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3. 13:15
성경말씀 

 (요일1:8~9)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한다면,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또 진리가 우리 안에 있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의로우셔서 우리 죄들을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의 만나

 
어느 자매는 구원받은 초기에 항상 자신은 선한 사람이며, 죄가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녀는 예수를 믿었지만 예수의 피로 자신의 죄가 씻어져야 한다는 느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생명의 실재가 되지 못하고 단지 도덕적으로 숭배 받을 만한 우상이 된 것입니다. 한번은 자매가 집회에서 한 전도자의 간증을 듣게 되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은행 지점장으로 지위가 높고 돈도 많습니다. 상식적으로 저는 이런 가정의 아들로서 금전상 매우 풍족하고 부족함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 알았겠습니까? 제가 종종 도둑질을 하리라고 ...” ‘은행 지점장의 아들이 도둑질하다’라는 이 한마디가 그녀의 양심을 만졌고, 눈이 열리고 내면에서 그녀를 책망하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전에 교직원으로 있을 때 너는 학교의 서적과 조그만 상자를 가져가지 않았느냐?” 이때 그녀는 회개하고 죄를 자백하며 내면의 소리에 응답하여 자신이 몰래 가져온 물건들을 돌려주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그녀는 이렇게 물건을 돌려주는 일이 매우 부끄러웠습니다. 차라리 그 물건들의 가치에 해당하는 돈을 동료 직원에게 대신 돌려주라고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안에서 이것이 용납되지 않자 할 수 없이 자신이 가서 돌려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내면의 음성에 순종하여 물건들을 가지고 학교로 가서 교장 선생님을 찾아 뵙고는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 물건을 돌려 드렸습니다. 이러한 순종의 체험을 통해 그녀는 자신 안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만질 수 있었습니다.
출처 : 온전케 하는 예화들2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3. 13:10
성경말씀 

 (마25:3~4) 왜냐하면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을 가져갈 때에 기름을 가져가지 않았으나, 현명한 처녀들은 등과 함께 그릇에 기름을 가져갔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만나

 
 어떤 사람은 어떻게 현명한 사람이 되느냐고 묻습니다. 주님은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을 가져갈 때에 기름을 가져가지 않았으나 현명한 처녀들은 등과 함께 그릇에 기름을 가져갔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여기에서 ‘등과 함께 그릇에 기름을 가져감’을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어리석은 사람은 예비하지 않았고, 현명한 사람은 예비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예비합니까? 기름을 예비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이나 현명한 사람이나 모두 등을 들었지만, 다른 점은 어리석은 사람은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고 현명한 사람은 그릇 안에 기름을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등과 그릇은 다릅니다. 이 비유는 우리에게 모든 처녀들은 두 곳에 기름을 준비해야 함을 말해 줍니다. 하나는 등 안에 점화된 기름이며, 다른 하나는 등 밖의 그릇 안에 예비된 기름입니다. 자동차를 예로 들면 일반적으로 네 개의 바퀴 이외에 또 하나의 바퀴를 준비합니다. 현명한 사람은 등 안에 기름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릇 안에도 기름을 준비해야 합니다.
출처 : 그리스도인의 생명이 성숙하는 길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3. 13:00
성경말씀 

 (마25:2) 그들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현명하였습니다. 

 오늘의 만나

 
‘다섯’은 ‘사’에 ‘일’을 더한 것으로 성경에서 ‘책임’의 숫자입니다. 주님이 열 처녀를 ‘다섯’과 ‘다섯’으로 나누셨다는 것은 그들 모두 하나님이 더해진 구원받은 사람이며, 하나님이 그들 안에 계심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얻어 우리 안에 하나님이 계신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날마다 하나님 없이 마음대로 대충대충 보낼 수 있지만,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마음대로 대충 생활할 수 없습니다. 만일 당신이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고 당신 안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면 깨어 있지 않아도 하나님은 당신을 내버려 두실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당신 안에 하나님이 당신의 생명과 능력으로 계시는데, 여전히 구원받지 않은 사람과 똑같이 아무렇게나 생활한다면 주님은 당신에게 경고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구원받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합당한 책임을 지기를 원하십니다. 어떤 책임입니까? 바로 현명한 처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받았으나 현명한 사람이 되는가,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가는 우리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가 현명한 사람이 되는가는 하나님이 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출처 : 그리스도인의 생명이 성숙하는 길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1. 20:25
성경말씀 

