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3. 14:05
성경말씀 

(고후8:5) 그들은 우리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먼저 자신을 주님께 드리고 또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오늘의 만나

 
한번은 대집회에서 해외 복음 사역에 대한 메시지가 해방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재물을 헌금하여 해외 복음 사역을 위해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헌금 봉사자들이 헌금 쟁반을 들고 헌금을 거뒀습니다. 다 거둔 후 그들은 뒤쪽으로 물러갔습니다. 알렌산더 더프(Alexander Duff)라는 열 살 정도의 소년은 집회 가운데 깊은 감동을 받고 헌금을 드리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리를 떠나서 헌금 쟁반을 정리하던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헌금 쟁반을 땅에 놓아 줄 것을 간청했습니다. 그들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말을 따라서 헌금 쟁반을 바닥에 놓았습니다. 알렉산더는 그 쟁반 위에 서서 말했습니다. “하나님! 제 자신을 당신께 바칩니다.” 그는 그날 이후로 후퇴하지 않고 변함없이 주님을 섬겼습니다. 후에 그는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구하는 것은 너희의 재물이 아니라 너희 자신이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바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먼저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출처 : 온전케 하는 예화들2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3. 13:55
성경말씀 

 (고후3:17) 주님은 그 영이십니다. 주님이신 그 영께서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골1:27下) ... 이 비밀은 여러분 안에 계신 그리스도인데, 곧 영광의 소망입니다. 

 오늘의 만나

 
 주님은 어떠한 분이십니까? 주님은 그 영이십니다. 주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주님은 영 안에 계십니다. 우리는 주님이 하늘에 계신다는 관념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주님은 하늘에 계시는 주이십니다. 그러나 그분은 영이시며 영 안에 계십니다. 영이 있는 곳에 그분도 계십니다. 그분은 영 안에서 사람과 접촉하십니다. 우리는 자주 전기를 비유로 드는데, 우리의 생활 속에서 전기는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한 면으로 공중에 있고 한 면으로 방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접촉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아직 믿지 않은 많은 친구들은 자주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주님이 어디 계시냐?”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느냐?”라고 묻곤 합니다. 체험이 있는 우리는 하나님은 영이시며, 주님은 영으로서 오늘날 우리의 영 안에 계셔서 우리와 아주 가까우실 뿐만 아니라 우리와 하나가 되셨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주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주님의 이름으로 그분의 영을 만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늘에 계신 주님을 믿을 때 우리는 마음과 영을 그분을 향해 엽니다. 그리고 깊은 곳인 영 안에서 그분의 임재를 느낍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모든 사람이 간증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열린 우리의 마음과 영은 하늘에 계신 주님을 향하기 때문에 우리의 속은 평안과 합당함과 빛과 안식과 강함과 만족이 있습니다. 참되게 구원받은 모든 사람은 그들이 비록 하늘에 계신 주님을 믿었지만, 그들이 믿을 때 그 주님이 그들 안으로 들어오신 것을 간증할 수 있습니다. 처음 믿을 때만이 아니라 믿은 후에도 그들의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하늘의 주님께서 그들의 깊은 곳을 만지시는 것을 느끼게 되며, 그들 안에는 평안하고 안전한 느낌이 있게 됩니다.
출처 : 그리스도인의 생명이 성숙하는 길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1. 19:25
성경말씀  

(마7:1-2) 여러분이 판단을 받지 않으려거든, 판단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여러분이 판단하는 그 판단으로 판단 받을 것이며, 여러분이 평가하는 그 평가로 여러분도 평가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만나

 
 우리가 주님의 다스림 아래서 겸손한 영 안에 산다면 우리는 항상 다른 사람들이 아닌 자신을 비판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판단하는 그 판단으로 판단 받을 것이며...”(마7:2상)라고 말합니다. 같은 원칙으로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긍휼로 대한다면 주님도 우리에게 긍휼로 대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긍휼을 베풀지 않는 사람에게는 긍휼이 없는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약2:13)라고 말합니다. 신약에 따르면 용서하는 것은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일단 우리가 용서했다면 그 문제를 결코 다시 말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평가하는 그 평가로 여러분도 평가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마7:2하)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평가받는 것이 두렵다면, 그들 또한 평가받는 것을 두려워할 것입니다. 하늘에 속한 다스림 아래 있는 믿는 이들인 우리는, 우리가 형제를 심판하는대로 우리도 주님께 심판받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다른 이들을 의로 심판한다면 우리 또한 주님께 의로 심판받을 것이고, 우리가 긍휼로 다른 이들을 심판한다면 우리도 주님께 긍휼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출처 : 이기는 생명 - 창간호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1. 14:45
성경말씀  

