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27. 05:00
 

「차앙쏘주파이-常受主派」의 기인과 변천,

또한 이단적인 본질

壹 작가의 배경  
貳 중국대륙에 있는 이른바「후한파」 
參 「차앙쏘주파이-常受主派」의 기인과 변천 
肆 이 상수(李常受) - 「차앙쏘주파이-常受主派」에 대한 반응  
伍 「중화대륙 행정 사역처-中華大陸行政執事站」의 이단적인 전단지  
陸 「차앙쏘주파이」와「중화대륙 행정 사역처」의 이단적인 잘못 
柒 결론 



 壹 작가의 배경

一 은혜를 받은 과정 

 나는 1931년 중국의 허난성 예쌘(河南省葉縣)에서 태어났다. 나의 증조모와 부모님 모두 주님을 믿으셨고, 나는 어려서부터 어른들을 따라서 집회에 참석하였다. 1946년 내가 15살 때에, 유월절 어린양에 관한 복음을 듣고 분명하게 구원을 받았다. 1951년에 주님을 사랑하는 자매와 함께 결혼을 하였고, 결혼 후에 온 가족이 주님을 믿고 주님을 사랑했기에 형제자매님들을 자주 접대하였으며, 집에선 자주 집회가 있었다.  

二 인도함을 받음으로 도움을 얻음 

내가 주님을 추구하며 사랑하는 과정 가운데서, 우리 지방에 있는 지방교회의 책임 형제님들이신 로허잉(婁和贏), 허위꽤(和玉貴), 우총싼(吳崇三), 꿔턘은(郭天恩)형제님들께서 나에게 많은 영적인 도움을 주셨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그분들을 통해서 나는「상해 복음서원」이 출판한 책자들인 《부흥보》,  《웟치만 니 메시지 기록》, 《열두 광주리》, 《교회의 정통》, 《무엇이 신약인가》, 《그리스도인의 50필수과정》등을 얻게 되었다. 이런 책자의 도움으로 인해 나는 하나님의 구원과 그리스도께서 생명되심을 알았을뿐만아니라, 교회와 그리스도인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경건함과 거룩한 생활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게 됐다. 그렇기때문에 후일에 있었던 「인민 공동 사회화-人民公社化」 그리고 3년간의 자연 재해 기간에, 의복과 식량이 부족하고, 생활이 극도로 빈곤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기꺼이 죽을지언정 국가와 단체의 물건을 훔치지도 않았고, 가져오지도 않았으며, 일등 국민이 되었었다. 

 三 「문화혁명」기간에 핍박을 받고 구금을 당함  

1966년부터 시작된 십년의 「문화대혁명」은 천만의 중국 인민들에게 큰 재해를 안겨주었다.단순하게 주님을 믿은 나와 같은 그리스도인도 피할 수가 없었다.「낡은 네가지를 파괴하고, 새로운 네가지를 세우자」 라는 흐름 가운데서, 우리의 성경, 찬송가, 영적인 서적등은 모두낡은 네가지로 보여, 몰수당하고 불태워졌다. 나도 「소, 귀신, 뱀, 하나님」이라 불리며, 비판을 당하고, 죄수가 쓰는 모자를 쓰고, 가두행진을 했다. 그럴 뿐만아니라 문화대혁명 말기에 이르러, 1975년 10월 4일에 나는 또 다시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나는 기독교의 「샤아췬파이-小群派」에 참석했다고 고발됐으며, 「현행 반 혁명죄」란 명목으로 5년을 선고 받았다. 형을 선고받은 후, 나는 시화쌘(西華縣)52농장에 보내져 노동 근무를 하게 되었다. 1980년대에 이르러서, 정부가 무고한 자와 잘못된 안건을 심사하던 중, 나는 무고죄로 표명되어 억울함을 깨끗이 씻게 됐고, 무죄가 인정되어 석방되었다. 

四 「문화혁명」후에 부흥됨 

내가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온 후, 여전히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따라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하였지만, 다만 성경과 영적인 서적이 부족한 어려움이 있었다. 이런 와중에 어떤 사람이 광쪼(廣州)에서 성경과 이 상수 형제님의 책인《경건을 훈련함》, 《영과 생명》, 《주님의 회복-먹음》, 《주님과 함께 삶》, 《마태복음 라이프스타디》 등을 가지고 왔다. 이런 영적인 서적들의 도움을 통해서, 나는 부흥되었고, 안에서 압박을 당하던 영이 해방됨을 받았다. 그럴뿐만 아니라 내가 전하는 복음의 내용이 이런 책자의 도움을 통해서 높여지게 되었다. 더이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믿으면, 복과 평안이 있게 되고, 지옥에 가지 않고 천당에 간다.”라고만 말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완전한 복음, 즉 은혜의 복음과 왕국의 복음을 전했는데,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의 죄로 하여금 사함받게 할 뿐만 아니라, 더더욱 우리로 하여금 거듭나게 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오게 했으며, 더 나아가 의의 열매를 맺어, 거룩하고 의로우며 하나님을 표현하는 생활을 하도록 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복음이 전해짐으로 우리 전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은혜를 받음으로 구원받게 됐다. 주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 중에, 나이든 분들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젊은이들이 있었다.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우리 지방에 있는 사회의 치안이 크게 전환됐고, 사회의 분위기도 크게 개선되었다. 원래 적지않은 불량한 청년들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교회안에서 주님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과 사회에서 모범적인 시민이 되었다. 본래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불화, 부부간의 다투고 싸움함, 심지어는 부서져버린 가정이, 우리가 복음을 전함으로 인해, 예수님을 믿고 회복됨을 얻어 행복한 가정으로 되었다. 이러한 예들이 우리 지방에서 셀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이와같이 자유롭게 복음을 전함으로 사람을 인도해 구원시키고, 정상적인 교회생활을 하는 국면은, 정부가「사인방-四人幫」을 분쇄시킴과, 「문화대혁명」을 거치며 이끌어 온 장기적인 소란함을 정상으로 돌이키고, 개혁을 통해 개방하기 시작한 후에 생겨난 것이다. 이런 좋은 국면에 대해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며, 또한 마음속에서부터 정부의 정책과 법과 실시하는 것들을 옹호했다. 

 貳 중국대륙에 있는 이른바「후한파-呼喊派」 
 

 一 「후한파」 운동에 대한 타격 

안타깝게도 이처럼 자유롭게 복음을 전하고, 정상적인 교회생활을 하는 국면은 얼마가지 못했는데, 나의 체험에 따르면 2년 반에 불과하다. 1983년 6월에 중앙 정부는 전국에 발표하기를, 반동 조직인 「후한파」에 엄중한 타격을 주고, 강력히 단속하라고 통보하였다. 정부가 발표한 통보에 근거하면,  “「후한파」는 종교란 깃발을 내걸고 불법적인 활동을 진행한 반동 조직으로, 그들은 미친듯이 외치며, 소란을 피우고,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며, 그들은 광란적이고,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롭게 하며, 그들은 귀신을 쫒아내고 병을 치료하며, 사람의 생명을 잔해하고, 그들은 소문을 만들어 민중을 유혹하며, 부녀자들을 속여 간음을 행한다.” 라고 언급했다. 그리스도와 교회란 깃발을 내걸고 성경을 위반하고 그히스도인의 신앙을 위반하거나, 심지어는 국가의 법을 범하는 일에 종사하는 극소수의 범죄자들로 인하여,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엄중한 질책을 받았다. 정부가 법에 근거하여 범죄 활동에 대한 타격을 가하는 움직임을 우리는 마음속으로부터 완전히 지지하는 바이다. 왜냐하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정부와 정권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세우셨음을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정부를 세우신 목적은, 바로 선한 일은 상을주고, 악한 일은 벌함으로(로마서13장), 우리로 하여금 매우 경건하고 정중한 가운데 조용하고 평온한 생활을 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디모데전서 2장). 그러므로 우리는 국가와 정부의 영도자들을 위해 자주 기도하고 간구한다. 

二 운동의 확대됨 

 그렇지만 이른바 「후한파」를 공격하려는 운동은, 시작할때부터 현저하게 확대 되어졌다. 중앙정부에서 통보가 나가자마자 각지의 공안국 기관들은,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이들을 붙잡기 시작했다. 우리 현을 예로할 때, 한 번에 수백명을 붙잡아 가서, 어떤이들은 대대에 갇히고, 어떤이들은 인민공사에 갇히고, 어떤이들은 현의 당교위에 갇혔는데, 왜냐하면 현에 있는 구치소와 조사대에 이처럼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가둬둘 큰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三 「후한파」를 판정하는 표준?

중앙정부의 통보는 한 가지고, 각지의 구체적인 집행은 또 다른 일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후한파」를 판정하는 표준인가? 각지의 표준이 같지는 않지만, 대체적으로 다음의 두 가지 표준을 따른다. 하나는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상수 씨의 저서를 읽는 것이다.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후한파」의 표준을 삼는 것은,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포함시켜 버리는데, 왜냐하면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기도를 할때,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하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말한 것을 따르면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3절) 라고 했는데,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사람은 아마도 구원받지 않았을 것이며, 그리스도인이 아닐 것이다. 나 자신도 자주 기도하는데, 자주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른다. 어떤때는 큰 소리로, 어떤때는 작은 소리로하는데, 공공장소에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수 있기에 작은 소리로, 혼자 있을때는 나의 영이 해방받고 훈현하기 위해서 큰 소리로 부른다. 그렇지만 내 자신이 「후한파」라는 것을 시인한 적이 없다. 나는 정부가 통보한 것과 같은 범죄에 의한 위법행위가 없었으며, 나는 단지 단순하게 예수님을 믿고,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그리스도인에 불과할 뿐이었다. 

다른 지방에서는 이 상수 형제님의 책자를 읽는 것을 「후한파」라 판정하는 표준으로 삼았다. 가정에서나 혹은 집회장소에서 이 상수 저서인 책을 찾으면, 이 사람들이 「후한파」라고 말했고, 이러면 잡혀가거나, 갖히거나 벌금을 내게 됐다. 이것은 참으로 불공평하고, 논리에 맞지 않으며, 우매하고 무지한 일이었다.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듯이 이 상수 씨는 광대한 그리스도인들이 공인하는 기독교의 교사이며 성경학자이다. 그의 저서는 모두 성경을 기본으로 사도의 가르침을 말하고 있다. 이런 저서는 수십종의 문자로 번역되어, 약120여 국가와 지역에서 전해지고 있다. 이런 문서가 가는 곳마다 모든 지역에서 적극적이고 정면적인 영향을 끼쳤다. 본래 생활과 일에 있어서 방향이 없던 많은 젊은이들이, 뛰어난 문학가, 엔지니어, 변호사, 교수와 의사등이 되었다. 심지어는 전에 행위가 좋지 않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교회생활 가운데 있음으로 인해서, 모범 국민이 되었다. 많은 지방교회안에는 셀수 없을 정도로 많은 아름다운 간증들이 있어, 그들의 생각이 새롭게 됨으로써 가장 높은 표준의 도덕을 살아낸 것들을 간증하였다. 예를 들어 행복한 가정생활, 어진 아버지와 효도하는 아들, 형제가 우애있게 서로 공경함, 많은 사람들을 도와 파괴된 결혼 생활을 새롭게 세워줌 등이 있다. 교회안의 믿는이들은 모두가 정상적인 인생관, 정당한 직업, 적극적이고 진취적임, 낙관적으로 진보해 감이 있다. 교회안에 있는 믿는이들은 기꺼이 남을 돕고, 규율을 잘 지키며, 이웃과 지역 주민들이 칭찬을 하는 자들이다. 세계 각처의 사회에 적극적이고 정면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오는 성경을 따른 건강한 가르침인 것을, 다만 중국에서 읽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란 말인가?  

우리 현에서 잡아간 수백명의 그리스도인들은 절대다수가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이요, 나라를 사랑하고 정부를 옹호하는 좋은 국민들이다. 그들 대다수는 조사와 심문을 받은 후에, 모두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갔고, 다만 우리 교회의 「장로」 5명만이 현에 있는 구치소에서 일년여 동안 갇혀 있었다. 일년 후에야 정식으로 수감됐고, 신속하게 엄중한 형벌을 받았는데, 우리들의 형기는 적으면 8년이고, 많으면 15년 이었는데, 나는 12년의 유기형을 선고 받았고, 죄명은 「반혁명 선전 소란죄」였다. 우리의 판결문으로부터 알수 있는 것은, 공안국 기관에선 「후한파」와 관계된 통보에서 열거한 것과 같은 것이, 우리에게서 어떤 형사에 관계된 범죄를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판결받은 죄명은, 이 상수 씨의 저서를 읽고 그리스도인의 집회중에 이 상수 씨의 《마태복음 라이프스타디》를 전파한 것이다. 이 상수 씨의 《마태복음 라이프스타디》는 전세계에서 각종 언어로 발행되어, 천만의 사람들이 읽고, 듣는 것인데, 그 가운데서 정부를 반하는 내용을 한마디라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cf. 1, 참고 : 위키피디아 - 호함파 링크 클릭 
cf. 2, 최근 중국 국가 이단단체 연구소와 중국 민간 이단단체 연구소에서
호함파 안에 위트니스 리와 관련성 없음을(제외시킴) 공식 자료를 통해 표명함-하단 자료 다운

Kaiwind Xiejiao List_k.pdf


四 억울함중에서 여전히 복종함 

우리가 이와같은 억을함을 당했다 할찌라도, 우리는 여전히 자신을 공의를 따라서 심판하시는 주님께 맡겼다. 우리는 정부를 원망하지 않았을 뿐만아니라, 더더욱 정부를 반대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정부는 우리의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내가 잠시 억울함을 당했지만, 나는 정부가 언젠가는 사실과 진상을 이해하게 될 것이며, 내가 첫번째로 형을 받고 감옥에 갇혔던 것과 같이 억울함을 씻어줄 것이라고 믿었다. 나는 형을 받은후에 카이풩쓰 허난성 제일 (開封市河南省第一) 감옥에서 복역하게 됐다. 복역 기간중에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신성한 생명은, 나로 가장 높은 도덕 수준의 생활을 살아 내도록 여전히 유지시켜 주었고, 이 외에도 규칙을 잘 지키며, 감옥의 모든 규정을 준수하도록 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12년 형기는, 감형을 받고 앞당겨져 석방되었다. 나는 1992년에 출옥했으며, 1993년에 미국에 와서 식구들을 방문했고, 오늘까지 거주하고 있다.  

五 정부가 어지러움을 바로잡기를 소망함

「후한파」에 타격을 가하려던 이 운동은, 정부의 본래 의도가 종교란 겉옷을 걸쳐 입은 범죄자들을 제거하려는 좋은 것이었겠지만, 이 운동이 진행됨과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선 도리어 너무나도 확대되었다. 이는 50년대의 반 우익 운동과도 같았다. 당시 극소수의 우익파 분자들이 정부를 반대하긴 하였지만, 수십만의 지식분자들을 우익파로 선을 그음으로, 그들에게 수십년간 고통을 안겨주었고, 나라 전체의 이익에도 손상을 입혔었다. 후에 정부는 소란된 것을 바로 세우며 잘못 그었던 우익파의 오명을 벗겨주었는데, 이것은 아주 합당한 것이었다. 이번의 「후한파」에 타격을 가하려던 운동은, 많은 무고하고 단순한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핍박을 받고, 휩쓸림으로 인해, 개혁을 인한 개방이래로 정부와 믿는이들간의 양호한 인상은 심하게 손상받게 되었고, 또한 극소수의 정부와 믿는이들간의 관계를 손상시키려는 자들에게 기회를 갖게 하였다. 정부가 합당한 인상을 유지하고, 더욱이 많은 믿는이들을 단결시키기 위해서, 이 일의 소란함을 바로잡는 것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六 타격 운동이 교회에 이끌어온 결과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형을 선고받았던 이른바 교회중의 「장로」들인 우리들은, 사실상 주님을 믿은지 비교적 오래됐고 연장한 자들이다. 그들은 성경의 진리를 비교적 잘 장비했고, 교회안에서 목양하고 돌보는 책임을 진다. 이들 교회안의 「장로」들이 갇힌 후에, 각 지방교회의 형제자매들은 목자가 없는 양무리가 되었으며, 마치 바울이 사도행전 20장에서 에베소의 교회에 경고한 말인 “나는 압니다.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들이 여러분 가운데 들어올 것이며, 그들은 양 떼를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끌어내어 자기들을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것을 말하는 사람들이 여러분 가운데서도 일어날 것입니다.” (행20:29~30)라는 것과 같다. 바울의 이 말은 완전히 허난성(河南省)에 있는 교회들에게 성취되었다. 이 후에 각종 이단과 사교(cult)단체 및 괴이하고 기이한 현상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하였다. 

 參 「차앙쏘주파이-常受主派」의 기인과 변천 

당시에 거의 모든 노련하고, 영적인 체험이 있는 인도하는 형제들이 모두 갇혔었기 때문에, 교회중의 젊은 형제들은 비록 열심이 있었지만, 성경의 진리와 영적인 체험이 부족했다. 1987년에 사탄은 먼저 교만하고 자신을 높이는 사람들을 유혹하여, 일어나서 자칭 주님이요, 아버지이며, 두번째 강림한 그리스도라고 하면서, 무지한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여 자신을 따르게 했으며, 더 나아가서는 그들에게 절하고, 기도하게 했으며, 그런 후엔 경배하고 기도하는 목표를 이 상수 씨에게 돌이켜서 이 상수 씨를 주님과 아버지라 불렀다. 

一 「청요-程有」의 이단적인 말:「아버지」를 숭배함이 산출됨  

「청요-程有」사건의 발단은 다음과 같다. 「청요-程有」란 사람은 본래 기독교의 루터파에 속했던 자로써, 1980년에 주의회복이 루싼썐(魯山縣)에서 일으켜진 후에, 그는 지방교회로 옮기어 집회를 했다. 그렇지만 이 사람은 계속하여 야심을 가진 사람으로, 머리가 되고 싶어했지만 기회가 없었다. 1983년에 이르러 교회가 「후한파」 타격하기의 운동으로 인해 핍박을 만남으로써, 인도하는 형제님들이 모두 감옥에 갇힌 후에, 그의 야심은 드러나게 되었다. 1987년초에 그는 꿈을 꾼후, 하나님으로부터 대계시를 얻었다고 선포하며 말하길 “하나님께서 이미 그를 「중화대지의 아버지」로 삼았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이러한 말은 즉시 동역자 형제님들에 의해 단호하게 거절을 당했다. 그는 벽에 부딪힌 후에도 여전히 단념하지 않고, 마침내 루싼(魯山)교회의 동역자를 떠나 스스로 안양(安陽)시에 가서 다른 지방의 책임자들을 모아 놓고 집회를 하였다. 집회중에 그는 먼저 자신이 루싼(魯山)교회에서 온 동역자로 앞선 형제님들을 이어서 왕국 복음을 전파한다고 선포한 후에, 그가 꿈에 받았다는 이른바「중화대지의 아버지」란 「대계시」를 말했다. 그는 그 집회를 「아버지를 아는 집회」라고 칭한다. 그때 집회중 예썐(葉縣)의 란챵스으(藍強石)는 적극적으로 청요(程有)를 아버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였고, 청요(程有)는 곧 바로 란챵스으(藍強石)를 「허난성(河南省)의 아버지」로 세웠다. 란챵스으(藍強石)는 또한 허난성(河南省)의 각 현과 시와 향의 모든 곳에 소위 말하는 「아버지」를 세웠다. 

 그 후에 그들의 방식은 바로 모든 믿는이들이 자기 샹(鄉)의 아버지를 향하여 기도해야 하며, 샹(鄉)의 아버지는 썐(縣)의 아버지를 향하여 기도하고, 썐(縣)의 아버지는 성(省)의 아버지를 향하여 기도하며, 성(省)의 아버지는 다시 청요(程有)를 향하여 기도해야만, 청요(程有)가 하늘에 있는 아버지에게 기도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하늘의 아버지가 너무 멀리 있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땅에 있는 아버지를 향해 기도해야만 가장 편리하다는 것이다. 

 나의 아내와 장모님은 모두가 경건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으로, 내가 비록 붙잡혀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우리 집에선 자주 그리스도인들의 집회가 있었다. 예전에 란챵스으(藍強石)는 예썐(葉縣)교회의 일원으로, 자주 우리 집에 와서 집회를 했었다. 란챵스으(藍強石)가 안양(安陽)에서 예썐(葉縣)으로 돌아온 후에, 예썐(葉縣)에서 「아버지를 아는 집회」를 똑같이 소집했다. 그는 나의 아내를 찾아와 말하길 “당신의 집에서 집회가 있습니다.”라고 했다. 나의 아내는 그가 이미 사악한 흐름을 받음으로, 이미 청요(程有)를 그의 아버지로 인정했음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우리집에서 집회하는 것을 금방 승낙했다. 이것이 우리 지방에서 처음으로 가진 「아버지를 아는(숭배하는) 집회」였음을 누가 알았겠는가. 

그 당시 집회중에 란챵스으(藍強石)가 데리고 온 한 무리는 실내에서 모이고, 우리 가족과 다른 사람들은 다만 밖에서 구경해야만 했다. 각지에서 이 집회에 참석한 사람이 적지 않았지만, 대다수는 중도에 떠나갔고, 소수만이 남았다. 그 때의 집회에서 「허난성의 아버지」인 란챵스으(藍強石)는, 료샤요(劉小友)를「예썐(葉縣)」의 아버지로 세우고, 또한 완쫑천(萬忠臣)을「쬬썐샹(舊縣鄉)의 아버지」로 세웠다. 그 집회중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챵스으(藍強石)를 에워싸고 찬양하며 노래를 불렀다. 

