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31. 05:00


'복음절기 행사' 시민들 관심 끌어


로고스코리아 등‘성경으로 돌아가자’컨퍼런스 갖고 시가행진도

로고스코리아, 한국복음서원, 성경진리사역원이 공동 주최한‘컨퍼런스 2007 복음절기 성경으로 돌아가자’가 지난 26일 주일 오후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1만6천여명의 성도들이 모인 가운데“우리의 일곱가지 선언”을 시작으로 성대히 개최돼 한국에서 회복교회의 세를 과시했다. ①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가장 위대한 선물임을 선언한다. ② 우리는 성경의 모든 말씀이 하나님께서 호흡해 내신 것임을 선언한다. ③ 우리는 모든 사람이 성경을 이해할 영(靈)을 받았음을 선언한다. ④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과 사람에 관한 모든 일들의 해답임을 선언한다. ⑤ 우리는 사람이 매일 성경을 읽도록 부름 받았음을 선언한다. ⑥ 우리는 모든 사람이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받고 온전하게 되도록 정해졌음을 선언한다. ⑦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사회를 변화시키고 나라를 축복할 것임을 선언한다. 성경으로 돌아가자의 주제에 대한 이 일곱가지 선언은, 성경전체가 하나님의 진리요, 복음임으로 곧 복음으로 돌아가자는 뜻이고, 진리는 생명이므로 복음을 전하는 것은 곧 생명을 가져오게 하는 것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주최측의 이날 행사는 일곱가지 선언에 이어 앤드류 유의 설교와 ‘성경말씀의 역사’라는 영상물 상영으로 이어졌다. 하나님은 신언자(예 언자)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을 통해 인류에게 생명의 말씀을 선물로 주었으나, 교회는 때때로 이 말씀을 가리우고 잘못 전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자신의 참된 종들을 통해 그 말씀을 밝히 드러내었으니, 그들이 바로 위클리프, 틴데일, 마일즈 커버데일, 마르틴 루터, 존 녹스와 칼빈 등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져 왔고, 20세기 들어 위치만 니에 의해 많은 부분이 회복되었음이 강조되었다. 또 최근 출판된 한국어 신약 회복역성경에 대한 소개와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 대학생, 배우, 치과의사, 변호사, 대학교수 등이 차례로 나와 성경을 읽음으로써 받은 은혜의 체험을 간증했다. 그리고 이날 간증은 해외 교포 및 외국인들도 참여했는데, 미국, 중국, 대만, 러시아, 몽골, 일본 등에서 온 성도들이 직장이나 집에서 성경을 읽고 받은 하나님의 놀라운 체험의 역사를 간증해 감동을 주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

가장 위대한 선물 하나님과 사람에 관한 모든 일들의 해답

이날 소개된 한국어신약 회복역성경은 첫째, 헬라어 원문을 정확한 단어와 문장으로 번역하되 일관성을 유지하여 직역했으며 둘째,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현대의 문체를 사용하였고 셋째, 9천개 이상의 방대한 각주를 달아 분문 해석을 도왔으며 넷째, 1만3천개 이상의 관주가 붙어있고 다섯째, 성경 각권의 개요을 첨부해 그 책 전체에 대한 호감도를 갖게 했으며 여섯째, 각종 도표와 지도는 신약성경 전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게 편집되었다. 이날 복음절기 행사는 실내행사가 끝난후 1만5천여명의 참가자들이 실내 체육관에서부터 코엑스까지 2Km를 악대와 기수단을 앞세우고 각 대대로 나누어 행진했는데, 이들은 행진하면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호흡이다. △성경은 영으로서 성경을 이해한다. △성경은 모든 일들의 해답이다. △성경은 매일의 필독서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양육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온전케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회를 변화시킨다. △하나님의 말씀은 나라를 축복한다라는 피켓과 프랭카드를 들고 행진구호를 외쳐 시민들의 눈길을 끌었다. 주최측의 이날 복음절기 행사의 복음행진은 그동안 정치적 시위만을 보아온 서울시민들에게 특이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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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30. 05:00



‘성경으로 돌아가자’ 대형 복음집회 개최


로고스코리아 등 26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서

오는 26일 서울 잠실 실내 체육관에서 “컨퍼런스 2007, 성경으로 돌아가자”(Recovered to the Bible) 라는 주제하에 약 1만5천명(해외 성도500여명 포함)이 모여 대규모 복음전파 행사가 진행된다. 이 행사는 한국복음서원, 로고스코리아, 성경진리사역원(이하 ‘주최측’이라 표기함)이 주최하는 것이다. 주최측 관계자에 따르면, 실내 체육관 복음집회 후에 약 1만 여명이 가두행진을 할 예정이다. 행진코스는 실내 체육관에서부터 코엑스까지 약 2km이며, 한국전력 앞 광장에서 해산할 예정이다. 많은 경우에 가두행진은 불만이나 요구조건을 공개적으로 표출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다. 그러나 이번 주최측의 가두 행진은 아주 평화적이고 특별하다고 한다.

주최측에 따르면 가두행진을 하는 목적은 복음의 영을 회복 하는데 있다. 그들은 긴 행렬을 이루고 그 중간 중간에서 크고 작은 북을 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도덕을 사랑하자는 표어를 선포함으로 포괄적이고 합당한 복음전파의 길을 여는 것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복음 행진기간 동안 이번 행사의 주제인“성경으로 돌아가자”라는 표어도 반복해서 선포할 예정이다. 이러한 주제아래서 다음의 일곱 가지 항목으로 세분화 된 선언문 내용을 보면 이번행사의 주된 의도가 무엇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1.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가장 위대한 선물임을 선언한다. 2. 우리는 성경의 모든 말씀이 하나님께서 호흡해 내신 것임을 선언한다. 3.우리는 모든 사람이 성경을 이해할 영(靈)이 있음을 선언한다. 4.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모든 일들의 해답임을 선언한다. 5. 우리는 사람이 매일 성경을 읽도록 부름 받았음을 선언한다. 6. 우리는 모든 사람이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 받고 온전하게 되도록 정해졌음을 선언한다. 7.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나라를 축복할 것임을 선언한다.

사실‘성경으로 돌아가자’ 라는말은 이번에 처음 나온 구호는 아니다. 멀리는 종교개혁자들도‘오직성경’을 외치며‘성경으로 돌아가자’라고 말했었다. 그렇다면 주최측이 말하는‘성경으로 돌아가자’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들의 설명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무오(無誤)하다는 믿음을 전제로 한 것이다. 오늘날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들이 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그런 가운데 성경의 절대 권위에 대한 불신이 우리의 근본 신앙을 손상시키는 심각한 요소들 중 하나임을 지적하는 성경학자들이 있다. 따라서 성경을 참되게 믿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성경의 무오성(無誤性)을 인정할 뿐 아니라 성경의 진리를 최고의 권위로 인정하는 정도까지 성경을 신뢰해야 한다.

둘째,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말은 매일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자는 제안이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처한 상황을 돌아보면 왜 이런 제안이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되는 면이 있다. 미국교회의 경우 성별된 근본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성도들 중에서 매일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는 사람은 5%미만이라는 통계가 있다. 한국교회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운동이 몸에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막상 실천에 옮기고 또 꾸준히 지속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전문가들은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려면 함께 운동할 친구를 만들라고 조언한다. 같은 원칙으로,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제안은 성경을 규칙적으로 읽을 수 있도록 그룹을 만들어서 읽자는 것이다.

셋째, 성경은 연구의 대상만이 아니라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영적 양식이다. 성경에서는“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한다(마4:4).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연구의 대상으로만 대하기 때문에, 성경 지식은 많은데 실제 삶 속에서 말씀의 힘으로 사는 체험이 부족하다. 따라서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말은 말씀을 영적 양식으로 섭취하고 소화하여 성경의 말씀에 따른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사는 데까지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영적 양식으로 섭취 소화하여 

말씀에 따른 정상적인 그리스도인 생활이 목표


 주최측은 대회에 참석한 모든 성도들에게 성경을 일년일독(一年一讀)하는 성경읽기표를 나눠주고, 포켓 성경(마태복음 요한복음)을 선물로 줄 모든 믿는 이들은 누구나 각지에서 적절한 숫자의 그룹을 형성하여 규칙적으로 함께 성경을 읽도록 도운다. 이러한 ‘성경공부 모임’ 의주된 초점은 그 모임의 구성원들과 그들의 믿지 않는 가족들, 친구와 친지들, 직장 동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데 있다.

앞서서 언급한대로 이번 행사 후반부에는 복음 대행진이 예정되어있다. 여러 사람이 큰 거리에서 행진한 번 한다고 해서 과연 복음이 전해질 수 있을까? 현재 한국의 복음화율은 25%를 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오히려 교인수가 줄어드는 추세에 있다. 선교학적으로 '사회 복음화 비율이 20%를 넘게 되면 불신자들과 관계를 형성한 다음에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이론이 있다. 오이코스 코리아 대표 이상만 목사는 “현재는 완전한 하나님처럼 사는 모습을 보지 않으면 전도의 효과가 없는 시대”라고 말한 다.

그렇다면 주최측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번 복음 행사를 기획했으며, 그들이 말하는 복음 전파는 과연 무엇인가. 주최측도 이런 행사를 통해 당장복음의 열매를 수확할 수 있다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대신에 이런 행사를 통해 성도들에게 복음의 영을 분발시킴으로 복음 전파에 대한 담대함을 갖고 생활 속에서 지속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도록 격려하는데 주된 목적이 있다.

통계상으로는 한국의 전체 인구 가운데 네 사람중에 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이지만, 생활 가운데서 불신자들에게 본이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할 때 이러한 목표는 분명히 공감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보여진다. 교회의 첫 번째 사명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사복음서의 각 권은 복음을 전파하라는 주님의 명령으로 마쳐진다. 주님이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 전 이 땅에 계실 때 제자들에게 주신 마지막 말씀도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는 것이었다(행1:8).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으며,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하라고 강하게 권면하고 있다. 따라서 복음 전파가 주님의 마지막 명령이자 교회의 가장 큰 위임이라는 것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특별히 주최측은 이번 행사의 주된 목표가 일부 성직자들이나 직분이 있는 사람들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온 성도들이 일어나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고, 또한 온 성도들이 복음을 전하는 대상은 25%의 기독교인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르는 75%의 이웃임을 분명히 했다.

오늘날 기독교계에서 복음 전파를 강조하지만, 불신자들에 대한 복음전파보다 기존의 그리스도인들을 끌어오는 ‘교회 바꾸기’ 또는 ‘수평이동’이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이러한 목표는 건전하며 올바르다고 생각된다. 한편 이번 행사를 주최하는 한국복음서원은 미국 ECPA(복음주의기독교 출판연합회)의 정회원이자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책자만을 전적으로 출판하는 ‘LivingStream Ministry(LSM)’의 출판물을 한글로 번역 소개하는 곳이다. 로고스코리아는 지난 20세기 교회 역사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신 풍성한 성경 진리 중에서 엄선된 소중한 진리들을 담은 책자를 무료로 배포하는 문서선교기관이며, 성경진리사역원은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에게 성경의 진리들을 가르치고,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성격을 훈련하여 유용한 복음전파자들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이다.

 

지방 교회들 '성경으로 돌아가자' , 교회연합신문 702호 다운로드 - (하단클릭)
교회연합신문702호070819.pdf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27. 05:00
 

「차앙쏘주파이-常受主派」의 기인과 변천,

또한 이단적인 본질

壹 작가의 배경  
貳 중국대륙에 있는 이른바「후한파」 
參 「차앙쏘주파이-常受主派」의 기인과 변천 
肆 이 상수(李常受) - 「차앙쏘주파이-常受主派」에 대한 반응  
伍 「중화대륙 행정 사역처-中華大陸行政執事站」의 이단적인 전단지  
陸 「차앙쏘주파이」와「중화대륙 행정 사역처」의 이단적인 잘못 
柒 결론 



 壹 작가의 배경

一 은혜를 받은 과정 

 나는 1931년 중국의 허난성 예쌘(河南省葉縣)에서 태어났다. 나의 증조모와 부모님 모두 주님을 믿으셨고, 나는 어려서부터 어른들을 따라서 집회에 참석하였다. 1946년 내가 15살 때에, 유월절 어린양에 관한 복음을 듣고 분명하게 구원을 받았다. 1951년에 주님을 사랑하는 자매와 함께 결혼을 하였고, 결혼 후에 온 가족이 주님을 믿고 주님을 사랑했기에 형제자매님들을 자주 접대하였으며, 집에선 자주 집회가 있었다.  

二 인도함을 받음으로 도움을 얻음 

내가 주님을 추구하며 사랑하는 과정 가운데서, 우리 지방에 있는 지방교회의 책임 형제님들이신 로허잉(婁和贏), 허위꽤(和玉貴), 우총싼(吳崇三), 꿔턘은(郭天恩)형제님들께서 나에게 많은 영적인 도움을 주셨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그분들을 통해서 나는「상해 복음서원」이 출판한 책자들인 《부흥보》,  《웟치만 니 메시지 기록》, 《열두 광주리》, 《교회의 정통》, 《무엇이 신약인가》, 《그리스도인의 50필수과정》등을 얻게 되었다. 이런 책자의 도움으로 인해 나는 하나님의 구원과 그리스도께서 생명되심을 알았을뿐만아니라, 교회와 그리스도인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경건함과 거룩한 생활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게 됐다. 그렇기때문에 후일에 있었던 「인민 공동 사회화-人民公社化」 그리고 3년간의 자연 재해 기간에, 의복과 식량이 부족하고, 생활이 극도로 빈곤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기꺼이 죽을지언정 국가와 단체의 물건을 훔치지도 않았고, 가져오지도 않았으며, 일등 국민이 되었었다. 

 三 「문화혁명」기간에 핍박을 받고 구금을 당함  

1966년부터 시작된 십년의 「문화대혁명」은 천만의 중국 인민들에게 큰 재해를 안겨주었다.단순하게 주님을 믿은 나와 같은 그리스도인도 피할 수가 없었다.「낡은 네가지를 파괴하고, 새로운 네가지를 세우자」 라는 흐름 가운데서, 우리의 성경, 찬송가, 영적인 서적등은 모두낡은 네가지로 보여, 몰수당하고 불태워졌다. 나도 「소, 귀신, 뱀, 하나님」이라 불리며, 비판을 당하고, 죄수가 쓰는 모자를 쓰고, 가두행진을 했다. 그럴 뿐만아니라 문화대혁명 말기에 이르러, 1975년 10월 4일에 나는 또 다시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나는 기독교의 「샤아췬파이-小群派」에 참석했다고 고발됐으며, 「현행 반 혁명죄」란 명목으로 5년을 선고 받았다. 형을 선고받은 후, 나는 시화쌘(西華縣)52농장에 보내져 노동 근무를 하게 되었다. 1980년대에 이르러서, 정부가 무고한 자와 잘못된 안건을 심사하던 중, 나는 무고죄로 표명되어 억울함을 깨끗이 씻게 됐고, 무죄가 인정되어 석방되었다. 

四 「문화혁명」후에 부흥됨 

내가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온 후, 여전히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따라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하였지만, 다만 성경과 영적인 서적이 부족한 어려움이 있었다. 이런 와중에 어떤 사람이 광쪼(廣州)에서 성경과 이 상수 형제님의 책인《경건을 훈련함》, 《영과 생명》, 《주님의 회복-먹음》, 《주님과 함께 삶》, 《마태복음 라이프스타디》 등을 가지고 왔다. 이런 영적인 서적들의 도움을 통해서, 나는 부흥되었고, 안에서 압박을 당하던 영이 해방됨을 받았다. 그럴뿐만 아니라 내가 전하는 복음의 내용이 이런 책자의 도움을 통해서 높여지게 되었다. 더이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믿으면, 복과 평안이 있게 되고, 지옥에 가지 않고 천당에 간다.”라고만 말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완전한 복음, 즉 은혜의 복음과 왕국의 복음을 전했는데,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의 죄로 하여금 사함받게 할 뿐만 아니라, 더더욱 우리로 하여금 거듭나게 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오게 했으며, 더 나아가 의의 열매를 맺어, 거룩하고 의로우며 하나님을 표현하는 생활을 하도록 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복음이 전해짐으로 우리 전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은혜를 받음으로 구원받게 됐다. 주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 중에, 나이든 분들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젊은이들이 있었다.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우리 지방에 있는 사회의 치안이 크게 전환됐고, 사회의 분위기도 크게 개선되었다. 원래 적지않은 불량한 청년들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교회안에서 주님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과 사회에서 모범적인 시민이 되었다. 본래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불화, 부부간의 다투고 싸움함, 심지어는 부서져버린 가정이, 우리가 복음을 전함으로 인해, 예수님을 믿고 회복됨을 얻어 행복한 가정으로 되었다. 이러한 예들이 우리 지방에서 셀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이와같이 자유롭게 복음을 전함으로 사람을 인도해 구원시키고, 정상적인 교회생활을 하는 국면은, 정부가「사인방-四人幫」을 분쇄시킴과, 「문화대혁명」을 거치며 이끌어 온 장기적인 소란함을 정상으로 돌이키고, 개혁을 통해 개방하기 시작한 후에 생겨난 것이다. 이런 좋은 국면에 대해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며, 또한 마음속에서부터 정부의 정책과 법과 실시하는 것들을 옹호했다. 

