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9. 4. 05:00

다음 글은 원세O님의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한 (지방)교회측 형제님과 원세O 님을 지지하시는 분들(양O욱, 이성O, 이인O, 홈 관리자님) 사이에 오고간 삼신론 토론 내용 중 일부입니다.

어떤 삼신론 토론

의껏 답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죄송하지만 제 질문자체가 선명하지 않아서 그런지 제가 알고자 하는 요점에 대해서는 답변이 안되었군요.  

아래 고전8:5-6은 이것 저것 신이나 주라 칭하는 것들이 많이 있지만 참되신 하나님은 한 분뿐인데 곧 아버지하나님이시다 라는 내용입니다. 저의 질문의 핵심은 ..."하나님이 한 분뿐이고 그것이 아버지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아들이나 성령님은 어찌되는가 이 두위격은 하나님도 아니라는 말이냐"하는 취지였습니다. 이에 대해 양O욱 님은 "위의 구절은 하나님 아버지, 즉 성부 하나님만을 즉 성부의 단일성을 얘기하는 것입니다."라고 답변하셨지요. 이 말은 아버지는 아들이나 성령이 아니시고, 또 아버지는 두 분 세분 네 분이 아닌 한 분뿐이라는 설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신다는 말로 들립니다. 그러나 위 문맥의 취지는 그런 방향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문맥은 '이런 저런 신이 있다고 하지만 참신은 하나뿐인데 그것이 아버지하나님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들, 성령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신가? 라는 의문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터툴리안이나 힐라리우스 같은 정통교부들도 바로 위 구절을 해석하면서 '아버지 안에 아들도 포함된다'는 의미라고 주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버지의 단일성을 뜻하는 것이다'라는 양O욱 님의 답변과는 다른 이야기임을 누가 보아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저는 양O욱 님에게 아직 "답변"을 못 듣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여쭤보겠습니다.

1. 아버지만 하나님이라면, 아들과 성령은 하나님이 아닌가요?  

2. 위 구절이 '아버지의 단일성'을 의미한다면 동일구절에 대한 터툴리안과 힐라리우스의 견해는 어떻게 보십니까?  

그리고 양O욱님을 포함해서 (지방)교회 신론을 비판하시는 분들은 아래에서 보듯이 여전히 (지방)교회 신론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판하고 계십니다. 

양O욱님 - "지방교회의 해석은 이런 것입니까. '지방교회는 애써 개체인격의 구별을 무시하고 독립되어진 삼위하나님을 인정치 아니하고 '한 하나님 곧 아버지'안에 성자, 성령의 인격의 결합을 님들은 얘기하시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런 해석이 바로 지방교회식 해석입니다." 

(지방)교회 -  (지방)교회가 개체인격의 구별을 무시한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지방)교회측은 아버지, 아들, 성령의 인격과 역할을 분명히 구별한다는 점이 최삼경 목사님과의 토론에서 상세하게 소개되었습니다. 즉 에베소서 1장에 대한 라이프스타디에 보면 선택과 예정은 아버지의 전권이며, 구속은 아들, 인침과 보증은 성령의 사역으로 돌린다는 내용이 상세하게 적혀있습니다. 이인O님과의 토론에서도 '이인O님이 절대로 인용하지 않을 부분들'이라는 제목으로 위 구별문제가 상세하게 인용 소개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사야 9:6, 고후3:17에 대해서는 별도의 상세한 토론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매우 난해하면서도 심오한 부분이지요. 차영O님이나 이인O님처럼 가볍게 다룰 주제가 결코 아닙니다. 사실 (지방)교회측은 이 주제에 대해서 이미 충분한 토론을 한 바 있으며 자료들이 많이 축적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개체인격의 구별을 갑돌이 갑순이 그리고 갑돌이 아들처럼 세 사람같이 분리된 실존체로 보는 자체가 문제입니다. 이것은 구별에서 지나쳐 "분리"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제퍼슨, 링컨, 아담스처럼 세 사람인데 개나 소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본질에 있어서 같은(하나) 그런 분이 아닙니다.  

"분리"와 "구별"의 개념에 대해 더 연구가 필요하십니다. 개혁신학자들 말만 듣거나 문법만 가지고 따질 일이 아닙니다. 

아래 한 미국의 장로교신학자가 주님의 기도 등에서 언급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는 단지 제1 격만이 아니라 아들과 성령을 포함한 'three persons'인 온전한 한 분 하나님을 가리킨다. 삼위를 갑, 을, 병 같은 세 사람으로 보면 안 된다. 라는 지적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으십니다.


