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rarryking 2018. 10. 30. 00:14

지방교회 동영상 생명이만나 11회 -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10. 24. 02:52

지방교회 누림글 - 성령의 열매는 곧 그리스도 - 지체들의누림글 107번

많은 사람이 갈라디아서 5장 22절과 23절의 성령의 열매는 아홉 종류로 

성령은 아홉 알의 열매가 있다고 생각하며, 한 알 한 알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사랑을 먹고 다시 희락을 먹고 다시 화평을 먹는다고 말하는 것 같지만, 

이러한 일은 없습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10. 19. 00:00

지방교회 이만나, 그리스도께 초점을... 생명이만나 385번

고전1:9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여러분은 그분을 통하여 그분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통 안으로 부름받았습니다.

고린도전서는 우리 모두가 그분 안으로 부름심받은 바로 그 그리스도가 만유를 포함한 분이시라는 것을 우리에게 계시합니다. 


posted by rarryking 2018. 10. 17. 00:20

지방교회 생명이만나 2회 - 

내주하시는 그리스도만 관심함






posted by 샬롬1 2018. 10. 2. 06:35
우리가 말씀을 사람들에게 공급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공급하는 목적은 단지 어떤 어려움을 벗어나게 하거나 그 어려움을 통과케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공급하는 전일한 목적은 바로 그로 주님을 알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말씀을 공급하는 최종 목적이 사람으로 주님을 알도록 이끄는 것임을 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환경 가운데 두사 우리로 하여금 어려움을 당하게 하실 때 우리는 주님을 알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매우 큰 필요를 갖게 된다

우리는 모든 성령의 통제가 우리에게 어떤 필요가 있다는 것을 지적해 주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어떤 필요가 없을 때 사람은 결코 주님을 알 수 없다
바울에게 가시가 없었다면 그는 결코 주님의 은혜를 알 수 없었다
시련받는 것은 단지 시련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시련 가운데서 더욱 주님을 알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항상 성령의 통제를 사용하여 우리에게 어떤 필요를 느끼게 하신다
그리고 주님 외에는 그런 필요를 채울 사람이 없다
주님 아니면 그런 시련을 통과하지 못한다
이런 필요들은 우리로 주님의 어떤 부분과 어떤 방면을 알게 한다
그러므로 고린도 후서 12장은 바울이 주님의 능력을 알게 된 것은 그의 약함에 의한 것임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바울은 고난을 당함으로 은혜를 알게 되었다
가시는 그로 하여금 약함을 알게 했고 또한 은혜를 알게 했다
주님이 그를 약함 가운데 두심은 그로 그분의 능력은 알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주님이 그를 고통 가운데 두심은 그로 은혜를 알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어떤 필요가 있는가에 따라 어떤 인식이 생긴다

어떤 종류의 필요가 있는가에 따라 어떤 종류의 인식이 있게 되는 것이다

주님에 대한 완전한 인식을 갖기 위해서 수많은 것들을 겪어야 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오늘 내게 새로운 처리와 통제가 있다면 나는 그리스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된다
이렇게 하여 날이 갈수록 그리스도에 대한 인식이 더해지고 내가 아는 그리스도로 교회를 공급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자
posted by rarryking 2018. 9. 27. 00:49

지방교회(local Church)의 질문과 답변 8회 - 

성경이 말하는 집회방식은?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9. 10. 05:00



하나님 경륜 적용하기- 씨뿌리는 자와 씨 - 지방교회 진리변호확증 자료

어떤 책은 재미있게 읽긴 하지만 나와는 직접 관련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것은 당장 내가 맞 부닥뜨린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읽는 것도 있습니다. 

사용 설명서 같은 것이 그것입니다.  성경을 읽되 남의 이야기처럼 읽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생활을 시작 한 이후로는 그 말씀들이 다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라고 생각될 때가 한 두번이 아닙니다. 

오늘 아침에 마태복음 13장을 읽었습니다. 소위 씨뿌리는 자의 비유라는 것이 들어있는 부분입니다.  여기에서의 핵심은 세 가지인데 씨뿌리는 자, 씨, 그리고 밭으로 예표된 우리의 마음입니다. 

1. 씨 뿌리는 자  

마13:3은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라고 말합니다. 

물론 이 대목은 비유입니다. 그러나 비유가 말하고자 하는 참 내용은 무엇입니까? 농부가 씨를 뿌리듯이 '씨뿌리는 자'로 비유된 누군가가 뭔가 모르지만 '씨'로 지칭된 뭔가를 뿌린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여기서의 '씨뿌리는 자'는 과연 누구이겠습니까? 말씀은 말씀으로 푸는 것이 제일 정확한데, 37절에 의하면 좋은 씨를 뿌리는 자는 인자-주 예수님-라고 정답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 본문에서 주님자신이 씨뿌리는 자는 '인자'(the Son of Man)라고 밝히셨으니 더 말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아침에 저는 여기서 더 전진된 묵상이 있었습니다. 

