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4. 13:45
성경말씀 

 (요6:57-58)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셔서 내가 아버지로 말마암아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입니다.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입니다.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런 것과 같지 않습니다. 이 떡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입니다. 

 오늘의 만나

 
 거미가 창고에서 거미줄을 치고 있었습니다.  천정에서 서까래까지 긴 줄을 늘어뜨렸습니다.  거미줄은 이 긴 줄에 지탱되고 있었습니다. 거미는 알을 낳았고, 부화하여 많은 거미들이 생겨났습니다.  이 거미들은 거미줄에서 즐겁게 놀곤 했습니다. 새끼거미 한 마리가 우연히 천정에서 서까래까지 이어진 긴 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 긴 줄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는 거미는 긴 줄을 끊어버렸고, 결국 모든 거미줄이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도 이와 같이 하늘과 통하는 긴 줄이 있는데, 이것에 의해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유지됩니다. 일찍 일어나서 하는 아침 부흥은 하늘과의 교통이며, 능력을 흡수함으로 하루 생활을 유지하게 해 줍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출처 : 온전케 하는 예화들(1)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3. 16:50
성경말씀  

(눅15:22上) 그러나 아버지는 그의 노예들에게 ‘어서 그 제일 좋은 겉옷을 내어다 입히고, 

 오늘의 말씀

 
 탕자는 모든 방면에서 가련한 거지가 되어 집에 돌아 왔습니다. 아들은 ‘더 이상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이 없다’고 자백하지만 아버지는 그의 말을 가로막으며 노예들에게 ‘그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 입히라고 하십니다. ‘그 옷’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오면 입을 수 있도록 미리 특별히 준비해 두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들은 그 옷을 입음으로 외적인 면에서는 그의 아버지와 어울리는 의롭다 함을 받은 아들로서 아버지의 화려한 집에 들어갈 자격을 얻었습니다. 그 제일 좋은 옷은 의이신 그리스도를 표징합니다. 그러나 옷은 단지 객관적인 의를 대표하며, 외적인 가림만을 줄 수 있을 뿐임을 주목해야 합니다.
출처 : 생명 메시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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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1. 14:05
성경말씀 

 (고전8:6) 우리에게는 오직 한 분의 하나님 곧 아버지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왔고 우리도 그분께로 돌아갑니다. 또한 오직 한 분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존재하고 우리도 그분을 통하여 존재합니다. 

 오늘의 만나

 
 아버지는 만물의 근원이시므로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믿는이들인 우리만 그분께 돌이킬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분께 돌아갑니다. 마찬가지로 아버지께서 창조하신 만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수단으로 하여 생겨났습니다. 믿는이들인 우리가 아버지께 돌이키고 그분께 돌아가는 것은 주님의 거듭나게 하심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와 만물은 모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존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주님과 많은 주를 구별하게 하는 신성하고도 인간적인 칭호입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만물의 유일한 근원이시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만물이 그분을 통해 생겨난 유일한 수단이십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0. 13:10
성경말씀 

(요17:1)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드시어 하늘을 보시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셔서 아들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도록 하여 주십시오. 

 오늘의 만나

 신성한 비밀에 관한 주님의 기도는 세 단계로 이루어집니다. 첫째, 이 기도는 주님의 부활 안에서 이루어졌는데, 부활 안에서 주님의 신성한 요소, 신성한 생명이 주님의 인성 안에서 많은 믿는이들 안으로 해방되었고, 주님의 인성을 포함한 전 존재가 영광 안으로 이끌렸으며 또한 아버지의 신성한 요소가 주님께서 부활하시고 영광스럽게 되심으로 표현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부활 안에서 주님의 기도를 응답하시고 이루셨습니다. 둘째로 이 기도는 교회 안에서 이루어졌는데, 교회 안에서 주님의 부활 생명이 많은 지체들을 통하여 표현됨으로 주님은 그들 안에서 영광스럽게 되셨습니다. 셋째, 이 기도는 최종적으로 새 예루살렘 안에서 이루어질 것인데, 새 예루살렘 안에서 주님은 영광 안에서 충만히 표현되시고, 하나님은 영원히 주님 안에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입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0. 13:00
성경말씀 

(요17:1)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드시어 하늘을 보시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셔서 아들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도록 하여 주십시오. 

 오늘의 만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셔서 아들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도록 하여 주십시오’는 요한복음 17장에 있는 주님의 기도의 주제입니다. 그분은 육신이 되신 하나님이셨으며, 그분의 육신은 하나님께서 땅 위에 거하실 수 있는 장막이었습니다. 그분의 신성한 요소는 마치 하나님의 빛나는 영광이 성막 안에 숨겨졌던 것처럼 그분의 인성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한때 변형의 산에서 그분의 신성한 요소가 그분의 육신으로부터 해방되어 영광 안에 표현되었고, 세 제자들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그것은 다시 그분의 육신 안에 숨겨졌습니다. 이 기도를 하시기 전에 그분은 자신이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며, 아버지도 그분 안에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숨기는 인성의 껍질이 깨어지도록 그리고 그분의 신성한 요소, 신성한 생명이 해방되도록 이제 그분은 죽음을 통과하려 하고 계셨습니다. 또한 그분은 부활하실 것이었는데 이것은 그분의 인성을 신성한 요소 안으로 높여 신성한 요소가 표현된 결과 그분의 전 존재 즉 그분의 신성과 인성이 다 영광스럽게 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도 그분 안에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이를 위하여 기도하신 것입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9. 20:10
성경말씀  

(요이 9) 그리스도에 관한 가르침에서 빗나가 그 가르침 안에 거하지 않는 사람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이며, 그 가르침 안에 거하는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이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의 만나

