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6. 1. 05:00
[지방교회] 이스라엘 탐방(1) - 소개의 말

* [지방 교회](local Church) 이스라엘 탐방팀(한국35명, 미국9명)은 일반적인 성지순례자나 관광객들과는 달리 성경에 나오는 60여 군데의 지명을 선택하여 역사적으로 성경적으로 고고학적으로 확인하는 작업을 하고자 오랫동안 자료를 준비하였다. 탐방의 질을 높이기 위하여 우리들은 출국하기 전에 2박 3일동안 방문지에 대하여 미리 철저하게 스타디하였다. 우리는 유명한 관광지보다 성경적으로 의미가 있는 곳을 더 많이 방문하기로 하였다. 우리는 15박 16일동안(2012/10/13-28) 이스라엘을 탐방하기 위하여 10월 13일(토) 대한항공 KE957 편으로 이스라엘을 향하여 출국하였다. 우리가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동안 그곳에서 전쟁이 없기를 바라면서...

[지방교회] 이스라엘 탐방(2) -세겜 

(창 12:6)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창 33:18-20)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 그 성읍 앞에 장막을 치고 (19)그가 장막을 친 밭을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백 크시타에 샀으며 (20)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 

(창 37:12-14) 그의 형들이 세겜에 가서 아버지의 양 떼를 칠 때에 (13)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14) 이스라엘이 그에게 이르되 가서 네 형들과 양 떼가 다 잘 있는지를 보고 돌아와 내게 말하라 하고 그를 헤브론 골짜기에서 보내니 그가 세겜으로 가니라 

 (수 24:27)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보라 이 돌이 우리에게 증거가 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이 돌이 들었음이니라 그런즉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을 부인하지 못하도록 이 돌이 증거가 되리라 하고 

(수 24:32) 또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가져 온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으니 이곳은 야곱이 백 크시타를 주고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자손들에게서 산 밭이라 그것이 요셉 자손의 기업이 되었더라 

(삿 9:6) 세겜의 모든 사람과 밀로 모든 족속이 모여서 세겜에 있는 상수리나무 기둥 곁에서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으니라 

 (삿 21:19) 또 이르되 보라 벧엘 북쪽 르보나 남쪽 벧엘에서 세겜으로 올라가는 큰 길 동쪽 실로에 매년 여호와의 명절이 있도다 하고 

(왕상 12:1) 르호보암이 세겜으로 갔으니 이는 온 이스라엘이 그를 왕으로 삼고자 하여 세겜에 이르렀음이더라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 메시지 3> 

아브라함은 세겜에 이르렀다.'세겜'은 원문에서 어깨라는 뜻이다. 어깨는 사람의 몸에서 가장 힘있는 곳이다. 세겜 땅의 첫 번째 특징은 능력이다. 성경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이 기적적인 능력일뿐 아니라 또한 사람을 만족하게 하는 생명의 능력임을 볼 수 있다. 누구든지 주님의 생명을 얻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수 있다. 이는 그의 속이 이미 만족되었기 때문이다.속이 만족한 사람과 생명을 얻은 사람이 가장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세겜에'모레상수리나무'가있다.'모레'는 원문에서 '교사' 혹은 '가르침'이라는 뜻이 있다. 이것은 지식의 방면이다.모레의 상수리나무가 세겜땅에 있다는것은 지식이 능력으로부터 온다는 뜻이요 지식은 능력의 결과라는 뜻이다. 바꾸어 말해서 참된 영적인 지식은 그리스도의 능력으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사람을 만족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능력을 얻지 않았다면 우리에게는 참된 영적지식이 없을 것이다.그런 지식은 사람에게 영적인 어떤 것을 줄 수 없다. 만일 하나님이 이 땅에서의 그분의 간증을 회복하기 위해 어떤 그릇을 사용하신다면, 하나님은 그 그릇에게 어떤 교리를 들려주시는 것이아니라 먼저 그를 만족하게 하고 생명의 능력을 준 다음 참된 지식을 갖게 하신다. 이 두 가지의 차이는 너무나 큰 것이다. 하나는 교리이고 하나는 생명이다. 하나는 밖에서 들은 것이고 하나는 속에서 본 바이다. 하나는 잊어버릴가능성이 있지만 하나는 항상 속에서 기억한다. 모든 참된 지식은 생명의 능력안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곧 우리의 능력이다.우리안에 어떤 것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남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내적인 능력이자 내적인 지식이다. 