제가 질문 드린 것이지만 답변이 없으셔서 다시 가져 왔습니다. 바쁘지 않으시면 양O욱님이 대표해서 각 항목별로 답변을 주실 수 있으신지요?
  


1. 사람 안에 들어오신 하나님은 누구(몇 격의 하나님)입니까?  

2. 각 위가 온전한 하나님이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3. 요한복음 14:23에서 우리(아버지, 아들)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를 어떻게 해석하시겠습니까?
  

4. 딤전3:15의 하나님의 집인 교회 안에는 어떤 위격의 하나님이 계십니까?
  

5. 우리 안에서 우리의 생명되신 그리스도(고후13:5, 골3:4) 안에는 아버지, 성령의 실존체는 안 계십니까?
  

6. "우리가 영접한 주 예수님"은 다만 하나님이십니까? 아니면 하나님 "사람"이십니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아버지, 어머니, 아이처럼 각각 떨어진(분리된) 세 인격체들로 보는 분들은 삼위일체의 셋을 말할 때는 강점을 가지십니다. 그러나 한 분 또는 하나를 말 할 때는 궁지에 몰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성경의 균형 잡힌 가르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원세O, 양O욱, 이인O님 그리고 이성O님들과 다음 사항들을 검토해 보기 원합니다. 

가장 쉬운 예를 하나만 들어보겠습니다.  

1. 성경에서
 

고전8:4-6을 보면,....'우상은 세상에서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 밖에 없는 줄을 아노라(there is none other God but one)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there is but one God, the Father...)라고 되어 있습니다. 

만일 위 말씀에서 "아버지"를 원세O님이나 차영O님처럼 아들과 성령 인격은 제외된 제1격 하나님만으로 본다면 아들과 성령의 하나님 되심은 즉각 부인되거나 여호와증인들 주장처럼 열등한 하나님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처럼 세 위격들을 사람 가족에서의 아빠, 엄마, 아이처럼 이해하면 당장 심각한 문제가 대두되는 것입니다. 즉 "아빠만 사람이다" 라고 하면 "한 가족이긴 하나 엄마나 아이는 사람도 아니다"라는 말이 되고 마는 것이지요. 

그러나 정통교부들은 아래에서 보겠지만 이런 식으로 삼신론적으로 삼위일체 또는 아버지하나님을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아래 어느 분이 소개 드렸던 장로교 신학자의 글 (영어자료)도 이인O님, 원세O, 양O욱님들과 다릅니다. 보는 기준이 분리된 셋임으로 성경적인 가르침이 양태론처럼 보이는 이 모순이 매우 안타깝기만 합니다.  

2. 정통교부들의 주장에서 

1) 터툴리안은 무엇이라고 했는가? 

터툴리안은 삼위일체라는 말을 제일 먼저 사용한 정통교부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한 분으로가 아니라 삼위의 이름으로 받았다. 그러면 신이 세분인가? 아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요즘 한국교계는 '세분하나님이 정통교리'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 곧 성부이시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성자를 제외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아들은 의례히 아버지와 함께 포함되기 때문이다...나외에 다른 신이 없다고 할 때 아들은 제하고, 나외에 다른 신이 없다고 할 필요는 없다'(차영배, 신론120쪽). 

위 말에 대해 '그것은 동일 본성을 가졌다는 의미'라느니, '이단이 정통교회 신학자의 주장으로 자신들을 위장한다'느니 라는 반응을 보이는 것은 핵심에서 빗나간 유치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 곧 성부이시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성자를 제외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아들은 의례히 아버지와 함께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양태론이라고 정죄한다는 자체가 말만 정통 정통하지 실제로 교회역사상 정통교리도 모르고 또 성경도 모른다는 증거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요일2:22-24가 말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 힐라리우스는 무엇이라고 했는가? 

저자는 힐라리우스가 서방교회의 아타나시우스라고 불리워진다고 말함으로 그가 정통교부임을 한마디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아래에서 보듯이 힐라리우스도 터툴리안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신약에서 언급한 유일신은 곧 성부인데 고독한 아버지가 아니다. ...요17:3의 유일하신 참 하나님도 성부이시다. 성부만이 유일신이라는 말과 유일신이 성부라는 말은 서로 다르다. 후자(유일신이 성부)의 경우 성자가 제외되지 않는다... 

사벨리안 이단처럼 성부와 성자를 한 위격 되게 함으로 유일신이 되는 것이 아니고, 아리안 이단처럼 성부만이 유일신이라고 하여 성자를 이에서 제외시켜서도 안 된다. 성부의 품속에 계신 독생 하신 하나님은 성부와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유일신이다'(위 차영배님 책, 154-155쪽).  