 貳 중국대륙에 있는 이른바「후한파-呼喊派」 
 

 一 「후한파」 운동에 대한 타격 

안타깝게도 이처럼 자유롭게 복음을 전하고, 정상적인 교회생활을 하는 국면은 얼마가지 못했는데, 나의 체험에 따르면 2년 반에 불과하다. 1983년 6월에 중앙 정부는 전국에 발표하기를, 반동 조직인 「후한파」에 엄중한 타격을 주고, 강력히 단속하라고 통보하였다. 정부가 발표한 통보에 근거하면,  “「후한파」는 종교란 깃발을 내걸고 불법적인 활동을 진행한 반동 조직으로, 그들은 미친듯이 외치며, 소란을 피우고,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며, 그들은 광란적이고,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롭게 하며, 그들은 귀신을 쫒아내고 병을 치료하며, 사람의 생명을 잔해하고, 그들은 소문을 만들어 민중을 유혹하며, 부녀자들을 속여 간음을 행한다.” 라고 언급했다. 그리스도와 교회란 깃발을 내걸고 성경을 위반하고 그히스도인의 신앙을 위반하거나, 심지어는 국가의 법을 범하는 일에 종사하는 극소수의 범죄자들로 인하여,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엄중한 질책을 받았다. 정부가 법에 근거하여 범죄 활동에 대한 타격을 가하는 움직임을 우리는 마음속으로부터 완전히 지지하는 바이다. 왜냐하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정부와 정권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세우셨음을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정부를 세우신 목적은, 바로 선한 일은 상을주고, 악한 일은 벌함으로(로마서13장), 우리로 하여금 매우 경건하고 정중한 가운데 조용하고 평온한 생활을 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디모데전서 2장). 그러므로 우리는 국가와 정부의 영도자들을 위해 자주 기도하고 간구한다. 

二 운동의 확대됨 

 그렇지만 이른바 「후한파」를 공격하려는 운동은, 시작할때부터 현저하게 확대 되어졌다. 중앙정부에서 통보가 나가자마자 각지의 공안국 기관들은,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이들을 붙잡기 시작했다. 우리 현을 예로할 때, 한 번에 수백명을 붙잡아 가서, 어떤이들은 대대에 갇히고, 어떤이들은 인민공사에 갇히고, 어떤이들은 현의 당교위에 갇혔는데, 왜냐하면 현에 있는 구치소와 조사대에 이처럼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가둬둘 큰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三 「후한파」를 판정하는 표준?

중앙정부의 통보는 한 가지고, 각지의 구체적인 집행은 또 다른 일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후한파」를 판정하는 표준인가? 각지의 표준이 같지는 않지만, 대체적으로 다음의 두 가지 표준을 따른다. 하나는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상수 씨의 저서를 읽는 것이다.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후한파」의 표준을 삼는 것은,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포함시켜 버리는데, 왜냐하면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기도를 할때,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하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말한 것을 따르면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3절) 라고 했는데,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사람은 아마도 구원받지 않았을 것이며, 그리스도인이 아닐 것이다. 나 자신도 자주 기도하는데, 자주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른다. 어떤때는 큰 소리로, 어떤때는 작은 소리로하는데, 공공장소에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수 있기에 작은 소리로, 혼자 있을때는 나의 영이 해방받고 훈현하기 위해서 큰 소리로 부른다. 그렇지만 내 자신이 「후한파」라는 것을 시인한 적이 없다. 나는 정부가 통보한 것과 같은 범죄에 의한 위법행위가 없었으며, 나는 단지 단순하게 예수님을 믿고,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그리스도인에 불과할 뿐이었다. 

다른 지방에서는 이 상수 형제님의 책자를 읽는 것을 「후한파」라 판정하는 표준으로 삼았다. 가정에서나 혹은 집회장소에서 이 상수 저서인 책을 찾으면, 이 사람들이 「후한파」라고 말했고, 이러면 잡혀가거나, 갖히거나 벌금을 내게 됐다. 이것은 참으로 불공평하고, 논리에 맞지 않으며, 우매하고 무지한 일이었다.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듯이 이 상수 씨는 광대한 그리스도인들이 공인하는 기독교의 교사이며 성경학자이다. 그의 저서는 모두 성경을 기본으로 사도의 가르침을 말하고 있다. 이런 저서는 수십종의 문자로 번역되어, 약120여 국가와 지역에서 전해지고 있다. 이런 문서가 가는 곳마다 모든 지역에서 적극적이고 정면적인 영향을 끼쳤다. 본래 생활과 일에 있어서 방향이 없던 많은 젊은이들이, 뛰어난 문학가, 엔지니어, 변호사, 교수와 의사등이 되었다. 심지어는 전에 행위가 좋지 않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교회생활 가운데 있음으로 인해서, 모범 국민이 되었다. 많은 지방교회안에는 셀수 없을 정도로 많은 아름다운 간증들이 있어, 그들의 생각이 새롭게 됨으로써 가장 높은 표준의 도덕을 살아낸 것들을 간증하였다. 예를 들어 행복한 가정생활, 어진 아버지와 효도하는 아들, 형제가 우애있게 서로 공경함, 많은 사람들을 도와 파괴된 결혼 생활을 새롭게 세워줌 등이 있다. 교회안의 믿는이들은 모두가 정상적인 인생관, 정당한 직업, 적극적이고 진취적임, 낙관적으로 진보해 감이 있다. 교회안에 있는 믿는이들은 기꺼이 남을 돕고, 규율을 잘 지키며, 이웃과 지역 주민들이 칭찬을 하는 자들이다. 세계 각처의 사회에 적극적이고 정면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오는 성경을 따른 건강한 가르침인 것을, 다만 중국에서 읽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란 말인가?  

우리 현에서 잡아간 수백명의 그리스도인들은 절대다수가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이요, 나라를 사랑하고 정부를 옹호하는 좋은 국민들이다. 그들 대다수는 조사와 심문을 받은 후에, 모두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갔고, 다만 우리 교회의 「장로」 5명만이 현에 있는 구치소에서 일년여 동안 갇혀 있었다. 일년 후에야 정식으로 수감됐고, 신속하게 엄중한 형벌을 받았는데, 우리들의 형기는 적으면 8년이고, 많으면 15년 이었는데, 나는 12년의 유기형을 선고 받았고, 죄명은 「반혁명 선전 소란죄」였다. 우리의 판결문으로부터 알수 있는 것은, 공안국 기관에선 「후한파」와 관계된 통보에서 열거한 것과 같은 것이, 우리에게서 어떤 형사에 관계된 범죄를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판결받은 죄명은, 이 상수 씨의 저서를 읽고 그리스도인의 집회중에 이 상수 씨의 《마태복음 라이프스타디》를 전파한 것이다. 이 상수 씨의 《마태복음 라이프스타디》는 전세계에서 각종 언어로 발행되어, 천만의 사람들이 읽고, 듣는 것인데, 그 가운데서 정부를 반하는 내용을 한마디라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cf. 1, 참고 : 위키피디아 - 호함파 링크 클릭 
cf. 2, 최근 중국 국가 이단단체 연구소와 중국 민간 이단단체 연구소에서
호함파 안에 위트니스 리와 관련성 없음을(제외시킴) 공식 자료를 통해 표명함-하단 자료 다운

Kaiwind Xiejiao List_k.pdf


四 억울함중에서 여전히 복종함 

우리가 이와같은 억을함을 당했다 할찌라도, 우리는 여전히 자신을 공의를 따라서 심판하시는 주님께 맡겼다. 우리는 정부를 원망하지 않았을 뿐만아니라, 더더욱 정부를 반대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정부는 우리의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내가 잠시 억울함을 당했지만, 나는 정부가 언젠가는 사실과 진상을 이해하게 될 것이며, 내가 첫번째로 형을 받고 감옥에 갇혔던 것과 같이 억울함을 씻어줄 것이라고 믿었다. 나는 형을 받은후에 카이풩쓰 허난성 제일 (開封市河南省第一) 감옥에서 복역하게 됐다. 복역 기간중에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신성한 생명은, 나로 가장 높은 도덕 수준의 생활을 살아 내도록 여전히 유지시켜 주었고, 이 외에도 규칙을 잘 지키며, 감옥의 모든 규정을 준수하도록 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12년 형기는, 감형을 받고 앞당겨져 석방되었다. 나는 1992년에 출옥했으며, 1993년에 미국에 와서 식구들을 방문했고, 오늘까지 거주하고 있다.  

五 정부가 어지러움을 바로잡기를 소망함

「후한파」에 타격을 가하려던 이 운동은, 정부의 본래 의도가 종교란 겉옷을 걸쳐 입은 범죄자들을 제거하려는 좋은 것이었겠지만, 이 운동이 진행됨과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선 도리어 너무나도 확대되었다. 이는 50년대의 반 우익 운동과도 같았다. 당시 극소수의 우익파 분자들이 정부를 반대하긴 하였지만, 수십만의 지식분자들을 우익파로 선을 그음으로, 그들에게 수십년간 고통을 안겨주었고, 나라 전체의 이익에도 손상을 입혔었다. 후에 정부는 소란된 것을 바로 세우며 잘못 그었던 우익파의 오명을 벗겨주었는데, 이것은 아주 합당한 것이었다. 이번의 「후한파」에 타격을 가하려던 운동은, 많은 무고하고 단순한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핍박을 받고, 휩쓸림으로 인해, 개혁을 인한 개방이래로 정부와 믿는이들간의 양호한 인상은 심하게 손상받게 되었고, 또한 극소수의 정부와 믿는이들간의 관계를 손상시키려는 자들에게 기회를 갖게 하였다. 정부가 합당한 인상을 유지하고, 더욱이 많은 믿는이들을 단결시키기 위해서, 이 일의 소란함을 바로잡는 것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六 타격 운동이 교회에 이끌어온 결과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형을 선고받았던 이른바 교회중의 「장로」들인 우리들은, 사실상 주님을 믿은지 비교적 오래됐고 연장한 자들이다. 그들은 성경의 진리를 비교적 잘 장비했고, 교회안에서 목양하고 돌보는 책임을 진다. 이들 교회안의 「장로」들이 갇힌 후에, 각 지방교회의 형제자매들은 목자가 없는 양무리가 되었으며, 마치 바울이 사도행전 20장에서 에베소의 교회에 경고한 말인 “나는 압니다.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들이 여러분 가운데 들어올 것이며, 그들은 양 떼를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끌어내어 자기들을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것을 말하는 사람들이 여러분 가운데서도 일어날 것입니다.” (행20:29~30)라는 것과 같다. 바울의 이 말은 완전히 허난성(河南省)에 있는 교회들에게 성취되었다. 이 후에 각종 이단과 사교(cult)단체 및 괴이하고 기이한 현상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하였다. 

 參 「차앙쏘주파이-常受主派」의 기인과 변천 

당시에 거의 모든 노련하고, 영적인 체험이 있는 인도하는 형제들이 모두 갇혔었기 때문에, 교회중의 젊은 형제들은 비록 열심이 있었지만, 성경의 진리와 영적인 체험이 부족했다. 1987년에 사탄은 먼저 교만하고 자신을 높이는 사람들을 유혹하여, 일어나서 자칭 주님이요, 아버지이며, 두번째 강림한 그리스도라고 하면서, 무지한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여 자신을 따르게 했으며, 더 나아가서는 그들에게 절하고, 기도하게 했으며, 그런 후엔 경배하고 기도하는 목표를 이 상수 씨에게 돌이켜서 이 상수 씨를 주님과 아버지라 불렀다. 

一 「청요-程有」의 이단적인 말:「아버지」를 숭배함이 산출됨  

「청요-程有」사건의 발단은 다음과 같다. 「청요-程有」란 사람은 본래 기독교의 루터파에 속했던 자로써, 1980년에 주의회복이 루싼썐(魯山縣)에서 일으켜진 후에, 그는 지방교회로 옮기어 집회를 했다. 그렇지만 이 사람은 계속하여 야심을 가진 사람으로, 머리가 되고 싶어했지만 기회가 없었다. 1983년에 이르러 교회가 「후한파」 타격하기의 운동으로 인해 핍박을 만남으로써, 인도하는 형제님들이 모두 감옥에 갇힌 후에, 그의 야심은 드러나게 되었다. 1987년초에 그는 꿈을 꾼후, 하나님으로부터 대계시를 얻었다고 선포하며 말하길 “하나님께서 이미 그를 「중화대지의 아버지」로 삼았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이러한 말은 즉시 동역자 형제님들에 의해 단호하게 거절을 당했다. 그는 벽에 부딪힌 후에도 여전히 단념하지 않고, 마침내 루싼(魯山)교회의 동역자를 떠나 스스로 안양(安陽)시에 가서 다른 지방의 책임자들을 모아 놓고 집회를 하였다. 집회중에 그는 먼저 자신이 루싼(魯山)교회에서 온 동역자로 앞선 형제님들을 이어서 왕국 복음을 전파한다고 선포한 후에, 그가 꿈에 받았다는 이른바「중화대지의 아버지」란 「대계시」를 말했다. 그는 그 집회를 「아버지를 아는 집회」라고 칭한다. 그때 집회중 예썐(葉縣)의 란챵스으(藍強石)는 적극적으로 청요(程有)를 아버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였고, 청요(程有)는 곧 바로 란챵스으(藍強石)를 「허난성(河南省)의 아버지」로 세웠다. 란챵스으(藍強石)는 또한 허난성(河南省)의 각 현과 시와 향의 모든 곳에 소위 말하는 「아버지」를 세웠다. 

 그 후에 그들의 방식은 바로 모든 믿는이들이 자기 샹(鄉)의 아버지를 향하여 기도해야 하며, 샹(鄉)의 아버지는 썐(縣)의 아버지를 향하여 기도하고, 썐(縣)의 아버지는 성(省)의 아버지를 향하여 기도하며, 성(省)의 아버지는 다시 청요(程有)를 향하여 기도해야만, 청요(程有)가 하늘에 있는 아버지에게 기도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하늘의 아버지가 너무 멀리 있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땅에 있는 아버지를 향해 기도해야만 가장 편리하다는 것이다. 

 나의 아내와 장모님은 모두가 경건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으로, 내가 비록 붙잡혀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우리 집에선 자주 그리스도인들의 집회가 있었다. 예전에 란챵스으(藍強石)는 예썐(葉縣)교회의 일원으로, 자주 우리 집에 와서 집회를 했었다. 란챵스으(藍強石)가 안양(安陽)에서 예썐(葉縣)으로 돌아온 후에, 예썐(葉縣)에서 「아버지를 아는 집회」를 똑같이 소집했다. 그는 나의 아내를 찾아와 말하길 “당신의 집에서 집회가 있습니다.”라고 했다. 나의 아내는 그가 이미 사악한 흐름을 받음으로, 이미 청요(程有)를 그의 아버지로 인정했음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우리집에서 집회하는 것을 금방 승낙했다. 이것이 우리 지방에서 처음으로 가진 「아버지를 아는(숭배하는) 집회」였음을 누가 알았겠는가. 

그 당시 집회중에 란챵스으(藍強石)가 데리고 온 한 무리는 실내에서 모이고, 우리 가족과 다른 사람들은 다만 밖에서 구경해야만 했다. 각지에서 이 집회에 참석한 사람이 적지 않았지만, 대다수는 중도에 떠나갔고, 소수만이 남았다. 그 때의 집회에서 「허난성의 아버지」인 란챵스으(藍強石)는, 료샤요(劉小友)를「예썐(葉縣)」의 아버지로 세우고, 또한 완쫑천(萬忠臣)을「쬬썐샹(舊縣鄉)의 아버지」로 세웠다. 그 집회중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챵스으(藍強石)를 에워싸고 찬양하며 노래를 불렀다. 

그 집회 후에 나의 아내와 장모님은 마음 깊은 곳에서 이런 사실을 참기가 어려워 죽을것만 같은 고통을 받았다. 아내는 말하길 “마치 파리를 먹어서 위속에서 참기 어려운 것과 같고, 또한 중병에 걸려 해를 당한 것과 같았다.”라고 했다. 어찌할 수가 없었기에 그녀들은 나의 두 딸들과 사위 두명이 함께 무릎을 꿇고,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주님께 기도한 후에야 서서히 안에서부터 안위함을 받았고, 누림을 얻게 되었다. 다음 날 그들은 마을 인근의 형제자매들과 함께 교통하고 기도를 한 후에야 서서히 깨닫게 된 것은, 어제의 집회에 악한 영이 들어와 악한 흐름을 이끌어 들였다는 것이다. 나의 아내와 장모님은 무식했기에, 성경에 대해 아는 지식이 아주 적었으며, 평시의 집회에선 거의 다른이가 말하는 것을 듣곤 했다. 그들은 옳고 그름에 대한 판별에 있어서 성경의 지식을 가지고 한 것이 아니라, 영과 생명의 느낌을 가지고 했다. 「아버지를 아는 집회」가 있기 전, 매번의 집회에서 집회 전과 후 모두 누림으로 가득했고, 영안에서 성령의 기름부음과 적셔짐이 있었으며, 생명의 공급으로 충만했었지만, 「아버지를 아는 집회」만은 맛이 완전히 달랐으며, 안에서는 마음을 찌르고, 고통으로 인해 죽을 것만 같았다. 기도를 통해서「아버지를 아는 집회」는 이단적인 것이며, 악한 영의 역사라는 것을 확증한 후에라야, 영안에서 안위함과 누림을 얻게 됐다. 이 때부터 우리 집은 란챵스으(藍強石) 무리들과 관계를 잘라 버렸고, 우리 집에 다시는 오지 못하게 했다.  
 

