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5. 8. 22:54
매혹(魅惑)
보라는 등 뒤에 숨는 울먹한 색이다
드러나기를 두려워한다
창고 옆 수국꽃 그늘 아래
묻어 둔 편지처럼 수줍다
흔들리는 등꽃 아래 누워 자던
너의 흰 이마에 드리우던 반그늘
일몰 무렵 긴 열차
차창 너머 산 어스름
한때 이런 처연한 빛을 보면
구름 위를 걷듯 세상이 막연해지곤 했다
사랑도 손에 쥐어져야 느껴지는 이쯤에도
보라는 여전히 매혹이다 언제 보아도
뇌수가 향방 없이 뭉클 쏟아지려 한다
오래 기다린 그대 등을 얼핏 보는 것 같다
더 기다려도 될 것 같다
한번만...조금만...이라고 되뇌다가
언제든 떠나도 될 것 같은,
돌아와도 떠난 흔적이 없는 나라,
보라국(國) 보라 백성들
잘 섞여진 기쁨과 슬픔의 빛
종아리 쯤 닿는 맑은 시냇물 속을 걷듯
붙잡지만 또 잘 보내주는 인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