그 집회 후에 나의 아내와 장모님은 마음 깊은 곳에서 이런 사실을 참기가 어려워 죽을것만 같은 고통을 받았다. 아내는 말하길 “마치 파리를 먹어서 위속에서 참기 어려운 것과 같고, 또한 중병에 걸려 해를 당한 것과 같았다.”라고 했다. 어찌할 수가 없었기에 그녀들은 나의 두 딸들과 사위 두명이 함께 무릎을 꿇고,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주님께 기도한 후에야 서서히 안에서부터 안위함을 받았고, 누림을 얻게 되었다. 다음 날 그들은 마을 인근의 형제자매들과 함께 교통하고 기도를 한 후에야 서서히 깨닫게 된 것은, 어제의 집회에 악한 영이 들어와 악한 흐름을 이끌어 들였다는 것이다. 나의 아내와 장모님은 무식했기에, 성경에 대해 아는 지식이 아주 적었으며, 평시의 집회에선 거의 다른이가 말하는 것을 듣곤 했다. 그들은 옳고 그름에 대한 판별에 있어서 성경의 지식을 가지고 한 것이 아니라, 영과 생명의 느낌을 가지고 했다. 「아버지를 아는 집회」가 있기 전, 매번의 집회에서 집회 전과 후 모두 누림으로 가득했고, 영안에서 성령의 기름부음과 적셔짐이 있었으며, 생명의 공급으로 충만했었지만, 「아버지를 아는 집회」만은 맛이 완전히 달랐으며, 안에서는 마음을 찌르고, 고통으로 인해 죽을 것만 같았다. 기도를 통해서「아버지를 아는 집회」는 이단적인 것이며, 악한 영의 역사라는 것을 확증한 후에라야, 영안에서 안위함과 누림을 얻게 됐다. 이 때부터 우리 집은 란챵스으(藍強石) 무리들과 관계를 잘라 버렸고, 우리 집에 다시는 오지 못하게 했다.  
 

원래 그들 한 무리 가운데는 교회안에서 낮익은 얼굴이 적지 않았고, 우리 집은 그들이 자주 오던 곳이었기에, 그들을 거절하는데는 큰 싸움을 체험해야만 했었다. 나의 아내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매번마다 그들이 우리 집에 오면, 그들을 쫓아 내었다. 몇번을 이렇게 하자 그들의 분노를 일으키게 됐고, 그들의 저주를 이끌어 오게 됐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우리 집을 떠나면서 저주하기를 “이 집이 황폐함 만을 당신들에게 남겨 주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사람에게 거짓말함과 저주함은 그들이 이곳에서 이단을 전파하면서 자주 사용하는 수법이 되었다. 

二 변화됨의 과정 

 우리 집에서 거절을 당한 후, 청요(程有)와 란챵스으(藍強石) 무리들은 다른 많은 지방으로 가서 이른바 「아버지를 아는 집회」를 열어, 각 지방에 있는 무지한 믿는이들을 미혹하였다. 이런 후에 그들의 집회중, 남녀가 서로 끌어앉고, 입을 맞추며, 발을 씻겨주고, 춤을 추면서 그들이 세운 「아버지」에게 경배했다. 이들은 우상을 숭배하는 이단으로 전락했을 뿐만아니라, 더더욱 수치심과 체통을 완전히 상실해 버렸다. 그 후에 그들 가운데서 음란한 일이 있었음을 듣게 되었다. 이는 마치 사도 바울이 성경 고린도전서 10장에서 경고한 바와 같이, 우상숭배는 음란과 하나로 연결되어지는데, 이 일이 「아버지」를 숭배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완전히 성취되었다. 

 三 「아버지가 됨」에서 「왕이 됨」  

이 후에 청요(程有)와 란챵스으(藍強石) 무리들은, 또 다시 자신을 인자라 칭하고, 두 번째 강림하신 예수님이요, 은밀히 강림하신 그리스도시며, 왕국의 문이기에, 그들을 통하지 않고는 왕국안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하며, 그들이 바로 천국의 왕이기에 기적을 행할 수 있는 권위가 있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집회 가운데서, 즉시로 어떤 사람들이 그들을 향해 무릎꿇고 경배하며, 그들을 주님과 왕이라 칭했다. 

그들이 이른바 「왕」이라 칭하는 자들이 그들의 집회에 오게 되면, 그들은 마태복음 21장 5절을 인용하여, 주 예수님에 대해 말한 말씀을 그들에게 인용하여 말하길 “보아라, 너의 왕께서 너에게 오신다. 그분은 온유하시어, 나귀와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인 어린 나귀를 타셨다.”고 했다. 더군다나 그들의 「왕」은 실재로 사람을 나귀로 삼아, 사람위에 올라 타고 왔다 갔다 하였다. 예썐(葉縣)의 어느 촌에서 있던 집회중, 그들은 작은 정원에 모여서, 대문을 잠가버리고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하였기에, 밖에 있는 사람들은 다만 안에서 환호하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후에 어떤 사람이 담 밖에 있던 나무 위에 올라가서야, 그들이 세운 「왕」이 사람위에 올라 타고 왔다 갔다 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왕이 오셨다고 그를 환영하게 하는 것을 보았다. 

 왕이 되려고 꿈 꾸던 이 사람들은, 후에는 마침내 왕이 되기 시작했다. 왕이 된 사람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을 위해 왕의 침대와 왕의 베개와 왕의 의자, 심지어는 왕비를 예비하게 했다. 게다가 밥을 먹을 때, 사람들이 그에게 밥을 올리면서 “아버지 왕이여, 진지 드십시요.”라고 말하게 했다. 더군다나 「아버지, 왕」에게 밥을 올리는 자는 뜻밖에도 그의 육신의 부친이었다. 얼마나 황당하고, 우매하며, 웃기는 일인지! 「아버지가 되고, 왕이 된」이들은 이런 정도로 변해버렸고, 신앙상에 있어「사람을 숭배함」이 있을 뿐만 아니라, 「우상을 숭배함」으로 이단이 되어 버렸다. 더군다나 진짜 왕이 되고 싶어 했고, 정치적으로 반동분자가 되었다. 그럴 뿐만아니라 그들은 도덕적으로 부패하였고, 윤리적으론 패망함으로써, 타락하여 사교(cult)가 되어 버렸다. 그들이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고, 망령되이 행한 것들은, 금방 정부의 공안국 기관들의 주의를 이끌었다. 1987년 말에 청요(程有)와 란챵스으(藍強石)등 아버지가 되고, 왕이 됐던 한 무리들은 모두가 붙잡혀 형을 선고 받은 후 감옥에 갇혔다.  

四 「아버지가 되고, 왕이 됨」에서「창쏘(常受) 주님」、「창쏘(常受) 왕」을 숭배하게 됨.  

이 사악한 이단의 운명은 그것이 전해지게 될 때, 거짓 그리스도가 나와 사람들을 미혹함으로, 각지 교회에 의해 이단으로 판정되기 때문에, 마땅히 짧아야 하고, 더군다나 자신들 스스로를 「아버지」와 「왕」으로 세운 자들이 붙잡혔고, 그들을 따르고 미혹을 받던 자들이 점차적으로 줄어들었기에, 이 사교(cult)가 마땅히 속히 사라져야 하며, 사람들이 신속하게 그들과 분리되어 그들이 잘못됐음을 단정했어야 했지만, 사실은 이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1988년에 이르러서 청요(程有)와 란챵스으(藍強石)를 따르는 소수의 사람들이 머리와 얼굴을 바꾸어, 그들이 「아버지」와 「왕」으로 부르던 것을 이 상수(李常受)씨 에게로 옮기어, 예전에 청요(程有)등의 사람들을 주님과 아버지와 왕이라 부르던 것을, 지금은 이 상수(李常受) 씨를 주님과 왕과 아버지라 불렀다. 그리하여 소위 「창쏘(常受) 주님」、「창쏘(常受) 왕」이란 칭호가 생긴 것이다. 이후부터 그들의 집회 가운데서, 그들은 시편 150편의「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를 「창쏘(常受) 왕을 찬양할지어다.」로 모두 바꿨다. 그들의 기도에서도 창쏘(常受)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기도했고, 사람들에게 침례를 줄 때도 창쏘(常受)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침례를 주었다.  

이는 참으로 배후에 있는 사탄이 이단적인 사람들을 이용하여 만들어낸 가장 독하고 가장 궤계한 계모로써, 대적의 일석이조를 노린 파괴시킴을 위한 수법이다. 그들은 이 상수 형제님께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높은 명성이 있음을 알고, 이 수단을 사용하여 한면으론 더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여 그들의 이단을 따르게 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이 상수 씨가 사람들에게 그를 숭배하게 했다고 느끼게 하여 이 상수 씨의 명성을 손상시키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 수단은 효험이 있어서, 1988년에 성경의 진리가 분명하지 않고, 주님을 사랑하지만 뿌리가 없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단을 따르게 됐다. 어떤이들은 우매하고 무지함으로 심지어는 “당신들이 이 상수 씨의 저서와 메시지를 읽으면서, 어떻게 그를 주님이라 부르지 않는가? 당신들이 그를 주님이라 부르지 않는 것은 양심이 없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밖에도 국내외에서 이 상수 씨를 반대하던 사람들은 기회를 붙잡아 이 상수 씨를 공격하는 문장을 써서 말하길, “이 상수 씨는 개인숭배를 조장하고 있다. 중국에서 이 상수 씨를 하나님으로 삼아 숭배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아마도 대륙의 적지않은 맹종자들은 이 상수 씨의 개인 숭배에 대한 태도에 대해 참으로 몰랐을 것이다. 이런 문장들을 써서 기회를 붙잡아 이 상수 씨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만약 진지하게 이 상수 씨의 저서를 읽어보았다면, 이 상수 씨의 태도에 대해 분명하였을 것이다. 

肆 이 상수(李常受)-「차앙쏘주파이-常受主派」에 대한 반응  

1988년에 대만의 모 그리스도인이 허난성(河南省)의 어느 지방에 가서 친척을 방문하여, 그곳의 집회에 참석했는데, 바로 「차앙쏘주파이-常受主派」의 집회였기에 친히 그들의 이단적인 말을 듣게 됐고, 그들의 우매하고 무지한 방식을 친히 목도하게 되었다. 대만으로 돌아온 후 그는 문장을 써서 홍콩의 기독교 출간지에 기고했다. 그 출간지의 편집인은 이 상수(李常受)씨의 오랜 친구였기 때문에, 그는 출간지 하나를 이 상수씨에게 부쳐 주었다. 이 상수씨는 관련된 보도를 보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하길 “사람이 어떻게 이리도 우매할수가 있는가? 혹시 어떤 사람이 소문을 만들어 공격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1989년에 허난성(河南省)의 한 형제가 추수감사절 기간에 미국에 와서 이 상수 형제님을 만나, 허난성(河南省)에 나타난 이단의 유래에 대해서 상세하게 말씀해 드렸을 때에야, 중국 대륙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음을 이 형제님은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 형제는 더 나아가서 이 이단적이고 사악한 말의 나타남으로 인해 허난성(河南省)의 많은 사람들이 미혹을 받았는데, 특히 초신자들이 그러했음을 말씀드렸으며, 미혹을 받은 형제자매들과, 정통적인 교회생활이 중국대륙에서 유지되어 가게 하기 위하여, 이 상수 형제님께서 비디오를 통해서나, 혹은 방송을 통해서 친히 진리를 천명하시여, 사람을 경배함이 틀렸다는 정확한 메시지를 발표해 내실 것을 건의 하였다. 이렇게 할때 한 면으론 미혹을 받은 무지한 사람들을 되돌이킬 수 있으며, 또 한 면으론 사실을 분명히 밝혀낼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 상수(李常受) 형제님은 이 사실을 아신 후에,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한 면으론 중국대륙의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하시며, 한 면으론 해결할 방법을 찾으셨다. 1991년 여름 훈련을 마치신 후, 친히 비디오 테이프를 제작하셨는데, 이 테이프의 전체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내가 전해들은 확실한 소식으로는 “여러분들이 그 곳에서 나를 신으로 삼아 경배하며, 나를 주라 칭하고 왕이라 칭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느낄때 이 말은 너무나도 합당하지 않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여러분들은 사람을 신으로 삼아 경배해선 절대로 안 됩니다. 

 성경 가운데 사도행전 14장 11~18절은 말하기를『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소리를 높여, 루가오니아 말로 “신들이 사람의 모양으로 우리에게 내려오셨습니다.”라고 하며, 바나바를 제우스라 부르고, 바울이 말하는 데 앞장을 섰기 때문에 바울을 헤르메스라 불렀다. 그 도시 밖에 있는 제우스 신전의 제사장이 황소들과 화환들을 가지고 성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두 사람에게 제사를 지내려고 했다. 사도 바나바와 사도 바울이 듣고서, 자기들의 옷을 찢으며 무리 가운데로 뛰어 들어가서 외쳤다. “여러분, 왜 이런 일을 합니까?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심성을 가진 사람입니다.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만물을 지으신 살아 계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나간 세대에서는 모든 민족이 자기들의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두셨으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비를 내려 주시고 결실하는 계절을 주시는 선한 일을 주셔서,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채우셨습니다.” 두 사람이 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서, 자기들에게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여기에 있는 성경말씀은 은혜를 사람들에게 이끌어간 사도들일찌라도, 사람이 만일 그들을 신으로 삼아 숭배하려할 때, 사도들은 허락하지 않았으며, 그들을 금지시켰음을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 말씀을 통해서 이와 유사한 일을 완전히 멈출 것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사람을 신으로 삼아 숭배하거나, 혹은 그를 주 또는 왕이라 칭하는 것은 우상숭배하는 것과 동일하며, 더욱이 하나님을 모독하며, 하나님께 득죄하게 됩니다. 나는 다시 한번 여러분들이 이 말을 받아들일 것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이 일을 완전히 멈추도록 하고, 다시는 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여러분들에게 요청하는 것은, 행여 다른 곳에서도 이런 상황이 있다면, 신경을 좀 써서 전달해 줄 것은, 그들도 역시 반드시 멈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앞에서 교정함이 있을때에야만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은혜로 대하시고, 여러분들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도 이 곳에서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1991년 여름 이 상수 형제님의 녹음테이프 제작  

이 상수 형제님께서 사도행전 14장을 근거로한 메시지는 성경의 진리를 천명하셨고, 사람을 경배하며 사람을 주님이라 칭하는 방식은 우상을 숭배함과 다름이 없고, 하나님께 득죄하며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임을 지적하셨으며, 또한 간곡하며 진지하신 말씀으로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즉시 멈출 것을 권면하셨고, 더 나아가 하나님앞에서 진지한 회개가 있어야만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 비디오 테이프는 여러 통로를 거쳐, 허난성(河南省) 성도들의 손에 전달되었으며, 모두가 자세히 들은 후, 다른 지방의 미혹을 받은 형제자매들과 함께 교통을 가짐으로, 초신자들과 진리가 분명하지 못한 적지않은 성도들을 돌이키게 되었다. 
( http://local-church.tistory.com/107 )

그렇지만 이단적임과 악한 말을 한 자들에게 있어선, 이런 말이 귀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들은 이 상수 씨의 이름을 다만 사기를 치고, 무지한 사람들을 꼬여 그들의 이단을 따르게 하며, 그들의 구주이신 주 예수님을 부인하게하는데 사용함에 불과했다. 이 상수 씨의 공개적인 성명과 태도를 표명한 이후에도,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더욱 힘을 다해서 그들의 이단을 전파해 갔다. 그들이 한면으론 이 상수 씨의 이름을 사용해서 사기를 쳐서 따르는 자들을 우롱했고, 한면으론 이 상수 씨도 그들이 보았다는 「사람을 주라 칭함」에 대한 「빛」이 어떠한 것임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현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므로 더 이상은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오늘 날 이 사람들 가운데선 누가 말하고 누가 인도를 한다면 그가 바로 「주님」이기에, 모든 사람들은 마땅히 그를 향해 무릎을 꿇고 경배해야 된다. 

伍 「중화대륙 행정 사역처」의 이단적인 전단지 

「차앙쏘주파이-常受主派」 이단은 안훼성(安徽省)에서 소위 말하는 「중화대륙 행정 사역처」로 변종하였다. 이 조직은 안훼성(安徽省)의 샤오썐(肖縣)의 왕 용민(王永民)을 으뜸으로 성립된 것이다. 본 조직은 1995년 4월에 전국 각지의 도시에서 많은 반정부적인 이단의 전단지를 배포했다. 본 전단지의 주제는 일부러 과격한 말을 하여 남을 놀라게 하기 때문에,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깜짝 놀라게 한다. 그 주제는 「중국의 13억 인민에게 고하는, 세상을 놀라게 할 폭발적인 뉴스의 책」이고, 출판자는 「우주의 중심 미국 로스엔젤레스 사역처, 중화 대륙 지방교회 사역처 지사 」이다.  

본 전단지의 내용은 저속적이고, 또한 성경을 완전히 위배하며,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위배하는 이단적이고 사악한 것이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어린양이시요, 주님이시요, 그리스도이시요, 생명이시요, 길이시요, 세상의 빛이심을 믿는다. 본 이단의 전단지는 뜻밖에도 사람을 어린양, 주님, 그리스도, 생명, 길, 세상의 빛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에 개한 모독일 뿐만 아니라, 성경에 대한 비방함이기도 하다. 본 전단지는 반 정부적이고, 사회의 양호한 풍속과도 위배되며, 더욱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가르침과 배치되는 경향이 현저하게 나타난다. 

陸 「「차앙쏘주파이-常受主派」와「중화대륙 행정 사역처」의 이단적인 잘못됨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완전히 성경에 근거한다. 우리는 성경 전체를 하나님의 완전하신 계시요, 매 글자마다 성령께서 묵시하신 것임을 믿는다. 우리는 성경이 유일하고도 둘도 없는 신앙의 내용과 표준임을 높이고 있다. 또한 우리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과 역사하심을 중심적인 내용으로 삼고 있다. 우리는 성경에 근거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하시고 무한하신 하나님이심을 믿는다. 그분은 이천년전에 동정녀를 통해서 태어 나셨고, 육체가 되심으로 참되시고 죄가 없으신 하나님 사람, 곧 하나님이시자 사람이신 분이 되셨다. 그분은 십자가상에서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시기 위해서 죽으심으로 법리적인 구속을 완성하셨다. 그분은 죽으신지 3일만에 부활하시고 하늘에 오르시어 주와 그리스도로 세우심을 받으셨다. 그분은 부활안에서 생명주시는 영이 되시어, 그분을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안으로 들어가시어, 유기적인 구원하심의 역사를 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유일한 경배의 대상과 생명의 근원으로써 높인다. 

 우리가 한 단체와 한 가르침 혹은 신앙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위배한 이단인지의 여부를 판정하기 위해선, 반드시 성경에 근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판정시에 사람의 의견과 혹은 종교의 전통에 근거해선 안 된다. 성경은 우리 신앙의 준칙이며, 유일하고 둘도 없는 표준이다. 

 一 「아버지를 인식함」、「아버지를 경배함」의 잘못됨 
 

성경의 계시에 근거하여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모두가 평등하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기 때문에, 창조받은 모든 사람은 다 평등하다. 사람이 타락한 후에 타락한 죄인은 하나님 앞에서 역시 평등한데, 왜냐하면 모든 사람마다 그리스도의 구속하심과 구원하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주님을 믿고 거듭남으로 구원받은 후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집 안에서 한 식구가 되었기에 자연적으로 평등하게 되었다. 오직 하나님만이 믿는이들의 아버지시고,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주님이시며, 모든 믿는이들은 다 형제들이요, 혹은 자매들이다. 주 예수님은 마태복음 23장 8~10절에서 제자들에게 분명하고도 명백하게 말씀하시길 “그러나 여러분은 랍비라 불리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선생은 오직 한 분이시며, 여러분은 모두 형제입니다. 또 땅에 있는 그 누구를 여러분의 아버지라 부르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분이십니다. 또한 지도자라 불리지도 마십시오. 여러분의 지도자는 오직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이십니다.” 라고 하셨다. 신약 성경의 계시를 따라, 하나님의 교회안에서 목양함과 돌봄의 책임을 지는 「장로」와 사무적인 책임을 지는 「집사」외에는 다른 어떤 종류의 직분도 없다. 

로마 천주교의 타락은 바로 정치와 종교를 결합시키고, 이교도의 실행을 교회안으로 이끌어 들임으로 종교적인 성직자란 계급 제도를 산출한 것이다. 천주교안에는 아래로부터 위에까지 소위 말하는 「평신도」, 「신부」, 「주교」, 「대주교」、「홍의주교」, 「교황」등의 다른 계급들이 있다. 「평신도」는 하나님을 향해 기도할 수 없어서, 반드시 소위 말하는 성직자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주님의 회복은 마르틴 루터로부터 시작되었는데, 바로 성경으로 돌아가며, 또한 성경에서 계시한 합당한 실행들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 많은 합당한 실행중의 한 가지 항목이 바로 믿는이들의 지위가 하나님의 집인 교회안에서 평등하다는 것으로,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모두가 그리스도의 몸안의 지체들이고,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을 수 있으며, 모두가 하나님을 향해 기도할 수 있고, 또한 모두가 자신의 분량을 따라 교회안에서 자신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청요(程有)와 란챵스으(藍強石)등과 같은 사람들의 잘못은, 바로 교회를 뒷걸음치게 하여 옛길로 가게 하고, 천주교에서 실행한 것을 다시 실행한 것이다. 그들의 참된 목적은 자신을 높임으로 다른이들을 통제하고, 모든 믿는이들이 하나님을 향해 기도할 수 있는 권리를 탈취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타락한 이 사람들을 「아버지」로 인식하게 하고, 사람들을 유혹하여 그들을 따르고 숭배케 하려는 목적에 도달하려는 것이었다. 

 二 「사람을 높임」, 「사람을 신격화함」, 「사람을 경배함」의 잘못  

다음으로 청요(程有)와 란챵스으(藍強石)등과 같은 사람들은 그들의 망령됨으로 인하여, 먼저는 자신을 높이고, 자신을 신격화하며, 그들이 주님이시고, 그리스도시며, 왕국의 문이라 하고, 사람들을 속여 그들을 경배하도록 하였다. 그들이 사람들의 경배함을 받을때, 황당하게도 말하길 “당신은 나를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계모가 이루어지지 않자 그들은 계략을 바꾸어 이 상수 씨를 높이고, 이 상수 씨를 신격화하고, 이 상수 씨를 주님과 그리스도라 칭하면서, 이 상수 씨를 향해서 찬양하고 경배하게 함으로써 지속적으로 사람들을 미혹하여, 사람들을 속여 그들을 따르게 하며, 그들의 잘못된 그물에 걸려 들게 했다. 

