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7. 18:55
성경말씀 

(요20:17) ...“...그대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내가 나의 아버지 곧 여러분의 아버지, 나의 하나님 곧 여러분의 하나님께로 올라간다고 말씀하십시오.” 

 오늘의 만나

 
 부활 이전에 주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사용하셨던 가장 친밀한 호칭은 ‘친구’였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후에 그분은 그들을 ‘형제들’이라 부르기 시작하셨는데 이것은 그분의 부활을 통하여 생명을 나눠 주는 주님의 죽음에 의해 해방된 신성한 생명으로 제자들이 거듭났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한 알의 밀알로서 땅에 떨어져 죽으시고 자라나셔서 그분의 몸인 한 떡을 산출하시기 위해 많은 밀알을 맺으셨습니다. 그분은 아버지의 독생자 곧 아버지의 개인적인 표현이셨습니다. 아버지의 독생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많은 형제들 가운데 맏아들이 되셨습니다. 그분의 많은 형제들은 하나님의 많은 아들들이며 아들 안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의 단체적 표현인 교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긍극적인 뜻입니다. 많은 형제들은 아버지의 생명의 번식이며 신성한 생명 안에서의 아들의 번성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부활 안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 이뤄집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7. 18:45
성경말씀  

(마16:24~2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십시오. 왜냐하면 누구든지 자기 혼 생명을 구하고자 하면 혼 생명을 잃을 것이고,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자기 혼 생명을 잃으면 혼 생명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만나

 
 우리의 자아를 부인하는 것은 우리의 혼 생명 곧 천연적인 생명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단지 고난받는 것만이 아니라 또한 죽이는 것입니다. 그것은 범죄자를 죽이고 끝냅니다. 그리스도는 먼저 십자가를 지셨고 다음에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그분의 믿는이들인 우리는 먼저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고 그다음에 십자가를 집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우리의 자아와 천연적인 생명과 옛사람을 끝내기 위해 그리스도의 죽음의 죽이시는 역사 아래 머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자아를 부인하고 주님을 따르게 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하시기 전에 제자들은 주님을 외적으로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부활하신 후 지금 우리는 그분을 내적으로 따릅니다. 그분은 부활 안에서 생명주는 영이 되시어 우리 영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안에서 그분을 따릅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7. 18:35
성경말씀  

(고후8:9)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부유하셨지만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는데, 이것은 그분께서 가난하게 되심으로 여러분을 부유하게 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15) 이것은 성경에 “많이 거둔 사람도 남은 것이 없었고, 적게 거둔 사람도 부족한 것이 없었다.”라고 기록된 것과 같습니다. 

 오늘의 만나

 
부요하신 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신 것이 우리에게는 은혜입니다. 같은 원칙으로 우리가 그들을 위하여 우리의 재물을 희생하는 것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은혜입니다. “많이 거둔 사람도 남은 것이 없었고, 적게 거둔 사람도 부족한 것이 없었다.” 이 말씀은 출애굽기 16장에서 인용한 구절로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 가운데 만나를 균등하게 공급하신 하나님의 방법을 가리키며 여기서는 가난한 성도들에게 물질적인 것을 공급하는 데 적용됩니다. 만나는 하나님의 백성의 매일의 공급을 위하여 거두어졌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많이 거두었든지 얼마나 적게 거두었든지 그들에게는 족한 공급이었습니다. 만나를 거두는 것은 그들의 의무였으며 그들은 탐내지 말고 자기의 의무를 다해야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탐내거나 자신을 위하여 돈을 간직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주든지 주지 않든지 결과는 동일한 것이며 하나님은 그분의 주권으로 그분의 백성들 가운데서 부에 대해 하늘에 속한 균형을 적극적으로 시행하십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7. 18:30
  <아침의 누림> A.요셉은 목자였다. B.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아들이었다. c. 요셉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자기 형제들을 섬기기 위해 보내어졌다. D.요셉은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고 박해를 받으며 배반당했다. 창37:2-4  요셉은 십칠 세 소년이었을 때에 자기 형들과 함께 양 치는 일을 하였다. ....이스라엘은 다른 아들들보다 요셉을 더 사랑하였다. 왜냐하면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요셉에게 채색옷을 지어 입혔다. 그의 형들은 아버지가 다른 형제들보다 요셉을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 그가 미워서 그에게 다정한 말을 할 수 없었다. 요셉은 성숙한 성도의 조성된 면을 묘사하므로 그리스도의 완전한 예표이다. 만일 여러분에게 그리스도로 조성된 면이 완전하지 않다면, 분명 여러분의 어떤 부분도 완전할 수 없다. 타락하고 구원받고 부르심을 받고 구속되고 거듭난 우리 안에는, 그리스도로 조성된 부분외에는 완전한 것이 없다. 할렐루야 ! 우리안에는 그리스도로 조성된 부분이 있다. .....성숙한 성도들 안에 그리스도로 조성된 이 면은 완전하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리스도를 완전하게 보여주는 예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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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7. 18:25
성경말씀 

