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9.03.23 14:13

지방교회를 양태론으로 몰아가는 

김홍기 목사의 '삼신론 이단 사상' 3

이단적인 상호 내주 사상



지방교회 스토리 유투브 : https://youtu.be/_i1sbm8BKak



지방 교회측은 캐나다 밴쿠버에서 거주하는 김홍기 목사와 교회와 신앙 인터넷 신문에서 수 개월에 걸쳐 진리 토론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김 목사는 이와 별도로 유튜브를 통하여 지방 교회측이 양태론을 가르친다고 공격하는 동영상을 올려놓았습니다.


이 동영상의 내용을 검토한 결과 거짓된 내용이 많고 억지 주장이 지나치게 심하여 지방 교회측은 이에 대한 대응차원에서 김홍기 목사가 주장하는 핵심이 무엇인지,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차례대로 반론할 것입니다.

posted by 스마일은혜 2018.11.23 00:00


(지방교회) 진리의 변호와 확증

제2장 : 어떠한 이단인가

- 두 신성한 아버지, 두 생명주는 영, 세 하나님

아들이 아버지라고 불리심

그러나 몇몇 비난자들은 이렇게 비난할지 모른다.

‘당신은 아들이 아버지이시고 그리스도가 그 영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이것은 분명히 삼위 양식론자들이 말하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 나는, 내가 삼위 양식론을 관심하지 않고 성경의 순수한 말씀만을 관심한다고 답변하겠다.

이사야 9장 6절은,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아기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불리고, 그 아들은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불린다고 말한다.

아들이 아버지라고 말하는 것은 해석이 아니다. 그것은 인용이다.

만일 이 구절을 주의깊게 읽는다면, 당신은 본문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기를 가리키며 영존하시는 아버지가 아들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것이다.

역대로 모든 전통적인 성경학도들은 구유에서 나신 아기가 전능하신 하나님이셨다는 것에 동의했다.

오직 유대인과 불신자들만이 이것을 부인하려고 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구절의 반만 믿는다.

그들은 아들이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불리는 나머지 반 구절은 무시하거나 왜곡한다.

이제 그것을 왜곡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들어서 이 구절을 자세하게 고찰해 보자.

이사야 9장 6절은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고 말한다.

이 구절에는 두 요점을 가진 두 문구가 있다.

첫 번째 행은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이며, 두 번째 행은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이다.

이 구절의 중반부에서는 그분이 하나님의 행정을 수행하는 분이시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 어깨에 정사를 메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이 우리에게 주신 바 된 것이 하나님의 행정을 수행함을 가리킨다.

이 구절의 후반부에는 그 아기의 이름과 아들의 이름이 있다.

‘그 이름’은 아기의 이름과 아들의 이름을 가리킨다.

그 이름은 기묘자, 모사, 평강의 왕이라 불리울 것이다.

이러한 이름들에서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과 영존하시는 아버지를 본다.

의심할 바 없이 ‘전능하신 하나님’은 아기의 이름이고 ‘영존하시는 아버지’는 아들의 이름이다.

그러므로 이 구절의 두 문구에 따르면, 우리에게 난 아기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불리고, 주신 바 된 아들은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불린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에게 난 아기가 베들레헴 말구유에 나신 예수라 하는 아기인 것에 동의한다.

더 나아가 우리 모두는 이 아기가 참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이셨다는 것에 동의한다.

모든 참되고 근본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인정한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든지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그러나 많은 근본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이 두 번째 행에 문제를 갖고 있다.

그들은 단순하게 아들이 아버지이심을 믿지 않는다.

이사야 9장 6절이 말하고 있는 바를 그대로 믿기 때문에 우리는 삼위 양식론자라는 비난을 받는다.

우리를 삼위 양식론자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삼신론자의 위험에 떨어진다.

신성한 삼위일체는 하나인 면과 셋인 면을 오해하고 오용하며, 삼신론은 셋인 면을 강조함으로 하나인 면을 부인한다.

그러나 성경에 있는 순수한 계시는 진리의 양면을 다 가지고 있다.

모든 근본주의자들은 우리에게 나신 아기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지만, 두 번째 요점 곧 우리에게 주신바 된 아들이 영존하시는 아버지라는 것을 다소 소홀히 하고 심지어 반대한다.

그들은 여기에 커다란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들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들은 이 구절을 왜곡한다.


진리의 변호와 확증
한국복음서원, 워치만 니,위트니스 리
지방교회 생활하기

#지방교회 #변호 #확증 #삼일 하나님 #삼위일체 #교회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11.20 00:00

미국 국회 의사록

제 113차 회의와 토론 두 번째 시간


제160권                             워싱톤 2014년 4월 29일 화요일                       No. 62 



하  원 (House of Representatives)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Watchman Nee and Witness Lee) 


미국 국회 의사록 Vol.160 No.62 2014년 4월 29일, 화요일, 

워싱턴 조셉 피츠 하원 의원 (펜실바니아주)
HON. JOSEPH R. PITTS OF PENNSYLVANIA IN THE HOUSE OF REPRESENTATIVES

 하원 의장님, 약 4년 전에 존경하는 저의 동료 의원이신 뉴저지 주의 크리스 스미스(Chris Smith) 의원께서 이 의사당 안에서 20세기의 위대한 그리스도인들 중 한 사람이자 저명한 중국인 성경 교사요 교회 설립자였던 워치만 니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신 바 있습니다. 오늘 저는 워치만 니의 가장 가까운 동역 자였던 위트니스 리에 대한 존경을 표시함으로써 이 감명 깊은 이야기의 나머지를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그 두 분은 1932년부터 시작 하여 마오쩌둥 휘하의 공산군에 의해 중국 본토가 점령된 1949년까지, 중국에서 함께 지칠 줄 모르게 수고했습니다. 오늘날 워치만 니에 관한 이야기는 기독교 안에서 고전(古典)이 된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 좌행참 과 같은 다수의 저서들로 인해 어느 정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1972년에 중국 집단 농장에서 순교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자신의 일생을 훌륭하게 마감했습니다. 

 위트니스 리에 관한 이야기는 서방세계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중요성은 결코 덜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중국에서 함께 수고할 때 는 워치만 니가 분명한 인도자였지만, 그들의 사역을 중국 밖에서도 보존하고 지속시킨 것 과 중국어권을 넘어서까지 그 사역을 확산시키는 일은 위트니스 리에게 남겨졌습니다. 1949년에 중국 내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우세하게 될 것이 분명해지자, 워치만 니는 대만과 전 극동 지역에서 그들의 사역을 수행하도록 위트니스 리에게 이주할 것을 강권했습니다. 위트니스 리는 이에 동의했습니다. 그 이후에 전개된 모습들은 워치만 니의 통찰력이 옳았음을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워치만 니는 그 후 바로 투옥되었고 그와 위트니스 리의 사역에 의해 세워진 교회들은 지하로 숨어들 수밖에 없었음), 그들의 메시지와 사역이 중국을 넘어 서 훨씬 더 먼 곳까지 뻗어갈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음도 확증해 주었습니다. 

