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9. 18:20
성경말씀  

(롬3:24)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오늘의 만나

 
 ‘구속’은 대가를 지불하여 다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본래 하나님께 속해 있었으나 죄 때문에 잃어버린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과 의로움과 영광의 요구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우리는 그러한 요구를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위하여 대가를 지불하시고 그 큰 대가로 우리를 다시 소유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피로 영원한 구속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대가를 지불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의 구속으로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모두 이루셨기 때문에 공정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값없이 의롭다 하셔야 합니다. 이렇게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우리의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9. 18:10
성경말씀

(갈6:15) 할례나 무할례는 아무것도 아니며, 중요한 것은 새 창조물뿐입니다.

오늘의 만나

옛창조는 아담 안에 있는 우리의 옛사람 곧 출생으로 말미암은 우리의 존재이며 하나님의 생명과 신성한 본성은 전혀 없습니다. 새창조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사람 곧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우리의 존재입니다. 이 새창조는 하나님의 생명과 신성한 본성이 그 안으로 역사되고 그리스도가 구성 성분이 되어 새로운 조성체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본성 곧 내적이고 내재적이며 유기적인 구성 성분을 가리킵니다. 옛창조는 하나님의 요소가 없기 때문에 낡았지만 새창조는 하나님께서 그 요소이시기 때문에 새롭습니다. 비록 우리가 옛창조일지라도 성령을 따라 행할 때 새창조는 실재를 체험합니다. 그러므로 할례와 무할례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가 생명되시는 새창조입니다. 새창조가 되는 것은 성령을 위하여 심는 이유와 결과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과 할례를 행하는 것은 육체를 위하여 심는 것이며 그것들은 옛창조를 바꾸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을 위하여 심을 때 우리는 새창조가 됩니다. 이 새창조는 성령으로 재창조되고 신성한 생명으로 말미암아 변화되며 과정을 거친 삼일 하나님께서 우리와 연합되심으로 그분의 풍성한 요소로 조성된 것입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9. 18:05
성경말씀  

(시90:9~10)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오늘의 만나

 
 백발의 한 노인이 있었는데, 그는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깊이 맛본 후 시간이 얼마나 귀중한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런 말로 다음 세대인 청년들을 훈계했습니다. “내가 울고 웃던 시절에는 시간이 마치 기어가는 것처럼 천천히 지나갔고, 내가 꿈을 꾸고 이야기하던 청년 시절에는 시간이 빠른 걸음처럼 지나갔다. 내가 완전히 성인이 되었을 때 시간은 마치 뛰어가는 것처럼 지나갔고, 장년이 되어 능력을 과시할 자리에서 활동을 시작했을 때 시간은 구름처럼 날아가 버렸고, 흰머리를 머리에 이고 완전한 노인이 된 그때 시간이 전부 지나가버린 것을 알았다. 시간은 참으로 짧다. 그러므로 이것을 존중해야 하며 가장 귀중하게 쓸 필요가 있다. 현재라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인간의 운명은 결정된다.
출처 : 온전케 하는 예화들1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9. 18:00
성경말씀 

(행2:24) 하나님은 그분을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습니다. 이것은 그분께서 죽음에 붙잡혀 계실 수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32) 이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살리셨으며, 우리 모두가 이 일의 증인들입니다. 

 오늘의 만나

 
사도행전 2장 24절과 32절에서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예수를 살리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10장 40절과 41절에서 그는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예수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신약은 주님을 한 사람으로 여길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셨다고 말하고, 그분을 하나님으로 여길 때에는 그분 자신이 스스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셨다고 말합니다. 이것 또한 그분의 이중 신분 즉 사람의 신분과 하나님의 신분을 증명합니다. 주님은 파괴될 수 없는 생명을 소유하신 하나님이시며 부활이십니다. 그분이 그처럼 항상 살아계신 분이시기 때문에 사망은 그분을 붙잡을 수 없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사망에 넘기셨지만 사망은 그분을 붙잡아 둘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사망은 그분께 패배당했고 그분은 사망에서 일어나셨습니다. 사도는 이 일의 증인이라고 말했습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9. 17:45
성경말씀 

(요13:3~5)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자기가 하나님에게서 왔다가 하나님께로 갈 것을 아시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일어나시어 겉옷을 벗어 놓으시고, 수건을 가져다가 직접 허리에 동여매셨다. 예수님께서 대야에 물을 부으신 후,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허리에 동여매신 수건으로 닦아 주시기 시작하셨다. 

 오늘의 만나

 
 고대에 유대인들은 샌들을 신었는데 길에 먼지가 많았기 때문에 발이 쉽게 더러워졌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잔치에 왔을 때 상에 앉아 발을 뻗으면 먼지와 냄새가 틀림없이 교통을 방해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잔치가 유쾌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발을 씻어야 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심으로 당신께서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을 보이시고 이와같이 그들도 서로 사랑 안에서 행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오늘날 세상은 더러워서 우리 성도들은 쉽게 오염됩니다. 우리가 주님과의 즐거운 교통과 서로 간의 즐거운 교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님께서 그분의 사랑 안에서 또한 우리들 서로가 사랑 안에서 씻는 성령과 씻는 말씀과 씻는 생명으로 영적인 발 씻음을 실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9. 17:30
성경말씀 

(엡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찬양을 드립니다. 그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들의 영역 안에 있는 모든 영적인 축복으로 우리를 축복하셨습니다. 

