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3. 15:45
성경말씀  

(딤전6:11)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이여, 그대는 이러한 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힘을 다해 추구하십시오. (딤후2:22)그대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을 부르는 사람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추구하십시오. 

 오늘의 만나

 
 디모데 전,후서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피하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여, 그대는 이러한 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힘을 다해 추구하십시오.”(딤전6:11) 디모데는 돈을 사랑하는 것을 피해야 했으며, 그에 따른 악도 피해야 했습니다. 그는 이익을 얻으려고 다르게 가르치는 타락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서도 떠나야 했습니다. 그는 한 방향에서 또 다른 방향으로 돌아서서 악한 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을 추구해야 했습니다. “그대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을 부르는 사람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추구하십시오.”(딤후2:22) 악한 것을 피하고 순수한 것을 추구하라는 두 번째 권면은 우리가 얼마나 높은 표준을 유지해야 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 말, 사물을 보는 방식, 동기, 마음에서 순수해야 하며 심지어 우리의 분노에서까지도 순수해야 합니다.
출처 : 생명 메시지2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3. 15:40
성경말씀  

(마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히3:12) 형제 여러분, 여러분 중에 누구든지 불신의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오늘의 만나

 
 우리가 하나님의 집에서 합당하게 행동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집이라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구약에서 여러 차례 ‘살아 계신 하나님’이라고 불리셨습니다(신5:26, 수3:10, 단6:20, ...). 또한 그분은 신약의 아홉 권에서도 이 칭호로 언급되십니다(마16:16, 행14:15, 히3:12, ...). 베드로는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를 깨달았을 때, 그는 그분을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렀습니다. 히브리서 3장에서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권면을 받습니다. 또한 히브리서 9장에서 그리스도의 피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기 위하여 죽은 행실에서 벗어나도록 우리의 양심을 정결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출처 : 생명 메시지2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3. 15:35
성경말씀  

(요일1:7) 하나님께서 빛 안에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안에서 행하면, 우리는 서로 교통을 갖게 되고, 그분의 아들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온갖 죄에서 깨끗하게 합니다. (9)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의로우셔서 우리 죄들을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의 만나

 
 우리의 생활을 변화시키는 자백이 있습니다. 교통 가운데 있을 때에 빛이 우리를 관통하여 비추면서 참된 상황을 드러냅니다. 그럴 때 우리는 회개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눈물을 흘리며, 자백하고 예수의 피로 깨끗하게 됩니다. 참된 자백은 내적인 빛이 드러냄으로부터 나옵니다. 지식에 따라서만 자백한다면 “오 주여, 한담한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면 전처럼 한담을 계속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 안에서 한담하는 것에 빛이 비추어 자백한다면 그러한 자백은 우리의 입술을 닫게 할 것이며, 또 다른 헛된 말이 나올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서 죄들과 불의가 모두 언급됨을 주의하십시오. 우리의 행동은 죄가 없을지 모르나 이 빛 아래서는 이 형제에게 잘못 행했으며, 저 자매를 속였고, 이 점에서 불공정하며, 다른 점에서는 불의했음을 볼 것입니다. 우리의 자백은 단지 양심만이 아닌 존재의 매우 깊은 곳을 만질 것이고 우리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의 10절은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하나님을 거짓말하시는 분으로 만드는 것이고, 또 그분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있지 않은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죄가 있을 뿐 아니라 또한 범죄했습니다. 교통 안에 있다면 우리에게 죄가 있을 뿐 아니라 또한 범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 두렵고 떨어야 할 것입니다.
출처 : 생명 메시지1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3. 15:25
성경말씀  

(마4:4)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성경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렘15:16) 만군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오늘의 만나

 
 마태복음 4장 4절과 예레미야 15장 16절은 성경이 양식과 같은 가치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 줍니다.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을 수 있습니까? 먹는다는 것은 음식을 우리 안에 취하여 들여 그것을 소화시켜 우리의 부분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다는 것은 우리 온 존재를 훈련하여 말씀을 누리는 가운데 기도로 취하여 들이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서에 있는 이 구절은 말씀이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말씀을 기도로 읽기를 계속하되 그것이 우리의 누림과 즐거움이 될 때까지 해야 하며, 그럴 때 우리는 그것을 받아 먹는 것입니다.
출처 : 생명 메시지1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3. 15:20
질문  
그리스도인이 된 지 수년이 되었으나 안으로부터의 변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왜 여전히 성질이 나며, 그래도 변화되기를 기대해야 할까요? 

