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스마일은혜 2018. 5. 3. 10:11

당신은 하나님과 화목하셨습니까?


성경말씀

(고후5:19~20) 이것은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하나님 자신과 화목하게 하셨고, 그들의 허물을 그들에게 돌리지 않으셨으며, 화목의 말씀을 우리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대사들이 되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여러분에게 권면하시듯이,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간청합니다. 하나님과 화목하십시오.

오늘의 만나

고린도후서 5장 19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은 세상이었고, 20절에서 이미 하나님과 화목되었고 또 더 나아가 하나님과 화목되어야 하는 사람들은 바로 믿는이들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화목하기 위하여 두 단계가 요구된다는 것을 분명히 가리킵니다. 첫 번째 단계는 죄인들을 죄에서부터 나오게 하여 하나님과 화목시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이 목적을 위하여 죄인들이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있도록 우리의 죄들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의 객관적인 방면입니다. 이 방면에서 그분은, 하나님에 의해 마땅히 심판받아야 할 우리의 죄들을 십자가 위에서 담당하셨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천연적인 생명으로 사는 믿는이들을 육체로부터 나오게 하여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것입니다. 이 목적을 위하여 우리가 부활 생명 안에서 그분을 향하여 살도록 우리들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의 주관적인 방면입니다. 이 방면에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도록,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시어 하나님께 심판받고 끝나셨습니다. 주님은 그분의 죽음의 두 방면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택하신 백성을 완전히 하나님과 화목시켰습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지방교회 생명 이만나


posted by 스마일은혜 2018. 5. 2. 11:32

수정처럼 빛나는 생명수의 강

수정처럼 빛나는 생명수의 강

성경말씀

(계22:1) 또 그 천사는 나에게 수정처럼 빛나는 생명수의 강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 강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에서 흘러나와 그 성의 길 가운데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만나

거룩한 성의 길은 신성한 본성을 상징하는 금입니다. 금은 신성한 본성을 상징합나다. 길 가운데에서 나오는 생명수의 강은, 하나님의 구속함을 받은 백성들의 매일의 생활을 위한 유일한 길로서 신성한 생명이 신성한 본성 안에 흐르는 것을 상징합니다. 신성한 생명이 흐르는 곳에 거룩한 길인 신성한 본성이 있어 그분의 백성들이 이에 의해 행합니다. 신성한 본성에 속한 거룩한 길이 있는 곳에 신성한 생명이 흐르고 있습니다. 신성한 생명과 거룩한 길인 신성한 본성은 항상 함께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생명수의 강은 신성한 길을 따라 흐르고, 우리는 이 생명의 길을 걸음으로써 이 생명수의 강을 누립니다. ‘생명수’는 그 영이신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의 상징으로, 그분 자신이 그분의 구속한 백성 안으로 흘러서 그들의 생명과 생명 공급이 되십니다. 그것은 갈라진 반석에서 나온 물로 예표되어 있고, 주 예수의 찔리신 옆구리에서 나온 물에 의해 상징됩니다. 여기서 이 생명수가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강이 되어 새예루살렘 전체를 공급하고 적십니다. 그와 같이 그것은 하나님의 생명의 영광 가운데서 그분을 표현하기 위하여 거룩한 생명으로 채워집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지방교회 생명 이만나


posted by 스마일은혜 2018. 4. 28. 10:01

두 폭의 그림

성경말씀

(히4:10~11)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의 일을 마치시고 안식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간 사람은 그의 일을 마치고 안식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순종의 본을 똑같이 따르다가 넘어지는 사람이 없도록, 그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오늘의 만나

두 명의 화가가 서로 ‘안식’을 표현하는 그림을 그리기로 약속했습니다. 첫 번째 화가는 큰 호수를 그렸습니다. 고요한 풍경과 잔잔한 호수의 표면은 거울 같았습니다. 산의 아름다움이 투명하게 물속에 비춰져 안식의 의미를 표현하는 그림이었습니다. 두 번째 화가는 커다란 폭포를 그렸습니다. 작은 관목 가지들이 폭포의 수면 위를 가리고 있고, 나뭇가지 위에는 물에 젖은 작은 새집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새 한 마리가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참다운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출처 : 온전케 하는 예화들2, 지방교회 생명 이만나
posted by 스마일은혜 2018. 4. 25. 12:15

그분은 의사로서 사역하심

성경말씀

(마9:12~13) 예수님께서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강건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희생 제물을 원하지 않는다.’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배우십시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습니다.”