원래 그들 한 무리 가운데는 교회안에서 낮익은 얼굴이 적지 않았고, 우리 집은 그들이 자주 오던 곳이었기에, 그들을 거절하는데는 큰 싸움을 체험해야만 했었다. 나의 아내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매번마다 그들이 우리 집에 오면, 그들을 쫓아 내었다. 몇번을 이렇게 하자 그들의 분노를 일으키게 됐고, 그들의 저주를 이끌어 오게 됐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우리 집을 떠나면서 저주하기를 “이 집이 황폐함 만을 당신들에게 남겨 주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사람에게 거짓말함과 저주함은 그들이 이곳에서 이단을 전파하면서 자주 사용하는 수법이 되었다. 

二 변화됨의 과정 

 우리 집에서 거절을 당한 후, 청요(程有)와 란챵스으(藍強石) 무리들은 다른 많은 지방으로 가서 이른바 「아버지를 아는 집회」를 열어, 각 지방에 있는 무지한 믿는이들을 미혹하였다. 이런 후에 그들의 집회중, 남녀가 서로 끌어앉고, 입을 맞추며, 발을 씻겨주고, 춤을 추면서 그들이 세운 「아버지」에게 경배했다. 이들은 우상을 숭배하는 이단으로 전락했을 뿐만아니라, 더더욱 수치심과 체통을 완전히 상실해 버렸다. 그 후에 그들 가운데서 음란한 일이 있었음을 듣게 되었다. 이는 마치 사도 바울이 성경 고린도전서 10장에서 경고한 바와 같이, 우상숭배는 음란과 하나로 연결되어지는데, 이 일이 「아버지」를 숭배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완전히 성취되었다. 

 三 「아버지가 됨」에서 「왕이 됨」  

이 후에 청요(程有)와 란챵스으(藍強石) 무리들은, 또 다시 자신을 인자라 칭하고, 두 번째 강림하신 예수님이요, 은밀히 강림하신 그리스도시며, 왕국의 문이기에, 그들을 통하지 않고는 왕국안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하며, 그들이 바로 천국의 왕이기에 기적을 행할 수 있는 권위가 있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집회 가운데서, 즉시로 어떤 사람들이 그들을 향해 무릎꿇고 경배하며, 그들을 주님과 왕이라 칭했다. 

그들이 이른바 「왕」이라 칭하는 자들이 그들의 집회에 오게 되면, 그들은 마태복음 21장 5절을 인용하여, 주 예수님에 대해 말한 말씀을 그들에게 인용하여 말하길 “보아라, 너의 왕께서 너에게 오신다. 그분은 온유하시어, 나귀와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인 어린 나귀를 타셨다.”고 했다. 더군다나 그들의 「왕」은 실재로 사람을 나귀로 삼아, 사람위에 올라 타고 왔다 갔다 하였다. 예썐(葉縣)의 어느 촌에서 있던 집회중, 그들은 작은 정원에 모여서, 대문을 잠가버리고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하였기에, 밖에 있는 사람들은 다만 안에서 환호하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후에 어떤 사람이 담 밖에 있던 나무 위에 올라가서야, 그들이 세운 「왕」이 사람위에 올라 타고 왔다 갔다 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왕이 오셨다고 그를 환영하게 하는 것을 보았다. 

 왕이 되려고 꿈 꾸던 이 사람들은, 후에는 마침내 왕이 되기 시작했다. 왕이 된 사람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을 위해 왕의 침대와 왕의 베개와 왕의 의자, 심지어는 왕비를 예비하게 했다. 게다가 밥을 먹을 때, 사람들이 그에게 밥을 올리면서 “아버지 왕이여, 진지 드십시요.”라고 말하게 했다. 더군다나 「아버지, 왕」에게 밥을 올리는 자는 뜻밖에도 그의 육신의 부친이었다. 얼마나 황당하고, 우매하며, 웃기는 일인지! 「아버지가 되고, 왕이 된」이들은 이런 정도로 변해버렸고, 신앙상에 있어「사람을 숭배함」이 있을 뿐만 아니라, 「우상을 숭배함」으로 이단이 되어 버렸다. 더군다나 진짜 왕이 되고 싶어 했고, 정치적으로 반동분자가 되었다. 그럴 뿐만아니라 그들은 도덕적으로 부패하였고, 윤리적으론 패망함으로써, 타락하여 사교(cult)가 되어 버렸다. 그들이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고, 망령되이 행한 것들은, 금방 정부의 공안국 기관들의 주의를 이끌었다. 1987년 말에 청요(程有)와 란챵스으(藍強石)등 아버지가 되고, 왕이 됐던 한 무리들은 모두가 붙잡혀 형을 선고 받은 후 감옥에 갇혔다.  

四 「아버지가 되고, 왕이 됨」에서「창쏘(常受) 주님」、「창쏘(常受) 왕」을 숭배하게 됨.  

이 사악한 이단의 운명은 그것이 전해지게 될 때, 거짓 그리스도가 나와 사람들을 미혹함으로, 각지 교회에 의해 이단으로 판정되기 때문에, 마땅히 짧아야 하고, 더군다나 자신들 스스로를 「아버지」와 「왕」으로 세운 자들이 붙잡혔고, 그들을 따르고 미혹을 받던 자들이 점차적으로 줄어들었기에, 이 사교(cult)가 마땅히 속히 사라져야 하며, 사람들이 신속하게 그들과 분리되어 그들이 잘못됐음을 단정했어야 했지만, 사실은 이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1988년에 이르러서 청요(程有)와 란챵스으(藍強石)를 따르는 소수의 사람들이 머리와 얼굴을 바꾸어, 그들이 「아버지」와 「왕」으로 부르던 것을 이 상수(李常受)씨 에게로 옮기어, 예전에 청요(程有)등의 사람들을 주님과 아버지와 왕이라 부르던 것을, 지금은 이 상수(李常受) 씨를 주님과 왕과 아버지라 불렀다. 그리하여 소위 「창쏘(常受) 주님」、「창쏘(常受) 왕」이란 칭호가 생긴 것이다. 이후부터 그들의 집회 가운데서, 그들은 시편 150편의「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를 「창쏘(常受) 왕을 찬양할지어다.」로 모두 바꿨다. 그들의 기도에서도 창쏘(常受)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기도했고, 사람들에게 침례를 줄 때도 창쏘(常受)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침례를 주었다.  

이는 참으로 배후에 있는 사탄이 이단적인 사람들을 이용하여 만들어낸 가장 독하고 가장 궤계한 계모로써, 대적의 일석이조를 노린 파괴시킴을 위한 수법이다. 그들은 이 상수 형제님께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높은 명성이 있음을 알고, 이 수단을 사용하여 한면으론 더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여 그들의 이단을 따르게 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이 상수 씨가 사람들에게 그를 숭배하게 했다고 느끼게 하여 이 상수 씨의 명성을 손상시키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 수단은 효험이 있어서, 1988년에 성경의 진리가 분명하지 않고, 주님을 사랑하지만 뿌리가 없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단을 따르게 됐다. 어떤이들은 우매하고 무지함으로 심지어는 “당신들이 이 상수 씨의 저서와 메시지를 읽으면서, 어떻게 그를 주님이라 부르지 않는가? 당신들이 그를 주님이라 부르지 않는 것은 양심이 없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밖에도 국내외에서 이 상수 씨를 반대하던 사람들은 기회를 붙잡아 이 상수 씨를 공격하는 문장을 써서 말하길, “이 상수 씨는 개인숭배를 조장하고 있다. 중국에서 이 상수 씨를 하나님으로 삼아 숭배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아마도 대륙의 적지않은 맹종자들은 이 상수 씨의 개인 숭배에 대한 태도에 대해 참으로 몰랐을 것이다. 이런 문장들을 써서 기회를 붙잡아 이 상수 씨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만약 진지하게 이 상수 씨의 저서를 읽어보았다면, 이 상수 씨의 태도에 대해 분명하였을 것이다. 

肆 이 상수(李常受)-「차앙쏘주파이-常受主派」에 대한 반응  

1988년에 대만의 모 그리스도인이 허난성(河南省)의 어느 지방에 가서 친척을 방문하여, 그곳의 집회에 참석했는데, 바로 「차앙쏘주파이-常受主派」의 집회였기에 친히 그들의 이단적인 말을 듣게 됐고, 그들의 우매하고 무지한 방식을 친히 목도하게 되었다. 대만으로 돌아온 후 그는 문장을 써서 홍콩의 기독교 출간지에 기고했다. 그 출간지의 편집인은 이 상수(李常受)씨의 오랜 친구였기 때문에, 그는 출간지 하나를 이 상수씨에게 부쳐 주었다. 이 상수씨는 관련된 보도를 보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하길 “사람이 어떻게 이리도 우매할수가 있는가? 혹시 어떤 사람이 소문을 만들어 공격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1989년에 허난성(河南省)의 한 형제가 추수감사절 기간에 미국에 와서 이 상수 형제님을 만나, 허난성(河南省)에 나타난 이단의 유래에 대해서 상세하게 말씀해 드렸을 때에야, 중국 대륙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음을 이 형제님은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 형제는 더 나아가서 이 이단적이고 사악한 말의 나타남으로 인해 허난성(河南省)의 많은 사람들이 미혹을 받았는데, 특히 초신자들이 그러했음을 말씀드렸으며, 미혹을 받은 형제자매들과, 정통적인 교회생활이 중국대륙에서 유지되어 가게 하기 위하여, 이 상수 형제님께서 비디오를 통해서나, 혹은 방송을 통해서 친히 진리를 천명하시여, 사람을 경배함이 틀렸다는 정확한 메시지를 발표해 내실 것을 건의 하였다. 이렇게 할때 한 면으론 미혹을 받은 무지한 사람들을 되돌이킬 수 있으며, 또 한 면으론 사실을 분명히 밝혀낼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 상수(李常受) 형제님은 이 사실을 아신 후에,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한 면으론 중국대륙의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하시며, 한 면으론 해결할 방법을 찾으셨다. 1991년 여름 훈련을 마치신 후, 친히 비디오 테이프를 제작하셨는데, 이 테이프의 전체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내가 전해들은 확실한 소식으로는 “여러분들이 그 곳에서 나를 신으로 삼아 경배하며, 나를 주라 칭하고 왕이라 칭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느낄때 이 말은 너무나도 합당하지 않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여러분들은 사람을 신으로 삼아 경배해선 절대로 안 됩니다. 

 성경 가운데 사도행전 14장 11~18절은 말하기를『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소리를 높여, 루가오니아 말로 “신들이 사람의 모양으로 우리에게 내려오셨습니다.”라고 하며, 바나바를 제우스라 부르고, 바울이 말하는 데 앞장을 섰기 때문에 바울을 헤르메스라 불렀다. 그 도시 밖에 있는 제우스 신전의 제사장이 황소들과 화환들을 가지고 성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두 사람에게 제사를 지내려고 했다. 사도 바나바와 사도 바울이 듣고서, 자기들의 옷을 찢으며 무리 가운데로 뛰어 들어가서 외쳤다. “여러분, 왜 이런 일을 합니까?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심성을 가진 사람입니다.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만물을 지으신 살아 계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나간 세대에서는 모든 민족이 자기들의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두셨으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비를 내려 주시고 결실하는 계절을 주시는 선한 일을 주셔서,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채우셨습니다.” 두 사람이 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서, 자기들에게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여기에 있는 성경말씀은 은혜를 사람들에게 이끌어간 사도들일찌라도, 사람이 만일 그들을 신으로 삼아 숭배하려할 때, 사도들은 허락하지 않았으며, 그들을 금지시켰음을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 말씀을 통해서 이와 유사한 일을 완전히 멈출 것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사람을 신으로 삼아 숭배하거나, 혹은 그를 주 또는 왕이라 칭하는 것은 우상숭배하는 것과 동일하며, 더욱이 하나님을 모독하며, 하나님께 득죄하게 됩니다. 나는 다시 한번 여러분들이 이 말을 받아들일 것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이 일을 완전히 멈추도록 하고, 다시는 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여러분들에게 요청하는 것은, 행여 다른 곳에서도 이런 상황이 있다면, 신경을 좀 써서 전달해 줄 것은, 그들도 역시 반드시 멈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앞에서 교정함이 있을때에야만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은혜로 대하시고, 여러분들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도 이 곳에서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1991년 여름 이 상수 형제님의 녹음테이프 제작  

이 상수 형제님께서 사도행전 14장을 근거로한 메시지는 성경의 진리를 천명하셨고, 사람을 경배하며 사람을 주님이라 칭하는 방식은 우상을 숭배함과 다름이 없고, 하나님께 득죄하며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임을 지적하셨으며, 또한 간곡하며 진지하신 말씀으로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즉시 멈출 것을 권면하셨고, 더 나아가 하나님앞에서 진지한 회개가 있어야만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 비디오 테이프는 여러 통로를 거쳐, 허난성(河南省) 성도들의 손에 전달되었으며, 모두가 자세히 들은 후, 다른 지방의 미혹을 받은 형제자매들과 함께 교통을 가짐으로, 초신자들과 진리가 분명하지 못한 적지않은 성도들을 돌이키게 되었다. 
( http://local-church.tistory.com/107 )

그렇지만 이단적임과 악한 말을 한 자들에게 있어선, 이런 말이 귀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들은 이 상수 씨의 이름을 다만 사기를 치고, 무지한 사람들을 꼬여 그들의 이단을 따르게 하며, 그들의 구주이신 주 예수님을 부인하게하는데 사용함에 불과했다. 이 상수 씨의 공개적인 성명과 태도를 표명한 이후에도,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더욱 힘을 다해서 그들의 이단을 전파해 갔다. 그들이 한면으론 이 상수 씨의 이름을 사용해서 사기를 쳐서 따르는 자들을 우롱했고, 한면으론 이 상수 씨도 그들이 보았다는 「사람을 주라 칭함」에 대한 「빛」이 어떠한 것임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현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므로 더 이상은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오늘 날 이 사람들 가운데선 누가 말하고 누가 인도를 한다면 그가 바로 「주님」이기에, 모든 사람들은 마땅히 그를 향해 무릎을 꿇고 경배해야 된다. 

伍 「중화대륙 행정 사역처」의 이단적인 전단지 

「차앙쏘주파이-常受主派」 이단은 안훼성(安徽省)에서 소위 말하는 「중화대륙 행정 사역처」로 변종하였다. 이 조직은 안훼성(安徽省)의 샤오썐(肖縣)의 왕 용민(王永民)을 으뜸으로 성립된 것이다. 본 조직은 1995년 4월에 전국 각지의 도시에서 많은 반정부적인 이단의 전단지를 배포했다. 본 전단지의 주제는 일부러 과격한 말을 하여 남을 놀라게 하기 때문에,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깜짝 놀라게 한다. 그 주제는 「중국의 13억 인민에게 고하는, 세상을 놀라게 할 폭발적인 뉴스의 책」이고, 출판자는 「우주의 중심 미국 로스엔젤레스 사역처, 중화 대륙 지방교회 사역처 지사 」이다.  

본 전단지의 내용은 저속적이고, 또한 성경을 완전히 위배하며,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위배하는 이단적이고 사악한 것이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어린양이시요, 주님이시요, 그리스도이시요, 생명이시요, 길이시요, 세상의 빛이심을 믿는다. 본 이단의 전단지는 뜻밖에도 사람을 어린양, 주님, 그리스도, 생명, 길, 세상의 빛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에 개한 모독일 뿐만 아니라, 성경에 대한 비방함이기도 하다. 본 전단지는 반 정부적이고, 사회의 양호한 풍속과도 위배되며, 더욱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가르침과 배치되는 경향이 현저하게 나타난다. 

陸 「「차앙쏘주파이-常受主派」와「중화대륙 행정 사역처」의 이단적인 잘못됨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완전히 성경에 근거한다. 우리는 성경 전체를 하나님의 완전하신 계시요, 매 글자마다 성령께서 묵시하신 것임을 믿는다. 우리는 성경이 유일하고도 둘도 없는 신앙의 내용과 표준임을 높이고 있다. 또한 우리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과 역사하심을 중심적인 내용으로 삼고 있다. 우리는 성경에 근거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하시고 무한하신 하나님이심을 믿는다. 그분은 이천년전에 동정녀를 통해서 태어 나셨고, 육체가 되심으로 참되시고 죄가 없으신 하나님 사람, 곧 하나님이시자 사람이신 분이 되셨다. 그분은 십자가상에서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시기 위해서 죽으심으로 법리적인 구속을 완성하셨다. 그분은 죽으신지 3일만에 부활하시고 하늘에 오르시어 주와 그리스도로 세우심을 받으셨다. 그분은 부활안에서 생명주시는 영이 되시어, 그분을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안으로 들어가시어, 유기적인 구원하심의 역사를 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유일한 경배의 대상과 생명의 근원으로써 높인다. 

 우리가 한 단체와 한 가르침 혹은 신앙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위배한 이단인지의 여부를 판정하기 위해선, 반드시 성경에 근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판정시에 사람의 의견과 혹은 종교의 전통에 근거해선 안 된다. 성경은 우리 신앙의 준칙이며, 유일하고 둘도 없는 표준이다. 