<창세기 L/S 메시지 76> 

야곱은 라반의 손으로부터 구출되었다. 그는 또한 에서와의 문제로부터 구출되었으며 숙곳에 이르렀고 거기서 자신을 위한 집과 가축을 위한 우릿간을 지었다. 나는 거기서 머문 야곱에게 평강이 없었으리라 믿는다. 그러므로 그는세겜으로 올라왔으며 그의 열조의 발자취를 따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살기 위해 제단의 간증이 있는 합당한 장막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세겜에서의 그의 생활은 하나님의 표준에 달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목적은땅에서의 그분의 집인 벧엘을 갖는 것이다. 

 야곱과같이 오늘날 많은 형제자매들은 여전히 세겜에 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그분의 수준에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갈망은 만족되지 않았다. 이것 때문에 어떤 불행한 일들이 자꾸 자꾸 그들에게 발생하여 그들의 마음으로하여금 일어나서 벧엘로 올라가 거기 거하고 제단을 건축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도록 준비 시킨다. 나는 내가 야곱과같은 일을 해온 것을 간증할 수있다. 나는 단순하게 나의 맹세와 헌신을 잊었다. 나는 우리 모두가, 특히 어려움과 시련의 시간 동안에, 주님께 헌신했음을 믿는다. 그러나 당신은 자신의 맹세를 이행했는가? 아마 우리 중 아무도 이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을볼 때 우리 모두가 야곱들임을 알 수 있다. 그의 역사는 사실상 우리의 자서전이다. 주님께 우리 자신을 헌신하겠다고 맹세하더라도, 우리의 맹세를 이행하고 우리의 헌신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한명의 딸, 열 한명의 아들, 세겜, 하몰,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과 일들의 희생이 요구될지 모른다 주의 회복안에서 그분은 우리가 세겜을 통과하여 벧엘로 가기를 원하시고 단체적인 교회생활로 올라가기 위하여 우리의 개인적인 생활을 통과하기를 원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세겜에서 좋다할지라도 우리에게 만족할만한 평강과 안정이없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세겜을 떠나 이땅에서 그분의 집안에서 합당한 교회생활을 갖도록 벧엘로 올라가라는 주님의 말씀을 취하게 한다.  

A.아브라함(Abraham)

세겜(Shechem)은 아브라함이 그곳에서 하나님으로부터땅에 대한 약속을 받으면서 구약성경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아브라함은 '세겜땅모레상수리나무'에서 하나님을 위해 단을 쌓고 가나안땅을 그의 후손들에게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다(창12:6-7).  

B.야곱(Jacob) 

1.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아들들의 경계로 인해 밧단아람 땅을 떠나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다. 이때 '숙곳(Succoth)'과 '와디 파라(Wadi Parah)'를 통해 세겜에 도착하였다. 

 2. 야곱은 잠시 세겜 근처에 머무르면서 그 지방의 하위 방백인 하몰의 아들(세겜)로부터 은 일백 개로 땅을 사서 '엘-엘로-헤이스라엘(El-Elohe-Israel,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명하고 단을 쌓았다(창 33:18-20)

3. 야곱 일가가 세겜에 머무르는 동안 하몰의 아들 세겜이 야곱의 딸 디나를 강간하는 사건이 발생하였고(창 34:2), 야곱의 두 아들(시므온과 레위)은 하몰과 세겜을 포함한 모든 남자를 살육하고 그 성을 약탈하였다(창 34:25). 이후 야곱과 그의 열두 아들들은 세겜을 떠나 헤브론 땅의 마므레(Mamre)에 머물렀다. 

