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10. 24. 01:40

삼위일체의 삼위는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는다-전치사 'para'를 중심으로 알아보기-지방교회 진리변호확증 자료


보통은 삼위일체론은 '세 위격(three persons), 한 본질(one nature)'이라고 해 버리면 만사가 다 해결되는 것처럼 아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삼위일체론을 전공했거나 관련 논문들을 심도있게 연구한 적이 있는 분들은 삼위일체론에 대한 논의는 현재도 진행 중이며, 더 연구할 분야가 여전히 많이 남아 있음을 인정합니다(김석환, 교부들의 삼위일체론, 341-342쪽). 

통상적으로 성부는 성자를 이 땅에 보내시고 (본인은 여전히 하늘에 남아 계시고), 성부와 성자는 (본인들은 여전히 하늘에 남아 계시고) 보혜사 성령을 이 땅에 보내셨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사상은 비록 성경의 어떤 구절에 근거한 주장일지 모르나 공간적으로는 물론 심지어삼위가 본질적으로도 각각 분리된 상태로 계신 듯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래의 성경근거들과 설명은, 위와 같은 '분리된' 세 위격들로 삼위일체를 인식하는 것이 성경본문이 계시하는 바와 현저한 차이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1. 요한복음 6:46 :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아버지)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여기서 아버지께로서 온 자가 아들이신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아들은 저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이 땅으로 오셨다는 말인가? 물론 한면으로는 그렇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면으로는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이 땅으로 오셨습니다. 

이런 해석을 가능케 해주는 대목이 바로 '하나님에게서'라는 말 뒤에 붙은 전치사 '파라'(para)입니다.  

존 넬슨 다아비는 위 구절을 ' not that any one has seen the Father, except he who is of God, he has seen the Father.' 라고 번역한 후 위 'of'에 대한 각주에서 "Para with genitive: 'from with." 라고 난하 주석을 달았습니다. 이것은 성자가 성육신하실 때 <성부로부터(from) 그리고 동시에 성부와 함께(with)> 이 땅에 오셨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점은 다만 일개 전치사에 대한 해석만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자가 나와 함께 계신다' '또는 '아버지가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계신다'고 반복해서 말씀한 요8:16, 29, 16:32, 14:9-11, 20 같은 여러 말씀들을 통해서도 재차 확증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보내신 분인 성부는 분리가 불가능한 그분의 속성상 보냄을 받은 성자와 언제나 함께 계신다는 존재론적 삼위일체 방면의 사실을 알 때, 우리는 비로소 아들과 아버지를 동시에 언급하는 아래 성경구절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거짓말 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 안에와 아버지 안에 거하리라" (요일2:22-24)

2. 요한복음 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이 구절에서도 역시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대목은 아버지 뒤에 붙은 "께로서" 라는 원문상의 전치사인 '파라'의 의미입니다. 이것을 보통 다른 번역본들은 'from' 즉  '~ 로부터' 라고 번역했으나  다아비 역은 원문인 '파라'(para, 3844)의 의미 즉 'by the side of'를 내포하는 뜻을 좀더 충실히 살려서 'from with'로 적고 있습니다. 

즉 보혜사 성령은 사장님에 의해 해외로 출장 보내어진 직원처럼 아버지로부터 떨어져서 나온 분이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 나오신 분입니다. 시공의 제한을 받는 인간의 관념으로는 이것을 마땅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러한 사실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파라'를 'from with'로 번역한 다아비의 요한복음 15:26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But when the Comforter is come, whom I will send to you from the Father, the Spirit of truth who goes forth[proceedeth] from with the Father, *he*shall bear." 

결론적으로, 성자께서는 성부로부터 보내심을 받았으되 동시에 성부와 함께 이 땅에 오셨습니다(요6:46). 마찬가지로 보혜사 성령께서도 성부와 성자로부터 보내심을 받았으나 동시에 성부와 성자와 함께 우리 안에 들어 오셨습니다(요15:26). 그러나 이 셋은 고유의 구별성을 상실하지는 않으십니다. 이것 모든 것이 다 성경이 계시하는 바입니다. 