성경의 계시에 따르면, 다만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 이 삼일 하나님만이 우리들의 높임과 경배를 받으실 수 있다. 그분께서 우리를 창조하셨고, 그분께서 우리를 구속하셨으며, 그분께서 우리를 거듭나도록 하셨기 때문에, 오직 그분만이 우리의 주님이시요, 우리의 아버지시요,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그들의 지위가 얼마나 높든지, 은사가 얼마나 크든지, 능력이 얼마나 강하든지를 물론하고, 어떤 사람들도 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지위를 대치할 수가 없고, 어떤 사람들의 경배도 받을 자격이 없다.  1 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신앙을 지키고 유일하신 우리 하나님만을 단일하게 경배하기 위해, 로마 황제 가이사를 주님과 신이라 칭하는 것을 거절하고, 엄청나고도 잔혹한 핍박을 참아냈다. 그들 중에 어떤이는 사자굴속에 던져지고, 야수 경기장에 넣어짐으로 순교했다. 현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타락하여 우리와 똑같이 죄가 있는 사람을 경배하는 이런 정도로까지 무지할 수가 있단 말인가?  

앞에서 이 상수 씨의 메시지에서도 서술했듯이, 성경 가운데서 은혜가 가득한 사도들을 하나님으로 삼아 경배하는 것 조차도 절대적으로 안 된다. 사람을 하나님으로 삼아 경배하는 것과 그를 주님이라 칭하고, 그를 왕이라 칭하는 것은 우상숭배와 다를바 없으며,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께 득죄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사도행전 14장외에도, 사도행전 10장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을 언급했다. 그 곳에서 사도 베드로가 이태리 군대의 백부장인 고넬료의 집에 와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하였다.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의인이었고, 베드로가 들어가자마자 고넬료는 그를 영접하며, 그의 발앞에 엎드려 절하였다. 성경에서 기록하는 것은, 베드로가 그를 일으키며 말하길 “일어나십시오. 나도 역시 사람입니다.”고 하였다. 

 성경이 사람을 경배하는 것을 금지할 뿐만 아니라, 천사를 경배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성경은 허락하지 않는다. 성경의 계시록 19장에서 저자인 요한이 말하길 「그 천사가 또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기록하십시오. 어린양의 결혼 잔치에 초대받은 그들이 복이 있습니다. ” 그는 또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참된 말씀입니다.” 내가 그 천사에게 경배하려고 그의 발 앞에 엎드리니, 그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이러지 마십시오. 나는 그대와 함께 노예 된 자이고, 예수님의 증거를 가진 그대의 형제들과 함께 노예 된 자입니다. 하나님께 경배하십시오.” 」라고 했다. 계시록 22장 8절에서도 성경이 마치려하던 때에 요한은 말하길 「나 요한은 이것들을 듣고 보는 사람입니다. 내가 듣고 보았을 때에 이것들을 내게 보여 준 천사의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천사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이러지 마십시오! 나도 그대와 동일한 노예이며, 그대의 형제 신언자들과 이 두루마리에 있는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과 동일한 노예입니다. 하나님께 경배하십시오.” 」라고 했다. 이 구절들로부터 우리는 주님의 제자들, 주님의 사도들, 주님의 모든 믿는이들, 그리고 주님을 위해 봉사하는 모든 천사들이 다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에, 모두 다 우리의 경배하는 대상이 될 수가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들의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심을 분명하게 볼수 있다.  

성경의 신성한 계시에 근거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인 모든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난 것이며,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의 생명이 있으며(요1:12~13), 또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한다(벧후1:4). 우리가 만약 신성한 생명안에서 자라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가득할 때(엡4:13), 현시대에 그분의 신성한 생명으로 하여금 우리에게서 부터 살아나오게 하며, 이는 바로 그리스도를 살고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으로써, 마치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 1장 20~21절에서 선포한 것과 같이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께서 확대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있어서 삶은 그리스도이고,”이다. 주님께서 오실 때에 우리는 반드시 그분을 닮을 것인데, 왜냐하면 우리는 그분을 그분의 존재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영광의 소망이 하나 있는데, 바로 주님을 닮는 것이요, 생명과 본성, 그리고 표현에 있어서 우리의 주님과 똑같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분을 닮음에 있어서, 다만 생명과 본성에 있어서만 이고, 신격(지위)에 있어서는 아니다. 우리는 그분의 신격 즉 그분의 만유를 창조하시고 사람들의 경배를 받으시는 높으신 지위에는 영원히 동참할 수 없다. 신격에 동참하고자 생각하고, 하나님과 동등하려고 하거나, 혹은 하나님의 유일하신 경배를 받으시는 지위를 탈취하려는 것은, 바로 사탄, 마귀의 배역한 노선으로써, 마지막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과 엄중하신 처벌을 받게 되는데, 천사도 피할 수 없었듯이, 어떤 사람도 역시 피할수가 없다. 

 三 「왕이 됨」의 잘못됨  

청요(程有)와 란챵스으(藍強石)등과 같은 사람들은, 그들이 「아버지」이고, 「주님」이라 선포했을 뿐만아니라, 그들은 또한 「왕국의 왕」이라고 선포 했다. 더군다나 집에서 실재로 왕이 되어, 자기를 위해 왕의 침대와 왕의 보좌를 예비했다. 이것은 황당할 뿐만아니라 웃기는 것이요, 또한 인류의 정권을 배반하는 행위이다. 그들은 먼저 자신이 「왕국의 왕」이라 말한 후, 다음에는 이 상수 씨가 「왕국의 왕」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우리가 성경에 근거해 보면, 자신 혹은 다른 사람을 「왕국의 왕」이라고 칭하는 것은, 모두가 잘못된 것이며, 성경을 위배하는 것이고, 망령되이 자신을 높임으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다.  

교회의 정통, 워치만니

우리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따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계19:16)이심을 믿는다. 그분은 또한 땅의 왕들의 통치자(계1:5)이시다. 땅의 왕들과 정부의 관원들은 모두 그분께서 세우시고, 그분께서 정하신 것이다. 우리는 만왕의 왕이신 이분을 경배하여야 하고, 또한 그분께서 세우신 땅의 왕들과 정부의 관원들을 존중하며 복종해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땅의 왕이나 통치자가 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 웟치만 니 형제님은 <<교회의 정통>>이란 책에서 상세하게 언급하셨다.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서 통치자가 되어선 안 된다.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서 오직 하나의 목적만이 있는데, 곧 영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며, 이 시대에 하나님의 은혜를 유지해가는 것이다. 주님의 명령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의 반응은 마땅히 은혜여야 하며, 공의가 아니다… 통치자가 되면 반드시 사람들 가운데서 공의의 원칙을 유지해야만 한다. 사람이 공의를 유지하려 한다면, 그리스도인은 은혜를 유지하는 자이기 때문에, 그는 그리스도인이 될수가 없다. … 그렇지만 다른 면에서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세우신 정치적인 권위를 시인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무정부주의를 믿지 않는다.」 

「이 땅에서 우리는 반드시 우리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태도에 대해서 분명해야 한다. 우리는 정부를 믿고, 또한 정부를 돕는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 있기가 합당하지 않은 자들로써, 사람을 돕고, 손실 당함을 원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복을 받게 하기를 원하는,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손실 받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기꺼이 손실을 받고자 함은, 그 사람 자신의 일이다. 우리는 초신자들에게 주님께서 하늘에 계신 이 기간동안, 우리는 이 땅에서 기꺼이 자신이 손해를 보기를 원해야 함을 말해 줄 필요가 있다. … 우리는 절대적으로 이 시대의 정치를 만져선 안 되고, 더군다나 통치하는 권위가 되어선 안 된다.」

 「그리스도인은… 국가 정권에 대한 태도가 힘을 다해서 순복하는 것이어야 한다. … 우리의 길은 바로 권위가 있는 윗 사람들에게 마땅히 순복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들의 입장이다. 우리 자신은 통치를 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이 통치하는 것을 좋아하며, 또한 통치하는 사람에게 순복하는 것을 좋아한다. …모든 통치하는 자들은 그가 높은자이든, 혹은 낮은자이든지를 물론하고,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우리는 순복하는 것을 꼭 배워야 하며, 반대해선 안 된다.」  
 

성경은 믿는이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왕이 될 것에 대해 언급하였다. 예를 들어 로마서 5장 17절에서 말하길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을 하였다면, 은혜를 넘치게 받고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사람들은 더욱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안에서 왕으로서 다스릴 것입니다.”고 한다. 본 책에서 언급한 것은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아들인 우리들은 죄사함을 받고 구속함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와 의의 선물을 누림으로, 신성한 생명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왕이 될 것이다. 

이 상수 형제님은 회복역 성경의 각주에서 로마서 후반부인 6~16장이 우리가 왕이 된다는 뜻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지적하셨다. 이 후반부에서 서술한 내용에 근거하여, 우리는 이 곳의 왕이 된다는 뜻이 우리 믿는이들이 먼저 신성한 생명의 내적인 다스림과 왕권아래 복종해야 함을 이해할 수가 있다. 우리는 넘치는 은혜와 의의 선물의 공급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함께 왕이 되어 우리 안에 있는 타락함과 배역적인 본성을 정복하고, 또한 우리 안에 있는 죄와 육체와 사악함과 사욕과 성질등을 다스려야 한다. 우리가 만약 이렇게 훈련할 수 있다면, 오늘 날 이기는자가 될 수가 있으며, 내세에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왕국의 실현됨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 동안 왕이 될 수가 있게 된다.  

四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에 대한 잘못됨 

청요(程有)와 란챵스으(藍強石)등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다시오심을 기다리지 말라.」, 「그리스도께서 이미 오셨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시다.」, 「내가 성육신이 되신 그리스도이다.」, 「내가 바로 두번째 오신 그리스도이다.」라는 등의 말을 선포했다. 성경의 계시를 따르면, 이러한 선포는 황당한 것이고,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며, 사람을 미혹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망령된 선포는 후에 출현한 소위 말하는 성육신 된 「여성 그리스도」의 선포와 동일한 것으로써, 모두가 거짓 그리스도가 일어나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조심함으로 깨어있어야 속임당함을 면할 수가 있다. 

성경 마태복음 24장 4~6절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대답하셨다. “아무에게도 미혹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왜냐하면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입니다.’ 라고 하며, 많은 사람을 미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23~26절에서 주 예수님은 다시 이어서 말씀하시길 “그때에 어떤 사람이 여러분에게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여기 계십니다!’ 혹은 ‘저기 계십니다!’라고 하여도, 믿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신언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들과 기이한 일들을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선택된 사람들까지도 미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미리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여러분에게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광야에 계십니다.’ 라고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골방에 계십니다.’ 라고 하여도 믿지 마십시오.” 라고 하셨다. 

 성경에선 주 예수님의 다시 오심에 대해서 아주 분명하게 말했고(마24:27, 26:64), 그분의 다시오심은 마치 도둑같은 은밀한 면이 있고(마24:33~44), 또한 구름을 타고 공개적으로 강림하시는 면이 있다(마24:27, 26:64). 24장의 구절들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해 준다. 27절에서 그리스도의 공개적인 오심이 번개와 같이 동쪽에서 서쪽까지 번쩍이지만, 그것은 21~24절에서 분명하게 대환난을 언급했기 때문에 대환난이후의 일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까진 대환난이 아직 오지 않았다. 그리스도의 오심은 번개와 같을 것인데, 이것은 공개적인 한면이지만, 그리스도의 공개적인 강림하심이 있기 전에, 그리스도의 은밀하신 다시오심이 있게 되어, 그리스도께서 오시어 도둑이 보배를 훔치는 것처럼, 주님을 사랑하는 믿는이들을 데려가실 것이다. 더군다나 마태복음 24장엔, 주님의 두번 경고하심이 4~5절과 23~26절에 있는데,거짓 그리스도의 출현이 있을 것이며, 선택된 사람들까지도 미혹할 것이라고, 주 예수님과 사도들 모두는 우리에게 조심함으로 예방할 것을 재삼 경고하셨다. 

그렇지만 주님께서 오시는 그날과 날짜와 시각에 대해선, 주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어떤 사람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셨고,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며, 아들도 므르며,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고 하셨다(마24:36). 주님은 이미 우리에게 깨어있어 기도함으로 미혹을 받지 않도록 하라고 경고하셨는데, 이는 주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다시 오시기 전에, 이 땅에서는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전하는 이단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께서 여기 계시다. 그리스도께서 저기 계시다」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이것을 믿어선 안 된다. 

왕요민(王有民)의 소위 「중화대륙 행정 사역처」가 퍼뜨린 이단적인 전단지에는 성경에 없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신앙도 아닌 「노스트라담무스-Nostradamus 1999년 인류대재난」과, 세속적인 「돌고 돌아서 원점으로 되돌아가다.」라는 미신적인 말, 그리고 사람들을 공갈협박하는 「대환난은 인류의 삼분의 이를 제거해 버린다.」등의 말을 전파했는데, 모두가 성경에는 없고 꾸며 낸 이야기로써, 사람들을 속이고 공갈협박하는 행위들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심을 믿으며, 더군다나 깨어있고, 예비함으로 주님의 다시오심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또한 이런 기회를 통해서, 성경을 따라 우리의 그리스도의 다시오심에 대해 마땅히 있어야 할 태도를 천명하는 바이다. 

1 사모하고 기다림으로 서로 격려함  

우리가 주님의 다시오심이 이처럼 보배로운 것을 안다면, 마땅히 주님의 나타나심을 사모해야 한다(딤후4:8). 성경의 마지막은 “주 예수님, 오십시오.”(계22:20) 라며 마친다. 신약의 기록에서 우리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사도들의 마음속에서 그들이 계속해서 확증하는 바는, 주님께서 속히 오신다는 것이고, 그들은 또한 주님의 다시오심을 예비하는 생활을 살았다. 교회의 역사안에서 우리가 아는 것은 화수은 자매님께서 이러한 생활을 사셨다는 것이다. 1925년의 마지막 날, 니 형제님께서 그분을 찾아가 함께 기도하였는데, 그분이 기도하시기를 “주님, 당신께서 설마 1925년이 정말 지나가도록 하실 것입니까? 설마 당신께선 1926년을 기다리셔야만 다시 오실 겁니까? 그러나 이 마지막 날에, 저는 당신께서 오늘 오시기를 구합니다.” 라고 하셨다. 얼마 안 지나서 니 형제님이 길에서 그녀를 만났는데, 그녀는 또 그를 향해 말씀하시길 “참으로 신기합니다. 오늘에 이르렀는데도 그분께선 왜 아직도 안 오셨을까요?” 라고 하셨다. 우리가 주님의 오심에 대한 징조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느슨하고 게을러도 된다고 생각하지 말라. 주님께선 두려우신 분임을 믿어야 한다. 누가복음 12장에서 주님은 한 가지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재물을 쌓아 두려고 노력하며 혼으로 하여금 즐거워함으로 누리려 하였지만, 하나님께선 그에게 말씀하시길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 밤에 너의 혼을 도로 찾아갈 것이다.”(눅12:16~20) 라고 하셨다. 우리에게 매번의 오늘이 있을 수 있는 것은, 참으로 모두가 주님의 은혜이다. 그러므로 여전히 오늘이 있기만 하다면, 호흡이 여전히 존재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마땅히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며, 그분의 다시오심을 간절히 기다려야 하고(빌3:20), 또한 항상 이 일을 가지고 서로 권면해야 한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4장 1절에서 디모데에게 말하기를 “내가 하나님 앞에서, 또 산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을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님 앞에서, 그분께서 나타나시는 것과 그분의 왕국을 두고 그대에게 엄숙히 명령합니다.” 라고 했는데, 이것은 바울이 순교하기 직전에 권면한 것이다. 그는 말하길 “나는 선한 싸움을 싸웠고, 달려야 할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심판대 앞에서 그는 의의 면류관을 꼭 받을 것인데, 이 면류관은 또한 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 주실 것이다(딤후4:6~8). 그는 심판과 왕국을 가지고 디모데를 일깨웠으며, 또한 우리를 일깨워주어 주님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생활을 살게 하는데,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상심하지 않고, 뒤로 물러나지 않으며, 약해지지 않고, 끝까지 충성되게 할 것이다.   
   

2 깨어있음으로써 예비함 

 주님께서 오실 때에, 도둑과 같은 은밀한 면이 있는데, 은밀하게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오시어, 그들을 보배로 삼아 훔쳐 가서, 그분의 하늘의 임재안으로 데려갈 것이다(마24:42).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깨어있음으로 예비됨이 필요하다(마25:13, 24:44). 만약 우리가 휴거되려면, 하늘에 속한 공기로 충만되야 하고, 그릇안에 기름을 담아야 한다. 우리가 만약 땅에 뿌리를 내리고 매일마다 생활의 염려와 땅에 속한 향락에 의해 점유된다면, 그 때가 되면 휴거될 수가 없다. 우리는 롯의 처를 생각해봐야 하는데, 그녀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철저히 파멸시키시는 악한 세상을 사랑함을 인하여, 되돌아 보았기 때문에 소금 기둥이 되었고, 수치스러운 땅에 버려짐을 당했다. 이것은 마땅히 우리들에 대한 경고로써, 우리가 만약 여전히 세상을 사랑한다면, 주님께선 우리가 대환난을 거치도록 남겨둘 것이요, 우리가 성숙되어져 들림받을 수 있을때까지 우리로 하여금 수치를 당하게 할 것이다.  

3 승리하기를 기도함 

주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일깨우시기를 “스스로 조심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여러분의 마음이 억눌려, 그 날이 덫과 같이 갑자기 여러분에게 닥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날이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닥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장차 일어날 이 모든 일을 피할 수 있고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도록, 늘 간구하며 항상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라고 하셨다. (눅21:34~36, 계12:5~6, 14절 참고) 

성숙함은 하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므로, 그분의 다시오심을 위하여 우리는 반드시 자신을 예비하고, 그분을 사랑하고 또한 그분안에서 자라남으로, 우리로 하여금 그분이 나타나실때에 성숙되어짐으로 들림받고, 상급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4 그리스도의 인내의 말씀을 지킴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의 인내의 말씀을 지킴이 필요하다 (계3:10). 성경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모든 말씀은 인내의 말씀이다(참고 롬15:4). 우리가 만약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지킨다면, 우리는 반드시 고통을 받게 된다. 오늘 날 주님께선 여전히 그분의 인내하심을 가지고 거절당함과 핍박을 참으신다. 우리는 그분의 왕국에 동참할 뿐만아니라, 또한 그분의 인내하심에도 함께 동참한다(계1:9). 그렇기 때문에 오늘 날 그분의 말씀은 우리에 대해서 바로 인내의 말씀이다. 우리가 그분의 인내의 말씀을 지키려면, 반드시 그분께서 받으셨던 거절당함과 핍박을 참아야 한다. 

 5 승리하고, 또한 주님의 일을 지킴 

우리는 또한 승리함과 주님의 일을 끝까지 지킴이 필요하다(계2:26). 주님의 일이란 주님께서 이미 성취하시고 또는 현재 하시고 계신 일을 가리킨다. 이런 일은 그분이 우리를 위해 성취하신 완전한 구속의 역사에 관한 모든 일을 포함한다. 그분이 죽으시고 부활하심은 우리의 구속을 위한 것이다. 오늘 날 그분은 여전히 우리를 거룩케 하고, 변화시키고, 우리로 그분의 형상을 본받게 하시려고 역사 하신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주님의 일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빛비춤을 받고, 주님의 일에 대해 알게 됐지만, 세상의 매혹함을 인해 그들은 주님의 일을 지키기를 원하지 않으며, 도리어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해 이루신 것을 부인하거나 잊어 버린다. 우리가 만약 이기는 자라면, 주님의 일을 경홀히 여기지 않을 것이며, 우리는 주님의 구속을 지키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으며, 지금 그분은 우리안에서 우리를 거룩케 하고,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영광스런 형상을 본받게 하시려 일하고 계심을 말해줄 것이다. 우리가 만약 주님의 일을 끝까지 지킨다면, 그분께서 나타나실 때에, 그분은 우리에 대해서 샛별이 되실 것이다(계2:28).  

五 성경을 삐뚤어지고 황당하게 해석함의 잘못됨 

 이런 이단을 전파하는 특징중의 하나는, 바로 부분만을 가지고 전체의 뜻을 취하는 방식으로 성경을 인용하고, 성경을 삐뚤어지고 황당하게 해석함으로, 성경을 부정하는 목적에 도달하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 보도록 한다.  

1 왕요민(王有民)의 반동적이고 이단적인 전단지는「성경에서 말하길, 누가 66권인 성경의 비밀을 열수 있으면, 그가 바로 우주의 어린양이고, 전세계를 통일할 능력이 있게 된다. 」고 말한다. 이것은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삐뚤어지게 한 것이다. 

 성경 계시록 5장 1~9절은 말하길「또 내가 보니, 보좌에 앉아 계신 분의 오른손에 두루마리 하나가 있었는데, 안팎으로 글이 적혀 있고 일곱 봉인이 찍혀 있었습니다. 또 내가 보니, 힘 있는 한 천사가 큰 음성으로 선포하셨습니다. “누가 두루마리를 펴며 그 봉인을 뗄 자격이 있습니까?” 하늘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들여다볼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들여다볼 자격이 있는 사람을 찾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는 크게 울었습니다. 그러자 장로들 중에 하나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울지 마십시오. 보십시오,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그 두루마리와 일곱 봉인을 뗄 수 있습니다.” 또 내가 보니, 보좌와 네 생물 한가운데에, 그리고 장로들 한가운데에 갓 죽음을 당하신 것 같은 한 어린양께서 서 계셨습니다. 그 어린양은 일곱 뿔과 일곱 눈을 가지셨는데, 이것은 온 땅에 보내어지신 하나님의 일곱 영입니다. 그 어린양께서 나아오셔서 보좌에 앉아 계신 분의 오른손에 있는 두루마리를 받아 드셨습니다. 어린양께서 두루마리를 받아 드셨을 때, 네 생물과 스물네 장로는 각각 수금과 향들이 가득히 담긴 금 대접들을 가지고 어린양앞에 엎드렸습니다. 그 대접들은 성도들의 기도입니다. 그들은 새 노래를 부르며 말하였습니다. “주님은 두루마리를 받으시고 그 봉인들을 떼실 자격이 있으십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죽음을 당하셨고, 자신의 피로 각 지파와 언어와 백성과 민족에서 사람들을 사셔서 하나님께 드리셨으며,…」라고 한다.  