4. 야곱의 가족들이 이곳에 묻혔으며(행 7:14-16), 훗날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자손들에 의해 요셉의 뼈도 이곳에 묻혔다(수 24:32).  

C.여호수아(Joshua)

1. 여호수아는 모세가 축복과 저주를 선포할 장소로 선택한 세겜으로 모든 이스라엘 지파를 소집하여 백성의 절반은 그리심산 앞에, 절반은 에발산 앞에 세우고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다(수 8:30-35). 

 2. 므낫세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의 영토 경계에 인접한 세겜은(수 17:7) 에브라임 지파에게 분배된 땅이었지만, 고핫 자손에게 재분배되었고, 도피성이 세워졌다(수 20:7, 21:21)(사진2. 레위 지파의 도시와 도피성 참조). 

3. 여호수아는 죽기 전 다시 한번 이스라엘 민족을 세겜으로 불러모아 그들과 더불어 '우리 하나님을 우리가 섬기고 그 목소리를 우리가 청종하리이다'는 언약을 세운 후 그 증거로 큰 돌을 세워 증거를 삼았다(수 24:24). 세겜에서의 의식은 시내 산에서 맺어진 언약을 재확인한 것이었다. 이후 세겜은 일정 기간 동안 이스라엘 열두 지파 동맹의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였다. 

D.사사시대

기드온이 죽은 이후에 그의 아들 아비멜렉은 자기 형제들을 죽이고 세겜에서 왕으로 등극했다(삿9:1-6).아비멜렉은 세겜에서 3년간 통치하였으나 세겜백성들이 반기를 들자 이 성읍을 파괴해 버렸다(수9:45). 

E.분열왕국시대

40년 동안의 솔로몬의 치세가 끝나고 이스라엘의 왕이 된 르호보암은 왕권 확인식을 하려고 세겜으로 향했다(왕상12:1,대하10:1). 그러나 르호보암의 어리석은 처신으로 인해 유다와 베냐민을 제외한 북쪽지파들은르호보암으로부터 돌아섰고,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을 왕으로 삼아 세겜을 북이스라엘왕국의 첫번째 수도로 정하였다(왕상12:2025).그러나 세겜은 낮은 분지라는 치명적인 약점때문에 전략적 요충지가 될 수 없었고, 북이스라엘왕국은 수도를 세겜에서 북쪽으로 약 12km 떨어진 디르사(타루자)로 옮겼다. 디르사는 북이스라엘 왕국의 바아사왕(왕상15:21), 엘라왕(왕상16:8), 시므리왕(왕상16:11)을 거쳐 오므리왕 6년까지 수도였다. 오므리왕은 전쟁시 방어하기에 유리했던 사마리아 성으로 천도하였다(왕상16:23-24) 

F.이스라엘왕국의 멸망과 포로기

B.C.722년 앗수르왕 사르곤2세는 북이스라엘왕국을 점령하였고, 이스라엘민족들을 메소포타미아로 붙잡혀 가면서 앗수르인들이 이곳에 이주하여 살도록 하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히 이스라엘민족과 가나안족, 그리고 앗수르족의 혼혈이 생기게되었다. 이 혼혈들은 사마리아의 지명을 따라 사마리아인(Samaritan)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북이스라엘왕국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할 때, 세겜은 전략적 요충지가 아니었기때문에 파괴를 면할 수 있었다. 북이스라엘왕국의 잔류민들은 앗수르의 민족 혼합정책, 피하여 세겜으로 모여들었고, 그리심산(Mt.Gerizim)에 성소를 세우고북이스라엘사람만의 전통을 지켜왔다. 이후 남유다왕국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Nebuchadnezzar)에 의해 멸망하고, 백성들은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잡혀 갔다. 