따라서 성부와 성자는 저 하늘에 따로 남아 계시고, 오직 삼위 중 세번째 위격인 성령님만 홀로 우리 안에 오셨다는 일부의 주장은 성경의 여러 구절들과 심각한 충돌을 일으킵니다. 

물론 그것은 우리의 체험과도 거리가 있습니다.  

참고자료: '(주석이 포함된) 존 넬슨 다아비 역 성경'
http://www.awmach.org/BDB/dochome.htm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8. 4. 05:00

미국 종교 백과 사전 『지방교회』

* 906 * 지방교회 --- 백과사전 500-501쪽(제5판)

* 리빙 스트림 미니스트리

1853 W. Ball Rd

애나하임 캘리포니아 92804

작은 무리(The Little Flock) 또는 지방교회 등으로 알려진 이 모임은 일반적으로는 그의 영어 이름인 워치만니(Watchman Nee)(1903-1972)로 알려진 니 수추(Ni Shu-Tsu)에 의해 중국에서 1920년대에 시작되었다. Nee는 그의 할아버지가 회중교회 목사이고 그의 부모들은 신실한 감리교신자들인 중국인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을 위하여 사람들을 깨우는 목적을 가진 종치는 자라는 것을 자신에게 끊임없이 생각나게 하려고 본래 이름인 니 수추(헨리 니)를 니 토생(워치만)으로 바꿨다.

이름뿐인 종교적 청년기로부터 그는 감리교 복음전도자인 도라 유(Dora Yu)에 의해 회심되었고, 곧이어 독립 선교사인 마가렛 바버(Magaret E Barber)와 함께 일하기 시작했는데 그는 그녀를 통해 존 넬슨 다비(John Nelson Darby)와 폐쇄파 플리머스 형제회의 저술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교회조직에 있어서 다비의 반교파적 접근을 채택했고 곧이어 소규모의 복음주의적 그리스도인 무리의 인도자로 부상했다. 1920년대 말에 그는 제임스 테일러(James Taylor)가 이끄는 형제회의 한 부류와 접촉을 가졌고 그들의 초청으로 1933년에 영국을 방문했다. 그러나 그들은 오스틴 스팍스가 관장하는 비형제회 모임인 HOCF(Honor Oak Christian Fellowship)과 허가받지 않은 교통을 하였다는 이유로 니와의 관계를 곧 단절했다.

복주에서의 소규모 시작으로부터 니의 운동은 중국 전역에 확산되었다. 1930년대에 그는 넓은 지역을 여행하며 기독교의 하나됨의 기본적인 표현으로서 (분열적인 교파주의에 맞서) 각 도시마다 오직 한 지방교회(회중)만 있어야 한다는 그의 신념에 근거한 회중들을 만났다. 1922년부터 1952년(중국혁명이 기독교의 확산을 차단했던 때인) 사이에 200개 이상의 지방교회들이 그의 사역을 통해 일어났다. 니는 또한 50권 이상의 책을 썼는데 대부분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교회생활에 관한 것들이다. 교회에 관한 그의 성숙된 견해는 그의 가장 유명한 책인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교회생활'(사역의 재고)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는 또한 '영에 속한 사람'을 썼는데 그 책에서 그는 몸 혼 영으로 구성된 사람의 세 부분의 본성에 대한 그의 이해를 발전시켰다.

1949년에 권력을 장악한 중화인민공화국은 니를 (또한 그와 제휴함으로 관련이 있는 교회들을) 미국과 국민당 정부를 위해 간첩행위를 했다고 고소했다. 그는 처음에는 상해에서 축출 되었고 그후 1952년에 투옥되었다. 그는 1972년 감옥에서 죽었다.

1930년대에 니는, 체후(Chefoo)에 있는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의 장로가 된 전 개신교 목회자(former Protestant minister)인 위트니스 리를 동역자로 얻었다. 그는 1932년에 니의 사역에 동참했고 몇년 내에 니의 가장 소중한 동역자가 되었다. 폐결핵과 싸우던 3년간의 부재 후에 위트니스 리는 중국혁명 직전인 1948년에 전시간 사역자로서 니와 재결합 했다. 니는 위트니스 리를 대만으로 보냈는데 그곳의 교회들은 번성하여 태평양 연안으로 확산되었다.

