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12. 05:00

 ‘주의 회복’은 그리스도의 진리 회복을 의미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에 의해 세워진 교회

기본교리 기성교회와 크게 다르지 않아

 

한국에는 66년 시작 100여개 교회 있어

지방교회 또는 회복교회로 알려져 있는 한국(지방)교회들이 지난 3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총회 사이비이단대책위원회 앞으로 이단결의 철회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예장통합측은 1991년 제76회 총회에서 지방교회를 위트니스 리가 이끌고 있는 신일합일주의, 삼위일체론의 양태론, 기독론, 인간론, 교회론에 문제가 있다며 ‘이단’이라는 연구보고서를 받은 바 있다. 그러면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대체로 그 이름 조차 생소한 ‘지방교회’는 무엇이며, 무엇을 믿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중국의 평신도 전도자 워치만니의 ‘주의 회복’의 유래 
워치만 니(Wachman Nee)는 1903년 중국 복주(福州)에서 2대째 그리스도인인 부모로부터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복건성(福建省) 북부의 회중교회의 목사였다. 워치만 니는 성공회가 세운 ‘앵글리칸 트리니티 칼리지’를 졸업했는데 그는 고등학생이었던 17세에 구원의 체험을 가졌다. 워치만 니는 신학교에 다닌 일은 없지만, 그리스도와 그 영의 일과 교회에 관한 풍부한 지식과 체험을 갖고 있었다. 특히 영어를 잘했던 그는 1세기 이후의 탁월한 기독교 저술들 약 삼천 권을 수집하여 독파할만큼 한국적이었다. 그리고 26세때 ‘영에 속한 사람’이라는 책을 써 당시 교계를 놀라게 했다. 워치만 니가 1922년에 시작한 ‘주의 회복’은 기독교가 역사속에서 잃었던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를 회복한다는 것이였다. 그리고 워치만 니와 함께 동역했던 위트니스 리는 1905년 중국 북부 연대에서 태어나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자랐다. 그는 19세에 신생(新生)의 체험을 한 후 일생을 복음전파에 헌신했다. 그는 문서를 통해 워치만 니를 알게 되었고 1934년 상해로 이주하여 정식으로 워치만 니와 동역을 시작했다. 그들은 함께 수고하고 고난 받고 사역을 확장시키고 계시를 받고 부흥을 일으켰다. 이 두 사람의 열정적 사역으로 1949년까지 중국 본토에 약 400여개의 지방교회들이 세워졌다. 그들은 교회를 ‘하나님의 몸’이라 한다. 워치만 니는 1949년 중국이 공산화 되자 위트니스 리를 대만으로 보내 400여명에 불과했던 대만 섬의 성도 수를 5년 사이에 4만명으로 증가시켰다. 본토에 남아 있던 워치만 니는 1952년 3월에 지방교회들의 인도자이며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로 공산당에 의해 체포되었다. 그는 20년간 투옥되었다가 1972년 5월30일 감옥에서 죽었다. 순교한 것이다. 그리고 1962년 위트니스 리는 대만에서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는 그후 1997년 92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수많은 신구약성경 강해와 주석서를 남겼다. 그 결과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약 3천개 이상의 지방교회들(중국 본토 제외)과 약30만명의 신도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 한국에 전래된 지방교회 
한국에서의 지방교회 운동은 1966년 9월에 대만에서 권익원(일명 왕중생)이라는 전도자가 귀국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일제시대 때 19세의 나이에 부친을 따라 중국에 갔다가 중국군에 입대하였으며, 중국의 공산화 이후 대만으로 건너갔다. 그가 폐병으로 입원해 있던 중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다. 그 후 그는 그가 받은 복음에 대한 부담을 안고 30년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주의 회복 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집회를 열고 모든 부정적인 것을 끝내는 십자가와 우주안에 오직 그리스도만이 생명이심과 그리스도의 표현인 교회를 강조했다. 그로부터 시직된 한국지방교회는 현재 약100여개가 있고, 1만5천여명의 성도들과 200여명의 사역자들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지방교회측은 밝히고 있다. 지방교회는 하나님의 뜻이 생명되신 그리스도와 그의 몸인 교회를 통해 성취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3. 지방교회의 신앙과 생활 
지방교회는 초기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가 자유주의에 대항하여 수립한 근본주의 신앙인 △성경의 무오성 △그리스도의 성육신 △대속적인 죽음 △육신을 입은 부활 △기적의 인정 또는 재림 소망 등의 핵심교리를 믿고 고백한다. 특히 각 주제별 성경적 신앙고백이 ‘신약의 결론’이란 총 8권의 책자(하나님, 그리스도, 성령, 믿는 이들 ① ②, 교회, 왕국, 새예루살렘 = 한국복음서원 발간) 안에 약 4600쪽의 방대한 분량으로 체계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다. 특히 본질적 삼위일체와 경륜적 삼위일체에 대한 균형있는 인식, 정통 교부 아타나시우스 등이 언급한 바 있는 성도의 신화(神化) 교리,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인식함과 십자가에 대한 주관적인 적용,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의 관점으로 보는 것 등은 기성교회가 주목할만한 확신있는 교리이다. 또 각 지방마다 교회행정을 책임지는 복수의 장로들이 있고, 이들은 이러한 제반 교회실행들이 성경을 중심으로 질서와 조화 가운데 이뤄지도록 감독하고 여러 방면에서 성도들을 온전케 하는 사역을 감당한다. ‘목사’직을 가진 목회자가 따로 없고 ‘장로’가 기성교회 목회자의 역할을 맡고 있는 셈이다. 지방교회란 말은 성경에서 초대교회가 고린도에 있는 교회, 에베소에 있는 교회, 빌립보에 있는 교회 하는 식으로 각 지방에 하나의 교회를 세웠다며, 오늘날에도 각 지방에 하나의 교회를 고집하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이들은 각 지방에 하나의 교회아래 각 지역에 여러 개의 집회소를 두고 있다. 지방교회는 예장통합측의 위트리스 리와 (지방)교회에 대한 이단결정을 철회되어야 한다며 해지 요청서와 함께 총회 이대위에 관련 자료를 제시했다. 지방교회는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주의 회복’이 활동하고 있지만, 어느 나라에서도 워치만 니나 위트니스 리를 이단이라고 말하는 교회가 없는데, 유독 한국교회만이 이단이라 한다며, 지방교회를 이단시 하는 것은 원론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통합측 이대위가 어떤 재론 결과를 내어놓을지가 주목된다.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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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연합신문650호_edit.pdf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11. 05:00