 一 「아버지를 인식함」、「아버지를 경배함」의 잘못됨 
 

성경의 계시에 근거하여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모두가 평등하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기 때문에, 창조받은 모든 사람은 다 평등하다. 사람이 타락한 후에 타락한 죄인은 하나님 앞에서 역시 평등한데, 왜냐하면 모든 사람마다 그리스도의 구속하심과 구원하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주님을 믿고 거듭남으로 구원받은 후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집 안에서 한 식구가 되었기에 자연적으로 평등하게 되었다. 오직 하나님만이 믿는이들의 아버지시고,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주님이시며, 모든 믿는이들은 다 형제들이요, 혹은 자매들이다. 주 예수님은 마태복음 23장 8~10절에서 제자들에게 분명하고도 명백하게 말씀하시길 “그러나 여러분은 랍비라 불리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선생은 오직 한 분이시며, 여러분은 모두 형제입니다. 또 땅에 있는 그 누구를 여러분의 아버지라 부르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분이십니다. 또한 지도자라 불리지도 마십시오. 여러분의 지도자는 오직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이십니다.” 라고 하셨다. 신약 성경의 계시를 따라, 하나님의 교회안에서 목양함과 돌봄의 책임을 지는 「장로」와 사무적인 책임을 지는 「집사」외에는 다른 어떤 종류의 직분도 없다. 

로마 천주교의 타락은 바로 정치와 종교를 결합시키고, 이교도의 실행을 교회안으로 이끌어 들임으로 종교적인 성직자란 계급 제도를 산출한 것이다. 천주교안에는 아래로부터 위에까지 소위 말하는 「평신도」, 「신부」, 「주교」, 「대주교」、「홍의주교」, 「교황」등의 다른 계급들이 있다. 「평신도」는 하나님을 향해 기도할 수 없어서, 반드시 소위 말하는 성직자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주님의 회복은 마르틴 루터로부터 시작되었는데, 바로 성경으로 돌아가며, 또한 성경에서 계시한 합당한 실행들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 많은 합당한 실행중의 한 가지 항목이 바로 믿는이들의 지위가 하나님의 집인 교회안에서 평등하다는 것으로,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모두가 그리스도의 몸안의 지체들이고,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을 수 있으며, 모두가 하나님을 향해 기도할 수 있고, 또한 모두가 자신의 분량을 따라 교회안에서 자신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청요(程有)와 란챵스으(藍強石)등과 같은 사람들의 잘못은, 바로 교회를 뒷걸음치게 하여 옛길로 가게 하고, 천주교에서 실행한 것을 다시 실행한 것이다. 그들의 참된 목적은 자신을 높임으로 다른이들을 통제하고, 모든 믿는이들이 하나님을 향해 기도할 수 있는 권리를 탈취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타락한 이 사람들을 「아버지」로 인식하게 하고, 사람들을 유혹하여 그들을 따르고 숭배케 하려는 목적에 도달하려는 것이었다. 

 二 「사람을 높임」, 「사람을 신격화함」, 「사람을 경배함」의 잘못  

다음으로 청요(程有)와 란챵스으(藍強石)등과 같은 사람들은 그들의 망령됨으로 인하여, 먼저는 자신을 높이고, 자신을 신격화하며, 그들이 주님이시고, 그리스도시며, 왕국의 문이라 하고, 사람들을 속여 그들을 경배하도록 하였다. 그들이 사람들의 경배함을 받을때, 황당하게도 말하길 “당신은 나를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계모가 이루어지지 않자 그들은 계략을 바꾸어 이 상수 씨를 높이고, 이 상수 씨를 신격화하고, 이 상수 씨를 주님과 그리스도라 칭하면서, 이 상수 씨를 향해서 찬양하고 경배하게 함으로써 지속적으로 사람들을 미혹하여, 사람들을 속여 그들을 따르게 하며, 그들의 잘못된 그물에 걸려 들게 했다. 

성경의 계시에 따르면, 다만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 이 삼일 하나님만이 우리들의 높임과 경배를 받으실 수 있다. 그분께서 우리를 창조하셨고, 그분께서 우리를 구속하셨으며, 그분께서 우리를 거듭나도록 하셨기 때문에, 오직 그분만이 우리의 주님이시요, 우리의 아버지시요,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그들의 지위가 얼마나 높든지, 은사가 얼마나 크든지, 능력이 얼마나 강하든지를 물론하고, 어떤 사람들도 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지위를 대치할 수가 없고, 어떤 사람들의 경배도 받을 자격이 없다.  1 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신앙을 지키고 유일하신 우리 하나님만을 단일하게 경배하기 위해, 로마 황제 가이사를 주님과 신이라 칭하는 것을 거절하고, 엄청나고도 잔혹한 핍박을 참아냈다. 그들 중에 어떤이는 사자굴속에 던져지고, 야수 경기장에 넣어짐으로 순교했다. 현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타락하여 우리와 똑같이 죄가 있는 사람을 경배하는 이런 정도로까지 무지할 수가 있단 말인가?  

앞에서 이 상수 씨의 메시지에서도 서술했듯이, 성경 가운데서 은혜가 가득한 사도들을 하나님으로 삼아 경배하는 것 조차도 절대적으로 안 된다. 사람을 하나님으로 삼아 경배하는 것과 그를 주님이라 칭하고, 그를 왕이라 칭하는 것은 우상숭배와 다를바 없으며,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께 득죄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사도행전 14장외에도, 사도행전 10장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을 언급했다. 그 곳에서 사도 베드로가 이태리 군대의 백부장인 고넬료의 집에 와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하였다.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의인이었고, 베드로가 들어가자마자 고넬료는 그를 영접하며, 그의 발앞에 엎드려 절하였다. 성경에서 기록하는 것은, 베드로가 그를 일으키며 말하길 “일어나십시오. 나도 역시 사람입니다.”고 하였다. 

 성경이 사람을 경배하는 것을 금지할 뿐만 아니라, 천사를 경배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성경은 허락하지 않는다. 성경의 계시록 19장에서 저자인 요한이 말하길 「그 천사가 또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기록하십시오. 어린양의 결혼 잔치에 초대받은 그들이 복이 있습니다. ” 그는 또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참된 말씀입니다.” 내가 그 천사에게 경배하려고 그의 발 앞에 엎드리니, 그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이러지 마십시오. 나는 그대와 함께 노예 된 자이고, 예수님의 증거를 가진 그대의 형제들과 함께 노예 된 자입니다. 하나님께 경배하십시오.” 」라고 했다. 계시록 22장 8절에서도 성경이 마치려하던 때에 요한은 말하길 「나 요한은 이것들을 듣고 보는 사람입니다. 내가 듣고 보았을 때에 이것들을 내게 보여 준 천사의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천사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이러지 마십시오! 나도 그대와 동일한 노예이며, 그대의 형제 신언자들과 이 두루마리에 있는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과 동일한 노예입니다. 하나님께 경배하십시오.” 」라고 했다. 이 구절들로부터 우리는 주님의 제자들, 주님의 사도들, 주님의 모든 믿는이들, 그리고 주님을 위해 봉사하는 모든 천사들이 다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에, 모두 다 우리의 경배하는 대상이 될 수가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들의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심을 분명하게 볼수 있다.  

성경의 신성한 계시에 근거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인 모든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난 것이며,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의 생명이 있으며(요1:12~13), 또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한다(벧후1:4). 우리가 만약 신성한 생명안에서 자라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가득할 때(엡4:13), 현시대에 그분의 신성한 생명으로 하여금 우리에게서 부터 살아나오게 하며, 이는 바로 그리스도를 살고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으로써, 마치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 1장 20~21절에서 선포한 것과 같이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께서 확대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있어서 삶은 그리스도이고,”이다. 주님께서 오실 때에 우리는 반드시 그분을 닮을 것인데, 왜냐하면 우리는 그분을 그분의 존재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영광의 소망이 하나 있는데, 바로 주님을 닮는 것이요, 생명과 본성, 그리고 표현에 있어서 우리의 주님과 똑같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분을 닮음에 있어서, 다만 생명과 본성에 있어서만 이고, 신격(지위)에 있어서는 아니다. 우리는 그분의 신격 즉 그분의 만유를 창조하시고 사람들의 경배를 받으시는 높으신 지위에는 영원히 동참할 수 없다. 신격에 동참하고자 생각하고, 하나님과 동등하려고 하거나, 혹은 하나님의 유일하신 경배를 받으시는 지위를 탈취하려는 것은, 바로 사탄, 마귀의 배역한 노선으로써, 마지막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과 엄중하신 처벌을 받게 되는데, 천사도 피할 수 없었듯이, 어떤 사람도 역시 피할수가 없다. 

 三 「왕이 됨」의 잘못됨  

청요(程有)와 란챵스으(藍強石)등과 같은 사람들은, 그들이 「아버지」이고, 「주님」이라 선포했을 뿐만아니라, 그들은 또한 「왕국의 왕」이라고 선포 했다. 더군다나 집에서 실재로 왕이 되어, 자기를 위해 왕의 침대와 왕의 보좌를 예비했다. 이것은 황당할 뿐만아니라 웃기는 것이요, 또한 인류의 정권을 배반하는 행위이다. 그들은 먼저 자신이 「왕국의 왕」이라 말한 후, 다음에는 이 상수 씨가 「왕국의 왕」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우리가 성경에 근거해 보면, 자신 혹은 다른 사람을 「왕국의 왕」이라고 칭하는 것은, 모두가 잘못된 것이며, 성경을 위배하는 것이고, 망령되이 자신을 높임으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다.  

교회의 정통, 워치만니

우리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따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계19:16)이심을 믿는다. 그분은 또한 땅의 왕들의 통치자(계1:5)이시다. 땅의 왕들과 정부의 관원들은 모두 그분께서 세우시고, 그분께서 정하신 것이다. 우리는 만왕의 왕이신 이분을 경배하여야 하고, 또한 그분께서 세우신 땅의 왕들과 정부의 관원들을 존중하며 복종해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땅의 왕이나 통치자가 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 웟치만 니 형제님은 <<교회의 정통>>이란 책에서 상세하게 언급하셨다.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서 통치자가 되어선 안 된다.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서 오직 하나의 목적만이 있는데, 곧 영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며, 이 시대에 하나님의 은혜를 유지해가는 것이다. 주님의 명령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의 반응은 마땅히 은혜여야 하며, 공의가 아니다… 통치자가 되면 반드시 사람들 가운데서 공의의 원칙을 유지해야만 한다. 사람이 공의를 유지하려 한다면, 그리스도인은 은혜를 유지하는 자이기 때문에, 그는 그리스도인이 될수가 없다. … 그렇지만 다른 면에서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세우신 정치적인 권위를 시인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무정부주의를 믿지 않는다.」 

「이 땅에서 우리는 반드시 우리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태도에 대해서 분명해야 한다. 우리는 정부를 믿고, 또한 정부를 돕는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 있기가 합당하지 않은 자들로써, 사람을 돕고, 손실 당함을 원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복을 받게 하기를 원하는,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손실 받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기꺼이 손실을 받고자 함은, 그 사람 자신의 일이다. 우리는 초신자들에게 주님께서 하늘에 계신 이 기간동안, 우리는 이 땅에서 기꺼이 자신이 손해를 보기를 원해야 함을 말해 줄 필요가 있다. … 우리는 절대적으로 이 시대의 정치를 만져선 안 되고, 더군다나 통치하는 권위가 되어선 안 된다.」

 「그리스도인은… 국가 정권에 대한 태도가 힘을 다해서 순복하는 것이어야 한다. … 우리의 길은 바로 권위가 있는 윗 사람들에게 마땅히 순복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들의 입장이다. 우리 자신은 통치를 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이 통치하는 것을 좋아하며, 또한 통치하는 사람에게 순복하는 것을 좋아한다. …모든 통치하는 자들은 그가 높은자이든, 혹은 낮은자이든지를 물론하고,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우리는 순복하는 것을 꼭 배워야 하며, 반대해선 안 된다.」  
 

성경은 믿는이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왕이 될 것에 대해 언급하였다. 예를 들어 로마서 5장 17절에서 말하길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을 하였다면, 은혜를 넘치게 받고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사람들은 더욱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안에서 왕으로서 다스릴 것입니다.”고 한다. 본 책에서 언급한 것은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아들인 우리들은 죄사함을 받고 구속함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와 의의 선물을 누림으로, 신성한 생명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왕이 될 것이다. 

이 상수 형제님은 회복역 성경의 각주에서 로마서 후반부인 6~16장이 우리가 왕이 된다는 뜻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지적하셨다. 이 후반부에서 서술한 내용에 근거하여, 우리는 이 곳의 왕이 된다는 뜻이 우리 믿는이들이 먼저 신성한 생명의 내적인 다스림과 왕권아래 복종해야 함을 이해할 수가 있다. 우리는 넘치는 은혜와 의의 선물의 공급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함께 왕이 되어 우리 안에 있는 타락함과 배역적인 본성을 정복하고, 또한 우리 안에 있는 죄와 육체와 사악함과 사욕과 성질등을 다스려야 한다. 우리가 만약 이렇게 훈련할 수 있다면, 오늘 날 이기는자가 될 수가 있으며, 내세에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왕국의 실현됨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 동안 왕이 될 수가 있게 된다.  

四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에 대한 잘못됨 

청요(程有)와 란챵스으(藍強石)등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다시오심을 기다리지 말라.」, 「그리스도께서 이미 오셨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시다.」, 「내가 성육신이 되신 그리스도이다.」, 「내가 바로 두번째 오신 그리스도이다.」라는 등의 말을 선포했다. 성경의 계시를 따르면, 이러한 선포는 황당한 것이고,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며, 사람을 미혹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망령된 선포는 후에 출현한 소위 말하는 성육신 된 「여성 그리스도」의 선포와 동일한 것으로써, 모두가 거짓 그리스도가 일어나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조심함으로 깨어있어야 속임당함을 면할 수가 있다. 

성경 마태복음 24장 4~6절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대답하셨다. “아무에게도 미혹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왜냐하면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입니다.’ 라고 하며, 많은 사람을 미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23~26절에서 주 예수님은 다시 이어서 말씀하시길 “그때에 어떤 사람이 여러분에게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여기 계십니다!’ 혹은 ‘저기 계십니다!’라고 하여도, 믿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신언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들과 기이한 일들을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선택된 사람들까지도 미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미리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여러분에게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광야에 계십니다.’ 라고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골방에 계십니다.’ 라고 하여도 믿지 마십시오.” 라고 하셨다. 

 성경에선 주 예수님의 다시 오심에 대해서 아주 분명하게 말했고(마24:27, 26:64), 그분의 다시오심은 마치 도둑같은 은밀한 면이 있고(마24:33~44), 또한 구름을 타고 공개적으로 강림하시는 면이 있다(마24:27, 26:64). 24장의 구절들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해 준다. 27절에서 그리스도의 공개적인 오심이 번개와 같이 동쪽에서 서쪽까지 번쩍이지만, 그것은 21~24절에서 분명하게 대환난을 언급했기 때문에 대환난이후의 일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까진 대환난이 아직 오지 않았다. 그리스도의 오심은 번개와 같을 것인데, 이것은 공개적인 한면이지만, 그리스도의 공개적인 강림하심이 있기 전에, 그리스도의 은밀하신 다시오심이 있게 되어, 그리스도께서 오시어 도둑이 보배를 훔치는 것처럼, 주님을 사랑하는 믿는이들을 데려가실 것이다. 더군다나 마태복음 24장엔, 주님의 두번 경고하심이 4~5절과 23~26절에 있는데,거짓 그리스도의 출현이 있을 것이며, 선택된 사람들까지도 미혹할 것이라고, 주 예수님과 사도들 모두는 우리에게 조심함으로 예방할 것을 재삼 경고하셨다. 

그렇지만 주님께서 오시는 그날과 날짜와 시각에 대해선, 주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어떤 사람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셨고,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며, 아들도 므르며,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고 하셨다(마24:36). 주님은 이미 우리에게 깨어있어 기도함으로 미혹을 받지 않도록 하라고 경고하셨는데, 이는 주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다시 오시기 전에, 이 땅에서는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전하는 이단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께서 여기 계시다. 그리스도께서 저기 계시다」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이것을 믿어선 안 된다. 

왕요민(王有民)의 소위 「중화대륙 행정 사역처」가 퍼뜨린 이단적인 전단지에는 성경에 없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신앙도 아닌 「노스트라담무스-Nostradamus 1999년 인류대재난」과, 세속적인 「돌고 돌아서 원점으로 되돌아가다.」라는 미신적인 말, 그리고 사람들을 공갈협박하는 「대환난은 인류의 삼분의 이를 제거해 버린다.」등의 말을 전파했는데, 모두가 성경에는 없고 꾸며 낸 이야기로써, 사람들을 속이고 공갈협박하는 행위들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심을 믿으며, 더군다나 깨어있고, 예비함으로 주님의 다시오심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또한 이런 기회를 통해서, 성경을 따라 우리의 그리스도의 다시오심에 대해 마땅히 있어야 할 태도를 천명하는 바이다. 