위트니스리

미국으로 이주한 성도들은 그 운동을 서부 해안으로 가져왔다. 위트니스 리는 1962년에 미국으로 이주해서 리빙스트림 미니스트리(LSM)를 설립했다. 그는 지방교회들 가운데 인도적 지위에 있는 전시간 사역자로 인정받아온 이래, 지방교회의 확산을 위해 전반적인 방향을 제시해 왔다. 그는 또한 워치만 니의 저술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몇가지 신학적 강조점들을 소개함으로 그 운동 안에서 혁신을 위한 근원이 되었는데 예를들면, "기도로 말씀먹기" "주의 이름을 부름"과 같은 몇가지 실행들은 논쟁의 주제가 되었다.

조직

지방교회는 교회의 하나, 교회생활의 단체성,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한 직접적인 머리 역할을 주장한다. 주된 강조점은 교회생활, 함께 모임(일주일에 여러번),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과 교회(회중)생활의 의무를 분담함에 있어 각 지체들의 기능과 책임이다. 성직자와 평신도를 구분하는 것을 거절함에 있어, 교회생활의 실제적인 표현을 위한 본이 세워져 왔다.

지방교회는 한 도시에 하나인 독립적 회중들의 교통으로서 조직된다. 각 회중은 그들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고, 일반적인 행정일을 하는, 회중들이 인정하는 인도자들 중에서 나온 2-5명의 소규모 장로그룹에 의해 인도된다. 또한 사도적 기능을 가지고 교사와 리더쉽훈련가로서 지방교회들을 순회하고 지방교회가 아직 없는 도시에 새로운 모임을 시작하기도하는 소규모의 사람들도 있다. 지정된 사역자들은 다소간 공식적으로 그들의 수고들을 독립된 사역으로 조직한다. 예를 들어, 위트니스 리의 경우에 그의 사역은 리빙스트림 미니스트 리로서 합병되었고 그것은 현재 지방교회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도적 노력(endeavor)이다.

다비의 반 교파적 자세가 문제를 일으켰던 플리머스 형제회처럼 니의 운동도 분파적인 이름을 갖지 않았다. 지방교회는 자신들을 다만 교회라고 부른다. "지방교회"라는 말은 편의상의 호칭이지 이름이 아니다. 지방교인들은 그들 자신들을 "(어느 도시에 있는) 교회"라고 부른다.

지방교회는 새로운 도시에 회중을 조직하고자 하는 교인들의 자발적인 운동에 의하거나 사도적인 사역자들에 의해 일반적으로 확산되어 왔다. 미국에 있는 교회들은 처음에 대만으로부터 이주해 온 성도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러나 최근에 위트니스 리의 권고로 지방교회는 새로운 전략을 채택해 왔는데, 그것은 "예루살렘의 원칙" 이라고 불리우는 것으로서 새로운 모임을 탄생시킬 단일한 목적으로 한 작은 무리의 교인들이 새로운 지방으로 이주하는 것이다.

신앙

지방교회들은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풍부한 저술 안에서 발견되는 가르침을 따른다. 간결한 요약은 (미국종교백과사전 중 '신조(Creeds)'안에서 재인쇄된) '지방교회의 신앙과 생활' 이라는 소책자에서 볼 수 있다. 그러한 선언은 플리머스 형제회와 유사한 근본주의적인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고 있으며, 삼위일체에 대한 신앙, 그리스도의 신성, 예수님의 처녀탄생, 대속적인 구속, 예수님의 부활, 그분의 재림, 성경의 축자영감의 신앙을 확증하고 있다.

예상할 수 있듯이 특별한 주의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하나를 취급하는데 주어진다. 종파주의, 교파주의, 범교파주의를 모두 거절하고 각 지방 안에 있는 모든 믿는이들의 하나됨을 주장한다.