찬송가 557 - 주님을 진정 사랑합니다 - 지방교회들 찬송가

주님을 진정 사랑합니다. 드릴 것 없으나

모든 사랑을 주께 바치리 주 안에 살면서

난 아무 것도 아닐지라도

비워서 주님 자신 채우리

나에게 필요한 건 주님 뿐 비할 데 없도다

강물이 흘러내림과 같은 주님 주신 축복

생명의 근원 흐르는 은혜

내 삶의 중심 샘물과 거처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11. 05:00

말씀과각주 328 - 로마서 8장 39절 - 지방교회들 말씀

말씀과각주 328 - 로마서 8장 39절 - 지방교회들 말씀

로마서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을 것입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11. 05:00

지체들의누림글 95 - 온유라는 단어 - 지방교회들 누림글

온유한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땅을 상속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마5:5).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11. 05:00
지방교회 변호와 확증 - 복음의 확증 (4)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생명 주시는 영의 동일시


우리의 사역의 중요한 초점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는 이들의 체험이며, 우리는 그러한 체험의 관점에서 고린도전서 15장 45절이나 고린도후서 3장 17절과 같은 구절들을 해석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부활 안에서 믿는 이들에게 오시며, 생명 주시는 영 안에서 생명 주시는 영을 통하여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을 위한 모든 활동을 수행하신다고 이해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신약의 서신서에서 그리스도와 그 영에 대한 분명한 동일시를 발견하는데, 거듭 말하지만 이것은 신성한 삼일성 안에서의 세 위격의 구별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세 위격이 믿는 이들 안에서 상호 내재의 방식으로 존재하시고 운행하심에 따른 것입니다. 위트니스 리는 그리스도와 그 영이 부활 안에서 동일시되시는 것에 관해 여러 차례 말했습니다. 아래의 발췌문은 이 주제에 대한 그의 가르침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5절은 “마지막 아담은 생명 주시는 영이 되었나니”라고 말한다. 마지막 아담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예수님이시다. 생명 주시는 영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성령이시다. 성령 외에는 생명을 주는 또 다른 영이 없다. 이 구절은 성경에서 마지막 아담이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한다 … 고린도후서 3장 17절은 “주는 그 영이시니”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주는 누구이신가? 의심할 여지 없이 예수님이시다. 그렇다면 그 영은 누구이신가? 물론 성령이시다. 여기에서 주는 예수님이시고, 그 영은 성령이시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 구절에서 “주는 영이시니”라고 말한다. 주 예수님을 그 영이시라고 말하는 것은 전적으로 성경적이다!

The Spirit of Christ

앤드류 머레이 (Andrew Murray) 는 <그리스도의 영> (The Spirit of Christ) 이라는 자신의 책 25장에서 “주 예수님은 높여지시어 그 영의 생명 안으로 들어가셨을 때 ‘주 영’이 되셨다.”라고 말했다. <삼일성에 관한 진리 > ,영문판 14-15쪽 제자들 안으로 자신을 거룩한 숨으로 내쉬신 그리스도는 생명 주시는 영이시다. 생명 주시는 영이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숨이시다. 어떤 신학자들은 그 영이신 그리스도, 즉 숨이신 그리스도를 언급하기 위해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신약의결론 - 성령

모든 과정을 완성하신 후에 그리스도는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으며, 이 생명 주시는 영은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이시다. 이러한 분, 곧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는 그 영으로서 제자들에게 오셔서 영이신 자신을 제자들 안으로 불어 넣으셨다…요한복음 20장 22절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는 제자들 안으로 들어가시어 그들의 영적인 생명과 존재의 신성한 본질이 되셨다. <신약의 결론 성령>, 194-195쪽

위의 예문은 위트니스 리의 사역의 글에서 일부를 발췌한 것으로서, 만일 이것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생명 주는 영의 관계에 대한 그의 가르침의 전부라고 오해한다면 이러한 글이야말로 그가 명백한 양태론자라는 ‘증거’로 채택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삼일성에 대해 심도 있는 설명을 시도하는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 교사들은 우리가 받는 오해와 유사한 오해를 받을 것입니다. 신학의 역사에 정통한 독자들이라면 이레니우스 (Irenaeus), 터툴리안 (Tertullian), 어거스틴 (Augustine) 그리고 정통성에 의심의 여지가 없는 다른 교사들의 글도 정도에서 빗나간 것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으나, 그들의 글의 다른 부분에는 그들의 정통성을 확증해 주는 균형잡힌 언급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위트니스 리 역시 이와 같은 균형잡힌 언급들을 하였으나, 근거 없이 그를 이단이라고 몰아세우기 위해 소위 ‘증거’로 출판한 책자들에서는 위트니스리의 그러한 균형잡힌 언급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그리스도와 그 영에 대한 그의 온전한 관점을 보여주는 두 예문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요한복음 강해 3편

바로 이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계신 주이시며 동시에 우리 안에 계신 그 영이시다. “지금 주는 그 영이시니” (고후 3:17). 주님으로서 그분은 하늘에 계신다. 그 영으로서 그분은 우리 안에 계신다. 하늘에 계신 분으로서 그분은 그분의 통치권과 머리의 권위와 제사장 직분을 행사하고 계신다… 그분이 주님으로서 수행하시는 모든 것을 그분은 그 영으로서 우리에게 적용하신다. <그리스도의 하늘에서의 사역 >, 95-96쪽 또 다른 보혜사이신 그 영에 관한 말씀과 그리스도의 숨이신 그 영에 관한 말씀을 읽는 어떤 이들은 이렇게 물을 수 있다. “당신은 그리스도와 그 영이 구별된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까? 당신은 그리스도와 그 영이 둘이라고 믿지 않습니까?” 물론 나는 외적이고 객관적인 면에서 볼 때 그리스도와 그 영이 둘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또 다른 방면인 내적이고 주관적인 면에서 볼 때 두 번째 보혜사이신 그 영은 첫 번째 보혜사이신 그리스도의 숨이시다. 따라서 내적인 방면을 조망할 때 그리스도와 그 영은 하나이시다. <요한복음 강해 속편 3권>, 273쪽