1 사모하고 기다림으로 서로 격려함  

우리가 주님의 다시오심이 이처럼 보배로운 것을 안다면, 마땅히 주님의 나타나심을 사모해야 한다(딤후4:8). 성경의 마지막은 “주 예수님, 오십시오.”(계22:20) 라며 마친다. 신약의 기록에서 우리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사도들의 마음속에서 그들이 계속해서 확증하는 바는, 주님께서 속히 오신다는 것이고, 그들은 또한 주님의 다시오심을 예비하는 생활을 살았다. 교회의 역사안에서 우리가 아는 것은 화수은 자매님께서 이러한 생활을 사셨다는 것이다. 1925년의 마지막 날, 니 형제님께서 그분을 찾아가 함께 기도하였는데, 그분이 기도하시기를 “주님, 당신께서 설마 1925년이 정말 지나가도록 하실 것입니까? 설마 당신께선 1926년을 기다리셔야만 다시 오실 겁니까? 그러나 이 마지막 날에, 저는 당신께서 오늘 오시기를 구합니다.” 라고 하셨다. 얼마 안 지나서 니 형제님이 길에서 그녀를 만났는데, 그녀는 또 그를 향해 말씀하시길 “참으로 신기합니다. 오늘에 이르렀는데도 그분께선 왜 아직도 안 오셨을까요?” 라고 하셨다. 우리가 주님의 오심에 대한 징조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느슨하고 게을러도 된다고 생각하지 말라. 주님께선 두려우신 분임을 믿어야 한다. 누가복음 12장에서 주님은 한 가지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재물을 쌓아 두려고 노력하며 혼으로 하여금 즐거워함으로 누리려 하였지만, 하나님께선 그에게 말씀하시길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 밤에 너의 혼을 도로 찾아갈 것이다.”(눅12:16~20) 라고 하셨다. 우리에게 매번의 오늘이 있을 수 있는 것은, 참으로 모두가 주님의 은혜이다. 그러므로 여전히 오늘이 있기만 하다면, 호흡이 여전히 존재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마땅히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며, 그분의 다시오심을 간절히 기다려야 하고(빌3:20), 또한 항상 이 일을 가지고 서로 권면해야 한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4장 1절에서 디모데에게 말하기를 “내가 하나님 앞에서, 또 산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을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님 앞에서, 그분께서 나타나시는 것과 그분의 왕국을 두고 그대에게 엄숙히 명령합니다.” 라고 했는데, 이것은 바울이 순교하기 직전에 권면한 것이다. 그는 말하길 “나는 선한 싸움을 싸웠고, 달려야 할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심판대 앞에서 그는 의의 면류관을 꼭 받을 것인데, 이 면류관은 또한 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 주실 것이다(딤후4:6~8). 그는 심판과 왕국을 가지고 디모데를 일깨웠으며, 또한 우리를 일깨워주어 주님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생활을 살게 하는데,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상심하지 않고, 뒤로 물러나지 않으며, 약해지지 않고, 끝까지 충성되게 할 것이다.   
   

2 깨어있음으로써 예비함 

 주님께서 오실 때에, 도둑과 같은 은밀한 면이 있는데, 은밀하게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오시어, 그들을 보배로 삼아 훔쳐 가서, 그분의 하늘의 임재안으로 데려갈 것이다(마24:42).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깨어있음으로 예비됨이 필요하다(마25:13, 24:44). 만약 우리가 휴거되려면, 하늘에 속한 공기로 충만되야 하고, 그릇안에 기름을 담아야 한다. 우리가 만약 땅에 뿌리를 내리고 매일마다 생활의 염려와 땅에 속한 향락에 의해 점유된다면, 그 때가 되면 휴거될 수가 없다. 우리는 롯의 처를 생각해봐야 하는데, 그녀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철저히 파멸시키시는 악한 세상을 사랑함을 인하여, 되돌아 보았기 때문에 소금 기둥이 되었고, 수치스러운 땅에 버려짐을 당했다. 이것은 마땅히 우리들에 대한 경고로써, 우리가 만약 여전히 세상을 사랑한다면, 주님께선 우리가 대환난을 거치도록 남겨둘 것이요, 우리가 성숙되어져 들림받을 수 있을때까지 우리로 하여금 수치를 당하게 할 것이다.  

3 승리하기를 기도함 

주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일깨우시기를 “스스로 조심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여러분의 마음이 억눌려, 그 날이 덫과 같이 갑자기 여러분에게 닥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날이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닥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장차 일어날 이 모든 일을 피할 수 있고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도록, 늘 간구하며 항상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라고 하셨다. (눅21:34~36, 계12:5~6, 14절 참고) 

성숙함은 하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므로, 그분의 다시오심을 위하여 우리는 반드시 자신을 예비하고, 그분을 사랑하고 또한 그분안에서 자라남으로, 우리로 하여금 그분이 나타나실때에 성숙되어짐으로 들림받고, 상급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4 그리스도의 인내의 말씀을 지킴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의 인내의 말씀을 지킴이 필요하다 (계3:10). 성경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모든 말씀은 인내의 말씀이다(참고 롬15:4). 우리가 만약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지킨다면, 우리는 반드시 고통을 받게 된다. 오늘 날 주님께선 여전히 그분의 인내하심을 가지고 거절당함과 핍박을 참으신다. 우리는 그분의 왕국에 동참할 뿐만아니라, 또한 그분의 인내하심에도 함께 동참한다(계1:9). 그렇기 때문에 오늘 날 그분의 말씀은 우리에 대해서 바로 인내의 말씀이다. 우리가 그분의 인내의 말씀을 지키려면, 반드시 그분께서 받으셨던 거절당함과 핍박을 참아야 한다. 

 5 승리하고, 또한 주님의 일을 지킴 

우리는 또한 승리함과 주님의 일을 끝까지 지킴이 필요하다(계2:26). 주님의 일이란 주님께서 이미 성취하시고 또는 현재 하시고 계신 일을 가리킨다. 이런 일은 그분이 우리를 위해 성취하신 완전한 구속의 역사에 관한 모든 일을 포함한다. 그분이 죽으시고 부활하심은 우리의 구속을 위한 것이다. 오늘 날 그분은 여전히 우리를 거룩케 하고, 변화시키고, 우리로 그분의 형상을 본받게 하시려고 역사 하신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주님의 일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빛비춤을 받고, 주님의 일에 대해 알게 됐지만, 세상의 매혹함을 인해 그들은 주님의 일을 지키기를 원하지 않으며, 도리어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해 이루신 것을 부인하거나 잊어 버린다. 우리가 만약 이기는 자라면, 주님의 일을 경홀히 여기지 않을 것이며, 우리는 주님의 구속을 지키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으며, 지금 그분은 우리안에서 우리를 거룩케 하고,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영광스런 형상을 본받게 하시려 일하고 계심을 말해줄 것이다. 우리가 만약 주님의 일을 끝까지 지킨다면, 그분께서 나타나실 때에, 그분은 우리에 대해서 샛별이 되실 것이다(계2:28).  

五 성경을 삐뚤어지고 황당하게 해석함의 잘못됨 

 이런 이단을 전파하는 특징중의 하나는, 바로 부분만을 가지고 전체의 뜻을 취하는 방식으로 성경을 인용하고, 성경을 삐뚤어지고 황당하게 해석함으로, 성경을 부정하는 목적에 도달하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 보도록 한다.  

1 왕요민(王有民)의 반동적이고 이단적인 전단지는「성경에서 말하길, 누가 66권인 성경의 비밀을 열수 있으면, 그가 바로 우주의 어린양이고, 전세계를 통일할 능력이 있게 된다. 」고 말한다. 이것은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삐뚤어지게 한 것이다. 

 성경 계시록 5장 1~9절은 말하길「또 내가 보니, 보좌에 앉아 계신 분의 오른손에 두루마리 하나가 있었는데, 안팎으로 글이 적혀 있고 일곱 봉인이 찍혀 있었습니다. 또 내가 보니, 힘 있는 한 천사가 큰 음성으로 선포하셨습니다. “누가 두루마리를 펴며 그 봉인을 뗄 자격이 있습니까?” 하늘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들여다볼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들여다볼 자격이 있는 사람을 찾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는 크게 울었습니다. 그러자 장로들 중에 하나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울지 마십시오. 보십시오,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그 두루마리와 일곱 봉인을 뗄 수 있습니다.” 또 내가 보니, 보좌와 네 생물 한가운데에, 그리고 장로들 한가운데에 갓 죽음을 당하신 것 같은 한 어린양께서 서 계셨습니다. 그 어린양은 일곱 뿔과 일곱 눈을 가지셨는데, 이것은 온 땅에 보내어지신 하나님의 일곱 영입니다. 그 어린양께서 나아오셔서 보좌에 앉아 계신 분의 오른손에 있는 두루마리를 받아 드셨습니다. 어린양께서 두루마리를 받아 드셨을 때, 네 생물과 스물네 장로는 각각 수금과 향들이 가득히 담긴 금 대접들을 가지고 어린양앞에 엎드렸습니다. 그 대접들은 성도들의 기도입니다. 그들은 새 노래를 부르며 말하였습니다. “주님은 두루마리를 받으시고 그 봉인들을 떼실 자격이 있으십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죽음을 당하셨고, 자신의 피로 각 지파와 언어와 백성과 민족에서 사람들을 사셔서 하나님께 드리셨으며,…」라고 한다.  

이 구절들을 통해서 우리가 분명하게 볼수 있는 것은, 온 우주 가운데서 오직 한 분만이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는 두루마리를 펴거나 들여다보실 수 있는 자격이 있으시다. 그분은 바로 유다지파의 사자시요, 다윗의 뿌리시며, 우리를 위하여 피를 흘리심으로 죽으신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육체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은 인성을 따라 말하면 이스라엘 지파에서 나셨으며, 신성을 따라 말하면 다윗의 뿌리이시다. 그분은 신성과 인성을 겸비하신 하나님이시자 사람이신 분이시다. 그분이 유대땅에서 다니실때, 침례자 요한은 그분을 가리키면서 말하길 “보십시오,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 라고 했다(요1:29). 그분은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일찌기 우리를 위하여 피를 흘리시고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제하셨으며, 그분은 또한 싸우시고 승리하신 사자로써 하나님을 배반한 사단을 패배시키셨다. 오직 그분만이 그 두루마리를 펴시고 일곱인을 떼실 자격이 있으시다. 그분은 이미 그 두루마리를 펴시고 하나님의 경륜의 비밀인 일곱인을 떼셨다. 성경은 누가 66권의 성경속에 있는 비밀을 열면, 그가 바로 우주의 어린양이며, 전세계를 통일할 능력이 있다고 한번도 말한 적이 없다. 이것은 굴곡되고 만들어내진 귀신의 말이다.  

2  본 이단의 전단지에선 성경에서 분명하게 천명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기름부으신 그리스도이시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세상 사람들의 죄를 제하시는 분이심에 대해선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고, 도리어 이 상수 씨가 어린양이요, 살아있는 그리스도요, 주님이시요, 생명이시요, 길이시요, 세상의 빛이라고 말한다. 이런 말은 성경을 완전히 위배하는 거짓말일 뿐만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을 모독하며, 그리스도의 신앙을 파괴하는 귀신의 말이다. 성경에 근거하면 오직 심일 하나님의 구체적인 화신이시자, 유일하게 죄가 없으시나 우리를 위해 죄를 제하신 어린양이신 그리스도 즉 육체가 되신 예수님만이 우리가 경배해야할 유일하신 대상이다. 오직 그분만이 「주님」이시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다. 그분안으로 믿어야만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안으로 나아갈 수 있으며,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가 있다. 

柒 결론 

위에서 언급한대로 「차앙쏘주파이-常受主派」는 사단에 근거한 악한 영의 속임수요, 사람의 교만과 야심과 망령됨과 스스로 높이는 것을 도와줌을 통해서 산출되어진 일종의 성경을 버리고,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버린 이단이다. 이 단체는 성경의 진리에 대해 분명하지 못하고, 유약하며, 잘 모르는 그리스도인들을 속이며 노략하고, 더군다나 그 이단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한 믿는이들을 공갈하고 저주하였다. 이 단체는 사람을 미혹하는 것이며, 또한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고 전하는 것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교훈을 넘어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믿는이들은 이러한 교훈을 말하는 사람과 어떠한 접촉도 있어선 안 된다. 우리는 그들을 전면적으로 봉쇄하고, 그 이단이 확산되는 것을 두절시켜야 한다.우리는 또한 미혹을 받은 유약한 믿는이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고, 그들을 도와서 마귀의 그물을 벗어나게 하여, 성경의 진리를 완전히 앎으로써 그리스도안으로 다시 돌아오도록 하고, 교회안으로 돌아오도록 하여, 그리스도의 생명의 구원을 누리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이단이 중국땅에서 산출되고 확장되는 것을 근본적으로 제거해내고, 장기적으로 안전하게 대처하는 방안은, 바로 종교와 신앙의 자유가 있는 환경을 만들어, 성경의 진리가 자유롭고 순조롭게 전파되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온전히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신다(딤전2:4). 믿는이들이 진리가 분명하지 않고, 신앙생활이 공개적이지 못함으로 무질서한 상태이면, 도리어 다른 마음을 품은 사람들에게 사악한 이단의 말을 만들어 인심을 미혹시키게 하는 문을 열어버리게 하기에, 이런 상황을 볼때 매우 유감스러울 뿐이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20. 05:00


에클레시아 교회론에 대한 간략한 반박 (4) - 개혁교회 교회표지와 불일치


성경이 말하는 교회가 무엇인가를 알기 위하여 소위 '에클레시아 용법'을 살펴보아야 한다는 H.J 님의 주장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럴 필요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에클레시아가 다만 '특정목적을 위한 모임'이라는 의미를 가지므로 그것을 구별된 명칭을 가진 명실상부한 교회로 볼 것인가 여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H.J 님은 바로 이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그러므로 H.J 님은 사도행전 8:1은 예루살렘에 정관사 the 로 특정된 하나의 교회만 있었다고 명백히 말함에도 그렇지만 그 하나의 교회 안에 수 많은 복수의 교회들이 있었다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집에서 모이는 모임도 각각의 특화된 교회들로 보는 H.J 님의 독특한 교회관의 산물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에클레시아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에 집에 있는 교회'라고 한 경우와 단지 어떤 집에 모임이 있으니 그것을 에클레시아로 본다는 것은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이것은 어떤 하나의 교회(예를 들어 런던 양무리 교회 또는 서울 사랑의 교회)가 여러 지역 또는 가정에서 정기적인 소그룹 모임을 갖지만 그 소그룹 모임 하나 하나를 별도의 특화된 교회 이름을 붙여 부르지(호칭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알수 있습니다. 

  H.J 님이 선호하시는 개혁신학에서도 어떤 집에서 예배 모임을 정기적으로 갖는다고 해서 그것을 독립된 별도의 교회로 인정하고 특정 교회 이름으로 호칭해 주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즉 개혁교회 신학은 예루살렘 교회 안의 집집 마다 있었던 모임처럼 다만 모임을 갖는 것 외에 교회가 참으로 바른 교회인지를 분별하는 별도의 징표를 가진다고 말합니다.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

즉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 제 18조, 벨기에 신앙고백서 제 29조는 말씀, 성례, 권징을 교회의 세가지 징표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어떤 교회라고 하는 곳에서 바른 말씀의 선포가 있는지, 성경적인 성례전이 제대로 집행되는지, 또 합당한 권징이 있는지 여부를 보고 그 모임이 성경적인 교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겠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실행적으로는 예배당이 아니라 각각의 집에서 주일 날 별도의 설교가 행해지고 집 단위 교회별로 권징이 가해지고 집 단위로 성만찬과 세례의식이 행해지는 것을 개혁신학이 과연 허용할지도 의문입니다. 이처럼 H.J 님의 교회관은 개혁신학의 이론과 실제와는 상당한 간격이 있는 주장입니다) 

  이것이 성경적인지 아닌지는 차치하고라도  단지 에클레시아 라는 조건만 충족하면 그것을 교회라고 주장하는 H.J 님과 달리 어떤 모임을 가지는 것 외에 위 교회의 세 가지 징표를 감안하여 교회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현재 일반적인 장로교단(개혁교단) 소속 신학자들의 공통된 입장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H.J 님은 이처럼 본인이 선호하는 개혁신학의 입장과도 다른 교회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습니다. 실제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5장 5조는 '어떤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고 사단의 회라고 할만큼 깊이 타락하였다'라고 말하고 있음으로 '에클레시아' 모임 자체만으로 별도의 독립된 교회로 인정하는 듯한 주장은 매우 위험하고 또 성경적이지도 않습니다. 실제로 자유주의 신학을 추종하는 교단신학을 한후 목사안수를 받아 개척한 모임들 중에는 참되게 거듭나지도 않은 인도자가 설교하고 인도하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셈입니다. 이런 모임은 에클라시아 일지는 몰라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는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H.J 님은 그리스도가 그 모임 안에 있는지를 보는 것이 자신의 또 다른 교회에 대한 조건이라고 항변할지 모르나.... 다만 모임이면 에클레시아로 보고 별도의 교회로 보는 교회관과 그것이 어떻게 조화되며 '누가'  어떻게'  그 모임 안에 그리스도가 계신지 여부를 판단할 것인지를 보완하여 말해주지 않는 한 스스로 모순을 가진 주장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단지 모임의 의미를 갖는 에클레시아 개념을 갖는 것 외에 특정 명칭으로 호칭되는 에클레시아인가(예를 들어 예루살렘 교회, 에베소 교회 등등), 합당한 장로직분이 세워지고 행사되는가(행14:23, 딛1:5),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는 분열의 결과로 나타난 모임은 아닌가(고전 1:10, 11: 28-29)등등의 추가적인 일종의 검증장치를 명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에클레시아 라는 개념은 교회의 특징 중 일부일 뿐 그 자체가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특징들을 다 포괄하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H.J 님의 모임(에클레시아) 개념을 기초로 한 교회관은 헛점과 모순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교회에 대하여 토론할 소위 '기초문법'에 해당된다는 주장은 너무 자기 중심적인 주의 주장일 수 있습니다. 왜 그런지 그리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기회가 되는대로 좀더 상세하게 반박 비판할 용의가 있습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16. 01:26

지방교회 영상 - 하늘에 속한 이만나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11. 05:00
지방교회 변호와 확증 - 복음의 확증 (4)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생명 주시는 영의 동일시


우리의 사역의 중요한 초점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는 이들의 체험이며, 우리는 그러한 체험의 관점에서 고린도전서 15장 45절이나 고린도후서 3장 17절과 같은 구절들을 해석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부활 안에서 믿는 이들에게 오시며, 생명 주시는 영 안에서 생명 주시는 영을 통하여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을 위한 모든 활동을 수행하신다고 이해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신약의 서신서에서 그리스도와 그 영에 대한 분명한 동일시를 발견하는데, 거듭 말하지만 이것은 신성한 삼일성 안에서의 세 위격의 구별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세 위격이 믿는 이들 안에서 상호 내재의 방식으로 존재하시고 운행하심에 따른 것입니다. 위트니스 리는 그리스도와 그 영이 부활 안에서 동일시되시는 것에 관해 여러 차례 말했습니다. 아래의 발췌문은 이 주제에 대한 그의 가르침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5절은 “마지막 아담은 생명 주시는 영이 되었나니”라고 말한다. 마지막 아담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예수님이시다. 생명 주시는 영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성령이시다. 성령 외에는 생명을 주는 또 다른 영이 없다. 이 구절은 성경에서 마지막 아담이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한다 … 고린도후서 3장 17절은 “주는 그 영이시니”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주는 누구이신가? 의심할 여지 없이 예수님이시다. 그렇다면 그 영은 누구이신가? 물론 성령이시다. 여기에서 주는 예수님이시고, 그 영은 성령이시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 구절에서 “주는 영이시니”라고 말한다. 주 예수님을 그 영이시라고 말하는 것은 전적으로 성경적이다!

