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3. 19:25
성경말씀  

(롬6:5) 우리가 그분의 죽음과 같은 모양 안에서 그분과 연결되어 자랐다면, 또한 그분의 부활과 같은 모양 안에서도 그분과 연결되어 자랄 것입니다. 

 오늘의 만나

 
 로마서 6장 5절의 ‘그분과 연결되어’라는 말은 유기적인 연합을 암시합니다. 그 의미는 아주 풍성합니다. 그것은 피부 이식에 비유할 수 있는데, 외과 의사는 환자의 다리에서 살 한 점을 잘라내어 그의 팔에 붙입니다. 몇 일 후에 다리에서 잘라낸 피부는 팔의 살과 함께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생명의 성장이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는 주 예수님께 접붙임 되어, 그분의 생명과 그분의 풍성을 공급받습니다. 성장은 우리가 그분을 누릴 때 일어납니다. 접붙임은 살아 있는 나무에 살아 있는 나무를 접붙여야 하며, 연합은 연결뿐만 아니라 더 좋은 나무의 생명의 풍성을 누리는 가지와 함께 유기적으로 자라는 것입니다. ‘연결과 성장’은 성공적인 접붙임을 위해 필수불가결합니다. 만일 두 조각의 살점이 접붙인 후 함께 자라지 않는다면, 몇 일 내에 접붙혀진 피부는 썩게 될 것입니다. 함께 연결되는 것은 성장을 가져올 것이며 그럴 때 두 생명은 하나됩니다.
출처 : 생명메시지3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3. 16:05
성경말씀  

(요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은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오늘의 만나

 
 한 알의 밀이신 그리스도에 관한 이 그림의 의미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밀알은 구속과 관계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씨에는 피가 없기 때문입니다. 씨는 생명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밀알은 생명을 분배하기 위한 것입니다. 피 흘림이 구속을 위한 것인 반면, 생명을 분배함은 재생산을 위한 것입니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은 결과는 무엇입니까? 씨는 싹이 나고 자라서 많은 열매들을 산출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땅에 떨어져 죽은 유일한 밀알이셨습니다. 다음에 그분은 부활 안에서 발아하여 많은 밀알들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많은 밀알들입니다. 원래의 밀알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우리 안에 있을 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여! 여러분은 밀알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이 진리가 얼마나 보배로운지 아십니까? 구원받았을 때 나는 나의 죄들에 대해 회개하고 주님께 자백하고 그분의 피로 씻어 깨끗하게 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나의 죄들을 지고 가는 어린양만 되십니까? 처음에 내가 얻은 유일한 해답은 구원받았으므로 선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교훈은 하나님의 의도에 얼마나 미치지 못하는 것인지요! 구속을 위한 어린양은 또한 재생산을 위한 밀알이십니다. 죽음과 부활에 의해 이 밀알은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출처 : 생명 메시지2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9. 18:00
성경말씀 

(행2:24) 하나님은 그분을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습니다. 이것은 그분께서 죽음에 붙잡혀 계실 수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32) 이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살리셨으며, 우리 모두가 이 일의 증인들입니다. 