 곧바로 위트니스 리의 사역은 대만에 깊은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수만 명이 예수 그리스도께 회심하여 구원받았고 그들의 중국 인 형제들이 지난 20여 년 동안 중국에서 해 왔던 것처럼, 그들은 신약의 교회들로서 단순화된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대만에는 200여개 이상의 지방들에 그러한 교회들이 있으며 20만 명 이상의 성도들이 있습니다. 극동 지역과 오스트랄라시아, 즉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일본, 한국, 뉴질랜드와 호주에 세워진 교회들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위트니스 리는 자신의 사역을 아시아에만 국한시키지 않았습니다. 1962년에 그는 북미로 왔고 로스앤젤레스에서부터 사역을 시작하였으며, 그곳에 영어와 50개 이상의 다른 언어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저서들을 출판하는 리빙스트림 미니스트리를 세웠습니다. 위트니스 리의 말씀 전파와 저술은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강조했으며 어떤 민족이나 문화적인 차이라는 기초 위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들의 하나 됨에 기초하여 “그분의 교회를 건축”하시려는 하나님의 갈망을 지속적으로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메시지는 자신의 영적 조언자였던 워치만 니로부터 배운 것과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1960년대 초반부터 위트니스 리의 사역 아래 있는 지방 교회들이 북미와 남미, 유럽과 아프리카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입니다. 사람이 거주하는 모든 대륙에 4천개 이상의 교회들과 40만 명 이상의 믿는 이들이 모임을 갖고 있으며, 여기에는 러시아와 러시아어 권에 있는 200여 개의 교회들과 수천 명의 믿는 이들도 포함됩니다. 

 중국 본토 내부에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를 따르는 “숨겨진” 믿는 이들의 숫자는, 그들 을 탄압하기 위해 중국 정부가 수시로 취했던 극단적인 조치와 공개적인 박해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워치 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사역을 귀히 여기는 중 국 내 교회들의 구성원들은 가장 가혹한 박해를 받아왔습니다. 수천 명이 감옥에 갇혔고, 수많은 사람들이 폭행을 당했고, 심지어 다수가 순교했습니다. 오늘날 중국 내에는 약 2백 만 명의 믿는 이들과 수천 개의 지방 교회들이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사역으로부터 영적인 자양분과 공급을 받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최근에 서방에 전달된 보도에 따르면, 두 개의 성(省)에 거주하는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학습 용 성경인 회복역 성경(the Recovery Version) 몇 권을 소지했다는 이유만으로 투옥되었습니다. 이 학습용 성경은 리빙스트림 미니스트리 그리고 위트니스 리가 대만에 세운 출판사인 대만 복음서원에서 발간한 것입니다. 오늘날 워치만 니에게는 여전히 “위험스러운 반혁명분자”라는 꼬리표가 있고, 위트니스 리는 공식적으로 “이단 지도자”라는 낙인이 찍혀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의 저술들은 중국 내에서 금서(禁書)입니다. 워치만 니가 자신의 삶과 사역이 전 세계에 얼마나 심오한 영향을 주었는지를 전혀 알지 못한 채 중국의 한 집단 농장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은 비극입니다. 

위트니스 리가, 자신의 조국에서 자기의 이름과 사역이 그토록 노골적이고 총체적인 왜곡을 당하는 상태에서 1997년에 사망한 것도 유사한 비극입니다. 

 중국이 사회 전반에 걸쳐서 세계 무대에서 현저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이 시점에, 국제 사회에서 자신의 명성을 더 개선할 수 있는 명백한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것은 전혀 뜻밖의 일입니다. 

중국은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인 두 분의 이름을 비방하기보다는, 그들의 메시지나 양떼를 인도함에 있어서 전혀 정치색이 없으면서도 중국어 언어권을 훨씬 넘어서까지 지대한 영향력을 끼쳐 온 자국민 두 사람에 대해 국가적인 긍지를 가져야 합니다. 

 하원 의장님, 저는 오늘 중국 정부에게 다음과 같이 요청하고자 합니다. 중국 정부는 단지 그 리스도를 믿는 신앙 때문에 갇혀있는 모든 이들을 석방해야 하며 구원과 용서와 화평의 메시지를 갖고 오셨던 분을 용감히 따랐던 두 사람에 대한 기록을 악평하고 왜곡하려는 이러한 국가적인 캠페인을 포기하고 오히려 우리와 함께 전 세계의 믿는 이들에게 기여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공헌을 축하해야 합니다.      (끝)

posted by 스마일은혜 2018.11.15 00:00


(지방교회) 진리의 변호와 확증

제2장 : 어떠한 이단인가

- 두 신성한 아버지, 두 생명주는 영, 세 하나님


삼일 하나님의 문제에 대하여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단지 그들의 전통만을 주의할 뿐 분명하고 정확한 성경 말씀을 주의하지 않는다.

그들은 전통을 보존하기 위하여 성경 말씀을 왜곡하며 절대적으로 성경의 순수한 말씀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는다.

이러한 전통 때문에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싸움을 원치 않지만 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명백하게 이단적인 관념, 즉 두 신성한 아버지, 두 생명주는 영, 심지어 세 하나님의 관념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부지중에 또는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그것을 붙잡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붙잡고 있는 관념은 사실상 이단적인데, 이는 그것이 두 신성한 아버지, 두 생명주는 영, 그리고 어떤 경우는 세 하나님을 믿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의 기본적인 계시

성경의 기본적인 계시에 의하면, 하나님의 경륜은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 안으로 넣어서 그들이 이 땅에서 하나님을 표현하는 살아 있는 교회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와 오늘날의 상황 가운데서는 이것을 볼 수 없다.

우리가 보는 것은 경배의 대상이신 삼일 하나님과 죄인들을 지옥에서 천당으로 구원하는 구주를 가진 기독교라는 종교뿐이다.

오늘날 기독교 안에서는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도, 합당한 교회 생활의 실행도 볼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지난 오십 년 동안 주님은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과 합당한 교회 생활에 대한 주님의 회복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그 기간에 걸쳐 우리는 주님이 주신 주님의 회복에 대한 부담을 가져왔고, 종교의 공격을 받아왔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누구신지에 관하여 주님으로부터 분명한 이상을 받았기 때문에 공격을 당해왔다.

주님을 그리스도가 만유를 포함한 놀라운 분이시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그리스도는 만유 안에 계신 만유이시다.

그분은 하나님이요, 창조주요, 아버지요, 아들이요, 그 영이며 또한 합당한 사람이시다.

그분은 모든 신성한 속성들과 인간적인 미덕들의 실제이시다.

이 만유를 포함하신 그리스도의 모든 방면의 중심점은 생명주는 영이다.

우리는 우리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주는 영이심을 우리의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분은 하나님의 어린양이고 구속주이시지만, 이러한 것들은 단지 이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의 두 방면일 뿐이다.

만유를 포함하신 그리스도는 모든 것이 되신다.

성경은 심지어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느니라”(골 3:11)는 말로 그분을 묘사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모든 적극적인 것들의 실제이시다.

그분은 빛이요, 생명이요, 의요, 거룩이요, 구속이요, 구원이시며, 또한 모든 것이다.

체험에서, 그분은 우리 영 안에 거하시는 생명주는 영이시다.