지방교회는 자신들을 성경적인 교회의 회복(또는 복구)의 역사라고 생각한다. 사도시대 이래 완전한 교회생활과 그 하나됨이 상실되었지만, 말틴 루터와 종교개혁으로 회복이 시작되었고 진젠돌프 백작과 모라비안(Moravians), 요한 웨슬리와 감리교도들, 더 최근에는 플리머스 형제회의 경건주의 회복을 통해 계속되었다. 지방교회를 통해 그리스도의 풍성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체험(예를 들면,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누림)과 성경에 근거한 교회생활의 실행이 회복되고 있다. 회복의 일부 요소들은 논쟁의 초점이 되어왔다.

"기도로 (말씀)읽기"는 기도의 말로서 성경 말씀을 사용하는 경건한 실행이다. 기도하는 중에 개인이나 단체들은 성경으로부터 단어나 구절들을 반복해서 말하면서 찬양이나 감사의 말을 자주 삽입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체험이 성경말씀을 통해 기도하는 사람 안으로 들어오기 위한 것이다. 실행의 명칭 자체가 가르키고 있듯이, "주의 이름 부름"은 " 오 주 예수"라는 문구의 반복에 의한 하나님에 대한 기도이다.

"불태움(Burning)"은 하나님과의 밀접한 접촉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복음의 메시지로 감동시킬 때 그 사람은 "불태워진 것"으로 본다. "불태움"은 또한 어떤 사람의 그리스도인 이전의 생활이나 미지근한 헌신의 상태들이 불 속에서 태워지는 실행이다. 문자적으로 재침례인 "장사지냄(burying)"은 그리스도인 헌신의 보다 새로운 단계의 상징하며, 지방교회 성도들은 한번 이상 침례 받을 수 있다.

구성원

1991년에 지방교회는 6개 대륙에 교회(회중)들이 있었다. 태평양 연안에 있는 나라들 안에 가장 많은 성도들이 있다. 대만에 200여 교회 6만명의 성도들이 있다. 미국과 카나다에는 265개 교회 1만 5천명의 성도들이 있다. 남 아메리카와 중앙 아메리카의 스페인어 모임 안에 1만 6천 5백명이 있다. 유럽,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에도 교회들이 있다. 혹독한 핍박에도 불구하고 중국 본토에도 생존하는 성도들이 있어 보이며, 이 운동은 지난 기간 동안 실제로 수십만의 성도들에게 확산되었다. 소련의 붕괴 이후 지방교회는 동유럽과 러시아에 복음 사역을 시작했고 1992년에 모스크바와 성 페테스브르크에 교회가 생겼으며 다른 나라에서도 사역을 발전시키고 있다.

특기사항

1970년대에 지방교회와 보다 큰 복음주의적인 그리스도인 단체 안의 일부 유력한 대변자들 사이에 있었던 논쟁은 1980년대의 일련의 법적 조치의 과정 속에서 절정에 달했다. 일부 신흥종교들을 소위 "이단(cults)"라고 공격하는 전쟁을 통해서 알려졌던 일부 저술가들이 지방교회를 이단(heresy),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경건에 대한 독특한 형태를 발전 시킨다고 공격했다. 여러 권의 책들이 쓰여졌고 지방교회에 관한 여러 항목들이 그리스도인 "이단퇴치" 문서들 안에 등장했다. 문서에 의한 명예훼손과 그들의 사역이 불공정한 비판들에 의해 손상당하지만 (다른 방법으로는) 사과를 받아내기가 불가능함을 주장하며, 지방교회는 여러 개의 소송 사건을 통해 지방교회를 공격하는 한 권의 책을 출판한 사이비이단연구소(the Spiritual Counterfiets Project)를 제외한 모두에게 비난책자의 회수와 사과문을 받아냈다. 위 연구소에 관한 사건은 법정 판결까지 갔고 1985년에 사이비이단연구소가 명예를 훼손한 것에 대해 천 백만불의 손해배상 판결을 받아냈다.

Encyclopedia of American Religions 6th 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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