 답변

 
  나는 당신의 문제를 충분히 이해합니다. 어머니는 날마다 자녀들을 돌보지만 단지 약간의 변화를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어머니는 자녀들을 자라게 하기 위해 어떤 일을 의도적으로 하지 않고 다만 그들을 합당하게 먹이고 그들의 행동과 운동과 수면을 규제하는데, 그들은 조금씩 변화됩니다. 결국 그들이 장성하게 되는 때가 올 것입니다. 왜 우리 그리스도인의 성장이 방해를 받을까요? 이것은 우리가 말씀을 취하여 들이지 못하는 데서 옵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이 불충분합니다. 만일 집회의 주요한 내용이 기타를 치고 찬송가를 부르는 것이라면 우리는 즐겁게 보낼지 모르지만 우리 안에 변화되는 것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마치 우리 인간 생명이 먹고 마시고 잠자고 호흡하기를 요구하는 것처럼, 영적인 생명을 위해서도 우리는 반드시 주님을 접촉하고 그분의 말씀을 취하여 들여야 합니다. 우리의 집회 또한 반드시 단단한 음식으로 우리를 공급해야 합니다. 그 결과는 변화로서 어떤 외적인 행함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직 생명 공급이 속에서부터 우리 안에 분배됨으로 말미암은 변화일 것입니다. 우리는 변화될 것입니다.
출처 : 생명 메시지1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3. 15:05
성경말씀 

 (빌1:12)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항상 순종한 것처럼,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뿐만 아니라 지금처럼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더 순종하여, 두려움과 떨림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내십시오. 

 오늘의 만나

 
 매일 아침 우리는 일어나자마자 주님께로 돌이켜서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주여, 당신을 누릴 수 있도록 새 날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종일토록 나를 일깨워 나 자신을 거절하며, 나 자신을 신뢰하지 않으며, 나 자신에 의해 살지 않게 하소서. 당신에 의해 살도록 나를 강화시키소서. 이 한 날, 당신을 나의 모든 것으로 취하고, 포도나무 안의 가지로서 당신 안에 거함으로 당신을 살아내게 하소서.” 종일토록 이것이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직업이나 자녀를 위해 또는 교통사고에서 지켜지도록 너무 많이 기도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모든 것을 돌보십니다. 다만 주 안에서 행하는 이 한 가지 문제를 관심하십시오. 그리스도에게서 미끄러져 나가 원래대로 우리 자신 안에서 살거나, 우리 자신에 의해 일 하거나, 우리 자신 안에서 말하거나, 우리 자신에 의해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기가 너무 쉽기 때문에 바울이 우리에게 ‘두려움과 떨림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내십시오’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심지어 매시간 그리스도 밖에 있는 모든 것에서 구원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 밖에서 말하거나, 그분을 떠나서 질문에 답하거나, 그분 안에서가 아닌 우리의 느낌 안에서 반응하지 않도록 두렵고 떨림으로 즉각적인 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
출처 : 생명 메시지1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3. 15:00
성경말씀  

(마4:4)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성경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오늘의 만나

 
성경은 양식에 비유됩니다. 양식은 이해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먹기 위한 것입니다. 만일 음식점에 가서 다만 메뉴를 읽고서 식사를 마쳤다고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말씀을 얼마나 먹어 왔습니까? 여러분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을까 두렵습니다! 필요한 것은 매일 말씀의 ‘아침 식사’를 하는 것입니다. 약해서 이것을 규칙적으로 할 수 없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이 ‘아침 식사’는 비록 당신이 그것에 대해 느낌이 없을지라도 영양을 공급하고, 빛을 비추고, 물을 주고, 강화시킬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생활에 대해 나태하지 마십시오.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26절과 27절에서 “그러므로 나는 이와 같이 달리되 목표가 분명하지 않은 것처럼 하지 않고, 이와 같이 권투하되 허공을 치는 것처럼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는 나의 몸을 쳐서 노예로 삼습니다. 이것은 내가 남들에게는 전파하면서도 정작 나 자신이 시험에 견디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만일 당신이 나태하고 풀어진 그리스도인이라면 시험에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출처 : 생명 메시지1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3. 14:55
성경말씀  

(골3:16상上) 온갖 지혜를 사용하여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안에 풍성히 거하도록 하되 ... 요6:63下 내가 여러분에게 한 말이 영이요 생명입니다. 