이것을 선포함으로 인해 우리는 이단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우리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아들이신 그리스도가 그 영이시고 또한 아버지’라고 하면서 사람들에게 이단을 가르친다고 말한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가 아들이실 뿐만 아니라 또한 아버지시요 그 영이심을 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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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마일은혜 2018.11.08 00:00

(지방교회) 진리의 변호와 확증


제1장 : 성경의 순수한 말씀에 따른 삼일 하나님에 대한 계시

. 비밀

요한복음 11절은,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말한다.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라는 절을 보고서 우리는 말씀과 하나님이 둘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는 절은 말씀과 하나님이 하나임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말씀이 하나님이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말씀은 하나인가, 둘인가?

둘 다이다.

이것은 비밀이다.

고린도후서 317절은 주는 영이시니라고 말한다.

여기서 주와 영은 하나다.

왜냐하면 주는 영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은 구절에서 주의 영을 말한다.

이것은 주와 영이 둘임을 가리킨다.

주와 영은 하나인가, 둘인가?

이것은 비밀이다.

히브리서 18절과 9절에서 어떻게 아들이 하나님이라 불리고 하나님이 그의 하나님으로 언급되는지를 주의해 보라.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며 ...’ 그러므로 하나님 곧 너의 하나님이 네게 즐거움의 기름을 부어

여러분은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여러분은 하나님이여, 너의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것 역시 비밀이다.

마지막으로 계시록 14절과 5, 56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한 영(4:4)일곱 영으로 불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 역시 또 하나의 비밀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우리는 순수한 말씀을 단순하게 취하기를 배워야 한다.

우리는 성경이 우리 삼일 하나님께 관하여 말씀하시는 바를 알고 그것을 믿는다.

우리는 우리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순수한 말씀에 따라 진리를 볼 수 있게 해 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한다.

거듭 말하거니와 이 삼위일체에 관한 논쟁과 토론은 끝이 없다.

왜냐하면 삼위일체는 비밀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삼위일체를 완전하고도 충분하게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삼일 하나님은 우리의 제한된 지력에 따라 하나의 교리적 문제로는 완전히 이해되실 수 없다.

삼일 하나님은 우리의 체험과 누림을 위한 것이다.

삼일이신 하나님은 그분의 경륜, 즉 우리의 생명과 우리의 모든 것이 되도록 하나님 자신을 우리 안으로 분배하시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많은 시간을 들여 아버지는 아들 안에 계시고, 아들은 지금 생명주는 영으로 우리의 누림을 위하여, 우리의 생명과 모든 것이 되기 위하여 우리 영 안에 내주하심을 지적하는 이유이다.

만일 이것이 체험의 문제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그것에 관해 말하는 것을 그다지 관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공격하는 사람들로 인해 우리가 체험한 바를 사람들에게 분명히 해야 했다.

오스왈드 샌더스(J. Oswald Sanders)영적 성장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윌리엄 바클레이는 이렇게 말했다. ‘바울은 부활한 주님과 성령을 하나로 보는 것 같다. 우리는 바울이 신학을 쓴 것이 아니라 체험을 적고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성령의 역사와 부활하신 주님의 역사가 하나이며 동일하다는 것은 그리스도인 생활의 체험이다. 우리가 얻는 힘과 빛과 인도는 성령과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동일하게 온다. 우리가 이것을 체험하고 있는 한,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는가는 문제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삼일 하나님은 용어나 교리를 위한 것이 아니다.

삼일 하나님은 우리의 체험과 누림을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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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마일은혜 2018.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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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 성경의 순수한 말씀에 따른 삼일 하나님에 대한 계시


G. 셋 모두 우리 안에 계심


에베소서 4장 6절은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만유의 아버지라 ... 만유 안에 계시니라”고 말한다.


이 구절로 볼 때, 아버지가 우리 안에 계신 것은 분명하다.


아들이 또한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것은 요한복음 14장 20절의 “그날에는 ...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골로새서 1장 27절의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고린도후서 13장 5절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를 볼 때 분명하다.


또한 요한복음 14장 17절은 “진리의 영이라 ...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성령 또한 우리 안에 계신다.


아버지가 우리 안에 계시고, 아들이 우리 안에 계시며, 성령 또한 우리 안에 계시는 것은 아주 분명하다.


그러면 우리의 체험을 따르면 몇 분이 우리 안에 계시는가?


하나인가, 셋인가?


하나이다!


문자로는 셋인 것 같지만, 우리의 체험으로는 하나이다.


왜냐하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하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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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11.02 00:00

고전 15:45 - 생명주는영 (a life-giving Spi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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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구원론은 구속 곧 죄사함과 칭의를 많이 강조합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조에)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 하십니다(요10: 10하). 이것은 죄사함과 칭의가 구원의 한 방면이긴 하지만 그 자체가 구원의 완성이 아니며, 구속받은 사람들은 더 나아가 생명을 얻고 더 얻어 영적으로 자라가는 면의 구원이 더 필요 함을 말해 줍니다 (롬5:10, 벧전2:2, 1:5 본문 참조).  

이런 맥락에서 예수님을 ‘생명주는 영(a life-giving Spirit)’으로 소개한 고전 15:45은 주목할 만한 성경 본문입니다. 서울교회 담임인 이종윤 목사께서도 설교에서 “고전 15:45에는 창조론, 인간론, …  구원론, 종말론이 들어 있어서 신구약 성경 중 가장 중요한 구절 중 하나” 라고 소개한 바 있습니다 (http://www.seoulchurch.or.kr/2008/sub02_02.htm?read_no=3753&page=0&list=0&key= )  

그럼에도 이 ‘생명주는 영’은 대부분의 성도들 심지어 목회자들에게도 다소 생소한 편입니다. 더구나 일각에서는 이 구절이 언급한 생명주는 영과 성령과의 관계를 놓고 양태론 시비를 벌이는 등 다소 혼돈스런 면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본문에서 언급된 생명주는 영이 누구이시며, 주 예수님 그리고 성령과의 관계는 과연 무엇인지를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에서 간략하게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 고전 15:45 본문과 주석적 견해 소개 

위 성경본문 그리고 그에 대한 해석적 이해를 돕기 위해 원어를 직역한 본문과 그에 대한  몇분 성경 교사들의 관련 주석 일부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고전 15:45 :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대로  첫 사람 아담은 산 혼이 되었지만,  마지막 아담은 생명주는 영이 되었다”(So also it has been written, “The first man, Adam, became a living soul;” the last Adam became a life-giving Spirit.) (A Literal Translation of the Bible(핸드릭슨),1987, 932쪽) 

  1) M. 빈센트 : 

 “마지막 아담은 그리스도이시다. 아담은 죄 있는 족속의 머리라면, 그리스도는 구속 받은 족속의 머리이시다…생명주는 영은 단지 살아 있는 생명만이 아니라 나누어 주는  생명이시다 (…Not merelyliving, but imparting life). 요1:4, 3:36, 5:26, 40…11:25, 14:6과 비교해 보라 (M. 빈센트,Word Study, Vol. III., 1980, 284쪽). 

