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스마일은혜 2018. 10. 30. 00:00


진리의 변호와 확증(7) - 지방교회 진리변호확증 자료


(지방교회) 진리의 변호와 확증


제1장 : 성경의 순수한 말씀에 따른 삼일 하나님에 대한 계시


2. 아들과 아버지는 하나이시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10:30).

이것은 분명한 성경 말씀이다. 


3. 마지막 아담은 생명 주는 영이 되셨다

고린도전서 15장 45절은 ‘마지막 아담은 생명 주는 영이 되었나니’(미국 표준역)라고 말한다.

마지막 아담이 누구인가?

예수이다.

생명 주는 영은 누구인가?

성령이다.

성령 외에는 생명을 주는 다른 영이 없다.

이 구절은 성경에서 마지막 아담이라고 불리는 예수가 생명 주는 영이 되셨음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따라서 주 예수님이 성령이라고 말하는 것은 성경의 분명한 계시에 따른 것이다.

그러므로 분명한 것은 주 예수는 아버지요 아들이요 영이며, 참 하나님이요 주님이시라는 것이다.


4. 주(아들)는 영이시다

고린도후서 3장 17절은 “(지금) 주는 영이시니”라고 말한다.

여기서 주(主)는 누구인가?

의심할 바 없이 예수이다.

영은 누구인가?

물론 성령이다.

여기의 주는 예수이고, 영은 성령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지금) 주는 영이시니”라고 말한다.

주 예수를 영이라고 말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성경적인 것이다!

앤드류 머리는 그의 책 ‘그리스도의 영’ 25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 주 예수는 생명 안으로 높여지셨을 때 <주 성령>이 되셨다... 제자들은 예수를 안 지 오래 되었지만, 그를 주 성령으로 알지는 못했다... 주님을 주 성령으로 전파하지 않고 십자가에 못박힌 분으로만 전하는 열성적인 복음 전파가 많은 듯하다... 그리스도를 주 성령으로 알고 인식하며, 그리스도의 영으로 믿는이들을 그의 형상 안으로 변화시키고 교회 안에 살게 할 때, 믿는이들 가운데 있는 그러한 사역은 생명과 능력의 사역이 될 것이며, 이러한 사역이야말고 참으로 그 영의 사역인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한 하나님이지 세 하나님이 아니다.

그러나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깊은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세 하나님이라고 생각한다.

어떤이들은 심지어 분명하게 그렇게 말한다.

또 다른이들은 입으로는 이렇게 말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잠재의식 속에서는 이러한 관념을 붙들고 있다.

아마 이 메시지를 읽고 있는 여러분 가운데 어떤이들도 과거에 그런 관념을 가지고 있었지만, 정죄받는 것이 두려워서 말하기를 꺼렸을 것이다.

나는 아들이 아버지시며 주님이 영이시라는 것을 믿지 않는 그리스도인 설교자와 대화를 한 적이 있다.

나는 그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몇 분의 하나님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나에게 “세 하나님”이라고 분명하고도 명백하게 말했다.

그와 같은 말을 절대로 이단적이다.

성경의 계시에서 하나님은 유일하시다.

이러한 통제하는 원칙이 없이 수세기 전에 사람들은 세 하나님이 있다고 말하곤 했다.

신학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신격의 세 인격에 대한 말로 ‘위격들(persons)'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세 위격들은 지나치게 강조하면 삼신론(三神論)에 빠지게 된다.

우리는 전통적인 용어들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어려움에 처할 것이다.

그렇다.

성경은 하나님이 한 분이심을 말하며, 또한 하나님-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삼이일(三而一)이심을 분명히 말한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별개의 세 ‘인격들’로 강조하는 것은 성경의 계시에 어긋나는 것이다.

로마서 강해로 유명한 그리피스 토마스는 이렇게 말한다.

‘<위격>이라는 용어 또한 종종 논박을 받는다. 인간의 모든 언어가 그러하듯이 이 용어도 부적절하다는, 심지어 명백한 오류라는 비난을 받기 쉽다. 확실히 그것을 지나치게 강조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삼신론에 빠지게 된다. ...<본질>이나 <위격> 같은 용어들을 사용해야 하기는 하지만,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대로 사람의 본질이나 인격의 개념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 삼위일체에 대한 진리와 체험은 신학적인 용어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신학의 원칙)에서


진리의 변호와 확증
워치만 니, 위트니스 리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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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 - 변호, 확증, 말씀, 계시, 삼일성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10. 17. 00:00

삼위양식론(양태론), 삼신론에 관하여
- 지방교회 진리변호확증 자료

앞의 지식을 가질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풍성이 삼일 하나님 자신임을 분명히 알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아버지, 아들, 그 영이시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그분은 세 하나님들이 아니라 한 분이시다. 어떻게 이 한 하나님이 아버지, 아들, 그 영이실 수 있는가? 각 세대를 통하여 신학자, 성경 해석자, 설교자 등을 포함한 셀 수도 없는 사람들이 이 질문을 상당히 연구하고 토론했지만 2천년간의 연구조사와 토론에도 불구하고 아직 완전한 답을 얻지 못했다. 