이 구절들을 통해서 우리가 분명하게 볼수 있는 것은, 온 우주 가운데서 오직 한 분만이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는 두루마리를 펴거나 들여다보실 수 있는 자격이 있으시다. 그분은 바로 유다지파의 사자시요, 다윗의 뿌리시며, 우리를 위하여 피를 흘리심으로 죽으신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육체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은 인성을 따라 말하면 이스라엘 지파에서 나셨으며, 신성을 따라 말하면 다윗의 뿌리이시다. 그분은 신성과 인성을 겸비하신 하나님이시자 사람이신 분이시다. 그분이 유대땅에서 다니실때, 침례자 요한은 그분을 가리키면서 말하길 “보십시오,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 라고 했다(요1:29). 그분은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일찌기 우리를 위하여 피를 흘리시고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제하셨으며, 그분은 또한 싸우시고 승리하신 사자로써 하나님을 배반한 사단을 패배시키셨다. 오직 그분만이 그 두루마리를 펴시고 일곱인을 떼실 자격이 있으시다. 그분은 이미 그 두루마리를 펴시고 하나님의 경륜의 비밀인 일곱인을 떼셨다. 성경은 누가 66권의 성경속에 있는 비밀을 열면, 그가 바로 우주의 어린양이며, 전세계를 통일할 능력이 있다고 한번도 말한 적이 없다. 이것은 굴곡되고 만들어내진 귀신의 말이다.  

2  본 이단의 전단지에선 성경에서 분명하게 천명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기름부으신 그리스도이시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세상 사람들의 죄를 제하시는 분이심에 대해선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고, 도리어 이 상수 씨가 어린양이요, 살아있는 그리스도요, 주님이시요, 생명이시요, 길이시요, 세상의 빛이라고 말한다. 이런 말은 성경을 완전히 위배하는 거짓말일 뿐만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을 모독하며, 그리스도의 신앙을 파괴하는 귀신의 말이다. 성경에 근거하면 오직 심일 하나님의 구체적인 화신이시자, 유일하게 죄가 없으시나 우리를 위해 죄를 제하신 어린양이신 그리스도 즉 육체가 되신 예수님만이 우리가 경배해야할 유일하신 대상이다. 오직 그분만이 「주님」이시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다. 그분안으로 믿어야만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안으로 나아갈 수 있으며,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가 있다. 

柒 결론 

위에서 언급한대로 「차앙쏘주파이-常受主派」는 사단에 근거한 악한 영의 속임수요, 사람의 교만과 야심과 망령됨과 스스로 높이는 것을 도와줌을 통해서 산출되어진 일종의 성경을 버리고,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버린 이단이다. 이 단체는 성경의 진리에 대해 분명하지 못하고, 유약하며, 잘 모르는 그리스도인들을 속이며 노략하고, 더군다나 그 이단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한 믿는이들을 공갈하고 저주하였다. 이 단체는 사람을 미혹하는 것이며, 또한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고 전하는 것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교훈을 넘어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믿는이들은 이러한 교훈을 말하는 사람과 어떠한 접촉도 있어선 안 된다. 우리는 그들을 전면적으로 봉쇄하고, 그 이단이 확산되는 것을 두절시켜야 한다.우리는 또한 미혹을 받은 유약한 믿는이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고, 그들을 도와서 마귀의 그물을 벗어나게 하여, 성경의 진리를 완전히 앎으로써 그리스도안으로 다시 돌아오도록 하고, 교회안으로 돌아오도록 하여, 그리스도의 생명의 구원을 누리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이단이 중국땅에서 산출되고 확장되는 것을 근본적으로 제거해내고, 장기적으로 안전하게 대처하는 방안은, 바로 종교와 신앙의 자유가 있는 환경을 만들어, 성경의 진리가 자유롭고 순조롭게 전파되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온전히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신다(딤전2:4). 믿는이들이 진리가 분명하지 않고, 신앙생활이 공개적이지 못함으로 무질서한 상태이면, 도리어 다른 마음을 품은 사람들에게 사악한 이단의 말을 만들어 인심을 미혹시키게 하는 문을 열어버리게 하기에, 이런 상황을 볼때 매우 유감스러울 뿐이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12. 05:00

 ‘주의 회복’은 그리스도의 진리 회복을 의미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에 의해 세워진 교회

기본교리 기성교회와 크게 다르지 않아

 

한국에는 66년 시작 100여개 교회 있어

지방교회 또는 회복교회로 알려져 있는 한국(지방)교회들이 지난 3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총회 사이비이단대책위원회 앞으로 이단결의 철회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예장통합측은 1991년 제76회 총회에서 지방교회를 위트니스 리가 이끌고 있는 신일합일주의, 삼위일체론의 양태론, 기독론, 인간론, 교회론에 문제가 있다며 ‘이단’이라는 연구보고서를 받은 바 있다. 그러면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대체로 그 이름 조차 생소한 ‘지방교회’는 무엇이며, 무엇을 믿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중국의 평신도 전도자 워치만니의 ‘주의 회복’의 유래 
워치만 니(Wachman Nee)는 1903년 중국 복주(福州)에서 2대째 그리스도인인 부모로부터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복건성(福建省) 북부의 회중교회의 목사였다. 워치만 니는 성공회가 세운 ‘앵글리칸 트리니티 칼리지’를 졸업했는데 그는 고등학생이었던 17세에 구원의 체험을 가졌다. 워치만 니는 신학교에 다닌 일은 없지만, 그리스도와 그 영의 일과 교회에 관한 풍부한 지식과 체험을 갖고 있었다. 특히 영어를 잘했던 그는 1세기 이후의 탁월한 기독교 저술들 약 삼천 권을 수집하여 독파할만큼 한국적이었다. 그리고 26세때 ‘영에 속한 사람’이라는 책을 써 당시 교계를 놀라게 했다. 워치만 니가 1922년에 시작한 ‘주의 회복’은 기독교가 역사속에서 잃었던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를 회복한다는 것이였다. 그리고 워치만 니와 함께 동역했던 위트니스 리는 1905년 중국 북부 연대에서 태어나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자랐다. 그는 19세에 신생(新生)의 체험을 한 후 일생을 복음전파에 헌신했다. 그는 문서를 통해 워치만 니를 알게 되었고 1934년 상해로 이주하여 정식으로 워치만 니와 동역을 시작했다. 그들은 함께 수고하고 고난 받고 사역을 확장시키고 계시를 받고 부흥을 일으켰다. 이 두 사람의 열정적 사역으로 1949년까지 중국 본토에 약 400여개의 지방교회들이 세워졌다. 그들은 교회를 ‘하나님의 몸’이라 한다. 워치만 니는 1949년 중국이 공산화 되자 위트니스 리를 대만으로 보내 400여명에 불과했던 대만 섬의 성도 수를 5년 사이에 4만명으로 증가시켰다. 본토에 남아 있던 워치만 니는 1952년 3월에 지방교회들의 인도자이며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로 공산당에 의해 체포되었다. 그는 20년간 투옥되었다가 1972년 5월30일 감옥에서 죽었다. 순교한 것이다. 그리고 1962년 위트니스 리는 대만에서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는 그후 1997년 92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수많은 신구약성경 강해와 주석서를 남겼다. 그 결과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약 3천개 이상의 지방교회들(중국 본토 제외)과 약30만명의 신도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 한국에 전래된 지방교회 
한국에서의 지방교회 운동은 1966년 9월에 대만에서 권익원(일명 왕중생)이라는 전도자가 귀국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일제시대 때 19세의 나이에 부친을 따라 중국에 갔다가 중국군에 입대하였으며, 중국의 공산화 이후 대만으로 건너갔다. 그가 폐병으로 입원해 있던 중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다. 그 후 그는 그가 받은 복음에 대한 부담을 안고 30년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주의 회복 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집회를 열고 모든 부정적인 것을 끝내는 십자가와 우주안에 오직 그리스도만이 생명이심과 그리스도의 표현인 교회를 강조했다. 그로부터 시직된 한국지방교회는 현재 약100여개가 있고, 1만5천여명의 성도들과 200여명의 사역자들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지방교회측은 밝히고 있다. 지방교회는 하나님의 뜻이 생명되신 그리스도와 그의 몸인 교회를 통해 성취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3. 지방교회의 신앙과 생활 
지방교회는 초기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가 자유주의에 대항하여 수립한 근본주의 신앙인 △성경의 무오성 △그리스도의 성육신 △대속적인 죽음 △육신을 입은 부활 △기적의 인정 또는 재림 소망 등의 핵심교리를 믿고 고백한다. 특히 각 주제별 성경적 신앙고백이 ‘신약의 결론’이란 총 8권의 책자(하나님, 그리스도, 성령, 믿는 이들 ① ②, 교회, 왕국, 새예루살렘 = 한국복음서원 발간) 안에 약 4600쪽의 방대한 분량으로 체계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다. 특히 본질적 삼위일체와 경륜적 삼위일체에 대한 균형있는 인식, 정통 교부 아타나시우스 등이 언급한 바 있는 성도의 신화(神化) 교리,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인식함과 십자가에 대한 주관적인 적용,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의 관점으로 보는 것 등은 기성교회가 주목할만한 확신있는 교리이다. 또 각 지방마다 교회행정을 책임지는 복수의 장로들이 있고, 이들은 이러한 제반 교회실행들이 성경을 중심으로 질서와 조화 가운데 이뤄지도록 감독하고 여러 방면에서 성도들을 온전케 하는 사역을 감당한다. ‘목사’직을 가진 목회자가 따로 없고 ‘장로’가 기성교회 목회자의 역할을 맡고 있는 셈이다. 지방교회란 말은 성경에서 초대교회가 고린도에 있는 교회, 에베소에 있는 교회, 빌립보에 있는 교회 하는 식으로 각 지방에 하나의 교회를 세웠다며, 오늘날에도 각 지방에 하나의 교회를 고집하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이들은 각 지방에 하나의 교회아래 각 지역에 여러 개의 집회소를 두고 있다. 지방교회는 예장통합측의 위트리스 리와 (지방)교회에 대한 이단결정을 철회되어야 한다며 해지 요청서와 함께 총회 이대위에 관련 자료를 제시했다. 지방교회는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주의 회복’이 활동하고 있지만, 어느 나라에서도 워치만 니나 위트니스 리를 이단이라고 말하는 교회가 없는데, 유독 한국교회만이 이단이라 한다며, 지방교회를 이단시 하는 것은 원론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통합측 이대위가 어떤 재론 결과를 내어놓을지가 주목된다.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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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연합신문650호_edit.pdf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10. 05:00

지방교회 변호와 확증 – 3편 교리를 성경보다 중시하는 삼신론자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2:20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곳 토론 장도 우리 모두는 옛사람의 행위를 떠나 다만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그분께 받은 부담과 빛을 믿음으로 말해내는 공간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또한 이 토론의 글들을 통해 우리의 공통 대적인 사탄과 그로부터 나온 비 진리들은 폭로, 분별, 공개적으로 거절되고, 주님의 말씀을 깊이 있게 바로 알기를 사모하는 모든 분들에게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에 대한 투명한 이해가 있게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본질적인 토론 내용과 무관한 오해들로 인해 이 토론이 방해받지 않도록 다시 한 번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본 토론은, 이인규님은 아니라고 하시지만, 성경본문 가르침처럼 아버지 하나님이 하늘에도 계심과 동시에 지상사역시의 예수님(성육신, 인생, 죽음, 부활...) 안에도 구별됨을 상실하지 않는 방식으로 상호내재 하심을 믿는 지방교회 입장과, 독립된 인격으로 아버지가 하늘에 계신 것은 믿지만 지상 사역시의 예수님 안에는 계시지 않으며 만일 그렇게 주장하면 양태론이다 라는 최삼경 목사, 이00 감리교 권사와의 주장 중 어느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고 어느 것이 이단적인 주장인지를 분별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인규 님이 위트니스 리 책에서 잘못된 내용이라며 퍼다 올리고 임의로 판단한 이런 저런 내용들도 이 근본적인 한가지 차이점에 대해 어느 쪽이 성경적인 가르침을 주장하는지를 분별하면 저절로 해결될 것들입니다. 따라서 독자들이나 토론 당사자들은 본 토론의 쟁점을 흩트릴 수 있는 지엽적이고 비본질적인 일들로 인해 혼잡 되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하고, 다만 진리를 알고 진리를 말하기만을 간절히 사모하기를 원합니다. 또 한가지는 제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위 두 가지 대립되는 관점들에 대해 이미 행해졌던 각종 토론 내용들을 제가 쓰는 글에 계속 참고할 것이며 또 때로는 그 자료들을 제 본인의 주장으로 가져다가 사용할 것임을 다시 한번 분명히 밝혀둡니다. 물론 그 자료들 안에는 월간 교회와 신앙의 지난 게시판, 지방교회 관찰 방에 올려진 내용들도 당연히 포함될 것입니다. 또한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박00님은 제 오랜 동역자임을 밝힙니다. 이 점에서도 오해가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본론적인 토론에 들어가겠습니다.  

 이미 눈치를 채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와 이인규님은 서로 판단기준이 다릅니다. 한 쪽이 제대로 된 30센티 자를 가지고 30센티 간격마다 표시해 놓은 것을 '잘못된 눈금을 가진 30센티'자를 가진 다른 사람이 재어 보더니 표시된 눈금들이 틀린다며 목소리 높여 외치는 식입니다. 그러므로 이인규님이 위트니스 리 책에서 가져온 본문들을 일일이 반박하는 일도 독자들을 위하여 필요하겠지만 사실은 "누구 자(기준)가 과연 표준인지"를 따져보는 일이 이 신론 토론의 근본핵심이며 시급한 과제입니다. 저는 앞으로 남은 토론에서 쌍방이 이 일에 집중하기를 참으로 원합니다. 

 이인규님은 1) '그리스도는 사람일 뿐 아니라 또한 하나님이시다'라는 위트니스 리 형제님의 지극히 균형 있고 성경적인 말을 가져와서는 지방교회측이 성부고난설을 주장하고, 양자론을 주장하며, 네스토리안니즘을 주장한다고 그럴듯하게 말할 줄 아는 분이십니다. 더구나 이 분은 순진한 독자들이 정말 그렇게 믿도록 자신 스스로 내린 결론을 기정사실화하고 반복하여 말하는 순발력도 보여주고 계십니다. 참으로 대단한 상상이고 오해요 왜곡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또한 제가 역사상 정통교회의 삼위일체론을 정립한 사람으로 알려진 아우그스티누스의 '상호내재에 대한 정의'를 제시하면 왜 보편적인 신학자가 아니고 특수한 사람의 이론을 내 세우느냐고 하시고, 한국교계에서 정통신학자의 범주로 분류되는 학자들의 책(박사학위 논문 포함)을 인용하면 다른 사람들의 책은 없느냐고 핀잔을 주고 있습니다. 바로 이 점이 이인규님이 말하는 소위 '정통교회의 삼위일체'의 정체가 과연 무엇인지가 매우 의심스러운 대목입니다. 님의 정통교회 기준대로라면 '하나님은 한 분이 아니고 세 분이라고 해야 한다'는 소위 정통교회 교단 소속인 장신대 김명용 교수는 이단입니다. 이00 님은 '니케아 신조= 정통교회 삼위일체론'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만 바로 그 점이 자신의 어려움인 것을 알지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즉 이인규님의 삼위일체관은 니케아 신조의 장점인 '삼위의 독립된 구별'을 취하되 '독립된 삼위가 어떻게 한 분 하나님이 될 수 있나'를 밝히지는 못한 니케아 신조의 한계를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즉 이인규님의 삼위일체관은 '삼위의 독립된 위격'을 지나치게 붙잡음으로 '상호내재' 개념이 비 성경적이며 이단적인 사상이 된 경우입니다. 위 두 가지를 다 취해야 정통 삼위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혼동하지 말아야 할 한 가지는 간혹 위트니스 리 책에 언뜻 보면 삼위의 독립을 무시하는 듯한 표현이 보이는 것은 성경본문 자체가 그러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이인규님이 성경 그대로를 말하는 것에 대해서도 삼위의 독립을 인정치 않는 양태론 이라고 정죄하는 것은 결국 요14:10-11을 말씀한 예수님 자신도 양태론 자로 정죄한 최삼경 목사처럼 똑같은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신학과 교리를 성경본문보다 더 중시하는 사람들이 쉽게 범하는 실수들인 것입니다. 

 3) 게다가 니케아 신조와 관련해서 '인격이라는 단어는 성경용어가 아니고 신학자들의 해석에서 나온 것이다'라는 지극히 당연한 말을 가지고도 지방교회는 니케아 신조 자체를 부인한다느니 지방교회측이 이중성이 있느니 없느니 라는 인신 공격적인 말까지 함부로 하고 계십니다. 니케아 신조는 이단들에 대항해서 아들이 '아버지와 동일 실체'이심을 명문화하고 '또 우리는 성령을 믿사옵나이다' 라는 문구를 삽입하여 '한 아버지, 한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의 존재를 선포한 의의가 있습니다. 물론 지방교회측도 이것을 믿습니다. 거부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인규님은 '지방교회측을 교회역사에 무식한 양태론자들' 이라는 자신의 거짓되고 부당한 착각의 틀에 밀어 넣기 위해 계속 무리를 하고 계시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단지 인격이란 단어가 성경에 없다는 말을 한 것입니다. 또한 더 나아가 니케아 신조 내용이 맞고 우리도 인정하지만 그 한 신조가 성경이 계시하는 삼위일체의 모든 방면을 전부 포함하지 못하며 니케아 신조는 진지한 삼위일체 논쟁의 초석을 놓은 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뿐이고 사실 이러한 인식은 매우 정당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독립된 삼위가 분리되지 않으신 한 하나님이심을 설명하는 상호내재 개념(페리코레시스)은 니케아 신조 이후에 캅바도키아 교부들에 의해 비로소 정립된 이론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식적인 대화조차 공감할 수 없는 토론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제 위와 같은 혼잡을 피하기 위해 저는 다음 세 가지 항목들에 있어서 저와 이00 님 의 입장을 독자들의 입회 하에 집중 검증해 보기를 제안합니다. 사실 이 세 가지 항목들에 대한 양쪽의 입장을 들어보면 누가 성경의 가르침을 믿고 말하며 누가 자신의 교리에 빠져서 결국 성경과 정통 가르침을 거부하는 이단사상을 가진 자인가 선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그렇게만 되면 이 신론 토론은 조기에 종결해도 좋을 것입니다. 제가 보기엔 삼위일체 진리에 있어서 다른 부분들은 쌍방이 서로 일치하나 다음 세 가지에 있어서 이견이 있습니다. 

  1. 경륜적인 방면에 있어서 삼위의 상호내재에 대한 관점의 차이  

반복하여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성경본문 가르침처럼 아버지 하나님이 하늘에도 계심과 동시에 지상사역시의 예수님(성육신, 인생, 죽음, 부활...) 안에도 구별됨을 상실하지 않는 방식으로 상호내재 하신다고 토론 초기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말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00님은 존재에 있어서는 상호내재를 인정하지만 '상호관계적인 표현으로 볼 때 독립된 세 인격으로 구별되어지기 때문에 '인격 안에 인격이 없다'는 이상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이 삼신론 이단사상임을 금방 간파했지만 독자들은 이인규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파악이 안 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분은 과연 누구인가?'에 대해 쌍방의 입장을 들어보고 비교해 보면 누가 성경대로 말하고 누가 이단사상을 고집하는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관찰방의 질문을 제 것으로 옮겨와서 이인규님께 재차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이인규 님은 "십자가에서 달리신 분은", 

1) '성부하나님만'이시다(성부고난설 이단사상) 

2) 아버지와 성령님이 구별되심을 상실치 않은 채 상호내재 하시는 아들 하나님이시다. 이 때 아버지는 예수님 안에 계심과 동시에 하늘보좌에도 계신다(저와 지방교회측의 주장). 

3) 아버지는 하늘에만 계시고 아들 안에는 안 계심으로 아버지 하나님은 제외된 '아들 하나님만' 이시다(이인규님 주장)

라는 1) 2) 3) 중 님의 주장은 무엇입니까? 만일 님의 주장이 위 셋과 다른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인지도 자세히 설명해 보시기 바랍니다. 님은 지금 자신의 잘못된 잣대를 가지고 성경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함부로 '성부고난설'을 믿는 이단이라고 정죄하고 있고, 인격 안에 인격이 없다는 등 삼신론적인 주장을 하고 계십니다. 

 참고로 위 2)항이 지방교회측 주장이라는 증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신약의 결론 - 하나님

'신격의 삼일성이 분리된 세 위격들로 나뉘어 질 수 있다는 관념을 붙잡지 말라. 이것은 누룩이다. ...그 셋(아버지, 아들, 성령)은 항상 동시존재하며 상호내재 한다. 한 분이 이곳(지상)에 있을 때 셋 모두가 이곳(지상)에 있다. 한 분이 하늘에 계실 때 모두가 하늘에 계신다. 그 셋은 항상 하나이다. 분리됨이 없다(위트니스 리, 신약의 결론-하나님, 288쪽).

님은 오직은혜님이 이 문제에 대해 관찰 방에서 질문 하자 '지방교회측의 아버지가 예수 안에 계시는 것은 맞지만, 아버지가 오직 예수 안에만 계시다는 주장은 다릅니다.'라고 슬쩍 말을 바꾸고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어디서 지방교회측이 '아버지가 오직 예수 안에만 계신다'고 말했다는 것입니까? 또한 님의 이단사상인 '인격 안에 인격은 없다'는 말의 실상은 무엇입니까? 이 두가지 점들을 위 질문에 대한 님의 답변에서 상세하게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볼 때 님의 이러한 이단적인 관점은 성육신, 인생, 부활 그리고 우리 안에 들어오신 분이 누구신가 에 대하여 님이 가지고 계신 총체적인 혼동의 한 단면 즉 빙산의 일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참고로 다음과 같은 정통 신학자들과 성경말씀 자체가 '인격 안에 인격이 없다'는 이인규 님의 주장이 삼신론 이단사상임을 폭로시켜 주고 있습니다.  