  2) 존 칼빈: 

 “모세는 아담이 산 혼이 된 것을 그리스도께서 생명주는 영이 되신 것과 연관시킨다. 생명 또는 생명의 근원이 된 것은 다만 사는 것보다 더 위대한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우리처럼 산 혼이 되신 것과  이외에 주의 영께서 그분 위에 부어지신 것, 그분의 능력에 의해 그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일어나시고 또한 다른 이들도 일으키시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Moses relates that Adam was furnished with a living soul: Christ, on the other hand, is endowed with a life-giving Spirit. Now it is a much greater thing to be life, or the source of life, than simply to live. It must be observed, however, that Christ did also, like us, become a living soul; but, besides soul, the Spirit of the Lord was also poured out upon him, that by his power he might rise again from the dead, and raise up others…” ( 칼빈주석 Vol. XX(고린도서vol. 2), 베이커 북 하우스, 1981,  52쪽) 

 “이로부터 우리가 사람임으로 산 혼을 소유하지만, 우리는 중생의 은혜에 의해 우리 위에 부어지신 그리스도의 생명주는 영도 소유함을 본다. 요컨대, 바울의 취지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얻은 지위는 첫 사람의 그것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산혼은 이름 그대로의 아담에게와 그의 후손에게 주어졌지만,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생명이신 그영을 획득 (procured)하셨기 때문이다.” 

 “From this you see, that we have living souls, inasmuch as we are men, but we have the life-giving Spirit of Christ poured out upon us by the grace of regeneration. In short, Paul’s meaning is, that the condition that we obtain through Christ is greatly superior to the lot of thefirst man, because a living soul was conferred upon Adam in his own name, and in that of his posterity, but Christ has procured for us the Spirit, who is life.”(위 책, 53쪽). 

  3) R. C. H. 렌스키 

 “그리스도는 참으로 “마지막 아담, 생명주는 영”으로 불리우신다. 둘은 매우 유사하지만, 큰 차이점이 있다. 두 아담들은 모두 선조들이지만, 한쪽은 오직 천연적인 혈통의 선조라면, 다른 쪽은 영적인 혈통의 선조이다. 한쪽은 창조될 때 단지 “산혼”이 되었을 뿐임으로 우리는 그로부터 “자연적인 몸”(a natural body)만 물려 받았지만, 다른 쪽은 우리를 위해 “생명주는 영”이 되셨으므로 우리는 그로부터 “영적인 몸”(a spiritual body)을 받게 될 것이다.”(렌스키, 바울의 고린도 전후서 해석, 핸드릭슨 출판사, 1963, 720쪽,  * 독자의 편의를 위해 영문 원문을 번역한 것임). 

 “”생명주는 영”은 우리와 연관을 가지신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분은 우리를 위한 영적인 생명의 원천이시다. 비록 그분이 영적인 몸과 영광의 몸이 되셨을지라도, 그러한 영적인 생명은 그분의 몸으로 부터가 아니라 그분의 영광스러운 몸 안에 ‘거하는’(dwells) 영으로 부터 우리의 몸 안에 거하는 우리의 영으로 흐르고그 결과 우리를 영적으로 활기있게 하고, 우리에게 생명(조에)을 주신다.”(위 책 722쪽). 

 “이렇게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것은 일시적인 죽음을 통과하여 축복된 영원 안으로 옮겨간 조에의 생명을 우리가 영접하는 때인 중생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러한 역사의 완성은 우리 몸의 부활과 영화롭게 됨인데, 그것은 우리의 혼과 영과 다시 결합하여 22절이 말하는 신령한 몸이 되는 것이다.”(위 책,722쪽). 

  -고전15:45의 핵심 단어들 정의  

1) 마지막 아담 

 생명주는 영이 누구이신가를 알려면 우리는 먼저 마지막 아담을 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생명주는 영은 다름 아니라 마지막 아담이 죽고 부활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위 빈센트에 의하면, ‘마지막 아담’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이 그리스도는 또한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요1:14) 즉 주 예수님이십니다(행9:22, 요11:27). 

 이제 이 마지막 아담이신 주 예수님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이 분은 육신을 입으신 <제 2격 아들 하나님>이심이 분명하지만(갈4:4), 그러나 이것은 다른 두 위격과 ‘분리된’ ‘아들 하나님 만’(God the Son only)이심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대신에 “(성부, 성자, 성령께서) 하나 하나가 다른 하나 안에 계시며…모든 이가 한 이 안에 계신다(…all in each)”라는 어거스틴의 정통 삼위일체의 정의에 따르면 이 분은 <성부와 성령께서  상호내재 하시는 아들 하나님> 즉 <온전한 하나님>(the complete God)이십니다 (요14:11, 8:16, 16:32).  

이러한 이해는 ‘삼위는 각기 구별은 되나 분리되지 않으신 상태로 상호내재 하신다’는 존재론적 삼위일체 방면의 고전적인 원칙과도 부합됩니다 

요약하자면, 마지막 아담은 ‘육신을 입으신 주 예수님’이십니다. 또한 마지막 아담은 ‘육신을 입은 아들 하나님 안에 성부와 성령께서 상호 내재하시는 온전한 하나님’이십니다. 

  2) 생명주는 영 

생명주는 영은 바로 위에서 정의되신 마지막 아담께서 죽음과 부활을 통과하신 분입니다. 즉 마지막 아담이 부활 전 예수님이시라면, 생명주는 영은 <부활 후 예수님>이십니다. 또한 위 어거스틴의 정통 삼위일체에 의거하여 좀더 풀어서 말하자면, 이 부활 후 예수님이신 생명 주는 영은 < 성부, 성령께서 존재론적으로 함께 하시는 부활한 몸을 입으신 성자>라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 

  3) ‘되었나니’ 

 성경은 ‘마지막 아담이 생명주는 영이 되었다 ‘고 말합니다. 그리고 전후 문맥을 볼 때 그 렇게 되신 시점은 부활 때임을 알수 있습니다. 위 인용문에서 칼빈은 마지막 아담 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그영 곧 생명주는 영을 ‘procured’(획득했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이것은 부활전 예수님(마지막 아담)이 부활 후 예수님(생명주는 영)이 되시는 과정에서 무엇인가가 일어났음을 암시합니다. 우리는 그런 부활 전후의 차이를 부활 후에 예수님께서 “문을 닫고 있는 공간에 문을 열지 않고 들어가심”(요20:19), “눈에 보였다가 (갑자기) 안 보이는 존재가 되심(눅24:31) 등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되었나니”의 실상은 바로 앞 절을 근거로 예수님의 하나님이신 방면은 전혀 변화가 없으시나 그분의 인성에 있어서는 부활 전의 “육의 몸”이 부활 후의 “신령한 몸”이 되신 것을 가리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고전15:44).  

지금까지 생명주는 영을 검토해 온 내용들이 맞다면, 우리는 생명주는 영의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들을 재차 강조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우리가 정의한 생명 주는 영은 ‘부활한 예수님의 인성이 포함된 신성한 영’ 또는 ‘신성, 인성의 영’이십니다 (2) 성령은 영원 전부터 계셨지만 신성 안에 인성이 포함된 이러한 생명주는 영은 주 예수님이 영광 받으신 싯점인 부활(눅24:26, 고전15:43) 전에는 이 땅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요7:39). (3) 고전 15:45의 생명주는 영은 다만 아들만 또는 다만 성령만도 아니시고, 부활한 몸(인성)을 가지신 아들 안에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으시는) 성부와 성령도 함께 포함되신 온전한 하나님, 즉 삼위 전체이십니다. 