 G.포로 해방과 귀환

그러나 바사(페르시아)제국에 의해 바벨론이 멸망하고, 고레스왕에 의해 해방된이스라엘민족은 스룹바벨의 인도아래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다. 이때 사마리아인들은 스룹바벨의 성전 재건을 도와주려 하였으나, 이스라엘민족으로부터 거절 당하자 성전재건을 방해했다(스4장). 이들은 모세오경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겼지만 혼합된 혈통과 종교 활동으로 끝내 정통 유대인들과는 분리되었다. 

H.신약시대

신약시대 예수님께서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었던수가(Sychar)성이 구약시대의 세겜이다(요4:3-42). 

I. 위치 및 지형 Geography

이스라엘_현대 세겜(나불루스)의 전경

A.지명-고대의 세겜(텔발라타,TelBalata)은 현재'나블루스(Nablus)'라 불리는 곳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나블루스는 새로운 도시, 즉 헬라어 네아폴리스(Neapolis)에서 기인한 이름으로 AD72년에 로마황제 베스파시아누스가 팔레스타인을 정복했을 때 건설한 도시였다. 많은 사람들은 세겜이 하몰의 아들 세겜(창33:18-19)으로부터 유래한 명칭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어깨'라는 뜻을 지닌 세겜이란 이름은 평지보다 조금 높은 곳인 에발산 기슭쪽으로 자리잡고 있어서 생긴 이름으로 보인다  

B.위치-세겜은 중앙산악지대, 구체적으로 에브라임산지(사마리아지역)에 위치하고있다. 세겜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67km 떨어진 지점에 있다.세겜은그리심산과 에발산 사이에 위치하는데, 남북과 동서로 뻗은 주요도로가 만나는 교통의 중심지이다. 세겜은 물공급이 용이하고 동쪽으로 쭉 뻗은 비옥한 평야, 그리고 여러 곳으로 연결된 주요도로가 통과하는 등의 여러 요건들이 합쳐진 지리적 요충지이다. 전통적으로 이스라엘의 영토는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로 인식되어 왔다. 단과 브엘세바사이의 직선 거리는 대략 230km 정도인데 그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가 바로 세겜이다. 

 C.기후-세겜은 연평균 강우량이 적당하고, 물이 많은 곳이어서 고대로부터 농사짓기에 적당한 곳이었다. 그래서 이곳에는 보리나 밀, 채소가 재배되었으며, 평지를 둘러싼 산비탈에는 포도, 무화과나무, 올리브나무가 경작되었고,목축에 좋은 풀밭도 많이 있었다(창37:12-13).헤브론에 살던 야곱이 그의 아들들을 세겜 근처로 보내 양을 치게 했다는 것만 보아도 세겜이 목축에 좋은장소였음을 알 수 있다(창37:12-15).


이스라엘_성지순례_세겜의_위치

D.교통-세겜은 지정학적으로 여러 갈래의 길들이 통과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는, 사마리아 지방의 교통의 중심지였다. 남쪽으로는 산악지방으로 관통하는남북간도로(족장의길),곧 성경에 언급된 '큰길(삿21:19)'이 나 있어 실로, 벧엘, 예루살렘으로 갈 수 있었다. 세겜은 동쪽으로는 동부 고원지대(트랜스요르단)를 지나는 왕의대로와 연결되고, 서쪽으로는 사마리아를 지나 도단에이르는 길과 이스라엘 해안지대(샤론평야)로 내려가서 애굽과 메소포타미아를연결하는 해안길(ViaMaris)에 닿는 길이 있다. 특히 서에서 동으로 연결된 길(지중해해안에서요단동편)은 세겜을 지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러한 지정학적인 중요성 때문에 이곳에는 사람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살아왔으며 강력한도시를 이루었고, 이스라엘 모임의 장소로 성경에 자주 등장하였다. 