오늘날 기독교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전통의 영향을 받아 아버지가 한 하나님이고, 아들이 또 다른 하나님이고, 그 영이 여전히 또 다른 하나님으로서 이 세 분 하나님들이 함께 모여 한 단체적인 하나님을 구성한다고 믿고 있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수도인 바티칸(Vatican)에 가본 사람이면 누구나 거기에 있는 회랑(回廊)을 알 것이다. 이 회랑에는 많은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지 않고 천장에서 바닥에 이르는 두 종류의 커다란 유화(油畵)가 있다. 한 그림에는 백발의 나이든 아버지가 잘 생긴 아들과 함께 있고, 그들의 머리 위에는 비둘기도 함께 있다. 이것이 기독교 안에서 사람들이 성부, 성자, 성령이라 칭하는 것이다. 이 그림은 그들이 세 실체(實體)-아버지, 아들, 비둘기-를 경배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다른 그림은 그 셋에 한 숙녀가 더해진 것이다. 그들은 "성모"를 신격(神格) 속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기독교는 전통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실제를 놓쳤다. 우리의 하나님은 세 분이 아니라 한 분이시다. 그러나 그분은 삼일(三一)-아버지, 아들, 그 영-이시지만 여전히 한 분 하나님이시다. 그 의미가 무엇인가? 왜 우리의 하나님이 한 분이면서도 셋(one and three)이신가? 언젠가 어떤 사람들이 이 질문을 마틴 루터에게 하자 그는 "나는 모릅니다. 만약 내가 안다고 말한다면 내가 하나님일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마틴 루터는 하나님이 아니었으므로 알지 못했다. 그의 대답은 매우 합리적이었다. 삼일 하나님의 위격들(位格 : persons)은 매우 비밀스럽다. 우리는 우리의 제한적인 지성으로써 그분을 분석하고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다만 성경의 분명한 말씀을 따라 이 비밀스러운 계시를 받을 수 있을 뿐이다. 

 성경은 분명하게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고전 8:4, 6)고 진술한다. 더욱이 성경에서 하나님은 거듭하여 "나[단수(單數)]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사 44:6, 8, 45:5-6, 21-22)고 말씀하신다. 또한 시편 86편 10절은 "주만 하나님이시니이다"고 말한다. 성경은 결코 우리에게 세분의 하나님들이 계신다고 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오직 한 하나님만 계신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많은 때 그분 자신을 가리켜 "우리"와 "우리의"라고 칭하신 것을 언급한다(창 1:26, 3:22, 11:6-7). 

 이사야 6장 8절에서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가리켜 한편으로는 "내"라고 하시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를"이라고 하신다. 이것은 매우 비밀스럽고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드러난 말씀에 따라 성경의 계시를 받는 것이다. 오직 한 하나님만 계시므로 그분은 자신을 가리켜 "내"라고 하신다. 그러나 이 한 분의 유일한 하나님이 그분 자신을 "우리를"이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아버지, 아들, 그 영이신 면이 있지만 그 셋은 나뉘어지지 않고 여전히 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분리된 세 위격(位格)들로 분리시켜서 설명하는 신학은 큰 이단이다.

요한복음에서 주 예수님은 그분이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그분 안에 계시고(14:10-11, 10:38, 17:21) 그분과 아버지는 하나(10:30)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또 그분은 우리에게 그 영이 아버지께로서 오신다고 말한다(요 15:26). 헬리어에서 요한복음 15장 26절의 [...께로서(from)]는 문자적으로는 [...로부터 함께(from with)]를 의미하는 전치사(前置詞)이다. 이것은 실제의 영이 아버지로부터 뿐 아니라 아버지와 함께 오신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 영이 오실 때 아버지와 아들이 그 영과 함께 오신다. 이것은 아버지, 아들, 그 영이 동시존재(同時存在)하시고 상호내재(相互內在)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이 아들이 오셨을 때 아버지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그 영이 오셨을 때 아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것은 [삼위는 한 하나님의 세 형태에 불과하다는] 삼위양식설(三位樣式說)이라 불리는 그릇된 신학의 가르침이다. 삼위양식론자들은 아버지는 구약에 계셨지만 신약, 곧 아들이 오신 복음서에서는 아버지는 존재하기를 그치셨고, 그 다음 복음서 후에 그 영이 오셨을 때 아들은 더 이상 계시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것은 이단이다.  

말씀의 순수한 계시는 구약에 아버지가 계셨고, 아들과 그 영도 계셨다고 말한다. 즉, 그 세 분이 모두 계셨다고 말한다. 신약의 사복음서에서 아들이 오셨고, 아버지와 그 영도 오셨다. 세 분이 동시에 계셨다. 서신서에서 그 영이 오셨을 때 아버지와 아들도 그 영과 함께 오셨다. 그들은 서로를 대치하는 방식으로 오신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동시존재(同時存在)의 방식으로 오셨다. 더욱이 그들은 다만 동시에 존재하신 것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상호내재(相互內在)의 방식으로 동시에 존재하셨다. 이 한 분의 완전한 삼일 하나님과 그분이 성취하신 모든 것이 우리의 누림을 위하여, 우리의 영 안의 풍성한 공급이 되는 그리스도의 풍성이 되신다. 그러나 삼위양식설을 반대하고 근본주의적이기를 주장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복음서에서 아들이 홀로 오셨고, 하늘에는 아버지가 그대로 계시고, 또한 서신서에서 그 영이 오셨을 때 역시 하늘에 아버지와 아들이 그대로 계신다고 믿는다. 이것은 또 다른 극단인 삼신론(三神論)으로 기울어지는 것이다. 이것도 사실상으로는 큰 이단이다. 

위트니스 리 
[그리스도의 탁월성, "그리스도의 풍성은 그 모든 성취를 이루신 삼일 하나님임, p.81-85", 한국복음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