교부들의 삼위일체론

' 캅바도키아 교부들은 실체의 단일성을 위하여 삼위를 희생시키지 않았고 또 그렇다고 해서 삼위의 구별을 위해서 실체의 단일성을 희생시키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캅바도키아 교부들은 후대에 '페리코레시스'라는 이름으로 설명된 이론을 체계화했다. 즉 각 위격 안에 한 동일실체 전부가 다 들어 있다. 각 위격 상호간에 또 위격과 실체간에 '공동내재성' 또는 상호상통성이 있다. 두 위격이나 세 위격을 합하더라도 다른 한 위격보다 결코 더 크지 않다. 수많은 이단들을 모두 다 효과적으로 논박할 수 있는 이 이론의 성경적인 근거는 요한 복음 14:10의 말씀이었다'(김석환, 교부들의 삼위일체론(박사학위 논문), 29쪽). 

요한 복음 1:18은 이 땅 위에 내려오신 독생하신 아들이 동시에 여전히 하늘에 계신 아버지 품속에 계시다(현재시제)고 하고, 요3:13 (영어 킹제임스 본문)은 예수님이 하늘에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사실임과 동시에 여전히 하늘에 계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님의 '상호관계적인 표현으로 볼 때 독립된 세 인격으로 구별되어지기 때문에 인격 안에 인격이 없다'는 주장은 누구도 지지하지 않는 치명적인 변형된 삼신론 이단사상입니다. 이러한 이단 사상의 극심한 피해는 추후 구원론 토론에서 적나라하게 폭로될 것입니다. 

  2. 성경본문 자체가 소위 정통 삼위일체교리와 충돌하는 경우  

원칙적으로 저는 성경은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이며 신구약 66권이 다 무오함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외견상 불합리하거나,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말씀도 자기 생각을 따라 함부로 불신하거나 무리하게 체계화 하려하지 않고 어린아이처럼 모든 말씀을 아멘으로 받습니다. 이것은 위트니스 리 형제님을 포함한 지방교회 모든 성도들의 성경에 대한 태도입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교리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성경본문 자체가 '아버지=아들', '아들=성령'이라고 말함으로 외견상 삼위의 독립을 무너뜨리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들에 대해서 성경본문 자체를 불신하거나 함부로 왜곡시켜 해석합니다.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이런 전제하에 이제 이인규님께 질문 드립니다.  

1) 이사야 9:6은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이름은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 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아들은 누구이며 '영존 하시는 아버지'는 누구입니까? 

2) 고전15:45 '마지막 아담은 생명 주는 영(살려주는 영)이 되셨나니' 에서 마지막 아담은 누구(몇 격)이며, 생명 주는 영은 누구(몇 격)입니까? 그리고 '되었나니'는 무엇이 언제 어떻게 되었다는 말인가요? 

3) 고후3:17의 '주는 영이시니'에서 앞의 '주'는 누구이며 뒤의 '영이시니'는 누구입니까?  

4) 계5:6 은 '내가 또 보니 보좌와... 어린양이 섰는데 ...(어린양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고 말합니다. 여기서 어린양은 누구이며 이 땅에 온 하나님의 일곱 영은 누구입니까? 

위 질문들 각각에 대해 이인규님의 해석관점을 제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위 성경본문 내용들은 그 자체가 '삼위의 독립된 인격'이라는 교리를 고집하는 사람들의 눈엔 양태론 이단으로 보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 본문 그대로 믿고 말함으로 이인규님 같은 교리지상주의자들에게 '양태론자'라는 비난을 받든지 아니면 그러한 비난을 피하도록 성경본문을 왜곡되게 해석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이것이 저와 이인규님의 두 번째 부딪치는 부분입니다. 소위 님의 요14장에서의 '부활하신 예수님=보혜사 성령'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것은 여기에 해당 되는 문제들입니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사실은 이인규 님처럼 소위 정통교리에 따른다면 이단이 되기 싫어서 성경 본문을 엉뚱하게 왜곡시켜 해석해 버리면 그 구절에 대한 우리의 체험에 있어서 치명적인 결함을 가져오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날 많은 참된 믿는 이들이 자기 안에 들어오신 하나님이 과연 누구 신지-성령인지, 예수님인지, 둘 다인지, 아버지는 아닌지....-에 대해 혼란이 있는 것은 이처럼 성경본문을 성경대로 해석하기를 꺼려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에 위 말씀들을 문맥대로 깊이 연구한 정통 신학자들이 예를 들어 고후3:17의 본문대로 '예수 그리스도=성령'이라고 담대히 말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바울의 그리스도와의 연합 사상

 아래 내용들은 풀러신학교 교수인 루이스 스미디즈가 쓰고 현재 월간 교회와 신앙에 고정 글을 쓰고 있는 현 장신신학원 교수인 오광만 님이 번역하여 국내 기독교계에 소개하신 '바울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사상'(여수룬, 1991년)의 내용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그(바울)의 말은 극적이긴 하지만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고린도후서3:17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주는 예수그리스도이시며, 성령은 삼위일체의 삼위이시다. 바울이 주라고 부르고 있는 예수님은 이제 성령이라고 표현되고 있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64-65쪽). 그는 계속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성령의 관계는 다음과 같은 다섯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1. 성령은 지상에서 그의 구속계획을 실현하고 계시는 그리스도이시다.
  2. 성령은 교회 안에서 그리고 교회에 의해서 체험되는 그리스도이시다.
  3. 성령은 지금 여기 존재하시는, 그러나 장차 완전히 실현될 새로운 창조를 통치하시는 분으로서, 그의 세상적인 기능들을 수행하시는 그리스도이시다.
  4. 성령은 새로운 창조 안에 있는 자유의 삶을 위한 객관적인, 그러나 역동적인 규범이시다.
  5. 따라서, 새 언약 안에서의 삶에 관한 한, 성령은 현재의 그리스도이시다(위 책87-88쪽)'.

저자는 계속해서 '십자가와 부활은 성령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을 지배하는 내용들이다. 바울의 성령에 관한 가르침은 삼위일체의 위격에 대한 교리적인 강설의 배경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성령에 관해서 말하는 바는 오히려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의 움직임'-이것이 바로 위트니스 리가 말하는 경륜적인 방면의 삼위일체라는 것임-필자 주-배경 안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라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아래 글은 장로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신 이 동근 목사님이 운영하시는 홈페이지인 http://new-jerusalem.org/mean.htm 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예수는 성령이다'의 고찰 : 어거스틴은 '영(성령)을 성부의 영은 성자의 영이며 성령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예수는 성령이다'라고 한다면 신학적 삼위일체에는 위배이다. 신학이 삼위일체를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는 영이시며, 주의 영은 성령이다'라고 한다면 신학적 삼위일체에 전혀 훼손하지 않는 해석이라고 할 것이다. 또는 '예수는 영이시고(고후3:17) 예수의 영은 성령이다'라고 해도 삼위일체를 훼손하지도 않는 것이다. 

 여기에서 '예수는 성령이다'와 '예수님의 영은 성령이다'(또는 '주의 영은 성령이다')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해석상에 있어서 아무런 차이도 없는 똑같은 말이다. 성부의 영은 성자의 영이며 성령이다 라는 성서적 표현만큼 삼위일체를 완전하게 극복하고 함축한 표현은 없을 것이다. 이미 이 안에 성부는 성령이시며 예수는 성령이다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시며 예수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 심령에 하늘나라인 의와 희락과 평강으로 함께 한 작용으로 역사 되고 있다. 성경을 무리하게 해석하면서까지 교리를 세우려고 해서는 안 된다. 예수는 성령이 안 된다고 주장한다면 첫째, 성경의 위배이며 두 번째, 어거스틴의 20여 년 간의 노작을 수포로 돌아가게 하는 파괴 행위인 것이다.  

신학을 향한 충고:'예수는 성령이다'라고 하면 사벨리우스(Sabellius)의 양태론(Modalismus)을 운운하며 이단이라고 매도하는 성급하고 극단적인 편견은 버려야 한다. 만약 이러한 편견을 버리지 않는다면 결국 어거스틴도 양태론자라고 하는 것과 같으며 그 이유는 신학자들이 너무 잘 알고들 있을 것이다.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삼위일체가 자신들의 주장만으로 또 다시 악용되거나 남용되지 않도록 주의를 해야만 한다.'  

이러한 지극히 성경적인 해석은 이외에도 앤드류 머레이, 존 넬슨 다아비, 헨리 알포드, MR 빈센트, 제이 오스왈드 샌더스 같은 신실한 정통 신학자들도 주장하는 것입니다(신약의 결론-하나님 331-332쪽). 성경을 섣불리 알고 자신의 교리만을 중시하는 일부 사람들이 함부로 '양태론'이라고 경솔한 말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위와 같이 성경대로 믿는 것이 곧 삼위의 구별을 부정하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에 대해 위트니스 리 형제님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신약의 결론 - 하나님

 '어떤 비평가들은 위트니스 리가 그리스도는 아버지요(사9:6), 그 영(고후3:17)이라고 가르칠 때, 그는 신격의 세 위격의 상호내재와 동시존재를 부인하고 삼위양식설을 가르치고 있다고 말한다. 나는 이러한 비난을 부인한다. 비평가들이 ...마 3:16-17을 믿는지를 물어 본다면, 나는 마 3:16-17을 믿을 뿐 아니라 이 주제에 관계된 모든 구절들(계1:4-5, 고후13:13, 엡3:14-17)을 다 믿는다. ...다시 한 번 말하거니와 아버지, 그 영, 그리스도는 모두 동시에 존재한다. 내가 양태론자라는 비난은 거짓된 것이며 나는 절대적으로 그것을 부인한다.'(윗트니스 리, 신약의 결론-하나님, 305-306쪽). 

3. 고전15:45의 '생명주는 영'(완결된 영)에 대한 이해 부족 

이인규 님은 지난 글에서 '첫 번째 영은 생명주는 영이 되기 위하여 과정을 거친 하나님 자신이다. 이 영은 최종 완성된 삼일 하나님이다'라는 위트니스 리 형제님 말을 인용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상호내재한다고 하여 양태론이 아니라는 주장은 위장에 지나지 않는다'는 증거 중 하나로 님이 제시한 것입니다. 이것 역시 이인규님이 분리된 셋을 주장하는 증거입니다.  

이인규 님은 '마지막 아담은 생명주는 영이 되었나니' 라고 한 고전15:45에서 '생명주는 영'이 아래 넷 중 무엇이라고 해석하십니까? 생명주는 영은,  

1) 예수님의 사람의 영을 가리킨다. 

2) 1격과 2격은 제외된 3격 성령하나님(보혜사 성령)이시다. 

3) 1격과 2격도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게 상호 내재하시는 3격 성령님 이시되 예수님이 성육신 때 입은 인성은 절대로 포함되지 않았다. 

4) 생명주는 영은 부활하신 예수님 자신이시다. 그러므로 생명주는 영은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이 그러했던 것처럼 <아버지와 성령이 구별됨을 상실치 않고 상호 내재하시는 아들하나님(또는 아버지, 아들, 성령을 다 포함한 온전하신 하나님) + 예수님의 영화롭게 된 인성(육신) 즉 신성과 인성을 포함한 복합적인 영이시다. 

물론 4)이 저와 지방교회 측의 입장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가장 성경적이고 논리적입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에게는 인식되지 못한 진리입니다. 앤드류 머레이가 이것을 보았습니다. 님도 위 본문 말씀에 대해 저처럼 빛비춤을 위트니스 리 책자를 보는 눈의 비늘이 한 꺼풀 벗겨지는 체험을 하시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요한 복음 7:39에서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는 말씀도 같은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애석하게도 님은 2)번 또는 3)번 같은 생각을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여기에 저와 이인규님의 기준에 차이가 있는 것이고 이러한 차이가 위트니스 리의 가장 균형 잡히고 성경적인 삼위일체관련 언급들이 님의 눈엔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핵심원인인 것입니다. 이제 이 구절에 대한 님의 해석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혀주실 차례입니다.  

이상의 세 가지 기준들에 대한 쌍방의 이견들이 풀리면 이인규님이 지난 글에서 이것저것 문제점이라고 갖다가 제시한 내용들은 다 풀려나갈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4. 그 외에 몇 가지 추가적인 문제들  

 1) 소위 10가지 질문들에 대하여 

위의 님의 질문들은 상호내재 하시는 삼위와 인격적으로 구별된 삼위가 각기 다른 삼위라는 전제가 정당해야 답변의 가치가 있는 질문들입니다. 즉 예수님 안에 상호내재 하시는 아버지와 인격적으로 구별되어 저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각기 다른 분이라는 님의 삼신론 이단사상이 맞다고 볼 때 성립되는 질문입니다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상사역시의 예수님 안에 계신 아버지와 저 하늘 보좌에 계신 아버지가 다른 분이라고 보는 님의 의견에 전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이 땅에 오셨고(요8:16, 29), 부활 승천 후 하늘 보좌 우편에 게신 예수 그리스도가 동시에 지금 우리 안에 생명으로 들어와 계십니다(롬8:10, 34). 그리고 이 분은 각기 다른 두 분이 아니고 동일한 한 분이십니다. 이 점이 해결되면 모든 의문이 해결되실 것입니다. 

 2) 분리와 독립의 차이 

 이인규님은 분리와 독립을 왜 상호내재와 연관 짓느냐고 항의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르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세 인격의 분리를 주장하는 것이 곡 상호내재의 부인을 의미하기 때문에 둘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님은 지금 계속해서 지상사역시의 예수님 안에 아버지와 성령이 구별되심을 잃지 않은 상태로 상호 내재하신다는 지방교회측 주장을 양태론 이라고 정죄하고 계시고, 삼위의 관계 안에서는 인격 안에 인격이 없다고 고집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바로 님이 삼위의 구별에서 지나쳐 분리를 주장하는 근거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님이 이단적인 신관을 솔직히 시인하고 회개할 사항이지 누가 사과할 문제가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3) 예수님이 피조물이라고 주장한다는 말에 대하여 

님은 엉뚱하게 로마서 1:4의 아들 하나님이 부활 후 아들로 인정되셨다는 말을 '예수님을 피조물이라고 한다'는 님의 억지 정죄와 연결시키고 계십니다. 님은 이런 말을 하실 때 잘 하셔야 됩니다. '예수님이 피조물이라고 한다'는 님의 말과 '그리스도께서 창조자이실 뿐 아니라 모든 창조된 것들 가운데 첫 번째, 모든 피조물 가운데 첫 번째 이심을 계시한다'는 위트니스 리의 말은 듣는 사람들에게는 하늘과 땅 같은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당연히 같은 맥락에서 그리스도가 창조주이심과 동시에 피조물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양성을 분리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통상 '예수님이 하나님 사람이다' 라고 말할 때 그것을 님처럼 예수님의 양성을 분리시키는 이단적인 주장이다 라고 꼬아서 들을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될까요. 골1:15-18에 대한 아리우스의 주장에 대해 우리도 님 이상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추후 더 상세히 말할 필요가 있다면 그 때 하기로 하겠습니다. 

진리의변호와확증

님의 이런 엉뚱한 정죄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지방교회의 다양한 이단성'이기는커녕 이미 그 모든 항목들에 대한 반박자료들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 케케묵은 거짓 정죄들일 뿐입니다. 그 한가지 증거만 제시한다면 님의 피조물 운운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대한 반박의 글은 지금부터 20년 전에 이미 쓰여졌고 '진리변호와 확증'(한국복음서원) 122-128쪽에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님은 자기 생각만이 항상 옳은 것으로 착각하는 일을 그만 하시기 바랍니다. 

결론적으로, 

신학교리는 성경본문의 이해를 돕는 것이어야 합니다. 아무리 소위 정통교리라고 알려진 것이라고 해도 성경본문을 왜곡시키거나 부인케 한다면 우리는 당연히 성경본문을 기준으로 그 교리를 수정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모든 성경은 다 우리의 체험과 누림을 위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진리에 교리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음을 겸손히 인정하고 다만 성경 본문이 말하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 수 있기를 주께 구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교리나 혹은 성경을 남을 부당하게 정죄 하는 도구로 가볍게 사용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를 보존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2. 19:43

재평가 된 지방 교회 목차 

목 차 

1. 한국에서 지방 교회들이 잘못 평가된 원인과 배경 ………………5 

1) 현대종교에 대한 반박문 …………………………………………9 

2) 전도출판사의 답신 ………………………………………………12 

2. 누가 이단인가 (지방 교회 측과 C목사 토론) 소개의 글 ………15 

1) 지방 교회 측 결론(11회)……………………………………… 18 

2) 최삼경 목사 측 결론(12회) …………………………………… 43 

3) 최 목사 주장에 대한 지방 교회 측의 반박 ……………………65 

3. 우리가 틀렸었다 (미국 CRI 저널 재평가) ……………………… 67 

1) CRI 저널 책 소개 …………………………………………………170 

4. 복음의 확증 (풀러 신학대학 재평가) ……………………………177 

1) 풀러 신학대학 성명서 ………………………………………… 230 

5. 지방 교회들 (AIA 재평가)…………………………………………233 

1) 지방 교회들 - 진정한 크리스천운동 ………………………… 242 

2) 초기 평가를 재평가함 ………………………………………… 247 

3) 비판하던 사람이 보증하는 사람이 됨 ……………………… 252 

6. 한기총 이대위 11가지 질문과 지방 교회 측 답변 …………… 256 

1) 한기총 이대위 11가지 질문과 지방 교회 측 답변 ………… 257 

2) 한기총 대표회장에게 보낸 행크의 공개편지 ……………… 280 

7. DCP Korea 교계 기자간담회 ………………………………… 283 

1) 기자 간담회 신문기사 내용……………………………………284 

2) 지방 교회 측 성명서……………………………………………290 


[ 부 록 ] ……………………………………………………………… 293 

1) 워치만 니의 공로를 치하하여(미국 국회의사록)…………… 294 

2) 위트니스 리 - 그리스도인 교사 ……………………………… 296 

3) 고오든 멜튼 박사 공개서한…………………………………… 298 

4) 예장 통합측 지방 교회 연구 보고서 ………………………… 301 

5) 재심신청 연구결과에 대한 지방교회 측의 입장 …………… 306 

6) 예장통합의 C목사 삼신론 연구보고서 ……………………… 316


재평가 된 지방 교회
국내도서
저자 : DCP Korea 편집부
출판 : DCPKorea(디씨피코리아) 2011.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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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평가 된 지방교회 표지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2. 05:00

삼위일체 토론은 성경본문을 중심으로 !!

삼위일체는 복잡합니다. 그래서 똑 부러지게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 이유를 조금 자세히 열거하자면, 첫째, 하나님 자신이 숨어 계십니다(사45:15). 둘째, 그리스도는 그러한 하나님의 비밀이십니다(골2:2). 셋째, 사도신경 등에서 보듯이 성령님 (the Holy Spirit)에 대한 교리나 신조 상의 언급은 극히 짧고, 그에 대한 신학자들 사이에서의 논의는 아직도 미 완성 단계라는 점을 들수 있습니다. 

 따라서 각종 교리집이나 이단 전문가들의 주장이나 이런 인터넷 상의 토론으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앎에 있어서 부족함이 있습니다. 그래도 꼭 토론이 필요하다면, 최소한 성경본문을 토대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자기 한계에 집착하기 보다는 하나님이 계시를 주사 알게 하시기를 기도하는 겸손한 마음 자세가 요구됩니다(엡1:17, 마11:27). 

 이제 아래에서 스가랴 4장 10절과 계시록 5장 6절을 근거로 두 종류의 잘못된 삼위일체관을 바로 잡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성경 본문들 

슥4:10 -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일곱 눈이라(the eyes of the Jehovah(AsV), the eyes of the LORD (KJV), the eyes of Jehovah(Darby)). 

 계5:6 -…어린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2. 여호와의 증인들의 오류 

여호와의 증인들의 오류

여호와의 증인들은 성령의 인격성을 부인합니다. 대신에 성령님을 하나의 능력으로 봅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그들은 아들 하나님이 여호와이심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1) 요8:24 (예수님이 출3:14의 여호와 즉 ‘That I Am’(에고 에이미)이심). 2) 계1:8과 22:13-16의 비교(알파와 오메가=전능하신 하나님=예수). 3) 슥 4:10(여호와의 일곱 눈)과 계5:6 (어린양의 일곱 눈)의 비교를 통하여 충분히 예수님이 여호와이심이 입증됩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지금도 열심히 여호와를 증거합니다. 그러나 거짓되게 증거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3. 삼신론의 오류

삼신론은 간단히 말해서 삼위(아버지, 아들, 성령님)를 ‘분리’시키는 이단 사상입니다. 양태론은 이와 반대로 삼위의 ‘구별’을 무시합니다. 그런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삼위를 구별함에서 더 지나쳐 분리 독립시켜 생각하는 사실상의 삼신론적인 삼위일체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종성, 삼위일체

그러나 칼빈이 존경하는 교부인 어거스틴은 그런 삼위 분리 사상과 달리 “(세) 위격이 상호 내재한다”(이종성, 삼위일체, 269쪽) 또는 “하나님과 아들이 분할 할수도, 분리될 수도 없는 분” 이라고 했습니다(위 책, 267쪽). 

 이런 삼위의 분리불가 원칙에 어긋나는 대표적인 삼신론적 표현들 중 하나는 <예수님이 지상에서 사역 하실 때 성부 하나님은 (저 하늘에만 계시고) 아들 안에 안 계셨다>는 주장입니다. 문제는 애석하게도 한국 교계에서 정통과 이단을 상담하는 책임을 맡은 현 한기총 이단 상담소장 자신조차도 이런 잘못된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지상 사역시 예수님은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요14:11)고 말씀하심으로 그런 주장이 잘못된 것임을 알게 합니다. 

  4. 성경적 삼위일체론-구별되나 분리는 안 되는 세 위격께서 한 신격과 한 본성을 공유함 

 삼위 하나님(Trinity 또는 Triune God)에 대한 성경기록은 양면적입니다. 존재론적인 삼위일체와 경륜적인 삼위일체가 그것입니다. 전자는 삼위의 존재 자체를, 후자는 그 기능의 방면을 가리킵니다.  