 E.역사-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세겜이 알렉산더시대(B.C.322년경)에사마리아인들의 중요한 도시였고, B.C.107년 하스모니안 왕가의 군주이자 대제사장이었던 요한 히르카누스(JohnHyrcanus)에 의해 파괴되었다. B.C.63년에 로마장군 폼페이우스는 사마리아를 주(州)로 독립시켜 세겜을 그 주도(州都)로 삼았다. 제1차 유대반란시기(A.D. 67년)에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산 정상에 군사적 보루를 쌓았다. A.D.72년경 티투스(Titus)장군은 세겜땅에 신설도시를 세워 네아폴리스라고 불렀다. A.D.16세기경 나블루스는 팔레스타인 4대도시(예루살렘,가자,제파트,나블루스)가운데 하나였다. 1948년부터 요르단에 속했던 나블루스는 1967년(제3차중동전쟁)부터는 이스라엘의 군사점령지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Ⅱ. 유적지 및 관광지 Historic and Tourist Sites

이스라엘_성지순례_텔 발라타(고대 세겜) 전경

A.텔발라타(Tel Balata) 

1. 고대 세겜(텔 발라타) - 성경에 등장하는 세겜은 현재의 텔 발라타이다. 텔 발라타는 현대 도시인 나블루스(세겜)의 동쪽에 인접해 있으며, 남서쪽으로 그리심산을 북쪽으로 에발산을 올려다 보는 계곡인 와디 파라(Wadi Farah)에 솟아 있는 낮은 언덕이다. 아브라함이 동쪽으로부터 요단강을 건너 세겜에 왔을 때, 이곳에는 이미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 당시 것으로 생각되는 성문이 텔 발라타의 북쪽 부분과 동쪽 부분에 조금씩 남아 있다. 

2. 텔 발라타에서 발견된 신전- 고대의 세겜(텔발라타, 나블루스 인근)은 1913년과 1934년에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발굴팀에 의해 최초로 발굴되었다. 요새화된 신전은 1926년 독일 학자 셀린(Ernst Sellin)에 의해 발견되었다. 이후 발굴팀은 그 당시의 최신의 방법을 활용하여 적어도 네 개의 정착층(가나안 시대, 이스라엘 시대, 유대/사마리아 시대, 헬라 시대)을 확인하였다. 또한 1956년과 1973년에 라이트(G. Ernest Wright)의 지휘 하에 미국 드루 대학과 맥코믹 신학교의 공동작업으로 대대적인 발굴이 이뤄졌다. 그들은 단단한 기반 위에 진흙 벽돌과 목재로 지은 다층식 신전이 지어졌음을 추정하였다. 이 신전은 사사기 9장에 언급되는 신당인 것으로 추측된다. 입구 좌우로 두 개의 높은 탑이 설치되었으며, 신전 위층 복도는 탑의 통로와 연결되어 있었다(사진5. 세겜 신전 상상도 참조). 입구 전방으로 제단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제단 앞으로는 석비가 존재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신명기 27장 2절에 나타난 석회가 발라진 큰 돌이 이 석비인 것으로 추측된다(사진6. 여호수아의 석비 참조). 아비멜렉은 세겜 땅을 차지한 이후 이 신전을 곡식 창고로 사용하였다 


여호수아의 비석 "이 돌이 증거가 되리라"(수24:27)_지방교회

 여호수아는 죽기 전 다시 한번 이스라엘 민족을 세겜으로 불러모아 그들과 더불어 '우리 하나님을 우리가 섬기고 그 목소리를 우리가 청종하리이다'는 언약을 세운 후 그 증거로 큰 돌을 세워 증거를 삼았다(수 24:27). 세겜에서의 의식은 시내 산에서 맺어진 언약을 재확인한 것이었다.