많은 분석을 하지 않더라도 위트니스 리가 그리스도와 그 영이 구별되신다는 관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비록 신학적인 체계화 작업에는 역행하는 것 같지만, 신약의 서신서들과 같이, 자신의 사역의 커다란 강조점인 그리스도인의 체험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종종 생명 주시는 영과 동일시되신다고 이해했고 또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에 대한 비판 중에서 그리스도와 그 영의 동일시에 관한 것이 많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주제에 대한 다른 이들의 언급을 추가해서 소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이 주제에 관한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이 전통적인 가르침과 다르거나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될 수도 있으나, 위트니스 리 외에도 그와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 사람들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제임스 던 (James D. G. Dunn) 은 주목할 가치가 있습니다. 이분은 우리 시대에 존경받는 신학자 중 한 분으로서 위트니스 리가 많은 주의를 기울였던 성경 구절들 중 일부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혼적인 존재의 모형이라면, 그리스도 곧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영적인 존재의 모형이다…요약하자면 45절 하반절은 이에 대한 증거 중 하나인데, 왜냐하면 바울은 높이 올려지신 그리스도께서 영적이면서도 몸이 있는 그러한 존재의 형태로 새로운 인성의 본과 선구자이시라는 것을 [생명 주시는 영]에 대한 체험을 통해 확신하게 되었기때문이다.

Grand Rapids, MI: W. B. Eerdmans

…그들 모두가 체험한 생명 주시는 영은 다시 사신 예수, 마지막 아담이시다… 바울은 높여지신 예수를 영적인 존재…또는 영적인 범위나 영역이 아니라 그 영, 곧 성령과 동일시하고 있다…바울에게 있어 내재적 그리스도론은 성령론이며, 믿는 이들의 체험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성령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 물론 이것은 바울이 그리스도와 성령을 구별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The Christ and the Spirit, vol. 1, Christology [Grand Rapids, MI: W. B. Eerdmans, 1998], 164-165쪽)

위트니스 리가 삼일성에 관해 자주 인용한, 지금부터 한 세대 전의 저명한 신학자인 그리피스 토마스 (W. H. Griffith Thomas) 역시 이러한 신성한 진리의 양면성에 대해 언급했으며, 그리스도와 그 영의 동일시에 관해 다음과 같이 간결하면서도 분명한, 뛰어난 요약을 했습니다.

The Holy Spirit

이러한 진리의 양면 모두를 주의하며 보존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리스도와 그 영은 차이가 있으면서도 동일하고, 동일하면서도 차이가 있다. 아마도 그들의 위격의 특성은 결코 동일하지 않지만, 그들의 임재는 항상 동일하다고 말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표현일 것이다. (
The Holy Spirit [Grand Rapids, MI: Kregel, 1986; reprint of The Holy Spirit of God, 4th edition, Grand Rapids, MI: W. B. Eerdmans, 1913] 144쪽)

위트니스 리의 사역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아울러 이러한 인용문을 읽는다면 그리스도와 그 영의 동일시는 하나님의 내재적인 존재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는 이들의 체험의 영역 안에 있는 문제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스웨트 (H. B. Swete) 도 동일한 사상을 아래와 같이 확증했습니다.

H. B. Swete

그 영은 그분의 일에 있어서 사실상 예수 그리스도와 동등하신 것으로 나타나며…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것은 명백히 그리스도 자신의 내주하심과 같은 것으로 간주된다…’영이신 주 (the Lord the Spirit) 즉 그분의 영화롭게 된 생명의 능력 안에 계신 그리스도’는 실제로는 동일한 존재로 여겨진다. (
The Holy Spirit in the New Testament, [London, New York: Macmillan, 1912] 306쪽)

 이 핵심적인 주제에 관한 논의를 마무리짓기 전에, 고린도후서 3장 17절에 대한 위트니스 리의 각주를 추가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각주는 위트니스 리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생명 주시는 영의 동일시를 동일하게 인정한 저명한 주석가들인 마빈 빈센트 (Marvin Vincent), 헨리 알포드 (Henry Alford), 윌리스톤 워커 (Williston Walker) 의 글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고린도후서 2장 12절에서 시작되는 이 부분의 문맥에 따르면, 여기의 ‘주님’은 틀림없이 주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고후 2:12, 14-15, 17, 3:3-4, 14, 16, 4:5). 이것은 성경에 있는 분명한 말씀으로서, 그리스도께서 그 영이시라는 것을 강조한다. “3장 16절의 주 그리스도는 새 언약을 널리 퍼지게 하시고 활력 있게 하시는 그 영이시다. 우리는 새 언약의 사역자들이고 (고후 3:6) 새 언약의 사역에는 영광이 있다 (고후 3:8). 로마서 8장 9절부터 11절, 요한복음 14장 16절, 18절과 비교해보라” (빈센트).

“3장 16절의 주님은 3장 6절에 있는 생명을 주시는 그 영이시다. 의미상, 여기서 언급된 ‘주님’은 ‘그리스도’이시며 ‘그 영’은 바로 성령과 동일하시다…그러므로 여기서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의 영이시다” (알포드). “변화시키시고 내주하시는 영은 바로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주님은 그 영이시다’” (윌리스톤 워커). <신약성경 회복역>, 고린도후서 3장 17절 각주2)


posted by 샬롬1 2018. 7. 10. 11:33


♥千  金  菜(천금채)♥

우리들이 즐겨먹는상추의
또 다른 이름은 천금채 다
옛날에는 상추 씨앗이 귀 했고 조상들은 씨앗을 살 때 천금을 주고 샀다고해 서 일명 천금채라고 했다
고 한다,

동의 보감에 의하면 상추
의 효능은...
1.몸에 독소를 없애준다
2.이뇨 작용을 해준다
3.머리를 맑게 해준다
4.노화를 막아 준다
5.가슴에뭉친 화를없앤다
6.두통을 가라 앉힌다
7.불면증을 해소 시킨다

특이한것은 벌레가 접근
하지 못한다 다른 채소에
는 벌레가 생기는데 상추
에는 벌레가 없다 아마도
유황성분이 많이 들어있
어서 그럴지 모른다,

유황은 우리 몸에 아주이
로운 작용을 한다 특히 뼈
를 튼튼하게 한다 그런데 하우스에서 재배하는
상추에서는 유황성분이 찾아보기 어렵다 왜 그런
가 햇빛이 비닐에 차단되
기 때문이다,

유황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아는가 상추 뿌리
부분을 약간꺽어보면안다
유황이 있는것은 하얀 진
이 나오는데 그것이 유황
이다,

