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건축'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8.05.11 아침에 누림
  2. 2018.04.28 부서진 사람만이 교회를 치리할 수 있음
  3. 2018.04.26 교회가 건축되는 길 1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1. 19:00
히4:14-16  그런데 우리에게는 하늘로 올라가신 위대한 대제사장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계시니, 우리가 시인한 것을 굳게 붙잡도록 합시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실 수 없으신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모든 점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유혹을 받으신 분이시지만, 죄는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갑시다. 신약에서 히브리서는 특별히 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우리의 길과 실재와 생명이신 하나님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분은 믿는 이들을 지성소 안으로, 곧 하나님과의 교통 안으로 이끄신다. 또 신약에서 마태복음은 특별히 왕이신 그리스도의 방면을 다루고 있다. 마태복음은 그리스도께서 임마누엘로서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하고 하나님의 권위를 사람에게 가져오셨음을 보여준다. 기이한 것은 히브리서는 제사장이신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고 마태복음은 왕이신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지만, 이 두 권이다 건축을 언급한다는 것이다. 히브리서에서는 성의 건축이 있고 마태복음에는 교회의 건축이 있다. 사실상 성의 건축과 교회의 건축은 같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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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8. 4. 28. 22:25

 

 

주님을 섬기고자 하는 사람이 배워야 할 공과는 절대로 방법이나 수완이나 기교나 꾀가 아니다. 총명한 사람, 재주가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교회를 섬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치를 잘 따질 수 있는 사람 역시 교회를 섬길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무슨 일에든지 방법이 있는 사람이 교회를 치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직 한 종류의 사람만이 교회를 치리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부서진 사람이다. 주님을 섬기는 자의 모든 공과는 다 부서짐에 달려있다.

하나님이 모세로 하여금 그분의 양무리인 이스라엘 백성을 치리하게 하실 때, 하나님은 먼저 그를 사십년간 광야에 두시어 그로 부서짐의 공과를 배우게 하셨다. 그러므로 민수기 12장에 와서 모세의 누나 미리암과 형 아론이 함께 그를 훼방했을 때, 하나님은 그곳에서 여전히 모세를 위해 그가 온 지면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라고 간증하셨다. 모세는 광야에서 사십년 동안 한무리의 하나님의 백성을 치리하는 방법을 배운 것이 아니다. 그가 배운 유일한 공과는 바로 부서짐이었다. 하나님은 그라는 사람을 부서뜨리셨다.

사십세였을 때 그는 당시 문명 발상지인 애굽에서 학문을 배운 실로 수완있고 재간있는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은 수완도 재능도 그 애굽사람을 죽인 주먹도 소용없으며, 애굽사람을 때린 잔인한 방법도 소용없다고 하셨다. 하나님은 사십년 동안 그를 광야에 두시고 그로 다만 하나의 공과 곧 부서짐의 공과를 배우게 하셨다. 어떤 지방에서든지, 어떤 지역집회에서든지 부서진 사람만이 교회를 섬길 수 있고 건축할 수 있다.


랜 세월이 지날 때, 시간은 하나의 시험이다. 당신의 지혜, 당신의 재간, 당신의 수완, 당신의 총명은 모두 시간의 시련을 견디지 못한다. 그러나 부서진 사람은 시간의 시험을 견뎌낼 수 있다. 시간이 갈수록 그가 치리하는 교회는 더욱 실제적인 분량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을 섬기고자 하는 하는 사람의 공과가 바로 부서짐임을 기억하라. 이치를 따지는 것은 전혀 소용이 없고 협상하는 것도 소용이 없다. 교회 가운데서 이치를 잘 따지는 사람은 가장 치리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가장 교섭을 잘 하는 사람은 가장 교회를 건축할 수 없는 사람이다. 오직 한 종류의 사람만이 교회를 치리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부서진 사람이다.

그가 이치를 따질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부서졌기에 따지는 것을 의지하지 않는다. 그에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부서졌기 때문에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민수기를 읽을 때 우리는 백이십세가 다 된 모세를 본다. 그는 사십 년간 애굽 왕궁에서 생활했고, 사십 년간 광야에서 목양을 통해 단련되었으며, 또 삼십팔 년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한 경험을 갖고 있었지만, 매번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어나 그와 다툴 때마다 그는 끝내 수완이나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매번 문제가 발생 할 때마다 그는 언제나 이치를 따지지 않았으며, 그에게는 방법도, 논쟁도, 꾀도 없었다. 다만 하나님 앞에 엎드려 자신을 굴복시키고 하나님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시게 했다. 그는 실지로 부서진 사람이었다. 형제들이여, 여기에 지혜있고 학문있고 재간있으나 부서진 한 사람을 보라. 교회는 이러한 사람의 손 안에서라야 참으로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그릇이 될 수 있다. 오직 이러한  사람의 손 안에서만이 참되게 건축될 수 있다. 주님을 섬기는 자들이 더욱 부서질수록 교회는 더욱 건축될 것이다.