  -바울 서신에서의 성령과 생명주는 영의 동일시 문제   

‘성부는 성자가 아니시고, 성자는 성령이 아니시다’라는 정의가 정통 삼위일체에서 구별된 삼위를 유지하는 원칙으로 인정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주는 영이시니” (And the Lord is the Spirit)(고후3:17)에서 보듯이 성경본문 자체가 그런 원칙과 충돌하는 곳이 몇군데서 발견됩니다 (사9:6, 고전15:45, 고후3:17). 개핀 교수님, 박형용 박사님, 제임스 D.G. 던(Dunn)박사님 등 저명한 개혁 신학자들은 이러한 부분들을 경륜적인 삼위일체의 방면 즉 ‘기능에 있어서의 위격 간의 동일시’로 설명합니다.  물론 이것은 존재론적인 삼위일체론의 특징인 위격간의 구별을 손상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가집니다. 

(만일 이런 관점을 양태론이라고 한다면 ‘주는 영이시다’(고후3:17) 등의 성경기록 자체가 양태론 이라는 말이 되고 말아 문제가 있습니다). 

 예를들면, 제임스 던 박사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바울은 높여지신 예수와 그영- 한 영적인 존재 또는 영적인 차원 또는 영역이 아니라 그영  성령을 동일시 하고 있다…믿는 이들의 체험에 있어서는 그리스도와 영 사이에 구별이 없다”(Paul identifies the exalted Jesus with the Spirit-not with a spiritual being or a spiritual dimension or sphere, but with the Spirit, the Holy Spirit…in the believer’s experience there is no distinction between Christ and Spirit)(I Corinthians 15:45-last Adam, life-giving Sprit,  The Christ and  the Spirit: Christology Vol.1, p139). 

 우리는 동일한 견해를 다음 자료들에서도 볼수 있습니다. “이 시대에 역사하시는 그리스도는 역사하시는 성령이시다” (스미디즈, 바울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사상, 201쪽), “고전 15:45의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느니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개핀은 그리스도와 성령을 동일시 하고 있다.이것은 …경륜적, 기능적, 종말적 동일시이다” (차영배, 성령론-구원론 부교재,  49쪽). ‘주는 영이시다’(박형용, ‘신학지남’ 1978년 봄호(3월호, 통권 180권) 28-39쪽). 

  결론적으로,   

죄사함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 이후 삶속에서 영적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음으로 하나님의 장성한 아들들이 되는데 있어서 ‘생명주는 영’(고전15:45)을 바로 이해하고 체험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부활한 인성이 포함된 신성한 영’은 많은 성도님들에게 가려져 있었거나 잘못 이해 되어 왔습니다. 

앞에서 검토한 바에 따르면, 생명주는 영은 <부활한 인성이 포함된 아들 하나님> 또는 <영적인 몸을 입으신 성자 안에 성부와 성령께서도 존재론적으로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게) 상호내재 하시는 삼위 전체>이십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 그분의 인성을 벗어 버리셨다고 이단적으로 믿지 않은 한, 생명주는 영을 위와 같이 ‘인성-신성의 영’으로 이해하는 것은 다소 생소하나 철저하게 성경적입니다. 주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이러한 생명주는 영에 대한 바른 인식과 체험 안으로 이끌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끝 

  - 추가로 다뤄야 할 두 가지 남은 문제들:    

1) 칼빈과 렌스키는 위 인용문에서 우리가  중생할 때 생명주는 영을 소유했음을 강력하게 암시합니다. 그런데 만일 이 ‘생명주는 영’과 ‘보혜사 성령’이 각기 다른 두 영들이라면 우리는 두 영들을 어떤 식으로 각각 체험하는가 라는 의문이 남습니다. 또한 두 영을 같다고 보더라도 추가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것들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2) 만일 우리가 생명주는 영을 영접한 것이라면 인성 신성 모두를 포함하신 주 예수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것인지, 아니면 칼빈의 주장처럼 인성은 제외된 예수님의 신성만 내주 하시는 것인지도 더 연구와 검토가 필요한 과제들입니다. 하나같이 쉽지 않은 비중 있는 주제들이나 반드시 빛가운데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고 느껴져서 주님 앞에서 기도하면서 시간을 가지고 하나씩 최선을 다해 정리해 나가고자 합니다.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11.01 00:00

이단감별사의 눈에는 칼빈도 이단인가?
- 지방교회 진리변호확증 자료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면 감리교 권사 이00라는 분이 삼위일체에 관해 쓴 글이 눈에 띄곤 합니다. 모 단체가 삼위일체를 '존재론적 삼위일체' 와 '경륜적인 삼위일체' 로 나누어 설명한 것을 비판한 것입니다. 

이00 권사께서는 정확치 않은 자신의 지식으로 비판했고, 심지어 경륜적 삼위일체 자체를 이단시 하는 터무니 없는 글을 인터넷에 유포시키고 있습니다. 만일 그런 기준이라면 아래에서 보듯이 장로교의 대표적인 신학자인 존 칼빈도 이단이 되고 말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도 역시 경륜적삼위일체를 중심으로 그의 삼위일체론을 펼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삼위일체를 존재론적 삼위일체와 함께 경륜적 삼위일체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은 신학계에서는 충분히 허용되는 것이며 그 자체가 이단이 될수 없습니다. 

이단이 교회의 간증을 위협하는 것 못지 않게 이처럼 이단감별사들의 검증 안된 글(주장) 또한 또 다른 혼잡이요 병폐입니다. 그런 글들이 지금 이 순간도 인터넷 상에서 신학을 잘 모르는 평신도들을 미혹하고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습니다. 

(총신대 신대원 문병호 님 논문 중에서 발췌) 

 "칼빈에게 있어서 내재적 삼위일체적(immanent-trinitarian) 이해는 경륜적 삼위일체적(economic-trinitarian) 이해를 지향하고 있다. “아버지는 기원이 없으시고, 아들은 오직 아버지로부터 나셨고,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출래하셨다”는 초대 교회에 확립된 내재적 삼위일체적 교리는 다음과 같은 경륜적 삼위일체적 이해에 이른다: “아버지는 사역의 시작이고 모든 일의 기원이자 근원이며, 아들은 모든 일의 지혜와 경륜과 작정된 바대로의 뜻이며, 성령은 그 사역의 능력이자 효력이다” (Inst. 1.13.18, CO 2.105). 

니케아 교부들과 마찬가지로 칼빈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경륜적 삼위일체론적 구원 사역을 중심으로 삼위일체론을 다룬다.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성부 하나님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손(manus)을 통하여서 구원 사역을 이루시고 그 영으로 우리를 구원하신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찾으려면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야 한다. 또한 오직 이와 같은 방식으로만 보이지 아니하시는 성부 하나님을 찾을 수 있다(cf. Inst. 3.2.1). 우리를 향하신(pro nobis) 성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성령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 안에서(in nobis) 역사한다." 