The Spirit of Christ

앤드류 머레이 (Andrew Murray) 는 <그리스도의 영> (The Spirit of Christ) 이라는 자신의 책 25장에서 “주 예수님은 높여지시어 그 영의 생명 안으로 들어가셨을 때 ‘주 영’이 되셨다.”라고 말했다. <삼일성에 관한 진리 > ,영문판 14-15쪽 제자들 안으로 자신을 거룩한 숨으로 내쉬신 그리스도는 생명 주시는 영이시다. 생명 주시는 영이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숨이시다. 어떤 신학자들은 그 영이신 그리스도, 즉 숨이신 그리스도를 언급하기 위해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신약의결론 - 성령

모든 과정을 완성하신 후에 그리스도는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으며, 이 생명 주시는 영은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이시다. 이러한 분, 곧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는 그 영으로서 제자들에게 오셔서 영이신 자신을 제자들 안으로 불어 넣으셨다…요한복음 20장 22절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는 제자들 안으로 들어가시어 그들의 영적인 생명과 존재의 신성한 본질이 되셨다. <신약의 결론 성령>, 194-195쪽

위의 예문은 위트니스 리의 사역의 글에서 일부를 발췌한 것으로서, 만일 이것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생명 주는 영의 관계에 대한 그의 가르침의 전부라고 오해한다면 이러한 글이야말로 그가 명백한 양태론자라는 ‘증거’로 채택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삼일성에 대해 심도 있는 설명을 시도하는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 교사들은 우리가 받는 오해와 유사한 오해를 받을 것입니다. 신학의 역사에 정통한 독자들이라면 이레니우스 (Irenaeus), 터툴리안 (Tertullian), 어거스틴 (Augustine) 그리고 정통성에 의심의 여지가 없는 다른 교사들의 글도 정도에서 빗나간 것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으나, 그들의 글의 다른 부분에는 그들의 정통성을 확증해 주는 균형잡힌 언급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위트니스 리 역시 이와 같은 균형잡힌 언급들을 하였으나, 근거 없이 그를 이단이라고 몰아세우기 위해 소위 ‘증거’로 출판한 책자들에서는 위트니스리의 그러한 균형잡힌 언급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그리스도와 그 영에 대한 그의 온전한 관점을 보여주는 두 예문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요한복음 강해 3편

바로 이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계신 주이시며 동시에 우리 안에 계신 그 영이시다. “지금 주는 그 영이시니” (고후 3:17). 주님으로서 그분은 하늘에 계신다. 그 영으로서 그분은 우리 안에 계신다. 하늘에 계신 분으로서 그분은 그분의 통치권과 머리의 권위와 제사장 직분을 행사하고 계신다… 그분이 주님으로서 수행하시는 모든 것을 그분은 그 영으로서 우리에게 적용하신다. <그리스도의 하늘에서의 사역 >, 95-96쪽 또 다른 보혜사이신 그 영에 관한 말씀과 그리스도의 숨이신 그 영에 관한 말씀을 읽는 어떤 이들은 이렇게 물을 수 있다. “당신은 그리스도와 그 영이 구별된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까? 당신은 그리스도와 그 영이 둘이라고 믿지 않습니까?” 물론 나는 외적이고 객관적인 면에서 볼 때 그리스도와 그 영이 둘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또 다른 방면인 내적이고 주관적인 면에서 볼 때 두 번째 보혜사이신 그 영은 첫 번째 보혜사이신 그리스도의 숨이시다. 따라서 내적인 방면을 조망할 때 그리스도와 그 영은 하나이시다. <요한복음 강해 속편 3권>, 273쪽

많은 분석을 하지 않더라도 위트니스 리가 그리스도와 그 영이 구별되신다는 관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비록 신학적인 체계화 작업에는 역행하는 것 같지만, 신약의 서신서들과 같이, 자신의 사역의 커다란 강조점인 그리스도인의 체험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종종 생명 주시는 영과 동일시되신다고 이해했고 또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에 대한 비판 중에서 그리스도와 그 영의 동일시에 관한 것이 많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주제에 대한 다른 이들의 언급을 추가해서 소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이 주제에 관한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이 전통적인 가르침과 다르거나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될 수도 있으나, 위트니스 리 외에도 그와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 사람들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제임스 던 (James D. G. Dunn) 은 주목할 가치가 있습니다. 이분은 우리 시대에 존경받는 신학자 중 한 분으로서 위트니스 리가 많은 주의를 기울였던 성경 구절들 중 일부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혼적인 존재의 모형이라면, 그리스도 곧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영적인 존재의 모형이다…요약하자면 45절 하반절은 이에 대한 증거 중 하나인데, 왜냐하면 바울은 높이 올려지신 그리스도께서 영적이면서도 몸이 있는 그러한 존재의 형태로 새로운 인성의 본과 선구자이시라는 것을 [생명 주시는 영]에 대한 체험을 통해 확신하게 되었기때문이다.

Grand Rapids, MI: W. B. Eerdmans

…그들 모두가 체험한 생명 주시는 영은 다시 사신 예수, 마지막 아담이시다… 바울은 높여지신 예수를 영적인 존재…또는 영적인 범위나 영역이 아니라 그 영, 곧 성령과 동일시하고 있다…바울에게 있어 내재적 그리스도론은 성령론이며, 믿는 이들의 체험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성령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 물론 이것은 바울이 그리스도와 성령을 구별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The Christ and the Spirit, vol. 1, Christology [Grand Rapids, MI: W. B. Eerdmans, 1998], 164-165쪽)

위트니스 리가 삼일성에 관해 자주 인용한, 지금부터 한 세대 전의 저명한 신학자인 그리피스 토마스 (W. H. Griffith Thomas) 역시 이러한 신성한 진리의 양면성에 대해 언급했으며, 그리스도와 그 영의 동일시에 관해 다음과 같이 간결하면서도 분명한, 뛰어난 요약을 했습니다.

The Holy Spirit

이러한 진리의 양면 모두를 주의하며 보존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리스도와 그 영은 차이가 있으면서도 동일하고, 동일하면서도 차이가 있다. 아마도 그들의 위격의 특성은 결코 동일하지 않지만, 그들의 임재는 항상 동일하다고 말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표현일 것이다. (
The Holy Spirit [Grand Rapids, MI: Kregel, 1986; reprint of The Holy Spirit of God, 4th edition, Grand Rapids, MI: W. B. Eerdmans, 1913] 144쪽)

위트니스 리의 사역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아울러 이러한 인용문을 읽는다면 그리스도와 그 영의 동일시는 하나님의 내재적인 존재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는 이들의 체험의 영역 안에 있는 문제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스웨트 (H. B. Swete) 도 동일한 사상을 아래와 같이 확증했습니다.

H. B. Swete

그 영은 그분의 일에 있어서 사실상 예수 그리스도와 동등하신 것으로 나타나며…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것은 명백히 그리스도 자신의 내주하심과 같은 것으로 간주된다…’영이신 주 (the Lord the Spirit) 즉 그분의 영화롭게 된 생명의 능력 안에 계신 그리스도’는 실제로는 동일한 존재로 여겨진다. (
The Holy Spirit in the New Testament, [London, New York: Macmillan, 1912] 306쪽)

 이 핵심적인 주제에 관한 논의를 마무리짓기 전에, 고린도후서 3장 17절에 대한 위트니스 리의 각주를 추가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각주는 위트니스 리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생명 주시는 영의 동일시를 동일하게 인정한 저명한 주석가들인 마빈 빈센트 (Marvin Vincent), 헨리 알포드 (Henry Alford), 윌리스톤 워커 (Williston Walker) 의 글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고린도후서 2장 12절에서 시작되는 이 부분의 문맥에 따르면, 여기의 ‘주님’은 틀림없이 주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고후 2:12, 14-15, 17, 3:3-4, 14, 16, 4:5). 이것은 성경에 있는 분명한 말씀으로서, 그리스도께서 그 영이시라는 것을 강조한다. “3장 16절의 주 그리스도는 새 언약을 널리 퍼지게 하시고 활력 있게 하시는 그 영이시다. 우리는 새 언약의 사역자들이고 (고후 3:6) 새 언약의 사역에는 영광이 있다 (고후 3:8). 로마서 8장 9절부터 11절, 요한복음 14장 16절, 18절과 비교해보라” (빈센트).

“3장 16절의 주님은 3장 6절에 있는 생명을 주시는 그 영이시다. 의미상, 여기서 언급된 ‘주님’은 ‘그리스도’이시며 ‘그 영’은 바로 성령과 동일하시다…그러므로 여기서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의 영이시다” (알포드). “변화시키시고 내주하시는 영은 바로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주님은 그 영이시다’” (윌리스톤 워커). <신약성경 회복역>, 고린도후서 3장 17절 각주2)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9. 05:00

신성한 삼일성 (또는 삼위 일체 Trinity) 안에서 아들이 갖고 계시는 특징

아마도 우리에 대해서 가장 많은 논란이 있었던 신학적 주제는 신성한 삼일성 내에서의 세 위격 (인격) 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일 것입니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우리의 그러한 이해는 다음과 같은 세 개의 핵심 구절에 어느 정도 기초를 두고 있으며, 이 구절들은 위트니스 리의 책에서 자주 인용되었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이라 (사 9:6).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혼 (a living soul) 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생명 주시는 영 (a life-giving Spirit) 이 되었나니 (고전 15:45). 주는 그 영 (the Spirit) 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고후 3:17).

여기에서 첫 번째 구절은, 아들이 아버지라 불리신다고 말하고, 두 번째 구절은 아들이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다고 말하고, 세 번째 구절은 아들이 그 영이시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극단적인 단순화라고 하며 화를 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외적인 신학적 개념과의 일치를 위해 성경의 표현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신학적 개념을 완전히 버려야 한다고 느끼지는 않지만, 모든 개념은 성경의 사실을 존중해야만 합니다. 여기서 우리의 요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즉 신성한 삼일성 안에 있는 세 위격의 관계에 관한 성경에 따른 정확한 관점은, 성경에서 아들이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불리신다고 말하고, 아들이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다고 말하고, 아들이 그 영이 되셨다고 말하는 이유를 밝혀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구절들에 동반된 문제들을 해결하는 손쉬운 방법들이 있고, 다양한 해석자들이 신중한 고려 없이 이에 대한 ‘해결책들’을 제시해 왔습니다. 그 모든 내용을 여기서 전부 다룰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다음과 같은 해석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아들이신 그리스도가 그들에게 아버지라는 것은 은유적인 표현일 뿐이므로 그것은 삼일성 안에 있는 위격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리스도는 부활 안에서 영적 존재를 취하셨으므로 이제 영이시라고 불릴 수 있지만 그것은 삼일성 안에 있는 위격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고린도후서 3장 17절에 있는 ‘주’라는 표현은 신성한 삼일성의 두 번째 위격인 주 예수님을 가리키는 특별한 칭호가 아니라 주 하나님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칭호이므로 그것은 삼일성 안에 있는 위격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이러한 해석이나 이와 유사한 해석들이 어려움을 일소해 줄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이 신격 안에 존재하는 심오한 실재에 관해 기록한 사실임을 믿는 우리에게는 그러한 해석들이 그 모든 것을 더욱 모호하게 만들 뿐입니다. 비록 우리가 신격 안에 존재하는 이러한 심오한 실재의 충분한 깊이를 다 알 수는 없지만, 우리가 이해하고 인식하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일부에서는 우리가 갖고 있는 이해가 정도를 벗어난 것으로 보아 왔으나, 그렇게 보는 것은 합당한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사실을 분명히 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신성한 삼일성의 세 위격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아닌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보여 주는 몇 단락의 글을 위트니스 리의 책에서 발췌하여 제시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앞에서 언급한 구절들을 강조하기 때문에 양태론적 단일신론자들, 더 간단히 말해 양태론자들이라고 정죄받아 왔습니다. 즉, 신성한 삼일성의 세 위격은 영원히 구별되지 않는 유일한 신격의 일시적인 (그리고 임시적인) 존재 양태들일 뿐이므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구별은 영원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단일성 (monarchia) 곧 유일성(unity)은 영원하다는 가르침을 우리가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가르침은 그러한 사상을 단호하게 거절해 왔으며, 이에 대한 많은 근거 중 일부인 다음의 발췌문은 이것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 영께서 내려오신 것은 그리스도께 기름 부으신 것이었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사랑하는 아들이시라는 증거였다. 이것은 신성한 삼일성의 그림인데, 아들은 물에서 올라오셨고, 그 영은 아들 위에 내려오셨으며, 아버지는 아들에 관해 말씀하셨다.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과 그 영께서 동시에 존재하신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경륜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 <신약 성경 회복역>, 마태복음 3장 17절 각주2 나는 성경에 따라 성부가 영원하시며, 성자도 영원하시며, 성령 또한 영원하심을 믿는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하고 싶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모두 동시에 존재하신다. 요한복음 14장 16절과 17절은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라고 말한다. 이 두 구절에서 아들은 아버지께 성령을 보내달라고 기도하신다. 따라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모두 동시에 현존하신다. <삼일성에 관한 진리>(The Truth concerning the Trinity), 영문판[1] 10-11쪽 신성한 삼일성의 셋—아버지와 아들과 그 영—은 동시에 존재하시며, 그 동시 존재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시작과 끝이 없다. 아버지는 영원하시다. 이것은 이사야서 9장 6절에 의해 증명되는데, 그 구절은 아버지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칭한다. 또한 아들도 영원하시다. 아들에 관해서 히브리서 1장 12절은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라고 말하고, 히브리서 7장 3절도 그분을 두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라고 말함으로써 그분이 영원하시다는 것을 지적한다. 더욱이 그 영도 영원하시다. 히브리서 9장 14절은 ‘영원하신 성령’을 언급한다. 따라서 그 셋—아버지와 아들과 그 영은 모두 영원하시다… 요약하면, 그 셋—아버지와 아들과 그 영은 모두 영원부터 영원까지 똑같이 영원하신 분이며 시작이나 끝이 없으시고 동시에 계신다. <하나님의 계시와 이상>, 37-38, 42쪽

우리는 신성한 삼일성의 세 위격이 영존하시고 또한 영원히 구별되신다는 관점을 확고하게 붙드는 동시에, 각 위격이 나타나시거나 구별된 움직임을 가지실 때에도 항상 세 위격 모두가 분리되지 않고 (그러나 여전히 구별되게) 일하심을 또한 인정합니다. 신격 안에 존재하는 이러한 실재를 가리키기 위해 신학자들은 상호 내재 (coinherence) 라는 말을 사용해 왔는데, 위트니스 리는 주로 이 상호 내재의 사상에 기초하여 성경이 어떻게 때로 삼일성의 한 구별된 위격을 다른 위격과 동일시하고 있는지를 설명했습니다. 다음은 이것을 보여 주는 예입니다.

