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21. 9. 28. 12:04

성경말씀
(마16:13~17) 예수님께서 빌립보의 가이사랴 지역에 오셔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 합니까?"라고 물으시니...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바요나 시몬이여, 그대가 복이 있습니다! 이것을 그대에게 계시하신 분은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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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21. 9. 13. 00:05

성경말씀
(벧전4:16)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을 받는다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이 이름 안에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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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20. 11. 26. 00:05

지방교회 진리이만나 190회

왜 그리스도인은 여전히 죄를 범하는가?


성경말씀

(갈2:20)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더 이상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십니다. 이제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생명은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 안에서 사는 생명입니다.

(고전15:10) 그러나 내가 지금의 내가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지방교회 이만나 유튜브 : https://youtu.be/SZ2zmM1fF2s


지방교회 이만나 카카오TV : https://tv.kakao.com/v/414373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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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20. 4. 10. 00:05

지방교회 생명이만나 262회

옷을 입는 원칙


지방교회 이만나 유튜브 : https://youtu.be/krbsjDZWCT8


지방교회 이만나 카카오TV : https://tv.kakao.com/v/408028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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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만유 2020.04.10 06:35  Addr  Edit/Del  Reply

    옷 입기도 그리스도를 합당하게 표현해야!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9. 3. 25. 00:05

지방교회 동영상 생명이만나 100회

그리스도인의 신분과 상태와 길과 생활


지방교회 동영상 채널 유투브 : https://youtu.be/nUzS7lt9Dj0


지방교회 이만나 카카오TV : http://tv.kakao.com/v/396791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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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멘 2019.03.25 07:16  Addr  Edit/Del  Reply

    아멘! 우리의 등 안에 뿐만 아니라 그릇 안에도 기름을 예비하도록, 슬기로운 처녀들처럼 주님만을 순수하게 사랑하여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는 삶 살게 하소서!

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 7. 3. 05:00

이교에 물든 기독교-이교 사상과 인간 전통 으로 가득한 기독교

이교에 물든 기독교

이교 사상과 인간 전통으로 가득한 기독교

랭크 바이올라와 조지 바나가 함께 쓴 '이교에 물든 기독교'라는 책의 주요 내용을 소개합니다. 

아래의 내용들은 말 그대로 역사적 '팩트'(fact)입니다.  물론, '팩트'에 대한 해석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1.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매우 그리스도 중심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의 맥박이었다. 주님의 그들의 생명이었고,호흡이었고, 대화의 핵심이었다. 신약성서적 교회는 모든 것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놓았고, 또 최우선으로 놓았다. 

  2. 신약성서적 교회는 예배의 고정된 순서가 없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신자가 자신이 경험한 그리스도를 나누고, 자신의 은사를 사용하고, 서로 덕을 세우려고 애쓰는, 모두가 참여하는 열린 모임을 했다. 거기에 구경꾼은 없었다. 모두가 참여할 특권과 책임을 부여받았다. 이 교회 모임의 목적은 두 가지였다. 그것은 몸 안에서 상호 간에 덕을 세우기 위함이었다. 아울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서 모든 지체가 기능을 발휘함을 통해 주님이 밖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었다. 초대 교회 모임은 종교적 "예배 의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유스럽고, 자발적이고, 즐거운 분위기로 충만한 비공식적인 모임이었다. 그 모임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했고, 또 교회에 속했다: 그것은 어떤 특정한 사역 또는 은사 받은 사람을 위한 무대로 쓰이지 않았다. 

  3. 신약성서적 교회는 친밀한 공동체로 살았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집합적인 예배와 덕을 세우려고 모였지만, 교회가 단지 일주일에 한 번 또는 두 번 모이려고 존재한 것이 아니다. 신약성서의 신자들은 나누는 삶을 살았다. 그들은 정기적인 모임 밖에서 서로 돌봤다. 그들은 가족이라는 말이 주는 바로 그 느낌대로 진짜 그렇게 살았다. 

