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6. 15. 05:48
모란
모란에 갔다
짐승 태우는 냄새 같기도 하고
살점 말리는 바람 내음 같은 것이 흘러오는
모란에 가서 누웠다
희게 흐르는 물베개를 베고
습지 아래로 연뿌리 숙성하는 소리를 들을 때
벽 너머 눈썹 검은 청년은 알몸으로 목을 매었다
빈 방엔 엎질러진 물잔, 물에 젖은 유서는
백년 나무로 환원되고 있었다
훠이훠이 여기서는 서로가 벽을 뚫고 지나가려한다
서로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나온다
어른이 아이가 되기도 하고
여자가 남자가 되기도 한다
한낮 같은 세상을 툭 꺼버리지 말고
그냥 들고 나지 그랬니
무덤들 사이에 아이처럼 누워
어른임을 견딜 때,
궁창의 푸른 갈비뼈 틈에서 솟는 악기 소리
먹먹한 귓속에 신성을 쏟아붓는다
슬픔이 밀창을 열고
개다리 소반에 만산홍엽을 내 오는 곳
모란에 가서 잤다
오색등 그늘 밑에서 잤다
내력들이 참 많이 지나가는 곳에서
사람의 아들, 그의 불수의근을 베고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