(위트니스리)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8. 4. 26. 18:25

 


우리 가운데 장로든 사역자든 기독교의 풍조를 깨끗이 벗어나기 바란다. 기독교의 풍조는 바로 설교하는 사람을 대단히 의지하는 것이다. 오늘은 장박사를 청해서 말하게 하고, 내일은 왕 목사를 청해서 말하게 하고  또 며칠 지나서는 무슨무슨 전도자를 청해서 말하게 한다. 그들이 말하는 것이 도데체 무슨 효과가 있는지 묻겠다. 아무런 효과도 없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한 지역 집회 혹은 한 지방교회가 오늘은 이 동역자를 청해 설교하게 하고, 내일은 저 동역자를 청해 설교하게 하는 것을 절대로 찬성하지 않는다. 그것은 소용없는 것이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당신은 모든 동역자를 초청해서 그곳에서 말하게 했겠지만, 여러분은 여전히 여러분이고 이전의 자신 그대로이다. 몇 명의 구원받은 사람이 더해진 데 불과하고, 몇 명의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에 불과하다.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당신은 영원히 교회의 건축과 교회의 동역을 보지 못할 것이다. 건축과 동역을 갖기 위해서는 책임형제들의 수고가 필요하다.
 
교회를 치리하고 교회를 건축하는 것은 결코 설교자를 초청하는 것에 달려있지 않다. 이것은 우리 기운데서 사역하는 방법이 아니다. 나는 우리 모두가 자신을 반드시 교회 가운데 두고 일에 몰두하며 수고해야 한다. 이외에 다른 길은 없다. 당신이 사도바울이나 베드로나 아볼로 등 이러한 사람들을 초청해서 말씀을 전하게 하더라도, 여러분은 여전히 여러분이고, 아무런 소용이 없다. 오직 유용한 한 가지는 여러분 자신이 엎드려져서 교회는 하나님의 밭이고, 사람은 거기서 농부가 되어 온통 얼굴에 땀을 흘리며 열심히 밭을 경작할 필요가 있음을 보는 것이다.
 
또한 여러분이 돌보도록 주어진 하나님의 집임을 보아야 한다. 여러분은 주부와 같이유리창을 닦고 바닥을 청소하고, 옷을 궤매고 의복을 손질하며, 뜨거운 밥을 하고 찬 밥을 먹으면서 그곳에서 수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이 천 번, 만 번 설교를 들어도 소용없다.
 
형제들이여, 한 천사가 여러분의 장소에 와서 한 주 동안 특별집회를 열면 여러분이 있는 곳의 교회가 부흥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라. 이런 소망을 품지말라. 빨리 굴복하고 차분히 일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 접촉하여 그들을 하나님 앞에서 살고, 그리스도를 누리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 실질적인 어려움이 있을 때에는 그들을 도우라. 만일 그들에게 물질적인 필요가 있고 당신에게 이러한 능력이 있다면, 당신은 그들에게 나눠주어야 한다. 헌신이라거나 공급이라고 말할 필요도 없다. 한 형제가 밥을 먹지 않았는데 당신에게 밥 한 그릇이 있으면, 당신이 반 그릇을 먹고 그에게 만 그릇을 주면 된다. 이는 헌신이라기 보다 당신과 그가 주님을 섬기기 위해 생명 안에서 서로 나누는 것이다.
 
버울은 그가 자신과 동행들의 필요를 공급하기 위해 두 손으로 일했다고 말한다. 당신은 당신과 함께 지체된 형제자매의 짐을 짊어져야 한다. 당신이 이런 정도까지 짊어질 수 있다면, 하나님이 당신의 일을 축복하시는지 축복하지 않으시는지 시험해 보라! 교회의 건축은 서서히 되어지는 것이며 힘을 들일 것을 요구한다. 당신은 요행을 바랄 수 없고 다른 사람을 기대할 수도 없다. 오직 당신이 손수 집 안에서 수고하고 힘들여 일해야만 당신의 집은 모양을 갖출 것이다. 하나님의 집인 하나님의 교회는 장로들의 돌봄에 맡겨졌다. 장로들은 주부로서 다만 수고하고 힘들여 일해야 한다. 교회의 건축은 장로들의 수고에 달려 있다. 단지 부흥회를 여는 것은 역사하지 않는다. 당신은 반드시 여기에서 심혈을 기울여 일해야 한다.
 
나는 각지 교회의 장로들이 이 원칙을 붙잡고 각지에서 힘을 다 쏟기 원한다. 설교를 잘 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어떤 지방은 갈수록 엉망이 된다. 특별집회는 적게 열수록 좋다. 시간을 아껴서 한 명 한 명 접촉하고, 한 명 한 명에게 시간을 들여 그들이 배우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


(Witness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