그리고 유황이 있는것은
봉지에 담아 몇일씩 두어
도 잘 시들지가 않는다
 
상추가 왜상추인가 그것
은 상추가 인삼보다 상위
에 있다고 해서 상추라고 한다 인삼보다 효능이 더
있다는 말이 기도 하다

봄 여름의 계절 색은 녹색
이다 녹색의특징은아무리
봐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자연을 녹색
으로 깔아 놓으신 것은 이 유가있다 세상에지친마음
들에 평안을 주시기 위함
이다

선조듵께서 상추를대표적
자연식품으로 만드신것은
스트레스가 많고 화병에 시달리는 우리 모두에게
상추를먹고 건강을지키며
마음에 평안을갖게하시는
사랑의 특별 보약 이다,

    ~~~~♡♡♡~~~~
     

♡  美  蝶(미접)
http://www.geimian.com/wx/39761.html

♡ 蝶 与 花 (접여화)
http://www.geimian.com/wx/4438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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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10. 05:00

찬송가 556 - Jesus Lord, I am Captured by thy beauty - 지방교회들 찬송가

찬송가 556 - Jesus Lord, I am Captured by thy beauty - 지방교회들 찬송가


1. 주 예수께 사로잡힌 내 맘 주님 향해 활짝 엽니다
모든 종교 속박에서 풀어 주 안에만 있게 하소서

여기서 당신의 영광 보니 내 맘 빛으로 채우소서
주의 영과 한 영된 우리를 주님으로 적셔 주소서

2. 눈부시게 빛을 내는 이여 보좌 위에 계신 인자여
불꽃으로 나를 태우소서 주와 함께 빛날 때 까지

여기서 당신의 영광 보니 내 자아 부끄럽습니다
이제 당신만을 사랑하며 그 이름을 찬양합니다 

3. 당신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의 옥합 깨뜨립니다
주를 위해 내 모든 좋은 것 주의 머리 위에 붑니다

깊은데서 흐른 사랑으로 내 모든 것 다 바칩니다
주여 나는 제일 값진 향유 다시 준비하겠습니다

4. 주의 얼굴 보기 원하오니 향기로운 산에 오소서
내 맘에서 흘러 나는 샘물 마시옵고 안식하소서

주여 모든 성도 함께 모여 사모하고 기다리오니
어서 오소서 우리 사랑에 주님 만족할 것입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10. 05:00

말씀과각주 327 - 로마서 8장 34절 - 지방교회들 말씀

말씀과각주 327 - 로마서 8장 34절 - 지방교회들 말씀



로마서 8:34 누가 감히 유죄 판결하겠습니까?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을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셨고, 지금은 하나님 오른편에 계시며 또한 우리를 위하여 중보 기도하시는 분은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10. 05:00

지방교회 변호와 확증 – 3편 교리를 성경보다 중시하는 삼신론자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2:20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곳 토론 장도 우리 모두는 옛사람의 행위를 떠나 다만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그분께 받은 부담과 빛을 믿음으로 말해내는 공간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또한 이 토론의 글들을 통해 우리의 공통 대적인 사탄과 그로부터 나온 비 진리들은 폭로, 분별, 공개적으로 거절되고, 주님의 말씀을 깊이 있게 바로 알기를 사모하는 모든 분들에게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에 대한 투명한 이해가 있게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본질적인 토론 내용과 무관한 오해들로 인해 이 토론이 방해받지 않도록 다시 한 번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본 토론은, 이인규님은 아니라고 하시지만, 성경본문 가르침처럼 아버지 하나님이 하늘에도 계심과 동시에 지상사역시의 예수님(성육신, 인생, 죽음, 부활...) 안에도 구별됨을 상실하지 않는 방식으로 상호내재 하심을 믿는 지방교회 입장과, 독립된 인격으로 아버지가 하늘에 계신 것은 믿지만 지상 사역시의 예수님 안에는 계시지 않으며 만일 그렇게 주장하면 양태론이다 라는 최삼경 목사, 이00 감리교 권사와의 주장 중 어느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고 어느 것이 이단적인 주장인지를 분별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인규 님이 위트니스 리 책에서 잘못된 내용이라며 퍼다 올리고 임의로 판단한 이런 저런 내용들도 이 근본적인 한가지 차이점에 대해 어느 쪽이 성경적인 가르침을 주장하는지를 분별하면 저절로 해결될 것들입니다. 따라서 독자들이나 토론 당사자들은 본 토론의 쟁점을 흩트릴 수 있는 지엽적이고 비본질적인 일들로 인해 혼잡 되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하고, 다만 진리를 알고 진리를 말하기만을 간절히 사모하기를 원합니다. 또 한가지는 제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위 두 가지 대립되는 관점들에 대해 이미 행해졌던 각종 토론 내용들을 제가 쓰는 글에 계속 참고할 것이며 또 때로는 그 자료들을 제 본인의 주장으로 가져다가 사용할 것임을 다시 한번 분명히 밝혀둡니다. 물론 그 자료들 안에는 월간 교회와 신앙의 지난 게시판, 지방교회 관찰 방에 올려진 내용들도 당연히 포함될 것입니다. 또한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박00님은 제 오랜 동역자임을 밝힙니다. 이 점에서도 오해가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본론적인 토론에 들어가겠습니다.  

 이미 눈치를 채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와 이인규님은 서로 판단기준이 다릅니다. 한 쪽이 제대로 된 30센티 자를 가지고 30센티 간격마다 표시해 놓은 것을 '잘못된 눈금을 가진 30센티'자를 가진 다른 사람이 재어 보더니 표시된 눈금들이 틀린다며 목소리 높여 외치는 식입니다. 그러므로 이인규님이 위트니스 리 책에서 가져온 본문들을 일일이 반박하는 일도 독자들을 위하여 필요하겠지만 사실은 "누구 자(기준)가 과연 표준인지"를 따져보는 일이 이 신론 토론의 근본핵심이며 시급한 과제입니다. 저는 앞으로 남은 토론에서 쌍방이 이 일에 집중하기를 참으로 원합니다. 