하나님의 계시와 이상

셋—아버지와 아들과 그 영—은 동시에 존재하실 뿐 아니라 상호 내재 (相互內在) 하신다. 삼일 하나님에게 적용되는 상호 내재 (coinherence) 라는 용어는 그 셋—아버지와 아들과 그 영—이 서로 안에 계신다는 뜻이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주 예수님이 복음서에서 하신 말씀에 근거한다. 요한복음 14장 7절- 10절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라고 하셨다. 그러자 빌립이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라고 요청했다. 이때 주님은 그에게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라고 하셨다… 이와 동일한 표현이 요한복음 14장 10절 외에도 14장 20절, 10장 38절, 17장 21절, 23절에서 발견된다. 이 다섯 구절은 모두 아들과 아버지가 동시에 서로 안에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 구절들은 우리가 신성한 삼일성이 셋이자 하나라는 비밀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구절들이다.   <하나님의 계시와 이상>, 42-43쪽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라고 말하는 요한복음 14장 10절은 삼일성 안에서 볼 수 있는 각 위격의 명백히 구별되는 행동과 세 위격의 분리할 수 없는 운행의 미묘한 관계를 가장 잘 포착하고 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 안에, 아버지는 아들 안에 계시기 때문에, 즉 아들과 아버지께서 상호 내재하시기 때문에 명백히 구별되는 아들의 행동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 은 아버지의 운행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유사하게, 명백한 성령의 행동에 세 위격의 분리할 수 없는 운행이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요한복음 16장 13절부터 15절까지에서 발견됩니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느니라

삼일성 안에는 상호 내재라는 이러한 놀라운 실재가 있기 때문에 성경은 비록 미묘한 차이에 둔감한 조직 신학자들을 난처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자주 위격들을 서로 동일시한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나 모든 조직 신학자들이 하나님 안에 있는 이러한 실재에 대해 무감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렇게 본질이 하나인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설명해 준다. 즉,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각각의 인격에 관해서는 구별되는 존재인 반면에, 그 위격 간에 상호 왕래 (inter­communion) 가 있으며 한 신성한 위격이 다른 위격 안에 내재하시어 이로 인해 한 위격의 고유한 일이 다른 두 위격 중 하나에게 속하는…것을 가능케 한다. 또한 한 위격의 나타남이 다른 위격의 나타남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이러한 상호 왕래에 대한 성경의

A. H. Strong, Systematic Theology

묘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라는 구별이 이들 간의 분리를 의미한다는 생각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호 왕래는 또한 고린도전서 15장 45절 (“마지막 아담은 생명 주시는 영이 되었나니”) 과 고린도후서 3장 17절 (“지금 주는 그 영이시니”) 에서 보듯이 그리스도를 ‘그 영’으로, 그 영을 ‘그리스도의 영’으로 지칭하는 것을 설명해 준다… [찰스] 고어, [하나님의 아들의성육신, 218쪽—“거룩한 삼일성의 위격들은 분리된 개체들이 아니다. 각 위격은 다른 위격들을 포함하며, 한 위격의 오심은 다른 위격들의 오심이다. 그러므로 그 영의 오심은 분명히 아들의 오심을 포함했다고 보아야 한다.” (A. H. Strong, Systematic Theology: A Compendium [Old Tappan, NJ: Revell, 1960, c1907] 332-333쪽)

위의 글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삼일성 안에 상호 내재라는 실재가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어진 아들은 우리에게 오셔서 행하신 모든 행동에서 영존하시는 아버지의 분리되지 않는 운행을 동반하셨고, 이로 인해 이사야가 예언했듯이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불린다고 이해합니다. 우리는 이사야의 예언을 단지 구약에서 사용된 은유적 표현일 뿐이라고 여겨 그 의미를 축소해서는 안 됩니다. 아울러 이 구절이 그리스도인에게 전달하는 엄청난 의미를 사장시켜서도 안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이 구절이 육체 되신 그리스도에 대한, 영감으로 이루어진 예언이라고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육체 되심을 통하여 우리에게 오신 아들께서 아버지 안에 계셨고 그분께서 하신 일은 영존하시는 아버지의 운행이었다고 이해함으로써 그 구절의 원문이 갖고 있는 풍성한 의미를 놓치지 않기 바랍니다. 이것은 삼일성의 세 위격 사이의 구별을 전적으로 무시하자는 의미가 아닙니다. 위트니스 리 또한 어떤 사람들이 공격하듯이 그러한 구별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의 첫 번째 단계 안에서 삼일성이 어떻게 일하셨는지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장로훈련3권-이상을 실행하는 길


그 다음으로 아버지께서 계획하신 것을 성취하고 수행하는 삼일 하나님의 두 번째 단계에서의 일에 관해서 말할 때도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구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계획하시는 일을 하실 때,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들 안에서 영과 함께 그 일을 하셨다고 말할 수 있지만, 아들께서 아버지와 함께 영에 의해 그 일을 하셨다고 말할 수는 없다. 또한 우리는 영께서 아들로서 아버지와 함께 계획하는 일을 하셨다고도 말할 수 없다. <장로 훈련 3권: 이상을 실행하는 길>, 112쪽

또한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두 번째 단계인 성취의 단계에서는 아들께서 모든 일을 하셨다.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들과 함께 영에 의해 성취하는 일을 하셨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는 또한 영께서 아들로서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의 계획을 이루셨다고 말할 수도 없다. 우리는 다만 아들께서 아버지와 함께 영에 의해 아버지의 계획을 이루는 모든 일을 하셨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더 나아가, 우리는 아버지께서 십자가로 가셔서 우리의 구속을 위해 죽으셨다고 말할 수 없으며,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피가 아버지 예수의 피라고 말할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피를 흘리셨다고 말해야 한다 (요일 1:7). 우리는 아버지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고 말할 수 없으며, 아버지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고 말할 수 없다. <장로 훈련 3권: 이상을 실행하는 길>, 112쪽

우리는 삼일성의 세 위격이 결코 분리되실 수 없다는 것과 한 위격이 일하실 때 세 위격 모두가 운행하신다는 것을 우리의 가르침 가운데 확고하게 붙들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성경은 하나님의 경륜의 움직임 안에 뚜렷이 구별되는 행위의 주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종종 신성한 한 위격을 다른 위격들과 동일시합니다. 우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동일시를 알기 바라며, 더 나아가 그들의 그리스도인 체험에 이러한 동일시를 적용하기 바랍니다.


[1]  본 고에서 인용된 LSM자료들의 대부분은 한국복음서원을 통해 한국어로 출간되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어로 미출판된 자료인 경우에는 ‘영문판’으로 표시하였습니다-역자 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7. 05:00


지방교회들 - 복음 캠페인

1만5천여 성도 "성경으로 돌아가자"

성서와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성도들이 함께 모여 컨퍼스를 하고 있다. 26일,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컨퍼런스 2007, 성경으로 돌아가자” 라는 주제 하에 약 1만 5천명(해외 성도 500여 명 포함)이 모여 대규모 복음 전파 행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이 행사는 한국복음서원, 로고스코리아, 성경진리사역원(이하 ‘주최 측’이라 표기함)이 주최하는 것이다. 

주최 측 관계자에 따르면, 실내 체육관 복음집회 후에 약 만 여명이 가두 행진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행진코스는 실내 체육관에서부터 코엑스까지 약 2km이며, 한국전력 앞 광장에서 해산할 예정이라고 한다. 대부분 가두 행진은 불만이나 요구조건을 공개적으로 표출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지만 이번 가두 행진은 아주 평화적이고 특별하게 진행된다.  

성경으로 돌아가자

가두 행진은 복음의 영을 회복하는 의미를 담고 진행되며 행렬 중간 중간에서 크고 작은 북을 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도덕을 사랑하자”는 표어를 통해 복음전파를 선포한다. 뿐만 아니라 복음 행진 기간 동안 이번 행사의 주제인 “성경으로 돌아가자” 라는 표어도 반복해서 선포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러한 주제 아래서 다음의 일곱 가지 항목으로 세분화 된 선언문 내용을 보면 이번 행사의 주된 의도가 무엇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사실 ‘성경으로 돌아가자' 라는 말이 이번에 처음 나온 구호는 아니다. 멀리는 종교 개혁자들도 ‘오직 성경'을 외치며 ‘성경으로 돌아가자'라고 말했었다. 주최 측은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이번 행사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첫째,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무오하다는 믿음을 전제로 한 것이다. 오늘날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들이 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그런 가운데 성경의 절대 권위에 대한 불신이 우리의 근본 신앙을 손상시키는 심각한 요소들 중 하나임을 지적하는 성경학자들이 있다. 따라서 성경을 참되게 믿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성경의 무오성을 인정할 뿐 아니라 성경의 진리를 최고의 권위로 인정하는 정도까지 성경을 신뢰해야 한다.


26일, 서울 잠실 실내 체육관에서 컨퍼런스

선언문 발표하고 복음전파 거리행진


둘째,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말은 매일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자는 제안이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처한 상황을 돌아보면 왜 이런 제안이 나올 수밖에없었는지 이해가 되는 면이 있다. 미국의 경우 성별된 근본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성도들 중에서 매일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는 사람은 5% 미만이라는 통계가 있다. 한국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운동이 몸에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막상 실천에 옮기고 또 꾸준히 지속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전문가들은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려면 함께 운동할 친구를 만들라고 조언한다. 같은 원칙으로,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제안은 성경을 규칙적으로 읽을 수 있도록 그룹을 만들어서 읽자는 것이다.  

셋째, 성경은 연구의 대상만이 아니라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영적 양식이다. 성경에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한다(마4:4).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연구의 대상으로만 대하기 때문에, 성경 지식은 많은데 실제 삶 속에서 말씀의 힘으로 사는 체험이 부족하다. 따라서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말은 말씀을 영적 양식으로 섭취하고 소화하여 성경의 말씀에 따른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사는 데까지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다.  

주최 측은 대회에 참석한 모든 성도들에게 성경을 일년에 일독하는 성경읽기표를 나눠주고,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이 담긴 포켓 성경을 선물로 준다고 한다. 모든 믿는 이들은 누구나 각지에서 적절한 숫자의 그룹을 형성하여 규칙적으로 함께 성경을 읽도록 도울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성경공부 모임'의 주된 초점은 그 모임의 구성원들과 그들의 믿지 않는 가족들, 친구와 친지들, 직장 동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데 있다고 한다.  

한편 이번 행사를 주최하는 한국복음서원은 미국 ECPA(복음주의 기독교 출판 연합회)의 정회원이자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책자만을 전적으로 출판하는 ‘Living Stream Ministry(LSM)’의 출판물을 한글로 번역 소개하는 곳이다. 로고스코리아는 지난 20세기 교회 역사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신 풍성한 성경 진리 중에서 엄선된 소중한 진리들을 담은 책자를 무료로 배포하는 문서선교기관이다. 성경진리사역원은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에게 성경의 진리들을 가르치고,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성격을 훈련하여 유용한 복음전파자들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이다.


  행사 후반부 큰 거리서 

복음 캠페인

코엑스 한국전력앞까지 2km

이번 행사 후반부에는 복음 대행진이 예정되어 있다. 여러 사람이 큰 거리에서 행진 한 번 한다고 해서 과연 복음이 전해질 수 있을까? 현재 한국의 복음화율은 25%를 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교인수가 줄어드는 추세에 있다. 선교학적으로 ‘사회 복음화 비율이 20%를 넘게 되면 불신자들과 관계를 형성한 다음에 복음을 전해야한다’는 이론이 있다. 오이코스 코리아 대표 이상만 목사는 “현재는 완전한 하나님처럼 사는 모습을 보지 않으면 전도의 효과가 없는 시대”라고 말한 바 있다. 주최 측도 이런 행사를 통해 당장 복음의 열매를 수확할 수 있다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번 행사를 통해 성도들에게 복음의 영을 분발시킴으로 복음 전파에 대한 담대함을 갖고 생활 속에서 지속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도록 격려하는데 주된 목적이 있다고 밝혔다.

통계상으로는 한국의 전체 인구 가운데 네 사람 중에 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이지만, 생활 가운데서 불신자들에게 본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할 때 이러한 목표는 분명히 공감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보여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별히 주최 측은 이번 행사의 주된 목표가 일부 성직자들이나 직분이 있는 사람들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온 성도들이 일어나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고, 또한 온 성도들이 복음을 전하는 대상은 25%의 기독교인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르는 75%의 사람들임을 분명히 했다. 오늘날 기독교계에서 복음 전파를 강조하지만, 불신자들에 대한 복음전파보다 기존의 그리스도인들을 끌어오는 ‘교회 바꾸기’ 또는 ‘수평이동’이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이러한 목표는 건전하며 올바르다고 생각된다.


-선 언 문- 

 1.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가장 위대한 선물임을 선언한다.

 2. 우리는 성경의 모든 말씀이 하나님께서 호흡해 내신 것임을 선언한다.

 3. 우리는 모든 사람이 성경을 이해할 영이 있음을 선언한다.

 4.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모든 일들의 해답임을 선언한다.

 5. 우리는 사람이 매일 성경을 읽도록 부름 받았음을 선언한다.

 6. 우리는 모든 사람이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 받고 온전하게 되도록 정해졌음을 선언한다.

 7.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나라를 축복할 것임을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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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5. 05:00

  


"역사적 성경적 그리스도인 전통따라"

지방교회, 바른이해와 교제희망

우리의 신앙과 실행에 대해 존경하는 목회자신문 독자 분들과 교제할 수 있도록 귀한 지면을 할애해 주신 목회자 신문사측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이글은 예장통합 교단과의 오해로 인한 간격을 좁히는 차원에서 통합교단 제 77차 총회가 지방교회에 대해 결의하신 내용에 대한 해명에 초점을 맞추었다. 

구체적인 진리항목들을 다루기에 앞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로 대표되는 (지방)교회 신앙의 특색을 먼저 밝히고자 한다. (지방)교회는 (플리머스 형제회의) <근본주의 신앙>과 <생명의 체험을 강조하는 흐름>의 교집합이라고 특징지을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지방교회 성도들은 근본주의 5대 교리인 성경의 무오성, 동정녀 탄생, 대속의 죽음, 육신을 입은 부활, 육체적 재림(또는 기적의 인정)을 굳게 믿는다. 또한 이러한 신앙의 토대 위에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생명으로 체험함(골1:27)을 추구한다. 

따라서 일부 성경해석상 이견이나 용어표현상 이질적인 면이 다소 있을 수 있으나, 핵심진리(유다서, 3절)에 관한 한 역사적 성경적 그리스도인의 전통 위에 서 있다 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다. 

지면의 제한상 77차 총회 결의를 통해 통합교단이 지적한 각 항목들에 대해서 핵심 요점만 간략하게 해명을 드리고자 한다. 

  1. 신론에 대하여 

1) 신인합일주의를 가르친다는 지적 - 우리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요15:5), '맏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려함이니라'(롬8:29) '우리가 그와 같은 줄을 아는 것은'(요일3:2)라는 말씀을 믿는다. 그러나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주와 똑같이 될 수는 없다. 사람인 우리는 어떤 경우든 결코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나 통합측 지적처럼 일부 설명에 본의 아니게 '표현상' 오해의 여지가 없지 않다. 

2) 양태론을 가르친다는 지적 -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으시는 세 인격, 한영>이 지방교회 삼위일체이다. 이에 대해 통합측 토론자는 <세 인격, 세영들>을 기준삼아 양태론 이라고 함으로 양측에 이견이 생겼다. '세 인격이 하나로 발전된 것'이란 표현은 출처로 제시된 책 110쪽에 발견되지 않는다. 소위 '수박비유'는 세 위격이 동시존재하심을 전제로 한 설명임으로 양태론이 아니다. 그러나 읽기에 따라 오해의 여지는 있다. 

  2. 기독론에 대하여 

예수님의 인성에 변화가 있다고 한다는 지적- 예수님은 참 하나님, 참 사람이시다. 그러나 그 육신은 부활을 기점으로 <썩을 몸>에서 <썩지 않을 몸>-영광의 몸(빌3:21)-으로 바뀌셨다고 성경은 말한다(고전15:42, 44). 그러나 이것을 인성의 변질로 보는 신학자는 없다. 위트니스 리는 그것을 설명한 것이다. 

  3. 인간론에 대하여 

1) 삼분설을 가르친다는 지적- 지방교회측이 삼분설을 지지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삼분설, 이분설은 상대적 관점일뿐 이단성 여부를 가릴 진리항목은 아니라고 본다.

2) 영이 타락하지 않았다며 전인적 타락을 부인한다는 지적 - 이 점은 통합교단 토론자가 토론과정에서 그런 사실이 없었다고 고백함으로 잘 해결되었다(교회와신앙, 97년 8월호 164쪽 참조). 지방교회측은 전인적 타락을 굳게 믿는다. 

  4. 교회론에 대하여 

1) 기독교를 바벨론 음녀라고 한다는 지적 - 위트니스 리는 계시록 주석 과정에서 '큰 바벨론'(계17:5)을 '로마천주교'로 이해했다. 이것은 근본주의 성경교사들 대다수의 관점을 따른 것이다. 그러나 계시록강해는 난해한 문제임으로 얼마든지 다른 해석적 관점이 가능하다. 위트니스 리가 이런 주석을 통해 다른 기독교인들을 무시하거나 모욕하려는 의도가 없었으며, 혹시 오해가 있었다면 재차 양해를 구한다. 

2) 기성교회의 목사와 예배를 부정한다는 지적 - 루터도 주장한 바 있는 <계급적인 의미의 성직자-평신도 제도>를 반대한다는 말이 본의 아니게 와전된 것 같다. 하나님의 양무리에게는 당연히 목자들이 필요하다. 지방교회측도 성도를 목양하는 풀타임 사역자들이 있다. 또한 성경적인 예배를 부인하지 않는다. 

3) 침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삼는다는 지적- 구원은 전적으로 믿음으로 받는다. 그러나 영원한 멸망이 아닌 <이 패역한 세대>로부터 구원을 받으라고 권하고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이 침례를 받은 기록이 성경에 있다(행2:40-41). 이처럼 <세상으로부터의 분별> 내지는 믿음의 외적인 간증으로서의 침례를 말한 것이 다소 오해가 된 것 같다. 믿음에서 나오지 않은 침례는 아무 의미가 없다. 

