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16. 01:26

지방교회 영상 - 하늘에 속한 이만나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7. 16:00

 

성경말씀

(계3:20~21) 보아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린다. 누구든지 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이기는 이에게는, 내가 이기고 나서 나의 아버지의 보좌에 아버지와 함께 앉은 것과 같이, 나의 보좌에 나와 함께 앉도록 해 주겠다.

오늘의 만나

주님은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서 “누구든지 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문은 교회의 문이지만 그 문은 개인적인 믿는이들에 의해 열려집니다. 주님은 전체 교회를 다루고 계시지만 주님의 다루심을 받아들이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가 되어야만 합니다. 주님의 다루심은 객관적이지만 믿는이들이 영접하는 것은 주관적이어야 합니다. 21절에서 주님은 또한 “이기는 이에게는, 내가 이기고 나서 나의 아버지의 보좌에 아버지와 함께 앉은 것과 같이, 나의 보좌에 나와 함께 앉도록 해 주겠다.”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여기서 ‘이긴다’는 것은 타락한 회복된 교회의 미지근함과 자만심을 이기는 것과 필요한 항목들을 사는 것과 주님이 들어오시도록 문을 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그분의 보좌에 앉는 것은 장차 올 천년왕국에서 주님의 권위에 참여하는 이기는 자들에 대한 상이 될 것입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7. 15:35

 

성경말씀

(약1:19) 나의 사랑하는 형제님들, 여러분도 알다시피, 누구든지 듣는 것은 빨라야 하고, 말하는 것은 더디어야 하며, 화내는 것도 더디어야 합니다.

오늘의 만나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첫째로 배워야 할 것은 다른 사람의 말을 잘 알아듣는 것입니다. 어떤 형제자매 혹은 믿지 않는 사람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할 때에, 우리는 그의 말을 객관적으로 듣기를 배워야 하며, 그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연상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또한 그 사람 내면의 감정이 어떠한지 만지기를 배워야 하며, 그가 하지 않은 말은 무엇이고, 그의 영 안에 있는 말은 어떠한지 듣기를 배워야 합니다. 당신이 배울 때에 당신의 듣는 능력은 크게 진보할 것이고, 갈수록 더 빨리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 후에 당신은 다른 사람이 한마디만 해도 그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은 상당히 안정된 상태에 있어야 하고, 내면에 자신의 어떤 생각이나 주관적인 견해, 그리고 자신의 어떤 감정도 갖지 말아야 합니다. 당신이 조용하게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있어야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만약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당신은 다른 사람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고 그의 생각과 감정 속으로 들어갈 수 있으며 그 사람을 도울 수 있게 됩니다.
출처 : 삶을 가꿔 주는 선물
지방교회 생명 이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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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7. 14:50
성경말씀 

 (고전6:17) 그러나 주님과 합하는 사람은 주님과 한 영입니다. 

 오늘의 만나  

 바울은 우리가 주님과 한 혼이 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혼은 사람의 인격으로서 천연적인 것에 속하므로 이는 주님이 우리의 영과 연합할 때 이 연합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는 그릇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혼 안에는 주님의 생명과 동일한 성질의 것이 없습니다. 오직 영만이 이러한 연합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연합이 영의 연합이므로 혼은 우리 안에서 아무런 지위가 없습니다. 만일 혼과 영이 여전히 혼합되어 있다면 이 연합은 불순하게 됩니다. 우리가 생활 속에서 우리의 사상을 좇아 행하거나 어떤 일에서 자기의 의견을 갖거나 감정적인 작용이 있을 때 이 작은 것 하나가 이 연합을 불순하게 만드는 것을 족히 체험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자신의 사상을 버리기를 꺼려하고 자신의 애호를 떨쳐버리지 못하며 자기의 의사를 제쳐 놓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할 수 없다면 체험 안에서 이러한 연합이 표현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 연합은 영의 연합이므로 결코 어떤 혼에 속한 혼합물도 섞여서는 안 됩니다.
출처 : 삶을 가꿔 주는 선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6:40
성경말씀  