위에서 보았듯이 아버지, 아들은 "성부의 품속에 계신 독생 하신 하나님"이란 성경말씀처럼 서로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으심으로 유일신이지 아빠, 엄마, 아이처럼 각각 떨어져 있으나 한 가족이기 때문에 유일신이 아닙니다. 

"한가족 유일신" 개념으로는 고전8:6, 요17:3을 성경진리에 맞게 해석할 길이 전무합니다. 원세O, 양O욱, 이인O, 이성O 님들을 '아버지만이 유일한 하나님'이라는 성경을 한 번 해석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보기에 님들의 삼위일체론은 삼위의 관계이해에 있어서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으십니다. 

즉 아버지, 아들, 성령님을 마치 사람인 아버지, 어머니, 아이와 같은 각각 분리된 세 인격체들로 보시고 그들이 한가족이라는 관계에 있어서 하나 또는 한 분이라는 주장은 매우 특이한 주장이십니다. 

교회역사상 님들처럼 삼위일체를 이해한 정통 신학자들이나 교부들이 있었습니까? 만일 있었다면 누가 어디서 그렇게 주장했는지 소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PS: 참고로 성경에서 하나님을 언급하는 대목의 단 복수 구별을 참고는 할 수 있으되 문법을 절대기준으로 삼아 하나님을 판단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합니다. 예를 들어서 빌 2:13은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라고 할 때 하나님은 단수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세 인격들 중 두 인격은 제외되고 나머지 한 인격만 우리 안에 있다는 뜻입니까? 만일 그렇다면 더 심각한 문제가 생깁니다. 왜냐하면 성경 안에는 세 인격들 모두가 사람 안에 계시다는 증거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아들인 주예수님, 그리고 성령하나님이 사람 안에 계신 것은 부정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문법이 성경본문을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한 예입니다. 히브리어 단 복수 문제는 더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원칙은 그것이 삼위일체의 비밀을 푸는 절대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엄밀히 따지면 양O욱님이 언급하신 창1:1은 복수가 아닌 삼중수입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5. 05:00

  


"역사적 성경적 그리스도인 전통따라"

지방교회, 바른이해와 교제희망

우리의 신앙과 실행에 대해 존경하는 목회자신문 독자 분들과 교제할 수 있도록 귀한 지면을 할애해 주신 목회자 신문사측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이글은 예장통합 교단과의 오해로 인한 간격을 좁히는 차원에서 통합교단 제 77차 총회가 지방교회에 대해 결의하신 내용에 대한 해명에 초점을 맞추었다. 

구체적인 진리항목들을 다루기에 앞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로 대표되는 (지방)교회 신앙의 특색을 먼저 밝히고자 한다. (지방)교회는 (플리머스 형제회의) <근본주의 신앙>과 <생명의 체험을 강조하는 흐름>의 교집합이라고 특징지을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지방교회 성도들은 근본주의 5대 교리인 성경의 무오성, 동정녀 탄생, 대속의 죽음, 육신을 입은 부활, 육체적 재림(또는 기적의 인정)을 굳게 믿는다. 또한 이러한 신앙의 토대 위에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생명으로 체험함(골1:27)을 추구한다. 

따라서 일부 성경해석상 이견이나 용어표현상 이질적인 면이 다소 있을 수 있으나, 핵심진리(유다서, 3절)에 관한 한 역사적 성경적 그리스도인의 전통 위에 서 있다 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다. 

지면의 제한상 77차 총회 결의를 통해 통합교단이 지적한 각 항목들에 대해서 핵심 요점만 간략하게 해명을 드리고자 한다. 

  1. 신론에 대하여 

1) 신인합일주의를 가르친다는 지적 - 우리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요15:5), '맏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려함이니라'(롬8:29) '우리가 그와 같은 줄을 아는 것은'(요일3:2)라는 말씀을 믿는다. 그러나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주와 똑같이 될 수는 없다. 사람인 우리는 어떤 경우든 결코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나 통합측 지적처럼 일부 설명에 본의 아니게 '표현상' 오해의 여지가 없지 않다. 

2) 양태론을 가르친다는 지적 -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으시는 세 인격, 한영>이 지방교회 삼위일체이다. 이에 대해 통합측 토론자는 <세 인격, 세영들>을 기준삼아 양태론 이라고 함으로 양측에 이견이 생겼다. '세 인격이 하나로 발전된 것'이란 표현은 출처로 제시된 책 110쪽에 발견되지 않는다. 소위 '수박비유'는 세 위격이 동시존재하심을 전제로 한 설명임으로 양태론이 아니다. 그러나 읽기에 따라 오해의 여지는 있다. 