이스라엘_성지순례 여호수아의 증거 돌 앞
이스라엘_성지순례
여호수아의 증거 돌 앞에서 찰칵!(2012.10.15)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3. 14:35
* [지방 교회](local Church) 이스라엘 탐방팀(한국35명, 미국9명)은 일반적인 성지순례자나 관광객들과는 달리 성경에 나오는 60여 군데의 지명을 선택하여 역사적으로 성경적으로 고고학적으로 확인하는 작업을 하고자 오랫동안 자료를 준비하였다. 탐방의 질을 높이기 위하여 우리들은 출국하기 전에 2박 3일동안 방문지에 대하여 미리 철저하게 스타디하였다. 우리는 유명한 관광지보다 성경적으로 의미가 있는 곳을 더 많이 방문하기로 하였다. 우리는 15박 16일동안(2012/10/13-28) 이스라엘을 탐방하기 위하여 10월 13일(토) 대한항공 KE957 편으로 이스라엘을 향하여 출국하였다. 우리가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동안 그곳에서 아무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지방교회] 이스라엘 성지순례 (3) 에발산과 그리심산 
2012년 10월 15일 

(신 11:29-3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너를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 너는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 (30) 이 두 산은 요단 강 저쪽 곧 해지는 쪽으로 가는 길 뒤 길갈 맞은편 모레 상수리나무 곁의 아라바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의 땅에 있지 아니하냐 
(신 27:12-13) 너희가 요단을 건넌 후에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요셉과 베냐민은 백성을 축복하기 위하여 그리심 산에 서고 (13) 르우벤과 갓과 아셀과 스불론과 단과 납달리는 저주하기 위하여 에발 산에 서고 
(수 8:33) 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관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 산 앞에, 절반은 에발 산 앞에 섰으니 이는 전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령한 대로 함이라 
(삿 9:6-7) 세겜의 모든 사람과 밀로 모든 족속이 모여서 세겜에 있는 상수리나무 기둥 곁에서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으니라 (7) 사람들이 요담에게 그 일을 알리매 요담이 그리심 산 꼭대기로 가서 서서 그의 목소리를 높여 그들에게 외쳐 이르되 세겜 사람들아 내 말을 들으라 그리하여야 하나님이 너희의 말을 들으시리라 

  <신명기 L/S 메시지 9> 
신명기 11장 8절부터 25절까지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충고와 경고의 말을 기꺼이 지키면, 축복을 받을 것임을 본다. 오늘날 우리가 그리스도를 지킨다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을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말을 기꺼이 지킨다면, 그들은 약속된 땅, 즉 젖과 꿀이 흐르는 땅, 하나님께서 돌보시며 세초부터 세말까지 하나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 우리에게 축복이 있느냐 저주가 있느냐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취하느냐 취하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를 취한다면 우리에게는 복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취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는 저주가 있을 것이다. 29절에서 모세는 계속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으로 너를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 너는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고 한다. 우리가 축복을 받느냐 저주를 받느냐는 우리가 주님께 대하여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있으면, 우리는 축복을 받고 그리심 산 위에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없으면, 우리는 저주를 받고 에발 산 위에 있을 것이다.  
29절에서 모세는 계속하여,『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너를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 너는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고 했다. 모세가 이스라엘 여섯 지파 -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요셉, 베냐민-는 그 백성을 축복하기 위해 그리심 산에 설 것을 명했다(11-12절). 모세는 또한 다른 여섯 지파-르우벤, 갓, 아셀, 스불론, 단, 납달리-는 저주하기 위하여 에발 산에 서도록 명했다(13절). 그들이 어느 무리에 들어갈 것인지에 대해서, 지파들은 선택 없이 하나님의 정하심을 받아들여야 했다. 레위인들은 백성들에게 큰 소리로 말함으로 응답했고, 15절부터 26절에 기록된 저주들을 발했다. 저주받은 자들로는 다음 사람들이 포함된다. 우상을 만드는 자(15절),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16절), 그 이웃의 지계표를 옮기는 자(17절), 소경으로 길을 잃게 하는 자(18절),……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26절) 등이다. 
 