(창11: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수24:2)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옛적에 너희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오늘의 만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을 때 아브라함은 가장 어두운 배경가운데 있었습니다. 그의 배경은 아주 강한 것이었습니다. 이 배경의 첫 번째 측면은 사람이 하나님을 버린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버린 것은 그가 쌓은 성으로 상징되었습니다. 사람은 그의 보호가 되는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성을 쌓았습니다. 사람은 자신을 방어해 주시는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자신을 방어할 성을 쌓았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성을 쌓은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버린 것을 상징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으로 떠나게 하라. 나는 자신을 방어할 성을 쌓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 같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버렸을 뿐 아니라 자신을 높일 탑을 건축했습니다. 탑은 사람이 자신을 높이는 것에 대한 상징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버린 순간 자동적으로 자신들을 높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성을 쌓을 때마다, 그들은 또한 자신을 높일 탑을 건축합니다. 마지막으로 여호수아 24장 2절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처럼, 바벨에서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에게로, 즉 다른 신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사람이 우상을 숭배할 때마다 귀신들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우상을 숭배하지만 사실상 귀신들을 숭배하고 있는 것입니다(계9:20).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3. 13:55
성경말씀 

 (고후3:17) 주님은 그 영이십니다. 주님이신 그 영께서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골1:27下) ... 이 비밀은 여러분 안에 계신 그리스도인데, 곧 영광의 소망입니다. 

 오늘의 만나

 
 주님은 어떠한 분이십니까? 주님은 그 영이십니다. 주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주님은 영 안에 계십니다. 우리는 주님이 하늘에 계신다는 관념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주님은 하늘에 계시는 주이십니다. 그러나 그분은 영이시며 영 안에 계십니다. 영이 있는 곳에 그분도 계십니다. 그분은 영 안에서 사람과 접촉하십니다. 우리는 자주 전기를 비유로 드는데, 우리의 생활 속에서 전기는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한 면으로 공중에 있고 한 면으로 방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접촉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아직 믿지 않은 많은 친구들은 자주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주님이 어디 계시냐?”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느냐?”라고 묻곤 합니다. 체험이 있는 우리는 하나님은 영이시며, 주님은 영으로서 오늘날 우리의 영 안에 계셔서 우리와 아주 가까우실 뿐만 아니라 우리와 하나가 되셨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주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주님의 이름으로 그분의 영을 만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늘에 계신 주님을 믿을 때 우리는 마음과 영을 그분을 향해 엽니다. 그리고 깊은 곳인 영 안에서 그분의 임재를 느낍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모든 사람이 간증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열린 우리의 마음과 영은 하늘에 계신 주님을 향하기 때문에 우리의 속은 평안과 합당함과 빛과 안식과 강함과 만족이 있습니다. 참되게 구원받은 모든 사람은 그들이 비록 하늘에 계신 주님을 믿었지만, 그들이 믿을 때 그 주님이 그들 안으로 들어오신 것을 간증할 수 있습니다. 처음 믿을 때만이 아니라 믿은 후에도 그들의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하늘의 주님께서 그들의 깊은 곳을 만지시는 것을 느끼게 되며, 그들 안에는 평안하고 안전한 느낌이 있게 됩니다.
출처 : 그리스도인의 생명이 성숙하는 길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0. 20:15
출 16:35 이스라엘 자손은 정착할 땅에 이를 때까지 사십 년 동안 만나을 먹었다. 그들은 가나안 땅 경계에 이를 때까지 만나를 먹은 것이다. 민 11:5-6 우리가 이집트에 있었을 때에 거저 먹던 생선이 생각나고, 오이롸 참외와 부추와 양파와 마늘이 생각나는 구나, 그런데 지금은 입맛도 잃었고, 보이는 것이라고는 이 만나 외에는 아무것도 없구나. 사십 년동안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만나 외에는 다른 먹거리를 아무것도 주지 않으셨다. .....요한복음6장을 통해서 우리는 .....하늘에 속한 이 만나가 그리스도를 예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음식이 되기 위해 서 하나님으로부터 오셨다. 우리는 그분을 먹고, 그분을 마시고, 그분을 호흡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우리의 요소이신 그리스도로 재조성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우리의 조성의 면에서 그리스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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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0. 19:50
요6:31-33  성경에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온 떡을 그들에게 주시어 먹게하셨다." 라고 기록된 것처럼,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하늘에서 오는 떡을 여러분에게 준이는 모세가 아닙니다. 하늘에서 오는 참떡을 여러분에게 주시는 분은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이입니다. 요한복음 6장은 생명의 떡이신 주 예수님에 관하여 상세한 많은 항목들을 보여 주는 면에서 성경에서 유일한 장이다. 주님은 분명하게 "내가 생명의 떡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생명의 떡이신 그분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 하나님의 떡 살아 있는 떡이요 참떡이시다. 여기에 우리의 떡이신 주님의 다섯 가지 특성이 있는데, 바로 그분은 하늘에 속한떡 , 하나님의 떡,생명의 떡 , 살아있는 떡, 참떡이시다.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신 그분은 하늘에 속한 떡이시다. 하나님의 떡이신 그분은 하나님께 속하시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시며, 하나님과 함께 하셨다. 생명의 떡이신 그분은 "조에"곧 영원한 생명을 가진 떡이시다. 살아 있는 떡이신 그분은 살아 계신다. 생명의 떡은 떡의 본성을 말하며, 그 본성은 생명이다. 그리고 살아 있는 떡은 떡의 상태를 말하며 , 그 본성은 생명이다.  참떡이신 그리스도는 진리 또는 실재의 떡이시다. 그리스도는 참되시며, 실재이시다. 그분이 참양식 이시고, 다른모든 종류의 양식은 참된 양식이신 그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우리가 날마다 먹는 물질적인 양식은 그리스도의 그림자이다. 우리가 매일 먹는 양식의 실재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가져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보내신 참된 생명의 떡이시다. 우리 모두는 우리에게 생명의 떡이 되시는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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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6. 16:25