 오늘의 만나

 
사도행전 2장 24절과 32절에서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예수를 살리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10장 40절과 41절에서 그는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예수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신약은 주님을 한 사람으로 여길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셨다고 말하고, 그분을 하나님으로 여길 때에는 그분 자신이 스스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셨다고 말합니다. 이것 또한 그분의 이중 신분 즉 사람의 신분과 하나님의 신분을 증명합니다. 주님은 파괴될 수 없는 생명을 소유하신 하나님이시며 부활이십니다. 그분이 그처럼 항상 살아계신 분이시기 때문에 사망은 그분을 붙잡을 수 없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사망에 넘기셨지만 사망은 그분을 붙잡아 둘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사망은 그분께 패배당했고 그분은 사망에서 일어나셨습니다. 사도는 이 일의 증인이라고 말했습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9. 17:50
요16:21  여자가 해산할 때가 되면, 그때가 왔으므로 근심하지만, 어린아이를 낳으면, 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 때믄에 더 이상 그 고통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렘 13:33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심으로 그들의 자녀인 우리에게 이 약속을 온전해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것은 시편 제이 편에 기록된 것과도 같습니다. "너는 내 아들이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요한복음 16장에서 그리스도는 새로 태어난 아이로 우리에게 제시된다. .....그리스도는 부활 안에서 하나님의 맏아들 로태어나셨다. 요한복음 16장20절에서 여자는 무리 전체이며, 아이는 그리스도이고, 출생은 그분의 부활이다.(행13;33, 히 1:5 ,롬1:4) 사도행전 13장33 절에 따르면 주 예수님은 그분의 인성 면에서 부활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셨다. 그러므로 주님의 부활은 일종의 출생이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을때 태어 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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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9. 14:15
성경말씀  

(고후6:8~10) 영광과 모욕, 악평과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속이는 사람들 같으나 진실하고, 알려지지 않은 것 같으나 유명하고, 죽는 것 같으나, 보십시오,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것 같으나 죽지 않고, 슬퍼하는 것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것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것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오늘의 만나

 
 사도는 유대교도들과 다른 종교인들 그리고 다른 철학자들의 눈에는 속이는 자들 같지만, 하나님의 진리를 사랑하는 이들의 눈에는 참된 것입니다. 자신들을 전시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는 무명하나 하나님의 진리를 증거한다는 의미에서는 유명합니다. 그들이 박해를 당할 때는 죽은 것 같으나 죽님의 부활 안에서는 살아있습니다. 반대자들의 피상적인 이해로는 징계를 받고 있는 것 같지만 주님의 주권적인 돌보심 안에서는 죽음을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는 교회들의 소극적인 상황으로 말미암아 근심하는 것 같지만 그리스도의 족한 은혜와 부활 생명 안에서는 항상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물질적인 것에서는 가난했지만 영적인 풍성함 안에서는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했습니다. 사람의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신성한 경륜 안에서는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9. 13:00
성경말씀 

(고후 5:14~15)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합니다. 우리가 단정하는 것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셨으므로, 모든 사람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신 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 더 이상 자신을 향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대신하여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분을 향하여 살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오늘의 만나

 
 그리스도의 사랑의 죽음은 사도들이 그분을 위하여 사랑하는 삶을 살도록 강권되는 원동력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모두를 위하여 사형을 당하시고 우리의 대치물로 죽으셨으므로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 모두는 죽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에게 정해진 바 죽음을 죽을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뿐 아니라 그분의 부활로 말미암아 더 이상 자신을 향하여 살지 않고 그분을 향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5절의 주님을 ‘향하여’ 사는 것은 주님을 ‘위하여’ 사는 것보다 그 의미가 더 깊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산다는 것은 나와 주님이 여전히 둘이지만 주님을 향하여 사는 것은 결혼 생활에서 아내가 남편과 하나이듯이 내가 주님과 하나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출처 : 내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7. 19:25
성경말씀 

(갈2:20)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더 이상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십니다. ... 

 오늘의 만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분 안에서 죽었지만 이제 그분은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사십니다. 그분이 우리 안에서 사시는 것은 전적으로 그분이 생명 주는 영이 되심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천연적인 사람인 ‘나’는 온전케 되려고 율법을 지키려 하지만 하나님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분이 우리 안에서 표현될 수 있도록 우리가 그리스도를 살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경륜은 내가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못 박힌다는 것이고 또한 그분의 부활 안에서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사신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우리 생활에서 모든 것보다 율법을 더 높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산다는 것은 그분을 우리의 생활에서 중심과 모든 것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정 기간 율법을 사용하신 것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백성을 보호하시고 결국 그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영접하고 또 그분을 살아 하나님의 표현이 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셨기 때문에 율법의 기능은 끝났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 생활에서 율법을 대치하셔야 합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7. 19:10
성경말씀  

(요6: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사람 안에 거합니다. (63) 생명을 주시는 분은 그 영이십니다. 육체는 무익합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한 말이 영이요 생명입니다. 

