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스마일은혜 2018.04.25 12:15

그분은 의사로서 사역하심

성경말씀

(마9:12~13) 예수님께서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강건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희생 제물을 원하지 않는다.’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배우십시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습니다.”

오늘의 만나

하늘에 속한 왕국의 왕은 왕국을 위하여 그분을 따르도록 사람들을 부르실 때 심판관이 아니라 의사로서 사역하셨습니다. 심판관이 심판하는 것은 의에 따른 것이지만, 의사가 병을 고치는 것은 긍휼과 은혜에 따른 것입니다. 그분께서 하늘의 왕국의 백성으로 삼은 사람들은 나병 환자들과 중풍병 환자들과 열병 환자와 귀신 들린 사람들과 각종 병든 사람들과 멸시받는 세리들과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분께서 이 가련한 사람들에게 심판관으로서 찾아오셨다면 모든 사람이 정죄받고 거절당했을 것이며, 아무도 하늘의 왕국 백성으로서 자격이 있거나, 선택을 받거나 부르심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들을 고치고 회복하고 살리고 구원하는 의사로서 사역하러 오셨는데, 그 목적은 그들을 하늘의 새로운 시민들로 재조성하고, 이들을 통하여 그분의 하늘의 왕국을 이 타락한 세상에 세우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지방교회 생명 이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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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스마일은혜 2018.04.26 10:45 신고  Addr  Edit/Del  Reply

    의사이신 주님께 나아가 치료받고 고침받기를 원합니다!!

posted by Isaac yim 2018.04.25 10:23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바꾸어 놓거나 하나님으로 하여금 억지로 무엇을 하시게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좋은 것으로 우리에게 주려고 하신다.(마7:11) 그러나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거룩과 공의에 참여케 하시려고 그분의 성결과 공의로 우리를 다스리신다(히 12:7-8).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 않는 것은, 때로 그분이 우리를 과잉 사랑 할 수 없기 때문이고, 때로는 우리에게 잘못이 있고 우리가 그 죄를 자백해야 하기 때문이다. 때로 하나님이 우리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는 이유는 다름 아닌 다만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시려는 것이고, 그분의 생각이 우리의 생각보다 뛰어나며, 그분이 보좌에 앉으신 분이시며,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위격을 알고 경배하게 하며, 그분이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신다는 것을 나타내시려는 것이다.

 

여러분은 주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라. 중언부언하며 떠든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지 말라. 그것은 이방인들이 하는 일이다(마 6:7). 우리는 먼저 자신을 살피고, 그런 다음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해야 한다.

 

(Watchman N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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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saac yim 2018.04.25 10:17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지팡이니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것을 땅에 던지라 곧 땅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된 지라. 모세가 뱀 앞에서 피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그가 손을 내밀어 잡으니 그 손에서 지팡이가 된지라. "


"또 가라사대 네 손을 품에 넣으라 하시매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그 손에서 문둥병이 발하여 눈같이 희게 된지라. 가라사대 네 손을 다시 품에 넣으라 하시매 그가 다시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손이 여상(如常)하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들이 너를 믿지 아니하며 그 처음 이적의 표징을 다 받지 아니하여도 둘째 이적의 표징을 믿으리라. 그들이 두 이적을 믿지 아니하며 네 말을 듣지 아니하거든 너는 하수(下水)를 조금 취하여다가 육지에 부으라. 네가 취한 하수가 육지에서 피가 되리라….너는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출 4:2-9, 17)"

 

본문에 기록된 세 가지의 기본공과에는 오직 하나의 기본적인 원칙이 있는데, 그것은 "본 것"과 "보지 못한 것"이다. 당신이 보았다면 자연히 다른 사람과 분별될 것이다.하나님의 계시를 보지 못했을 때, 당신이 본 것은 지팡이일 뿐이며 자신의 손이 정결하다고 보았을 뿐이고 애굽을 공급하는 것이 하수라고 보았을 뿐이다. 그러나 당신이 일단 하나님의 계시를 얻었다면, 더 이상 이렇게 느끼지 않을 것이며 당신은 수중에 있는 지팡이가 뱀이고, 당신의 손은 불결하고, 세상에 충만한 것이 사망이라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출애굽기 4장은 하나님의 계시와 사람의 관점이 대비되는 한 장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계시를 알 수 있느냐고 묻는다. 문제는 당신이 당신이 지팡이를 뱀으로 보고, 손에서 난 것이 문둥병이며, 물이 피라는 것을 보았는가에 있다. 젊은 사람들은 야심이 있고 장미빛 꿈을 꾼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그 꿈에서 깨어나게 하시기를 원한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렇게 하게 했을 뿐 아니라 이렇게 보게 하셨으며 또한 모세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이렇게 하게 하셔서 그들도 보게 하셨다.