즉 이 말씀은 예수님 지상 사역시의 과거 사실만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을 말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승천 하신 이후 이 땅에 오셔서 그분이 직접 복음의 씨를 뿌리고 다니신다는 뉴스는 아직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굳이 사례를 끄집어 내자면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에게 직접 나타나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고 하심으로 사울을 바울되도록 회심시킨 이야기 정도가 생각날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주님은 지금은 씨를 뿌리지 않으시는가? 

여기까지 묵상할 때 그렇지 않다고 느낍니다. 주님은 지금도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그 사람들 안에서 씨를 뿌리고 계신다는 빛이 왔습니다.
이것은 두 가지 면에서 누림이 있습니다. 

첫째는 주님 자신이 아니면 누구도 '씨뿌리는 자'가 아니며 될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타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거나 철학과 윤리를 설파하는 사람들도 복음 전도자로 간주되는 것은 지나친 것이라는 깨달음입니다. 오직 거듭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자신'만이 씨뿌릴 자격이 있으십니다. 

둘째는 복음을 증거하는 자는 자신의 복음 전파 경험이나 말 재주를 너무 신뢰하지 말고 자신 안의 '씨뿌리는 자'로 하여금 씨를 뿌리시도록 주님을 신뢰하고 그분을 앙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은 아니로되 주님과 하나된 자였고 자기가 아닌 주님을 사는 자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나는 심었고'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씨뿌리는 자'와 하나로 연합됨으로 '나는 심었고'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고전3:6). 

마가는 그의 복음서 4장에서 '하나님의 왕국'을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다고 말합니다. 처음에는 싹 (the blade)그 다음엔 이삭(the ear) 그 다음엔 충실한 곡식(the full corn) 그 다음엔 추수가 있을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 안에서 생명되신 그리스도가 점점 자라시고 형태를 이뤄가시는 것을 말합니다. 어느 날 어느 특별한 장소로 옮겨가는 문제와는 다른 것입니다. 

왜 사람들은 성경을 수 차례 심지어 수십 차례 읽었다면서도 이처럼 분명한 핵심을 놓치는 것일까요. 수건이 그 마음에 있는 채 성경을 읽기 때문일 것입니다. 

은혜의 문이 닫히고 하늘에서 천사들이 '영원한 복음'(계14:6)을 전하기 전까지는 씨는 씨뿌리는 자와 연합된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 뿌려질 것입니다. 즉 특별한 선교사나 전도사님들 목사님들 만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된 성도들에 의해 뿌려질 것입니다(벧전2:9). 

이 일이 현재 택사스 주의 한 도시에서 현실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아침마다 이런 일이 미국 온 땅 심지어 전 세계에 까지 파급되기를 간절히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2. 씨  

씨뿌리는 자가 뿌리는 씨는 배추 씨나 오이 씨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물질 축복의 씨나 건강 축복의 씨도 아닙니다. 이 씨는 성경 본문에 의하면 '천국의 말씀'(the word of kingdom) 입니다(19절). 38절은 이 씨가 '천국의 아들들'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마태복음 8:12는 '천국의 아들들'(the children of kingdom)이 바깥 어두운데 쫒겨나 거기서 슬피울며 이를 갊이 있는 경우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씨는 예수 믿고 천당 간다거나 지옥에 안 간다는 씨와도 많이 다릅니다. 또한 천국의 씨는 마음 밭에서 자라는 것을 함께 말해야 하고, 씨가 자라지 못하도록 가로 막고 있는 것들의 정체들이 함께 말해져야 합니다. 

예수 믿고 죽기만 하면 천국은 100 퍼센트 간다고 말하는 씨는 여기서 말하는 천국의 말씀인 씨와는 완전히 다른 씨-다른 복음-입니다. 왜냐하면 마7:21은 예수 믿고 거듭났다고 하더라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간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엄중한 말씀을 자기 마음대로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그 대신에 이 말씀의 조건을 깊이 묵상하고 그 말씀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날 교계에도 씨뿌리는 자와 어느 정도 연합된 사람들은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의 입에서 선포되는 씨가 '그 씨'인지는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씨가 다르면 다른 싹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지금 뿌리는 그 씨가 마태복음 13:3에서 인자가 뿌리시던 그 씨와 같은 종류의 씨인지를 깊이 묵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본의 아니게 원수에게 쓰임받아 가라지를 뿌리는 짓을 할 수 있습니다(25절). 여기서 원수 사탄도 자기가 직접 뿌린 경우 보다는 그의 일군들을 동원하여 그리한 것입니다(고후11:15). 

3. 떨어지는 곳(길가, 돌밭, 가시떨기, 좋은 땅) 

씨가 진짜인지 유사품인지도 중요하지만 어떤 곳에 떨어지는 가도 열매 맺음에 있어서 큰 영향을 줍니다. 
이 천국의 말씀
 이 떨어지는 곳이 어디이겠습니까? 사람의 존재 안이고 더 정확히는 마음(heart)입니다(19절). 

왜 어떤 사람의 마음은 길가이고, 돌밭이고, 가시떨기이고 또 어떤 이의 마음은 좋은 땅인지는 성경 본문에 잘 나와 있습니다 (마13:19-23). 