(사41:10~11)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오늘의 만나

 
 그리스도인인 군관 부부가 있었습니다. 군관은 아주 열렬하게 주님을 사랑하고 절대적으로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루는 부부가 함께 유람을 하고 있는데 도중에 험한 풍랑으로 작은 배가 위험하게 되었습니다. 부인은 공포에 질려서 남편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하고 있었습니다. 부인이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남편은 웃으면서 총을 들고 부인의 가슴을 겨누면서 물었습니다. “무섭소 안 무섭소?” 부인이 “권총이 당신 손 안에 있는데 내가 무서워할게 뭐가 있어요!”라고 대답하자 남편이 말했습니다. “그래요. 우리의 생명은 주님의 손 안에 있어요. 나도 안 무서워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나의 구주이시고 나의 친구니까”
출처 : 온전케 하는 예화들2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9. 19:40
성경말씀 

(롬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믿는 사람 모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습니다. 

 오늘의 만나

 
 믿음은 대상이 있으며 이 믿음은 그 대상에서 나옵니다. 이 대상은 예수님이신데 그분은 육신을 입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알고 감상하며 그분을 소중히 여길 때 그분은 사람 안에 믿음을 생기게 하셔서 그분을 믿을 수 있게 하십니다. 이와 같이 주님은 사람 안에 있는 믿음이 되시는데 그 믿음으로 사람은 주님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이 믿음은 그분 안에 있는 믿음이 되고 그것은 그분에게 속한 믿음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신약 경륜에서 사람이 예수 곧 육신 입으신 하나님을 믿기 원하십니다. 사람이 주님을 믿지 않는다면 하나님 앞에서 유일한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사람이 그분을 믿는다면 하나님 앞에서 지극히 의롭게 되고 하나님은 이 믿음을 그 사람의 의로 여기십니다. 동시에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믿음의 대상 즉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이신 주님께서 믿는이들 안으로 들어오십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의이시며 하나님은 주님께서 내주하시는 사람들에게 주님을 의로서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그분 안에 있을 뿐만 아니라 그분에게 속한 믿음에서 나오며 또한 그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9. 13:50
성경말씀 

(마26:8~11) 그러나 제자들은 이것을 보고 분개하여 “왜 이렇게 허비하는가? 이 향유를 많은 돈을 받고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하니, 예수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왜 여러분은 이 여인을 괴롭힙니까? 이 여인이 나에게 아름다운 일을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가난한 사람들은 항상 여러분과 함께 있으나, 나는 여러분과 항상 함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만나

 
 제자들은 주님께 드리는 마리아의 사랑을 허비라고 생각했습니다. 과거 이십 세기 동안 수많은 귀중한 생명과 마음의 보물과 높은 지위와 황금 같은 장래가 주 예수님께 ‘허비되어’ 왔습니다. 그토록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분은 전적으로 사랑스러우시고 그들의 드림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 그들이 그분 위에 부은 것은 허비가 아니라 그분의 달콤함에 대한 향기로운 간증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항상 여러분과 함께 있으나, 나는 여러분과 항상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은 우리가 주님을 사랑해야 하고 주님을 사랑할 기회를 붙잡아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복음의 이야기는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이고, 마리아의 이야기는 그녀가 주님을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과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 이 두 가지를 다 전파해야 합니다. 하나는 우리의 구원을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의 헌신을 위한 것입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7. 19:40
성경말씀 

(고후3:16) 그러나 언제든지 그들의 마음을 주님께로 돌이키기만 하면, 그 너울이 벗어질 것입니다. 