Ⅰ. 에발산과 그리심산

에발산과 그리심산

A. 에발산과 그리심산은 가나안 땅 중심부에 위치한 산이다. 에브라임 지역에 속한 에발 산과 그리심 산은 세겜(수가, 나블루스)을 가운데 두고 에발산(해발 920m)은 북쪽에 위치해 있고, 그리심산(해발 854m)은 남쪽에 위치해 있다. B. 세겜에서 바라본 그리심 산은 햇빛이 잘 비치는 남쪽에 위치해 있어서 밝고 물이 풍성하고 숲이 울창하고 풍성한 산으로 축복의 상징이 되었지만, 북쪽에 위치한 에발산은 민둥산이면서 그늘진 산이기에 저주의 상징이 되었다고 추측하는 학자들도 있다. 축복의 상징이었던 그리심은 그 의미대로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것을 제거해야 한다는 상징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C. 에발산과 그리심산은 세겜을 감시하는 천연의 요새였다. 에발산과 인접해 있는 그리심 산과의 사이에 있는 공간은 음향의 반향 작용이 매우 뛰어난 천연 계단식 극장이 있다. 


 Ⅱ. 에발산 

사마리아 박물관 랍비

A. 에발산의 에발은 ‘민둥 산’을 의미한다. 
B. 에발산의 낮은 경사지에서는 포도나무나 올리브나무 같은 식물을 재배하는 것이 가능하나, 더 높은 곳은 바위투성이의 불모지라서 경작이 불가능하다. 사마리아의 다른 산들처럼, 에발산 역시 표면은 백악질(석회질) 토양으로 덮여 있고, 그 아래는 석회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C. 에발산은 현재 에벨 에슬라미예(Jebel Eslamiyeh)로 불린다. 

 Ⅲ. 그리심산 
A. 그리심산의 그리심은‘제거하다'‘자르다’‘베어버리다’라는 의미를 담은 ‘가라즈’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그리심산은 해발 919m의 석회암으로 구성된 무미건조한 산이다. 그리심산이 위치한 세겜 지역은 고대부터 남북과 동서를 잇는 주요 도로가 교차하는 교통의 중심지였다.

그리시심산 위의 성전터

B. 예로부터 그리심산은 사마리아인들의 종교적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였다. 스룹바벨의 지휘 아래 예루살렘에 제2성전을 재건할 당시, 사마리아인들은 재건을 도우려 하지만 거절당한다. 그리하여 사마리아인들은 그들만의 성전을 그리심산에 짓는다. 그러나 B.C. 107년 요한 히르카누스(John Hyrcanus)에 의해 세겜 지역이 파괴당할 때 성전 역시 허물어졌다. C. 그리심산은 현재 에벨 엣투르(Jebel et-Tor)라고 불린다. 가나안 땅 중심부에 위취한 산이다 이곳은 고대로부터 남북과 동서를 잇는주요 도로가 교차하고 있으며 교통의 중심지였다 세겜(수가, 나블루스)을 가운데 두고 에발산(해발920m)은 북쪽에 그리심산(해발854)은 남쪽에 위치해 있다. 에발은 민둥산을 의미하고 그리심은 제거하다를 의미한다. 모세는 신명기 11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여섯 지파로 나누어서 축복과 저주를 선포하게 하셨다.

그리심산의 사마리아 회당

예로부터 그리심산은 사마리아인들의 종교적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였다 스룹바벨의 지휘 아래 예루살렘 제 2성전을 재건할 당시 사마리아인들은 재건에 동참하려 했지만 거절 당했다 그래서 사마리아인들은 그들의 성전을 그리심산에 지었다 그러나 BC 107년 요한 히루카누스에 의해 세겜지역이 파괴당할 때 성전 역시 허물어졌다 그리심산은 현재 에벪엣투르라고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