성경말씀

(골2:18~19) 겸허한 척하면서 천사를 숭배하는 사람들이 여러분을 합당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상을 빼앗기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러한 사람들은 자기가 본 것들에 사로잡혀, 육체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교만에 빠져서 머리를 붙들지 않습니다. …

골로새서에서 바울이 다루고 있는 모든 소극적인 것들 중에서 특히 심각하게 드러나는 것은 우상숭배의 한 형태인 천사숭배입니다. 하나님 외의 다른 어떤 것, 천사들과 같은 피조물 등을 숭배하는 것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골로새에 사는 어떤 이단 교사들은 그들 자신을 하나님과 직접 접촉할 수 없는 존재로 여기고 천사 숭배를 주장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은 지극히 높은 분이지만 사람은 극히 천하며, 또한 하나님은 영광스러운 분이지만 사람은 부패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이런 이단적인 가르침에 따르면 우리는 하나님을 직접 접촉할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말로는 우리에게는 어떤 중재자가 필요하며 천사들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재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골로새 교회에 침투된 천사숭배의 뒤에 깔린 관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직접 경배할 자격이 없다고 믿는 것을 겸손의 표시라고 생각합니다. 이단 교사들은 성도들을 권하여 이같은 방식으로 경배함으로 겸손을 보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마치 골로새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너희들이 하나님께 직접 갈 수 있다는 교만한 생각을 버리라. 너희는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너희와 하나님 사이에서 천사들이 중재자로 봉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 바울은 그러한 관념과 싸우며 “겸허한 척하면서 천사를 숭배하는 사람들이 여러분을 합당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상을 빼앗기지 않도록 하십시오.(골2:18)”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