 (마25:2~4) 그들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현명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을 가져갈 때에 기름을 가져가지 않았으나, 현명한 처녀들은 등과 함께 그릇에 기름을 가져갔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만나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은 네 가지 면이 있으며, 이 네 면에 있어서 자라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처녀의 비유 가운데 특별히 “그들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현명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을 가져갈 때에 기름을 가져가지 않았으나, 현명한 처녀들은 등과 함께 그릇에 기름을 가져갔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열 처녀의 차이점을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참인지 거짓인지의 문제가 아니라 지혜의 문제였습니다. 주님은 열 처녀를 두 부류로 나누셨는데, 다섯은 어리석은 사람이었고 다섯은 슬기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해석가의 말처럼 참되게 구원받은 사람과 거짓으로 구원받은 사람으로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열 명의 처녀는 모두 참되게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주님은 여기에서 참과 거짓을 주의하신 것이 아니라 지혜로운가 어리석은가를 주의하셨습니다. 참과 거짓은 본질의 문제이며,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은 상태의 문제입니다. 그들은 모두 처녀이고 구원받았기 때문에 그들의 본질은 참되고 옳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상태는 서로 다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받은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주님이 먼저 어리석은 사람을 언급하신 것은 어리석은 사람에게 경고하시는 것이 그분의 목표였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슬기로운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교훈이 필요하지 않고 어리석은 사람에게 필요합니다. 주님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깨어 예비하도록 어리석은 사람들을 일깨우십니다.
출처 :그리스도인의 생명이 성숙하는 길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1. 20:20
성경말씀  

(마25:1~4) 그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처녀와 같습니다. 그들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현명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을 가져갈 때에 기름을 가져가지 않았으나, 현명한 처녀들은 등과 함께 그릇에 기름을 가져갔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만나

 
마태복음 25장의 처녀의 비유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세상에서의 신분이 슬기로운 처녀처럼 깨끗하고 단순해야 하며, 빛이 있는 등을 들고 흑암을 비추는 상태여야 하며, 주님을 원하지 않는 이 세상에서 나오는 길을 가며, 주님의 다시 오심을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는 생활을 해야 함을 분명하게 보아야 합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고 이 세상은 그분을 거절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까지도 이 세상에 두지 않고 세상에서 나와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주님이시며 우리의 유일한 신랑이신 분을 영접하기 위해 나와야 합니다. 애석하게도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어떤 신분이며 어떤 상태인지 모릅니다. 우리의 상태를 비춰볼 때 우리는 자신이 마땅히 가져야 할 상태와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슬기로운 처녀들처럼 빛을 발하는 등을 들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주님을 싫어하는 세상에서도 나오지 않았고,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지도 않습니다. 주님은 마태복음에서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신분과 상태와 길과 생활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시작이며,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야 할 생활의 기점입니다.
출처 : 그리스도인의 생명이 성숙하는 길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1. 20:15
성경말씀  

(약2:17~18)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행위가 없다면, 믿음 자체만으로는 죽은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그대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위가 있으니, 행위가 없는 그대의 믿음을 나에게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나는 행위로 나의 믿음을 그대에게 보여 주겠습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오늘의 만나

 
 솔로몬이 왕위에 있을 때는 국력이 강하고 번창하여 먼 나라에서까지 조공을 드리러 왔다고 합니다. 어느 나라에서는 특별히 사자를 보내어 두 바구니의 꽃을 선사하였습니다. 하나는 생화이고 하나는 조화였습니다. 양쪽 바구니의 꽃은 모두 색상이 아름답고 향기가 났습니다. 사자는 자기나라의 기술의 정교함을 과시하는 한편 왕의 지혜를 살펴보고자 솔로몬 왕에게 식별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왕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꽃을 화원에 가져다 놓으라. 내가 당신의 사신과 함께 가서 감상하리라.” 봄빛이 따사롭게 넘치는 화원에는 백 가지 넘는 꽃들이 아름다움을 뽐내며 향기를 날리고, 나비들은 꽃 사이를 날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 솔로몬은 웃으면서 어떤 것이 진짜 꽃이고 어떤 것이 조화인지를 알려 주었습니다. 원래 자연의 꽃은 꿀이 있어서 벌과 나비들이 모여듭니다. 그러나 가짜 꽃에는 가까이하지 않습니다. 사신은 솔로몬의 지혜에 감탄했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꽃과 같아서 일시적으로 진위를 가리기 어렵지만, 실제로는 시험할 수가 있습니다. 진정한 믿음과 진짜 꽃은 생명이 있어서 꽃이 필 때, 아름다운 색상과 매혹적인 향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끌 뿐 아니라 열매도 맺습니다. 비록 각종 꽃과 열매들이 크고 작은 차이는 있지만 결코 그 자체를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행위가 없다면, 믿음 자체만으로는 죽은 것입니다. ...  나는 행위로 나의 믿음을 그대에게 보여 주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스스로 시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 온전케 하는 예화들2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1. 20:05
성경말씀 

 (마25:2~40 그들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현명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을 가져갈 때에 기름을 가져가지 않았으나, 현명한 처녀들은 등과 함께 그릇에 기름을 가져갔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만나

 
 마태복음 25장은 우리에게 그릇 안에 기름을 예비한 슬기로운 처녀를 보여 줍니다. 그들은 대가를 지불하여 자신을 예비한 사람입니다. 대가를 지불하여 기름을 사서 자신을 예비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기름’은 성령 곧 하나님 자신을 표징합니다. 기름을 사는 것은 대가를 지불하여 하나님 자신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사든지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우리가 자신을 예비하려면 반드시 더 많이 성령을 얻어야 하며 하나님을 얻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자녀의 결혼에 대한 일을 처리할 때, 대가를 지불하여 자신의 관점을 내려놓고 자신의 방법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좀더 엄격하게 말한다면 자신의 관점과 방법을 깨뜨려서 하나님이 우리 자신의 관점과 방법 안에 들어오실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대가를 지불하여 기름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일에 있어서 그렇게 대가를 지불하여 하나님께 지위를 내어드리고 기회를 드린다면, 우리는 하나님으로 충만되고 점유될 것입니다. 우리 안은 기름으로 가득할 것이며, 성령으로 가득할 것이며, 하나님 자신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온전히 하나님으로 충만될 그때가 바로 당신과 내가 성숙할 때이며 하나님의 건축이 완성될 때입니다.
출처 : 그리스도인의 생명이 성숙하는 길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1. 19:55
성경의 말씀 