 오늘의 만나

 
 그리스도는 우리의 분깃이요, 우리의 생명이며, 우리의 영광이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그분을 만질 수 있습니까? 골로새서 3장 16절에서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안에 풍성히 거하도록 하되”라고 말합니다. 여기의 ‘거하다(dwell=거주하다)’는 헬라어에서 ‘거하다(abide)'보다 더 견고한 단어입니다. 그 어근이 집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처를 정하게 해야 합니다. 여기에 그분을 누리는 열쇠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추상적이고, 비밀하며, 만질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성경은 만질 수 있고, 견고하며,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생명주는 영으로서 성경의 말씀 안에서 우리의 양식으로 체현되십니다. 여러분은 이제 매일 말씀 안에 들어가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반드시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해야 합니다. 말씀을 그냥 읽지만 말고, 당신의 영으로 기도하십시오. 그렇게 하여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당신 안에 거처를 정하게 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말씀 안에 체현되시고 말씀이 당신 안에 체현되심으로써 당신이 그분을 살게 될 것입니다. 만일 그분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그분을 소화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분을 살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그분의 말씀으로 적셔질 때 곧 그분 자신으로 적셔질 것입니다.
출처 : 생명 메시지1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3. 14:45
성경말씀 

 (요6:51上)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떡이니, 누구든지 이 떡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입니다. (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었고, 내가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입니다. 

 오늘의 만나

 
 이 시점에서 떡은 살이 됩니다. 떡은 식물의 생명에 속하고 오직 먹이기 위한 것이지만, 살은 동물의 생명에 속하고 먹이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구속하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타락하기 전에 주님은 생명나무이셨는데, 이것은 오직 사람을 먹이시기 위한 것입니다(창2:9). 그러나 사람이 죄에 빠진 후에 주님은 어린양(요1:29)이 되셨는데, 이것은 사람을 먹이실 뿐 아니라 구속하시기 위한 것입니다(출12:4, 7~8). 피와 살의 분리는 죽음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주님은 그분의 죽음 즉 그분께서 죽으실 것을 분명히 나타내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 그분의 몸을 주시고 그분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주님의 살을 먹는 것은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몸을 주심으로 이루신 모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주님의 피를 마시는 것은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그분께서 십자가 위에서 행하신 것을 믿어서, 구속을 이루신 그분을 우리의 생명과 생명 공급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출처 : 감추어진 만나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3. 14:40
성경말씀  

(벧전2:5) 그러면 여러분 자신도 살아있는 돌들로서 영적인 집으로 건축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영적인 희생 제물을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 체계가 됩니다.  

오늘의 만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는이들인 우리는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돌들이며, 이것은 거듭남과 변화를 통한 것입니다. 우리는 원래 진흙으로 창조되었습니다(롬9:21). 그러나 거듭날 때에 우리는 신성한 생명의 씨를 받았으며, 이 생명의 씨가 우리 안에서 자람으로써 우리는 살아있는 돌들로 변화됩니다. 베드로가 주님께 돌이켰을 때에 주님은 그에게 베드로 곧 돌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주셨습니다(요1:42). 베드로가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를 받았을 때에 주님은 그분 자신이 반석 곧 돌이시라는 더 전진된 계시를 주셨습니다(마16:16~18). 베드로는 이 두 가지 일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그분의 믿는이들이 모두 하나님의 건축을 위한 돌들이라는 깊은 인상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믿는이들에 대해 갖고 계신 목표는 살아있는 돌들-따로 떨어져 있거나 흩어진 돌들도 아니고, 다만 한 무더기로 쌓여있는 돌들도 아닌, 서로 건축된 돌들-로 건축된 집을 얻으시는 것입니다.
출처 : 감추어진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