존재론적(내재적)삼위일체(Immanent Trinity)는 영원 전에 하나님만 계실 때 어떤 존재 형태로 계셨는지를 정의합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은 한 신격(one Godhead)과 한 본성 (one Nature)을 공유한 세 위격들(three Persons)이 구별은 되시지만 분리되지는 않으신 한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경륜적(경세적)삼위일체(Economic Trinity)는 그러한 존재론적인 삼위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사 하나님의 장성한 아들들로 만드시려는 계획을 세우시고(엡1:5), 그것을 성취 하시고, 또한 마침내 사람인 우리에게 그것을 적용 하시는 각 방면의 하나님을 말합니다.  

성경은 이 두 방면을 함께 말함으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심지어 성도들을 지도하는 목회자들까지도 삼위일체에 대해서는 깊게 안 만지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래 인용 본문들은 성경적인 삼위일체를 균형있게 이해하는데 작은 힌트와 도움을 줄 것입니다. 

  -존재론적 삼위일체-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요14:11). 

  -경륜적 삼위일체 –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마 3 :16) 

(만일 위 구절을 근거로 예수님이 침례 받기 전에는 성령님은 예수님 안에 안 계셨다 라고 주장한다면 큰 오해를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포함한 삼위 각자는 이미 영원 전부터 존재론적으로 서로 안에 상호 내재하십니다(요14:11). 이러한 양면성이 사람의 머리 속에서 논리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고 해서 어느 한쪽의 성경본문을 부정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경륜적/ 존재론적 삼위일체 –“나를 보내신 이가(경륜적 방면) 나와 함께 하시도다 (존재론적 방면).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함으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8:29).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요8:16). 

  5. 결론 

성경적인 삼위일체를 바르게 이해하는 비결 중 하나는 성경이 삼위 중 어느 한 위격을 언급할 때, 그 위격만 분리하여 생각하지 말고 구별은 되나 분리되지 않게 상호내재하시는 다른 두 위격들을 함께 생각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8장 6절의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좋은 예입니다. 

 즉 아들의 성육신과 지상 사역시, 아버지는 저 하늘에 남아 계시고 아들 안에는 안 계셨다 고 할 것이 아니라, 아버지는 하늘에 계심과 동시에 이 땅 위의 아들 안에 상호 내재하신다고 믿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들께서 승천하신 후 성부와 성자는 하늘에 계심과 동시에,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과도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게 상호내재하신다고 믿는 것입니다. 위 계시록 5장 6절은 이런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 또한 동일한 로마서 8장에서, 10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생명으로) 내주하심을, 34절에서는 그러한 그리스도께서 하늘 보좌에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기도하심을 말함으로 이런 관점이 성경적임을 재차 확증해 줍니다. 

그러나 한국 교계의 주류에 해당되는 개혁신학은 아들 자신이 아닌, '아들을 대리한 성령님'만이 우리 안에 내주하신다고 주장함으로 성경적인 삼위일체론을 담기에는 그 그릇이 작음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개혁신학은 우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 자신'(골1:26), 또는 우리 안에 생명으로 내주하시는 '아들 하나님 자신'(요일 5:12, 골3:4)을 인정 할수 없는 '신학적 구조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것이 성도들이 삼위일체론에 있어서 혼란스러워 하는 또 다른 이유들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각주1) 위 '하나님의 일곱영'(계5:6) 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설명하려면 글이 더 복잡해짐으로, 주님이 허락하시면 또 다른 기회를 빌려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6. 30. 05:00

지방교회 탐구 - 3

“교회 직제는 달라도 고백은 같다”

  - (기독론) 예수님 인성에 변화가 있다고 한다 : 위트니스 리는 약 701쪽 분량의 ‘그리스도론'(한국복음서원) 을 썼으나 그 어디에도 예수님의 양성을 부인한 적이 없다. 조사보고서상의 ‘예수님의 인성에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는 부분은 위트니스 리가 부활시 예수님의 육신이 육의 몸에서 영화롭게 된 몸으로 변형되셨다고 한 것을 지적한 것 같다. 그러나 그런 말은 성경 말씀 그대로일 뿐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으로 본다(고전15:44, 빌3:21). 지방교회측은 “뭔가 오해가 있는 듯 싶다”고 밝히고 있다. 

  - (인간론) 삼분설을 취하면서 사람의 영이 타락하지 않았다고 함으로 전인적인 타락을 부정한다 : 우선 인간 구성을 이분설로 보든 삼분설로 보든 그 차이가 이단 사유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신학적 논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사보고서의 지적처럼 위트니스 리가 몸만 타락하고 영은 타락하지 않은 것으로 믿음으로 참으로 사람의 전인적인 타락을 부정한 사실이 있는지 여부가 최대의 쟁점이다. 우리는 통합측과 토론시 우리가 온 영과 혼과 몸을 포함한 전인적인 타락을 믿는 근거들을 상세히 제시했다. 그러자 "물론 워치만 니나 위트니스 리가 인간의 영이 타락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영이 타락하여 죽었다고 주장한다"고 말함으로 연구 보고서상의 지적을 스스로 뒤집은 바 있다(월간 교회와 신앙, 97년 8월호 164쪽 참조). 

  - 교회론 관련 문제 제기들 : (지방)교회의 공식 교회론은 위트니스 리가 쓴

신약의 결론 - 교회

‘교회론(530쪽 분량)'에 체계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다. 그런데 통합측 조사 보고서가 이 책 외의 자료 여기 저기에서 문맥의 흐름과 무관하게 떼어 낸 몇 가지 자극적인 표현들은 다소 오해 될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그런 부분들을 인용 소개시 오류가 있거나, 핵심진리가 아닌 장로교단과 침례교단이 차이점을 가지되 서로 허용하는 정도의 상대적인 차이만 있을 뿐이다. 

  - 기성교회를 바벨론이라고 한다 : 계시록 17:5의 ‘큰 바벨론'을 ‘로마 천주교'로 보는 근본주의 성경교사들의 기존의 해석을 위트니스 리도 답습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런 해석이 이단시 된 사례가 없는 것으로 안다. 물론 이런 해석에도 불구하고 지방교회측은 어떤 교단 소속이든 참되게 거듭난 성도들은 동일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임을 인정한다. 아울러 통합 교단을 포함한 타 교단 내에서 거듭난 성도들이 많이 있음을 인정함은 물론이다. 

  - 목사와 예배 제도를 부정한다 : 지방교회가 기존교회와 다른 차이는 계급적인 성직자 평신도 제도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복수의 장로들이 특정 교회를 다스리고 목양하는 것은 성경적이라고 보아 이들도 그렇게 실행하고 있다. 예배 실행은 형식상으로는 다양성이 인정된다고 보며 그 안에 주님의 임재 등 참된 경배 요건이 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요4:24). 

  - 기성교회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한다 : 어떤 단체이든 거듭난 성도들이 있는 곳에는 하나님이 계시며 교파에도 참되게 거듭난 성도들이 많이 있다고 믿는다. 이 부분 역시 전후 문맥과 함께 읽을 때 풀릴 수 있는 오해들 중 하나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 침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삼는다 :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받는 것이다. 사람의 행위가 우리를 구속하거나 지옥으로부터 구원하지 못한다. 이들은 “이런 오해는 아마도 구원의 여러 방면 중 사도행전 2:40이 말하는 ‘(지옥이 아닌) 패역한 세대로부터 구원을 받으라'는 구절을 설명하는 문맥을 잘못 이해한데서 온 것으로 보인다”고 성명한다. 

  - 주 예수 이름 부름이 유일한 성령 충만 방법이라고 한다 : 고린도전서 12:3하, 로마서10:12에 근거하여 ‘예수를 주'라고 고백하는 것은 성령 충만되는 많은 성경적인 방법들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이들은 따라서 “이것이 유일한 방법일 수는 없으며 그렇게 말하지도 않으며 역시 전달과정에서 다소 오해가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성경의 중요한 핵심진리(유3절)에 대해서는 정통성 여부를 엄격하게 따지되 지엽적인 진리나 실행들의 차이는 그 다양성을 허용하는 것은 보편적인 교회의 통일성과 다양성이 유지되는 중요한 측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단 여부를 규정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경적이며 참된 그리스도인들로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임을 양심가운데 고백할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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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6. 29. 05:00

토론글 1 - 이인규님의 주장은 변형된 삼신론

지방교회 들의 반박 - 지방교회는 변형된 양태론을 믿는다는 거짓주장에 대하여

아래 내용은 예전에 (지방)교회측 한 지체와 이0규님이 교회와신앙 홈 페이지에서 토론했던 것입니다. 이0규님과 지체사랑 님의 토론은 이러한 토론의 연장임으로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이곳에 소개드립니다. 이0규님의 주장은 변형된 삼신론. 

먼저 이러한 토론을 할 수 있도록 귀한 공간을 마련해 주신 월간 교회와 신앙 측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지방)교회측의 진리-신론, 구원론, 종말론, 교회론-에 대해 비판하고 싶다며 공개토론에 강한 의욕을 보이신 이0규님에게 좋은 토론의 본을 세울 것을 제안 드립니다. 한 가지 미리 양해를 구할 것은 제가 토론 전개과정에서 진리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취하는 것을 이인규님 개인의 인격을 손상하려는 것으로 오해하지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 둘은 다른 것이며, 우리가 서로 대립되는 위치에서 토론을 한다고 해서 주님 안에서 서로를 사랑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제 토론에 들어가고자 합니다. 이인규님이 주장하거나 질문하신 내용들을 큰 항목들로 묶어서 답변, 반론 그리고 재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Ⅰ. 님의 소위 『정통교회 삼위일체론 개념은 너무 모호』합니다.

님은 첫째로 「지방교회 삼위일체는 정통교회 삼위일체와 다르다」는 점을 토론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초두부터 『이인규님은 무엇을 정통교회라고 생각하는 것인가』그리고 『정통 삼위일체 개념이 너무 모호하다』는 의구심이 생깁니다. 더 전진하기 전에 다음 글에서 보다 명확하게 정의해 주실 것을 우선 요청합니다.  

왜냐하면, 

님이 글에서 서술하신 것에 따르면 이인규님의 관점에서 본 정통교회 삼위일체란 삼위를 독립된 세 인격으로 믿는 것이고, 1) 하나님은 삼위시다. 2) 각 위는 온전한 하나님이시다. 3)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를 믿는 삼위일체를 믿는 것이라고 이야기하셨습니다. 물론 님이 제시하신 세가지 요점은 정확하게 맞습니다. 저 역시 정확하게 그 사실에 동의합니다. 님은 아니라고 하셨지만 우리는 분명히 삼위의 독립된 위격을 믿습니다. 이것은 후반부에 설명할 것입니다. 아마도 진짜 이단이 아닌 바에야 위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계적으로 적용하기에는 많은 쟁점이 내포된, 많은 설명이 필요한 판단기준으로 너무 모호합니다. 이인규님. 누차 말씀드리지만 이 토론에서 다루고자 하는 부분은 그렇게 간단한 몇 마디의 말로 정의나 내리는 수준이 아님을 아십시오. 매우 깊이있는 부분까지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A. 우선은 위의 기준으로 볼 때 이전의 글에서 님이 옹호하셨던 예장 통합측 장신대학 김명용 교수는 삼위일체에 있어서 이단이 됩니다. 

김명용 교수는 월간 목회와 신학에 발표한 그분의 논문에서 세 번째 기준에 어긋나는『하나님이 한 분이라고 믿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하나님은 세분이시다』 라고 반복해서 주장하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님의 정통교회 삼위일체론 기준에 의거해 제가 김명용 교수와 그가 가르치는 장로회 신학교, 그리고 그 신학교를 졸업한 목회자들이 소속된 예장 통합 측을 이단 또는 정통교회가 아닌 사람들이라고 단정해도 되겠습니까? 님은 이에 대해 다른 게시판 글에서 (지방)교회측이 『세분 하나님을 부정하면 틀린다』는 김명용 교수의 말을 이상하게 곡해하여 모함한다며 저희들을 나무라기까지 하셨습니다. 

 이제 여기 본문 중 일부를 옮겨오겠습니다. 직접 확인하고 다음 글에서 님의 입장을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삼위이시다 하나님의 삼위 되심을 이해할 때 첫째로 중요한 것은 삼위라는 말의 뜻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삼위라는 말은 하나님이 세 분이라는 말이다. 한국의 많은 성도들과 교회들은 하나님의 삼위 되심의 삼위를 세 분으로 생각하지 않고, 셋이긴 하지만 세 분이 아닌 다른 어떤 형태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빨리 버려야 할 사고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삼위 되심을 세 분 하나님으로 인식하지 않는 사람들은 삼위일체론을 바르게 이해하는 첫 단추를 잘못 꿴 셈이다.』 

 『성경은 세 분 하나님을 가르친다 신약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은 세 분이시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라고 말하는데, 이것이 성부 하나님을 지칭하는 말일 때는 정확한 말이지만,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삼위를 지칭하는 말로서는 지극히 부적절하다.' (출처: 월간 목회와 신학, 장신대토론게시판 게시물 번호: 206 (2001/02/10,17:11:25)) 

김명용 교수는 성경이 세분 하나님을 가르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인규님도 김명용 교수의 글과 마찬가지고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라는 표현이 단지 성부 하나님만을 지칭할 때 쓰는 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B. 또한 위 네 가지 명제는 가장 중요한 항목이 빠졌습니다. 이 점이 삼신론이냐 아니냐를 판단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요점입니다. 

그것은『1) 하나님은 삼위시다. 2) 각 위는 온전한 하나님이시다.』 이신 하나님이 어떤 안전장치로 인해 『3)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를 충족시킬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만일 이 부분을 성경적으로 믿으며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한채 님처럼 오히려 삼위를 분리시키는 쪽으로 착각을 하면 삼신론 이단이 되는 것입니다. 

 님은 (지방)교회측이 최 삼경 목사가 『삼위의 독립된 인격』을 주장한다고 이단이라고 하는 것처럼 오해하시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가 아버지가 아들 안에, 아들이 아버지 안에 계심(요14:10-11, 20)으로 삼위가 한 분이심을 표현하는 길인 『세 위격 간의 상호내재』를 부인하기 때문에 삼신론 이단이라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님이 인용하신 신학자들은 균형잡힌 관점에서 썼을지 모르나, 님의 여러 글들을 고려해 볼 때 그들의 글을 받아들인 님은 잘못이해하고 받아들이셨습니다. 

이인규님은 말로는 하나님이 한 분이심을 믿고 상호내재도 믿는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이면에 삼신론 사상을, 그것도 자신의 말이 이단사상인지도 모르면서 반복해서 주장하고 계십니다. 다음이 그 증거입니다. 다음 글들은 지금은 링크가 되어있지 않지만 지난 게시판에서 님이 다른 분들과 토론시 하신 주장들입니다. 

-이인규님의 주장-

 『즉 최목사는 "인격 안에 인격이 없다"는 "세 인격의 독립성"을 강조하면서 비난을 한 것이고 ...』  

『<한 인격> 예수님 하나님 속에 아버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도 들어 있다면 그래서 <한 인격>의 하나님이라면, 결국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 속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말이 되고 … 이것이 바로 양태론적인 삼위일체가 아니고 무엇인가?』  

『한 인격에 다른 인격이 들어 있지 못하다는 뜻이 분명하다. 만일 한 인격 안에 다른 인격이 존재한다면 이것은 장소적인 개념이 된다.... 서로 다른 세 인격이기에, 즉 인격적으로 다른 인격과 구별된다는 것이다. 상호내재란 장소적인 개념이 아니다.....』

 『예를 들지요...한 학교의 10명이 같은 반 1학년 1반입니다....그들은 각자 독립된 인격입니다. 그들이 독립된 인격이라고 하는 것이며, 그들이 서로 인격적인 교통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1학년1반에서 분리된 것과 뜻이 다릅니다. 』 

 사도, 교부시대 때부터 이어온 정통신학은 님과 같이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위와 같은 님의 주장은 세 인격의 독립성의 정체가 『인격 안에 인격이 없고... 같은 반 아이들 10명이 다른 반으로 분리되지 않은 채 각각의 독립된 인격체로 서로 교통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님은 상호내재를 인정한다고 하셨지만 이것이 님이 말하는 『세 인격의 독립성이고 상호내재의 의미』라면 저는 위 내용만으로 이인규님을 최삼경 목사와 똑같은 삼신론이단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인규님은 지금 큰 오해를 하고 계십니다.  

이런 사상을 가지고 계시니 (지방)교회의 삼위일체가 님의 삼위일체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님의 글 2) 지방교회의 입장은 무엇인가와 3) 지방교회의 삼위일체에 관해 엉뚱하게 변형된 양태론이라는 오해를 하게 되는 것이며 4) 지방교회에 드리는 네 가지 질문도 역시 이런 잘못된 시각으로 인해 발생되는 의문에 불과 합니다. 님의 『한 인격에 다른 인격이 들어 있지 못하다는 뜻의 삼위 인격체의 독립 사상』이 왜 성경과 다른 신학자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삼신론 사상인지 간략하게 증명하겠습니다.  

첫째로 주님이 요한복음 14장 11절에서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고 하신 말씀과 정면으로 대치되기 때문입니다. 님의 주장에 따르면 아들이 성육신 이후엔 아버지와 분리되어 하늘에는 계시지 않고 이 땅에 오셔야 할 것 같지만, 성경은 성육신 이후에도 여전히 아들 하나님은 여전히 아버지 품속에 계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Son, which is in the bosom of the Father)(요1:18). 

둘째로 신학자들의 주장과 다릅니다. 

The Works of St. Augustine “On the Trinity”

1) 상호내재(coinherence)가 무엇을 말하는지에 대해 성 어거스틴은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So both are in each, and all in each, and each in all, and all in all』(The Works of St. Augustine “On the Trinity”, Book VI, p.103).  

2) 아우그스티누스의 삼위일체론의 내적 관계성의 특징을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세 위격(페르소나) 사이에 동등성이 있다 (2) 세 위격이 각기 완전할 뿐 아니라, 셋이 합하여 완전한 동등성을 이룬다. (3) 신성 안에는 일체의 분리가 없다. (4)그 셋은 함께 서로 내재한다(이종성, 삼위일체론, 대한기독교출판사, 258-260쪽, Augustinus, De Trin.,VII.1, 2)』  

3) 심지어 노골적으로 세분 하나님을 주장하고 있는 김명용 교수도 같은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성부가 성자 안에 거하시고 또한 성자와 함께 거하시고 성자가 성부 안에 거하시고 또한 성부와 함께 거하시는 이 하나님의 독특한 존재양태를 설명하기 위해 고대교회의 삼위일체론의 초석을 만든 교부들은 「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페리코레시스」라는 말은 다마스케누스(Damascenus)의 요한이 사용한 이후 동서교회 양쪽에 걸쳐 삼위 하나님의 일체를 설명하는 핵심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이「페리코레시스」라는 말은 상호침투를 통한 내주와 순환을 의 미하는 용어로 사도 요한이 설명하고 있는 성부가 성자 안에 침투해서 거하시고, 성자가 성부 안에 침투해서 그 속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독특한 존재 양태에 대한 성서적 표현에 상응하는 용어이다.』 

4) George Bull 주교도 『상호내재는 세 위격들의 상호내주를 의미하고, 그들이 하나 안에 있는 것처럼 하나가 다른 둘 안에도 변함없이 있는 것』 (Defense of the Nicene Creed, Oxford, 1851)이라고 했습니다. 

5) 아우구스트스 스트롱도 『거룩한 삼위일체의 위격들은 분리할 수 있는 개체들이 아니다. 각각은 나머지 둘을 포함하며, 각각의 오심은 나머지 둘의 오심이다』 라고 말했습니다.(Systematic Theology(Phila delphia: The Judson Press, 1912) p 333).(교회와 신앙 98년 5월호)』 

성경의 기본계시

6) 저희들 역시 동일한 입장입니다.『하나님의 아들은 육신이 되셨을 때도, 하늘에 있는 아버지를 떠나지 않았다. 그들은 구별되지만 분리되지는 않는다. 아버지는 항상 (존재적으로) 그분과 함께 계셨다(요16:32)(윗트니스 리, 성경의 기본계시, 한국복음서원, 1986년, 26쪽)』 

 따라서 성경말씀으로 보나 정통신학자들의 관점으로 보나 님의 「1-1반 아이들식」의 삼위 인격체들의 독립사상은 「한 부부」 또는 「한 가족」 사상과 함께 무서운 삼신론 사상입니다. 이것은 정통교회 삼위일체론도 아니고 성경이 계시하는 삼위일체는 더더욱 아닙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 님의 신론에 대한 사상을 반드시 재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Ⅱ. (지방)교회측의 삼위일체론이 '변형된 양태론'이라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습니다.

님은 님의 글에서 웨인그루뎀의 주장을 인용하여 아래 항목들이 해당되어야 양태론이라고 정의하셨는데 이것들이 (지방)교회에 해당된다는 증거를 제시해 보십시오. 

 1) 어디에서 우리가 삼위의 개인적인 관계를 부인하며 단지 그것들을 환상이고 실제가 아니라고 했나요? 

2) 어디에서 우리가 아들의 침례시 성부가 말씀하고 성령이 강림한 것을 부인했습니까? 

3) 어디에서 우리가 예수께서 성부께 기도한 것을 환상, 제스추어라고 했나요? 

4) 어디에서 우리가 속죄의 핵심을 잃는 주장을 했다는 말입니까? 

5) 어디서 우리가 구별된 세 인격을 부인했나요?  

또한 님은 신학자들의 글을 인용하시면서 마치 우리가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실 때 성부께서 하늘에서 말씀하시고 성령께서 비둘기같이 강림하셨다는 사실을 부인한다고 있다라고 은연중에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부인하지 않을뿐더러 성경말씀 그대로 우리는 받아들이고 믿고 있습니다. 님이 한 번이라도 편견을 가지지 않고 읽어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아래 내용은 교회와 신앙에서 있었던 내용입니다. 

『(지방)교회측은 세 위격의 영원성과 동시 존재하심을 믿는다고 성경과 윗트니스 리의 저서를 근거로 여러 번 변증했었다(96년 10월호 p.164, 97년 7월호 p.160). 세 위격 모두의 영원성을 믿는 사람이 어떻게 양태론자가 될 수 있는가! 