  4. 그리스도교는 이 세상에서 의식, 성직자, 그리고 신성한 건물이 없다고 알려진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종교였다.

교회가 생긴 다음처음 300년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가정집에서 모였다. 특별한 경우 에는, 기독교 사역자들이 때때로 더 큰 장소를 사용했다. - 솔로몬의 행각 같은 곳(요 10:23; 행 3:11)과 두란노 서원(행 19:9) - 그러나 그들에겐 신성한 건물의 개념이나 건물에 큰 돈을 들이는 개념이 없었다. 또 건물을 "교회" 또는 "하나님의 집"이라고 부른 적이 없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알았던 유일한 신성한 건물은 인간의 손으로 만들지 않은 것이었다. 

  5. 신약성서적 교회에는 성직자가 없었다. 

카톨릭 사제와 개신교 목사 같은 것은 아예 알지도 못했다. 교회는 교회를 개척하고 돌보는순회 사도적 일꾼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일꾼들을 특별한 성직자 계급에 속했다고 보지 않았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일부였고, 교회를 섬겼다. (거꾸로 교회가 그들을 섬긴 것이 아니고) 모든 그리스도인이 각기 다른 은사와 기능을 소유했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분의 사람들 위에 권위를 행사할 독점적인 권리를 갖고 계셨다. 사람은 그 누구도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 장로의 역할과 목자의 역할이 단 두 가지 은사였다. 장로들과 목자들은 특정한 은사를 가진 평범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들은 특별한 직책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은 교회 모임에서의 사역을 독점하지 않았다. 그들은 위기에 처한 교회의 지체들을 자연스럽게 돌보고 또 교회 전체를 감독하는 일을 하는 경험 많은 그리스도인이었다. 

  6. 신약성서적 교회에서의 의사결정은 교회 전체의 어깨에 달렸었다. 

순회 교회 개척자들은 때때로 지침을 주고 방향을 설정해주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교회 전체가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 아래서 그 지역에서 결정을 내렸다. 함께 주님의 마음을 알고 그것을 따르는 교회의 책임이었다. 

  7. 신약성서적 교회는 조직적이지 않고 유기적이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직책을 주고, 프로그램을 짜고, 의식을 제정하고,상명하복식 계급이나 명령계통 구조를 조직해서 함께 묶은 것이 아니었다. 교회는 살아 숨쉬는 생명체였다. 그것은 태어나서 자랄 것이었고, 그 유전자(DNA)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드러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모든 은사와 사역과 기능을 포함한다. 하나님의 눈에는, 교회가 아름다운 여자, 곧 그리스도의 신부이다. 그녀는 땅에서 나온 인간이 만든 조직이 아니고, 하늘에서 온 식민지였다. 

  8. 십일조는 신약성서적 교회의 관습이 아니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재정을 교회 밖의 가난한 자들뿐만 아니라 그들 중의 가난한 자들을 지원하는 데 사용했다. 아울러 그들은 복음이 널리 퍼져서 다른 곳에도 교회들이 세워지게 되도록 순회 교회 개척자들을 지원했다. 그들은 죄책감이나 의무나 강압에 의해서가 아닌, 자신의 능력대로 드렸다. 목사/성직자의 사례비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도 없다. 교회의 모든 그리스도인은 제사장이요, 사역자요, 몸에서 기능을 발휘하는 지체였다. 

  9. 침례(세례)는 그리스도인으로 회심했음을 밖으로 드러내는 표현이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했을 때, 새로운 지위를 얻었음을 표하는 간증으로 즉시 그 사람들에게 물로 침례(세례)를 베풀었다. 주의 만찬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들의 믿음을 재확인하고 또 주님의 몸과 하나가 되었음을 재확인하는 지속적인 표현이었다. 주의 만찬은 교회가 기쁨과 잔치의 분위기로 함께 즐겼던 온전한 식사였다. 그것은 상징적인 의식이나 특별한 제사가 결코 아닌,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의 교제였다. 

