저의 마음이 좋은 것으로 넘쳐 흐르게 하소서!.
주여 저로 왕에 대하여 더 알게 하소서! 당신을 노래하기를 소망합니다.
이렇게 읽고 또 기도하면서 시편은 생명의 책 기도의 책이 되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거기다가 또 시편 45편 관련 교회찬송은 또 다른 맛이 있었습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 새벽에도 1절 만을 되풀이해서 읽고 그것으로 기도했습니다.
"왕후는 오빌의 금을 꾸미고 우편에서/내 왕의 귀비 중에는 열왕의 딸들있네/
영광스러운 교회가 왕후요 배필이되/모든 성도여 이 모두 우리의 영화로다(782).
이처럼 그동안 주님이 역사적 교회 안에 믿음의 선진들에게 열어 보여주신 모든 풍성들을 마음을 열고 겸손히 받고, 그것에 더하여 매일 성경말씀을 직접 수고함으로 경작할 때 우리의 하루 하루의 삶은 부요하며 견고한 믿음 위에 설수 있습니다. 주님의 몸 안에는 누구도 독불 장군은 없습니다. 서로 돕고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영적인 일어 있어서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시간"은 "영원한시대"를 위한다는 점이다. 시간안에 봉사는 영원한 시대를 위한 하나에 준비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늘 시간안에 넣으신것은 우리를 훈련하여 영원한 시대에서 쓰시기 위해서이다. 시간은 우리가 영적 훈련과 교육을 받는 학교와같다. 우리가 시간 안에서 영적훈련과 교육을 받는 목적은 영원한 시대에서 하나님께 합당하게 쓰임받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시간안에서의 봉사는 영원안에서의 봉사를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