출처: http://www.theologia.co.kr/cgi-bin/spboard/board.cgi?id=a2&action=download&gul=27 (총신대 신대원, 문병호님 논문-다운로드) 

참고로 이00님은 아래 글에서 "이미 경륜적 삼위일체는 4세기 이후에 양태론적이란 이유로 신학적 중심에서 밀려나 잊혀진 주장이 되고 말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4 세기 보다도 한참이나 지난 16세기에 칼빈은 여전히 경륜적인 삼위일체를 주장하고 있는 사실을 이00 님은 어떻게 설명하실지 궁금합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경륜적 삼위일체를 자신의 삼위일체의 중심으로 다루고 있는 칼빈도 이단이 되고 말 것입니다.

posted by 스마일은혜 2018.10.30 00:00


진리의 변호와 확증(7) - 지방교회 진리변호확증 자료


(지방교회) 진리의 변호와 확증


제1장 : 성경의 순수한 말씀에 따른 삼일 하나님에 대한 계시


2. 아들과 아버지는 하나이시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10:30).

이것은 분명한 성경 말씀이다. 


3. 마지막 아담은 생명 주는 영이 되셨다

고린도전서 15장 45절은 ‘마지막 아담은 생명 주는 영이 되었나니’(미국 표준역)라고 말한다.

마지막 아담이 누구인가?

예수이다.

생명 주는 영은 누구인가?

성령이다.

성령 외에는 생명을 주는 다른 영이 없다.

이 구절은 성경에서 마지막 아담이라고 불리는 예수가 생명 주는 영이 되셨음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따라서 주 예수님이 성령이라고 말하는 것은 성경의 분명한 계시에 따른 것이다.

그러므로 분명한 것은 주 예수는 아버지요 아들이요 영이며, 참 하나님이요 주님이시라는 것이다.


4. 주(아들)는 영이시다

고린도후서 3장 17절은 “(지금) 주는 영이시니”라고 말한다.

여기서 주(主)는 누구인가?

의심할 바 없이 예수이다.

영은 누구인가?

물론 성령이다.

여기의 주는 예수이고, 영은 성령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지금) 주는 영이시니”라고 말한다.

주 예수를 영이라고 말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성경적인 것이다!

앤드류 머리는 그의 책 ‘그리스도의 영’ 25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 주 예수는 생명 안으로 높여지셨을 때 <주 성령>이 되셨다... 제자들은 예수를 안 지 오래 되었지만, 그를 주 성령으로 알지는 못했다... 주님을 주 성령으로 전파하지 않고 십자가에 못박힌 분으로만 전하는 열성적인 복음 전파가 많은 듯하다... 그리스도를 주 성령으로 알고 인식하며, 그리스도의 영으로 믿는이들을 그의 형상 안으로 변화시키고 교회 안에 살게 할 때, 믿는이들 가운데 있는 그러한 사역은 생명과 능력의 사역이 될 것이며, 이러한 사역이야말고 참으로 그 영의 사역인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한 하나님이지 세 하나님이 아니다.

그러나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깊은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세 하나님이라고 생각한다.

어떤이들은 심지어 분명하게 그렇게 말한다.

또 다른이들은 입으로는 이렇게 말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잠재의식 속에서는 이러한 관념을 붙들고 있다.

아마 이 메시지를 읽고 있는 여러분 가운데 어떤이들도 과거에 그런 관념을 가지고 있었지만, 정죄받는 것이 두려워서 말하기를 꺼렸을 것이다.

나는 아들이 아버지시며 주님이 영이시라는 것을 믿지 않는 그리스도인 설교자와 대화를 한 적이 있다.

나는 그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몇 분의 하나님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나에게 “세 하나님”이라고 분명하고도 명백하게 말했다.

그와 같은 말을 절대로 이단적이다.

성경의 계시에서 하나님은 유일하시다.

이러한 통제하는 원칙이 없이 수세기 전에 사람들은 세 하나님이 있다고 말하곤 했다.

신학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신격의 세 인격에 대한 말로 ‘위격들(persons)'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세 위격들은 지나치게 강조하면 삼신론(三神論)에 빠지게 된다.

우리는 전통적인 용어들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어려움에 처할 것이다.

그렇다.

성경은 하나님이 한 분이심을 말하며, 또한 하나님-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삼이일(三而一)이심을 분명히 말한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별개의 세 ‘인격들’로 강조하는 것은 성경의 계시에 어긋나는 것이다.

로마서 강해로 유명한 그리피스 토마스는 이렇게 말한다.

‘<위격>이라는 용어 또한 종종 논박을 받는다. 인간의 모든 언어가 그러하듯이 이 용어도 부적절하다는, 심지어 명백한 오류라는 비난을 받기 쉽다. 확실히 그것을 지나치게 강조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삼신론에 빠지게 된다. ...<본질>이나 <위격> 같은 용어들을 사용해야 하기는 하지만,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대로 사람의 본질이나 인격의 개념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 삼위일체에 대한 진리와 체험은 신학적인 용어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신학의 원칙)에서


진리의 변호와 확증
워치만 니, 위트니스 리 한국복음서원
지방교회 생활하기
지방교회 - 변호, 확증, 말씀, 계시, 삼일성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10.26 00:30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에 관한 『전문가들의 증언 "서문"』 - 지방교회 진리변호확증 자료

전문가들의 증언


제1장   머 리 말 

「전문가들의 증언」은 1985년 5월 캘리포니아 상급 법원에서 리(Lee)와 더디 등과의 재판에서 전문가들이 선서 증언한 것을 기록하고 있다. 다양한 종교적 배경을 대표하고 있는 여섯 명의 전문가들은 위트니스 리와 지방 교회들의 가르침과 실행들을 조사하도록 요청받았다. 전문가들은 또한 영적 사이비 연구소(SCP)가 출판한 「갓멘」이라는 책에 있는, 지방 교회들을 반대하여 인쇄된 비난과 비평들을 조사하도록 요청받았다. 

마지막으로, 이들 중 다섯 명은 캘리포니아 상급 법원에서 선서하에 그들의 결론을 제출할 것을 요청받았다. 여섯번째 전문가인 가우스태드 박사는 재판에서 증언하지 않았지만, 그의 연구는 논문으로 요약되었고, 이 책에 재인쇄되었다. 이 책은 위트니스  리와 지방 교회들에 관한 전문가들의 증언이다.

소송은 교리적인 차이에 대한 것이 아니라, 「갓멘」이라는 책이 위트니스 리와 지방 교회들에 관하여 거짓되고, 악의적이며, 손상을 주는 내용을 서술했다고 보았기 때문에, 명예 훼손 문제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사이비」 라는 관념을 갖게 한 「영적 사이비 연구소」에 의해 사용된 많은 공격들은 교회들의 믿음과 실행에 관련되어 있다. 그들의 비난은 신학, 심리학, 사회학 및 「실지」 사건들을 포괄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교리를 포함하여 이 책의 총체적인 왜곡 현상이 밝혀져야만 한다. 「영적 사이비 연구소」가 지방 교회들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전문가로 자처했기 때문에, 관련된 분야에 좀더 자격을 갖춘 몇몇 사람들의 증언은 필수적 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각 분야에서 자격을 갖춘 전문가들을 구했으며, 지방 교회들을 연구하고 「갓멘」에 있는 공격들을 평가하도록 요청하였다. 