 트니스 리는 양태론자들과는 달리 세 위격 간의 '구별된 고유성'을 믿는다. 

 만일 윗트니스 리가 '아들 하나님'이 우리를 예정하고 선택하셨다거나,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려 돌아가심으로 구속을 성취하셨다는 등 세 위격의 고유성을 혼돈하는 말을 한 번이라도 했다면 최 목사는 어느 책 몇 쪽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 밝혔어야 했다. 그러나 최 목사는 그렇게 못했다. 왜냐하면 윗트니스 리는 그런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윗트니스 리는 다음과 같이 가장 성경적인 말을 하고 있다. "신성한 삼일성의 분배를 위하여 아버지는 먼저 우리를 선택하셨다. 우리는 태어나기 전 뿐 아니라 창세 전에 선택되었다(엡 1:4)...그 다음 그분은 우리를 예정하셨고, 우리에 대한 운명을 정하셨다(5절)"(신약의 결론-하나님, 352쪽). 

신약의 결론 - 하나님

 위 인용들을 통해 독자들은 윗트니스 리가 아버지, 아들, 성령 하나님의 고유한 특성을 결코 혼돈하거나 무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사실 이러한 것은 참된 믿는 이들에겐 상식에 속한 진리가 아닌가! 최 목사가 비판하기 전에 우리측이 변증의 근거로 삼는 윗트니스 리의 책, '하나님'(한국복음서원, 1991년)을 한 번만 차분히 읽어 봤어도 금방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런데도 최 목사는 97년 11월호 글에서 마치 윗트니스 리가 세 위격의 구별을 무시하기나 한 것처럼 장황한 말을 했다. 이것은 자신의 연구가 부실했었음을 스스로 폭로시킬 뿐이다.  "아버지의 선택과 예정하심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아들의 구속에 이르는데 그것은 아버지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아들은 그분의 피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구속을 성취하셨다(엡 1:7-9)"(같은 책 354-355쪽). "그 영의 분배하심은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여 그분의 영광의 찬미에 이르도록 하시는 그분의 인치심이다(엡1 :13-14). 성령의 인치심은 살아있는 것이며..."(같은 책, 357쪽). 

따라서 윗트니스 리가 '한 인격의 하나님'을 주장함으로 양태론자라는 최 목사의 말은 어느 면으로 보든지 거짓임이 폭로되었다. 오히려 윗트니스 리의 정통적인 삼위일체관을 억지로 비판하다가 최 목사는 '한 인격'에 대한 자신의 이단적인 관점만을 드러냈다. 이 점은 다시 언급하겠다 -교회와 신앙 98년 5월호-』 

이인규님의 글에서 3. 지방교회의 삼위일체에 대해서라는 제목아래「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 사람의 합당한 삶」이란 책 내용을 인용하셨는데 무엇이 어떻기 때문에 잘못이라는 말씀인지 님의 주장이 명확하지가 않습니다. 님이 문제점을 선명히 제시하시면 저도 다음 글에서 상세하게 해명 또는 반박해 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참고로 「아버지와 아들과 영의 최종 완결된 영」이란 말은 요 7장 39절(성령이 아직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고린도 전서 15장 45절 (마지막 아담은 생명 주는 영이 되었나니)의 본문을 잘 음미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대한 설명은 지면관계도 부족하고 이미 최삼경목사님과 토론시 다뤄진 부분이니 교회와 신앙 97년 7월호 (지방)교회측 반박 내용을 잘 읽어보시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또한 어떤 익명의 지체가 선물로 보내드린 것 같은데 신약의 결론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Ⅲ. 님의 네 가지 질문에 대하여

그러한 질문들은 (지방)교회측이 지상사역시 예수님 안에 계신 아버지만 인정하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부인할 경우인 즉 진짜 양태론이라고 볼때에나 나올 수 질문들입니다. 여기에서 분명하게 다시 짚어두지만 우리는 성경 그대로 아버지 하나님이 하늘에 계심(마 6:9)과 동시에 예수님 안에 상호내재 하심 (요14:10-11, 20, 17:21)을 믿습니다. 

그 중 조금은 다르게 보이는 것 같은 두 번째 질문인 자신 안에 있는 하나님 자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경우도 있나요라는 것은 우리가 그렇게 주장한 적이 있었습니까. 그리고 네 번째 질문인 다윗은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를 인격적으로 구분하여 기록하였을까요라는 질문 역시 동일하게 님께서는 우리가 삼위의 인격적인 구분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오해하시기 때문에 나오는 것입니다. 

이제 제가 몇 가지 질의하겠습니다. 

위에 있었던 질문들과 더불어 답변하여 주십시오. 경륜적인 삼위일체에 대해서 언급하셨는데, 이인규님은 경륜적인 삼위일체에 대해서 어떠한 이해를 가지고 계십니까? 이인규님에게 거는 한 가닥 희망은 그래도 님이 상호내재를 인정한다고 하셨습니다. 님이 말하는 상호내재란 어떠한 것인지 자세하게 설명해 주십시오. 마지막으로 님이 보유하고 계신 저희의 책자가 어떤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모든 님의 질문의 뒤에는 예수 안에는 아버지가 안 계시다는 님의 삼신론 사상이 깔려있습니다. 재차 말씀드리건대, 님의 삼신론 사상과는 달리 성경적인 가르침은 아버지는 보내신 자로서 하늘 보좌에 계심과 동시에 보내심 받은 예수그리스도 안에도 구별된 채 상호내재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마 16:9, 요 14:10-11, 20, 8:16). 이 두 방면 중 어느 하나를 부인하면 이인규님처럼 신론 이해에 있어서 심각한 혼동에 빠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 19절의 본문의 의미를 잘 새겨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토론의 서막에 불과하므로 시간이 지날수록 안개는 점점 걷혀질 것입니다. 우리의 영광과 위엄이 가득한 주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유익이 있도록 그분의 진리를 위해 역사하여 주시기를 구하며. 광주에서 김00. 추신. 

독자들을 위한 변 . 신학과 믿는이의 체험과의 관계 - 신학, 아니 진리를 알아야 할 필요성, 어쩌면 그분의 구원을 누리고 있는 지금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아는 것이 왜 필요한지 의아해 할지도 모릅니다. 

특히 삼위일체론에 대해서는 어렵기 때문에 접근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대부분 사람들이 이야기합니다. 물론 삼위일체론은 인간의 지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한계일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 안에서 우리의 한계를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한계를 말한 것이지 연구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이야기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하나님이 주신 이해로 그 안의 감추어진 보화를 캐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넘어서는 것은 도를 지나친 것이나, 연구하지 않고 안주하는 것은 게으른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륜은 그분 자신을 우리 안으로 분배하는 것입니다. 앞으로의 토론등을 통해 더 드러나겠지만 하나님이 왜 삼일이셔야 했는가를 이해한다면 다만 머리 아픈 지식에서 떠나 주님께 경배와 찬송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생명으로 우리 안에 분배하시기 원하십니다. 이것은 어떠한 영광이며 축복인지! 이 모든 것은 우리의 누림과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위한 것입니다. 앞으로의 토론이 진행될수록 어려운 신학적 용어와 정의가 대두될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사변적으로 접근하려 하지 않고 많은 기도가운데 그분의 계획안에서 어떻게 삼일하나님이 우리에게 역사되어지는지를 조금씩 알게되어진다면 더 큰 유익이 되리라 믿습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6. 27. 05:00



지방 정부는 세 명의 네이멍구[内蒙古]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에게 내려진 "이단" 범죄에 대한 가혹한 판결에 항소 할 기회를 거부함.

차이나 에이드 협의회 (China Aid Association)

(네이멍구[内蒙古], 후허하오터[呼和浩特]– 2013년 10월 8일)  네이멍구에 거주하는 세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이번 여름에 "이단"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아 장기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지방 정부에 항소와 재심을 요구했으나 반복적으로 저지당했다. 

 그 세 명은 후이 공(Hu Gong), 웬 웨이홍(Wen Weihong) 그리고 리우 아잉(Liu Aiying)라는 여성인데, 이들은 7월 25일 네이멍구 자치주의 수도인 후허하오터의 위취안구(玉泉区) 인민 법정에서 "지방법 시행령에 저촉된 이단 단체 결성과 남용" 이라는 죄목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중국 형법 제 300조에 따르면, 이 범죄는 " 3년 이상 7년 이하의 유기 징역"에 해당된다. 그러나 후이(Hu)는 9년 징역 형을 선고받았고, 웬(Wen)과 Liu(리우)는 8년 형을 선고받았다.  

세 명의 그리스도인들은 일반적으로 "외치는 자들”로 불리는 단체의 일원인데, 이 단체는 1920년 대와 1930년 대에 워치만 니에 의해 설립된 중국 토착교회의 논란이 된 한 지류이다. 워치만 니의 제자인 위트니스 리는 공산화되기 직전인 1949년에 중국 본토를 떠나 대만에 지방 교회를 세웠고, 이후에 지방 교회를 미국에까지 확산시켰다. 

 후이(Hu), 웬(Wen) 그리고 리우(Liu)는 2012년 7월 4일 ‘외치는 자들’과 지방 교회(Local Church)에서 출판된 전도 책자 수백 부를 배포한 혐의로 경찰서 유치장에 갇혔다. 그들은 2012년 7월 5일과 6일에 범죄 혐의로 구금되었고, 2012년 8월 11일에 공식 체포되었고, 2013년 4월 10일에 기소되었다.  

‘차이나 에이드’(ChianAid)는 중국본토 전역에서 벌어진 ‘외치는 자들’에 대한 박해에 깊이 우려 하고, 중국 정부가 "이단"라는 말을 빌려 이러한 믿는 이들을 박해하는 것에 대해 격분한다. 일곱 명(10월 12일 수정)의 ‘외치는 자들’ 그리스도인들이 허난(河南) 성  핑딩산(平顶山) 시에서 "이단" 범죄로 선고받은 것과 함께 이번 사건도 심각한 종교 탄압의 사례들이다. 지방 교회(the Local Church)가 과거에는 논란이 있었지만, 전 세계의 기독교인들 대부분은 이 단체를 더 이상 이단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국 정부는 자신들의 종교적인 신자들을 박해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이단" 이라는 낙인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네이멍구에서7월 25일에 있었던 재판에서 후허하오터 "중급 인민법원(中级人民法院 )"은 그 세 명이 "이단" 믿는 이들이며, 그들의 집에서 발견된 문서와 씨디(CD)들은 "이단 확산 자료들"이고,  "그 정황들이 특별히 심각하므로" 중형을 선고한다고 판결했다. 변호사들에 의하면, "특별히심각한 정황들"은 단지 그 세 명의 피고인들이 ‘크리스천 리서치 인스티튜트’(CRI)가 발간한 소책자를 포함한 지방교회 (Local Church) 출판물 수백 부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인데, 이 소 책자는 이단과 이교를 연구하는 미국의 기독교 변증 단체인 ‘크리스천 리서치 인스티튜트’(CRI) 가 지방 교회를 "이단"이라고 낙인찍었던 초기의 결정을 뒤짚은 내용을 담은 "우리가 틀렸었다 (We Were Wrong)" 라는 제목의 책이다. 

그 세 명의 믿는 이들이 후허하오터 "중급 인민법원(中级人民法院)에게 자신들이 항소하겠다고 통지하자, 이 사건을 담당한 지방 정부 부서들은 그들이 항소 서류를 접수하지 못하도록 협박과 겁을 주는 작전을 구사했고 항소를 담당하는 변호사들을 고용하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그러나 후이(Hu)의 가족들은 상해 소재 Huiye 법률사무소의 장 페이홍(Zhang Peihong) 씨를 변호사로 고용했고, 그는 즉시 후허하오터 중급 인민법원에 찾아가 그 사건 자료들을 요청했다. 그러나 담당 판사는 이 사건은 이미 상급 법원에서 항소가 기각되었고, 판결문들이 이미 인쇄 되었으며, 이 사건의 재심은 이뤄질 수 없다 라고 변호사에게 말했다. 이것이 이 사건의 현재 상황이며, 장(Zhang) 변호사가 현재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후이(Hu)의 가족들을 대리하여 탄원서를 접수하는 것과 상급 기관에 항소하는 것이다.  

차이나 에이드(ChianAid)는 세 명의 그리스도인 가족들 모두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들어왔다. 후이(Hu)의 아내는 사람들의 머리를 깎아 주고 벌은 수입으로 근근히 살고 있는데, 이 부부는 24살 난 딸이 한 명 있다. 웬(Wen)의 아내는 무직이고, 고등학생 또래의 딸이 하나 있다. 리우(Liu)의 남편은 장애자이고, 이들 역시 고등학생 나이의 딸이 하나 있다. 

 차이나 에이드(ChianAid)는 이 사건의 진행과정을 면밀히 감시할 것이며, 전 세계 그리스도인 들에게 이 고통받고 있는 세 가족들을 돕고, 이 세 명의 믿는 이들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을 요청할 것이다. 차이나 에이드(ChinaAid)는 중국 정부가 모든 종교적 믿는 이들에 대한 탄압을 즉시 종결하고, 종교의 자유에 관한 시민들의 헌법적 권리를 보장하고, 믿는 이들이 "이단" 범죄로 부당하게 판결된 사건들을 신속히 바로 잡도록 강력히 촉구한다.


Local government denies three Inner Mongolia Christians chance to appeal their heavy sentences for "cult" crimes 

China Aid Association 

(Hohhot, Inner Mongolia—Oct. 8, 2013)  Three Christians in Inner Mongolia who were convicted of cult crimes this summer and sentenced to long prison terms have been repeatedly blocked by the local government from appealing and seeking a re-trial. 

 The three—Hu Gong and Wen Weihong, and a woman named Liu Aiying—were convicted on July 25 of "forming and using a cult organization to undermine the implementation of the laws of the State" by the Yuquan District People's Court in Hohhot, capital of the region of Inner Mongolia. 

 According to Article 300 of China's Criminal Code, this crime is punishable by a "fixed-term imprisonment of not less than three years but not more than seven years." However, Hu was sentenced to a nine-year prison term and Wen and Liu were both sentenced to eight years. 

 The three Christians are part of a group commonly called "the Shouters," a controversial offshoot of the indigenous Chinese church founded by Watchman Nee in the 1920s and 1930s. A disciple of Nee, Witness Lee, left mainland China shortly before the Communist takeover in 1949 and established the LocalChurch in Taiwan and later expanded it to the United States. 

 Hu, Wen and Liu were taken into police custody on July 4, 2012 for distributing several hundred copies of evangelical literature published by the Shouters and the LocalChurch. They were criminally detained on July 5 and 6, 2012, formally arrested on Aug. 11, 2012, and indicted on April 10, 2013.

 ChinaAid is deeply concerned about the persecution of the Shouters throughout mainland China and outraged over the Chinese government’s use of the word “cult” to persecute these believers. This case along with the seven (corrected on Oct. 12) "Shouters" Christians also sentenced for "cult" crimes in Pingdingshan, Henan province, are instances of serious religious persecution. While the Local Church has aroused controversy in the past, most Christians worldwide no longer regard the denomination as heretical, and the Chinese government is clearly using the “cult” label as a tool for its persecution of religious believers.  

At the July 25 trial in Inner Mongolia, the Hohhot Intermediate People's Court ruled that the three were "cult" believers, that the literature and CDs in their homes were "cult propaganda materials," and that "the circumstances were particularly serious," hence the heavy sentences. According to the defense lawyers, the "particularly serious circumstances" was simply because the three defendants were in possession of several hundred copies of Local Church literature, including a booklet published by the Christian Research Institute, an American Christian apologetics ministry that specializes in cults and heresy, about the Local Church called "We Were Wrong" that reversed the Institute's earlier labeling of the Local Church as a "cult." 

 When the three believers informed the Hohhot Intermediate People’s Court that they were going to appeal, local government departments handling the case used threats and scare tactics to prevent them from filing their appeal and blocked them from hiring lawyers to handle the appeal. 

 Hu's family, however, did hire a lawyer, Zhang Peihong of the Shanghai Huiye Law Firm, who immediately contacted the Hohhot Intermediate People's Court to request the case files. The judge told him that the case had already been dismissed by the higher court, the sentencing papers were being printed and the case would not be re-tried. This being the case, the only thing Zhang can do is to file a complaint on behalf of Hu's family members and appeal to higher authorities. 

 ChinaAid has learned that the family of all three Christians are struggling financially. Hu’s wife has a meager income from cutting people's hair, and the couple has a 24-year-old daughter. Wen’s wife is unemployed and they have a high school-aged daughter. Liu’s husband is disabled and they also have a high school-aged daughter. 

 ChinaAid will closely monitor the developments in the case and calls on Christians everywhere to help these three suffering families and pray for the three believers. ChinaAid urges the Chinese government to immediately end its persecution of all religious believers, respect its citizens’ constitutional right to religious freedom, and quickly rectify cases in which believers were wrongly convicted of "cult" crimes. 

ChinaAid Contacts Bob Fu, President | John, News Analyst 
Tel: 1+ (888) 889-7757 | Cell: (267) 205-5210 
LA Office: Eddie Romero | Tel: (323) 521-6777  |  Email: ChinaAid.LA@gmail.com Website: www.ChinaAid.org | www.MonitorChina.org 
 출처: http://www.chinaaid.org/2013/10/local-government-denies-three-inner.html

China Aid Association 영문 기사 내용 끝


呼吁海内外关注和帮助呼和浩特市三名被重判的基督徒及其亲属

对华援助协会                               2013年10月1日 

内蒙古呼和浩特市基督徒胡功弟兄、温卫红弟兄和刘爱英姊妹, 仅仅因为信仰了有争议的基督教地方召会“呼喊派”,拥有“呼喊派”书籍并散发了数百份福音资料,就被呼和浩特市玉泉区法院,以刑法第三百条“组织和利用邪教破坏国家法律实施”罪,重判了8-9年的有期徒刑。 

三名被重判的基督徒是在2012年7月4日被抓的,并在当月7月5日和6日被当地公安刑事拘留。同年8月11日,他们三人被批准逮捕。到了2013年4月10日,呼和浩特市玉泉区人民检察院向玉泉区人民法院提起公诉,法院开庭审理后在2013年7月25日判处胡功有期徒刑9年、温卫红和刘爱英各8年有期徒刑。一审开庭时,北京中淇律师事务所刘建邦、王文娟和旭日娜三名律师出庭,为三名被告人提供辩护。但法院根本不顾基本事实,对辩护人的辩护意见完全不采纳,便判决这三名基督徒信仰的是“邪教”,家中的书和光碟是“邪教宣传品”,并认为“情节特别严重”,因而重判三被告。据律师反映,这“特别严重”的情节不过是因为他们持有数百份地方召会的资料,其中包括美国专门研究异端与邪教的基督教研究所(Christian Research Institute, CRI)所出的《我们错了》(《We Were Wrong》)这本为召会平反的小册子。 

一审判决后,三名被重判的基督徒不服判决,向呼和浩特市中级人民法院提出上诉。当地办案机关一直威胁恐吓他们不要上诉,不准他们请律师上诉。但被告人之一胡功的家属还是请了上海汇业律师事务所的张培鸿律师作为上诉案件的辩护人。张培鸿律师接受了委托后,当即和呼和浩特市中院联系查阅案卷和准备开庭,但呼市中院法官回答说:该案已经驳回,判决书已在印刷,法院不会开庭再审了。 现在律师只能帮助家属为之申诉了。

 据本会知悉:这三个被重判的基督徒的家庭都很困难。胡功的太太只能靠帮人理发而得到微博的收入,他有一个24岁的女儿。温卫红的女儿刚上高中,妻子没有工作,现在生活陷于困顿。而刘爱英的女儿才升高一,她的丈夫是个残疾人,没有收入。这三个家庭急需外界的帮助。我们呼吁海内外的基督教机构和弟兄姊妹能关心和帮助这三个困难的家庭,同时,也请关注这三位遭到重判的基督徒在狱中的状况。呼吁教会为他们的命运祷告。  

对华援助协会对中国大陆各地严重迫害 “呼喊派” 基督徒的情况感到严重的忧虑。对中共政府以邪教名义迫害信仰人士的做法深感愤怒。内蒙古这一案例是河南平顶山教案外又一例严重的宗教迫害案件。基督教地方召会在历史上引起很大争议,但在世界范围内,绝大多数基督徒已不把这一教派当作异端。信奉无神论的中共政府有何权柄来界定信仰领域的“正”或“邪”呢?这毫无疑问是假借“邪教”之名行迫害信仰人士之实。我们希望中共政权立即停止对所有信仰者的政治迫害,尊重宪法所规定的公民有宗教信仰自由的权利,迅速纠正一系列被以邪教名义枉判的信徒。 

 附上内蒙古呼和浩特市被重判的三名基督徒的判决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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对华援助协会新闻稿 联系人:傅希秋  约翰 手机: 267-205-5210 电邮: info@ChinaAid.org 
洛杉矶分部联系人:埃迪 电话: 323-521-6777 电邮:ChinaAid.LA@gmail.com
协会网址:www.ChinaAid.net  www.MonitorChina.org

China Aid Association 중문 기사 발췌 : http://www.chinaaid.net/2013/10/blog-post_1.html

기사내용 끝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6. 26. 05:00

개혁신학 측과의 대화 (2) –세대주의 이단 논쟁

 이 글은 먼저 세대주의 혹은 언약 신학을 지지하는 것이 정통 혹은 이단이 되는 문제는 아님을 말하고자 합니다. 또한 형제회와  교류했다는 이유만으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를 세대주의자로 분류하는 것은 무리가 있음을 해명하겠습니다. 사실 두 성경 교사는 세대주의가 중요시하는 몇 가지 핵심 항목들에서 전통적인 세대주의자들과 견해를 달리 합니다. 이들이 생명과 생명의 체험, 그리스도의 몸의 건축을 자신들의 사역의 초점으로 삼는 점도 세대주의와 차별화 된 부분입니다.