오늘 날 마음을 처리하는 문제와 생명의 성숙을 복음과 함께 전파하는 단체가 어디있습니까? 길가, 돌밭, 가시떨기 마음을 처리하지 않고 주님 앞에 갈 때에 작은 상은 커녕 벌을 받고 심지어 바깥 어두운 곳에 내 쫒겨 슬피울며 이를 갈 가능성도 함께 말해주는 단체가 어디 있습니까?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죄인들을 속량하여 죄를 사하시고 거듭나게 하실 뿐 아니라 생명의 성숙을 통한 맏아들의 형상을 본 받음까지를 포함한다(갈4:4-5, 엡1:5, 롬8:29)는 하나님의 경륜에 눈 멀때 결코 완전한 복음을 증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듯 불완전한 복음은 불 완전한 구원을 가져올 뿐입니다. 

장로교파 분들이 전하는 복음, 소위 구원파가 전하는 복음도 나름대로 복음의 어느 부분을 포함하긴 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 3장 2-11까지에서 전했던 것과 비교하면 큰 부족이 있습니다. 특히 6절에서 말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 복음은 상당 부분이 그냥 지나치거나 그냥 문자로만 언급될 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는 이 복음이 하나님의 마음 속에 감취었던 진짜 완전한 복음입니다. 로마서 전체는 하나님의 복음을 말하는 책이나 그 책 내용이 구속의 죄사함이나 거듭남만이 아니라 개인의 영화롭게 됨(롬8:23)과 그리스도의 몸 안의 생활(롬12장)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많은 것을 내포합니다. 

이러한 천국복음(this gospel of the kingdom)이 모든 민족 온 세상에게 전파되어야 끝이 올 것입니다(마24:14). 

(그럼에도 한국 신학계의 교통정리자를 자임하는 어떤 단체는 바로 위 24:14 말씀은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됨으로 이방인들에게 적용하면 큰일나는 것처럼 말합니다. 이 분들에겐 성경 66권이 다 그들의 성경이 아닙니다.참으로 지금은 바른 진리 분별이 절실히 필요한 혼잡의 시대임에 틀림없습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9. 7. 05:00

하나님의 경륜 적용하기 - 율법과 그리스도 - 지방교회 진리변호확증 자료

하나님의 경륜 적용하기 - 율법과 그리스도 - 지방교회 진리변호확증 자료


우리가 알듯이 바울이 딤전1:4에서 말한 '하나님의 경륜'은 하나님 자신을 세 부분으로 된 사람 안에 분배하심으로 하나님을 표현하고 대표할 단체적인 한 사람인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본 사도 바울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기 위해 그의 온 힘을 다 쏟아 부었습니다(골1:28). 그러나 이러한 이상을 보지 못했던 시절의 그는 가는 곳마다 옳은 것으로 사람들을 무너뜨리고 정죄하고 핍박하는 인생을 살았었습니다(딤전1:13, 빌3:6).
 
 

생명되신 그리스도 자신을 살고 공급함으로 사람의 참된 필요를 채우는 길을 걷는 사람과 성경이 하라 하지 말라고 한 율법적인 요구에 묶여 결국 사람들의 참된 필요를 외면하고 오히려 정죄하는 길을 가는 사람은 그 열매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바울과 사울의 대비가 이를 잘 말해 줍니다.

오늘 아침에 마태복음 12장을 읽었습니다. 오늘따라 더욱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의 관심사가 극명하게 대비되어 보였습니다.  즉 주 예수님은 안식일 날 배고픈 제자들이 밀 이삭 잘라 먹은 것에 대해 성경적으로도 잘못이 없다며 그들을 두둔하는 입장에 서셨습니다. 물론 '그들의 참된 필요인 배고픔'도 돌아보는 마음이 있으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또한 이에 더하여 비록 안식일이긴 하지만 손이 오그라들어서 불편한 사람의 참된 필요도 관심하셨고 채워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다윗과 그 일행이 굶주렸을 때 제단에 차려 놓았던 진설병을 먹었으나 죄가 되지 않았던 사실(삼상21:6), 안식일에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안식일을 범해도 죄가 되지 않은 점(민28:9-안식일에도 제사장들은 안식일 제물을 드리기 위해 일해야 했음), 하나님은 자비를 원하시고 제사를 원치 않는다는 점(호6:6) 등의 진리적 당위성도 제시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될 일'을 했다는 사실만 붙들고 늘어졌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을 범한 제자들을 두둔할 뿐아니라 한 수 더떠서 자신이 직접 손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주심으로 안식일을 깨뜨리신 예수님 자신에 대해서도 마음이 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밖으로 나가서 안식일을 범한(그들의 눈에) 주 예수님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해 회의(counsel)를 열었습니다 (마12:14). 

이러한 사건은 율법적인 유대인들이 이후에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심하는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구약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하신 에스겔 20:12, 신명기 5:15 등의 구절들을 예수님을 정죄할 근거말씀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즉 그들 자신은 성경을 잘 지키는 정통이지만, 성경내용의 바로 그 주인공이신 주 예수님은 그들의 판단에 의하면 이단이요 비성경적인 분이 된 셈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단편적인 성경지식은 있으되 그러한 안식일의 주인(마12:8)이신 주 예수님 자신을 보는 영적인 눈은 멀어 있었습니다. 바울 이전의 사울이 바로 이런 상태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 사실을 보는 눈이 먼 것이 소위 바리새인들로 대표되는 종교인들의 치명적인 약함입니다.

