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 여자
그 도시의 중심에 가면 표지석이 있다
수국꽃 아래에서 여자는 길을 가르쳐 주었다
서고에서 갓 나온듯 묵은 종이 냄새가 나는 여자였다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다가 잃어버린 언어 몇 개를
찾아다니는 중이라고,
넣어둔지가 언제였는지 모른다고 했다
어디서 샀는지도 모르지만 잃어버린 것만은 확실하다고 했다
향기가 우물처럼 고여 있는 꽃나무 아래
등받이 없는 의자를 가리키며 앉았다 가라고 했다
그녀는 내 트렁크 속에
자신이 잃어버린 언어가 있는지 아주 긍금해 했다
미래에 올 언어 같다고도 했다
소각장 가는 길을 내게 묻기도 했다
누가 다 끌어 모아다가 태워버린 것 같다고,
재가 되었어도 뒤져봐야 한다고 했다
그 도시는 길이 온통 울퉁불퉁해서 낮과 밤, 월요일과 화요일,
일상적인 시간들이 오가다가 자주 넘어지곤 한다고,
동전이 주머니에서 튀어나갈 때, 그 언어들도 튀어나갔나 보다고 했다
여자는 실은 죽어가고 있었고
잃어버린 그 언어들이 자기를 회생시키는 묘약이라고 믿는 눈치였다
내가 다시 길을 물으려는데 바람에 주소를 쓴 종이가 날아가 버렸다.
나야말로 이 말씀 몇 개를 찾지 않으면
오십년 만에 도착한 이 도시에서
오늘 밤 당장 어디 묵어야 하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