  10.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젊은 일꾼들을 훈련시키려고 성서학교나 신학대학원을 설립하지 않았다. 

기독교 일꾼들은 교회생활의 토양에서나이 든 일꾼들에 의해 교육되고 훈련되었다. 그들은 '현장에서' 배웠다. 예수님은 12제자를 키우실 때 이 '현장에서'훈련하는 최초의 모델을 선보이셨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젊은 이방인 출신 일꾼들을 훈련할 때 그 모델을 복제했다. 

  11. 초기 그리스도들은 자신들을 여러 교파로 나누지 않았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 됨을 이해했고 그것을 모든 도시에서 눈에 띄게 표현했다. 그들의 생각에는, 한 도시에 교회는 하나뿐이었다. (교회가 그 지역 전체에서 여러 다른 가정집에 흩어져서 모였겠지만) 만일 당신이 1세기 그리스도인이었다면, 한 교회에 속했을 것이다. 성령 안에서의 하나 됨은 잘 지켜졌다. 그들을 나누는 것("나는 바울에게 속했다." "나는 베드로에게 속했다." "나는 아볼로에게 속했다.")은 분파와 분열을 조장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고전1:12을 참조) 

 이교에 물든 기독교, 프랭크 바이올라와 조지 바나, 대장간, pp 311 - 314

출처:good news fellowship                          글쓴이:maple

이교에 물든 기독교
국내도서
저자 : 프랭크 바이올라(Frank Viola),조지 바나(George Barna) / 이남하역
출판 : 대장간 2011.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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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6:35
성경말씀 

 (롬14:16~17) 그러므로 여러분이 좋다고 여기는 것이 도리어 비방거리가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의 왕국은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의와 화평, 그리고 성령 안에 있는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마28:20下) 나는 이 시대가 종결될 때까지 항상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  

오늘의 만나 

 어떤 의미에서는 왕국이 여기에 있고, 다른 의미에서는 왕국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 예수님 자신과 같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주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여기 계시지만 다른 의미에서 주님은 오시고 계십니다. 주님이 내적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동안에도 그분은 여전히 외적으로는 오고 계십니다. 오늘날 우리는 사람들에게 주 예수님을 믿으면 그분이 우리 안에 계신다고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외적으로 오시어 왕국의 나타남을 가져오실 때에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왕국의 나타남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왕국의 실제 안에 산다면 상점이나 식당에서 잔돈을 더 많이 받았을 때 곧 돌려 줄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할 때 다른 사람들은 우리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그러한 상황을 통해 이익을 취하지 않는 사실을 보고 놀랍니다. 사람들에게 여분의 돈을 돌려주고 다른 이들의 이익을 취하기를 거부하는 것이 우리의 그리스도인 생활에 있는 왕국의 실재의 한 예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세상적인 사람들은 이것이 왕국이라는 것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왕국의 나타남을 가져오실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들은 ‘이것이 왕국의 나타남이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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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6. 14:50
성경말씀 

 (고후6:17)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이다. 너희는 그들 가운데서 나와서 따로 분별되고, 더러운 것을 만지지 마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받아들일 것이다.”라고 하셨고 

 오늘의 만나

 
 여러분은 세상 사람이 그리스도인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들에서 모두 떠나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먼저 세상 사람이 되는 데서 시작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각각 어떤 기준이나 표준을 정합니다. 만일 당신이 이런 수준에도 이르지 못한다면 당신은 끝난 것입니다. 당신은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인도 이런 일을 하느냐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당신이 그러한 사람이라면 당신은 끝난 것입니다. 가령 당신이 어떤 장소에서 이방인에게 발견되어 그가 당신에게 “그리스도인도 이런 장소에 오십니까?”라고 말한다 합시다. 물론 이방인들은 많은 장소에 갑니다. 만일 당신이 그것은 그릇된 것이라고 말한다 할지라도 그는 여전히 옳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그런 곳에 간다면 그는 당신도 갈 수 있느냐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방인이 해서는 안 된다는 것들을 행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최소한의 요구입니다. 이방인이 그리스도인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들에서 우리는 떠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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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4. 14:30
성경말씀 