 

본래 하나님은 모세를 사용하셔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애굽에서 구원하고자 했다. 모세가 볼 때 그것은 매우 큰 어려움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시가 그에게 주어지자 그의 느낌은 달라졌다. 예를 들어, 지렁이 한 마리가 이 컵에 있었는데 오늘 저녁에 목이 말라 이 컵의 물을 마셨다고 하자. 다 마실 때 쯤에 이 지렁이를 발견했다면 내일 저녁 내가 여기서 다시 마시려고 이 잔을 보았을 때 내게 어떤 느낌이 있겠는가? 아마 날마다 지렁이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계시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마치 모세처럼 날마다 지팡이를 잡고 있었지만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뱀으로 변한 과정을 거친 후에는 지팡이에 대한 모세의 느낌은 달라졌을 것이다.

 

육체에 대한 느낌도 이와 같다. 우리는 죄가 세상 안에 있지 않고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흉악한 일도 세상 안에 있지 않고 내 안에 있다. 그러나 이전에는 느낌이 없었다. 어느 날 내가 품 속에서 손을 꺼냈을 때 문둥병이 난 것을 보았다면 이후에는 나는 손을 만지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문둥병이 생각날 것이다. 어떤 사람은 겸손하고 연약하며 순복하는 것처럼 꾸미지만 조금도 그럴싸하지 못하다. 만일 사람이 계시를 얻지 못했다면 꾸며서 할 때는 겸손한 모양이지만 일단 잊어버리면 겸손하지 않고 매번 일을 할 때마다 경계심(警戒心)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오늘 형제 자매들에게 권고의 말을 하거나 혹은 엄한 말을 할 때 반드시 느낌이 있을 것이고 당신의 품 속에서 손을 꺼낼 때 아마 문둥병을 꺼낼 것이다. 여러분이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하나님이 당신을 불러 사역하게 하시는 것은 당신이 얼마나 많은 물건을 드렸는가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얻은 계시가 얼마나 되는가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전에 한 형제가 나에게 "나는 아무리 연약해도 저 두 형제보다는 강합니다." 라고 말했다. 나는 이 사람이 아마 일생 자신의 패괴함과 더러움을 보지 못했을까 염려된다.

 

섬기는 사람은 세상의 물에 대해서도 느낌이 있어야 한다. 목마름이 그치려면 우리의 요구를 만족시켜 주어야 한다. 아마 우리 중 어떤 사람은 수년 동안 기도하면서 세상에 속한 지위와 축복을 얻기를 원했을 것이다. 여러분이 오늘 이후로 반드시 꿰뚫어 보기를 원하며, 하나님으로부터 철저한 계시를 얻어 세상으로부터 얻은 모든 만족이 실상은 "피"라는 것을 보기 바란다. 계시를 얻은 사람이 본 것은 "물이 실상은 피"라는 것이다. 설령 수건이나 양말을 사는 일에 있어서도 물이 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자 한다면, 애굽에서 남아서 나일강의 물을 마시지 않아야 하며, 광야로 가서 반석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마셔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반드시 과거에 보지 못했던 것을 보아야 한다. 계시가 있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이것들은 참으로 뭔가 기묘하게도 사람이 볼 때는 지팡이요, 품 속의 손이요, 나일강의 물이지만 일단 당신이 하나님이 주신 계시와 이상을 통해서 보면 그들의 참모습이 뱀이요, 육체요, 파라는 것을 분명히 보게 된다. 그럴 때 당신은 도망 갈 것이고 두려워하며 떠나게 될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계시만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의지하던 것들의 참 모습을 알게 해주며, 가장 큰 죄가 바로 자아임을 알게 해주며, 또한 세상의 두려움을 알게 해준다.

 

세상에서 지팡이는 의지할 만한 것이며, 자아에서 나온 것이 좋은 것이고, 물은 마실만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이상수형제(위트리스 리)과 함께 여러분에게 요청하건데, 하나님 앞에서 분명한 계시를 구하여 반드시 세상과 자아와 환경의 모든 것의 참 모습을 보기 바란다. 이렇게 할 때 당신은 비로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고 하나님께 열납될 수 있다.

 

(Watchman N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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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saac yim 2018.04.25 09:52

 


과거 이십 세기 동안 수천수만의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라는 명칭은 알았지만, 교회에 대하여 합당한 인식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았고 교회를 주의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에베소서는 교회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정하신 영원한 뜻 가운데 있는 것이고,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안에 있는 것임을 분명하게 계시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이 가장 관심하고 있는 것이 교회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은 천지만물과 사람을 창조하는 것만이 아니며, 타락한 사람을 구속하는 것에만 머무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은 그분의 생명을 내용으로 삼아 단체적이며 유기적으로 이 땅에서 그분을 표현하고 궁극적으로 그분의 신부, 그분의 배필이 되는 교회를 얻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영원 과거 안에서 만물을 창조하기 이전에 그분의 마음 안에는 교회가 존재하고 있었으며, 교회는 영원 과거부터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엡 3:9-11,1:4-11).