  2. 기독론에 대하여 

예수님의 인성에 변화가 있다고 한다는 지적- 예수님은 참 하나님, 참 사람이시다. 그러나 그 육신은 부활을 기점으로 <썩을 몸>에서 <썩지 않을 몸>-영광의 몸(빌3:21)-으로 바뀌셨다고 성경은 말한다(고전15:42, 44). 그러나 이것을 인성의 변질로 보는 신학자는 없다. 위트니스 리는 그것을 설명한 것이다. 

  3. 인간론에 대하여 

1) 삼분설을 가르친다는 지적- 지방교회측이 삼분설을 지지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삼분설, 이분설은 상대적 관점일뿐 이단성 여부를 가릴 진리항목은 아니라고 본다.

2) 영이 타락하지 않았다며 전인적 타락을 부인한다는 지적 - 이 점은 통합교단 토론자가 토론과정에서 그런 사실이 없었다고 고백함으로 잘 해결되었다(교회와신앙, 97년 8월호 164쪽 참조). 지방교회측은 전인적 타락을 굳게 믿는다. 

  4. 교회론에 대하여 

1) 기독교를 바벨론 음녀라고 한다는 지적 - 위트니스 리는 계시록 주석 과정에서 '큰 바벨론'(계17:5)을 '로마천주교'로 이해했다. 이것은 근본주의 성경교사들 대다수의 관점을 따른 것이다. 그러나 계시록강해는 난해한 문제임으로 얼마든지 다른 해석적 관점이 가능하다. 위트니스 리가 이런 주석을 통해 다른 기독교인들을 무시하거나 모욕하려는 의도가 없었으며, 혹시 오해가 있었다면 재차 양해를 구한다. 

2) 기성교회의 목사와 예배를 부정한다는 지적 - 루터도 주장한 바 있는 <계급적인 의미의 성직자-평신도 제도>를 반대한다는 말이 본의 아니게 와전된 것 같다. 하나님의 양무리에게는 당연히 목자들이 필요하다. 지방교회측도 성도를 목양하는 풀타임 사역자들이 있다. 또한 성경적인 예배를 부인하지 않는다. 

3) 침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삼는다는 지적- 구원은 전적으로 믿음으로 받는다. 그러나 영원한 멸망이 아닌 <이 패역한 세대>로부터 구원을 받으라고 권하고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이 침례를 받은 기록이 성경에 있다(행2:40-41). 이처럼 <세상으로부터의 분별> 내지는 믿음의 외적인 간증으로서의 침례를 말한 것이 다소 오해가 된 것 같다. 믿음에서 나오지 않은 침례는 아무 의미가 없다. 

4) 주님이름 부름이 유일한 성령충만 방법이라고 한다는 지적- 사실이 아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 부요함을 체험한다고 성경은 말한다(롬10:12). 그러나 지방교회 성도 누구도 이것을 유일한 성령충만 방법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풀러신학교측 총장과 신학대학장이 지방교회 인도자들과 2년간 허심탄회한 대화와 검증 끝에, "이단이 아니고 역사적 성경적인 그리스도인들"로 지방교회를 바로 이해하게 되었다. 통합교단과도 더 많은 교제를 통해 동일한 이해에 이르게 되기를 기도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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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_목회자_527호_070210.pdf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6. 25. 05:00


지방교회 탐구 - 2


이제 2회에 걸쳐 현재 예장 통합 교단과 (지방)교회 사이에 현안이 되고 있는 항목들에 대해 다룬다. 
 그러나 이에 앞서 (지방)교회의 개략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사역을 귀히 여기는 소위 (지방) 교회 성도들은 전세계에 약 30여 만명(중국 본토 제외), 3000 여 교회들이 있다. 한국에는 1966년에 소개되었으며, 현재 전국에 100 여개의 교회들과 약 2만여 성도들이 있고 200여 명의 사역자들이 있다.  

이들은 성경에 근거하여 주님이 원하시는 삶과 교회생활에 충실하고자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그 노정에서 통합교단을 포함한 여러 하나님의 자녀들로부터 사랑의 권면과 건설적인 지적을 받을 때 겸손히 배우고자 노력하고 있다. 다만, 오해되고 있는 믿음과 실행에 대해서는 진실에 입각한 규명이 필요하다고 보며, 이를 바탕으로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가 증진되기를 소망하고 있다. 