 이인규님은 1) '그리스도는 사람일 뿐 아니라 또한 하나님이시다'라는 위트니스 리 형제님의 지극히 균형 있고 성경적인 말을 가져와서는 지방교회측이 성부고난설을 주장하고, 양자론을 주장하며, 네스토리안니즘을 주장한다고 그럴듯하게 말할 줄 아는 분이십니다. 더구나 이 분은 순진한 독자들이 정말 그렇게 믿도록 자신 스스로 내린 결론을 기정사실화하고 반복하여 말하는 순발력도 보여주고 계십니다. 참으로 대단한 상상이고 오해요 왜곡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또한 제가 역사상 정통교회의 삼위일체론을 정립한 사람으로 알려진 아우그스티누스의 '상호내재에 대한 정의'를 제시하면 왜 보편적인 신학자가 아니고 특수한 사람의 이론을 내 세우느냐고 하시고, 한국교계에서 정통신학자의 범주로 분류되는 학자들의 책(박사학위 논문 포함)을 인용하면 다른 사람들의 책은 없느냐고 핀잔을 주고 있습니다. 바로 이 점이 이인규님이 말하는 소위 '정통교회의 삼위일체'의 정체가 과연 무엇인지가 매우 의심스러운 대목입니다. 님의 정통교회 기준대로라면 '하나님은 한 분이 아니고 세 분이라고 해야 한다'는 소위 정통교회 교단 소속인 장신대 김명용 교수는 이단입니다. 이00 님은 '니케아 신조= 정통교회 삼위일체론'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만 바로 그 점이 자신의 어려움인 것을 알지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즉 이인규님의 삼위일체관은 니케아 신조의 장점인 '삼위의 독립된 구별'을 취하되 '독립된 삼위가 어떻게 한 분 하나님이 될 수 있나'를 밝히지는 못한 니케아 신조의 한계를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즉 이인규님의 삼위일체관은 '삼위의 독립된 위격'을 지나치게 붙잡음으로 '상호내재' 개념이 비 성경적이며 이단적인 사상이 된 경우입니다. 위 두 가지를 다 취해야 정통 삼위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혼동하지 말아야 할 한 가지는 간혹 위트니스 리 책에 언뜻 보면 삼위의 독립을 무시하는 듯한 표현이 보이는 것은 성경본문 자체가 그러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이인규님이 성경 그대로를 말하는 것에 대해서도 삼위의 독립을 인정치 않는 양태론 이라고 정죄하는 것은 결국 요14:10-11을 말씀한 예수님 자신도 양태론 자로 정죄한 최삼경 목사처럼 똑같은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신학과 교리를 성경본문보다 더 중시하는 사람들이 쉽게 범하는 실수들인 것입니다. 

 3) 게다가 니케아 신조와 관련해서 '인격이라는 단어는 성경용어가 아니고 신학자들의 해석에서 나온 것이다'라는 지극히 당연한 말을 가지고도 지방교회는 니케아 신조 자체를 부인한다느니 지방교회측이 이중성이 있느니 없느니 라는 인신 공격적인 말까지 함부로 하고 계십니다. 니케아 신조는 이단들에 대항해서 아들이 '아버지와 동일 실체'이심을 명문화하고 '또 우리는 성령을 믿사옵나이다' 라는 문구를 삽입하여 '한 아버지, 한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의 존재를 선포한 의의가 있습니다. 물론 지방교회측도 이것을 믿습니다. 거부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인규님은 '지방교회측을 교회역사에 무식한 양태론자들' 이라는 자신의 거짓되고 부당한 착각의 틀에 밀어 넣기 위해 계속 무리를 하고 계시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단지 인격이란 단어가 성경에 없다는 말을 한 것입니다. 또한 더 나아가 니케아 신조 내용이 맞고 우리도 인정하지만 그 한 신조가 성경이 계시하는 삼위일체의 모든 방면을 전부 포함하지 못하며 니케아 신조는 진지한 삼위일체 논쟁의 초석을 놓은 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뿐이고 사실 이러한 인식은 매우 정당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독립된 삼위가 분리되지 않으신 한 하나님이심을 설명하는 상호내재 개념(페리코레시스)은 니케아 신조 이후에 캅바도키아 교부들에 의해 비로소 정립된 이론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식적인 대화조차 공감할 수 없는 토론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제 위와 같은 혼잡을 피하기 위해 저는 다음 세 가지 항목들에 있어서 저와 이00 님 의 입장을 독자들의 입회 하에 집중 검증해 보기를 제안합니다. 사실 이 세 가지 항목들에 대한 양쪽의 입장을 들어보면 누가 성경의 가르침을 믿고 말하며 누가 자신의 교리에 빠져서 결국 성경과 정통 가르침을 거부하는 이단사상을 가진 자인가 선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그렇게만 되면 이 신론 토론은 조기에 종결해도 좋을 것입니다. 제가 보기엔 삼위일체 진리에 있어서 다른 부분들은 쌍방이 서로 일치하나 다음 세 가지에 있어서 이견이 있습니다. 

  1. 경륜적인 방면에 있어서 삼위의 상호내재에 대한 관점의 차이  

반복하여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성경본문 가르침처럼 아버지 하나님이 하늘에도 계심과 동시에 지상사역시의 예수님(성육신, 인생, 죽음, 부활...) 안에도 구별됨을 상실하지 않는 방식으로 상호내재 하신다고 토론 초기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말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00님은 존재에 있어서는 상호내재를 인정하지만 '상호관계적인 표현으로 볼 때 독립된 세 인격으로 구별되어지기 때문에 '인격 안에 인격이 없다'는 이상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이 삼신론 이단사상임을 금방 간파했지만 독자들은 이인규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파악이 안 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분은 과연 누구인가?'에 대해 쌍방의 입장을 들어보고 비교해 보면 누가 성경대로 말하고 누가 이단사상을 고집하는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관찰방의 질문을 제 것으로 옮겨와서 이인규님께 재차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이인규 님은 "십자가에서 달리신 분은", 

1) '성부하나님만'이시다(성부고난설 이단사상) 

2) 아버지와 성령님이 구별되심을 상실치 않은 채 상호내재 하시는 아들 하나님이시다. 이 때 아버지는 예수님 안에 계심과 동시에 하늘보좌에도 계신다(저와 지방교회측의 주장). 

3) 아버지는 하늘에만 계시고 아들 안에는 안 계심으로 아버지 하나님은 제외된 '아들 하나님만' 이시다(이인규님 주장)

라는 1) 2) 3) 중 님의 주장은 무엇입니까? 만일 님의 주장이 위 셋과 다른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인지도 자세히 설명해 보시기 바랍니다. 님은 지금 자신의 잘못된 잣대를 가지고 성경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함부로 '성부고난설'을 믿는 이단이라고 정죄하고 있고, 인격 안에 인격이 없다는 등 삼신론적인 주장을 하고 계십니다. 