4) 주님이름 부름이 유일한 성령충만 방법이라고 한다는 지적- 사실이 아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 부요함을 체험한다고 성경은 말한다(롬10:12). 그러나 지방교회 성도 누구도 이것을 유일한 성령충만 방법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풀러신학교측 총장과 신학대학장이 지방교회 인도자들과 2년간 허심탄회한 대화와 검증 끝에, "이단이 아니고 역사적 성경적인 그리스도인들"로 지방교회를 바로 이해하게 되었다. 통합교단과도 더 많은 교제를 통해 동일한 이해에 이르게 되기를 기도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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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4. 05:00

복음의 수호와 확증 - 지방교회들과 리빙스트림 미니스트리의 가르침에 관하여

복음의 수호와 확증

복음의 확증

지방교회들과 리빙스트림 미니스트리의 가르침에 관하여

 

서문

2004년말에 풀러 신학 대학 (미국, 캘리포니아, 패사디나 소재) 을 대표하는 세 명의 저명한 교수들인 리챠드 모우 (Richard Mouw) 총장, 하워드 로웬 (Howard Loewen) 신학 부장, 벨리 마티 커케년 (Veli-Matti Karkkainen) 조직신학 교수가 지방 교회들의 대표자들 그리고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사역을 위한 출판사인 리빙스트림 미니스트리 (LSM) 의 대표자들과의 대화를 제안했습니다. 이 신학자들이 직접 조사와 연구를 수행할 의도가 있다는 것은 처음부터 분명했습니다. 그분들은 지방 교회들에 관하여 이미 이루어진 다소 철저하지 못한 연구들을 검토하였지만 그 연구들만을 근거로 자신들의 결론을 도출하지 않았습니다. 이듬해 풀러 측 교수진은 우리의 신앙과 실행들에 대한 방대한 문서를 요청하여 모두 제공받았습니다. 그러한 연구 결과, 그분들은 다음과 같은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풀러 신학 대학이 내린 결론은, 지방교회 들과 그 구성원들의 가르침들과 실행들이 본질적인 모든 방면에서 진실하고 역사적이고 성경적인 그리스도인 신앙을 대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성명서 전문은 이 책의 끝에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책의 주된 내용은 지방 교회들의 대표자들과 리빙스트림 미니스트리 편집부가 작성한 문서입니다. 이 글은 우리가 풀러 측 교수들과 초기에 나눴던 대화 가운데 있던 쟁점들 중에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핵심 사안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 공통 신앙에 대한 우리의 확증
  • 다음 항목들을 포함한 몇몇 진리에 대한 우리의 독특한 이해
    • 삼위 일체
    • 그리스도의 인격
    • 그리스도와 생명 주시는 영의 동일시
    •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
    • 참 하나의 터
  • 우리의 집회 방식과 봉사 방식.

이러한 평가는 풀러 신학 대학 교수진만 내린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출판물을 철저하게 검증하고 우리와 함께 대화를 나눈 사람들은 일관되게 같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예를 들어, 두 명의 저명한 그리스도인 이단 변증가들, 즉 세계에서 가장 큰 그리스도인 이단 변증 사역 기관인 크리스챤 리서치 연구소 (Christian Research Institute/CRI) 소장인 행크 해네그래프 (Hank Hanegraaff) 씨와 ‘행동하는 답변 (Answers in Action/AIA)’ 이라는 이단 변증 사역의 대표인 그레첸 파산티노 (Gretchen Passantino) 여사도 보다 새롭고 철저한 연구를 토대로 우리에 대한 그들의 초기 평가를 수정했습니다. 그들의 성명서는 < 지방교회 들—진정한 믿는 이들이자 그리스도의 몸의 같은 지체들>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고,
인터넷(http://www.contendingforthefaith.org/dialogues/index.html)과 DCP 출판사를 통해 구입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책을 출판함으로써, 풀러 신학 대학 교수들이 언급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에 관하여 어떤 단체들이 알고 있는 것과 그 두 사람의 저서에서 발견된 실지적인 가르침의 큰 차이”로 말미암아 야기된 잘못된 인상들을 더 철저하게 일소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이 소책자를 읽는 분들이 지방 교회들과 리빙스트림 미니스트리의 가르침이 전적으로 성경적이고 정통적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주님께서 이 책을 사용하시어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우리 형제님들과 더 많은 교통의 문을 여시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 호 Abraham Ho  대니얼 토울 Dan Towle  롼 캥거스 Ron Kangas 

크리스 와일드 Chris Wilde  밴슨 필립스 Benson Phillips  앤드류 유 Andrew Yu

2009년 2월

풀러 신학 대학과의 대화에 이어 밝히는 지방 교회들과 리빙스트림 미니스트리의 가르침에 관한 성명서

지난 이 년 동안 (종종 ‘지방교회 The Local Church’ 라고도 불리는)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 (이하 ‘지방 교회들’) 과 그 출판을 담당하는 리빙스트림 미니스트리 (Living Stream Ministry 이하 LSM) 의 대표자들은 풀러 신학 대학의 학문 분야를 인도하시는 몇몇 교수님들을 만나 대화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바 있습니다. 이 참된 교통을 나누는 기간, 풀러에 계신 우리 형제님들은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 주셨고, 성경, 삼일 (또는 삼위 일체 Triune) 하나님, 그분의 구원, 교회, 교회생활을 포함한 그리스도인의 진리와 실행에 관한 우리의 견해 일부를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형제님들이 베풀어 주셨던 환대에 깊이 감사드리며 아울러 우리의 견해를 관심 있게 경청해 주심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셨던 존경에 대해서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와 그분들 사이에 어떤 점들에 대해서는 시각차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나, 우리는 그분들이 항상 가장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방식 즉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모든 믿는 이를 받으신 방식 (롬 15:7) 으로 우리를 받았다는 것을 증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교통에 대한 언급 중 일부 내용은 곧 출간될 풀러 포커스 (Fuller Focus)에 게재될 것입니다. [1] 

우리는 풀러 신학 대학이 우리에게 열려 있음으로 인해 일부 사람들의 비판을 받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비판은 지방 교회들 안에 있는 우리가 믿는 것의 상당 부분에 대해 심하게 반대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풀러 신학교의 형제님들이 전적으로 우리 때문에 고통을 겪는 것이 마음 아팠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심판대의 빛 안에서 모든 믿는 이들을 받는 (롬 14:10) 입장을 취해 주신 것에 따뜻한 목양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에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진리와 실행에 관한 우리의 관점을 설명하는 성명서를 더 많은 분들에게 제시함으로써, 우리를 받아들인 풀러 측의 합당한 그리스도인 행동에 대한 우려를 완화시킬 수 있기 바랍니다. 이 성명서는 우리가 지난 2년 동안 풀러의 형제님들에게 제시했던 것과 여러 면에서 거의 동일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풀러에 있는 우리 형제님들처럼, 우리가 같은 믿는 이들임을 발견하고, 그리스도인 신앙의 중점이 아닌 문제들에 대한 판단을 자제하며,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우리를 함께 연결하시는 성령 안에 의와 평강과 희락을 유지하게 될 것을 믿어 마지 않습니다. 아래의 내용은 지방 교회들 안에서 우리가 믿는 것에 대한 성명서로서 (풀러 측에서도 동의하는 부분이 있지만) 해당 주제에 대한 풀러 측의 입장을 대변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풀러 신학 대학이 그 어떤 부당한 비난도 받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 아래의 내용이 결코 풀러 신학교와 지방 교회들 (및 LSM) 의 ‘공동 성명’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는 바입니다. 

  우리의 공통 신앙 

첫째 우리는 우리가 지닌, 우리 모두에게 전달된 공통 신앙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밝히고자 합니다 (유 3절). 우리의 신앙의 기초는 성경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 (영감) 으로 된 것을 믿습니다 (딤후 3:16). 우리는 성경에 있는 모든 말씀이 성령께서 성경 기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심으로써 우리에게 도달했음을 믿습니다 (벧후 1:21). 우리는 두 성약인 신약과 구약으로 이루어진 성경이 사람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고 하나님의 큰 기쁨에 따라 그들을 영광 안으로 인도하는 데 있어서 완전하고 충분함을 분명히 믿습니다. 믿는 이들인 우리에게는 성경에 있는 것 이상의 추가된 가르침이나 계시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모든 것을 위하여 우리를 장비시키고 온전케 하는 데 유익하고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딤후 3:17). 우리가 믿고 선포하고 가르치는 모든 것은 반드시 성경의 근거를 가져야 하고 성경에 제한받아야 합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주로 계시하는 것은 우리의 놀라운 하나님이며, 성경의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십니다 (신 6:4, 고전 8:4). 그분 외에 다른 신은 없으며 (사 45:5), 그분만이 하나님이십니다 (시 86:10). 이것은 고대의 유대인과 오늘날의 그리스도인 모두가 즐거이 시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또한 하나님께서 삼일 (triune) 이심, 즉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심을 믿습니다 (마 3:16-17, 28:19, 고후 13:13, 엡 2:18, 3:14-17, 계 1:4-5). 이것이 그리스도인 신앙의 핵심 진리입니다. 우리는 신격 안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영원히 구별되시나 분리되지는 않으심을 확고하게 믿습니다. 신격의 세 위격은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동시에’ 공존하시며 (사 9:6, 히 1:12, 7:3, 9:14), 각각 완전한 하나님이십니다 (벧전 1:2상, 히 1:8, 요 1:1, 행 5:3-4). 그러나 세 분의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한 하나님께서 세 위격 (hypostases) 또는 세 인격 (persons) 으로 계십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한 하나님께서 일시적으로 나타나신 세 단계가 아닙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서로 구별은 되나 서로 분리되지 않는 방식으로 영원히 존재하십니다. 더 나아가, 성부께서 신격 안에서 영원한 근원이시지만, 성자와 성령께서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 나중에 신격에 참여하시거나 양자로 받아들여지신 것이 아닙니다. 셋은 영원토록 동등하게 하나님이십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하나이시면서 동시에 셋이실 수 있는가는 인류에게 참으로 비밀이지만, 이것을 다만 믿고 누리는 것은 가능합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삼일이신 것 곧 셋이시자 하나이신 것은 우리의 인식과 신앙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고후 13:13) 라고 격려한 것처럼 더욱 우리의 체험과 누림을 위한 것임을 믿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신앙의 중심은 육체 되신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이시며, 예수 그리스도께 대해 우리가 첫째로 시인하는 바는 그분이 참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신앙의 이 항목을 선언함에 있어, 우리는 하나님께서 삼일이시며 이 삼일 하나님을 그리스도인 신앙의 핵심 진리로 인식한다는 점을 거듭 밝힙니다.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이시자 온전한 사람으로서 신성과 인성을 모두 갖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두 본성이 구별을 유지하며, 각각의 본성이 혼잡이나 변동이나 분리 없이 고유의 구별된 특성을 유지한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이신 면에서, 그분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하나님의 말씀이십니다 (요 1:1, 14, 18). 그분은 참으로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시고 (골 1:15),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시자 본체의 형상으로서 (히 1:3), 하나님의 모습으로 존재하시며 하나님과 동등되십니다 (빌 2:6, 요 5:18). 그분 안에는 신격의 모든 충만이 거하십니다 (골 2:9, 1:19). 한편 그리스도는 육체 되심을 통하여 참 사람이 되셨습니다. 성경이 담대하게 그분이 “육신이 되셨다” (요 1:14) 라고 선포할 만큼 그분의 인성은 참되십니다. 우리는 그분이 죄만 없으실 뿐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으신 분이심을 믿습니다 (히 4:15). 하나님은 그분의 완전한 지혜를 통해 아들을 죄의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시어 육신 안에 있는 죄를 정죄하셨으며 (롬 8:3),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사서 하나님께 되돌리시는 우리의 구속주가 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삼 일만에 영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부활하셨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로서 우리의 구주이시며, 우리를 우리의 죄들로부터 법리적으로 구원하실 뿐 아니라, 더 중요하게 유기적으로 그분의 생명 안에서 구원하신다는 것 (롬 5:10 “더욱 그의 생명 안에서[2]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을 큰 기쁨으로 선포합니다. 우리는 그분께서 부활하신 후에 몸을 지니시고 아버지께 승천하셨으며, 아버지께서 그분을 자기 오른편으로 높이 올리시어 만유의 주가 되게 하셨음을 믿습니다 (행 5:31, 10:36). 오늘날 그분은 승천하신 주로서 영광 안에 계시며, 여전히 사람이시자 영원토록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성부나 성령이 아닌 성자께서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성취하기 위해 사람이 되시고, 인생을 사시고, 우리의 구속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참 사람으로서 죽으시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어 만유의 주가 되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그분이 결코 성부와 성령에게서 분리되실 수 없고 성부와 성령에게서 독립적으로 행하실 수 없는 바, 육체 되신 하나님이신 그분의 행하심이 전적으로 성부와 성령의 운행을 동반한다는 것을 똑같이 믿습니다. 본질에 있어서 그분은 성령으로 잉태되셨고 (마 1:20, 눅 1:35), 영원한 신격에 있어서는 물론 그분의 인간 존재에 있어서도 성부는 항상 그분과 함께 계십니다 (요 8:29, 16). 그분은 모든 일을 성부와 함께하시고 (요 5:19, 14:10), 성령에 의해 하십니다 (마 12:28, 18, 행 10:38, 히 9:14). 그분의 영원한 존재에 있어서처럼, 육체 되심에 있어서도 그분은 성부 안에 계시고 성부는 그분 안에 계십니다 (요 14:10-11, 20, 10:38, 17:21). 성자께서 성부와 성령에게서 분리되시어 한 사람으로서 육체 되셨다는 견해는 성경 안에 있는 계시와 일치되지 않으므로 우리는 단호하게 그러한 견해를 배척합니다. 비록 오늘 평범한 다수의 믿는 이들이 충분한 지식이 부족하기에 막연히 이러한 관념을 갖고 있을지 모르나, 그러한 견해는 장구한 교회사 속에서 발견되는 성도들의 증거는 아닙니다. 

승천 안에서 그리스도는 오늘 만유의 주이시며, 우리는 그분이 신랑으로서 그분의 교회를 위해 다시 오실 그분의 재림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요 3:29, 계 19:7). 우리는 그분이 왕 중 왕으로서 모든 민족들을 공개적으로 통치하실 그날을 고대합니다 (계 19:16). 모든 믿는 이들과 공유하는 우리의 복된 소망은 우리가 하나님에 의해 영광스럽게 되고, 그분과 영원히 함께 거하며, 이로써 그분은 우리를 그분의 영원한 표현으로 소유하시고 우리는 그분을 우리의 충만한 누림으로 소유하는 것입니다 (계 21:1-22:5). 

 이러한 소망은 하나님께 구원받은 모든 사람의 분깃이며, 우리는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통해 구원받는다는 것을 믿습니다 (엡 2:8). 모든 사람은 그 출생과 행위에 의해 죄인으로 조성되었으며,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에서 구원받으려면 반드시 하나님께 회개하여 (행 2:38, 26:20) 죄들을 용서받고 구속받고 의롭게 되고 거듭나야 합니다 (행 10:43, 롬 3:24, 행 13:39, 요3:6).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함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고 (요 1:12) 그리스도의 지체들이 됩니다 (고전 12:27). 이러한 복음을 모든 인류에게 전파하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우리의 큰 특권입니다.

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시고 그분의 각종 지혜를 알리시기 위하여 교회를 산출하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엡 3:10, 2:15). 이 교회는 가장 본질적인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몸이며 (엡 1:22-23, 골 1:24), 역대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로 구성됩니다. 교회는 우주적인 면에서 하나이며 (엡 4:4), 마찬가지로 그 지방적인 표현에 있어서도 지방 교회로서 하나여야 한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참고 계 1:11). 많은 교파들의 존재로 증명되듯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는 교회 문제에 있어서 분명 커다란 불일치가 있습니다. 일부는 심지어 우리의 그리스도인 생활을 위한 기본 조건인 교회의 필요성을 전적으로 부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비록 그것이 우리 모두가 도달해야 할 믿음의 하나 (엡 4:13) 에 관련된 것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필수적이며 중요한 항목이라는 것이 우리의 이해이자 믿음입니다.[3]


[1]  이 선언문은 그후 풀러 포커스 (Fuller Focus) 2007년 겨울 호 15권 No 1, 22쪽에 “풀러와 리빙 스트림 미니스트리와의 대화”로 출판되었습니다. 그것은 또한 풀러 측 웹사이트인
http://documents.fuller.edu/news/html/fuller_lsm.asp 에서 볼수 있습니다.

[2]  본고에서 인용된 성경 말씀은 대한성서공회에서 출판한 개역 성경을 인용한 것입니다. 단 개역 성경의 번역이 원문의 의미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부득이하게 헬라어 원문에 따른 적절한 표현으로 바꾸고 기울임 꼴로 처리하였습니다-역자 주

[3] 

교회생활의 특수성,일반성

이 단락에서 제시된 내용의 대부분은 위트니스 리 (Witness Lee) 가 쓴 <교회생활의 일반성, 특수성, 실행성>(The Speciality Generality, and Practicality of the Church Life, Anaheim, CA, LSM, 1983)의 7쪽부터 14쪽에 압축적으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특별한 언급이 없으면 본고에서 언급한 모든 책은 위트니스 리와 캘리포니아 애나하임에 있는LSM이 출판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