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교회) 진리의 변호와 확증
제1장 : 성경의 순수한 말씀에 따른 삼일 하나님에 대한 계시
F. 셋 모두 하나이심
여기에 참으로 문제가 있다.
당신은 이 셋 모두가 하나이심을 믿는가?
우리는 믿는다.
왜냐하면 성경이 그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1. 아들이 아버지이시다
이사야서 9장 6절을 보자.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 아기가 누구인가?
그는 예수이다. 그 아기가 어디에서 태어났는가?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태어났다.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이 아들이 누구인가? 그는 예수이다.
그는 누구의 아들인가?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을 뿐 아니라 한 아들이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의 아들을 주셨다.
왜 그분은 기묘자라 불리는가? 그분이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분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고 완전히 이해할 수도 없다.
그분은 기묘자이시다.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태어난 예수라는 이름의 아기가 또한 전능한 하나님이라 불린다.
여러분은 이것을 믿는가? 유대인들은 믿지 않는다.
그들은 그 작은 예수가 전능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만약 믿었다면 그들은 즉시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믿는다! 나의 하나님은 예수시다!
나의 하나님은 그 작은 아기이시다.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태어난 그 작은 아기가 나의 전능한 하나님이시다!
그의 네 번째 이름 또는 칭호는 영존하시는 아버지이다.
우리에게 주신 바 된 그 아들이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불린다.
그는 아들인가, 아버지인가?
만일 당신이 우리에게 나신 아기가 전능하신 하나님임을 믿는다면, 당신은 또한 우리에게 주신 바 된 아들이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심을 믿어야 한다.
아들이 아버지라고 말하는 것은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것이다.
이제 요한복음 14장 8절과 9절의 말씀을 보자.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이 말씀은 아들이 아버지임을 분명하게 가리키고 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이 말씀이 아들은 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의 대표임을 말하는 것이라고 왜곡한다.
만일 여러분이 왜곡하지 않고 이 말씀을 문맥을 따라 읽는다면, 이 구절의 아들이 아버지임을 깨달을 것이다.
빌립은 아들에게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요청했다.
아들은 놀라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었고, 너는 나를 보았다. 나를 보았으므로 너는 아버지를 본 것이다.‘
우리는 빌립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당신은 이사야서에서 아들을 아버지라고 말하는 것을 읽어보지 않았습니까? 그분이 여기 계신데 당신은 왜 그에게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합니까? 그분이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30)고 말씀하셨다.
다음은 소위 이단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관해 몇몇 사람들이 논의하던 모임에서 녹음한 것을 인용한 것이다.
“...어쨌든 이사야서 9장 6절에서,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평강의 왕이라 전능한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할 것임이라고 했다.
여기서 예수가 아버지라 불리지 않는가? 그렇다면 그는 아버지이다. 이것이 바로 이사야서 9장 6절이 말하는 바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전통 때문에 이렇게 당연한 것을 말하지 않는다.“
이것을 보라. 그들은 그들의 전통을 두려워하여 예수가 아버지이심을 당연하게 말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있다.
우리가 전통을 위하여 있는가? 여러분은 전통을 주의하는가?
그리스도인은 양심과 생각에 따라 모두 이사야서 9장 6절의 아들이 아버지라 불리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전통 때문에 당연하게 말하지는 못하지만, 그들의 대화 가운데 이사야서 9장 6절의 분명한 말씀에 따라 예수가 아버지임을 ‘인정한다’는 정직한 말이 있어서 기쁘다.
그러나 어떤이들은 이 구절을 왜곡하여 말하기를 ‘아들은 아버지라고 불릴 뿐 아버지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말인가?
당신이 어떤 이름으로 불리지만 그 사람은 아니라니!
한번은 어떤 사람이 나에게 “여기의 이 아버지는 하나님 아버지가 아닙니다. 그는 이스라엘 족속을 낳은 아버지입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말하기를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여기에서는 ‘이스라엘의 아버지’라고 말하지 않고 ‘영원한 아버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아버지라 불리는 그 아들이 아버지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불리는 그 아기도 전능한 하나님이 아니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아기는 분명히 전능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하나를 인정하는 한 다른 하나도 알아야 합니다.“라고 했다.
냉철한 생각은 이것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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