 참고로 위 2)항이 지방교회측 주장이라는 증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신약의 결론 - 하나님

'신격의 삼일성이 분리된 세 위격들로 나뉘어 질 수 있다는 관념을 붙잡지 말라. 이것은 누룩이다. ...그 셋(아버지, 아들, 성령)은 항상 동시존재하며 상호내재 한다. 한 분이 이곳(지상)에 있을 때 셋 모두가 이곳(지상)에 있다. 한 분이 하늘에 계실 때 모두가 하늘에 계신다. 그 셋은 항상 하나이다. 분리됨이 없다(위트니스 리, 신약의 결론-하나님, 288쪽).

님은 오직은혜님이 이 문제에 대해 관찰 방에서 질문 하자 '지방교회측의 아버지가 예수 안에 계시는 것은 맞지만, 아버지가 오직 예수 안에만 계시다는 주장은 다릅니다.'라고 슬쩍 말을 바꾸고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어디서 지방교회측이 '아버지가 오직 예수 안에만 계신다'고 말했다는 것입니까? 또한 님의 이단사상인 '인격 안에 인격은 없다'는 말의 실상은 무엇입니까? 이 두가지 점들을 위 질문에 대한 님의 답변에서 상세하게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볼 때 님의 이러한 이단적인 관점은 성육신, 인생, 부활 그리고 우리 안에 들어오신 분이 누구신가 에 대하여 님이 가지고 계신 총체적인 혼동의 한 단면 즉 빙산의 일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참고로 다음과 같은 정통 신학자들과 성경말씀 자체가 '인격 안에 인격이 없다'는 이인규 님의 주장이 삼신론 이단사상임을 폭로시켜 주고 있습니다.  

교부들의 삼위일체론

' 캅바도키아 교부들은 실체의 단일성을 위하여 삼위를 희생시키지 않았고 또 그렇다고 해서 삼위의 구별을 위해서 실체의 단일성을 희생시키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캅바도키아 교부들은 후대에 '페리코레시스'라는 이름으로 설명된 이론을 체계화했다. 즉 각 위격 안에 한 동일실체 전부가 다 들어 있다. 각 위격 상호간에 또 위격과 실체간에 '공동내재성' 또는 상호상통성이 있다. 두 위격이나 세 위격을 합하더라도 다른 한 위격보다 결코 더 크지 않다. 수많은 이단들을 모두 다 효과적으로 논박할 수 있는 이 이론의 성경적인 근거는 요한 복음 14:10의 말씀이었다'(김석환, 교부들의 삼위일체론(박사학위 논문), 29쪽). 

요한 복음 1:18은 이 땅 위에 내려오신 독생하신 아들이 동시에 여전히 하늘에 계신 아버지 품속에 계시다(현재시제)고 하고, 요3:13 (영어 킹제임스 본문)은 예수님이 하늘에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사실임과 동시에 여전히 하늘에 계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님의 '상호관계적인 표현으로 볼 때 독립된 세 인격으로 구별되어지기 때문에 인격 안에 인격이 없다'는 주장은 누구도 지지하지 않는 치명적인 변형된 삼신론 이단사상입니다. 이러한 이단 사상의 극심한 피해는 추후 구원론 토론에서 적나라하게 폭로될 것입니다. 

  2. 성경본문 자체가 소위 정통 삼위일체교리와 충돌하는 경우  

원칙적으로 저는 성경은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이며 신구약 66권이 다 무오함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외견상 불합리하거나,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말씀도 자기 생각을 따라 함부로 불신하거나 무리하게 체계화 하려하지 않고 어린아이처럼 모든 말씀을 아멘으로 받습니다. 이것은 위트니스 리 형제님을 포함한 지방교회 모든 성도들의 성경에 대한 태도입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교리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성경본문 자체가 '아버지=아들', '아들=성령'이라고 말함으로 외견상 삼위의 독립을 무너뜨리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들에 대해서 성경본문 자체를 불신하거나 함부로 왜곡시켜 해석합니다.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이런 전제하에 이제 이인규님께 질문 드립니다.  

1) 이사야 9:6은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이름은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 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아들은 누구이며 '영존 하시는 아버지'는 누구입니까? 

2) 고전15:45 '마지막 아담은 생명 주는 영(살려주는 영)이 되셨나니' 에서 마지막 아담은 누구(몇 격)이며, 생명 주는 영은 누구(몇 격)입니까? 그리고 '되었나니'는 무엇이 언제 어떻게 되었다는 말인가요? 

3) 고후3:17의 '주는 영이시니'에서 앞의 '주'는 누구이며 뒤의 '영이시니'는 누구입니까?  

4) 계5:6 은 '내가 또 보니 보좌와... 어린양이 섰는데 ...(어린양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고 말합니다. 여기서 어린양은 누구이며 이 땅에 온 하나님의 일곱 영은 누구입니까? 

위 질문들 각각에 대해 이인규님의 해석관점을 제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위 성경본문 내용들은 그 자체가 '삼위의 독립된 인격'이라는 교리를 고집하는 사람들의 눈엔 양태론 이단으로 보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 본문 그대로 믿고 말함으로 이인규님 같은 교리지상주의자들에게 '양태론자'라는 비난을 받든지 아니면 그러한 비난을 피하도록 성경본문을 왜곡되게 해석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이것이 저와 이인규님의 두 번째 부딪치는 부분입니다. 소위 님의 요14장에서의 '부활하신 예수님=보혜사 성령'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것은 여기에 해당 되는 문제들입니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사실은 이인규 님처럼 소위 정통교리에 따른다면 이단이 되기 싫어서 성경 본문을 엉뚱하게 왜곡시켜 해석해 버리면 그 구절에 대한 우리의 체험에 있어서 치명적인 결함을 가져오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날 많은 참된 믿는 이들이 자기 안에 들어오신 하나님이 과연 누구 신지-성령인지, 예수님인지, 둘 다인지, 아버지는 아닌지....-에 대해 혼란이 있는 것은 이처럼 성경본문을 성경대로 해석하기를 꺼려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에 위 말씀들을 문맥대로 깊이 연구한 정통 신학자들이 예를 들어 고후3:17의 본문대로 '예수 그리스도=성령'이라고 담대히 말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바울의 그리스도와의 연합 사상