 (시119:72)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금은보다 승하니이다 

 오늘의 만나

 
 어떤 나이든 그리스도인이 팔십 세 생일 때, 하인들에게 선물을 주려고 하였습니다. 저녁 때에 이 노인은 하인들을 모두 불러들였습니다. 한 손에 금박으로 칠해진 아주 좋은 가죽 성경을 들고서 요리사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자, 이 성경책과 돈 이십 불 중 네가 원하는 것을 아무거나 골라라." 요리사가 말했습니다. "주인 어른, 저는 글을 모릅니다. 돈을 주십시오." 노인은 그에게 이십 불을 주었습니다.  또 여종에게 물었습니다. " 너는 글을 읽을 줄 아니 성경책을 줄까? " 그녀는 대답했습니다. "주인님, 저는 너무 바빠서 성경을 볼 시간도 없습니다. 제게도 돈을 주세요." 마지막으로 마당을 쓸고 편지 배달을 하는 하인에게 물었습니다. "너에게도 이십 불을 주겠으니 가서 어머니께 옷 한 벌 해 드리거라." 그 하인은 말했습니다. "주인님, 저는 성경을 갖고 싶습니다." 노인이 깜짝 놀라서 "너는 글도 모르는데 성경을 갖고 무엇하려느냐?"고 물었습니다.  하인은 "네. 어머니는 성경을 날마다 제게 읽어 주십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성경책은 너무도 낡아서 한 권 사다드리려 했으나 돈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성경책을 어머니께 가져다 드리면 이십 불을 드리는 것보다 더욱 기쁘게 해 드릴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주인은 "기특하구나! 너를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란다."라고 말하면서 그에게 성경책을 주었습니다. 하인이 받아 펼쳐보니 그 안에는 백 불짜리 지폐가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보고 놀라 잘못 고른 것을 후회하였습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성경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축복을 잃는지 모릅니다. 만일 당신이 성경을 사랑하고 그것을 읽는다면, 반드시 그 속에서 넘치는 풍성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금은보다 승하니이다."(시119:72)
출처:온전케 하는 예화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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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콤한 지방교회 스토리 2018. 5. 11. 20:20
성경말씀  

(마25:1~4) 그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처녀와 같습니다. 그들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현명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을 가져갈 때에 기름을 가져가지 않았으나, 현명한 처녀들은 등과 함께 그릇에 기름을 가져갔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만나

 
마태복음 25장의 처녀의 비유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세상에서의 신분이 슬기로운 처녀처럼 깨끗하고 단순해야 하며, 빛이 있는 등을 들고 흑암을 비추는 상태여야 하며, 주님을 원하지 않는 이 세상에서 나오는 길을 가며, 주님의 다시 오심을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는 생활을 해야 함을 분명하게 보아야 합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고 이 세상은 그분을 거절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까지도 이 세상에 두지 않고 세상에서 나와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주님이시며 우리의 유일한 신랑이신 분을 영접하기 위해 나와야 합니다. 애석하게도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어떤 신분이며 어떤 상태인지 모릅니다. 우리의 상태를 비춰볼 때 우리는 자신이 마땅히 가져야 할 상태와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슬기로운 처녀들처럼 빛을 발하는 등을 들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주님을 싫어하는 세상에서도 나오지 않았고,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지도 않습니다. 주님은 마태복음에서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신분과 상태와 길과 생활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시작이며,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야 할 생활의 기점입니다.
출처 : 그리스도인의 생명이 성숙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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