 
바울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에 관한 가르침에서 빗나가 넘어서지 말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빗나가는’것은 소극적인 의미에서 앞으로 나아가 즉 옳은 것보다 더 지나쳐 나아가 그리스도에 관한 정통적인 가르침의 한계를 넘어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가르침 안에 거하는 것과 대조됩니다. 세린티안 영지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관하여 자신들의 생각이 앞서 있다고 자랑하며 이렇게 실행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신성하게 잉태되셨다는 가르침을 넘어감으로써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구원과 하나님의 생명이 없었습니다. 성육신하신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구속하시는 아들과 생명이신 아버지를 모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속받고 거듭나 하나님과 유기적으로 하나가 되는데 이것은 구원 안에서 또 생명 안에서 하나님께 참여하고 그분을 누리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성육신을 부인하는 것은 이 신성한 누림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육신의 진리 안에 거하는 것은 영원한 구원 안에서 또 신성한 생명 안에서 우리의 분깃되신 하나님을 아버지와 아들로 모시는 것입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9. 16:50
성경말씀 

(요12:27~28) 지금 내 혼이 괴로우니 내가 무슨 말을 하면 되겠습니까? 아버지, 이 때를 벗어나도록 나를 구원하여 주십시오. 그러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이때에 왔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 그 때에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내가 이미 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할 것이다.“ 

 오늘의 만나

 
 사람이신 주님은 그분께서 곧 겪어야 할 죽음 때문에 혼 안에서 괴로워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아버지, 이때를 벗어나도록 나를 구원하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영 안에서는 자신이 이때에 온 것이 바로 아버지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깨달으셨음에 틀림없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은 아버지의 신성한 요소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신성한 요소는 영원한 생명인데 이것은 성육신하신 아들 안에 있었습니다. 아들의 육신의 껍질은 아버지의 신성한 요소 곧 영원한 생명이 부활 안에서 해방되어 표현될 수 있도록 죽음을 통하여 깨어져야 했습니다. 이것은 밀알의 생명 요소가 껍질이 깨어져 해방되고 꽃이 피어 표현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아들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영화롭게 되시는 것입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9. 14:45
성경말씀  

(엡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여러분에게 주셔서 하나님을 온전히 알게 해 주시고 

 오늘의 만나

 
 에베소서 1장 17절은 믿는이들이 지혜와 계시의 영을 얻어 하나님을 알도록 그분께 드린 바울의 기도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자신으로서 성육신하시어 사람이 되셨습니다. 사람으로서 그분은 하나님의 창조와 관계있습니다. 그러므로 창조주 하나님은 그분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신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하나님의 피조물인 사람 안으로 이끄신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 육신을 입은 사람이십니다. ‘아버지’란 명칭은 거듭남을 함축하고 있으며 ‘영광’은 표현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영광의 아버지는 그분의 많은 아들들을 통하여 표현되신 거듭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이미 거듭났고 하나님의 영광이 표현될 때 우리는 영화롭게 될 것입니다. ‘지혜’는 우리 영 안에 있으며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고 ‘계시’는 하나님의 영에 속한 것으로 하나님께서 베일을 여시어 우리에게 이상을 보여 주기 위한 것입니다. 먼저 우리에게는 깨닫는 능력인 지혜가 있음으로써 그것이 우리로 영적인 일들을 알 수 있게 하고 다음에 하나님의 영께서 영적인 일들을 계시하여 우리가 영적으로 깨닫게 합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9. 14:00
성경말씀 

(요일2:15)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구라도 세상을 사랑하게 된다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없습니다. (5:4~5) 왜냐하면 하나님에게서 난 것은 모두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승리는 바로 우리의 믿음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오늘의 만나

 
 하나님은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사람을 창조하여 땅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대적인 사탄은 하나님이 창조한 사람을 빼앗기 위해 정욕과 쾌락과 추구가운데 사람의 타락된 본성을 통해 심지어 음식, 의복, 주택, 교통수단 등과 같은 생활필수품에서도 방종에 빠지게 함을 통해, 사람의 종교, 문화, 교육, 공업, 상업, 오락 등으로 사람들을 조직화하여 이 땅에 반(反) 하나님의 세상 조직을 형성했습니다. 사탄의 조직에 속한 그런 세상은 온통 악한 자 안에 처해 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악한 자를 이기는 근거입니다. 그것을 조금이라도 사랑한다면 그것은 악한 자에게 우리를 패배시키고 점령하게 하는 근거를 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를 이끌어 삼일 하나님과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믿음이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하나님에게서 태어나 신성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한 믿음입니다. 우리는 이 믿음을 말미암아 사탄이 조직하고 빼앗은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7. 18:55
성경말씀 

(요20:17) ...“...그대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내가 나의 아버지 곧 여러분의 아버지, 나의 하나님 곧 여러분의 하나님께로 올라간다고 말씀하십시오.” 

 오늘의 만나

 
 부활 이전에 주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사용하셨던 가장 친밀한 호칭은 ‘친구’였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후에 그분은 그들을 ‘형제들’이라 부르기 시작하셨는데 이것은 그분의 부활을 통하여 생명을 나눠 주는 주님의 죽음에 의해 해방된 신성한 생명으로 제자들이 거듭났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한 알의 밀알로서 땅에 떨어져 죽으시고 자라나셔서 그분의 몸인 한 떡을 산출하시기 위해 많은 밀알을 맺으셨습니다. 그분은 아버지의 독생자 곧 아버지의 개인적인 표현이셨습니다. 아버지의 독생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많은 형제들 가운데 맏아들이 되셨습니다. 그분의 많은 형제들은 하나님의 많은 아들들이며 아들 안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의 단체적 표현인 교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긍극적인 뜻입니다. 많은 형제들은 아버지의 생명의 번식이며 신성한 생명 안에서의 아들의 번성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부활 안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 이뤄집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