 아래 내용들은 풀러신학교 교수인 루이스 스미디즈가 쓰고 현재 월간 교회와 신앙에 고정 글을 쓰고 있는 현 장신신학원 교수인 오광만 님이 번역하여 국내 기독교계에 소개하신 '바울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사상'(여수룬, 1991년)의 내용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그(바울)의 말은 극적이긴 하지만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고린도후서3:17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주는 예수그리스도이시며, 성령은 삼위일체의 삼위이시다. 바울이 주라고 부르고 있는 예수님은 이제 성령이라고 표현되고 있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64-65쪽). 그는 계속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성령의 관계는 다음과 같은 다섯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1. 성령은 지상에서 그의 구속계획을 실현하고 계시는 그리스도이시다.
  2. 성령은 교회 안에서 그리고 교회에 의해서 체험되는 그리스도이시다.
  3. 성령은 지금 여기 존재하시는, 그러나 장차 완전히 실현될 새로운 창조를 통치하시는 분으로서, 그의 세상적인 기능들을 수행하시는 그리스도이시다.
  4. 성령은 새로운 창조 안에 있는 자유의 삶을 위한 객관적인, 그러나 역동적인 규범이시다.
  5. 따라서, 새 언약 안에서의 삶에 관한 한, 성령은 현재의 그리스도이시다(위 책87-88쪽)'.

저자는 계속해서 '십자가와 부활은 성령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을 지배하는 내용들이다. 바울의 성령에 관한 가르침은 삼위일체의 위격에 대한 교리적인 강설의 배경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성령에 관해서 말하는 바는 오히려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의 움직임'-이것이 바로 위트니스 리가 말하는 경륜적인 방면의 삼위일체라는 것임-필자 주-배경 안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라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아래 글은 장로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신 이 동근 목사님이 운영하시는 홈페이지인 http://new-jerusalem.org/mean.htm 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예수는 성령이다'의 고찰 : 어거스틴은 '영(성령)을 성부의 영은 성자의 영이며 성령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예수는 성령이다'라고 한다면 신학적 삼위일체에는 위배이다. 신학이 삼위일체를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는 영이시며, 주의 영은 성령이다'라고 한다면 신학적 삼위일체에 전혀 훼손하지 않는 해석이라고 할 것이다. 또는 '예수는 영이시고(고후3:17) 예수의 영은 성령이다'라고 해도 삼위일체를 훼손하지도 않는 것이다. 

 여기에서 '예수는 성령이다'와 '예수님의 영은 성령이다'(또는 '주의 영은 성령이다')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해석상에 있어서 아무런 차이도 없는 똑같은 말이다. 성부의 영은 성자의 영이며 성령이다 라는 성서적 표현만큼 삼위일체를 완전하게 극복하고 함축한 표현은 없을 것이다. 이미 이 안에 성부는 성령이시며 예수는 성령이다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시며 예수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 심령에 하늘나라인 의와 희락과 평강으로 함께 한 작용으로 역사 되고 있다. 성경을 무리하게 해석하면서까지 교리를 세우려고 해서는 안 된다. 예수는 성령이 안 된다고 주장한다면 첫째, 성경의 위배이며 두 번째, 어거스틴의 20여 년 간의 노작을 수포로 돌아가게 하는 파괴 행위인 것이다.  

신학을 향한 충고:'예수는 성령이다'라고 하면 사벨리우스(Sabellius)의 양태론(Modalismus)을 운운하며 이단이라고 매도하는 성급하고 극단적인 편견은 버려야 한다. 만약 이러한 편견을 버리지 않는다면 결국 어거스틴도 양태론자라고 하는 것과 같으며 그 이유는 신학자들이 너무 잘 알고들 있을 것이다.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삼위일체가 자신들의 주장만으로 또 다시 악용되거나 남용되지 않도록 주의를 해야만 한다.'  

이러한 지극히 성경적인 해석은 이외에도 앤드류 머레이, 존 넬슨 다아비, 헨리 알포드, MR 빈센트, 제이 오스왈드 샌더스 같은 신실한 정통 신학자들도 주장하는 것입니다(신약의 결론-하나님 331-332쪽). 성경을 섣불리 알고 자신의 교리만을 중시하는 일부 사람들이 함부로 '양태론'이라고 경솔한 말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위와 같이 성경대로 믿는 것이 곧 삼위의 구별을 부정하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에 대해 위트니스 리 형제님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신약의 결론 - 하나님

 '어떤 비평가들은 위트니스 리가 그리스도는 아버지요(사9:6), 그 영(고후3:17)이라고 가르칠 때, 그는 신격의 세 위격의 상호내재와 동시존재를 부인하고 삼위양식설을 가르치고 있다고 말한다. 나는 이러한 비난을 부인한다. 비평가들이 ...마 3:16-17을 믿는지를 물어 본다면, 나는 마 3:16-17을 믿을 뿐 아니라 이 주제에 관계된 모든 구절들(계1:4-5, 고후13:13, 엡3:14-17)을 다 믿는다. ...다시 한 번 말하거니와 아버지, 그 영, 그리스도는 모두 동시에 존재한다. 내가 양태론자라는 비난은 거짓된 것이며 나는 절대적으로 그것을 부인한다.'(윗트니스 리, 신약의 결론-하나님, 305-306쪽). 

3. 고전15:45의 '생명주는 영'(완결된 영)에 대한 이해 부족 

이인규 님은 지난 글에서 '첫 번째 영은 생명주는 영이 되기 위하여 과정을 거친 하나님 자신이다. 이 영은 최종 완성된 삼일 하나님이다'라는 위트니스 리 형제님 말을 인용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상호내재한다고 하여 양태론이 아니라는 주장은 위장에 지나지 않는다'는 증거 중 하나로 님이 제시한 것입니다. 이것 역시 이인규님이 분리된 셋을 주장하는 증거입니다.  

이인규 님은 '마지막 아담은 생명주는 영이 되었나니' 라고 한 고전15:45에서 '생명주는 영'이 아래 넷 중 무엇이라고 해석하십니까? 생명주는 영은,  

1) 예수님의 사람의 영을 가리킨다. 

2) 1격과 2격은 제외된 3격 성령하나님(보혜사 성령)이시다. 

3) 1격과 2격도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게 상호 내재하시는 3격 성령님 이시되 예수님이 성육신 때 입은 인성은 절대로 포함되지 않았다. 

4) 생명주는 영은 부활하신 예수님 자신이시다. 그러므로 생명주는 영은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이 그러했던 것처럼 <아버지와 성령이 구별됨을 상실치 않고 상호 내재하시는 아들하나님(또는 아버지, 아들, 성령을 다 포함한 온전하신 하나님) + 예수님의 영화롭게 된 인성(육신) 즉 신성과 인성을 포함한 복합적인 영이시다. 