 

비록 영원 과거에 교회가 존재하였으나 그때로부터 교회는 하나님 안에 계속해서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비록 창조 안에서 하나님은 교회를 갈망하고 교회를 목표로 삼았으나 결코 이 목표를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교회는 하나님 안에 계속해서 감추어져 있던 비밀이었습니다. 신약에 이르러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신 후, 마태복음 16장에 와서야 비로소 주님은 교회를 계시하셨습니다. 오순절에 이르러 주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성령께서 강림하시어 교회가 정식으로 산출되었습니다. 이때에 이르러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왔던 교회가 사람 가운데 나타나 실현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세워진 뒤 얼마 안 되어 교활한 사탄은 교회 안에 죽은 종교의 규례와 실행, 사람의 철학과 관념과 의견, 그리고 세상과 정치에 연합된 조직을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확장을 방해하였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교회를 크게 손상하고 타락하게 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부정적인 상황 가운데 있는 듯하였지만, 하나님은 그분의 영원한 뜻을 위하여 그분의 경륜 안에서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예비하셨습니다. 1세기부터 지금까지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한 이들은 언제나 타락한 당시의 상황에 맞서 정면으로 대응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그들이 교회와 하나님의 영원한 목표에 대해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심각한 잘못을 범하였습니다.

 

그중 가장 큰 잘못은 바로 거듭된 분열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 때 분열이 들어오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반응과 분열의 결과,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경륜의 목표를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사실상 이것이 주님께서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돌아오실 수 없는 주된 원인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다시 오시기 위해, 또한 그분의 교회를 얻으시기 위해 그분의 회복의 일을 할 수 있는 징검다리를 필요로 하십니다. 먼저 중세기에 그분은 마르틴 루터를 사용하시어 그분의 회복의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1500년경에 시작된 마르틴 루터의 종교 개혁의 영향은 매우 강했는데, 그는 생명을 대가로 지불할 정도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진리를 견고하게 붙잡았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는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이로 인해 주님은 약 1세기 반이 지난 이후에 또 다른 반응을 일으키셨는데, 그들은 속생명을 중시한 신비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귀용 부인(Madame Guyon)과 페넬롱(Fenelon) 신부와 같은 이들은 속생명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은 당시 죽어 있고 외형만 남은 개혁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었습니다. 17세기에 하나님은 전반적으로 죽어 있던 기독교 안에서 속생명의 반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어서 18세기에 모라비안 형제들이 일어나 교회 생활을 회복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역사는 사도 시대 이후로 모라비안 형제들이 정상적인 교회 생활을 실현한 첫 번째 그리스도인 단체였음을 증명합니다. 이어서 한 세기가 지나가기 전, 1825년부터 1828년까지 이른바 ‘형제회 운동’이 강하게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다비와 몇 명의 형제들의 인도 하에 일어난 것으로, 처음에는 그들에게 참으로 빛과 능력이 충만하였습니다. 팬톤(Panton)은 형제회의 운동이 종교 개혁보다 훨씬 크고 강한 것이었다고 말하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황금시대는 약 20년밖에 지속되지 못하였습니다.

 

수많은 성경학자들과 교사들은 형제회의 그 기간이 빌라델피아 교회에 대한 주님의 예언이 실현된 것이라고 인정합니다. 그러한 좋은 상황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지나치게 교리를 강조하였기 때문에 거듭 분열되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 뒤로 약 1세기가 다 지나기 전, 1920년부터 주님은 동방에서, 곧 중국에서 다시 회복의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과거를 돌이켜 볼 때 이 땅에서 교회가 지나온 길은 피눈물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초기의 박해로부터 종교 개혁까지, 종교 개혁부터 연합 형제단까지 끝없이 분열된 과거 이천 년 동안 하나님께서 어떠한 일을 하시든 사탄은 언제나 파괴하는 일을 행하며 하나님의 뜻의 완성을 저지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속생명의 관점에서 말한다면 우리는 오히려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의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분은 그분께서 창조하시고 선택하시고 그분의 생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이 땅에서 단체적으로 그분을 위해 계속해서 증거하게 하셨습니다. 밤이 어둡고 길이 멀어도 그분은 결국 이 땅에서 한 무리의 이기는 이들을 통해 죽어 있고 타락한 상황을 이기실 것이며, 묵묵히 그분의 교회를 지키고 예비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교회가 일찍이 극도로 타락하였지만 하나님의 주권적인 안배와 은밀한 그분의 임재로 보호하심과 그분의 끊임없는 생명의 구원과 치유로 말미암아 교회는 결국 거룩하고 흠이 없게 되어 그리스도께 사랑스런 배필로 드려지게 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역사에서 우리는 단지 큰 바다에 던져진 한 알의 좁쌀처럼 작지만 주님께서 여전히 돌아오시지 않는다면 앞에 놓인 여정은 분명히 험난한 길일 것입니다.

 

우리는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영원한 뜻의 완성을 위하여 앞으로의 수많은 전쟁에서 생명으로 역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써내려가며 자신을 주님의 충성된 종과 그분만을 사랑하는 정결한 처녀로 증거하기 원합니다.

 

 (원문출처 : Living Stream Min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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