오늘날에도 성경의 한 부분만을 붙잡고 '배고파 밀 이삭 먹는 사람들'을 정죄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습니다. 

많은 때 그들은 배고파 밀 이삭 잘라 먹는 사람들을 위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자신의 가장 좋은 것을 기꺼이 주고자 하시는 그들의 주인 그들의 하나님은 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시고 용납하시고 품으시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지킨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짓밟고 정죄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주 예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정죄하는데서 더 전진하여 주님 자신까지도 극렬하게 반대하며 저지하고 심지어 죽이려 듭니다(마12:14). 즉 오늘날의 그리스도는 사람 안에 생명으로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인데 이러한 그영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밖의 율법을 준수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공격받고 그영을 따라 사는 삶을 포기하도록 요구받는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차별없이 다만 사랑하시고(요3:16) 그들에게 주님자신인 생명을 주시고 또 주심으로(요10:10) 그들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분인 주님자신으로 충만된 그리스도의 몸으로 만들어 가시고(엡1:23) 마침내 거룩하고 흠없는 신부로 단장해 가시는(고후11:2, 계19:7, 21:2, 9-10) 현재의 주 예수님의 일 하심에 다만 아멘하고 동역하기를 갈망합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9. 6. 05:00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내주 하심을 부인하는 사람들을 분별함 - (2) 지방교회 진리변호확증 자료 

2.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사람의 영 안에 계십니다.  

로마서 8장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계신 곳'의 양면성을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즉 롬8:34는 주 예수님이 우리를 위한 중보자로서 하나님 우편에 계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롬8:10은 동시에 또 다른 방면에서 주 예수님이 거듭 난 사람 안에 (생명으로) 계심을 증거 합니다. 즉 그리스도는 몸인 교회의 머리로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고 또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분으로서 그리스도의 몸인 믿는 이들 안에 살고계십니다(골1:18, 엡1:23). 그러나 로마서 8:10은 위 양 방면 중에서도 특히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사심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사시되 (우리의 몸은 죄로 인하여 죽었지만)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내주 하심으로 인해 우리의 <거듭난 우리의 영>은 살았고, 심지어 생명(조에) (spirit is life) 이라고까지 롬8:10 후반부는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가 우리의 영 안에 계신다는 사실은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라고 한 고전6:17에서 더 선명하게 확증됩니다. 

우리가 예수 믿기 전 불신자였을 때는 하나님 보시기에 허물과 죄로 죽은 자였습니다(엡 2 :1). 그러나 우리가 부활하신 주 예수님을 생명으로 영접할 때 그분은 우리 영 안에 들어오십니다. 이 영이신 주님이 우리의 죽었던 영을 살리시고 심지어 우리 영과 연합하여 한 영(one spirit)이 되셨다고 고전6:17은 말합니다. 이제 이분은 여기서 더 전진하여 우리의 영 뿐 아니라 마음(heart)에도 거처를 얻기 원하시며(엡3:17), 우리의 죽을 몸, 사망의 몸에게도 생명을 주시고자 하십니다(롬7:24, 8:11). 이것이 구속의 피로 인한 죄사함 이후에 우리 안에서 이뤄지는 생명에 의한 유기적인 구원의 과정입니다(롬5:10, 빌2:12). 이러한 지속적인 생명의 역사 하심으로 인해 우리는 맏아들의 형상을 본 받게 되고 마침내 영광 안으로 이끌려 질 것입니다(히2:10). 이것이 로마서 8장 전체에 흐르는 사상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쟁점이 되는 것은 롬8:10이 말하는 <영은 의로 인하여 생명이라> 할 때의 영이 과연 사람의 영인가 아니면 성령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원래 신약원문 상의 영을 가리키는 '(푸)뉴마'는 대 소문자 구별이 없음으로 그것이 하나님의 영인지, 사람의 영인지는 전후 문맥을 따라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캘빈을 포함한 소수의 신학자들은 이 영을 성령으로 보지만 대다수의 신학자들은 롬8:10이 언급하는 이 영을 사람의 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장로교단 내에서 존경받는 주경 신학자인 이상근 박사의 아래 자료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신약 주해 로마서, 이상근, 성등사

'여기 영(롬8:10)을 성령으로 보는 학자가 있으나(Calvin, Dickinson), 신자의 영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Meyer, Bengel, S&H, Vincent 등). 전구(몸)와 댓귀적 성격으로 보아 후설이 타당하다(고전2:11). 영이란 인격의 본질이며 영성의 최고의 부분으로 성령께서 임재하시는 좌소이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부분이다'(이상근, 신약 주해 로마서, 성등사, 205쪽). 