 오늘의 만나

 
 “나도 그 사람 안에 거합니다”는 주님께서 우리의 생명과 생명 공급으로 우리 안에 거하실 수 있도록 부활하셔야 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육신이 되신 주 예수님은 부활 후에 또한 부활을 통하여 고린도전서 15장 45절에 분명히 언급된 것과 같이 생명을 주시는 영이 되셨습니다. 그분은 생명 주시는 영으로서 우리에게 생명과 생명 공급이 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하신 구주로 영접할 때 생명 주시는 영은 우리 안에 들어오시어 영원한 생명을 분배하십니다. 우리는 주 예수를 영접하지만 우리가 얻는 분은 생명을 주시는 영이십니다. ‘영’은 살아있고 실재하지만 매우 비밀스럽고 만질 수도 없으며 사람들이 이해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구체적입니다. 먼저 주님은 생명을 주시기 위해 그분께서 ‘영’이 되실 것임을 언급하셨습니다. 그 후에 주님은 그분께서 하시는 말씀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분께서 하신 말씀이 생명의 영의 체현이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제 주님은 부활 안에서 생명 주시는 영이시며 이 영은 그분의 말씀 안에 체현되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영을 사용하여 그분의 말씀을 받을 때 우리는 생명이신 성령을 얻습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7. 18:55
성경말씀 

(요20:17) ...“...그대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내가 나의 아버지 곧 여러분의 아버지, 나의 하나님 곧 여러분의 하나님께로 올라간다고 말씀하십시오.” 

 오늘의 만나

 
 부활 이전에 주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사용하셨던 가장 친밀한 호칭은 ‘친구’였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후에 그분은 그들을 ‘형제들’이라 부르기 시작하셨는데 이것은 그분의 부활을 통하여 생명을 나눠 주는 주님의 죽음에 의해 해방된 신성한 생명으로 제자들이 거듭났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한 알의 밀알로서 땅에 떨어져 죽으시고 자라나셔서 그분의 몸인 한 떡을 산출하시기 위해 많은 밀알을 맺으셨습니다. 그분은 아버지의 독생자 곧 아버지의 개인적인 표현이셨습니다. 아버지의 독생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많은 형제들 가운데 맏아들이 되셨습니다. 그분의 많은 형제들은 하나님의 많은 아들들이며 아들 안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의 단체적 표현인 교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긍극적인 뜻입니다. 많은 형제들은 아버지의 생명의 번식이며 신성한 생명 안에서의 아들의 번성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부활 안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 이뤄집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7. 18:45
성경말씀  

(마16:24~2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십시오. 왜냐하면 누구든지 자기 혼 생명을 구하고자 하면 혼 생명을 잃을 것이고,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자기 혼 생명을 잃으면 혼 생명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만나

 
 우리의 자아를 부인하는 것은 우리의 혼 생명 곧 천연적인 생명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단지 고난받는 것만이 아니라 또한 죽이는 것입니다. 그것은 범죄자를 죽이고 끝냅니다. 그리스도는 먼저 십자가를 지셨고 다음에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그분의 믿는이들인 우리는 먼저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고 그다음에 십자가를 집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우리의 자아와 천연적인 생명과 옛사람을 끝내기 위해 그리스도의 죽음의 죽이시는 역사 아래 머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자아를 부인하고 주님을 따르게 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하시기 전에 제자들은 주님을 외적으로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부활하신 후 지금 우리는 그분을 내적으로 따릅니다. 그분은 부활 안에서 생명주는 영이 되시어 우리 영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안에서 그분을 따릅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