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20. 11. 11. 00:05

지방교회 생명이만나 351회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성경말씀

(막15:15) 그러자 빌라도가 무리를 만족시키려고 바라바는 석방해 주고,
예수님은 채찍질하여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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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8. 5. 1. 00:28

 

"그리스도께서 육체에 고난을 받으셨으니, 여러분도 동일한 생각으로 자신을 무장(武裝)하십시오….. 불같이 혹독한 시련이 여러분을 시험하려고 닥쳐올 때,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처럼 기이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만큼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니 기뻐하십시오(벧전 4:1, 12-13)"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사람은 고난받을 마음가짐이 되어 있어야 한다. (원문 직역: 고난받을 생각으로 자신을 무장해야 한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이다. 성경의 가르침은 매우 분명한데,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이 모든 일에서 고통을 받아야만 하다는 생각이 없으시다. 구약성경이 줄곧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하나님은 목자로서 그분의 백성을 돌보시고, 그들의 어려움과 고통을 덜어 주시고, 그들로 하여금 이방인과 항상 분별이 있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고행을 제창하는 그러한 철학 사상을 교회 안으로 들여와서는 안된다. 우리가 기독교가 아닌 어떤 것을 기독교 안으로 들여오면, 즉시 기독교는 혼란스러워진다. 이것은 우리가 반드시 주의해야 할 일이다.


그런가 하면, 이와는 반대로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들이 시련과 채찍질에서 예외가 되게 하지는 않으신다. 하나님은 시련을 주시고 채찍질을 하신다. 그러나 이것이 고행을 제창하는 그런 철학 사상과는 다르다는 것을 분별해야만 한다.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들에게 채찍질할 필요가 있을 때에만 채찍질하시지, 결코 매일 매순간 그렇게 하지는 않으신다. 만일 우리가 완고하여 글복치 않는다면, 그분은 우리에게 시련을 계속 주시고 채찍질로 우리를 떠나지 않게 하신다. 그러나 보통 때에 그분은 늘 우리를 돌아보시고, 우리를 위해 안배하신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하는 고난을 받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이것은 우리가 주님 앞에서 한결같이 택한 길이다. 이것은 바로 주님께서 우리가 은혜로 충만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안배하신 것을 말하며,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그분을 섬기기 위하여 기꺼이 고난받는 길을 택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난받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선택하는 것이지 결코 규정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정하심에 따라 많은 고난은 받을 필요가 없는 것이지만,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보통 사람과 다른 길을 기꺼이 선택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고난받을 마음가짐이다.


고난받을 마음가짐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고난받을 것을 잘 예비하는 것이며, 마음에 고난을 받으려 하는 것이고, 이것은 고난받는 길을 기꺼이 택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받지 않도록 안배하실지라도 그것은 주님의 일이다. 우리 편에서는 다만 언제나 고난받을 것을 예비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주님의 안배가 바뀌어서, 시련이 우리 몸에 닥칠 때에도 우리는 이것을 응당 감당해야 하며 조금도 이상한 것이라고 여겨서는 안된다. 만일 당신이 조그만한 시련도 감당할 수 없다면, 주님이 당신에게 좋은 환경을 안배하실 때에는 당신이 받아들이겠지만, 환경이 조금만 변해도 당신은 즉시 믈러나거나 혹은 사역을 중단하게 되는데, 그것은 당신에게 고난받을 마음가짐이 없기 때문이다.


사역은 당신을 기다릴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라. 당신은 먹을 것이 있어도 이렇게 하며 없어도 이렇게 한다. 당신은 입을 것이 있어도 이렇게 하며 없어도 이렇게 한다. 당신이 건강할 때도 이렇게 하며 몸이 약할 때에도 이렇게 한다. 여기에서 당신은 고난을 받으려는 마음가짐이 곧 병기(兵器)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병기의 위력은 대단하여 사탄이 이길 방법이 없다. 그렇지 않으면, 시련이나 어려움이 닥쳤을 때, 당신은 사역을 할 수 없게 되고 즉시 멈추게 된다.


어떤 형제자매들은 고난을 잘 참고 견디지만,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이 고난을 당하는 것이 보배로움을 조금도 느끼지 못한다. 따라서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도 전혀 없게 된다. 그들은 때로 심지어 속에서 원망하며, 원망의 말을 한다. 그들은 그런 날들이 빨리 지나가지 않을까봐 두려워 한다. 그들에게는 오직 이 고난을 잊어버릴 것에 대한 간구만이 있을 뿐 어떠한 찬미도 없다. 성령의 다스림 아래서 그들에게 닥친 것들은 그들이 받아들이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 속에서 그런 말들이 빨리 지나기만을 갈망한다. 이런 것들은 그들이 조금도 고난받을 마음가짐이 없다는 것을 사람에게 보여 준다. 형제 자매여. 주님이 당신에게 평안한 날들을 허락하셨을 때, 만일 당신에게 고난받을 마음가짐이 없다면, 주님이 당신의 길을 순탄케 하실 때는 전진할 수 있겠지만, 길이 진흙투성이일 때에는 봉사를 그만두게 된다. 이런 것은 옳지 않다.


거듭 말하지만, 고난받을 마음 가짐이 있다고 해서 곧 주님이 당신으로 고난받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고난을 받게 된다면, 당신의 내면에 이미 고난받을 마음가짐이 있으므로 당신은 좌절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신체적으로나 경제상으로나 기타 모든 일에서 시련을 받는 형제 자매는 주의해야만 한다. 주님 앞에서 당신에게 계산될 수 있는 것은 당신에게 고난이 있는가 없는가가 아니라, 당신에게 고난받을 마음가짐이 있는가 없는가이다.


당신이 큰 고난을 당했다고 해서 그것이 주님을 위해 고난받는 것이라고 오해하지 말라. 물론 당신이 만난 것은 큰 고난이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즐거이 주님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려는 마음가짐이 얼마나 있는가? 당신이 주님 앞에서 이러한 선택을 할 마음이 얼마나 있는가? 혹은, 당신은 속에서 원망하고 불평하며 스스로를 연민하고 자신을 참소하지는 않았는가?


고난을 받으려는 마음가짐이 없는 사람은 사역에 있어서 어떤 경지에 이를 수 없다. 외적인 요구가 그의 능력에 지나칠 때 그는 즉시 좌절한다. 그에게 조금이라도 드릴 것을 요구하면 그는 견디지 못한다. 그러나 그 자신이 귀중히 여기는 그러한 것에 관한 한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사역자들의 실패는 바로 자신의 생명을 아끼는데 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물어야 한다. " 사역이 중요한가, 아니면 자신의 생명이 중요한가? 우리의 책임이 중요한가, 아니면 자신의 생명이 중요한가? 사람의 영혼이 중요한가, 아니면 자신의 생명이 중요한가? 이 땅 위에서의 하나님의 간증이 더 중요한가, 아니면 자신의 생명이 중요한가?" 오직 고난받을 마음가짐이 있는 사람, 끝없이 고난받을 마음을 가진 사람, 비록 죽을지라도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  (Watchman N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