이외에도 롬8:10의 영을 사람의 영으로 해석하는 것이 다수 의견임을 인정하는 자료로는 죤 머리의 로마서 주석(권혁봉 역, 생명의 말씀사) 33쪽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누구든지 문맥을 자세히 검토해 본다면 <위 롬8:10이 언급하는 영은 사람의 영이며 성령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은 쉽게 증명됩니다. 왜냐하면 본문에 의하면 여기에 언급된 영은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내주 하는 조건하에서만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너무나 상식적인 말이지만 하나님의 영이 생명이심에는 어떤 특별한 조건이 요구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 자체가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앞의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에서의 몸이 사람의 몸을 가리킴으로 뒤의 '영은 의로 인하여 생명이라'에서 영도 당연히 사람의 영을 가리켜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아버지와 아들은 사람 안에 들어오실 수 없으니 우리 안에 성령만 계신다는 사상은 매우 위험한 이단적인 주장입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삼위가 동일한 본질을 공유하신다는 것이 정통 삼위일체입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빛 가운데 거하심으로 사람 안에 오면 타 죽고 성령님은 사람 안에 오실 수 있다는 주장은 성령님이 아버지와 다른 본성 또는 열등한 본성을 가진 하나님이라야 말이 되는 이단적인 주장입니다. 둘째로, 상호내재 하시는 삼위는 항상 함께 계십니다. 그럼에도 성령만 우리 안에 계시고 아들 하나님 자신은 '구겨지지 않는 한' 사람 안에 계실 수 없다는 말(기독신문 게시판 안0식 목사님 주장)도 삼위를 분리시키는 이단적인 주장입니다. 더 나아가 이런 말들은 참된 신자가 소유하는 아들 안에 있는 생명(요일5:12)이 본인에게는 아직 없음으로 자신이 가라지라는 부끄러운 고백이 될 뿐입니다. 이런 주장들은 삼위일체론 뿐 아니라 기독론과 구원론에 있어서도 성경의 가르침과 다른 주장입니다.  

PS: 누구든지 성경해석에 오해가 있어서 잠시 성경적인 가르침과 다른 주장을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언제든지 틀릴 수 있고 또 틀린 것은 고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비 성경적이고 이단적임이 선명하게 밝혀졌음에도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고 오히려 성경적인 가르침을 틀렸다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그런 비 진리와 비 진리를 말하는 사람들을 대항하여 영적 싸움을 싸워야 할 것입니다. 유다서 1:3은 우리에게 '단 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해 싸우라'고 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내주 하심을 부인하는 사람들을 분별함 - (1) 지방교회 진리변호확증 자료
(http://local-church.tistory.com/222)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9. 5. 05:00

창간특집 - (지방)교회를 전격 해부한다.

"그리스도의 몸 전체의 주목과

존중 존중 받을 가치 있다"

풀러 신학 대학 성명서 (2006. 1월 5일)

  풀러(Fuller) 신학 대학과 지방 교회들의 인도자들과 그 출판 기관인 리빙스트림미니스트리(LSM)는 최근에 지난 2 년 동안 해온 광범위한 대화를 마쳤습니다. 이 기간에 풀러 신학 대학은 리빙스트림미니스트리에서 출판한 위트니스 리와 워치만 니의 저서들을 특히 강조하는 지방 교회들의 주요 가르침들과 실행들을 철저하게 검토하고 조사해 보았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취한 이유는, 종종 이들 교회들에 관해 던져지는 여러 가지 많은 질문들과 비난들에 대한 답을 주고자 하는 것이었고, 또한 역사적이고 정통적인 기독교의 빛 안에서 이 두 사람이나 지방 교회들의 가르침들과 실행들의 위치를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풀러 신학 대학 측에서 이 대화에 참여한 분들은 총장이며 기독교 철학 교수인 Richard Mouw 박사와 신학부  학장이며 신학 및  윤리학 교수인 Howard Loewen 박사와 조직 신학 교수인 Veli-matti Karkkainen 박사입니다. 지방 교회들을 대표하여 참여한 분들은 Minoru Chen, Abraham Ho, Dan Towle 씨입니다. LSM을 대표하여 참여한 분들은 Ron Kangas, Benson Phillips, Chris Wilde, Andrew Yu 씨입니다. 

풀러 신학 대학이 내린 결론은, 지방 교회들과 그 구성원들의 가르침들과 실행들이 본질적인 모든 방면에서 진실하고 역사적이고 성경적인 그리스도인 신앙을 대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풀러 신 학대학이 당면했던 첫 과제 중 하나는, 그들을 비판하는 이들이 전형적으로 제시했던 지방 교회들의 사역의 모습이 지방 교회들의 사역의 가르침들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는가를 판정하는 일이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에 관하여 어떤 단체들 안에 생성된 인식과 그 두 사람의 저서들에서 발견된 사실상의 가르침들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특히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들은 엄청나게 잘못 대표되었으며, 그 결과 일반적인 그리스도인 사회에서, 특히 자신들을 복음주의자들로 분류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빈번하게 오해되어 왔습니다. 성경과 교회사의 빛 안에서 공정하게 점검해 볼 때, 문제시 되었던 가르침들은 사실상 성경과 역사의 의미심장한 신뢰를 받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시종일관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이 그리스도의 몸 전체의 주목과 존중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믿습니다.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들을 따르는

