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5. 16:40
성경말씀 

 (시110:3)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오늘의 만나

 
 축어역으로 ‘즐거이 헌신하니’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자원하여 제사를 드리니’라는 뜻입니다. 어떤 번역본들은 ‘권능’이라는 단어 대신에 그 히브리어를 ‘군대’ 혹은 ‘전쟁’으로 번역합니다. 이 다양한 번역들은 모두 어떤 종류의 싸움이 격렬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가리킵니다. 시편 110편 3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권능의 날 또는 군대의 날에 그리스도의 백성이 ‘빛나는 헌신으로’ 즐거이 그들 자신을 드릴 것임을 봅니다. 당신은 주님의 눈에 우리의 자원하는 헌신, 곧 그분께 우리 자신을 드림이 일종의 빛남, 광채라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까? 비록 교회가 하락하게 되었지만, 역대로 빛나고 아름다운 헌신으로 그들 자신을 즐거이 주님께 드린 사람들의 노선이 있어 왔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땅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즐거이 자신들을 그리스도께 드렸으며, 이러한 드림에는 빛나는 헌신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출처 : 삶을 가꿔 주는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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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4. 18:30
성경말씀  

(계1:6) 우리를 왕국이 되게 하시어 그분 자신의 하나님, 곧 그분 자신의 아버지를 섬기는 제사장들이 되게 하신 분께 영광과 권능이 영원무궁히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오늘의 만나

 
 여러분이 어떠한 사람이면 어떠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당신이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세상을 사랑하고 죄악 가운데 살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복음의 제사장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첫째, 아침마다 개인적으로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둘째, 날마다 이기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셋째, 무시로 영 안에 사는 것입니다. 넷째, 범사에 영을 좇아 행해야 합니다. 다섯째, 성도와 마음을 같이하여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여섯째,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아야 합니다. 일곱째, 하나님의 신약 복음의 제사장 체계와 다른 가르침을 전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덟째, 하나님의 신약 복음의 제사장 직임의 각 단계를 완성하도록 깨어 기도하고 부지런히 수고하며 힘써 분투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심판대 앞의 빛 아래서 생활하고 일해야 합니다.
출처 : 삶을 가꿔 주는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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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6. 20:15
성경말씀  

(골3:9~10)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려고 합니다.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나온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의, 곧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에게서 나온 의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부활 능력과 그분의 고난의 교통을 알고, 그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루어, 

오늘의 만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문자적으로 그리스도의 믿음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감상하는 데서 나옵니다. 우리의 믿음 즉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이 되시는 분은 우리가 그분을 감상함으로써 우리 안으로 주입된 그리스도 바로 그분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그리스도와 유기적으로 연합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믿음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기 위하여 자신의 의의 상태에서 살지 않고 하나님께로서 나온 의의 상태에서 살았습니다. 빌립보서 3장 8절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탁월하게 되는 것은 계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러나 10절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그리스도를 체험적으로 아는 것 즉 그분에 대한 완전한 지식에서 그분을 체험하는 것으로 말미암습니다. 바울은 먼저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를 받았고 그런 다음 그리스도의 체험 즉 체험적인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알고 누리는 것을 추구했습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