 (마2:11) 그들이 집에 들어가, 그 아기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에게 경배하고, 보물 함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오늘의 만나

 
 박사들이 그리스도께 드린 예물들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었습니다. 상징적으로 금은 신성한 본성을, 유향은 부활의 향기를, 몰약은 죽음의 향기를 상징합니다. 의심할 바 없이, 박사들이 이 예물들을 드린 것은 하나님의 영의 감동을 받아 행한 것으로서, 그리스도의 신성한 본성의 가치와 그분의 부활과 죽음의 소중함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수의 전기인 사복음서에서는 보물들로 상징된 것들이 그분의 일생 동안 내내 발견됩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7. 18:15
성경말씀 

(눅7:47~50) 그러므로 내가 그대에게 말합니다. 이 여인의 많은 죄들이 용서받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녀가 많이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용서받은 것이 적은 사람은 적게 사랑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 ”그대의 죄들이 용서받았습니다.“라고 하시자, 함께 상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속으로 말하였다. ‘이 사람이 누구이기에 죄들도 용서해 주는가?’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 말씀하셨다. ”그대의 믿음이 그대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십시오.“ 

 오늘의 만나

 
 누가복음 7장의 그 여자가 주님을 많이 사랑한 것은 그녀의 많은 죄가 용서되었다는 증거였고 시몬이 적게 사랑한 것은 그가 용서받은 것이 적다는 것을 증거했습니다. 용서받은 여인은 구주를 향한 사랑이 있었을 뿐 아니라 사랑으로 일하는 믿음과 평안을 가져오는 믿음도 있었습니다. 그녀를 구원한 믿음은 사랑 안에서 그녀를 구주께로 이끌었고 그녀를 평안히 갈 수 있게 했습니다. 믿음과 사랑과 평안은 구주의 구원을 체험하고 누리기 위한 세 가지 중요한 미덕입니다. 믿음은 구주와 그분의 구원하는 능력과 미덕을 앎으로써 생깁니다. 사랑은 이 믿음에서 오며 또 평안을 가져옵니다. 그 결과 우리는 구주를 따릅니다. 우리가 생활 가운데 구주를 따를 때 믿음과 사랑은 우리에게 평안을 가져와 우리가 주님의 생명을 누리며 그 생명 안에서 자라도록 해 줍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7. 18:10
성경말씀
 
(마11:28~30) 수고하고 짐을 진 사람들이여, 다 나에게로 오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안식을 줄 것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허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나에게서 배우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혼이 안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의 멍에는 편하고, 나의 짐은 가볍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만나