인도자들이나 (지방)교회들 구성원들 가운데

이단에 속하거나 이단과 유사한 속성의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우리가 거친 과정을 이해함에 있어서, 처음부터 우리는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 믿는 이들이 고수하고 있는 진정한 그리스도인 신앙의 본질적인 요소들 위에서 이들 교회들이 서 있는 입장이 무엇인가에 대해 상당한 주의를 기울였음을 주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일 신앙의 기본 교리들에 관한 동의가 분명하게 확립될 수 있다면, 비본질적인 가르침들에 관한 차후의 대화와 토론은 믿는 이들의 교통의 범위에 들어가는 것이 타당하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출판물들을 읽어 보고 또 풀러 신학 대학 측과 그 교회들과 사역의 대표자들과 다섯 번에 걸쳐 직접 만나는 모임을 갖고 나서 이러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하나님, 삼일성(삼위일체), 그리스도의 인격과 일, 성경, 구원, 교회의 하나와 합일, 그리스도의 몸 등에 관한 그들의 가르침과 간증에 관해서 우리는 그들이 논의의 여지없이 명백하게 정통(正統)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비록 그들의 신앙 고백이 신조의 형태로 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들의 신앙 고백은 주요 신조들과 일치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더구나 우리는 리빙스트림 미니스트리의 출판물로 대표된 가르침들을 고수하는 사역의 인도자들이나 지방 교회들 구성원들 가운데 이단에 속하거나 이단과 유사한 속성들이 있다는 증거를 전혀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을 진정한 믿는이들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의 같은 지체들로 쉽고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모든 그리스도인 믿는 이들도 마찬가지로 그들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기를 기탄없이 권하는 바입니다.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은 진지하고 열려 있고 투명하고 제약이 없는 대화의 시간이었습니다. 우리 풀러 신학 대학 측에서 특별한 관심을 갖고 접근했던 몇 가지 주제들은 삼일성(삼위일체), 신성과 인성의 연합, 신화(神化), 양태론(樣態論), ‘지방’ 교회에 대한 그들의 해석과 실행,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그들의 모임 밖에 있는 외부 믿는 이들에 대한 그들의 태도 등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분야들 하나하나에 대해 탐색할 자유를 제한 없이 부여받았습니다. 매 경우에 우리는 일부 사람들이 가진 공공연한 인식이 지방 교회들 안에 있는 믿는이들의 믿음과 실행뿐만 아니라 출판된 사실상의 가르침들과도 너무나 동떨어진 것임을 발견했습니다. 이 성명서는 우리가 연관되었던 과정과 우리가 내린 전반적인 결론에 대한 전체적인 개관에 대해 관심을 가진 분들에게 제공하려는 의도로 마련된 것입니다. 이 간단한 성명서에 이어서 몇 개월 후에는 위에서 언급한 신학적 주제들과 기타 중요한 주제들을 더 상세하게 다루는 논문이 나올 것입니다. 지방 교회들과 리빙스트림 미니스트리의 대표자들은 그들에 관한 관심사의 주요 주제들에 대한 그들의 가르침들을 요약된 형태로 진술하는 성명서를 작성하기로 합의했습니다. 풀러 신학 대학 측은 이미 상당한 연구와 대화를 거친 다음 그들을 이해하는 데 이르렀으므로  그들의 가르침들에 대한 논평을 제공할 것입니다.  

           작성일: 2006년 1월 5일
    
                                              

출처: http://www.forthetruth.or.kr/booklets16.htm (영어원문 포함)
참고 :http://local-church.tistory.com/109 (지방교회 풀러신학대학 성명서)
http://local-church.tistory.com/134 (지방교회 - 지방교회란 무엇인가?)
http://local-church.tistory.com/111 (지방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http://local-church.tistory.com/137 (
지방교회 탐구 - 1 신앙고백 풀러신학교도 공식 지지)

지방교회의 신앙고백

1. ·우리는 성경을 완전하고 유일한 신성한 계시로 믿으며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한 분이시며 또한 영원히 아버지, 아들, 성령이시고 이 셋은 구별은 되지만 분리되지 않는 분임을 확실히 믿습니다.

2.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온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사람이심을 믿습니다. 그 분은 또한 그 분의 신성을 버리지 않으시고 처녀의 태 안에 잉태되시고, 땅위에서 참된 인생을 사셨고, 십자가 위에서 대속과 만유를 포함한 죽음을 죽으셨으며, 사흘 만에 몸을 입고 부활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이제 그 분은 영광 안에 계신 온전한 하나님이시자 완전한 사람이십니다.

3. 우리는 그 분께서 하나님의 왕국과 함께 속히 재림하시어 천년왕국과 영원 안에서 땅을 다스리실 것을 앙망합니다.

4. 우리는 삼위의 세 번째이신 성령께서 동일하게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아버지의 존재와 소유하신 모든 것이 아들에 의해 표현되시며 아들의 존재와 소유하신 모든 것이 성령으로 실재화 됩니다.