오늘의 만나

하늘에 속한 왕국의 왕은 왕국을 위하여 그분을 따르도록 사람들을 부르실 때 심판관이 아니라 의사로서 사역하셨습니다. 심판관이 심판하는 것은 의에 따른 것이지만, 의사가 병을 고치는 것은 긍휼과 은혜에 따른 것입니다. 그분께서 하늘의 왕국의 백성으로 삼은 사람들은 나병 환자들과 중풍병 환자들과 열병 환자와 귀신 들린 사람들과 각종 병든 사람들과 멸시받는 세리들과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분께서 이 가련한 사람들에게 심판관으로서 찾아오셨다면 모든 사람이 정죄받고 거절당했을 것이며, 아무도 하늘의 왕국 백성으로서 자격이 있거나, 선택을 받거나 부르심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들을 고치고 회복하고 살리고 구원하는 의사로서 사역하러 오셨는데, 그 목적은 그들을 하늘의 새로운 시민들로 재조성하고, 이들을 통하여 그분의 하늘의 왕국을 이 타락한 세상에 세우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지방교회 생명 이만나
posted by 스마일은혜 2018. 4. 23. 12:36




하나님의 경작지요 건축물


성경말씀

(고전3:6~7)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직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뿐이십니다. (9)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경작지이며, 하나님의 건축물입니다.

오늘의 만나

하나님의 동역자들인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이 하나님의 경작지에서 일하는 동안 하나님도 일하십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어, 그리스도께서 자라시는 하나님의 경작지에서 하나님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것은 어떤한 특권이며 영광입니까! 바울은 믿는이들이 “하나님의 경작지이며, 하나님의 건축물”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믿는이들은 하나님의 경작지 즉 하나님의 건축을 위해 보배로운 재료들이 산출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새창조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자라시는 경작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경작지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건축물입니다. 단체적으로 하나님의 교회인 우리에게는 우리 안에 심겨진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서 자라셔야 하는데, 고린도전서 3장의 의미에 따르면 땅 위에 하나님의 거처를 건축하기 위해 우리에게서 과일이 아니라 보배로운 재료인 금, 은, 보석들을 산출하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건축이요 하나님의 집인 교회는 그리스도의 증가이며, 무한한 그리스도의 확대입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지방교회 생명이만나


posted by 스마일은혜 2018. 4. 20. 10:05

 

 

posted by 스마일은혜 2018. 4. 19. 10:13

하나님 안에 거하는 조건

성경말씀

(요일4:11~13)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아무도 하나님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그분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온전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분의 영을 주셨습니다. 이것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하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압니다.

오늘의 만나

요한일서 4장 12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본질로 그분을 표현하게 되고, 사람들은 우리 안에서 본질적인 그분의 어떠하심을 볼 수 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기 위한 조건이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기 위한 조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온전하게 나타납니다. ‘온전하게 되다’는 헬라어로 ‘완성하다, 성취하다, 끝내다’를 의미합니다. 하나님 자신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 자체는 온전하고 완전합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서는 이 사랑이 온전하고 완전하게 나타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보내시어 우리의 화해 제물과 생명이 되게 하실 때 이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난 것같이 이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서로 사랑함으로써 그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다면 이 사랑은 온전하고 완전하게 표현되지 않습니다. 이 사랑으로 서로 습관적으로 사랑하여 우리의 생활 가운데 그 사랑을 표현할 때, 이 사랑은 온전하고 완전하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생활이 이 사랑을 온전하고 완전하게 나타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 때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분의 본질인 사랑 안에서 나타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지방교회들 생명 이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