 참고로 특별한 언급이 없으면 아래의 이들의 견해는 위트니스 리의 총 8권으로 된 '신약의 결론' 책자 내용들에 근거한다. 양측은 바로 이 현안들에 대해 약 3년 간 치열한 진리 토론을 벌인 바 있다. 이제 예장통합 교단측이 지적한 주제들을 하나씩 열거하면서 그 각각에 대해 (지방)교회 측의 입장을 살펴본다.

전세계 30여만명, 3천교회 산재

삼위일체 하나님 동일하게 고백

- 신인합일주의를 가르친다 : 이들은 예장통합측이 (지방)교회가 하나님과 사람의 신비적인 연합을 가르친다는 사실 자체를 문제시 하고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박형룡 박사에 의하면 개혁파 신학에서도 이것은 '구원의 교리의 중심과 기초적 진리'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박형룡 전집-구원론, 98쪽). 

문제는 (지방)교회가 이러한 신비적 연합을 말하면서 창조주와 피조물 간의 구별을 무시한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 크게 다르다. 지방교회는 '포도나무와 가지'(요 15장), '주와 합하는 자는 한영'(고전 6:17) 등에 기초하여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을 믿고 가르친다. 그러나 피조물인 인간은 결코 창조주가 될 수 없고, 그러므로 당연히 경배의 대상이 되거나 전지전능, 무소부재 할수 없다는 사실을 아울러 가르친다. 이 점은 예장통합측과 토론 시 거듭 강조한 바 있다. 

 또한 "자신(하나님)을 제품으로 생산" 등등의 위트니스 리 책 자에서 문맥과 분리되게 떼어 낸 표현들이 읽는 이에 따라 다소 불경스럽게 보일 수도 있었겠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한 알의 밀알이 많은 밀알을 내는 것'(요12:24), '많은 아들이 맏아들의 형상을 본받도록 예정됨'(롬8:29) 등 의 성경진리를 쉽게 이해시키려는 과정에서 일어난 표현 상의 문제일 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 말들이 창조주와 피조물의 차이를 무시하는 가르침에 근거하지는 않다는 점은 전후 문맥이나 위트니스 리의 다른 책자와 함께 볼 때 분명하다. 

 - 삼위일체론에서 양태론을 가르친다 : 결론부터 말하면, 위트니스 리가 쓴 400 여권의 책자 중 혹시 한 두 군데 이러한 오해를 살만한 표현이 있었는지는 모르되, 원칙적으로 (지방)교회는 양태론을 가르치지 않는다. 양태론은 이단 신론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이런 오해가 나왔을 법한 다음 두 항목들에 대해 이렇게 해명한다. 

 - (위트니스 리는) 한 인격, 한 영을 주장한다 : 당시 예장통합측의 토론자는 위트니스 리가 한 인격의 삼위일체를 믿는 것이 양태론자라는 증거라고 했다(월간 교회와신앙, 2001, 11월호, 141쪽). 그러나 위트니스 리는 한 인격이 아닌 세 인격들의 하나님을 믿는다. 그 증거는 멀리 갈 것도 없이 "(위트니스 리가) 세 인격이한 영 안에 있는 삼일 하나님 이라고 한다."라고 한 통합교단 조사보고서 자체에 있다. 해당 보고서는 '이 세 인격이 하나로 발전되었다'라고 한다는 증거로 위트니스 리의 책자 '하나님의 경륜' 110쪽을 제시했으나 확인해 본 바 해당 지면은 전혀 다른 내용이다. 뭔가 큰 착각 내지는 오해가 있는 듯 하다. 

 - 세 영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세 인격을 가진) 한 영의 하나님'을 주장한다: 예장통합측은 '세 영들의 하나님'이 정통인데 위트니스 리가 세 인격을 가지신 '한 영의 하나님'을 말함으로 양태론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성부의 영과 성자의 영과 성령은 <각기 다른 세 영들>이지 <한 영>(성부의 영=성자의 영= 성령)이 아니다 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정통 교부 중 하나인 힐라리우스는 요한복음 14:23을 해설하면서 "아들과 아버지께서 함께 내주하시는 수단이 곧 보혜사 성령이시다...아들의 영이 따로 있고 아버지의 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라고 함으로 예장통합측의 주장을 일축하고 오히려 위트니스 리와 같은 관점을 말하고 있다(차영배, 삼위일체론, 168쪽). 이들은 황승룡 박사(개혁교회와 성령, 24쪽)를 비롯한 개혁교단 신학자들도 위 힐라리우스처럼 영을 이해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위트니스 리의 주장은 예장통합측 토론자의 주장과는 다를지 모르나 성경적으로든 교리적으로든 아무 문제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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