물론 4)이 저와 지방교회 측의 입장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가장 성경적이고 논리적입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에게는 인식되지 못한 진리입니다. 앤드류 머레이가 이것을 보았습니다. 님도 위 본문 말씀에 대해 저처럼 빛비춤을 위트니스 리 책자를 보는 눈의 비늘이 한 꺼풀 벗겨지는 체험을 하시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요한 복음 7:39에서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는 말씀도 같은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애석하게도 님은 2)번 또는 3)번 같은 생각을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여기에 저와 이인규님의 기준에 차이가 있는 것이고 이러한 차이가 위트니스 리의 가장 균형 잡히고 성경적인 삼위일체관련 언급들이 님의 눈엔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핵심원인인 것입니다. 이제 이 구절에 대한 님의 해석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혀주실 차례입니다.  

이상의 세 가지 기준들에 대한 쌍방의 이견들이 풀리면 이인규님이 지난 글에서 이것저것 문제점이라고 갖다가 제시한 내용들은 다 풀려나갈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4. 그 외에 몇 가지 추가적인 문제들  

 1) 소위 10가지 질문들에 대하여 

위의 님의 질문들은 상호내재 하시는 삼위와 인격적으로 구별된 삼위가 각기 다른 삼위라는 전제가 정당해야 답변의 가치가 있는 질문들입니다. 즉 예수님 안에 상호내재 하시는 아버지와 인격적으로 구별되어 저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각기 다른 분이라는 님의 삼신론 이단사상이 맞다고 볼 때 성립되는 질문입니다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상사역시의 예수님 안에 계신 아버지와 저 하늘 보좌에 계신 아버지가 다른 분이라고 보는 님의 의견에 전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이 땅에 오셨고(요8:16, 29), 부활 승천 후 하늘 보좌 우편에 게신 예수 그리스도가 동시에 지금 우리 안에 생명으로 들어와 계십니다(롬8:10, 34). 그리고 이 분은 각기 다른 두 분이 아니고 동일한 한 분이십니다. 이 점이 해결되면 모든 의문이 해결되실 것입니다. 

 2) 분리와 독립의 차이 

 이인규님은 분리와 독립을 왜 상호내재와 연관 짓느냐고 항의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르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세 인격의 분리를 주장하는 것이 곡 상호내재의 부인을 의미하기 때문에 둘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님은 지금 계속해서 지상사역시의 예수님 안에 아버지와 성령이 구별되심을 잃지 않은 상태로 상호 내재하신다는 지방교회측 주장을 양태론 이라고 정죄하고 계시고, 삼위의 관계 안에서는 인격 안에 인격이 없다고 고집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바로 님이 삼위의 구별에서 지나쳐 분리를 주장하는 근거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님이 이단적인 신관을 솔직히 시인하고 회개할 사항이지 누가 사과할 문제가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3) 예수님이 피조물이라고 주장한다는 말에 대하여 

님은 엉뚱하게 로마서 1:4의 아들 하나님이 부활 후 아들로 인정되셨다는 말을 '예수님을 피조물이라고 한다'는 님의 억지 정죄와 연결시키고 계십니다. 님은 이런 말을 하실 때 잘 하셔야 됩니다. '예수님이 피조물이라고 한다'는 님의 말과 '그리스도께서 창조자이실 뿐 아니라 모든 창조된 것들 가운데 첫 번째, 모든 피조물 가운데 첫 번째 이심을 계시한다'는 위트니스 리의 말은 듣는 사람들에게는 하늘과 땅 같은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당연히 같은 맥락에서 그리스도가 창조주이심과 동시에 피조물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양성을 분리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통상 '예수님이 하나님 사람이다' 라고 말할 때 그것을 님처럼 예수님의 양성을 분리시키는 이단적인 주장이다 라고 꼬아서 들을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될까요. 골1:15-18에 대한 아리우스의 주장에 대해 우리도 님 이상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추후 더 상세히 말할 필요가 있다면 그 때 하기로 하겠습니다. 

진리의변호와확증

님의 이런 엉뚱한 정죄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지방교회의 다양한 이단성'이기는커녕 이미 그 모든 항목들에 대한 반박자료들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 케케묵은 거짓 정죄들일 뿐입니다. 그 한가지 증거만 제시한다면 님의 피조물 운운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대한 반박의 글은 지금부터 20년 전에 이미 쓰여졌고 '진리변호와 확증'(한국복음서원) 122-128쪽에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님은 자기 생각만이 항상 옳은 것으로 착각하는 일을 그만 하시기 바랍니다. 

결론적으로, 

신학교리는 성경본문의 이해를 돕는 것이어야 합니다. 아무리 소위 정통교리라고 알려진 것이라고 해도 성경본문을 왜곡시키거나 부인케 한다면 우리는 당연히 성경본문을 기준으로 그 교리를 수정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모든 성경은 다 우리의 체험과 누림을 위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진리에 교리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음을 겸손히 인정하고 다만 성경 본문이 말하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 수 있기를 주께 구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교리나 혹은 성경을 남을 부당하게 정죄 하는 도구로 가볍게 사용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를 보존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posted by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9. 05:00

찬송가 555 - 시대를 전환할 나실인 돼 - shulammite son - 지방교회들 찬송가

찬송가 555 - 시대를 전환할 나실인 돼 - shulammite son - 지방교회들 찬송가


*출처:Hymnal.net / 번안:Praisenote*

1. 시대를 전환할 나실인 돼 마음 감동한 사람 헌신케 해
이기적인 추구에서 돌이켜 모든 묶임 깨뜨리사 해방해
주님은 날 필요로 해 주 원하심 성취해 내 사랑 다시 불 붙이사
자원해 헌신할 사람 필요로 하네

2. 시대를 전환할 나실인 돼 우릴 강화시키어 끝날까지
거역함과 타고난 애정 죽음과 땅의 기쁨 육체의 소욕 이기리
주님은 날 필요로 해 주 원하심 성취해 내 사랑 다시 불 붙이사 
자원해 헌신할 사람 필요로 하네

3. 완전하게 분별되어 그의 길을 얻으사 항상 이기고 승리함으로 이 시대를 완결해
주님은 날 필요로 해 주 원하심 성취해 내 사랑 다시 불 붙이사 자원해 헌신할 사람 필요로 하네

 http://www.localchurch.kr/hymn/25502 (악보 가사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