지방 교회들과 지방 교회들의 비방자들에 관한, 참으로 자격을 갖춘 전문가들의 결론은 「위트니스 리와 지방 교회들에 관한 전문가들의 증언」에서 볼 수 있다.

왜 지방 교회 사람들은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는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의 마찰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첫번째 선택은 물론 법정이 아니다(고전 6장). 성경의 권고에 의하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리스도인 형제들이 취해야 하는 시도는 그리스도인의 교통을 통한 것이다(마 18:15). 불행하게도, 1970년대 초반부터 「영적 사이비 연구소」의 태도는 결코 다른 그리스도인들로 더불어 진리와 화해를 추구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오히려 처음부터 그들의 태도는 그들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소위 「영적인 사이비」를 심판하고, 정죄하고, 파괴시키는 것이었다. 「영적 사이비 연구소」는 교회들 안에 있는 형제 자매들이 그들의 오류를 지적했음에도 무시했다.

1976 년에 「영적 사이비 연구소」에서 나온 원고는 결국 「갓멘」의 초판이 되었다. 결국 또 다른 책이 그 원고에서 나왔는데, 잭 스팍스(Jack Sparks)와 몇몇 사람들은 그것을 「마인드벤더」로 발전시켰다. 잭 스팍스는  「영적 사이비 연구소」의 초기 인도자였는데, 그 당시 지방 교회의 분리파에서 온 다른 이전의 동료들과 합류하기 위해 「영적 사이비 연구소」와 관계를 끊으려 하고 있었다. 스팍스는 「영적 사이비 연구소」의 원고 사본을 적의를 품은 분리파 일원에게 제공했고, 그 원고가 「마인드벤더」로 발전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두 책은 1977년에 출판되었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출처가 다른 것 같지만, 실상은 한 원고를 복제한 것이다. 그것들은 심지어 본래 원고에 있는 인쇄 실수를 다시 반복할 정도로 매우 유사하다. 그들의 주장과 결론이 그토록 유사하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들이 출판하기 전에 교회 사람들이 두 책에 대해 강한 항의를 제기했었다. 그러나 그러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두 책은 출판되었다.

결과적으로, 이 두 책은 지방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극도로 손상을 입혔다. 처음에 지방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진리에서 동떨어진 책을 믿을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순진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러한 책들에 대한 문제 제기가 대중에게는 도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의 비난을 사실로 받아들였다. 공격들은 매체에  「사실」로서 거듭 활자화되었다. 일 년 안에 지방 교회는 세인들의 「사이비」 명단에 올랐다. 일단 지방 교회가 

사교라 명명되면, 그 반응은 자동적인 것이다. 사람들은 의심과 두려움과 경멸과 회피로 반응했으며, 이러한 반응들을 일소하는 것은 이성의 힘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잘못을 시정할 수 있는 공청회를 가질 길도 없었다. 

어떤 서점도 「사이비교」로 낙인 찍힌 집단의 항변을 게재해 주기를 원치 않았다. 지방 교회 사람들은 그들의 직장에서 가혹한 어려움을 당하고 견뎌야 했다. 어떤이들은 직장을 잃기까지 했다. 더욱 심정적으로 쓰라린 것은 놀란 부모들과 친구들이 사랑하는 자들을 「구출」하려고 시도하는 등의 가족 관계에서의 문제였다. 지방 교회들이 밖으로 뻗어나감은 강력한 배척에 직면 했었다.

1978 년에 있었던 조지 타운의 집단 자살은 「사이비교」라는 말에 새로운 공포를 더해 주었다. 이 기회를 잡아서 「갓멘」과 「마인드벤더」를 발행한 자들은 그들의 책이 개정판으로 출간됨을 발표했다. 저자와 발행자들에 대한 지방 교회들의 호소는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최후의 수단으로 그들은 이 소송을 고려했다. 지방 교회들이 대처할 수 있는 다른 어떤 길이 없어 보였다. 그들은 현대의 「가이사에게 호소」(행 25:9-10)하는 것과 같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고려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그 당시 유대 종교인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았을 때 행사한 것이었다. 소송의 목적은 대중에게 진실을 알려 끊임없는 핍박을 중단시키려는 것이었다. 삼 년에 걸쳐 중대한 왜곡을 바로 잡으려는 시도가 좌절당하고 막대한 타격을 받은 후, 1980년에 명예 훼손에 대한 소송이 자매 책인 「마인드벤더」와 「갓멘」에 대해 제기되었다.

이들 소송은 책들이 주장하는 내용의 사실 여부를 조사하는 토론장이 되었다. 모든 문제에 대해 상세한 조사와 추적이 이루어졌다. 관련된 사람들의 선서 증언이 조서로 기록되어 있다. 이백 건이 넘는 선서 증언이 이루어졌다. 

수많은 문서가 만들어지고, 분석되었다. 모든 명예 훼손의 내용은 물론,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 대한 조사가 상세하게 이루어졌다. 저자들과 발행인들은 선서 아래 그들이 비난한 것에 대한 사실을 확증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가졌다. 즉, 그들은 지방 교회들을 위해 증언해 주는 전문가들을 탄핵할 모든 기회를 가졌던 것이다. 후에 그들은 재판 중에 전문가들에게 반대심문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결과가 신뢰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이 재판을 위해 준비하면서 조서에 대해 삼 년 넘게 조사를 실시했다는 것이다. 그토록 긴 조사를 거치면서 그들의 책은 정당함을 입증받지 못했으며, 오히려 저자와 발행자들의 동기와 악의와 계획적인 왜곡이 드러났다.

여섯 명의 전문가들은 그들이 원하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조사할 권한을 가지고 교회와 중요한 출판물들을 조사했으며, 「갓멘」을 저술하는 데 관련된 사람들의 선서 증언을 상당분 읽었다. 여섯 명 중 일부는 저자들을 지지하도록 임명된 전문가들과 증인들의 증언에 출석했다. 어떤 전문가들은 적대적이고 비판적인 과거 지방 교회 교인들의 증언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고찰했다. 여섯 사람은 적대적인 반대 심문에 대비하여 모든 쟁점들에 대처하고 그들의 결론을 제출할 준비를 갖추었던 것이다.

여섯 명의 전문가들의 상세하고도 공정한 결론은 위트니스 리와 지방 교회의 진실한 믿음과 실행들을 고의적으로 왜곡한 「갓멘」을 압도적으로 정죄했다. 전문가들은 사이비교라는 비난이 저자들의 날조였음을 발견했다. 그들은 인용된 내용들이 위트니스 리가 의미한 것과 반대되는 어떤 것을 의미하기 위해 거듭거듭 제시되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사례 연구」가 의심스러운 동기를 가진 사람들의 확증되지 않은 보고 내용에 기초했음을 발견했다. 

그들은 책이 학문적인 분위기를 갖도록 도입된 사회과학의 함정을 발견했다. 그들은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을 그들 나름의 기독교인의 관점에서 취하여 「사이비」라는 비난에 걸맞도록 왜곡시켰던 것이다.