 오늘의 만나

 
 주 예수님께서 우리의 소유이시기 때문에 그분께 대한 하나님의 모든 어떠하심도 또한 우리의 소유입니다. ‘주’는 그분이 주되심을 가리키고 ‘예수’는 그분이 사람임을 가리키며 ‘그리스도’는 그분이 하나님의 기름 부음받은 분이심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찬송할 하나님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자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고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십니다. 주님의 인성에 따르면 하나님은 주님의 하나님이시고 주님의 신성에 따르면 하나님은 주님의 아버지이십니다. ‘찬송’은 경배와 함께 찬양을 받는 것을 가리킵니다. 에베소서 1장 3절부터 14절까지에서는 아버지께서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위하여 택하시고 예정하셨으며, 아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구속하셨으며, 성령은 하나님의 성취된 목적을 적용하기 위하여 인치시고 보증하셨습니다. 타락된 죄인들인 우리는 이러한 신성한 삼일성의 모든 미덕들을 통하여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의 충만이요 표현인 그리스도의 몸 곧 교회가 됩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9. 17:25
성경말씀  

(빌4:12~13) 나는 비천한 상태에 있을 줄도 알고 풍부한 상태에 있을 줄도 알게 되었습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풍부하거나 궁핍하거나 각각의 일과 모든 일에 있어서 나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나에게 능력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만나

 
 바울은 그리스도께로 회심한 후에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이끌려졌습니다. 그런후 어떻게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삼는지, 어떻게 그리스도를 얻는지, 어떻게 교회 생활을 하는지 그 비결을 배웠는데 이 모든 것들은 초보적인 원칙들입니다. 이제 그는 그분 즉 그에게 능력을 주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들을 할 수 있다고 선포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그리스도를 체험한 일에 대한 포괄적이고 결론적인 말입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에서 주님은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우리와 주님과의 유기적인 관계에 관하여 하신 주님의 말씀을 반대로 말한 것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의 헬라어 단어는 ‘내적으로 역동적이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그분은 밖에서부터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부터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며 우리를 역동적으로 만드십니다. 그렇게 내적으로 능력을 얻음으로써 안에서 주시는 능력을 얻어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습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9. 17:10
성경말씀  

(약2:15~17) 어떤 형제나 자매에게 입을 옷이 없고 일용할 양식도 부족한데, 여러분 중에서 누가 그들에게 "평안히 가서 따뜻하게 하고 배부르게 드십시오."라고 말하면서, 몸에 필요한 것들을 주지 않는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행위가 없다면, 믿음 자체만으로는 죽은 것입니다. 

 오늘의 만나

 
 부자 농부는 풍성한 경작으로 창고에 곡식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그는 항상 그 가난한 사람이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이 그에게 와서 구걸하면 그는 항상 집 안에 줄 것이 없다고 대답하면서 한 푼도 주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아침 또다시 가난한 사람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나자 그의 아들이 “아버지, 제가 갖고 싶은 것이 있는데 무엇인지 아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아버지는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아들은 “저는 창고 속의 밀을 원해요.”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매우 놀란 표정으로 “이 밀들로 무엇을 하려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이 밀들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 그들을 위한 아버지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으로 주려고요.” 아버지는 이 말을 듣고 가슴에 화살을 맞은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출처 : 온전케 하는 예화들1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9. 17:05
성경말씀  

(딛2:13) 복된 소망, 곧 우리의 크신 하나님이시요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을 기다리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만나

 
 ‘복된 소망’은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영광 안에서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광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완전한 아들의 명분 즉 우리 몸의 구속을 받을 것입니다. 이것이 영원한 생명의 소망 곧 영원한 축복의 소망이며 삼일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 안에 있는 복된 소망인데 바울은 이 소망을 기초로 하여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분께서 신성한 영광 안에서 나타나시는 것은 그분의 백성을 영원한 왕국 안으로 구원하시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그들을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 안으로 들어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분께서 영광 안으로 나타나시는 것이 우리의 복된 소망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지혜로 만세 전에 우리를 이 영광 안에 들어가도록 정하셨고 모든 은혜의 하나님은 우리를 이 영원한 영광 안에 들어가도록 부르셔서 구원하셨습니다. 이 영광의 중한 것은 지극히 뛰어나고 영원하며 이 영광으로 인하여 우리는 영화롭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크신 하나님이시며 구주이신 그리스도의 이 영광이 나타나는 것은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복된 소망입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9. 17:00
성경말씀  

(롬4:13)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는 약속이 아브라함이나 그의 씨에게 주어진 것은 율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믿음의 의를 통해서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만나 

 율법은 사람이 범법함으로 말미암아 일시적으로 더해진 것이기 때문에 구약에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일시적인 안배이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신약에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한 안배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율법에 따라 사람을 대하셨습니다. 만일 그러한 하나님의 안배에 따라 하나님께서 율법에서 명령하신 것을 사람이 행한다면 사람은 의 즉 율법의 의, 율법에서 난 의를 얻었을 것입니다. 신약에서 하나님은 믿음에 따라 사람을 대하십니다. 만일 하나님의 이러한 안배에 따라 사람이 그리스도 곧 하나님께서 사람이 믿도록 정하신 분을 믿는다면 그는 의 즉 믿음의 의, 믿음에서 난 의를 얻을 것입니다. 믿음은 신약 경륜에서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구약의 율법을 대치하는 것인데 이것은 신약에야 비로소 왔습니다. 이 믿음은 율법을 대치하는 것으로서 우리에게는 객관적인 것입니다. 이 객관적인 믿음에 따라 하나님께서 우리가 믿도록 의도하신 그리스도를 주관적으로 믿을 때 우리는 믿음의 의를 받습니다. 이 의는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그리스도 즉 하나님께서 정하신 객관적인 믿음에 따라 우리가 주관적으로 믿어 영접한 분으로서 이분이 바로 우리가 영접한 하나님의 의이십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