 오늘의 만나

 
 형제 두 명이 방에 함께 있었는데 너무 어두웠습니다. 그들은 햇빛을 사모하여 이렇게 의논했습니다. “햇빛을 쓸어 담아 오자” 두 형제는 빗자루와 쓰레받이를 들고 밖에 나가 빛을 쓸어 담았습니다. 쓰레받이 안에 빛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쓰레받이를 안으로 가지고 들어왔을 때 그 안에 있던 빛은 없어져 버렸습니다. 이렇게 여러번 계속하여 쓸어 담았으나 방 안에는 여전히 빛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보고 이상히 여겨 물어 보았습니다. “너희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니?”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방이 너무 어두워서 방 안에 빛을 넣으려고 해요”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어리석구나! 그냥 창문만 열면 빛은 저절로 들어올텐데 왜 쓸어 담으려고 하는거니?” 형제,자매들이여! 우리는 매일 빛비춤을 원하면서도 마음 문은 오히려 닫고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마음의 문을 열기만 하면 은혜의 빛이 당신을 비출 것이고 당신의 흑암을 거두어 갈 것입니다. 성경을 읽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읽을 때 우리 마음이 주님을 향하고 주님을 바라보고 있다면 자연히 빛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그들의 마음이 주님께로 돌이키기만 하면, 그 너울이 벗어질 것입니다.’(고후3:16)
출처 : 온전케 하는 예화들1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7. 18:10
성경말씀
 
(마11:28~30) 수고하고 짐을 진 사람들이여, 다 나에게로 오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안식을 줄 것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허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나에게서 배우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혼이 안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의 멍에는 편하고, 나의 짐은 가볍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만나

 주님은 모든 반대 가운데서도 온유하셨으며 모든 배척 가운데서도 마음이 겸손하셨습니다. 그분은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전적으로 복종시키셨으며 자신을 위해서는 어떤 것도 하기를 원치 않으셨고 무언가 얻기를 기대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에 안식이 있으셨고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만족하셨습니다. 주님의 멍에를 메는 것은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은 율법이나 종교의 어떤 의무감에 의해 규제되거나 통제받는 것이 아니고 어떤 일에 예속되는 것도 아니며, 하나님의 뜻에 제한받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렇게 사시면서 다만 아버지의 뜻만 주의하셨습니다. 그분은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전적으로 복종시키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그분 자신에게서 배우라고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주님의 멍에는 아버지의 뜻이고 그분의 짐은 아버지의 뜻을 수행하는 일입니다. 그런 멍에는 편하여 결코 괴롭지 않으며 그런 짐은 가벼워 결코 무겁지 않습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7. 17:25
성경말씀 

 (고전6:17) 그러나 주님과 합하는 사람은 주님과 한 영입니다. 

 오늘의 만나

 
 ‘주님과 합하는 것’은 믿는이들이 주님 안으로 믿어 주님과 유기적으로 연합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 연합은 포도나무와 가지들의 연합으로 설명됩니다. 이것은 생명의 문제일 뿐 아니라 생명 ‘안에서’의 문제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과의 이러한 연합은 오직 우리의 영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한 영’은 영이신 주님과 우리 영의 연합을 가리킵니다. 우리 영은 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났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지금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 영과 하나이십니다. 이것은 부활을 통해 생명주는 영이 되셨을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의 영과 함께 계신 주님의 실재화입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7. 15:00
성경말씀 

(벧전1:25)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 복음으로 전해진 말씀입니다. 

 오늘의 만나

 
 한 젊은 청년이 길을 가다가 성경 한 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청년은 기독교인들의 무례한 전도 방식에 찬성할 수 없어서 심하게 다툰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상냥한 목소리와 밝은 미소로 책을 건네자 그는 하는 수 없이 성경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집에 가자마자 성경을 태워 버리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집에 돌아와 불 속에 책을 던지고 그것이 타는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불길 속에서 타기 시작하는 종이에 쓰여져 있는 말씀이 그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것은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있다(But the word of the Lord abides forever)"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책을 불태워 버렸는데도 그 말씀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그 말씀은 그의 생각 속에 맴돌고 그의 온 존재로 확대되어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말씀은 그 사람 안에 살아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견디다 못해 그런 현상이 왜 일어났는지 성경을 잘 아는 친구를 찾아가 묻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마음의 평안을 찾게 되었고 회개하여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하시다는 사실에 대해서 기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