5. 우리는 더 나아가 인류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함을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와 거룩과 영광의 요구를 절대로 이룰 수 없지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을 통하여 그 모든 요구들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셨고 그 분과 화목하게 하셨으며 그리스도를 우리의 의로 삼으심으로써 우리를 의롭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에 근거하여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성령으로 구속된 이들을 거듭나게 하시어 그 분의 구원을 완결하시고 그들로 그 분의 자녀들이 되게 하십니다.

6. 이제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을 소유함으로써 믿는 이들은 이 시대에서는 그 분의 몸 안에서 매일의 구원을, 오는 시대와 영원 안에서는 영원한 구원을 누릴 것입니다. 영원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민에 대한 그 분의 구원의 완결인 새 예루살렘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하게 될 것입니다.

  (지방)교회 신앙 항목들에 대한 요약 

(1) 성경에 관하여 
 우리의 신앙의 첫 번째 항목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다. 성경에 관하여 사도 바울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호흡으로 된 것” (딤후 3:16 상)이라고 말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 아래 경건한 사람들에 의해 쓰였다. 우리는 또한 성경이 완성된 신성한 계시를 담고 있음을 믿는다. 우리의 신앙의 모든 방면들은 성경에 근거를 두며, 성경에 의해 통제를 받는다. 우리는 성경에서 말한 것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다 받아들이며, 성경이 말하는 것을 넘어선 사람의 생각을 다 거절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그분 자신과, 그분의 완전한 구원과, 사람을 위한 그분의 계획 혹은 경륜에 관한 그분의 계시를 우리에게 제공하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참되고도 객관적인 선물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정확성을 믿고, 그 무과실성을 견지한다. 

(2) 하나님에 관하여  
물론 성경의 주제는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은 저희의 신앙의 대상이다. 성경의 계시로부터 우리는 우리 하나님이 유일하게 한 분이시면서 삼일(triune)이심을 믿는다. 비록 이것이 우리 인간의 이해를 넘어선 것이기는 하나, 성경은 하나님이 유일하게 한 분(딤전 2:5)이시지만 동시에 셋(마 28:19)으로 구별되심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분은 영원히 아버지, 아들, 영이시다.
신성한 삼일성의 셋은 구별되지만 분리되지는 않는다. 주 예수님이 요한복음 10장 38절에서 우리에게,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이라고 말씀하신 것같이, 아버지가 계시는 곳에 아들 또한 계신다. 똑같은 상호내재가 또한 아들과 그 영 사이, 그 영과 아버지 사이에도 존재한다. 삼일성의 셋 가운데서 아버지는 그분의 이름이 내포하는 바와 같이 신성한 삼일성의 근원이시고, 아들은 아버지의 표현이시며, 그 영은 아들의 모든 어떠하심과 아들이 소유하신 모든 것의 실제화이다.
사도 바울은 삼일성의 셋을 믿는 이들의 체험과 관련지어 분명히 말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 13:13). 신약에 의하면 세 분 모두 - 아버지, 아들, 그 영-가 믿는 이들 안에 계신다(엡 4:6, 요 14:23, 골 1:27, 요 14:17).
참고로 항간에 우리가 양태론을 믿는다는 헛소문이 있으나 결코 그렇지 않다. 양태론은 이단이다. 양태론 자들은 신격의 셋, 즉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영원히 동시 존재한다고 가르치지 않고 그 셋은 다만 신성한 본질의 일시적인 나타남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성경을 따라서 신격 안의 영원한 구별과 세 위격의 동시 존재를 분명히 인정한다. 그러나 삼일성에 대한 우리의 강조점은 하나님의 본성을 교리적으로 분석하는 데 있지 않고 우리의 생명과 모든 것 되신 삼일 하나님을 우리 안에 분배받는 데 있다.

(3) 그리스도에 관하여

우리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인이라 불린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우주 안에서 가장 놀라운 분이시요, 우리는 그분의 이름으로 호칭되는 것을 즐거워한다.
그리스도는 영원히 하나님이시다. 영원 과거에, 창세 전에 그분은 하나님이셨고, 지금도 하나님이시고, 영원히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어느 날 그분은 사람이신 우리 주 예수가 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온전한 하나님이자 완전한 사람이다.
그분은 그분의 신성을 버리지 않고 처녀의 태속에 잉태되어, 아기로 나셔서, 이 땅에서 인생을 사셨고, 대속하는, 만유를 포함한 죽음을 십자가에서 죽으시어 우리의 구속을 성취하셨다. 그러나 그분은 사망에 매여 있지 않으신다. 그분은 사흘 후에 부활하셔서 생명주는 영(고전 15:45)이 되셨다. 그분의 신성의 능력이 사망을 삼키시고, 그분의 인성은 부활 하여 영화롭게 되셨다. 오늘 그분은 우리의 구속자이시자 우리의 생명이시다(골 3:4, 롬 8:10). 또한 그분은 승천하여 영광 안에 계시며 여전히 하나님이시면서 여전히 사람이시다. 그러한 분으로서 그리스도는 이제 우리의 구원의 주시요, 우리의 믿음을 온전케 하시는 분(히 2:10, 12:2)이시다.
지금 그분은 하늘에 앉아 그분의 하늘에 속한 사역을 수행하고 계시며 하나님의 경륜을 성취하고 계신다(행 5:31, 히 8:1-2, 롬 8:34). 우리는 그분이 곧 다시오실 것, 즉 하나님의 왕국을 가져 오셔서 천년왕국에서 온 땅을 통치하실 것(계 1:7, 11:15, 20:6)을 기다린다. 