(히12:6~7) 왜냐하면 주님은 사랑하시는 사람을 징계하시고,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시기 때문이다. 징계를 받을 때 여러분은 견디어 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아들처럼 다루십니다.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오늘의 만나

 
 우리는 때로 성령의 감동을 받아 마음에 찔림이 있을지라도 여전히 자신의 관점과 방법으로 일하고, 자신의 생각을 따라 자녀의 결혼에 관한 일을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하나님은 그를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로 대하심으로 손을 펴서 환경으로 그를 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치심으로 하나님의 관점과 방법이 없는 그를 가르치시며 다루십니다. 사업이 잘 안 되거나 건강에 문제가 생기거나 새로 맞이한 며느리가 집안에 어려움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에 의해 찔림을 받고 자녀의 결혼에 대한 일에서 자신이 하나님께 지위를 내어드리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관여하시지 못하도록 완전히 자신의 관점과 방법과 기호와 주장만으로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고통스런 깨달음이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그분의 징계는 우리의 생각과 편견과 선호와 주장을 깨뜨립니다. 파쇄될 때 하나님은 들어오셔서 지위를 갖게 되시고, 그 사람의 관점과 사상 안에 하나님의 성분이 있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은 그 사람의 안에서 밖으로 확장되시고 그 사람의 안에 더 나은 건축의 일을 하십니다. 동시에 그는 더욱 자라고 성숙됩니다. 만약 모든 성도들이 이렇게 계속 하나님께서 건축하시도록 지위를 내어드린다면, 그는 완전히 성숙하는 길에 이를 것이며 새예루살렘이 되는 과정 가운데 있게 될 것입니다.
출처 : 그리스도인의 생명이 성숙하는 길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1. 19:45
성경말씀  

(계3:20) 보아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린다. 누구든지 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오늘의 만나

 
 예를 들어 당신이 실제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영과 하나님의 생명이 당신 안에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당신 자신의 관점과 방법과 생각과 선호와 선택과 주장과 결정 등이 완전히 당신 자신일 때, 하나님의 성분은 조금도 당신 안으로 주입될 수 없습니다. 비록 당신은 구원받은 사람이고 하나님의 영과 하나님의 생명이 안에 있지만, 하나님의 성분은 없고 당신의 생각과 관점만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당신의 생각과 관점과 선호와 선택 안에 들어가실 수 없으며, 당신 안에서 지위를 얻으실 수 없습니다. 당신의 주장과 당신의 결정은 하나님을 문 밖에 계시게 합니다. 비록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있지만 일을 처리할 때 그 안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영이 우리 영 안에 거하지만 우리가 선택하고 결정할 때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지위가 없으십니다. 다시 말해서 구원받은 모든 사람 안에 하나님의 영과 하나님의 생명이 있지만 그들 자신의 생각과 선호와 주장 안에는 하나님의 지위가 없으십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사람의 생명이 자라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건축하실 수 없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출처 : 그리스도인의 생명이 성숙하는 길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1. 19:35
성경말씀  

(창2:7上)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 (고전15:47) 첫 사람은 흙에서 나왔으니 흙에 속한 사람이지만,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오셨습니다. (고후4:7상上) 그러나 우리는 이 보배를 질그릇 속에 담고 있습니다. 

 오늘의 만나

 
 창세기 2장 7절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 때, 땅의 흙으로 만드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7절은 아담이 흙에 속한 사람임을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4장 7절은 창조된 우리를 질그릇이라고 말합니다. ‘질그릇’은 헬라어로 흙으로 만든 그릇인 토기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는 정금의 생명과 본성이 있지만, 밖에는 보석의 형상이 아직 없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변화시키도록 자신을 내어드림이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는 원래의 모습을 가지고 있으며 여전히 ‘흙’의 모습입니다. 구원받은 후에 우리는 이전처럼 그렇게 악한 일을 하며 죄를 짓지는 않을지라도 여전히 여러 부분에서 원래의 모습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많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정금의 생명과 본성이 있지만, 밖에는 보석의 영광스러운 형상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처음에 하나님이 아담을 에덴동산에 두실 때 그곳에는 정금과 보석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흙으로 만든 그 사람을 정금과 보석으로 변화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에덴동산에는 생명나무와 생명 강물이 있었고, 하나님은 아담이 생명나무와 생명 강물의 생명을 받아들여 정금과 보석으로 변화될 수 있기를 원하셨습니다.
출처 : 그리스도인의 생명이 성숙하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