-세대주의 관련 이단 논쟁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1]는 한국의 개혁신학 쪽 분들에게 주로 종말론과 관련해서 이단성 시비가 있어 왔습니다.[2]  그런데 이것은 무천년설만이 유일한 정통 종말론이라는 전제에 기초한 것입니다. 애석하게도 무천년설은 같은 장로교 진영에서도 이견과 비판이 있는 터라, 그와 다르면 곧 이단이 되는 절대 진리로 보기는 어렵습니다[3]. 한편 언약 신학 쪽에서는 종말론 외에, 세대주의 구원론[4]에 대해서도 비판적입니다. 한 예로 존 걸스트너 (John H. Gerstner)는 ‘거듭나야 믿을 수 있다’는 것이 칼빈의 가르침인데,  세대주의자들은 ‘믿어야 거듭난다’고 정 반대로 말하니 이단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상대방은 ‘믿음으로 생명을 얻는다’(that by believing you may have life in his name) (요20:31)고 말하는 것은 성경 자체라고 반박합니다 .[5] 이외에도 계시록의 특정 구절에 대한 해석상의 차이, 문자주의 해석과 이스라엘의 운명에 대한 다른 견해, 시대 구분 등이 세대주의와 관련하여 논란이 되기도 합니다[6]. 그러나 조금 자세히 들여다 보면, 세대주의 안에도 여러 유형들이 있어 이들을 어떤 고정틀로 다 싸잡아 비판하기 어렵게 되어 있고[7], 언약 신학 안에도 수정노선이 등장하는가 하면[8], 언약의 정의와 그 성경근거 제시에도 학자마다  조금씩 다릅니다.[9] 따라서 균형잡힌 신학자들은 언약 신학과 세대주의 신학을 정통과 이단의 차원이 아니라  보수 신학계 안에서 성경을 이해하는 두 가지 다른 틀로 보고 있습니다. 이 점은 항목을 달리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세대주의 신학과 언약 신학의 관계 설정

이 연구를 위해 다양한 자료수집 과정이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언약교회 김성주 목사님이 쓰신 <언약신학에서 본 세대주의 신학>과 장두만 박사님이 쓰신 <세대주의 신학에서 본 언약신학> 이라는 글이 가장 눈에 띄어 소개하고자 합니다. “언약신학과 세대주의 신학은 성경을 하나님의 자기계시서로 인식하며 이를 신앙과 삶의 절대가치와 최고의 규범으로 삼아 믿는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성경을 해석하는 서로 다른 두 관점이며 두 교리체계이다. 그러므로 이 두 신학의 성경 해석적 관점의 차이는 정통과 이단의 관계로 규정해 비판하기보다는 정통신학 안에서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론의 차이로 분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겠다…모름지기 신학이란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들의 입장이나 관점을 집대성한 학문적 논리체계로서 인간의 주관적인 사상이 개입될 수 있는 여지가 아주 없지 않다. 그러므로 특정 신학을 절대화시키거나 신봉하기보다는 반성적 사고를 통해 부단히 연구 정진함으로 신학의 체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더욱 심화시키고 발전시켜 나가는 선의적인 작업이 부단히 요청된다고 하겠다.”[10]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 더 언급해야 될 것은 세대주의와 언약신학과의 관계는 이단 대 정통신학의 관계가 아니라 정통신학 안의 신학적 차이임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보수 신학계에서 상호대립 관계에 있는 두 신학 조류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 하면서 학문적 관점에서 논의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접근 방법이라고 생각된다”[11] 위 두 분은 공통적으로 상대방의 신학체계를 이단으로 보는 견해에 강하게 반대하고, 둘은 상호 보완 관계가 되어야 함을 역설합니다. 특히 장 박사님은 위 논문 서두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와 다른 신학적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너무 쉽게 정죄하는 경향”이 있고 “자기의 신학과 다르면 모두 '사탄의 종'이고 '적 그리스도'이고 '거짓 선지자'이고 '이단’” 이라고 함부로 정죄한다면서 “필자는 그런 극단적이고 과격한 언사는 양식 있는 학자라면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라고 점잖게 충고합니다. 그는 이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세대주의에 대해 그러한 식으로 매도해 왔다. 그런 논리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일부 세대주의적 견해에 동조하는) 챨스 스윈돌(Charles Swindoll), 존 맥아더(John MacArthur), 워렌 위어스비(Warren Wiersbe), 크리스웰 (W.A. Criswell) 등이 모두 이단이거나 사이비이고, 따라서 그런 사람들의 책을 출판하거나 읽는 일도 없어야 할 것이다.” 라고 지적합니다. 위 지적은 세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내용과 일부 같은 것을 말해도 즉각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거나 이단시 하는 경향이 있는 개혁신학 전공자 분들과 일부 이단감별사들이 한번 쯤 귀를 열고 경청해 볼 만 합니다.

 -세대주의와 워치만 니, 위트니스 리

워치만 니는 폐쇄파 형제회와 일정기간 교류가 있다가 성만찬 문제로 교제 단절을 당한 바 있습니다. 또한 위트니스 리는 워치만 니와 만나기 전 7년 반 동안 형제회 모임에 몸 담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성경 해석 안에서 소위 ‘세대주의의 특징들’이 일부 발견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두 성경 교사는 아래와 같이 몇 가지 세대주의 핵심 특징들에 있어서 전통적인 세대주의자들과 견해를 크게 달리합니다.

-이스라엘, 교회, 왕국

: 전통적인 세대주의자들은 <이스라엘과 교회>를 나누면서, 교회는 원래 계획에 없던 것이고 하나님의 왕국은 현재 연기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두 성경 교사는 하와로 예표된 교회는 창세 전부터 하나님의 경륜의 중심 목표이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신약 교회의 ‘예표’라고 말합니다. 또한 오늘날의 교회의 실재가 바로 왕국이라고 가르침으로 소위 ‘왕국 연기론’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12]

-대환란 전 휴거

: 알려진 대로 세대주의는 <대환란 전 휴거>를 주장합니다. 그러나 두 성경 교사는 극소수 이기는 자들 외에, 대다수 거듭난 성도들은 <대환란 후 휴거>될 것을 가르칩니다.[13]

-7년 대환란

: 세대주의의 <7년 대환란 교리> 는 그 내용과 개념이 두 성경교사와 다릅니다[14].

-알레고리 해석

: 비판자들은 워치만 니 특히 위트니스 리가 <알레고리 성경해석>을 한다고 정죄 합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문자적 해석이 특징인 세대주의자일 수는 없어야 합니다.[15] 

-산상수훈 해석 등

: 어떤 세대주의자는 마태 복음 5-7장의 산상 수훈은 유대인들에 해당되어 신약 교회와 무관하며, 대환란 때 이방인들에게 전해 질 ‘천국 복음’(마24:14)을 지금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16] 그러나 두 성경 교사는 마태 복음5-7장은 왕국 백성인 우리에게 헌법에 해당되고, 천국 복음은 대환란 전에 온 땅에 확산 되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시대의 구분

: 두 성경 교사는 전형적인 세대주의자들처럼은 아니지만, 시대를 구분합니다.[17] 그러나 대표적인 언약 신학자들인 찰스 핫지와 루이스 벌콥 역시 시대를 구분합니다[18] 따라서 시대를 구분한 자체가 곧 세대주의자임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결론

 찰스 C. 라이리는 언약 신학이 체계화된 것은 종교개혁 이후로 극히 최근의 일이고, 초기 교회의 공인된 교리가 아님을 지적합니다.[19] 장두만 박사님은 언약 신학의 행위 언약, 은혜 언약의 석의적(釋義的, exegetic) 근거가 불충분하고, 언약 체결 시기와 언약 당사자에 관해 신학자마다 혼란이 있는 것은 성경 근거가 희박함을 말해준다 고 주장합니다.[20] 심지어 믿음이 없는 유아들을  세례주는 근거로 언약 신학이 고안되었다는 혹평도 있습니다.[21]  만일 이런 지적들이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면 언약 신학과 다른 것은 이견일뿐 이단일 수는 없습니다. 필자는 양 쪽 지지자들 모두가 구 프린스턴 신학교에 광풍처럼 몰아쳤던 자유주의 신학에 맞서 싸웠던 무기였던 <근본주의 5대 강령>[22]  을 다시 함께 고백함으써, W.C.C. 번영신학 등 신종 자유주의가 한국 교계에 뿌리내리지 못하도록 함께 영적 싸움을 싸울 것을 제안합니다.[23] 이런 영적 전쟁에서 자유주의가 적군이라면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는 우군입니다.[24]

 
[1] http://blog.daum.net/hopeyard/8157 (목창균 박사님, 세대주의 논쟁)
세대주의 논쟁_목창균_서울신대_교수.pdf (클릭 다운로드)
[2]한국교계 내에서는 ‘시한부 종말론’ 비판( ftp://203.230.114.4/DLIIMG/009/009/T0211401.PDF )또는 선교 단체인 인터콥의 종말론 비판( http://www.ame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602 )과 관련하여 세대주의가 자주 거론된다.
[3]그런데 무천년설만이 정통이라는 주장을 반박하는 자료 또한 만만치 않다. 1) 차영배 박사님은 그의 <성령론> (도서출판 엠마오, 1997)에서 “대부분의 교부들은 역사적 전천년설자들” 이었는데, “이젠.. 무천년설이 득세 하여 한국교계의 전천년설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온다”고 탄식하고 있다 (12쪽).  2) 미국의 Faith 신학교를 졸업한 이광복 목사님도 종말론 토론에서 “무천년설은 어거스틴의 알레고리 해석법에 기원하며”, “무천년설 에 의존한 근대 자유주의 신학의 태동은 성경의 영감설을 부인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라고 비판한다 ( <천년왕국, 사실인가 상징인가> (생명의 말씀사, 1996, 201, 203쪽). 3) 특히 덴버 신학교 정성욱 교수님은 (http://www.christiantoday.co.kr/news/256267 )에서 ‘역사적 전천년설’이 더 성경적인 종말론임을 역설한다.
 [4] <세대주의 구원론>과 관련해서는 추후 별도의 글로 다룰 예정이다.
 [6]  이단감별사인 이인규 님(감리교 권사)은 <세대주의 비판>이라는 인터넷 상의 글에서 “세대주의자들의 보편적 특징”으로 “1) 배타적 폐쇄적이며, 2) 오직 자신들 교리만 진리라고 주장하며, 3) 자신들에게만 구원이 있다고 주장한다” 는 것을 지적한다. 그러나 1)과  2)는 언약신학 쪽도 자유롭지 못하고, 3) 의 ‘자신들에게만 구원이 있다 라는 주장이 세대주의자들의 보편적 특징’이라는 이인규님의 말은 명백한 거짓이다.
[7] http://www.biblemaster.co.kr/bbs/board.php?bo_table=B36&wr_id=16 이 자료는 세대주의를 “고전적 세대주의, 수정 세대주의, 점진적 세대주의, 대중적 계시주의” 로 분류한다. 이외에도 찰스 C.라이리는 <세대주의의 바른 이해>(전도출판사) 에서 블링거로 대표되는 ‘극단적 세대주의’를 말하며, 이를 다시 ‘극단적인 유형’과 ‘온건한 유형’으로 분류한다(218쪽).
 [8] 포이쓰레스는 <세대주의 이해>(총신대 출판부, 1992)에서 언약 신학의 수정노선과 관련하여, “성경신학”의 등장, 안토니 후크마 종말론의 “지상적”인 영원상태, 그리고 Willem Van Gemeren의 로마서 11장에 근거한 “이스라엘의 특별한 역할” 등을 지적한다( 54-55쪽을 보라).
 [9]  각주 11이 소개한 논문은 언약 신학자들이 제시한 성경 근거들이 왜 무리한 인용인지를 밝히고 있다.
 [10] http://blog.daum.net/7gnak/15718380  (김성주, 언약신학에서 본 세대주의 신학-특강 자료 중 일부이다)
 [11] http://blog.daum.net/hosanna7000/15577285  (장두만, 세대주의 신학에서 본 언약신학),이 논문은 <목회와 신학> 1995년 2월호에도 게재되었다. 
세대주의 신학에서 본 언약신학_장두만박사.pdf (클릭 다운로드)
 [12] 위트니스 리는 <신약의 결론-왕국>(한국복음서원, 1992)에서, “어떤 성경교사들은 왕국이 연기 되었다고 잘못 가르쳤다…로마서 14장에 따르면, 왕국은 오늘날의 교회생활이다. 교회생활의실재가왕국이다.” 라고 말한다(21-22쪽).
 [13] 위트니스 리는 계14:4의 ‘첫열매’ 관련 각주에서, 대부분의 믿는이들의 대환란 끝 휴거를 주장한다. http://rv.or.kr/include/flex2/viewer2/recovery_low.php  해당 구절 각주 2를 보라.  계14장4절 각주2.pdf
 [14] 위트니스 리는 계11:2 ‘마흔 두 달’에 대한 각주에서, 다니엘 9장 27절의 “후반부 삼년 반이 대환란의 기간일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7년 대환란>이라는 용어 자체를 부인한다.
 [15]  이인규 권사는 위트니스 리의 ‘알레고리 성경 해석’이 문제라고 자주 주장했다. 그러나 위트니스 리는  성경을 읽을 때 “가능한 한 글자 그대로” 읽되, 필요시  상징적인 의미를 따져 보는 것을 원칙삼으라 고 가르친다( 한국복음서원이 발간한 <성경을 해석하는 원칙>을 참조). 이것은 성경을 대하는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태도일 뿐, 세대주의자와 무관하다. 성경에는 ‘문자주의’(사7:14)와 ‘알레고리’(갈4:24)가 혼재한다.
[16]   http://www.biblemaster.co.kr/bbs/board.php?bo_table=B43&wr_id=25 이송오 목사님은 이 자료에서, “무천년 주의자들은….유대인의 왕국 복음을 이 시대의 구원 계획으로 붙들고 있다” 라고 주장한다.
 [17] 위트니스 리는 로마서5:14 주석에서,  ‘아담부터 모세까지’(롬5:14), ‘모세부터 그리스도까지’(요1:17), ‘그리스도 초림부터 만물의 회복까지’(행3:20-21), ‘그리스도 재림부터 천년왕국 끝까지’ (계11:15, 20:4, 6)로 시대를 구분한다. 그러나 이것 역시 성경 자체의 구분일 뿐 세대주의자이기 때문이 아니다. 워치만 니에게서도 시대 구분의 흔적을 볼 수 있다(<그리스도인의 50 필수과정, II, 한국 복음서원, 2002, 88쪽 참조).
 [18] 찰스 핫지도 ‘different Dispensations’이라는 소제목 아래 ‘아담에서 아브라함’, ‘아브라함에서 모세’, ‘모세에서 그리스도’, ‘그리스도에서 마지막’으로 시대들을 구분한다 (Systematic Theology II,  pp. 373-377). 핫지와 벌콥의 시대구분은 찰스 라이리의 <세대주의의 바른 이해> (전도출판사) 48-49, 54쪽도 보라.
 [19] 언약 신학의 상세한 역사는  위 라이리 박사 책  200-205쪽을 참조하라. 혹자는 어거스틴의 "구약은 숨겨진 신약이다. 신약은 드러난 구약이다." 라는 말을 빌려 언약 신학 기원을 초대 교회까지 소급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세대주의 쪽도 역시 어거스틴의“시대를 구분하여라. 그러면 성경은 그 자체와 조화를 이룬다”는 말을 세대주의 기본원칙 중 하나로 인용한다(위 각주 16의 제공자료 참조).
 [20]  [11] 참조
 [21] 박만수 형제님은 “칼빈은 유아들이 믿음의 선택을 하지 못해도 하나님의 예정과 주권섭리에 의해 그들이 이미 은혜 계약 안에 있다고 판단되면 얼마든지 세례를 줄 수 있다 고 주장했고, 그것이 소위 언약 신학의 출발점이었다”라고 주장한다( http://blog.naver.com/hjxch/80036289026 ).
 [22] 근본주의 5대 강령은 ‘성경의 무오성, 동정녀 탄생, 대속적인 죽음, 육신입은 부활, 기적의 인정(또는 재림 신앙)’이다.
 [23] http://blog.koreadaily.com/korea3927/695125 김명도 박사님은 이 글에서 “개혁주의와  신근본주의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바른 믿음을 지키려는 교단들입니다” 라고 말하고 있다.
[24] 중국 난징소재 ‘진링(金陵)연합신학대학’의 왕애명 박사는 최근에 10년(2002- 2012년) 간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 및 지방 교회들을 연구한 결과, 이들이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을 고백하는 개신교 표준 고백과 정확히 일치한다.” 고 공개 증언한 바 있다( http://local-church.tistory.com/136 ). 이것은 미국 ‘크리스천 리서치 인스티튜트’(CRI) 와 풀러 신학교 측이 장기간 연구한 결과와 일치된 결론이다. (지방교회 풀러신학대학 성명서 - http://local-church.tistory.com/109)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6. 25. 05:00


지방교회 탐구 - 2


이제 2회에 걸쳐 현재 예장 통합 교단과 (지방)교회 사이에 현안이 되고 있는 항목들에 대해 다룬다. 
 그러나 이에 앞서 (지방)교회의 개략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사역을 귀히 여기는 소위 (지방) 교회 성도들은 전세계에 약 30여 만명(중국 본토 제외), 3000 여 교회들이 있다. 한국에는 1966년에 소개되었으며, 현재 전국에 100 여개의 교회들과 약 2만여 성도들이 있고 200여 명의 사역자들이 있다.  

이들은 성경에 근거하여 주님이 원하시는 삶과 교회생활에 충실하고자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그 노정에서 통합교단을 포함한 여러 하나님의 자녀들로부터 사랑의 권면과 건설적인 지적을 받을 때 겸손히 배우고자 노력하고 있다. 다만, 오해되고 있는 믿음과 실행에 대해서는 진실에 입각한 규명이 필요하다고 보며, 이를 바탕으로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가 증진되기를 소망하고 있다. 

 참고로 특별한 언급이 없으면 아래의 이들의 견해는 위트니스 리의 총 8권으로 된 '신약의 결론' 책자 내용들에 근거한다. 양측은 바로 이 현안들에 대해 약 3년 간 치열한 진리 토론을 벌인 바 있다. 이제 예장통합 교단측이 지적한 주제들을 하나씩 열거하면서 그 각각에 대해 (지방)교회 측의 입장을 살펴본다.

전세계 30여만명, 3천교회 산재

삼위일체 하나님 동일하게 고백

- 신인합일주의를 가르친다 : 이들은 예장통합측이 (지방)교회가 하나님과 사람의 신비적인 연합을 가르친다는 사실 자체를 문제시 하고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박형룡 박사에 의하면 개혁파 신학에서도 이것은 '구원의 교리의 중심과 기초적 진리'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박형룡 전집-구원론, 98쪽). 

문제는 (지방)교회가 이러한 신비적 연합을 말하면서 창조주와 피조물 간의 구별을 무시한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 크게 다르다. 지방교회는 '포도나무와 가지'(요 15장), '주와 합하는 자는 한영'(고전 6:17) 등에 기초하여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을 믿고 가르친다. 그러나 피조물인 인간은 결코 창조주가 될 수 없고, 그러므로 당연히 경배의 대상이 되거나 전지전능, 무소부재 할수 없다는 사실을 아울러 가르친다. 이 점은 예장통합측과 토론 시 거듭 강조한 바 있다. 

 또한 "자신(하나님)을 제품으로 생산" 등등의 위트니스 리 책 자에서 문맥과 분리되게 떼어 낸 표현들이 읽는 이에 따라 다소 불경스럽게 보일 수도 있었겠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한 알의 밀알이 많은 밀알을 내는 것'(요12:24), '많은 아들이 맏아들의 형상을 본받도록 예정됨'(롬8:29) 등 의 성경진리를 쉽게 이해시키려는 과정에서 일어난 표현 상의 문제일 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 말들이 창조주와 피조물의 차이를 무시하는 가르침에 근거하지는 않다는 점은 전후 문맥이나 위트니스 리의 다른 책자와 함께 볼 때 분명하다. 

 - 삼위일체론에서 양태론을 가르친다 : 결론부터 말하면, 위트니스 리가 쓴 400 여권의 책자 중 혹시 한 두 군데 이러한 오해를 살만한 표현이 있었는지는 모르되, 원칙적으로 (지방)교회는 양태론을 가르치지 않는다. 양태론은 이단 신론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이런 오해가 나왔을 법한 다음 두 항목들에 대해 이렇게 해명한다. 

 - (위트니스 리는) 한 인격, 한 영을 주장한다 : 당시 예장통합측의 토론자는 위트니스 리가 한 인격의 삼위일체를 믿는 것이 양태론자라는 증거라고 했다(월간 교회와신앙, 2001, 11월호, 141쪽). 그러나 위트니스 리는 한 인격이 아닌 세 인격들의 하나님을 믿는다. 그 증거는 멀리 갈 것도 없이 "(위트니스 리가) 세 인격이한 영 안에 있는 삼일 하나님 이라고 한다."라고 한 통합교단 조사보고서 자체에 있다. 해당 보고서는 '이 세 인격이 하나로 발전되었다'라고 한다는 증거로 위트니스 리의 책자 '하나님의 경륜' 110쪽을 제시했으나 확인해 본 바 해당 지면은 전혀 다른 내용이다. 뭔가 큰 착각 내지는 오해가 있는 듯 하다. 

 - 세 영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세 인격을 가진) 한 영의 하나님'을 주장한다: 예장통합측은 '세 영들의 하나님'이 정통인데 위트니스 리가 세 인격을 가지신 '한 영의 하나님'을 말함으로 양태론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성부의 영과 성자의 영과 성령은 <각기 다른 세 영들>이지 <한 영>(성부의 영=성자의 영= 성령)이 아니다 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정통 교부 중 하나인 힐라리우스는 요한복음 14:23을 해설하면서 "아들과 아버지께서 함께 내주하시는 수단이 곧 보혜사 성령이시다...아들의 영이 따로 있고 아버지의 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라고 함으로 예장통합측의 주장을 일축하고 오히려 위트니스 리와 같은 관점을 말하고 있다(차영배, 삼위일체론, 168쪽). 이들은 황승룡 박사(개혁교회와 성령, 24쪽)를 비롯한 개혁교단 신학자들도 위 힐라리우스처럼 영을 이해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위트니스 리의 주장은 예장통합측 토론자의 주장과는 다를지 모르나 성경적으로든 교리적으로든 아무 문제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끝)

지방교회 탐구 원본 517호 다운로드 - 첨부파일 (하단 클릭)
161111_517_목회자edit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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