(4) 성령(The Spirit)에 관하여
 우리는 삼일성의 셋째이신 성령이 동등하게 하나님이심을 믿는다. 아버지는 신성한 삼일성의 근원이시고, 그 영은 신성한 삼일성의 완결이시다.
아버지가 가진 모든 것과 아버지의 모든 어떠하심이 아들 안에 체현되었고, 아들의 모든 어떠하심이 그 영으로 실제화 되었다. 이러므로 그분은 실제의 영(요 15:26, 16:13, 요일 5:7)이라 불린다.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의 실제, 심지어 삼일 하나님의 실제가 성령이시다. 

(5) 인간에 관하여
인간은 영과 혼과 몸을 가지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되었다(창1:26, 살전5: 23). 그러나 아담의 타락 이후로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그들의 영이 죽고(엡2:1), 혼은 자아가 되고(마16:24), 몸은 육체가 되었음을 가리킨다(롬7:18).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인하여 값없이 의롭게 되고 생명 안에서 구원받을 때 사람은 원래의 창조목적을 이룰 수 있게 될 것이다(롬3:24, 5:10). 그것은 사람의 죽었던 영이 거듭나고(요3:6), 혼이 변화를 받으며(롬12;2, 벧전1:9), 몸이 그리스도의 영광의 몸의 형체로 변형되어(3;21) 영원토록 하나님을 표현하고 그분의 권위로 다스리는 것을 의미한다. 

(6) 구원에 관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위하여 온전하고 완전한 구원을 예비하셨다. 이 완전한 구원은 우리의 온 존재인 영과 혼과 몸을 포함한다. 사람은 타락하여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과, 영광의 무거운 요구를 이룰 수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요구를 이루셨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셨고, 우리를 그분과 화목케 하셨으며,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의가 되심으로 우리를 의롭다 하셨다. 그리스도의 구속에 근거하여 하나님은, 구속된 자들을 그분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그분의 영 으로 거듭나게 하신다. 이 모든 사실을 믿고 주님을 영접할 때 거듭나게 된다. 이제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을 소유한 믿는 이들은 일상생활 가운데서 매일의 구원을 누릴 수 있다. 하나님의 구원 안에서, 사람의 영은 거듭났고 혼은 변화되고 있으며 몸은 변형될 것이다. 영원한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은혜로 인한 것이지 우리의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불신자를 구원시키기 위하여 우리는 믿음과, 기도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강조한다. 로마서 10장 9-10절에 의하면, 사람이 구원받으려면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해야 한다.
 사람이 한 번 구원받았으면 그는 구원의 확신과 구원의 견고함 모두를 가질 수 있다. 우리가 한 번 구원받았으면 영원히 구원받은 것이다. 

(7) 교회에 관하여
그리스도 안의 모든 참된 믿는 이들로 구성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엡1:22-23, 골1:24) 우주적으로 하나이고(엡4:14), 그리스도의 몸의 표현인 지방교회는 지방적으로 하나이다. 즉 한 도시에 하나의 교회가 있다(계1:11).
여기서 말하는 한 도시에 하나의 교회 즉 지방교회의 의미는 예루살렘 교회(행13:1), 안디옥 교회(행13:10), 고린도 교회(고전1:2) 처럼 특정 지방에 거주하는 참되게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 모두를 그 교회 구성원들로 하는 지역교회를 가리킨다.
분명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반드시 지방교회 안에 있어야 한다고 믿지도 않으며 그렇게 가르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천주교 안에, 교파들 안에, 독립된 단체들 안에, 피로 씻음 받고 그리스도 안에서 영으로 거듭난 참된 믿는 이들이 많다고 인정하며 그분들을 주님 안에 있는 형제 자매로 받는다. 비록 우리가 다른 기독교 교단들과 분리되어 있지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 자매들과는 분리되어 있지 않다. 주님께 신실함으로 우리는 주의 간증을 위하여 교회의 유일한 입장 위에 서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위치를 좁고 배타적이고 분열적인 영으로 취하지 않는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받으셨듯이 모든 믿는 이들을 받는다. 

(8) 종말에 관하여
우리는 장차 이 세상 왕국에 종말이 오고 주와 그리스도의 왕국이 도래할 것을 믿는다(계11:15). 우리는 마지막 때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이 땅을 얻으시며, 그분의 영원한 왕국을 세우시기 위하여 재림하실 것을 믿는다. 우리는 이기는 성도들이 천년왕국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할 것을 믿고, 그리스도 안의 모든 믿는 이들이 새 하늘과 새 땅에 있을 새 예루살렘에서 영원히 하나님의 복에 참여할 것을 믿는다.

창간특집 - 지방교회 "그리스도의 몸 전체의 주목과 존중 존중 받을 가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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