삼 년에 걸친 드러냄과 증언이 있은 후에, 「마인드벤더」의 발행자들은 위트니스 리와 지방 교회들에게 사과하였으며, 그 책을 출판물 중에서 회수했다. 그러한 철회가 그 전역의 주요 신문에 1983년 4월 10일자로 게재되었으며, 이 책 부록에도 실려 있다. 「마인드벤더」의 저자들은 또한 처리 협약에 서명했는데, 철회는 그 중 한 부분이었다. 그것은 법적으로 「마인드벤더」의 발행과 배포를 종결시켰다.

1985 년 4월에 「갓멘」에 대한 건(件)의 재판이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재판이 시작되기 다섯 시간 전에 「영적 사이비 연구소」는 파산 법원 보호하의 재산 개편 신청을 냈다. 그들은 광범위한 지지 기반을 갖고 있었고, 조사 과정 중에 계속적으로 자금을 조성하였으면서도 재판에 나설 여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 행동을 취함으로써 그들은 혹시 있게 될지도 모를 큰 손해 배상과 과거 삼 년 동안에 선서 증언에서 그들이 한 일의 동기와 방법을 폭로하는 반대 심문이 있는 재판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갓멘」의 주요 저자인 닐 더디(Neil Duddy)는 자신을 「영적 사이비 연구소」와 분리시키고 덴마크로 이주했다. 그는 재판에 나타나지 않았다. 독일판의 스위스인 발행자 「수엔겔러 벌라그」 또한 나타나지 않았다. 

따라서, 재판은 원고만의 참석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이라니온 판사는 사실적인 문제와 전문가들의 의견에 관하여 증인들에게 질문하는 데 있어서 매우 능동적인 역할을 했다. 피고가 출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건에 관련된 사실들과 전문가들의 결론은 법정에 제시되었다.

재판에서 나온 삼십 이 페이지의 판결문은 「갓멘」의 총체적인 허위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린 것이다. 판사에 의해 상세하게 언급된 사실들은 전문가들뿐 아니라 피고들의 선서 증언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한 사실들은 그 자체로서 자명하다. 법원의 의견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이 사건은 정식으로 공판에 회부되었으며, 상대가 없는 재판으로 진행되었다 …. 상대가 없는 재판이었지만, 법정은 원고들이 역량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증거를 제시했음을 느꼈고, 또한 법정은 증언자들의 신분과 자질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더 나아가서, 법정은 피고인들이 출두하는 것과 관계 없이, 수정 헌법 1조 상의 권리(표현의 자유에 해당) 문제를 다루는 사건에서 요구되는 대로 진실을 확증하기 위해 증인들을 심문하고 반대 심문할 충분한 기회를 가졌다. 법정이 보기를 원하고 묻기를 원했던 것은 빠짐없이 제공되었다. 더 나아가서, 원고들을 위한 증거는 자격 있는 전문 증인들에 의한 독립된 증거로서 확증되었다. 

따라서, 법정은 미국에서 유포된 「갓멘(THE GOD-MEN)」(증거물 1호)이라는 닐 티 더디의 저술과 수엔겔러 벌라그가 출판하여 유럽에서 유포한 책 「위트니스 리와 지방 교회에 대한 탐구」(증거물 3호), 그리고 닐 더디와 「영적 사이비 연구소」가 인터바시티 출판사(Inter-Versity Press)를 통해 미국과 영국에서 유포한 책「갓멘(THE GOD-MEN)」(증거물 5호)의 위트니스 리와 지방 교회들에 관한 탐구는 모든 주요 방면에서 거짓되고, 비방적이며, 특권 침해이므로, 명예 훼손임을 판결한다.』 (캘리포니아 민법 제45조).

판결문의 전문은 이 책 발행인이 보유하고 있음을 참고하기 바란다.

일억 천 구백만 달러라는 손해 배상액은 손상 행위에 대한 재판장의 의견 및 책을 쓰는 데에 연관된 악의에 대한 그의 반응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그 재판에서 판정한 배상액은 결코 원고에게 지급되지 않았다. 「영적 사이비 연구소」는 법원의 감독하에 재편되었으며,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

법원 결정에 있어서 가장 가치 있는 보상은 이 책에 기록된 증언에 있다. 

비록 「갓멘(The God-Men)」과 「마인드벤더(The Mind ben ders)」는 출판계에서 회수되었지만, 그들이 지어낸 악한 소문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매번 새로운 사이비교 소동과 함께 캐캐묵은 정보가 되풀이됐다. 이 책의 증언은 아직도 되풀이되고 있는 그들의 비난에 대한 해독제이다.

여섯 명의 전문가들은 증언하고서 십 년이 지난 후에, 위트니스 리와 지방 교회들에 관한 이 책에 있는 그들의 결론이 확고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모두 이 책이 발행되기 전에 그들의 증언을 재검토했고, 최신의 논평을 할 기회를 가졌다. 멜튼 박사(Dr. Melton)는 1993년에 발행된 그의 저서 「미국의 사이비들에 대한 백과 사전 편람(Encyclopedic Handbook of cults in America)」을 이용하여 두 책으로 인해 지방 교회가 잘못 분류된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기회로 삼으려고 애썼다. 

불행하게도, 몇몇 사람들은 그 책에 있는 지방 교회들에 관한 단순한 언급은 그가 생각을 바꾸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지금은 지방 교회를 사교로 간주한다고 추정했다. 멜튼 박사는 그같은 추정을 하는, 일본에 거주하는 한 사람에게 보낸 1995년 7월 3일자의 최근 편지에서 그의 현재 입장을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기술하고 있다.

『1980년대 초반의 짧은 기간 동안에 지방 교회와 개인적으로 반목하는 몇몇 사람들이 지방 교회를 사교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그러한 비난은 근거가 없다는 것이 입증되었으며, 거의 십 년 간 여기서는 그러한 말이 들려오지 않았다. 
내가 강하게 강조하는데, 내 책에 있는 그들에 대한 결론(서문에서 분명하게 진술했듯이)은 이 책에서 논의된 다른 단체들과 그들의 유사성을 다만 논박하기 위한 것이었다. 
북미에서는 거의 십 년 동안 지방 교회가 「사교」임을 암시하는 어떤 문헌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을 수년 동안 조사하고 나서, 나는 지방 교회가 주로 교회론, 경건, 종말론의 문제에서 기타의 교회들과 다른 정통 그리스도인 교회라고 결론지었다. 즉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모든 기독교 종파들이 일치되지 않으며 또한 불일치가 허용된다.』

마침내 대중은 진정으로 자격을 갖춘 전문가들의 증언을 숙고할 수 있으며, 위트니스 리와 지방 교회들에 관한 합당한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여기서 그 결말은 한 사람이나 한 단체를 단순히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지방 교회 사람들은 진리를 검토하는 것을 기뻐한다. 얼마의 독자들이 이 땅에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에 관해 새로운 빛과 영감을 받을 수 있다면, 모든 수고는 헛되지 않은 것이다. 어떤 사람이 믿음의 세부적인 사항에 동의하지 않는 편을 선택했다 할지라도, 지방 교회의 참된 신앙이 마침내 보다 분명해졌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 여전히 만족하고 있다. 이 책을 여론의 거대한 법정에 맡긴다. 여러분이 읽을 때 진리 안에서만 발견되는 빛과 자유와 기쁨이 있기 바란다.

댄 토울(Dan Towle) 
캘리포니아 아나하임(Anaheim, California)
1995 년 10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