 주님은 모든 반대 가운데서도 온유하셨으며 모든 배척 가운데서도 마음이 겸손하셨습니다. 그분은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전적으로 복종시키셨으며 자신을 위해서는 어떤 것도 하기를 원치 않으셨고 무언가 얻기를 기대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에 안식이 있으셨고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만족하셨습니다. 주님의 멍에를 메는 것은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은 율법이나 종교의 어떤 의무감에 의해 규제되거나 통제받는 것이 아니고 어떤 일에 예속되는 것도 아니며, 하나님의 뜻에 제한받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렇게 사시면서 다만 아버지의 뜻만 주의하셨습니다. 그분은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전적으로 복종시키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그분 자신에게서 배우라고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주님의 멍에는 아버지의 뜻이고 그분의 짐은 아버지의 뜻을 수행하는 일입니다. 그런 멍에는 편하여 결코 괴롭지 않으며 그런 짐은 가벼워 결코 무겁지 않습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7. 18:05
성경말씀 

(골3:16) 온갖 지혜를 사용하여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안에 풍성히 거하도록 하되, 시와 찬송과 영적인 노래들로 서로 가르치고 권면하고 여러분의 마음에서 은혜로 하나님께 찬송함으로써 거하도록 하십시오. 

 오늘의 만나

 
 어느 도시에 회교를 믿는 한 여인이 복음을 한 번 듣고 주님을 만나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후에 어떤 그리스도인이 그녀에게 성경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그녀는 성경을 아주 귀하게 여겨서 상자에 담아 옷장에 넣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항상 꺼내어서 혼자 방 안에서 조금씩 자세히 읽어 나갔습니다. 어느 날 그 그리스도인이 이 일을 알고 무슨 이유로 그렇게 하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그녀가 말하기를 “우리 가족은 내가 성경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면 반드시 가져가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성경을 읽고 묵상하여 마음 속에 감추어 놓는다면 그들이 가져가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골로새서 3장 16절에서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안에 풍성히 거하도록 하되’라고 말합니다.
출처 : 온전케 하는 예화들1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7. 18:00
성경말씀 

(눅1:46~47) 그러자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영이 하나님 나의 구주에 대하여 기뻐한 것은

오늘의 만나

 마리아의 시적 찬양은 구약에서 인용된 많은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마리아가 구주께서 육신을 입으시기 위한 통로가 될 자격이 있는 경건한 여인이었으며 예수께서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에 대한 지식과 사랑이 가득한 가정 안에서 자라셨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먼저 마리아의 영이 하나님에 대하여 기뻐했으며, 그런 다음 혼이 주님을 확대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그녀의 찬송은 그녀의 영에서 나와 그녀의 혼을 통해 표현되었습니다. 그녀의 영은 구주이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쁨이 충만했고 혼은 주님을 확대하기 위해 그러한 기쁨을 나타냈습니다. 마리아는 영 안에서 살고 행하였습니다. 그녀의 영이 하나님에 대하여 기뻐한 것은 구주이신 하나님을 누렸기 때문이며 혼이 주님을 확대한 것은 여호와 곧 위대한 ‘나는...이다’이신 주님을 높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7. 17:50
성경말씀 

(요6: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누구든지 이 떡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입니다. (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었고, 내가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입니다. 

 오늘의 만나

 예수님은 요한복음 6장에서 그분이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인 것과 그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떡’은 식물의 생명에 속하고 오직 먹이기 위한 것이지만, ‘살’은 동물의 생명에 속하고 먹이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구속(救贖)하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타락하기 전에 주님은 생명나무이셨는데, 이것은 오직 사람에게 먹이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죄에 빠진 후에 주님은 어린양이 되셨는데, 이것은 사람을 먹이실 뿐 아니라 구속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피와 살의 분리는 죽음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주님은 그분의 죽음 즉 그분께서 죽으실 것을 분명히 나타내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 그분의 몸을 주시고 그분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분의 살을 먹는 것은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그분의 몸을 주심으로 이루신 모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분의 피를 마시는 것은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그분의 피를 흘리심으로 성취하신 모든 것을 믿음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살을 먹고 그분의 피를 마시는 것은 곧 구속을 이루신 그분을 우리의 생명과 생명 공급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출처 : 내 마음의 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